나는 여행하며 영어한다 - 기초 필수 회화패턴 100
강다흔 지음 / 키출판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원래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하진 못했었지만, 관련 없는 일을 하고 나이도 들어가면서 영어를 쓰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은 더 커지고, 어쩌다 외국인을 만나면 목소리는 수그러들기 일쑤였는데, 영어권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아주 유창하게는 아니지만 자신 있게 영어를 말하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배우고 하나라도 더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어르신을 보니 영어는 자신감,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화사한 표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나는 여행하며 영어한다>는 저자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외국인과 한 대화를 모아 ‘필수 회화패턴’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진짜 여행 상황에서 필요한 영어는 그동안 여행영어 책에서 본 정석, 영어회화가 아니라, “저 중국인 아닌데요” 뭐 이런 말, 아니면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려서 경찰서에서 진술해야 하고, 외국과는 한국인의 나이 계산법을 설명하는” ‘실전 여행영어’였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영어를 다 습득하고 외울 수 없으니, 패턴으로 설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여행하는 자유 여행가였기 때문에. 가이드를 따라가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듣다가 영어를 배운다. 남들하고 말하다가 영어를 배운다. 그저 닥치는 대로 말하다가 배운 영어패턴에 단어만 바꿔가며 쓴다.” (11쪽)

 

 

 

100가지의 패턴을, 저자가 직접 영어를 사용했던 상황 속 대화와 응용할 수 있는 문장들을 통해 배운다. 직접 읽어보니 정말 의외의 상황들이면서도, 진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 만약 벌어진다면 결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상황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문화재 혹은 기념비를 왜 밟으면 안 되는지’, ‘홈스테이를 바꿔줄 수 있는지’, ‘분실물을 찾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추천하는 여행지가 있는지’ 와 같은 실전 영어 회화를 사용했다. 패턴의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페이지마다 단어의 설명과 tip이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어 영어 왕초보도 무난하게 학습할 수 있을 듯하다.

 

 

 

100개의 패턴이 완료된 책 뒤쪽 부록에는 해외에 나가는 10가지 방법을 설명한 페이지와, 상황별 여행영어 100 (이건 여행영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패턴과 유사하다), 외국인 친구들과 우정 쌓는 5가지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이 책만 천천히 연습하면 정말로 요리조리 잘 써먹을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영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mp3 파일도 책 앞쪽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원어민 발음을 통해 실전 상황에서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또한 스토리마다 저자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무려 자작곡!) 배경음악 또한 수록되어 있어서 함께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 상황별 패턴이나 부록, 피아노 파일 등을 보니 서문에서 언급했던 ‘말문이 막히는 여행자를 도와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세심한 마음이 다시금 느껴진다. 가볍지만 들어갈 것 쏙쏙 다 들어가 있는 영어책으로 올해는 자신감 있게 영어하며 여행할 수 있기를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위안하기엔 인간은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 같다. 지구라는 행성을 입맛대로 바꿔온 인간은 다른 동물들의 삶에 너무도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식생활은 물론, 과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로드킬 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동물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특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간의 쾌락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목적은 다양하다. 대량 생산, 놀이, 체험, 전통문화, 패션, 건강, 실험... 다양한 이유들에 따라 희생되는 동물의 종과 수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일부 판매자나 기업은 소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더 편리하게 동물들을 '다루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한다. 그 과정에서 번번이 학대가 일어난다. 그러나 단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만의 문제일까? 가장 먼저는 '소비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외면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이런 소비자들의 작은 선택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쇼 동물이나 모피 동물, 케이지 사육의 문제들은 미디어를 통하여 여러 번 접한 적이 있으나,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한 맹수를 특정 공간에 가둬서 사냥하는 '통조림 사냥',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소를 보고 열광하는 스포츠 '투우', 야생에서 포획되는 순간 폐사 가능성이 6배 높아진다는 '수족관 돌고래', 죽을 때까지 배에 연결된 호스로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사육 곰', 지느러미가 잘려 바다에 그냥 버려지는 '상어'등 인간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동물들이 허다했다.

 

저자는 이렇듯 큰 범위로 퍼져있는 동물학대산업을 막기 위하여 한 명 한 명의 도움이 필요하다 말한다. 지나친 스트레스로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을 아이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진실'을 들려주며, 여행을 할 땐 동물학대산업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당장 모든 것을 끊을 수 없지만 소비를 할 때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덧붙여 저자는 동물 복지에 힘쓰고 있는 '파리 동물원'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동물의 습성에 따라 다양하게 꾸려진 서식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관람객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동물을 보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는 쇠창살 없는 동물원의 모습은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파괴당한 동물들을 위한 진정한 '보호소' 혹은 '동물원'이 아닐까.

 

사실, 이 책에 대해 읽고 글을 쓰기 전 많이 망설였다. 겨울옷을 마련할 때마다 모피동물의 털 (앙고라, 라쿤, 오리털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지만, 여전히 고기를 먹고 있는 나는 과연 떳떳한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한 블로그 (링크) 에서 이런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생각이 오히려 동물 보호와 관련된 발전을 막는 매개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따지면 ㅇㅇ가 더 불쌍해", "그럼 넌 채소만 먹어"와 같은 말들은 실천의지를 없애버리는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완벽한 실천은 무의미하다는 사고방식은 더 많은 무분별한 동물 소비와 동물 학대를 부르고 발전 가능성을 멈춰버리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오늘 단 한 가지의 실천만이라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먹고 쓰고 구매할 것인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내 선택으로 지구 저편에 있는 동물에게 고통이 주는 산업이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는 선택할 때 더 싼 가격이나 지금 당장의 편의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위한 선택을 하는 건 어떨까. 잠깐의 시간을 들이거나 조그만 불편을 감수한 내 선택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니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181쪽)

 

 

 

56쪽,
매일 물웅덩이를 찾아 물을 먹는 코뿔소의 습성 때문에 코뿔소를 찾아내 죽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험 있는 밀렵꾼이라면 물웅덩이에서 기다렸다가 물을 먹는 코뿔소에 다가가 쓰러뜨리고 뿔을 제거하는 데 7분이면 충분하다. 일단 코뿔소의 무릎을 총으로 쏴 쓰러뜨린 후 아킬레스건과 척추를 칼로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고는 도끼로 코의 뿌리부터 도려낸다. 코뿔소는 즉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서히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죽은 엄마나 아빠 코뿔소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 아프게 울부짖는 아기 코뿔소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86쪽,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이 관람객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는 사육장도 많다. 심지어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사방을 투명한 유리로 만든 사육장도 있다. 그나마 관람객에게 전시되는 외부 방사장과 내실이 분리되어 있는 동물원도 동물이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잠가 동물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도록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06쪽,
잔인하게 포획된 어린 코끼리를 사람의 명령에 따르도록 길들이는 작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도적이다. 코끼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도록 길들이기 위해 훈련사들은 새끼 코끼리를 자신의 몸보다도 작은 나무 상자에 구겨 넣어서 꼬박 일주일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매질을 하며 굶기고, 잠도 재우지 않는다. 이를 파잔phajaan 이라고 부른다.

129쪽,
어두침침한 창고의 문을 열면 곰의 크기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케이지가 몇 줄로 늘어서 있다. 몸을 굴리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한 케이지 안에는 가슴에 흰 초승달 문양이 새겨진 곰이 갇혀 있다. 산딸기, 머루 등 과일과 도토리를 좋아해 하루 종일 산을 누비며 먹이를 찾아 먹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는 습성이 있지만, 정작 이곳의 곰들은 케이지 안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쇠창살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배에 뚫린 구멍에서는 사시사철 고름이 흘러나오지만 사람이 다가가면 자연스럽게 배를 철창에 갖다 댄다.

150쪽,
진정한 교육은 진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벨루가의 귀여운 미소 뒤에 숨겨진 슬픈 진실을 숨기고 겉모습만 보여 주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거짓일 뿐이다. 남은 벨라와 벨라가 담긴 푸른 수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보다 한때 그곳에 살았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뜰 수밖에 없었던 벨로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고 값진 교육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9 김범수 - 김범수 편 - 만들다
김범수.스리체어스 편집부 지음 / 스리체어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력이나 기술 따위를 들여 목적하는 사물을 이룬다'라는 '만들다'의 사전적 개념은 이미 확장된지 오래다. 디지털 시대로 들어선 지금은 하루에도 수없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을 접한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 등 사물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웹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보의 양만큼이나 무한한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시대를 앞선 것들을 구상하고 개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의 표지에 처음에 '만들다'와 '김범수'라는 이름이 매치된 것을 보고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책 초반부터 등장하는 카카오와 카카오 프렌즈 사진들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 하루 종일, 어쩌면 모든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카카오 (그 이외의 것들 : 내 휴대폰 케이스..)인데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9호의 주인공은 기업가 '김범수'이다. 8.5호부터 달라진 판형과 형식으로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전달한다. 김범수의 삶과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 인터뷰, 미래와 현재에 관한 세계적인 인물의 대담과 인터뷰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현 카카오 의장인 김범수가 한 일들을 나열하면, 감탄이 쏟아진다. PC 통신 '유니텔'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국내 최초의 게임 포털 '한게임'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네이버컴 등과 합병하여 NHN이 되었고, 온전히 '만드는 사람'이고 싶었던 그가 회사를 나와 만든 것이 바로 카카오톡이었다. 당시 스마트폰 메신저가 하나둘 등장할 때였는데 카카오톡은 빠른 시장 선점을 목표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그의 창업 규모를 상장 기업에 국한하면 용례가 거의 없는(146쪽)' 수준이라고 한다.

 

 김범수 의장이 한국의 대표 벤처 창업가가 되기까지의 일들을 책으로 읽으면서, 그의 성공 비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캐치해내는 능력이 일단 우선적이었지만, 매번 위기와 고비를 겪을 때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생각할 때마다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결단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단력'은 어쩌면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사업 성공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일단 실패를 염두에 놓고 시작해야 돼요. 비가역적인지 아닌지를 곰곰이 따져야 해요. 한번 했다가 다시는 재기할 수 없다면 정말 신중히 결정해야 해요. 한번 했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빨리 돌아오면 그건 손해가 아니라 큰 경험이죠. 그런 의미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217쪽)

 

 

 

 

 "게임이 바뀌었다" 누구도 그에게 '게임이 바뀌었다'고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이 맞은 현실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게임의 룰이 바뀐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을 찾지 않는 현실을 발견합니다. (…) '직'이 아닌 '업'에 집중하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나아가 잘할 수 있는 업을 찾아야 합니다."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취임사를 바탕으로 발췌, 각색 80-90쪽)

 

 미국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현재 후배 인재 양성에 힘쓰는 멘토로써 자리하고 있으며, 또다시 새로운 '만들기'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기업가로서 성공을 하였지만 10년 뒤 코딩을 배워 무엇인가 만들고 싶다는 그에게는 '개발자'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것 같다. 사회적 기업과 '행복과 선택'에 대해서 말하는 그는 무척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9호의 인물로 김범수 의장을 선택한 것은 아주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이 대두되는 이 시대,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까지 담은 이 책은 무척 흥미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작 1 - 간질병의 산을 오르다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다비드 베 지음,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길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지하철에서, 가끔 당황스러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은 이랬다. 청소년쯤 되는 아이가 알 수 없는 문장을 소리쳐 말한다. 성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헤드폰을 낀 채로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큰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은 다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다. 그러다 '나쁘거나 혹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사람이란 것을 깨닫곤 큰 소리를 애써 귀속에서 줄여가며 외면한다. 이는 단지 주변 사람 뿐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주목을 끄는 행동을 할 때, 옆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항상 놀라웠다. 다른 경우도 있을지 모르나, 내가 본 분들은 모두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절대로 흥분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침착했다. 손으론 아이를 제지하면서도 표정이 굳거나 인상도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늘 있었던 일인 양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그 모습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되기까지의 고난의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나는 그 가짜 스승들, 음성적인 치료법들에 걸었던 희망을 다 토해버리고 싶었다."
 나의 연민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조차 그들에게 고통이 될 거라는 생각은 『발작』이란 책을 보고서 더 깊어졌다. 책은 간질병으로 시시각각 발작을 일으키는 형을 둔 작가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이다. 1970년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간질병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회고록 형식으로 담았다. 모든 가족들은 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움직였다. 매크로바이오틱, 침술, 강신술, 수맥 관리, 연금술…… 발작을 멈출 수만 있다면 가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발작은 완벽하게 고쳐지지 못했다. 실패, 좌절의 연속이었다. 간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벌레보듯 했던 사회였다. 밖에서 형이 발작을 할 때면, 오히려 가족들은 온갖 비난과 멸시에 시달리곤 했다.

 

 

 

어린 나이였던 피에르프랑스와 (필명 다비드 베)는 형의 발작을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숨겨두다, 훗날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당시에는 장난스럽고 웃기는 모습으로 감췄던 속마음은 『발작』에서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책은 온갖 것들이 복잡하게 섞인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숨김없이 그려낸 듯 보인다. 꿈속의 환상, 형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나쁜 마음,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들, 그가 만화가를 꿈꾸면서 읽었던 책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나의 갑옷은 밤이다." 라는 그의 독백처럼,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 모든 감정을 토해놓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꺼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온갖 치료법과 병을 나아지게 할 것들을 찾아 나섰던 가족들의 끝도 결국 내가 목격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고립된 곳에 머무르고, 병에 순응하고,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살아가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의 개명은 입장을 표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 나는 속되고 천박한 카우보이들에게 맞서는 눈부신 인디언들의 편에 섰다. 나는 살찐 나치들에게 맞서는 말라빠진 유대인들의 편에 섰다."

 

 작가의 불안하고 격앙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책은, 다소 읽기에 불편하기도 했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을 그대로 풀어놓았으니 어찌 보면 참 불친절하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순간 페이지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게 한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 한 세기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서술 덕분에 불친절한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라보네이션 - 시민X안희정, 경험한 적 없는 나라
안희정 지음 / 스리체어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장을 열고,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좀 되었는데 이제야 글을 남긴다.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이야기를 이렇게 편안하고 쉽게 받아들인 건 오랜만일 정도였다. 또한, 안희정 지사에 대한 호감도 있었기 때문에 술술 읽어내렸는데, 왠지 모르게 우물쭈물한 감이 있었다. 어지러운 시국이 계속되었고, 민주주의는 추락했으며, 국민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커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안희정 지사가 꿈꾸는 민주주의는 분명 좋은 민주주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올해 상반기에 읽었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8』에서 안희정 지사의 삶과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면, 『콜라보네이션』에서는 보다 더 집중적으로 그의 정치 목표와 기록들을 전한다. 그가 운동권 학생, 국회의원 비서, 노무현 대통령의 파트너, 지금의 충남 도지사까지의 어려운 시간을 거쳐오면서 확립한 '더 좋은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인  '콜라보네이션 Collabonation'이다. 콜라보네이션은 협력과 국가의 합성어로 국민이 참여해 이끄는 더 좋은 민주주의 사회를 의미하는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느껴질 때쯤, 지금의 현실을 깨닫는다. 국민은 국가의 원동력이고, 헌법에까지 국민주권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안희정 지사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17쪽)"


 시민과 국가, 정부와 관료, 복지, 환경, 외교에 대한 안희정의 생각들을 아울러 다루는 이 책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그의 '대선 출사표'와도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를 비판하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해결책을 말하는 안희정의 모습은 자신감 있고 확고하다. 그러나 단지 그 해결책들이 신뢰 가능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은 세상을 크게 변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이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그때마다 나는 답한다. 똑똑한 지도자 혼자서 끌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국민과 시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 국민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다." (350쪽)


 이 책의 표지에는 안희정의 이름만 쓰여있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 이름이 와야 할 곳에는 시민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여 있다. (시민 X 안희정)

 또한 책 속에는 그가 틈틈이 남긴 (『콜라보네이션』 의 내용과 맞물리는) 메모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결코, 허투루 나온 이야기들이 아닌, 직접 생각하고 구상한 내용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이 책에 나온 그의 계획들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시민에 대한 애정과 그가 꿈꾸는 세상을 일단은 믿어보고 싶다.


 

50쪽,
제도와 지도자의 능력이 정치 수준을 결정한다. 이 믿음으로 올라와야 한다. 어떤 경우든 대중의 의식과 민도를 탓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자로서 어떻게 제도를 설계할 것이냐, 하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한다. 나는 지방 자치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넘어야 할 다음 단계임을 믿는다.

73쪽,
많은 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내가 해 줄게‘라고 얘기하고, 공약과 표가 교환되면서 정부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 다리 놔 줄게, 복지 정책 해 줄게, 그 ‘해 줄게‘라는 말은 국가와 주권자를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는 단어다. 정부가 내 것이라면 마치 선물을 받듯 공약을 받을 일이 아니다. 재원이 어디인지 따져 묻고 국가 재정의 효율적 지출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민의 것이다‘라는 생각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노력이 정부 혁신을 향한 나의 첫 번째 출발점이다.

118쪽,
우리 사회가 나라는 존재와 이 경이로운 세상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도록 자극해 본 적이 있을까. 모든 자극을 봉쇄하고 ‘무조건 외워서 풀어‘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은 열등감과 상처 입은 자존심 외에 나답게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 준 일이 있을까. 이런 상태로는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295쪽,
국가 지도자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국가 정책이 가져올 고통과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정책 목표가 거룩하고 고상하기 때문에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짓밟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실상 반민주적인 리더십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국민을 동원하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지지 기반의 정치 성향에 기초해서 5천만 국민의 실질적 이익이 무엇이냐는 토론을 방해하고 있다. 더 나은 길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고 있다.

298쪽,
정치 지도자의 유일한 목표는 5천만 국민의 안녕과 시민이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첩첩이 다가오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부터 세계적인 경제 위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독립을 쟁취했던 선열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던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진보나 보수의 어떤 이데올로기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는 목표보다 중요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