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자타가 인정하는 유능한 영업의 달인 한분을 모시고 회사 사람들과 영업 노하우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자유스럽게 진행되었는데 하나 충격적인 말이 바로 "40대에 편하게 보내다간 쉽게 집에 간다"라는 말이었다.

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나 곰곰히 따져보니 기업의 구조상 40대의 역할은 관리자에서 사업가로 변해가는 시기다. 즉 지위가 올라감에 따라 관리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역할 또한 책임을 보다 많이 지게 된다. 최종적으로 단위 사업의 책임까지 지도록 하는 사업가 만이 남을 수 있다.

모 그룹의 경우도 대체로 임원의 정년이 50이라는 암묵적 기준이 있다. 이렇게 보면 40대는 한해 한해가 빠르게 연령별로 남아 있을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반면 일에 대한 압박은 커져만 간다.
결정적으로 본인들의 학습 역량은 점점 줄어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강연을 듣기전 강사이신 달인이 속했던 첫 직장이 45세 이상 되는 사원 수십명을 구조조정 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더 잘되었을 수 있지만 이 프로그램에 해당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40대에 편하게 보내다간 금방 경쟁에서 도태되어 버리고 그 결과는 잘해야 한 단계 낮은 다른 일을 하거나 심하게 말하면 집에 간다는 섬뜻한 메시지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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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될 자질 중 하나는 파는 능력이라고 한다.
digging으로 표현 될 수 있는 이 능력은 젊어서 왕성한데 말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 곳을 파려고 노력해서는 아무것도 깊게 팔 수 없다는 점이다.
땅 속에 정말 보배가 있는지는 처음에는 쉽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꾸준히 파다보면 정말 보배는 아닐지라도 어지간히 먹고 살만큼의 농토는
만들어낼 수 있는지 모른다.

맨 처음 잘 고르고 그 다음부터는 열심히 꾸준하게 끈기를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의 한계 중 하나는 혼자서는 큰일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이를 잘 이해해야 하는데 전문가가 섯불리 전체를 다 하려고 덤비면 오히려 죽도 밥도 안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아줄 관리자나 사업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성을 키워주고 길을 열어주는 윗사람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1인 기업도 가능하다. 구본형씨 등이 좋은 예다.
단 이를 위해서는 내면에 있는 능력을 잘 정리해서 외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앞서 들었던 예가 식자공의 몰락이 있었는데 위기감을 느꼈을 때 차라리 식자의 도구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하거나 조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화 초밥왕 등을 보아도 초밥체인을 만드는 사업가들이 나와서 오랫동안 한 가게를 지키는 자신의 스승을 비웃으며 싸움을 거는 장면이 비슷한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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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열심히 하다가 문뜻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게 된다. 이 때 내가 지행해야 할 길이 무엇인가 묻게 된다.

이럴 때 흔히들 세가지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전문가, 한가지 테마를 확실히 파고들어가 남들에게 그 사람이야말로 문제해결사야라는 소리를 듣는다.
관리자, 두루 사람과 일을 알아 힘을 모아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같이 하는 사람에게 목표를 잘 부여할 수 있다.
사업가, 일을 돈으로 환산시킬 수 있다. 돈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한다. 최종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다.

회사로 보면 처음 실무자로서 일하다가 과장부터 관리자 생활을 하고 나중에 임원이 되면 최종적으로 사업가로서 활동하다가 마친다고 이야기될 수 있다.
그럼 전문가 < 관리자 < 사업가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인가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예전이라면 그렇지만 지금은 꼭 그것이 맞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먼저 업종에 따라 전문가가 관리자보다 더 많은 대우를 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ERP 분야에서는 한 업무를 오래 한 사람들이 월 1000만원이 넘는 보수를 받으며 개인 전문가로 활동하게 된다. 반면 이들을 관리하던 관리자들은 오히려 전문성이 없어서 그 보다 반 정도의 보수로도 만족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게 되는 모습도 보게 된다.

우스개 소리지만 비슷한 예로 세무공무원들이 승진 하지 않으려 한는 현상이 있다. 직접 발로 뛰는 현장을 떠나면 오히려 보수가 내려간다고 한다. 이 것이 단순 급여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아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하여간 전문가의 길을 가려면 몇가지 오해를 넘어서야 한다.
대상이 과연 시간이 오래갈수록 깊이를 인정받는 분야인지 아니면 단순히 육체적 노동력만 원하는 분야인지를 알아야 한다. 괜히 당신이야말로 전문가야 하면서 한가지 일에 오래 사람을 붙들어 놓으려는 관리자가 있기 때문인데 헛된 믿음이야 말로 위험하다.
단순이 일과 직장에 자신의 시간과 몸을 빌려주는 지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들인만큼 깊이가 만들어지는지 잘 보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장인의 대우를 받을 수 있나 아니면 일거에 대체품에 의해서 사라질 수 있는지 그런 흐름도 잘 보아야 한다. 피아노 조율사나 식자공이 단번에 사라지는 현상을 보면 그렇다.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대체품의 등장이다. 바다를 넘어서 온 중국 조선족 요리사 덕분에 중국집 주방장들이 거리에 많이 나왔다는 소문도 있다. 이는 첨단 컴퓨터 분야도 예외가 아닌데 미국의 경우 아웃소싱 바람으로 IT 분야 job이 인도로 날라가버리기도 한다.
다니엘 핑크의 경우 심하게 말해서 화이트컬러들의 job 중 반복적인 많은 부분, 회계사 등 전문가라고 하는 부분도 대체되거나 사라진다고 예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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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같이 일했던 친구 하나가 매우 분개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프로젝트를 수주했는데 초기에는 대형 수주라고 좋아하면서 그 공은 영업을 잘 한 임원이 가져갔다고 한다. 막상 진행해보니 처음 계획만큼 유연하게 흘러가지 않아 결국 손익이 기대보다 낮아지게되었다. 이 부분은 과로서 현장에서 팀을 지휘한 리더가 지게 되었다.

전형적인 공은 위로, 과는 아래로라는 원칙으로 운영되는 구조다.
이런 잡음이 나오게 된 연유에는 두 사람의 다른 출신배경이 작용한다.
한 사람은 컨설팅 회사 출신이라 공을 극단적으로 위에서 챙겨가는 운영 방식에
익숙하다.
다른 한 사람은 인화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속에서 성장해서 서로 도닥거려주면서
함께 가는 운영을 기대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기본적으로 공이 위로 쏠리도록 만들어져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구조가 회계법인, 경영 컨설팅 등의 회사인데 여기서는 소수의 파트너가 성과의 대부분을 독식한다. 80:20 법칙을 현실에 적용하여 설명한 명저를 만들어낸 리처드 코치도 바로 컨설팅회사의 파트너였다.

결국 직장 생활도 하나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을 도모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이곳 저곳에 컨설팅적 사고가 번져가는 것을 보면서 이 흐름에 익숙해지려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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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인 광주라는 엄숙한 주제를 그려내었다. 리얼리티를 살려서 다루어냈다는 점에서 가장 유사하다고 떠오른 작품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곤봉이 머리위에 떨어지고 심지어 총알이 쏘아지고 맞은 사람들에게서는 피가 튀며 고통과 슬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는 잘 갖추었다. <꽃잎>이나 <오아시스>와 같이 이전에 광주를 다룬 작품에 비해 보다 직설적으로 현장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아픔에 공감하고 슬픔을 가슴에 담으면서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럼 왜 이렇게 무지막지한 폭력이 발생했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이 이어져야 했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에는 이 부분이 빠져있었다.

앞서 닮았다고 예로 들었던 <라이언일병구하기>에서 스필버그는 3단계 소나타 구조를 보여준다. 빠르게 느리게 다시 빠르게 이렇게 서로 다른 속도의 세 흐름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먼저 죽음의 잔혹함을 적나라 하게 보인다 다음 왜 이런 죽음이 필요한지를 묻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서 빠르게 매듭을 지어간다.

<화려한 휴가>에서 문제의 발단인 공수부대의 진입과 잔혹한 진압을 보여주는 것은 좋다. 반면 왜 시민들이 봉기하고 그 잔혹한 공수부대에 맞섰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는 중요한 한가지가 빠져있었다. 당시 전남대, 조선대에 모여 있던 학생들에 대해 곤봉이 날아들고 이들이 흩어지면서 주변에 소식을 전했다. 특히 시민들은 호남의 정치인 김대중이 잡혀갔다라는 소식을 알려지고 점차 동요가 확산되었다.

영화는 이 대목을 건너뛰거나 조용히 뽀샵 처리해내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진실을 제대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대목은 중요하다.
역사는 일련의 흐름을 이루기 때문이다.
80년의 광주라는 사건은 6,70년대 박정희의 개발독재의 마지막이고 80년대라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또 한편의 영화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10.26 하루를 다루어 논란이 많고 상영은 길지 못했던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작품이다. 영화는 중앙정보부 안팎의 폭력으로 시작된다. 정보부 밖에서는 박정희를 모셨던 바꾸어 말해서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의 어머니가 권리 주장을 하자 쌍욕을 하면서 정보부로 끌고가 협박을 해대는 박선호의 모습이 나온다. 정보부 안에는 이렇게 박정희를 너무나 사랑한 모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청년 학생들이 박정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와 두들겨 맞고 있다.
영화는 시작에서 끝까지 문제의 발단과 해결 모두 폭력만으로 강제되는 구조다.

이어진 박정희를 모신 안가의 술자리에서 차지철은 부산의 학생 데모에 공수부대라는 폭력을 퍼부어 싹 쓸어버리자고 건의한다. 이에 대한 박정희는 묵시적 동의하는데 더 큰 폭력을 막기위해 차라리 내가 이 자리에서 작은 폭력을 행사해 막아버리자는 김재규의 거사가 나온다.
바로 여기서 김재규의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광주의 일부는 부산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80년 사건을 만든 군사강압적인 체제의 구조와 배경은 박정희에게서 만들어졌고 단지 실행하는 시기와 장소만 조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센 사람은 최고로 대우 받고 그들의 힘 앞에서 대부분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는 그런 사회구조였다. 군대라는 힘을 장악한 신흥 군벌들은 박정희에게 차지철이 건의하던 방식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왜?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고 매력 또한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김대중은 이 대목에서 무엇이었을까?

바로 박정희의 지역차별적인 정책에 소외된 호남인들의 희망이었다.

시기를 뒤로 해 87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달동네 뒷골목에 올라서서 공명선거 운동을 하다 우연히 노가다 하시는 두 분을 만났다. 누굴 찍겠냐는 물음에 김대중이 낫지 않겠냐고 답했더니 맥주까지 따라주었다.
말투로 짐작해 보건대 고향은 호남, 그 분들의 오늘의 삶은 하루 하루 공사판에서 이어지는 고단함 자체였다. 피곤함 지침 희망 부족함에서 고향은 가족과의 따뜻함이 담겨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뿌리 뽑힘을 경험한 그들에게 박정희의 개발정책은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손이었을 것이고 그 반대에 놓인 김대중은 막연하나마 희망의 건널목이였을 것이다.
잠시 뒤 여의도를 꽉 메운 대중들의 외침을 보면서 옷차림의 다양함도 보았다.

물론 선거에는 여러 어리석음이 함께 했다. 노태우야 그렇다 치더라도 김영삼까지 돌로 환영한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다. 화면은 쉬지 않고 그 장면들을 잡아내어 전국에 뿌렸고 많은 타 지역 사람들에게서 등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선거에서의 패배는 민주화에 열망을 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불러오게 된다.
어떻게 얻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물고문 당해 죽은 종철이가 연대 교정 앞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져간 한열이가 있는데 말이다.

거기에는 분명 욕심은 있었다. 내가 먼저라는 욕심은 나만이 이 난국을 구제할 수 있다는 구세주 신화로 이어진다. 김대중은 카톨릭, 김영삼은 개신교라는 차이가 있지만 예수라는 구세주를 닮으려 했고 각자 재주껏 기도했겠지만 답은 다르게 나왔나 보다.
물론 비난은 김대중이 더 많이 받아야 할 것 같다. 약속도 깨고 나중에는 당도 깼기 떄문이다.

하지만 김대중은 이미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실제 존재하는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보다는 자기가 바라는 김대중의 이름 뒤에 기대와 소망을 잔뜩 담아서 이상적 모습을 만들어 놓는다.
그 이상에 대해 남들은 동의하지 않고 심지어 조롱하기 까지 한다.
광신도라는 이름으로…

호남사람들의 꿈은 그 벽들을 만나면서 이제 절망이 되어 버린다. 한 걸음 나아가 한이 되고 가슴에 삭혀서 병을 만들어낸다.

유태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가르침 탈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몸은 하나요 머리가 둘인 아이가 태어났을 떄 과연 이를 둘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로 볼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한쪽 아이가 같이 아파하면 하나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둘로 보라는 것이다.

한국민에게 과연 이 질문을 던다면 답은 둘로 나올까 아니면 하나로 나올까?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는 분명 한걸음의 진보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짙게 남아 있다.
좀 더 리얼하게 지역주의라는 오명을 벗게 만들도록 도전해주었으면 한다. 어설픈 타협이나 가여운 동정이 아니라 보다 당당하게 한민족이 과연 하나였는지를 물어가기를 바랬다. 올리버 스톤 처럼 스탠리 큐브릭 처럼 말이다. 아쉬움 속에서 더 나은 것은 아직 남아 있다고 믿으면서 스크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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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0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주어 감사합니다.

상념 2007-09-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 토요일에 이토록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화려한 휴가'를 봐야겠군요. 87년 달동네 뒷골목에서 공명선거 운동을 하셨다구요. 사마천님은 행동하는 지성이셨군요. 지금도 여전하신지 궁금합니다. 87년이라는 특별한 해가 님을 아니 그때 그 시절을 살던 우리를 잠시동안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대학 1학년이었던 저의 과거가 떠오르네요.

심술 2007-09-08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 줄 없애는 법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금 바빠서 며칠 지나 이제야 글 올립니다. 전 잘 있구요 사마천님도 건강하세요.

사마천 2007-09-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열심히 읽어주셨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반갑습니다
상념님/ 행동하는 지성은 아니고 고민하는 학생이었죠. 과찬해주시면 솔직히 쪽팔립니다 ^^
심술님/ 네 님도 건강하세요

perky 2007-09-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쓰시는 사마천님을 제가 존경하지 않을수가 없다니까요. 87년도에 초등학생 4학년이었던 저는,그 시대의 절박성을 님처럼 생생하게 체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통해서나마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 2007-09-1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 깊이 있다고 해주시니 과찬입니다. 남과는 다르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좀 더 보완하고 싶네요. 항상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점점 커져가네요. 무럭무럭 씩씩하고 호기심 많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