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문화센터의 홈패션 강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는데 단연 코로나 탓이라고 해야겠다. 여느 여름처럼 한창 들떠서 여행 사이트를 들락거릴 수도 없고, 늘 읽을 책은 차고 넘쳤지만 책도 읽히지 않았다. 일상의 리듬이, 한여름의 리듬이 깨져버린 것이다. 급기야 거금을 주고 재봉틀을 구입하는 만용도 부렸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았을 텐데. 흠. 백수의 삶도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법.
재봉틀 기능도 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겁도 없이 만든 커튼. 요즘은 유튜브가 선생이라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힘 좋은 남편이 거들어줘서 아일렛링(커튼 고리)도 끼웠다. 커튼을 달기 전에는 책장이 도드라졌는데 개성 강한 커튼 때문에 책이 희미하게 보인다. 책 대신 커튼을 감상하시라구요.
알음알음으로 소창이 유행인 것 같아서 일단 몇 마 끊어서 박아봤다. 고운 행주가 탄생했다.
행주 몇 장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무광택 강화소창 한 필(30마)을 구입했다. 한 마가 90cm이니 꽤 길다. 많이 배운다. 강화도가 직물 산업으로 유명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책으로만 읽었던 '한 필'이 얼마만한 크기와 부피를 가졌는 지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 필을 얻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쏟은 노동의 강도도 생각해보고.
소창 스카프라고...천연섬유이니 이 스카프를 닳고 닳도록 사용한다면 쓰레기가 거의 남지 않고 남더라도 곧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리라. 스카프로서의 생명이 다하면 행주로 사용해도 된다. 이름하여 제로 웨이스트 제품. 친구들에게 주려고 여러 장 만들었다.
가장자리 자수는 재봉틀로 드르륵드르륵 박으면 되는데 모서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솜씨가 갈린다. 아직은 매우 매우 헤맨다. 소창 한 필을 다 썼는데도 솜씨가 그닥 늘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 입는 매끈하게 바느질된 옷을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 이 세상에는 솜씨 좋은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손으로 옷 한 벌 지어 입을 줄 모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곰곰 생각해본다.
이건 삼베 한 필(22마)이다. 소창 한 필을 모두 소진, 이번엔 삼베 수세미에 도전한다.
삼베 수세미를 사용하면 달걀프라이 담은 접시 같은 가벼운 기름기는 주방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게 무척 신기하다. 아크릴 수세미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니 이 삼베 수세미를 적극 사용해야겠다.
두어 개 만들어 써보니 조금씩 감도 잡힌다. 형광색 색실로 약간의 변화를 주니 단조로운 재봉질이 재밌다. 커튼을 새로 만들며 먼젓번에 사용했던 장식용 커튼을 잘라내어 고리로 재활용하니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재봉질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다. 잠자기 전 운동이 수면을 방해하듯 몇 시간씩 재봉을 하다 잠자리에 누우면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책 읽기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편하고 감사한 일이다. 다시 책을 집어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저 삼베 한 필을 다 소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