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람 -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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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성영화감독(꼭 이렇게 성별을 표시해야하나 싶지만)인 Deepa Mehta 작품이다. 사실 이 감독 이름도 지금 검색해서 알게되었다. 다만 예전에 보았던 <Fire>라는 영화를 만든 사람도 이 여성감독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Fire>도 인도영화하면 떠오르는 보통의 맛살라무비와는 다른, 페미니즘 성격의 영화였는데 이 영화 역시 그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도 영화의 큰 특징인 신파조의 줄거리나 성향은 유유히 그 중심을 흐르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이 신파조가 좋다. 나는 언제든 이 신파조의 영화에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있다.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자막의 한 구절을 그대로 적자면 "200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도에는 3천 4백만을 넘는 과부가 있는데 그 대부분이 2천년 전에 쓰인 마누법전의 가르침을 따라 지금도 사회, 경제, 문화적인 결핍 속에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통사회인 인도에서라면 10여년 전인 2001년이나 2011년인 지금이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터, 영화 속의 여인들처럼 지금도 많은 과부들이 마지못해 '죽지못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스럽고 비참한 삶을 다룬 이 영화는 그래서 널리 알려져야하지 않을까. 

과부에게 재혼을 허락하지 않고 과부의 집에 격리시키는 이유를 묻는 말에 남자 주인공 나라얀은 이런 대사를 날린다. " 종교는 명목일 뿐이고 결국은 돈이에요." 결국은 입 하나 줄이기위해서라는 것이다. 종교적인 수행처인 아쉬람이 제목으로 쓰인 게 참 역설적으로 잘 어울린다. 근데 원제목은 water 이다.  아쉬람, 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Deepa Mehta 를 기억해야겠다. 기존의 인도 영화와는 구별되는, 단순한 진리를 단순하게 드러내면서도 인도의 대중성이라 할 수 있는 신파조도 그대로 살리는 그녀의 영화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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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3 - Transformers: Dark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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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문제야, 내가 문제야. 좀 지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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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 and Piece (Paperback)
뱅크시 지음 / Random House Uk Ltd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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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만화책이 나쁜 책이라는 관념이 나도 모르게 주입되어서 만화책을 멀리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만화책을 술술 넘겨가며 보지 못한다. 그림에 빠지거나 글에 빠지거나 해야지,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어렵다고나 할까. 

하물며 벽에 낙서라니...유럽에서 숱한 낙서들을 보면서 낙서 자체를 혐오했었다. 이런 답답한 고정된 생각들을 이 뱅크시라는 게릴라 낙서 아티스트가 한방에 날려버렸다. 통쾌하다. 전율이다. 

전쟁, 자본주의, 예술, 환경, 사회....그의 주 공격 대상이 되는 것들이다. 공격! 그의 작품은 내가 보기에 기존관념과 권력에 대한 공격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접하면 기존의 안일한 생각들이 공격을 당하는 듯한 충격에 빠지는 것이다. 

낙서가 세상을 공격하다니... 

요즘 유행하는 아름다운 동네 가꾸기에 애용되는 벽화의 개념에 뱅크시의 메세지가 더해진다면 어떨까, 하는 바람도 해보는데... 

참고로 이 책의 번역서가 더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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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 음악과 함께 떠나는 유럽 문화 여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정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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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라. 세상의 잡다한 지식과 상식으로도 포만감을 적당히 만끽하며 지내온 터라 클래식이라는 단어에 살짝 거부감이 일었다. 새삼 클래식이라니, 하는 심정이었다. 

클래식, 정확히는 클래시컬 뮤직. 매일 오전 6시와 오후 6시에는 나도 클래식을 듣는다. 아침밥 하고 저녁밥 하면서 듣는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광고 방송을 듣기 싫어서 시작한 일이다. 그나마도 압력 밥솥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에 묻혀 온전히 제대로 듣는 경우도 드물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사는 생활 속에서 클래식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고 해서 불행하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래도 하루에 두 차례나 클래식을 접할 수 있으니 그나마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그래도 있다. 특히 새벽 시간이 그렇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라도 나오면 새벽밥 짓는 피곤함을 잠시나마 잊게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음악도 아는 만큼 들리는 법인데 나의 음악 감상 밑천이 너무나 얄팍하니 그게 좀 서러울 뿐이다. 

이러저러한 우려를 두려워하면서 이 책을 펼쳤다. 우선 유럽의 여러 지명이 낯설지 않아서 반갑다. 몇군데 가 본 적이 있다는 게 안심이라면 안심이었다. 그러나 안심이 곧 부러움과 한숨으로 바뀌었다. 음악이 이렇게 여행을 풍부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고. 기껏해야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몇 군데 돌아다닐 줄 알았지 음악을 이런 식으로 접목시켜서 생각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슬프면서도 즐거웠다. 내 얄팍한 음악적 지식이 불쌍해서 슬펐고 간접적이나마  클래식의 지평을 넓힌 듯 싶어서 유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귀동냥으로만 듣던 여러 음악가들의 생애는 한편 한편이 짧은 단편소설을 읽는 듯했다.  

기행문을 읽는 데서 오는 현장감, 유명한 클래식 곡들에 대한 풍부한 소개, 음악가들의 절절한 인생사 등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책을 다 읽고나니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건 일종의 정신적인 포만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숙제도 던져주고 있다 . 리스트의  <라코치 행진곡>과 <빌라 데스테의 분수>를 꼭 들어야하고, 알비노니가 작곡한 게 아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도 찾아서 들어봐야 한다. 귓전으로만 들었음직한 이 곡들을 반드시 확인해보리라는 의지를 다지게 한다.  

처음 외국에 나갔다 오면 누구나 이 한 가지씩은 작심하고 돌아온다.(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영어는 꼭 배워야겠다." 고. 음악에 문외한인 나도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를 작심해본다. 이 책에 나오는 클래식은 꼭 들어봐야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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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칸 - My Name Is 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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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영화를 보고나면 줄거리를 무척 재미있게 얘기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기가 죽곤 했었다. 나는 절대로 그 기나긴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고도 유창하게 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똑같다. 나이를 먹었다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 줄거리를 쓰기 싫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꺼낸 얘기다. 그리고 인도 영화다. 처음 몇 장면만 보아도 대충 줄거리가 짐작이 되고, 해피엔딩에 괜히 심금을 울려보는 신파조 영화라는 거, 그래서 보고나면 싱거워지는 그런 영화다. 

이런 인도 영화는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봐야한다. 좋아하진 않더라도 인도를 아는 사람하고 봐야한다. 그렇지않으면 자칫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 사람을 시시껄렁하고 싱거운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랬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육촌 동갑내기와 이 영화를 보자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두세 번 휴대폰을 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좀 멋적어지기도했다.  

나는 이 뻔한 스토리에도 눈물이 맺히고 주인공 샤룩 칸(인도의 국민배우라고나 할까)의 과장된 연기가 미스터 빈을 흉내낸 것 같아 흐물흐물 웃음을 머금고 즐거웠는데 말이다. 그 넓은 극장안에 관객이라고는 7~8명. 그 중에는 그래도 인도 영화를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제법 있었으니...영화 장면마다 온몸으로 반응하는 인도인처럼 큰 소리로 웃거나 반응을 하는 관객도 있었다. 분명 저 사람은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일거야, 라는 생각에 동지애를 느꼈다고나 할까. 

주인공 칸은 자폐증 증세가 있는사람이다. 끝까지 자신의 이슬람 신앙을 지키고 그 신앙에 따라 순수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자폐증이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영화 속에서 전개된 그런 상황에서라면. 

작년에 그런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중3짜리 남학생이 우리 반에 있었는데, 이 아이는 누구에게나 천사처럼 보였다. 남을 비방할 줄도 거짓말할 줄도 꾀를 부릴 줄도 몰랐다. 그저 엄마에게서 교육 받은대로 선생님한테는 꼬박꼬박 존대말 쓰고, 청소할 때는 절대로 꾀 부리지 않고, 점심을 먹을 때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밥을 받고 행복하게 먹었다. 아무도 이 아이를 바보라고 놀리지 않았다. 누구나 도와주려고 애썼다. 

이 아이의 장래희망은 이랬다. 중1때: 문방구 주인, 중2때: 문방구 운영, 중3때: 문구점 주인. 이 아이는 항상, 언제나, 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꼭 만들다가 만 영화 같지만 그래도 잠시 이런 생각거리를 주었다. 세상이란 게 똑똑한 사람만이 이끌어가거나, 삶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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