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북리뷰에 김영민 교수의 '동무와 연인'이 새로 연재된다고 한다. 오늘 읽은 건 그 첫번째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다루고 있다. 타이틀은 '통속을 거부한 '커플 실험''. 이 원조 '계약 커플'이 연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데, 오랜만에 관련도서들에 대한 눈요기도 해볼 겸 옮겨놓도록 한다. 한동안 활동이 뜸하던 김영민 교수도 예전의 필력을 다시 찾아가는 듯하여 반갑기도 하고...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정체를 작가로 고집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생활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것은 ‘스타벅스’ 커피점의 2층 풍경이 아니다.) 글과 남자! 이 20세기 여성주의의 대모는 글과 남자의 사이에서 여자의 길을 선구적으로 뚫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었으며, 그 속에서 남자는 변치않는 고민거리였다.

 

 

 

 

-당대의 누구보다도 먼저 ‘동무’의 가치를 꿰뚫어본 이 비범한 여성도 사랑이 종종 삶의 더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챈 것일까? 뚜렷한 주관을 갖고 행동함으로써 전통적 여성상에 맺힌 남성의 오해를 떨어내려던 보부아르였건만, (그녀가 비웃었던 미국여자들처럼) 사랑했던 남자를 만족시키려고 안달을 부리기도 했다.

 

 

 



-“사트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야말로 내게는 순수한 의식이며 자유 그 자체였어요!”라며 특유한 동무 관계를 자만했지만, 실상 그는 순수한 의식과 자유만이 아니라 왕성한 성욕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그의 못난 외모와 명성 사이의 괴리에 매혹되기도 했고, 사르트르는 오직 오쟁이를 지울 목적으로 매력없는 유부녀들을 탐하기도 했다. 모국어를 사랑했던 사르트르가 건들지 않는 여성이라고는 외국여자들뿐이었는데, 아무튼 이들 동무/연인 사이의 기나긴 갈등에는 사르트르의 쉼없는 바람과 보부아르의 맞바람이 한 몫을 했다.

 

 

 

 

-사르트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무런 철학 없이 연애에 빠졌고, 보부아르는 나름의 연애철학(‘과거에 고착되거나 그것을 내팽개치지 말고 새 미래를 만드는 데 애쓰자’, 는 W. 제임스 식의 실용주의 준칙)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사르트르보다 적게 섹스하고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부아르의 글 역시 가히 대가급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와의 관계에서만은 오히려 삶(사람)을 내세웠고, 대신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 그렇기에 사르트르에게 연인관계는 늘 부차적이었지만, 보부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늘 일차적, 우선적인 사안도 아니라는 자가당착이 그녀의 문제였다.) 스스로 밝히곤 했듯이, 보부아르의 행복은 사르트르와의 ‘상호 이해’에 의해서 보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의 향락은 환영할 만했지만 세상을 향한 지식에 비해 애써 요구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최고의 소망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살고’ 싶은 것”(sola vita!)이었고, 사랑은 그 삶의 귀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에게 글쓰기보다 더한 삶은 없었다. 그는 아버지(초자아)가 없는 시공간을 글로 채우며 스스로를 창조해 나갔다. 여행 중에도 풍경보다 수첩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자동차 본네트를 깔고 앉아 몇 시간씩 프랑스어 문장을 만드느라 동행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는 <말>(1964)에서 고백했듯 우선적으로 책과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아는 여자의 생활은 ‘제2의 성’의 운명처럼 먼저 남자들의 세상 속에 내던져지고 부대끼는 게 우선이었다. (잘난 남자는 대개 추상적이지만 잘난 여자라도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것. 이 괴리 속에서 연인의 길과 동무의 길은 희비극적으로 어긋난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강변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이 속박도 알리바이도 아닌 여자는 거의 없다는 객관적 사실 속에 이미 그녀의 운명은 깊이 얽혀들어 있었다. 깬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와 그 표상이 마치 맞지 않는 신발처럼 어색하다면, 보부아르가 <제2의 성>(1949)을 쓰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익명의 개인(남성)을 주제로 그 개인의 의식과 자유를 분석하거나 계급 갈등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여성의 세계를 다 그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마저 전형적인 갈등의 요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세기의 연인/동무들에게 인간은 새로 창조되어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함께 미래의 인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남녀를 얽어 옥죄는 낡은 타성은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과연, 사랑은 누구에게도 통속한 것일까? 그러나 이 통속을 막으려는 공동의 노력 속에 그들의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 속에서 동무의 가능성은 빛난다.



-그 성취와 가능성은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둘의 사귐에서 보부아르가 특별한 것은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귀’였다. 사르트르의 보부아르는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녀의 귀(동무)였을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가 만난 사르트르도 ‘작고 못생긴데다 그나마 사팔뜨기인’ 그의 육체(연인)가 아니라 그의 입(동무)이었던 것은 재론할 것도 없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죄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적 반려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인데, 관계의 요체는 바로 여기, ‘지적 반려자’에 있었다.



-보부아르가 두려워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바비 인형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적 반려자의 자리였고, 사르트르의 주변에 그 싹이 돋을라치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연인 넬슨 올그렌(N. Algren)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사르트르와의 우정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라고 단언했다. 사르트르처럼 편집병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서도 말과 글은 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보부아르에게 죽음이란 (바흐친과 비슷하게)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죽음을 놓고 그녀가 가장 슬퍼한 것은 물론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년의 보부아르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산하면서 요약한 부분도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그리고 그들은 같이 묻혔다.)

06. 07. 21.

P.S. 1970년대 중반부터인가 사르트르가 거의 실명한 상태에서 보부아르는 차분하게 그의 '남편'과의 이별을 준비해나간다. 그 기록이 <작별의 예식>(두레, 1982)이다. 아주 오래전 지방도시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인데, 요즘은 구할 수가 없다. 그/그녀의 독자들에겐 아쉬운 일이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이 책에서 인용한 문장은 사르트르의 장례식을 맞은 보부아르의 슬픔을 토로한 것인데, 이런 내용이다.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하지만 언젠가 나의 죽음이 우리를 다시 합치놓지 못할 것이다."(예전에는 불어로도 읊고 다녔는데, 요즘은 기억 감퇴다.) 영생을 믿지 않았던 커플이었던 만큼 그들의 '차가운' 해후는 무덤을 찾는 이들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졌을 법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또한 적당히 눈물겨운, 인간의 삶이고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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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시초프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지난 1월에 러시아어 등의 외국어 표기법에 개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월드컵 때 선수들의 인명 표기에 상당한 변화/혼란이 빚어졌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 뒷북치는 셈이 됐지만, 여하튼 이런저런 개정 내용이 불만스럽다. 개정내용을 소개하는 한겨레의 기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스포츠칸의 기사를 옮겨온다. 스포츠칸의 엄민용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이라고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좀 풀어주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걸로 페이퍼의 제목을 삼는다. 마지막엔 축구선수들의 표기 문제를 사례로 짚어본다. 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의 기사이다.    

 

 

 

 

한겨레(06. 01. 08) 포르투갈어 등 3개언어 새 표기법 마련

-국립국어원은 5일 포르투갈, 네덜란드, 러시아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고시했다. 이 표기법은 현지 언어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포르투갈어에서 r를 ‘ㄹ’과 ‘ㅎ’으로 구분하여 적고 브라질 지명·지명은 포르투갈어와 다른 브라질의 발음 특성을 반영하고 △네덜란드어의 g는 ‘ㅎ’으로 적고, v는 ‘ㅍ’과 ‘ㅂ’으로 나누어 적으며 △러시아어 p, t, k, b, d, g, f, v가 무성 자음 앞에 올 때는 받침으로 적고 sh와 shch는 ‘시’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의 인명 Ronaldo는 ‘호나우두’, Rivaldo는 ‘히바우두’로 적어야 한다. Jorge는 포르투갈 사람이면 ‘조르즈’로, 브라질 사람이면 ‘조르지’로 적어야 한다. 이과수폭포(브)는 이구아수, 리우그란데(브)는 히우그란지, 바스코 다가마(포)는 바스쿠 다가마 등으로 바뀐다. 네덜란드어의 경우 에인트호벤은 에인트호번, 에라스무스는 에라스뮈스, 호이징가는 하위징아, 스키폴 공항은 스히폴 공항으로 써야 한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푸슈킨은 푸시킨,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각각 바뀐다.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하멜, 보드카, 프라우다 등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 표기를 그대로 인정키로 했다(*흐루시초프나 푸슈킨이 아드보카트보다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말인가? '하위징아'는 또 뭔가? '하위징아'로 무얼 검색하란 말인가?).

-이번 표기법 고시는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 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하여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 온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러시아어 등에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되며 정착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달라진 표기법이 '현지 발음', 특히 '러시아어 발음'에 더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이런 억지를 강요하는 것인가? 원칙도, 철학도, 실리도 없는).

-한편, 국립국어원은 올해 안에 그리스어, 아랍어, 터키어 등 3개 국어에 대한 표기법을 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이로써 24개 외국어에 대한 표기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이런 식이라면 그들만의 표기법이겠다. 국립국어원에서 할 수 있는 더 유익한 일들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몽골, 아프리카어에 대한 표기법은 특별한 불편과 수요가 없어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임종업 기자)

 

 

 

 

스포츠칸(06. 01. 10) 새 외래어표기법 ‘희한하네’

-국립국어원이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음, 그러니까 작년말이었다는 얘기군). 국립국어원은 지난 5일 “1986년에 제정한 현행 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써오던 표기와 달라지는 것이 많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규칙 자체에 문제점을 드러내 정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휘스 히딩크’로 바뀌는 것을 비롯해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고골리'는 이미 '고골'로 쓰고 있다. 한데, '흐루시초프'를 굳이 '흐루쇼프'로 바꿔 표기해야 할까? 이 안에 따르면 러시아어의 'sh'와 'shch'의 음성표기가 동일하게 된다. 비슷한 소리이지만 동일한 소리는 아니며 영어 표기에서는 앞에서처럼 구별해준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바꾸고 민간 출판사들도 온갖 책들을 다시 찍어야 하는 일을 벌이면서도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멜’ ‘리우데자네이루’ ‘아드보카트’ 등 6가지를 ‘관용’ 표기토록 했을 뿐이다(*아드보카트가 언제 한국에 다시 올는지 모를 일임에도 '관용'으로, 국내에 많은 책들이 소개돼 있는 흐루시초프나 푸슈킨 등이 '관용'에서 예외로 처리된 건 놀라운 일이다. 그들만의 행정으로 봐주어야 하는 일일까?) .

-하지만 이마저 언론을 의식한 ‘면피용’으로 비친다. 최근 언론에 부쩍 많이 나오는 축구국가대표 감독 ‘아드보카트’에 대해 “원래는 ‘앗보가트’가 맞지만 관용 처리한다”고 하면서, 더 많은 국민이 알고 있을 흐루시초프 등은 관용표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 관용표기는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지난달 28일 고시하고도 그 사실을 1주일 넘게 알리지 않은 이유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 국어연구원의 관계자는 “현실적 쓰임과 지나치게 괴리하는 말은 토의를 거쳐 관용표기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엄민용 기자)

기자협회보(06. 01. 18) 엉터리 국어정책 유감

-국립국어원은 지난달 28일 포르투갈·네덜란드·러시아어 등 세 언어의 새로운 표기법을 지정·고시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언론에 알리면서 “1986년에 제정한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이들 언어에 대해 자세한 표기규칙을 두지 않아 현지 발음과 동떨어지거나 체계적이지 못해 언어생활에 혼란을 빚어왔다”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새 표기법을 마련했다”고 밝혔다(*더 이상의 혼란을 막은 게 아니라 그 이상의 혼란을 더 보탰다!).

-그러나 오히려 새 표기법 때문에 국민의 국어생활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내 말이 그 말이다. 이런 문제제기가 스포츠신문의 기자 한 사람에게서만 나왔다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새 표기법에 따르면 그동안 온 국민이 ‘거스 히딩크’라 부르던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은 ‘휘스 히딩크’로 바뀐다. 또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 고골리는 고골, 하바로프스크는 하바롭스크, 흐루시초프는 흐루쇼프, 루빈슈타인은 루빈시테인으로 써야 한다. 그뿐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만든 ‘관용 표기’인지 모르겠지만, ‘아드보카트의 아들 앗보카트가 한국에 왔다’거나 ‘하멜의 자손인 하멀은…’ 따위로 써야 한단다(*엄기자가 잘 꼬집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이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 일을 벌이면서 국민의 얘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공청회는 고사하고, 신문사에서 매일 외래어표기법과 씨름하는 교열기자들에게도 일언반구가 없었다. 수백억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교과서를 다시 찍어야 하고, 민간 출판사들도 제 돈을 들여 온갖 책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을 국립국어원은 아주 비밀스레 만들었다. 그 이유가 뭘까?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표기법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일인데, 그 일을 하면서 일일이 알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들이 한 일을 일일이 공표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내부용으로만 돌려보면 될 거 아닌가?).

-무서운 말이다. 슬픈 얘기다. 그 관계자의 말이 국립국어원 전체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라면 이미 우리의 국어는 죽은 송장이다. 말과 글의 주인은 국민, 즉 언중이다. 일부 학자들이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 못된다. 한글맞춤법이 어찌되어 있든, 표준어규정이 어떻게 정하고 있든, 많은 언중이 자주 쓰면 그 말이 표준어가 되는 게 상식이다. 외래어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이 어떻게 소리내든, 아프리카 원주민이 뭐라 발음하든, 그런 말이 우리 국민이 똑같이 쓰는 말을 못 쓰게 만들 수는 없다. 세상에 ‘그런 벱’은 없다(*이 정도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거듭 유감스럽다).

-국립국어원은 ‘나라의 적기가 외국의 소리와 달라 어린 백성이 혼란을 겪는 것이 안쓰러워’ 새 표기법을 만들었다고 했다(*그 취지가 심히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그 말이 맞는다면 ‘라디오’ ‘컴퓨터’ ‘밀크’ 따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외국 어디도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KOREA’라 쓰고 ‘코리아’라고 소리내는 영문도 지들 마음대로 ‘COREE’라 적고 ‘꼬레’쯤으로 소리낸다. 그것이 외래어표기다.

-외래어 표기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당신네 말을 당신네 소리대로 잘 적어주고 있지요’라고 자랑하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국어생활에 통일을 기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이 정도의 상식도 모른다면, 국립국어원의 명칭을 국립외국어원으로 바꾸는 게 차라리 낫겠다). 따라서 한번 정해진 것은 쉬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툭하면 바뀌는 외래어 표기는 정말 문제다.

 

 



-더욱이 이번 새 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이 수년 전 1백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만든 <표준국어대사전>마저 쓰레기로 만들었다. 그 사전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아직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새 표기법과 다른 말이 수천자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표기법은 이미 지정·고시됐다. 이제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만든 표기법을 버릴 수도 없다(*대신에 무시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국립국어원이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표기법을 만들고 국민들은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러시아어 표기만 하더라도 전공자들마다 의견이 다 제각각이다. 전문가의 자문이랍시구 한두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국민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국립국어원이 언중 위에 군림하면 국어가 죽는다.

JES(06. 07. 06) 호나우두 혹은 호날두

-이번 월드컵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록 밴드가 있다. 바로 너바나다. 1990년대의 록을 이야기할 때의 너바나를 빼놓는다면 깍두기 없이 설렁탕과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DJ 배철수씨는 너바나라는 그룹을 모른다. 그에게 이 밴드를 물으면. “아. 니르바나(Nirvana)?”하고 되묻는다. 불교 용어로 열반(涅槃)을 뜻하는 니르바나는 천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쓰던 단어인데 한 미국 밴드가 그 단어를 이름으로 썼다고 해서 새삼 다른 식으로 읽을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마다나’를 ‘마돈나’라고 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늘 바뀌는 외국 인명ㆍ지명의 한글 표기에 경종을 울리는 주장이다.

-한글 외래어 표기는 언론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현행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현지인이 발음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다(*가장 웃기는 원칙이다. 우리끼리 쓰면서 '현지음' 흉내를 왜 내는가? 입에 침이 마르는군. "워러 플리즈!"). 물론 중요하다. 똑같이 써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미국으로 건너가면 청바지 상표인 리바이-스트라우스로 변하고. 역시 알파벳만 보면 미국 조지아 주와 구 소련 지역의 그루지야 공화국이 혼동되기도 한다(*실제로 '그루지야'를 '조지아'라고 표기하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하지만 대회때마다 바뀌는 축구 선수의 권장 표기 명칭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난 98년 미국월드컵에 등장한 호나우두 이후로는 포르투갈어의 R을 ‘ㅎ’으로. L을 ‘이우’로 읽는 관행이 정착됐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해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이 선수는 호나우두에서 하루 아침에 호날두로 개명을 당했다.

-이유가 가관이다. 같은 포르투갈어지만 L이 이우로 발음되는 것은 브라질 식의 발음이고. 포르투갈 본국에서는 그냥 ‘ㄹ’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물론 한심하다). 국립국어원에서 언제쯤 호나우두의 조국은 브라질이 아닌 ‘브라지우’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공문이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에서 ‘반니’라는 애칭으로 불린지 오래인 반 니스텔루이 역시 하루 아침에 판 니스텔로이가 됐다. 글쎄. 어련히 알아서 정했겠지만 지난해 내한했던 PSV 에인트호벤(이것도 국립국어원이 정한 권장 표기다) 관계자가 “우리 팀의 이름은 아인트호벤인데 왜 한국에서는 에인트호벤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는 걸 보면 정말 현지 발음에 더 가깝기는 한 건지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현지 발음에 가까운 것도 좋지만 일단 정착된 표기는 최대한 존중하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글 표기법의 사명이 아닐까(*공무원은 때로 복지부동하는 것이 차라리 국민에게 유익하다). 지금까지는 사실 강 건너 불이지만. 이런 과잉 교정의 열풍이 언제 연예계로 밀어닥칠까 불안하기만 하다. 영국 출신인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미국을 대표하던 배우인 잔 웨인이 ‘파리’ 아닌 ‘빠히’에서 만났다고 기사를 쓰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송원섭 기자)

06.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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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7-21 08:30   좋아요 0 | URL
정말 스펙타클하네요

프레이야 2006-07-21 09:53   좋아요 0 | URL
담아갑니다.. 좋은 정보 감사해요.

로쟈 2006-07-21 10:20   좋아요 0 | URL
네, 가관이죠. 오탈자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의 한 대목 읽기. 먼저 들뢰즈의 천재성: "들뢰즈의 천재성은 그의 초월적 경험론이라는 개념에 있다. 초월적인 것을 경험적 자료의 풍부한 흐름을 구조화하는 형식적 개념적 그물망으로 여기는 표준적인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들뢰즈의 '초월적인 것'은 현실보다 무하하게 '더 풍부하다.'(the Deleuzian 'transcendental' is infinitely RICHER than reality) 그것은 잠재성들의 무한 퍼텐셜(*포텐셜)인바, 이 장으로부터 현실이 현행화되어 나온다... 대립물들의 역설적 짝짓기(초월적+경험적)는 구성된 혹은 지각된 현실의 경험 너머(또는 차라리 아래)에 있는 경험의 장을 가리킨다."(19-20쪽)

 

 

 

 

그러니까 들뢰즈의 초월적인 것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형식적/개념적 그물망이 아니라 잠재성들의 무한 포텐셜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아마도 잭슨 폴록(1912-1956)은 궁극적인 '들뢰즈적 화가'일 것이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이 순수 생성의 흐름, 비인격적-무의식적 삶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가?.."

 

"폴록의 개성(술주정뱅이 미국인 마초)에 대한 숭배는 이러한 근본적인 특징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그이 작품은 그의 개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양'하거나 말소한다."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그의 그림은 그의 개성과 무관한 탈주체적, 비인격적, 비인칭적 작품이라는 것.

 

거기에 붙은 각주: "그렇다면 폴록-로트코의 대립은 어떤가? 이는 들뢰즈 대 프로이트/라캉의 대립에, 즉 포텐셜들의 잠재적 장 대 최소 차이(배경과 형상의 간극)의 대립에 사응하지 않는가?"(21쪽) 로트코는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을 말한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화가인 그는 간단한 설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감상적이고 과장된 추상표현주의 양식에 인간의 내면을 관조하는 명상적 성찰을 도입했다. 색채를 유일한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의 표현방식은 이른바 '색면파'(Colour Field Painting)를 낳게 했다."

로스코가 왜 프로이트/라캉주의적 화가인지에 대해서는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듯하다. 그에 대한 소개를 좀더 따라가보면, "로스코가 초기에 채택한 사실주의 양식은 1930년대 말에 그린 <지하철 Subway> 연작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작품들은 단조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고독을 잘 보여준다. 1940년대초에 이르러 그의 사실주의 양식은 종교의식을 주제로 한 <세례 장면 Baptismal Scene>(1945,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처럼 거의 추상화된 생물 형태들로 이루어진 표현 형식으로 바뀌었고 1948년경에는 매우 개성있는 추상표현주의 양식에 도달했다."(*아래는 <지하철> 연작의 하나인 <지하철 입구>[1938]) 

"로스코는 대부분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격렬한 붓놀림이나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고 뿌리는 극적인 표현기법에는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동작이 나타나 있지 않은 그의 그림들에는 서로 스며드는 듯한 커다란 색면들이 나란히 병치되어 있어, 마치 그것들이 몽롱한 공간 속에 그림 평면과 나란히 떠 있는 듯이 보인다. 로스코는 이 기본양식을 계속 단순화하여 세련되게 다듬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부드러운 윤곽을 가진 2~3개의 직사각형만으로 구성을 제한했고, 이 직사각형들은 마치 추상화된 기념비적 성상처럼 벽 크기의 수직 화폭을 거의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같은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부분적인 색채 간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보는 사람들에게 놀랄 만한 친밀감을 주었다." 그러니까 같은 추상 표현주의 회화를 개척했음에도 불구하고 폴록과는 달리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에서 임의성을 배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통제와 스타일이 갖는 의미는 로스코에 관한 책들을 참조해야겠다.

 

"1958~66년에 그는 14개의 거대한 화폭(가장 큰 것은 가로가 3m, 세로가 5m나 되었음)에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은 결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예배당에 걸렸는데, 특정 종파와 관계가 없는 이 예배당은 그가 죽은 뒤 로스코 예배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그림들은 신비스럽게 빛나는 갈색·적갈색 및 빨간색·검은색으로 그린 모노크롬이었다. 그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로스코가 말년에 신비주의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말년에 그는 그의 그림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예술가들이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고, 건강마저 나빠지자 자살했다."
 
해서, 로스코와 폴록, 혹은 추상 표현주의에 있어서 프로이트-라캉주의 화가와 들뢰즈주의 화가. (배경과 형상 사이의) 최소한의 차이 대 포텐셜들의 잠재적 장...
 
06. 07. 18. 
 
P.S. 때마침 마크 로스코 전시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이 그것인데, 서울 한남동 리움에서이며 기간은 지난 6월말부터 9월 10일까지이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6. 17) “분석 말고 느껴봐요” 색의 손짓…로스코 걸작선
 
-2차 세계대전 후 미술의 중심지는 파리에서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옮아갔다. 이와 함께 뉴욕에는 일명 액션 페인팅으로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물결이 몰아쳤다. ‘뿌리기 선수’ 잭슨 폴록을 위시해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은 눈에 보이는 현상·사물을 묘사하지 않고 자유롭게 물감을 사용해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이들은 뿌리기와 즉흥적 붓질 등 본능에 의지한 작업을 통해 화폭 위에 미술을 창조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려 했다.
 


-이와 동시에 액션 페인팅과는 전혀 다른 경향의 추상표현주의가 있었으니 바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70), 바넷 뉴먼으로 대표되는 색면추상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화들이 우리나라에 왔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로스코의 작품을 선보이는 ‘마크 로스코: 숭고의 미학’이 9월10일까지 서울 한남동 리움에서 열린다.

-회고전 성격의 이번 전시에는 시기별 걸작 27점이 전시돼 구상에서 추상으로 차츰 변화하는 화풍을 감지할 수 있다.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조도를 낮춘 전시실에는 1920년대 그린 수채화 작품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한 70년에 그린 작품까지 고르게 걸려 있다.

-로스코는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갔다. 젊은 시절 드라마와 신화, 정신분석학에 심취했던 그는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과 니체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로스코는 생전 회화를 음악과 시가 지닌 통렬함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화가가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시풍경과 건축구조물에 관심을 갖다가 점점 절제된 형상, 화면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색채를 그렸다.
 


-“어떤 화가들은 모든 것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말을 적게 할수록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는 믿음을 견지했던 로스코는 대형 캔버스에 두세 개의 색을 칠했다. 서로 다른 색면이 서로 부드럽게 스며있는 듯한 ‘로스코표’ 색면추상화 양식은 50년대 이후 완성됐다. 직사각형의 테두리는 몬드리안의 기하추상처럼 반듯하지 않다. 삐뚤삐뚤하고 제목도 ‘무제’다. 붓자국도 없다. 보이는 것은 거대한 색면뿐이다. 대형 화폭 위에 그려진 색면들은 묘한 아우라를 뿜어내면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처음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은 아름다움도 추함도 느낄 수 없는 그림 앞에서 당혹해한다. ‘대체 무얼 그린 걸까.’ 분석하려 하지 마라. 평온하고 차분한 색면화를 응시하다보면 어느 틈엔가 캔버스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로스코가 원했던 것이다.

-로스코는 형상을 재현하고 싶어했던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의 욕망을 뛰어넘어 그림을 통해 숭고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싶었을 뿐이다. 전시 준비를 위해 내한한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루스 파인 큐레이터는 “로스코는 예술가와 감상자 사이의 진지한 대화를 원했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감상하기를 희망했던 작가였다”고 소개했다. 로스코전과 함께 고 백남준을 추모하는 특별전 ‘백남준에 대한 경의’도 함께 열린다.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14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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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6-07-1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코는 언젠가부터 저에게는 후기 자본주의 허상의 극대점으로 보여져 영 마음 안가는 화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단순무식하게 생각해서 그 비싼 물감을 그렇게 거대한 크기로 범벅해놓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자본주의적이지 않은가 싶어요.

로쟈 2006-07-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림만 좀 본 적이 있을 뿐이고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한데 비싼 물감을 범벅으로 칠해놓았다는 거 정도가 흠이 되는 건가요? 사실 그러한 탕진 행위는 '자본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데요. 북미 인디언들의 포틀래치를 봐도 그렇고...

Joule 2006-07-1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모든 이야기를 너무 머리로 이해하시는 경향이 있군요. 그런 게 흠이 되지는 않지요, 물론.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더란 말이었습니다. 사실 내막은 모르지요. 그런 그가 알고 보면 10평도 안되는 방에서 일주일 내내 다깡 하나 놓고 밥먹는 화가일 지도 모르잖아요.

로쟈 2006-07-1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로 이해하는 게 제 단점이죠.^^ 한데,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머리로 이해하는 거라고 해서 그런 단점도 쓸모는 있는 거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biosculp 2006-07-1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폴록의 작품을 하나 사서 집에 걸어놓았는데(복사본입니다), 전공한 분들이 그냥 느끼라고 해서 그냥 느꼈는데 별로 안느껴 지더군요. 그래도 보던 그림에 대한 글을 보니 반갑군요. 로스코는 처음 듣는 화가인데 이화가 작품도 한점 구입해서 봐야겠군요.

주니다 2006-07-1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경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의 설치 장면입니다. 작품이 굉장히 큽니다. 실제로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엄습할 듯 합니다.^ ^ 네덜란드 가서 꼭 보고 싶습니다.

로쟈 2006-07-1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생한 사진이네요! 근데, 렘브란트는 아래 페이퍼인데요.^^

biosculp 2006-07-1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경의 크기를 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군요.
이런건 복사본으로는 안되겠고 빔프로젝트로 봐야되겠군요.

주니다 2006-07-1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실수를..ㅋㅋ 렘브란트 관련 페이퍼의 제목도 수정하실겸 해서 본문으로다 좀 옮겨주세요. ㅎㅎㅎ

2006-07-19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1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가 그럴 역량은 안되구요. 지젝이 간단히 언급한 걸 그냥 이미지 버전으로 만들어보았을 뿐입니다. 로스코 전시회가 있었나요?^^

2006-07-20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정보 감사합니다.^^
 

작가 한정희의 소설 <웃으면서 죽는 법>을 <현대문학>(2006년 7월호)에서 읽었다. 시작부터 가관이다. "그날 아침, 나는 드디어 목을 맬 도구를 결정했다.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그의 감색 버버리코트에서 벨트를 빼냈다... 그리곤 벨트를 매달 곳을 찾아다녔다... 매듭을 지은 벨트를 목에 매달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목을 맬 곳을 찾아다가 우연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늘어지고 낡은 연하늘색 잠옷을 입고 목에 감색 벨트를 걸고 있는 모습이 아주 기괴하게 보였다. 목 주변은 벌써 벨트에 쓸려 벌게져 있었다."

 

 

 

 

이 정도면 약간의 궁금증은 유발할 만하다. 이 '기괴한' 아줌마의 행동거지와 의식의 흐름을 조금은 더 따라가볼 맘이 생기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서 내 모습을 보고 있지나 실제로 목을 매달면 어떤 기분일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침에에 올라앉아서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고는 벨트를 꽉 당겨보았다. 벨트를 바싹 당기자 얼굴에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양손에 힘을 가하자, 손에서 힘이 저절로 빠지면 벨트가 풀어져버렸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굳이 이런 대목을 인용하는 것은 문득 아주 오래전에 한 의대생 친구가 '무용담'처럼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수 끝에 의대에 들어간지라 대학생활의 '후배'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모이면 좌중을 압도한 건 이 의대생 친구였다. 특히나 해부학 실습을 하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우리는 숨도 크게 못 쉬었다(구역질을 하는 여학생 얘기는 꼭 들어갔다). 사체를 한 구씩 사서 해부학 연습을 하기도 하고 여자 사체는 지방이 많아서 애로가 많다는 이야기 등등으로 아직 여자 친구도 없던 주변 친구들의 야코를 한껏 죽여놓더니, "너네 그거 알아?"하면서 보탠 이야기는 넥타이로 목을 맨 다음에 한쪽 발은 침대를 딛고 나머지 한쪽 발로는 바닥을 디디면서 자빠지듯 목을 뒤로 쭉 빼는 사이 두 팔로는 넥타이를 전방으로 힘껏 잡아당기는 포즈의 자살연습법에 관한 것이었다(아니면 침대 기둥에 걸친 벨트를 목에 걸고 반대방향으로 기어가는 것이었나?).

'자살연습법'이란 표현은 다소 부정확한데, 그러한 기괴한 짓이 실제로 의도하는 건 죽음의 경험이 아니라 오르가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말로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거의 유사-오르가즘을 경험한다고 했다. 이게 자위 정도와는 비교도 안된다나 어쩐다나. 짐짓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나는 실제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자가 단속에 분주했다. 아직 오르가즘에 목숨 걸 나이는 아니었기에.

소설에서 아줌마 화자는 그런 순간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잠시 자살 기도를 방해받는다. 그러고 켜놓은 TV에서 권총 살인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는 다시 자살 생각에 전념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게도 권총이 있다면, 페트병을 사용해서 머리를 관통시켜 시신도 온전한 상태로 확실하게 죽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은 언젠가 가보았다는 쿠바 교외의 헤밍웨이의 집과 그의자살. "그는 쿠바를 떠나 고국의 아이다호로 돌아가서 카빈총으로 자살했다. 아마도 그는 영화에서처럼 긴 카빈총을 거꾸로 세우고 총신을 입 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까? 내 상상으로는 그렇게 했을 것 같다. 그가 사용한 총은 9밀리가 아닌 카빈이었으므로 그의 뒤통수는 절반쯤 산산이 부서져서 사방으로 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줌마 총을 구할 가망성이 희박하다는 현실 때문에 권총자살은 포기한다. 그때 다시 걸려온 전화는 미국에 이민 간 대학동창의 전화였고 두 사람은 루게릭병에 걸려 10년전부터 투병중인 한 친구의 안부를 떠올린다. '나'는 그 친구가 병에 걸렸다고 고백한 초기에 그냥 죽으라고 말함으로써 분위기 아주 썰렁하게 만든 기억이 있다. '나'의 심사로는 "청춘도 지나왔고, 사랑도 했으며, 결혼도 해봤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인생의 행복을 맛보았다는 자조적인 감정에 내몰려서 한 생각이었다."

몹쓸 병에 걸린 친구 '현임'은 대학 시절 '나'의 우상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얽었고, 붉은빛이 도는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검정 터틀넥 스웨터와 하늘거리는 검정색 저지 롱스커트를 입고 반들반들한 생기넘치는 얼굴에 자신감으로 꽉 찬 미소를 짓고 큰 키를 휘청거리며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은 너무 당당했다. 희디흰 손가락 사이로 가늘고 긴 담배를 물고 노동운동과 실존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빛나는 미래를 포기하고 금속공장 여공으로 취헙한 시몬느 베이유 이야기를 할 때의 그녀에게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금방 그녀의 추종자가 되었다." 하니, 그 친구 또한 노동운동과 실존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삶을 무엇인가에 투척하는 멋드러진 모습을 보여주었을 법하다.

하지만 "재능 있는 사람들의 경우 많은 부분이 그렇듯 현임도 자신의 내면에서 도전할 만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철학을 전공하고 영화판에 쫒아다니다가 배추장사를 했고 무슨 종교에 빠진 남자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나, 생활은 기승전결이 무시된 컬트영화 같았다. 원래 현임의 기질 속에 타고났던 열정과 외면적 열등감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구애를 표현하는 그녀의 강렬함이 합쳐져서 빠르게 두 사람이 맺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녀의 삶은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학창시절의 그 빛나던 지성은 누추한 일상 속에 엉겨서 흘렀다." 그러니, 루게릭병에 걸렸다고 울었을 때, "죽으라고, 그냥 죽으라고, 그것이 너답게 죽는 거라고, 너를 지켜보는 나의 바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로 그렇다고 해서 그냥 죽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도 남을 죽이는 일만큼의 노고를 필요로 하기에. "80년대만 하더라도 수많은 시위대 앞에서 분신자살 같은 극렬한 항의가 잦았다. 그런 죽음에 비해 목을 매달 자리를 찾으려고 온 집안을 헤맸던 내 모습이 오래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생각되었다. 한낮의 햇볕이 강렬하게 쪼이는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죽음은 어떨까. 물이 떨어지는 육신을 상냥하게 맞아줄 것 같기도 했다. 그에 비해 불에 타 죽는 것은 육신에게 못할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약을 구할 수 있으면 그것도 손쉬운 방법일 텐데... 아, 지금 언니가 말한 것처럼 비닐봉지를 이용한 질식사도 신체를 훼손시키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누가 뒤에서 손을 묶어줄 것인가?"

오래전 일이지만 나 또한 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고 잠수교를 건넌 적이 있었다. 요즘처럼 장마철이어서 흙탕물인데다가 유속이 너무 빠라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주변에 건져줄 만한 사람도 없었고. 이런 시를 잠깐 쓰는 걸로 참아두는 도리밖에 없었다: "거리에 어둠이 내린다. 어둠은 너무도 두꺼운 책,/ 한장씩 찢어 달빛으로 태운다. 어둠의 재가 날린다./ 방안 구석구석에 어둠이 포진한다./ 장회를 신은 유령들! 언젠가,/ 나는 맨발로 물에 빠질 생각을 했었구나/ 발목엔 아직도 그때 물린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나는 자꾸 누군가를 깨물어주고 싶다." 미친 개처럼?

소설의 화자는 루게릭병에 걸린 친구를 만나보기 위해 "개집하고 가죽공장 사이에" 있는 교외의 외딴집을 찾아간다. 그러는 중에 생가죽을 말려서("말이 가죽이지 '살'이라고 불러야 더 적당했다") 가죽을 만드는 인부로부터 그 공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는 "70도 훨씬 넘긴 노인"처럼 보이는 친구를 만난다. 하지만 "언젠가 너에게 그냥 죽으라고 했던 그 말을 철회하러 왔다는 말을, 널 보고 난 후에 자살하려고 했다는 말을 나는 꺼내지 못했다." 며칠 뒤에는 나는 10여년 동안 아내를 간호하던 현임의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는다.

"나는 삶의 밑바닥의 정체란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소리치는 대신에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비명 같은 이상한 소리로 미친 듯이 악을 쓰면서 남편을 불러대었을 현임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침내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과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없을 선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긍지를 잃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갑자기 어둠 속으로 들어선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 속에는 더 무시무시한 경우들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죽음보다도 삶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며칠 후, '나'는 백화점 슈퍼에 들렀다가 상처난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가죽 숄더백을 보고 사든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 거울 앞에 앉아 그 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깊이 숨을 쉬고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백의 상처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 백의 상처에서 받은 느낌이 그처럼 뚜렷하는 게 너무도 이상했다.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내 볼을 적셨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백 위에 떨어진 내 눈물이 가죽을 적셔서 백의 상처를 점점 더 진하고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러한 에피파니의 순간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모처럼 읽은 '진한' 소설이지만, 몇 가지 불만이 없지는 않다. '웃으면서 죽는 법'이란 제목이 일단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죽' 정도가 가장 적합해 보인다. 상징성도 풍부하고. 그랬다면, 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자살에 관한 무용담들을 떠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흠들을 굳이 들추어 무엇하겠는가?

'세상은 동물원'이란 비유가 있다. 이젠 그다지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가죽공장', 이건 어떤가? 한동안은 버틸 만하지 않을까?

06.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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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예정작인 영화 <괴물>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예고편 기사와 리뷰들이 나와 있다. 따로 모아두고 아직 읽지는 않고 있는데, 이번주 ('씨네21'이 아니라) '한겨레21'에서도 관련기사를 싣고 있기에 못 이기는 척 하나만 읽어보기로 한다. 제목은 '한강의 괴물, 한국의 자본주의!'인데, 말하자면, '괴물'을 한국자본주의의 메타포로 읽고 싶다는 것. 필자인 신윤동욱 기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치열한 고투를 벌이며 생존해온 우리네 가족에게 바치는 영화 <괴물>, 그 다리의 기형성과 흉측하게 벌어진 입은 천민자본주의를 은유하는가?"(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한겨레21(06. 07. 13) 한국에서 가족은 혈연 공동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다. 한국에서 개인에게 닥치는 위기는 공권력의 보호, 사회적 안전망을 통하기보다는 사적인 안전망을 통해 관리되거나 극복돼왔다. 예컨대 ‘한국은 어떻게 IMF 경제위기를 극복했는가’라는 분석에서 ‘가족의 부조가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을 메웠다’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 강두는 현서의 손을 잡고 뛰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괴물>은 그렇게 ‘한심한’ 강두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영웅이 한 명의 슈퍼 히어로나 지역의 시민들이 아니라 소시민 가족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변에 출현한 괴물에게 아이를 빼앗긴 일가족의 분투를 담고 있다.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송강호)에게 딸 현서(고아성)는 보물 같은 존재다. 어느 날 한강변에 출현한 괴물에게 현서가 잡혀가자 아빠 강두, 할아버지 희봉(변희봉), 삼촌 남일(박해일), 고모 남주(배두나)는 현서를 찾아나선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 대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괴물과 맞서 싸운 박강두네 가족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처절하고 외로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우리의 가족들…. 사실 이 영화는 고스란히 그들에게 바치는 영화다”라고 썼다. 감독의 헌사는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해설로 들린다.

괴수영화의 공식을 거스르다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첫 번째 은유를 꼽자면 한강이 아닐까. 한국의 경제 성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은유된다. 집단적인 성공을 뜻하는 한강의 기적을 뒤집어 개인의 역사에 대입하면 ‘한강의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맞서 치열한 고투를 벌이며 생존해왔다. 가족은 유일하게 기댈 언덕이었고 ‘한 배를 탄 운명’이었지만, 가족은 또한 한강에 뜬 조각배 같은 불안한 운명 공동체였다. 급변하는 사회의 파고가 소시민 가정을 덮치듯, 한강의 괴물은 매점집의 아이를 빼앗아간다.

-한국 현대사가 그러했듯, 위기에 처한 가족은 공권력에 구조를 요청하지만 공권력은 가족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지로 몰아넣는다. <괴물>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현서에게 전화가 오지만 경찰은 현서의 생존을 믿지 않는다. 바이러스 감염자이자 정신질환자로 감금된 강두는 “내 말 좀 끊지 마. 내 말도 말인데”라고 항변하지만, 공허한 반향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제 강두 가족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러해왔듯이, 가족만의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한강의 괴물은 한국 자본주의를 은유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듯, 괴물의 탄생 배후에도 미국 아니 미군이 있다. <괴물>은 2000년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한 맥팔렌드 사건을 유머러스하게 ‘재현’하면서 시작한다. 2002년 미군이 뿌린 불행의 씨앗은 2006년 한강변에 등장한 괴물이 인명을 살상하는 참사로 이어진다. 미군이 만든 괴물은 미국이 배후인 한국의 자본주의와 공통점을 지녔다.

-괴물은 한국의 자본처럼 너무 크지도 완벽하게 유능하지도 않다. 한강의 경사 면에서 미끄러져 구르는 괴물을 보고 있지만, 마치 좌충우돌하는 한국 자본주의를 보는 듯하다. 또 제대로 자라지 못한 다리의 기형성과 다섯 갈래로 흉측하게 벌어진 입의 탐욕은 천민 자본주의의 기형성이나 폭력성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괴물>은 괴수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초반부에 괴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할리우드 괴수영화의 공식을 거스른다. 괴물의 때이른 등장은 괴물의 정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의 고투가 영화의 중심이라는 선언이다. 한국적 괴수영화인 <괴물>에는 보통의 괴수영화처럼 도시 전체를 짓밟는 거대한 괴물도 없다.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위대한 영웅도 없다.


△ 봉준호 감독(맨 왼쪽)은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영화를 19년 전에 떠올리고 3년 동안 만들어왔다. 언론 시사회에서 인사하는 <괴물>의 배우와 제작진들. 

-영웅 대신 가족이 있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백수인 삼촌 남일은 현서를 찾아낼 단서를 찾아낸다. 집중력이 좋지만 결단력이 부족한 양궁 선수인 고모 남주도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틈만 나면 조는 답답한 인간인 강두도 순박한 부성애로 딸을 찾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강두네 가족은 개개인으로는 무능력하거나 결점투성이 인간이지만, 그들이 힘을 합치면 가까스로 영웅의 능력에 다가간다. 한국의 가족들은 그렇게 가까스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남성의 화염병, 여성의 활…

-<괴물>의 인물도 한국적이다. 세상에 대한 불평은 많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은 부족한 ‘고급 백수’인 남일은 한국 사회운동이 낳은 어떤 인간형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 양궁 선수인 고모 남주는 야무진 한국 여성상을 대표한다. 남성은 화염병을 던지고, 여성은 활을 쏜다. 공간적 연관성이 전혀 없지만, 이어놓고 보면 한국의 현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엮이기도 한다. 또 이동전화 선진국답게 이동전화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때때로 너무 ‘노골적’으로 읽힌다. 비유가 직접적인 만큼 인물의 행동이 예측 가능해 미스터리의 매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조도 진폭이 적어서 대중영화로서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봉준호 감독은 콘크리트의 감독으로 불릴 만하다. <괴물>의 카메라에 잡힌 한강 다리와 하수구의 콘크리트는 도시의 삭막한 내면을 드러낸다. <살인의 추억>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던 터널의 이미지는 <괴물>에서 한강의 하수구로 이어진다. <괴물>에서 하수구는 어둠으로 빨려들어 가는 미로의 이미지를 통해 저마다의 미궁을 헤쳐온 한국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물론 <괴물>에는 봉준호식 유머도 심심찮게 심어져 있고, 한두 마디 금언도 들어 있다. 강두의 아버지 희봉의 한마디, “새끼 잃은 부모 속냄새를 맡아본 적 있어?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는 기억될 만한 명대사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이 슬픔을 못 이겨 몸부림치는 장면을 부감으로 잡아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보이게 하는 카메라의 유머도 빛난다. 변희봉, 송강호, 배두나의 연기가 기대대로 빼어나다면, 박해일의 연기는 기대보다 훌륭하다. 박해일은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철없는 남자의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현서 역을 맡은 10대 배우 고아성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하반기 한국 영화 최대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괴물>은 7월27일 개봉한다.

06. 07. 18.

P.S. '필름2.0'의 기사 하나도 스크랩 해놓는다. 타이틀은 "봉준호의 압도적 세계: <괴물>이 권력을 보는 시선"이며 필자는 이형석 기자(해럴드경제)이다. 영화를 보고 읽어봐야겠다...

필름2.0(06. 07. 18) <괴물>의 핵심은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다. <괴물>이 국가주의에 대한 절망과 민중의 자구 혹은 자위에 대한 어떤 믿음을 드러낸다고 볼 때 이 영화의 권력에 대한 비판적 언술은 민족주의적 반미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 의미로 확장된다.

-그의 첫 단편 제목을 빌자면, 봉준호의 영화는 '지리멸렬'한 것들의 성스러움과 성스러운 것들의 지리멸렬함을 증명하는 데 바쳐진다. 영화적 흥분 또한 그 역설에서 발생한다. 성의(聖衣) 혹은 법복으로 위장했던 존재들이 실상은 하잘 것 없고 비루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음이 폭로되는 순간 관객은 웃거나 분노하거나 속시원해한다. 반대로 열등하고 우스꽝스러웠던 것들이 숭고한 의도와 행위를 보여줄 때 관객은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감동받는다. 이것은 봉준호의 영화가 매우 사려 깊고 지적인 성찰을 담은 빼어난 정치, 사회적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왜 놀라운 정서적 파괴력을 갖는 상업 영화인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괴물>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박강두의 모습은 모자라기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가 괴물에 잡혀간 딸이 살아 있다고 하소연하고 국가가 이를 외면할 때 관객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모자란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실상은 진실과 진심이고, 과잉된 권력체계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거짓과 왜곡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낱낱이 확인한 관객의 가슴엔 웃음 대신 안타까움과 답답증, 분노가 들어선다. 딸을 구하기 위한 강두와 그의 일가족들은 괴물과 악전고투를 벌여갈수록 단련되고 유능해지며 숭고해진다. 박강두의 아버지와 동생 남일, 누이동생 남주, 딸 현서 등은 대체로 희극적으로 등장했다 비장하게 퇴장한다. 반면 군병력 출동으로 거창하게 등장한 국가권력은 갈수록 시시해지고 무력해지며 우스워진다. 첫 단편 때부터 보여준 봉준호 영화의 역설은 규모가 거대해진 세 번째 장편영화에 와서 한층 명징하고 풍부하다.

-그러므로 <살인의 추억>에 이어 이 작품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것은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다. 용산 주한미군기지에서 무단 배출한 포름알데히드에 의해 한강에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생겼다는 것이나 괴생물체로 인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미국이 개입한다는 등의 설정은 노골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듯 보인다. 자칫 이 영화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반미적인 텍스트로 오독할 여지다. 특히 먼저 개봉하는 강우석 감독의 매우 국수주의적이며 반일선동적인 <한반도>와 나란히 놓고 ‘반일’과 ‘반미’라는 먹기 편한 사냥감을 포획하려는 일부 언론과 평단의 의지를 비껴가기 어려운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국가주의에 대한 절망과 민중의 자구(自求) 혹은 자위(自衛)에 대한 어떤 믿음을 드러낸다고 볼 때 이 영화에 내포된 권력에 대한 비판적 언술은 ‘민족주의적 반미’의 차원을 넘어 보편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권력의 속성 중 하나는 ‘과시’다. 괴생물체가 출현해 한바탕 난리법석을 겪은 뒤 거대한 군병력이 한강변에 배치될 때 권력은 힘과 규모를 과시한다. 주한미군이 ‘(괴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본국의 승인 없이는 알릴 수 없다’고 발언할 때나 ‘휴대전화 번호추적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공무집행자가 말할 때 권력이 노리는 것은 ‘당신들의 배후엔 당신들이 알 수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 모종의 복잡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를 암시하는, 즉 ‘과시의 진술’이다. 행정절차 혹은 경영기술, 과학기술의 복잡성과 전문성을 물신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관료제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권력은 늘 앎의 대상을 규정하면서부터 비로소 권력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미군은 괴생물체에 침묵하는 대신 ‘괴바이러스’를 언급함으로써 앎의 대상을 정의한다. 다시 인용하자면 ‘본국의 승인 없이는 알릴 수 없다’는 말은 앎의 대상과 함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권력은 대상을 창조 혹은 정의하고 분류하고 체계화하지만 문제는 앎의 대상은 괄호 쳐지고 출현은 끊임없이 지연되며 분류된 항들은 모두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그곳은 비어 있기 때문에 권력은 권력일 수 있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화학공장’을 향한 폭격과 같고, ‘없는 괴바이러스’의 치료 같은 것이다(물론 ‘없는 괴바이러스’라는 설정은 미국의 이라크전을 연상시킨다).

-끊임없이 유발되는 공포는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도 잘 지적됐듯 권력이 스스로를 작동시키고 유지시키는 일상적 테크닉이다. 박강두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영어로 이야기하는(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 앞에서 처방전을 마구 흘려 쓴 필기체 영어로 쓴다든가 굳이 영어로 된 의학전문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권위를 연상시킨다) 주한미군 스탭에게서 ‘노 바이러스’라는 말을 캐치해내고 서슴없이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이 통쾌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신화된 지식과 전문성이라는 관료제의 은밀한 권위는 순식간에 조롱당하고, 권력이 정의하고 분류시킨 항목들이 실상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2000년 맥팔랜드 사건과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의 일종인 에이전트 오렌지(영화에서는 괴바이러스 치료제인 ‘에이전트 옐로우’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라크전에 대한 명백한 참고와 인용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민족자주의 시각에서 반미적 텍스트로 읽을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미국을 빌어 권력에 대한 보편적 비판을 수행하고 풍자하는 텍스트에 가깝다.

-결국 권력은 가공의 적을 만들어 내거나 잘못된 타깃을 향함으로써 늘 오작동 하지만 오작동 그 자체가 개인과 대중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방식일 텐데, 그렇게 본다면 극 초반부에 등장하는 한 한강 투신자살자의 유언(“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국가) 권력을 향한 조소처럼 들린다. 반면 좀 과장하자면 얼빠지게 보였던 박강두 일가족은 오히려 직관적인 영리함을 가진 듯 보인다. 이는 마치 슬라보예 지젝의 논의에서 상징계의 빈 구멍 속으로 실재계가 침입함으로써 이데올로기를 가로질러 새로운 주체가 형성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봉준호의 세계에서의 역설과 대비가, <괴물>에서 한편으로는 ‘싸는 것’과 ‘먹(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다.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송강호)이 무심결에 내뱉었던 "밥은 먹고 다니냐"가 화두라도 된 것처럼 이 영화에는 ‘먹(이)는 행위’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권력 혹은 시스템이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하는 것으로부터 후반에 에이전트 옐로우를 살포하는 것까지 싸는 것, 곧 배설의 악순환 고리로 이뤄져 있다면, 박강두와 딸이 그 어디쯤 놓인 개인들의 고리는 먹(이)는 것, 곧 보호(양육, care)자가 되는 동시에 피보호자가 되는 선순환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말로 반복하자면 이 영화는 국가주의에 대한 절망과 민중의 자구 혹은 자위에 대한 낙관적 믿음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의 시선은 초반부에 서슴없이 모습을 드러낸 괴물에 일단 꽂히지만 오히려 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버지-아버지의 아버지-삼촌-고모를 거쳐 아버지로 끝맺는 개인들의 개별적 전쟁들과 먹(이)는 고리로 형성된 가족 모두의 분투야말로 이 영화의 드라마가 가진 압도적 감동과 힘의 근원일 것이다. 끝으로 수평적인 움직임이 주는 활력과 수직의 비극성을 교차시켜 한강에 숨을 불어넣은 카메라 워크의 탁월함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봉준호는 스필버그적 세계 안에서 비스필버그적인, 굉장한 세계를 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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