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세계적인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내한공연이 내주에 예정돼 있다. 이런저런 형편상 아쉽게도 공연을 관람하지 못할 듯하지만, 관련기사 정도는 옮겨다 놓는다.

한국일보(06. 05. 16) 2001, 2002년 내한공연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던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이 다시 온다. 최근작 ‘돈 주앙과 몰리에르’(2001년 작), ‘ Who’s Who’(2003년 작), 관객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 1위로 꼽힌 ‘차이코프스키’(1993년 작)로 25, 26일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과 30일~6월4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보리스 에이프만(60)은 오늘날 가장 성공한 러시아 안무가이자 현대 발레의 거장이다. 러시아의 방대한 문화유산을 뿌리 삼고, 고전발레의 테크닉과 현대무용의 표현력을 결합한 그의 작품은 문학성과 철학성이 두드러진다. 두 차례 내한 무대에서 선보였던 ‘붉은 지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차이코프스키’ ‘러시안 햄릿’ ‘돈키호테’ 는 대문호의 걸작이나 예술가의 삶을 춤으로 옮긴 것이었다. 극적인 구성과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군무, 문학적 향기와 철학적 깊이는 무용을 처음 보는 관객들까지 단번에 팬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번에 갖고 오는 세 편 중 ‘돈 주앙과 몰리에르’는 17세기 프랑스 희곡작가 몰리에르와 그의 대표작 속 주인공 돈 주앙을 나란히 대비시켜 예술가의 삶, 특히 창조자로서 겪는 고뇌와 투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주앙과, 스무 살 연하의 어린 아내 때문에 늘 질투하고 괴로워했던 몰리에르의 삶이 대조를 이루며 장대한 철학적 드라마를 연출한다.

-‘Who’s Who’는 에이프만의 기존 작품과는 많이 다르다. 러시아혁명 이후 예술적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간 러시아 발레 댄서의 이야기다. 갱단과 나이트클럽이 있는 1920년대 뉴욕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재즈와 스윙 음악, 쇼걸, 탭 댄스와 재즈 댄스, 서커스 등 화려하고 다채로운 볼거리로 ‘발레 뮤지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예술가로서, 또 동성애자로서 내면의 분열을 겪었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극명한 초상이다. 2001년 내한 무대에서 이 작품을 본 관객들에게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분신의 격렬한 2인무는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있다.

세계일보(06. 05. 23) 보리스 에이프만(60·사진)이 왔다. 옛 소련 시절 예술가 최고 영예인 ‘러시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이 4년 만에 다시 LG아트센터를 찾는다. 수차례 내한 공연으로 국내에도 상당수의 팬을 확보한 그는 그동안 끊임없이 앙코르 공연 요청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돈 주앙과 몰리에르’(30, 31일 오후 8시) ‘차이콥스키―미스터리한 삶과 죽음’(6월 1, 2일 오후 8시) ‘후스 후’(Who’s Who·3일 오후 7시, 4일 오후 3시)를 연속 감상할 수 있다. 서울에 앞서 대전(25, 26일) 전주(27일)에서도 공연이 있다.

 

 

 

 

 

 



-‘돈 주앙과 몰리에르’(2001년 초연) ‘후스 후’(2003년)는 한국 초연작. ‘차이콥스키…’(1993년)는 LG아트센터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 1위로 뽑힌 걸작이다. 내한 공연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붉은 지젤’ ‘러시안 햄릿’ ‘돈키호테' 등에서처럼 에이프만의 작품들은 대개 극적인 구성,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군무, 드높은 문학적 향기, 폭넓은 예술세계가 담겨 있어 당당히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돈 주앙과 몰리에르’는 늘 고뇌에 시달렸던 천재 작가 몰리에르가 희대의 바람둥이 돈 주앙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써 나가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현실과 환상 속에서 상반되는 두 인물의 모습이 시시각각 대조되고 교차한다.

-‘차이콥스키…’는 이 위대한 작곡가의 창작과 고뇌, 그리고 내적 갈등의 요인이자 창조력의 원천이었던 동성연애자로서의 욕망이 그와 분신 간의 대립을 통해 긴장감 넘치게 표출된다. 차이콥스키의 음악 만큼이나 극적이라는 평을 받은 이 작품에서 차이콥스키는 10분의 9는 고통으로, 나머지 10분의 1은 천재성으로 채워진 인물로 묘사된다.

-‘후스 후’는 마릴린 먼로 주연의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줄거리를 차용한 작품.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예술적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 무용가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다. 1920년대 뉴욕 뒷골목의 모습과 다양한 춤을 보여주며 듀크 엘링턴의 익숙한 재즈 넘버들, 루이스 프리마의 스윙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한다.

-77년 자신의 발레단을 창단한 보리스 에이프만은 방대한 러시아의 문화유산을 뿌리로 하여 고전발레의 테크닉과 현대무용의 표현력을 결합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우리 무용단에서 10년 일찍 시작됐다”, “이제 곧 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라는 선언만큼이나 혁신적이고 대담한 그의 현대발레 작품은 러시아에서는 물론 뉴욕, 파리 등 서방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06. 05. 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번에 미처 다루지 못한 책들을 마저 다루기로 한다. 어느새 '가정의 달'도 다 지나가버렸는데, 지난 토요일에는 아이의 유치원에서 준비한 '가족의 날' 행사가 우천으로 취소되는 바람에(우리 가족은 아침, 점심을 김밥으로 때웠다) 본의 아니게(!) 번듯하게 아이에게 뭐 하나 해준 것 없이 보내게 되어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걸 좀 만회하기 위해서 제일 처음 고른 책은 아동 정신분석에 관한 것이다(이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인가?).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분석가 프랑수아즈 돌토의 <도미니크 이야기>(동문선, 2006)이 그것인데, 그녀에 관한 전기 <프랑수아즈 돌토>(도서출판 숲, 2003)는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다(돌토에 관한 보다 간랸한 설명은 <위대한 7인의 정신분석가>(백의, 1999)를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알고보니 그 사이에 돌토의 책이 몇 권 더 출간되었다. 한데, 기독교에 관한 책 두 권을 빼면, <어린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도서출판 숲, 2004)가 <도미니크 이야기>와 함께 아동 정신분석에 관한 책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그 책에 주목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부재중'에 출간된 탓이다).

해서, 이 세 권 정도를 좀 읽어주는 계획도 세워봄 직하다. 아이가 당장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아이에게 무관심했던 부모라면 한번쯤 읽어보면서 자기반성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더불어, 아이들을 좀더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두번째 책은 스티븐 컨의 <사랑의 문화사>(말글빛냄, 2006)이다. 원제는 'The Culture of Love'(1992)인데, '빅토리아 시대부터 현대까지'란 부제를 달고 있기에 '사랑의 문화'가 됐다.  일단 책이 눈에 띄는 건 (번역서라 좀 부풀려졌다 하더라도) 76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그리고 저자가 이미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1840~1900> 등 인상깊은 문화사 서적을 써낸" 전력을 갖고 있기에 신뢰할 만하다는 것. 문화사 방면으론 '서양 문화사 500년'이라는 큼직한 부제를 달고 있는 자크 버전의 <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도 눈에 띄는 신간이다. 두 권 합해서 1,500쪽이 넘는다. 하긴 500년의 문화사를 정리한다고 하니까 그만한 분량은 필요했을 법하다. 스티븐 컨의 책들과 함께 '교양 문화사 사전' 정도의 쓰임을 가질 수 있다. 

책은 "빅토리아 시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사랑의 역사를 추적해 본다. 정확히는 <제인 에어>가 출간된 1847년부터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1934년까지 87년간의 시기를 무대로 삼고 있다. 기다림을 시작으로 만남, 사랑의 언어, 입맞춤, 질투, 결혼식을 거쳐 종말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하면서 마주치는 기본 요소들을 키워드로 삼고, 이러한 특정한 상황이 문학/예술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당장은 특별히 사랑할 사람이 없는 이들도 애완견 돌보는 시간을 쪼개서 한번쯤 읽어볼 만하겠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1500년 서양사를 네 가지 혁명으로 구분한다. 종교혁명과 군주혁명, 자유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 그것. 책은 각 부마다 각 혁명이 일으킨 인간관의 변화가 문화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르네상스·바로크 미술·낭만주의·사실주의·모더니즘 등의 예술 사조와 마키아벨리와 스위프트·바흐와 모차르트 등의 세기를 주름잡은 인물들이 다채롭게 묘사된다. 지은이는 500년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인간의 욕망, 즉 인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욕망의 요소로 해방, 개인주의, 원시주의, 추상, 분석, 세속주의, 과학만능주의 등의 키워드를 든다. 그래서 이 책이 풀어내는 서양 문화사는 이들 요소의 다양한 비율에 따른 배합 결과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통사'는 아니고 그걸 저자 나름대로 꿰는 틀을 갖고 있다는 얘기이다.

 
 
 
 
 
 
 

세번째 책은 히틀러를 사랑한 여인, 혹은 히틀러가 사랑했던 여인, 어느쪽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20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 감독이란 평과 나치의 핀업걸이라는 혹평이 교차하는 걸출한 여성 감독 겸 사진작가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의 전기,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마티, 2006)이다. 650쪽 정도 되니까 이 또한 전기로서 듬직하다.

사실은 나도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을 통해서 리펜슈탈을 알게 됐을 만큼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만들었나는 기록영화의 목록들은 '아!'라는 감탄사를 자연스레 유도한다(그녀의 영화는 <죽기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포함돼 있으며, '미디어미학'의 중요한 탐구 대상이다). 알라딘에 전기에 관한 소개가 생략돼 있기에, 간단히 사전적인 인물 소개를 옮겨온다.

-나치 운동을 힘차고 화려하게 극화한 1930년대 기록영화로 유명하다. 베를린에서 그림과 발레를 배웠고 1923~26년 유럽순회 무용공연을 가졌다. 자연, 특히 산악의 경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일영화의 한 형태인 '산악영화'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관련을 맺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 방면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1931년 레니리펜슈탈영화사를 만들었고, 1932년 <푸른 불빛 Das blaue Licht>의 각본을 쓰고 감독·제작·주연을 맡았다.

 

 

-나치당의 지원을 받아 신체의 아름다움과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영화들을 감독했다. <신념의 승리 Sieg des Glaubens>(1933)는 아돌프 히틀러가 주문해 제작한 단편 영화이며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는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주의깊게 관찰한 중요한 기록영화로서 나치당의 결속을 강조하고 독일민족에게 당의 지도자들을 소개했으며 나치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 Olympische Spiele>(1938)는 1936년에 열린 올림픽 경기를 <민족의 축제 Fest der Völker>와 <아름다움의 축제 Fast der Schönheit>라는 2부로 편성해 영화화한 것으로 스튜디오에서 만든 감명깊은 음악과 음향효과를 만들어 찬사를 받았다.
 
-리펜슈탈의 영화는 풍부한 음향 효과, 뛰어난 편집, 새벽의 아름다운 정경이나 산악지대, 독일의 전원생활 등을 영화에 아름답게 담아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가 만든 영화가 나치를 돕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뒤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나치와의 전쟁공범죄가 공식적으로 씻겨진 뒤인 1952년 다시 영화에 복귀하여 일찍이 전쟁 때문에 제작을 중단했던 영화 <저지대 Tiefland>를 완성했다. 1973년 그녀의 아프리카 사진집 <누바족의 최후 Die Nuba>가 출간되었다.(*손택의 리페슈탈론은 이 사진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책에 대한 동아일보(06. 05. 27) 이기우 기자의 리뷰.

-그녀는 언제나 흰옷을 입고 있었다. 어디에 있든 바로 눈에 띄었다. 정열적이었고 자신감에 넘쳤다. 도도함과 오만함은 그녀의 성격이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원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했다. 화려한 외모로 거장들을 ‘손에 넣었다’. 요제프 괴벨스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녀의 작업에는 수상한 냄새가 난다….”

-당시 독일 여자들은 나치의 규율에 따라 비스마르크가 격찬한 3K, 아이(Kinder) 교회(Kirche) 부엌(K¨uche)에 만족해야 했으나 그녀만은 예외였다. 사전 약속 없이도 히틀러를 둘러싼 두꺼운 호위망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와 히틀러는 둘 다 몽상가였다. 신화를 사랑했다. 둘은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끝났을 때, 히틀러를 지지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만은 법정에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히틀러를 믿었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날 죽여요!”

-이 책은 극단의 세기였던 20세기를 ‘금지된 열정’으로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의 일대기다. 유망한 무용가이자 매혹적인 영화배우였고 20세기 최고의 천재감독이었던 여인, 그러나 ‘악마(히틀러)의 감독’이자 ‘나치 핀업걸’로 기억되는 한 여인의 처연한 삶의 초상이다. 리펜슈탈이 히틀러의 요청으로 만든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영화는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낭만적인 동시에 서사적이고, 신비로우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이 영화는 당시의 카메라 기술로 촬영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영화비평가들은 신음하듯 뱉었다. “서정의 적(敵)으로부터 나온 이 서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리펜슈탈은 영화를 통해서 정말 히틀러의 사악한 제국을 선전했는가? 그녀의 예술적 삶을 ‘우울한 열정’이라고 표현했던 수전 손택은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지도자에 대한 숭배를 통해 육체와 공동체의 재탄생을 찬양하고 있다며 ‘파시스트 미학’이라고 규정했다(*손택은 <올림픽 경기>와 <누마족> 사이의 '연속성'을 지적한다). 리펜슈탈은 전쟁이 끝난 뒤 법정에서 “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독하게 버려진다. 그녀는 비공식적인 블랙리스트에 올려졌고 다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물론 그녀의 책임도 있었다. 리펜슈탈은 존재 자체가 너무나 현란해서 그녀의 등장은 마치 파시스트의 악령이 되살아온 것과 같았다. 자신을 비난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 열린 재판정에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관능적인 승마복에 굽이 15cm가 넘는 샌들을 신고 요염하게 걸어 들어서기 일쑤였다. 그녀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온건한 견해가 불가능했다. 끔찍하거나 위대하거나! 천재이거나 악마이거나!

-그녀는 정치적으로 순진했다. 아니, 백치였다. 그녀의 삶을 좇으며 시종 그녀에 대해,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진한 연민을 드러내온 저자는 독백하듯 읊조린다. “그 광란의 파시즘 시대에 정치적 무지야말로 가장 큰 범죄는 아니었을까….”

해서 파시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서도 그녀의 전기는 일독의 가치를 충분히 갖는다(파시즘의 '우울한 열정'은 '원시적 열정'이기도 하다는 그녀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녀가 갖고 있었던 건 '정치적 무지'가 아니라 그러한 '정치적 무의식'으로서의 '정치적 예지'가 아니었을까?). 

 
 
 
 
 
 

 

네번째 책은 '세계화 시대 라틴 아메리카 영화'를 다룬 임호준의 <시네마, 슬픈 대륙을 품다>(현실문화연구, 2006)이다. 영화의 변방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활기차고 진보적인 영화운동의 산지, 라틴 아메리카의 영화에 대해서 이만한 규모로 다룬 책이 더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도 일단 주목에 값하는 책. 소개에 따르면, "세계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1950년대 중반 신영화운동 이후, 독창적인 미학으로 치열하게 현실을 담아내 온 라틴아메리카 영화에 대한 안내서. 현대라틴아메리카영화의 화제작들을 총망라하여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무의식을 추적했다."



조금 부연하면, "브라질,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라틴아메리카 영화 60여 편에 대한 소개와 130여 장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다. <루시아>, <오피셜 스토리>,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이 투 마마>,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등 각각의 영화들이 나오게 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책의 표지로 사용되고 있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이미지처럼, 영화를 타고 가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 일주기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가는 김에 라틴 아메리카에 관한 책 몇 권도 같이 끼고 가면 더 좋을 듯.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아이리스 장의 난징대학살에 관한 기록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2006)이다. 이전에 <난징대학살>(이끌리오, 1999)로 한번 출간된 적이 있는데,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듯하다. 아무튼 새로이 출간된 이 끔찍한 기록을 나는 바로 주문해서 입수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이 거리낌은 이 페이퍼가 늦춰지는 데도 한몫했다). 해서 일단은 동아일보 김희경 기자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동아일보(06. 05. 20) 1937년 12월 중국 난징(南京)은 ‘살아 있음이 불길하게만 여겨지는 곳’이었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7주간 학살한 중국인은 26만∼35만 명. 눕혀 놓으면 난징에서 항저우(杭州)까지 35km나 이어질 숫자이고 위로 쌓는다면 빌딩 74층 높이다. 더 끔찍한 것은 일본군이 희생자들에게 최대한의 고통과 수치를 주면서 학살했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총검술 연습, 목 베기 시합의 대상이었고 2만 명이 넘는 여성이 강간당했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다큐멘터리 작가인 저자는 1997년 이 책을 펴낸 뒤 일본 우익세력의 끝없는 협박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4년 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난징 대학살이 규모와 잔혹함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2차 대전 후의 냉전적 상황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에 맞서기 위해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이어갔고, 일본은 다른 패전국이 받은 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 중국과 대만은 일본과 교역 물꼬를 트려고 경쟁하느라 전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 역시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기를 거부했다.



-책에 실린 사진과 학살의 사실적 묘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참혹하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실상을 알리는 것을 뛰어넘어 처참한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본성과 아이러니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일본의 만행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추적하면서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종잇장처럼 얇은지, 권력이 얼마나 쉽게 10대 소년들의 천성을 변질시켜 살인 병기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나는 이러한 야만성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절대적인 무능력/불가항력에 처해 있는 타자를 학대/살해하는 대신에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반복하자면, 우리의 문명이란 얼마나 얇은 것인가!).

-드라마틱한 사람들의 인생 유전도 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다. 난징에서 중국인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던 ‘중국의 오스카 쉰들러’ 욘 라베는 난징의 나치당 리더였다. 그는 독일에 돌아가 난징의 실상을 알리다 게슈타포에게 체포됐고 전후에는 나치 전력 조사를 받으며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난징 대학살은 내년이면 70주년을 맞는다(*나는 책을 내년쯤에나 읽어야겠다). 저자가 책을 쓰는 동안 마음 깊이 새겨 두었다는 경고는 이 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되풀이한다.”

평범한 인간들의 비범한 잔악성을 상기시켜주는 책으로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 헤스의 회고록이 있다. 한국일보의 리뷰를 옮겨온다.

한국일보(06. 05. 20) 헤스의 고백록 "나는 악마가 아니였다"

-헝가리 40만명, 프랑스 11만명, 네덜란드 9만5,000명, 슬로바키아 9만명….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헤스(1940~1947)가 기억하는 학살 유대인 숫자다. 그러나 “나 자신은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죽었는지 알지 못하며 심지어 어림짐작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그가 죽인 유대인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실제 1940년 5월부터 나치가 망할 때까지 살인공장 아우슈비츠에서 죽어 나간 유대인, 소련군 포로, 집시 등은 250만명을 넘는다. 그러니 아우슈비츠를 만들고 가스 살상법을 개발해 집행한 헤스를 악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가 남긴<헤스의 고백록>을 읽으면 그는 악마 같지가 않다. 정신 이상자도, 성격 파탄자도 아니다. 어려서는 아버지로부터 누구에게라도 정중하게 대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간호사와 나눈 첫사랑은 전 생애에 걸쳐 그를 인도해준 싹이 됐다. 가정에서는 훌륭한 아버지요 착한 남편이었다. 직무에 충실했고 술, 담배를 하지 않았으며 교양 수준도 높았다. 그 때문인지 그는 수기의 끝에서 자신이 “악인은 아니었다”고 적었다.

-그래서 놀랍다. 광인이나 정신 착란자였다면 특이한 예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 그 같은 대량 학살을 해치웠다는 점이 더 무섭다. 나치 독일이 단지 폭력적 강제 만이 아니라 헤스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가와 행동에 의해 존재했다면, 나치 독일에서 행해진 그 끔찍한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아렌트의 표현을 빌면, '악의 평범성' 혹은 '악의 진부성' 문제이다. 인간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란 경악은 이 문제를 숙고하는 데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가 있다는 가정하에 다시 생각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 라고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넌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한겨레(06. 05. 19) ‘그래, 넌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니?’(So You Think You’re Human?) 원제는 이처럼 다소 도발적이다. 도발적이지 않다면, 당혹스럽다.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아카넷 펴냄)라는 번역본의 제목은 원제를 상당히 점잖게 누그러뜨린 셈이다. 인간답지 않은 인간, 그러니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향해 질책하듯 던지는 말은 아니다(아니, 사실은 그런 질책의 뜻을 담은 질문인 것일까).

-런던대 지리학 교수인 역사가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가 쓴 이 책은 ‘인간’이라는 개념의 정의와 범주, 그 정합성과 타당성을 따져 묻고자 한다. ‘인간’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종다기하겠지만, 역사학자인 지은이가 동원하는 방법론은 역시 역사적 접근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를 돌이켜 보면서 그 타당성과 설득력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거나, 자기가 혹시라도 인간 아닌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다’라는 것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자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의 진술일 터이다. 그런데도 지은이는 왜 새삼스럽게 인간의 정의를 문제 삼고 나섰는가. 자명한 것 속에 함정이 있으며, 자명한 것이 왜 자명한지를 따져 묻는 것이야말로 진정 학문적 태도임을 그가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바탕에 깔고 그는 인간에 관한 역사적 정의의 타당성을 점검한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는 전통적인 요소 중 대표적인 것으로 도구와 언어, 문화 등이 있다. 그러나 영장류 동물학의 최근 연구 성과들은 이런 특징들이 인간만의 몫이 아님을 속속 밝혀 내고 있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개미집에 집어 넣어 거기에 달라 붙은 개미를 떼어 먹는 유명한 사례는 제인 구달의 선구적 연구 덕택에 보편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단한 나무 열매를 쪼개기 위해 두 개의 돌을 이용하는 원숭이는 물론, 조개 껍질을 깨기 위해 돌을 이용하는 수달을 보더라도 도구 사용에 관한 인간의 독점권은 인정하기 어렵다.

-언어 역시 인간만의 몫으로 주장하기 어렵다. 벌·개미와 돌고래, 박쥐 등의 고유한 의사전달체계는 인간과 다른 방식의 ‘언어’로 볼 수 있으며, 영장류들을 훈련시켜 얻은 결과는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말을 알아듣는 개와 앵무새의 사례 역시 참조할 만하다.

-언어와 도구가 아닌 ‘문화’라는 고급스러운 현상으로써 인간의 고유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려 할 때 수컷 침팬지들이 모여 똑같은 방식으로 몸을 흔들고 발을 구르는 ‘비 춤’의 사례 보고라든가, 죽은 토끼나 바퀴벌레를 종일 머리에 얹어 두고 만족스러워하는 암컷 보노보들의 행위는 영장류들에게도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 된다.

-일본 코시마 섬의 짧은꼬리원숭이 집단에서 목격된 행동의 혁신과 보편화 과정은 특히 놀랍다. 관찰자들이 ‘이모’라는 이름을 붙인 천재 암컷 원숭이가 농부에게서 얻은 고구마를 개울물에 헹구어 흙을 씻어 내고 먹기 시작하자 그 방법은 이내 다른 동료 원숭이들에게 확산되었다. 이모는 또 인간들이 해변에 뿌려 주는 밀에 모래가 묻어 먹기에 힘들자 밀과 모래를 함께 물에 뿌리고는 물 위에 떠오르는 밀만을 건져 먹는 방법을 개발해서 역시 무리들에게 전파시켰다.

-이런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지은이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일종의 ‘복권’을 주창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현생 인류의 조상과 상당 기간 동안 공존하다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물질문명을 이루었으며 죽은 이를 매장하고 그 위에 꽃을 뿌리는 식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일부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에 비해 여러 모로 열등했다는 주장을 하며 그에 어울리는 증거를 찾기에 열을 올린다.

-지은이는 이런 태도에서 흑인을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적 존재’로 보고자 했던 19세기 인종주의의 그림자를 본다. “과거에 인간과 사실상 구분되지 않는 인간 아닌 종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간’이라는 것이 고정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게다가 생명공학과 로봇공학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에 대한 기존 관념의 불가피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그야말로 ‘인간적 가치라는 신화’를 보존하고 확산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간곡한 제언이다. 그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애써서 기왕의 인간 개념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인간적 겸손와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이웃 동물’들의 권리와 행복 역시 침해하지 않는 평화적 공존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가령 동물들 역시 자기 영역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 잡히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무언가를 빼앗기는 실험을 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지닌다는 동물 권리운동가들의 주장에도 새겨 들을 바가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것이며 다른 모든 생명을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하거나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식의 인간 중심주의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 개념의 경계는 분명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그 개념은 아직도 놀랄 만큼 확장될 여지가 있다”는 지은이의 결론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이같은 염원을 바탕에 깔고 있다.(최재봉 기자)

06. 05. 28 - 07. 26.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794 2006-06-09 13:33   좋아요 0 | URL
아... 이 페이퍼는 언제 완료 되나요? 계속해서 뒤페이지로 밀려나는군요.^^;;

로쟈 2006-06-10 02:00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부득이한 개인사정까지 겹쳐서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79나 80회 정도는 정리하고 있어야 하는데, 워낙에 실속이 없는 일이라 보니(--;)...

GoNgo 2006-08-07 17:22   좋아요 0 | URL
로쟈님 덕에 보관함에 책이 자꾸 늘어만 갑니다. 보관함 비우면서 5권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 '워낙 실속이 없는 일이라'시기에 보잘것없는 답을 해봅니다.^^;

로쟈 2006-08-07 19:49   좋아요 0 | URL
별 실속 없는 얘기를 다 마음에 담으시네요.^^ 그저 피로감 정도입니다. 끝이 안 보이는 일이라!..
 

모스크바 통신을 꼼꼼하게 읽으신 분이라면 이 글의 제목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재작년 7월말에 나는 지젝의 <이라크> 읽기 한 대목을 "유럽은 무엇을 원하는가?"란 제목으로 올린 적이 있다. 이 글은 그 이미지-버전이다. 한편으론 지젝에 관한 글들을 한 데 모으기 위한 정리이기도 한데, 모스크바 통신에서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어서 읽기에 불편한 점이 있었다. 다시 읽으면서 일부 곁가지들을 제거했고, 몇 마디 새로 집어넣기도 했다(이런 글을 다시 읽는 건 개인적으로 회고적인 정서에 물들게 한다).

오늘 서울에서 보낸 온 책 소포를 받았다. 점심을 먹고, 인터넷카페에 산책 삼아 가려는 참이었는데, 7층 경비 할아버지 책상에 우편물 수령안내장이 놓여져 있는 걸 우연히 봤다. 그런데, 수신자가 나였다! 안내장을 들고 찾아간 곳은 1층의 허름한 방이었는데(그런 곳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소포우편물들이 잔뜩 쌓여 있고, 우편 행낭이 여럿 놓여 있는 방에서 나를 맞이한 여직원은 그래도 상당히 친절한 태도로 안내장을 확인하고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출입증만 갖고 있던 나는 다시 7층의 방으로 올라서 여권을 챙겨가지고 내려왔다. 여직원이 안내장 뒷면에다 필요한 기재내용을 적고, 나는 서명을 했다. 그리고는 행낭에서 ‘우체국택배’라고 한국어로 씌어진 소포박스를 하나 꺼내서 저울에다 무게를 달았다. 1.92kg이라는 저울의 눈금을 나에게 확인시키더니 역시나 확인 서명을 하도록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받아온 것이, 이달 초순에 지인(知人)에게 부탁했던 세 권의 책인바, 지젝의 <이라크>와 들뢰즈의 <비평과 진단>, 그리고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우편물의 경우 보통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3주 정도가 소요되는데, 나는 다음주에나 받아보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어서 다소 뜻밖이었다(물론 좋은 쪽으로). 이 세 권의 책을 부탁한 건 물론 세 권의 러시아어본을 내가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참에 좀 읽어보고자 해서이다. 지젝의 신간에 대한 관심은 물론 그의 ‘독자(혹은 수신자)’로서 당연한 것이고, 들뢰즈의 책 두 권은 내가 이전에 국역본은 물론이거니와 영역본으로도 ‘재미를 못 본’ 책들이라, 러시아어본이라면 사정이 혹 다를까 해서 ‘주문’한 책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좀 읽어본 건 적어도 6년 전의 일이고, <비평과 진단>은 올 연초엔가도 잠시 들춰봤는데, 첫 에세이인 '문학과 삶'을 넘기기가 힘들었다(이런 건 누가 해설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결국엔 귀국 후에 <비평과 진단> 읽기를 한동안 진행한 바 있다.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지만). 몇 줄로 요약하는 건 나도 할 수 있지만, ‘읽어 내려가는 건’ 쉽지 않다(누가 들뢰즈를, 특히 <비평과 진단> 같은 걸 쉽게 읽어 내려가는지 궁금하다). 국역본만을 술술 읽어서 이해할 수 있다면, 굳이 두 종의 번역본을 참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물론 나는 그런 경우에도 여러 개의 번역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대로 (부정적으로는) 우리 번역들이 대개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비평과 진단> 같은 건 나로선 완독이 불가능한데, 거기엔 물론 부정확한 번역 외에도 아직 한국어가 서구의 철학/이론을 번역하기에는 덜 조밀하다는 것이 한몫할 터이다), 다른 한편으로 (긍정적으로는) 다른 번역, 다른 언어의 ‘바꿔 말하면-효과’를 통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두 가지 언어의 번역본을 읽는다. 들뢰즈가 <비평과 진단>의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프루스트에 따르면, “훌륭한 책들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져 있다”고도 하고(그러니까 훌륭한 책들은 아예 외국어로 읽어볼 필요도 있다!).

물론 국역본으로만 읽고 이해할 수 있고 마음 놓고 인용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러시아어 등의 외국어로 읽는 것보다는 ‘빨리’ 그리고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또 인용할 때 따로 번역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성’이다. 지젝의 <믿음에 대하여> 같은 부도덕한 번역서(라기보다는 오역서)들이 양산되는 한, 결코 안심하고 읽거나 인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마음 놓고 읽을 수 있을까?

번역도 ‘문화’인 한에서, 좋은 번역서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고대할 수만은 없다. 해서, 좋은 번역서들을 장려하는 한편, 나쁜 번역서들이 발붙이지는 못하도록 하는 독서문화, 번역문화, 출판문화가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다. 책에 묻혀 사는 나에게 좋은 세상이란 좋은 책들이 나오는 세상이며, 내가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는 힘은 그런 책들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이리라.

서두가 길어졌는데, 오늘 받아본 세 권의 책 중에서 일단 제일 먼저 읽기 시작한 것은 <이라크>이다. 물론 주업(번역)에 대한 부담 때문에(요즘 계속 할당량을 못 채우고 있다. 옛날 같으면 ‘시베리아 유형’ 감이다) 중간에서 책읽기를 끊어야 했는데, 내가 읽은 건 1장의 “유럽은 무엇을 원하는가?”란 절까지이다(52쪽까지). 그러니까 1/4이 좀 못 되게 읽은 셈이며, 조금 자제하면서 읽으려고 하지만 잘 될지는 미지수이다.

Славой Жижек Ирак. История про чайник Iraq: The Borrowed Kettle

이미 이전에 언급한바 있지만, 지난달에 나온 러시아어본은 프락시스란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인데, 포켓북 사이즈이고, 가격은 3,500원 정도였다(2,000부 발행). 발행부수가 적은 것은 러시아에서 지젝의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그러니까 한국보다도 훨씬 낮기 때문이다. 영어본의 원제가 (Verso, 2004)인 <이라크: 빌려온 항아리>(도서출판b, 2004)의 러시아어본 제목은 <이라크: 주전자에 관한 이야기>이며 오렌지색 겉표지에는 작업복 차림에 미군 헬멧을 쓰고 걸어가고 있는 부시 미대통령의 사진이 박혀 있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원제의 ‘kettle’이 우리말로는 왜 ‘주전자’가 아닌 ‘항아리’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직접적으로는 아마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의 한 일화(‘농담’)에 나오는 것이고, 짐작에는 거기서도 ‘항아리’가 아니라 ‘주전자’였을 거 같은데 말이다(항아리를 빌려주었다가 돌려받는 건 드문 일이지 않을까?). 단서가 없는 건 아니다. 국역본 8쪽에 보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 이라크의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도난당한 ‘고대의 항아리’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영어본에서는 이 ‘항아리’도 (흔히 ‘항아리’를 가리키는 ‘urn’이란 단어 대신에) ‘kettle’로 표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kettle’은 무엇을 보관해두는 ‘항아리’가 아니라, 무엇을 끓이는 데 사용되는 도구이다. 미심쩍어서 찾아본 영한사전에는 ‘솥’이나 ‘탕관’ 혹은 ‘주전자’를 뜻하는 걸로 나와 있다. 그러니까 만약에 이라크에서 도난당한 것이 ‘kettle’이라면 엄밀한 의미에서 ‘항아리’는 아닌 셈이다.



러시아어본에는 ‘관’이나 ‘용기’를 나타내는 단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라면 ‘항아리’라고 옮겨도 무방하겠다. 다만, 러시아어본에서는 ‘다른 항아리’로서 얘기하는 ‘주전자’에 대해서는 그와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항아리’와 ‘주전자’를 구별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역본에서는 ‘일관성’을 고려해서인지 ‘항아리’로 통일하고 있다. 하지만, 지젝이 말하고 있는바, “이 책의 제목은 고대의 항아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므로, ‘주전자’가 ‘항아리’로 탈바꿈한 것은 ‘시적 허용’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국역본 <이라크>는 부제답게 ‘주전자’라기보다는 ‘항아리’에 가깝다. 촘스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9.11 관련 촘스키의 책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로 번역돼 있다), 현실에 대한 긴급하고도 현실적인(=액츄얼한) 비평을 담고 있는 이런 류의 ‘시사적인’ 책이 하다카바에 ‘학술적인’ 서적처럼 포장돼 나오는 건 너무 ‘무거운’ 감이 있다(실제 원서 중 하드카바로 나온 지젝의 책이 얼마나 있던가?). 항아리처럼 말이다.

지젝의 한 독자로서 나는 그의 책들이 보다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바, 적어도 <이라크> 같은 책만큼은 소프트카바에 재생용지를 써서라도 보다 저렴한 판형으로 출간되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책이 좀 팔린다면, ‘보급판’을 고려해봄 직하다는 것이 나의 제안이기도 하다). 그랬더라면 15,000원이라는 정가가 3,500원까지 다운되지는 않더라도, 대학생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사볼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이라크에 3,000명의 한국군이 파병될 예정으로 있지만,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3,000명 정도는 이 책을 읽어야 하겠기 때문이다(나의 바람은 적어도 3만 명은 읽는 것이지만).

인간사랑에서 나오는 지젝 번역서들도 그렇지만, 나는 ‘하드카바’ 지젝은 反지젝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읽고 이해하는 한, 지젝은 고상하거나 귀족적이지 않으며 아카데믹한 것도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대중적이며 보편-지향적이다(그는 라캉=예수의 ‘바울’이고자 한다). 다만, 그가 구사하는 담론의 모태가 헤겔과 라캉이기 때문에 다소 어렵게 느껴질 따름이다(더구나 우리에겐 헤겔도 라캉도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걸 중화시키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 것인지(반복해서 말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일지 모른다)!

헐리우드 영화 등의 대중문화들을 주로 참조하는 다른 책들에서도 그렇지만, <이라크>를 말하기 위해서 주전자(‘항아리’) 일화를 끌어올 만큼 ‘서민적’이며 ‘대담한’(더불어 ‘비학술적인’) 지식인(그는 말의 본래적 의미에서 전형적인 ‘인텔리겐치아’이다)이 우리 시대에 과연 몇이나 되는가?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면, 지젝은 보다 대중화될 필요가 있다. ‘주전자’처럼 헤프게 빌려주고 받으며 ‘상식적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지젝이 원하는바,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려면 말이다.

국역본 <이라크>가 다소 ‘무겁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건 번역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제대로 된 번역이 오히려 ‘이상한’ 지젝 번역 시장에서 읽기에 무난한 번역서가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긴 하지만, (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쉽게 읽히는 번역이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예컨대, 10쪽에 “라캉의 ISR 삼항조”라는 얘기가 나오는바(몇 군데 더 나온다), 역자들은 ISR이 CIA만큼 독자들에게 친숙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매스컴에서 자주 나오는 WMD조차도 처음 나올 때, ‘대량살상무기’라고 풀어준 것에 비하면, ‘ISR’은 좀 불친절하다. “상상계-상징계-실재의 삼항조”라고 풀어주던가, 아니면 역자들이 쓰는바, “상상적인 것-상징적인 것-실재의 삼항조”라고 풀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ISR에서 책을 덮어버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게 농담만은 아닌 것이, 한때 인문서적에서는 ‘기표’란 말조차도 금기시 됐었다. 소위 교양 있는 독자들조차도 기호학(記號學)이 기호(嗜好)에 관한 학문이 아닌가라고 짐작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령, “기표 ‘유럽’에 되살려야 할 어떠한 차원이 있다면, 이 행위는 그 용어의 가장 감동적인 의미에서 ‘유럽적’이었다.”(45쪽)라고 할 때도 굳이 ‘기표 ‘유럽’’이란 말을 고집하느니 그냥 ‘‘유럽’이란 말’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덧붙여 ‘용어’도 그냥 ‘말’로 충분하다. 이런 건 물론 오역의 사례가 아니다. 다만, 번역에서 ‘발신자’ 지젝뿐만 아니라 ‘수신자’ 독자까지도 더 고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피력하는 것뿐이다...

제목과 관련한 얘기로부터 지젝은 현 이라크 정세(이건 세계 정세의 축약본이기도 한데)에 대한 자신의 개입/발언을 시작한다. 항아리 얘기를 보다 가벼운 주전자 버전으로 바꾸면, 프로이트의 ‘농담’은 이렇게 된다: (1)나는 당신의 주전자를 빌린 적이 없다. (2)나는 당신의 주전자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3)내가 당신에게서 주전자를 빌려왔을 때, 주전자는 이미 구멍이 나 있었다. 자연스런 삼단논법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2)는 (1)을 뒤집고(씹고), (3)은 다시 (2)를 뒤집는다(씹는다).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주전자의 ‘망가짐’을 ‘부정을 통해’(per negationem) 승인하는 대신에,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궤변이다.

이러한 궤변적 사례를 통해서 프로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기묘한(‘이상한’) ‘꿈의 논리’이며(이건 동시에 ‘부조리한 논리’이다), 이라크 공격에 대한 정당화 논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전쟁 반대론자들의 논리이기도 했다(9쪽의 각주2). 이 비일관적인(=부조리한) 논리에 일관성(=정합성)을 부여해주는 건, 즉 그러한 비일관성을 ‘봉합’하는 건 이데올로기인바, 지젝은 ‘전쟁의 얼굴’ 제시카 린치 일병의 사례를 통해서 이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상징적, 실재적 차원이 어떻게 얽혀있는가, 라캉식의 ‘매듭’을 구성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가 아닌 (전쟁의) 진리는 무엇인가?

추상적-기술적 비디오게임식 접근으로 요약되는 걸프전(1991)과 병사의 관점에서 ‘인간적 촉감’을 제공하는 종군기자들의 구체적 묘사로 특징지어지는 이라크전(2003), 즉 “추상적 디지털적 층위”와 “인간적 접촉이라는 층위” 사이의 ‘분리 자체’가 그 ‘진리’이다. 두 가지 층위(=차원)는 모두 ‘구체적 총체성’을 포착해내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똑같이 추상적이며, 사실 지젝이 자신의 이론적/실천적 개입을 통해서 구성/구축해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라크전의 ‘구체적 총체성’이다.

그러한 ‘구체적 총체성’에 이르기 위한 여정에서 지젝이 먼저 짚고 있는 것은 이 전쟁의 실재적인 이유이며, 그는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1)미국이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와 번역을 가져다 주고 있다는 진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 즉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 (2)미국의 헤게모니(=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단언하고자 하는 필요성(국역본에서는 ‘추동’). (3)이라크 석유에 대한 통제. 즉 경제적 이해관계. 이 세 가지 동기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지젝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핵심적인 건 (2)라고 본다.

즉 (국역본의 뒷표지에도 박혀 있지만) “새로운 세계질서의 좌표들에 말뚝을 박기 위해서, 예방적 차원에 대한 미국이 권리를 주장하고 그리하여 미국의 지위를 유일무이한 세계경찰의 지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이라크를 구실이나 본보기로 사용하는 것.”(14쪽) 말하자면, ‘시범-케이스’라는 것이다(미국은 시범케이스로서의 이라크가 없었더라면 이라크를 만들어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지는 이라크 국민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었으며, 우리 모두가 그 메시지의 “진정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인 표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를 읽으며 나는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유사-쟁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본론인 1장에서 지젝이 프랑스와 독일의 행태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쟁 반대, 파병 반대”라는 슬로건만이 도덕적인 선과 진보적 정치의식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그건, 만약에 우리가 파병을 철회할 경우 ‘우리는’ 이 ‘더러운’ 전쟁에 손을 담그지 않는 것이며, 도덕적 자존심을 보존하는 거라는 ‘민족의식’만을 일시적으로 만족시켜줄 따름이다. 미국 헤게모니라는 우산 아래 있는 한 우리는 이미 손에 구정물을 흠뻑 묻히고 있는 것이며 충분히 ‘더러워져 있다.’(지젝도 반복하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미국인이다!”) 그걸 망각/은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도덕적인 선이나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유럽은 무엇을 원하는가?”란 절에서 지젝이 페미니즘(‘여성주의’)의 교훈으로 끌어내고 있는 바는, 앞당겨 얘기하자면,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을 위한 첫걸음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부당하고 굴욕적인 것으로, 자신의 수동성을 행위에의 실패(러시아어는 ‘무능력’)로서 경험하는 것이다.”(51쪽)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혹은 가능한 것은 어쩌면 ‘대항’이 아니라 ‘굴욕’인지도 모른다.

한국이란 약소국의 자존/자립의 가능성은 강대국에 대한 대항의 ‘제스처’를 통해서가 아니라(‘反美’라는 구호는 전형적인 정치적 슬로건이다. 사자 우리에서 “나는 사자가 싫어!”라고 외치는 건 얼마만큼 ‘현실적’일 수 있을까?) ‘굴욕’을 통해서 얻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이 강행된다면, 우리는 좀더 빨리 한미동맹관계의 굴욕적인 ‘더러움’을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거꾸로 파병을 철회함으로써 혹 한미관계가 악화된다면, 오히려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요구가 더 강해질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 게 변증법 아닌가?

다시 서론. 지젝은 자신의 책이 점진적인 ‘추상’의 길, ‘구체적 총체성’을 향한 길을 따른다고 미리 안내하는바(그 ‘구체적 총체성’의 대척관계에 있는 것이 ‘거짓 구체성’이다), 그 문학적 모델로 닥터로우(1931- , 사진)의 걸작(국역본은 ‘대작’이라고 옮겼는데,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다. 6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을 ‘대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시인의 생애>(1984)를 들고 있는데, 그의 설명을 듣자면, 읽고 싶은 작품이다(닥터로우의 책이 번역돼 있는가?).

여하튼, 지젝이 반복해서 강조하는바, <이라크>는 이라크에 대한 책이 아니며, 이라크 위기와 전쟁 역시 이라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 모두에 관한 것이다(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이미 이라크인이다!”). 우리가 거기에 발을 넣고 빼고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의 철학자, 지젝이 보기에 순진한 환상, 혹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그는 어쩌면 유마경의 지혜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이야말로, 인식론이면서 동시에 무한책임의 윤리학이 아닌가!).

거듭 지젝이 강조하는 것은 이라크전의 ‘세계적 맥락’(=전지구적 컨텍스트)이다(‘세계적’이란 말은 ‘global’의 역어로 보이는데, 역자들이 이전의 ‘범역적’이란 역어를 고집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다). 사실 이 점만을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지젝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의 목록에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람들은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이지만(그리고 한국의 정치엘리트들), 그들이 이 책을 참조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어제(이미 어제이다) 낮에 모스크바에 와서 처음으로 ‘아마존’에서 '지젝'을 검색해보니까 <이라크>에 대한 독자리뷰가 한 편 떠 있었는데, 혹평에 가까웠다(별 2개). 지젝의 ‘빈곤한 어휘’(마이클 무어보다 빈곤한?)와 논증이 결여된 단언들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는데, 그렇듯 (계몽적인) 지젝을 안 읽어도 되는 (이미 계몽된) 독자들이 미국민의 다수였다면, 사실 <이라크> 같은 책 자체가 불필요하며 아예 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리고 1장. '이라크와 그 너머'인데, 첫번째 절은 “이라크 맥거핀”, 즉 맥거핀으로서의 이라크이고, 내용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23쪽에서 “나는 그들이 다음 백 년 동안 사담 후세인 제국의 유물을 파묻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23쪽)라는 CIA분석가 데이비드 케이의 말은 오역인 듯싶다. 문맥상 앞으로도 후세인의 유물(=WMD)를 찾는 데는 백 년의 세월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이라면, “유물을 파묻고 있을 것”이 아니라, “유물을 파헤치고 있을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논리상 말이다.

부시와 마찬가지로 그의 ‘푸들’ 블레어 역시 열렬한 크리스천인 모양인데, “부조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는 ‘진정한 기독교인’들의 슬로건이야말로, 내가 혐오해 마지 않는 것이다. (파병 찬성론자들의) 이라크 파병도 하나님의 뜻이고, (파병 반대론자들의) 파병 반대도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 ‘진지한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부조리함’ 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모양이니 ‘불경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따름이다(나는 차라리 '주전자'나 믿어야 할 모양이다). 가령, 부시의 “자유는 다른 나라에 선사하는 미국의 선물이 아니라 인류에게 내린 신의 선물이다”(39쪽)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지젝은 이러한 독실한 ‘신성모독’에 대해서도 분석/비판하고 있지만, 그와 별도로 나는 이런 족속들(=우리 인간들)을 신이 창조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공할 만한’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반 카라마조프식으로 말하자면, 혹 인간을 창조한 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수치심’ 때문에 진작에 자결하고 말았을 것이다(어디다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해서, 생각건대, 모든 ‘진지한 신앙’은 ‘진지한 이데올로기’일 따름이다. 민족에 대한 신앙도, 진보에 대한 신앙도.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신앙도(그 점에서 나는 지젝의 ‘유토피아주의’에 대해서도 유보적이다. 이건 3부를 읽고 나서 얘기해 보기로 한다)…

세계 정세, 특히 아랍권 정세에 눈과 귀가 밝지 않은 나로서는 지젝을 읽으면서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 중 하나는 “이라크에서의 사람 후세인 체제는 궁극적으로 세속적 민족주의 체제였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적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었다.”(29쪽)거나(그래서 오히려, 미국이 이라크 공격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전쟁 명분과는 다르게 오히려 조장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아라파트의 지배적 영향력을 잠식하려는 마키아벨리적 목표를 지닌 이스라엘이 최근까지도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것이 바로 그 하마스다.”(33쪽, 각주2)라는 것이 그런 정보들이다(反아라파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통적인 태도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한마디로 배울 게 많은 나라들이다!

 

 

 



새로운 세계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미국의 ‘제국-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덜됨’에 있다. “오늘날 미국에 대한 문제는, 그것이 새로운 세계 제국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는 것, 즉 그런 척하면서도 무자비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국가로서 계속 행동한다는 것이다.”(32쪽)라는 게 핵심이다(*그러니까 문제는 '제국'이 아니라 '민족주의'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세계화를 비판하는데, 그것은 세계화의 실상이 그 명칭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에 유럽연합의 한 불길한 결정이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채 통과되었다. 유럽연합 영토의 격리를 보증하고 따라서 이주자들의 유입을 방지하는 전유럽적 국경 경찰력을 창설하는 계획. 이것이 세계화의 진실이다.”(50쪽) 즉 상품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순환하지만, 인간들의 순환은 점점 통제되는 것이 그 진실이다(물론 이런 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지나친’ 세계화가 아니라 ‘모자란’ 세계화이다(그런 의미에서 지젝은 反세계화에 반대한다. 反세계화는 ‘모자란 세계화’와 공모적이다).

해서, ‘세계 제국’이니 ‘세계화’니 하는 것은 듣기 좋은 슬로건들에 불과하다(그러니 거기에 반대하는 슬로건들도 듣기 좋을 건 당연하다. 즉 그들은 공모적이다). ‘신자유주의’라고 얘기하지만, 그 경우에도 문제는 ‘넘쳐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부족한 자유주의’이다. 자유무역을 내세우지만, 그때 자유무역이라는 건 자국의 비교우위가 확실한 분야에 한정된다. 거꾸로, 조금이라도 불리한 분야의 경우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다(지젝은 의약품과 면화의 사례를 드는데, 덧붙여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철강 또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인데, 후세인의 독재를 타도하고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서 이라크전을 벌였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이라크의 진짜 민주화이며, 민주선거이다. 이러한 사정이 거꾸로 입증하는 바는, “사담의 이라크야말로 공식적으로 이미 세속국가였다는 점”이고, “반면 민주적 선거는 이슬람을 특권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36쪽).

‘구유럽’(럼스펠드의 표현) 독일과 프랑스 같은 “2순위 열강”의 이라크전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지젝은 매우 비판적인데, 이 역시 궁극적으로는 세계화에 대한 그의 시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많은 좌파들과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공유하는 ‘미국화’에 대한 거부는, 궁극적으로는, 프랑스 자신이 유럽에서의 헤게모니적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크고 작은 민족국가들 사이에서의 비중의 평준화는 세계화의 유익한 효과를 가운데 포함시켜야 한다.”(41쪽) 그가 보기에, 독일과 프랑스가 두려워하는 것은 유럽공동체의 ‘이원적 헤게모니’를 꿈꾸는 자신들이 세계 제국의 일원으로 서 “오스트리아, 벨기에, 혹은 룩셈부르크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리스가 우승을 차지한 ‘유로2004’에서처럼 축구로 치자면, 결승은커녕 8강의 문턱에도 오를지 못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젝은 암시적으로 한 “영웅과 겁쟁이의 이야기”를 드는바, 이러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구공산주의 국가들의 복잡한 정세, 아이러니컬하면서도 비극적인 정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민족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이 한탄하고 있는 새롭게 출현하는 사회-이데올로기적 질서는 ‘억압적 관용’과 부자유의 현상 양태로서의 자본주의적 자유라는 오래된 신좌파의 묘사처럼 읽힌다.”(44쪽)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뜻을 짐작할 수 있는데(즉 명쾌한 번역은 아닌데), 러시아어본을 참조해서 다시 옮기면 이렇다: “민족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이 불평해대는, 새로운 사회적-이데올로기적 질서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신좌파들이 과거에 이름붙인바 ‘억압적 관용’과, 부자유를 은폐하는 수단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자유라는 점은 운명의 아이러니이다.”(인용부호로 봐서는 ‘신좌파의 묘사’가 ‘억압적 관용’에만 걸리는 것인데, 확실치는 않다.) 아이러니라고 한 것은 ‘억압적 관용’과 ‘자본주의적 자유’라는 것이 대개는 보수주의 이념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즉 보수주의자들이 보수주의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는 것!

그런 상황 속에서 크로아티아의 겸손한 판사 이카 사리치(Ika Saric을 ‘이카 사릭’으로 음역하는 것은 오류이다. 대개의 동구어에서 ‘c’는 ‘ch’로 발음된다)는 대중적 지지 없이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위협 속에서도 1992년 유고 내전시의 범죄와 관련하여 미르코 노라치(역시 Mirko Norac는 ‘미르코 노락’이 아니라 ‘미르코 노라치’로 읽어야 한다) 장군과 그의 동료들(전우들!)에게 12년 형을 선고했다. 그가 지젝이 꼽은 ‘윤리적 영웅’이다. 반면에 ‘겁쟁이’의 사례는 이라크전 발발 이후에 슬로베니아 정부가 보여준 행태이다.

슬로베니아는 빌니어스(Vilnius) 선언에 서명함으로써 ‘신유럽’의 일부로서, 그리고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willing’은 ‘의지’란 뜻이 아니라 ‘자발적’이란 뜻이다. 군사용어로는 ‘의용군’이라고 할 때의 ‘의용’이다. 해서 ‘자발적 연합’이란 뜻이겠다. ‘자발적’이란 것은 미국의 공식적인 요청 이전에 미국을 ‘알아서’ 지지하고 나섰다는 의미이다)의 일부로서 행동했다. 처음엔.

하지만, 외무부(‘외무성’) 장관이 서명한 이후, 곧바로 부인하는 코미디가 일어났는데, “대통령과 다른 권위자들에게”(‘권위자’란 말도 적절한 역어가 아니다. ‘고위층 인물들’ 정도의 뜻이겠다) 자문을 구한 걸로 돼 있지만(‘자문을 구하다’는 ‘협의하다’란 뜻이겠다), 모두가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해서 미국은 지속적으로 사의를 표하는 공문을 보내오고 슬로베니아는 그러한 감사 표시에 매번 ‘저항’하는 코미디가 연출된 것. “미국의 압력과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슬로베니아 국민 다수 사이에서 절박하게 줄타기를 시도”한 결과였다(우리의 경우도 ‘영웅’보다는 ‘겁쟁이’의 사례에 곧 등록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제 “유럽은 무엇을 원하는가?”(“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프로이트적 질문의 패러디)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하기로 하자. 구공산주의권(‘후-공산주의 동유럽 국가’)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지젝은 ‘중산계급 서구 좌파’ 혹은 ‘강단좌파’의 행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며(그는 관념적인 좌파가 아니다), 이 절에서 그러한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하머바스(독일)와 데리다(프랑스) 등 대표적인 서유럽 지식인/철학자들의 ‘시국선언’이다(이 내용은 우리 언론에도 번역/소개된바 있다). 그 선언에서 그들은 유럽이 자신의 “윤리-정치적 유산”을 재단언할 힘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바, 지젝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왜나면, “우리가 미국 정치와 문명 속에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위험한 것으로 발견하는 것은 유럽 자체의 일부이며, 유럽적 기획의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50쪽)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유럽 자체의 왜곡된 거울이다.”(즉 미국이란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것은 유럽 자신의 얼굴이다) 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자기비판이다. “유럽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은 미국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한다.”(51쪽) 그것이 지젝의 단언이며, 이는 새로운 주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적 유산의 방어가 연대와 인권이라는 위협받는 유럽적 민주주의 전통의 방어에 국한된다면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유럽의 유산이 방어되기 위해서는 유럽이 스스로를 재창안해야 한다. 방어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방어해야만 하는 그 무엇을 재창안해야 한다.”(51쪽)

즉 한쪽에서는 우리의 ‘금송아지’를 보호/방어하기 위해서 피 흘리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그 ‘금송아지’를 열심히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유럽으로서는 자신의 ‘외설적 이면’으로서의 미국과 결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지만, 현재로선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이다.

지젝이 유럽에 대한 기대와 환멸을 표시하고 있는 것은 현 세계정세 속에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유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의 진정한 대립은 제1세계와 제3세계의 대립이 아니라, 제1, 3세계 전체와 남아있는 제2세계(유럽)의 대립이다.” 즉 미국이라는 제1세계(‘후근대적인 세계적 자본주의’)와 중국을 포함한 제3세계(‘전근대적 사회’)의 연합, 지하드(Jihad)와 맥월드(McWorld)의 연합으로서의 맥지하드(Mcjihad)에 저항할 수 있는, 그것에 “유효하게 동화시킬 수 없는 외래적 신체”는 “유럽적 근대성”이다(48쪽).

지젝이 기대하는 것은 미국(=초자아)과 제3세계(=이드) 사이의 합작이라는 현재의 ‘억압적 탈승화’ 국면에 대항하기 위해서 유럽이라는 자아(Ich)의 역량을 회복/확장하는 것이다. 자아, 코기토적 주체성, 근대성. 때문에 그는 미국-이라크 전쟁이 “미국과 유럽 사이의 최초의 전쟁”(52쪽)이라고 본다. 더불어 “오늘날 통합 유럽은 미국이 부과하길 원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주요한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현 시국의 관건은 장애물이 장애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겠다. 적어도 지젝이 판단하기에는…

06. 05.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젝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그간에 써놓은 페이퍼들과 관련자료들을 한 데 모아두기로 한다.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는 지난 2001년 'Radical Philosophy'(July/August )지에 실렸던 것은 필자는 숀 호머(Sean Homer) 교수이다. 우리에겐 <프레드릭 제임슨>(문화과학사, 2002)으로 소개된 바 있는데, 이념적 포지션상으로는 '제임슨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임슨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와 라캉이론의 접목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예단일 수도 있지만, 루틀리지에서 나온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자크 라캉>(2005)을 그가 쓰고 있는 걸 보면 근거 없는 예단은 아니다(이 시리즈는 도서출판 앨피에서 역간되고 있는데, <자크 라캉>은 아직 근간 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다. 참고로, <데리다>와 <프레드릭 제임슨> 등이 근간예정이며, 기대해볼 만하다. 니콜라스 로일의 <데리다>는 모스크바에서 완독했던 책이기에 더더욱 기다려진다).

마르크스와 라캉을 접목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제임슨/호머의 이론적 기획은 지젝의 그것(헤겔+라캉)과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며 당연히 서로의 주장에 대해 민감할 것이다(좌파의 적은 보통 우파가 아니라 또다른 좌파이다. 서로가 '유사-좌파'로 간주하는). 이 논문에서 숀 호머 또한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해서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이 이진경주의에 대해서 불편해 하는 걸 떠올려보면 되겠다). 그런 걸 고려하면 일독해볼 만하다. 번역문 뒤에는 원문을 옮겨놓았는데, 아쉽게도 전문은 아니다. 'Radical Philosophy'지에서는 일부만을 원문 서비스로 제공하는 듯하다.

 

 

 

 

번역 텍스트의 출처는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제3권 제1호(2001년 여름)이며 원제는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이지만, 부제를 이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는다. 역자는 김서영씨이며,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숀 호머 교수의 지도 아래 자크 라캉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젝의 내한 강연문집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철학과현실사, 2005)에 실려 있는 강연문 '신체 없는 기관'이 그의 번역이다.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 ― 지젝의 맑스주의에 대하여

 

-나는 신자유-민주주의 질서가 무한히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 생태학적 위기나 그 밖의 다른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파열될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매우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1997년 인터뷰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버쏘 출판사에서 나오는 '그것이 있던 곳'(Wo es War)이라는 그의 총서의 성향에 대해 질문 받았다. 그는 그 총서들에 대한 전반적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두 정통이론의 재건을 총서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답했다. 지젝에 의하면, “오늘날 필요한 것은 반 포스트 맑스주의적 시각과 결합된 엄격히 교조적인 라깡적 시각이다.”(*아래의 책들이 'Wo es War' 시리즈의 책들이다.) 

 

 

 

 

-“반 포스트 맑스주의적” 시각이라는 다소 불분명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지젝의 앞의 주장은 1990년대 초기의 가장 유행적이고 재치 있는 이론가에서 현대 문화연구의 ‘미운 오리새끼’로 역전되는 그의 작업의 이론적 그리고 정치적 행적을 명료하게 부각시킨다. 지젝의 포스트 맑스주의, 문화 다원주의 그리고 정체성 지향 정치에 반대하는 최근 논쟁은 어네스토 라클라우나 샹탈 무프와 같은 영국과 미국에 있는 그의 예전 동료들과 지젝 사이의 거리를 조명한다.(*라클라우는 지젝을 서구 지성계에 소개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서문 참조.) 

-얼마 전 피터 듀스가 지적했듯이, 지젝은 “국제무대에서는 ‘맑스주의’ 문화 비평가이고, 그의 고향에서는 민족적 성향을 띤 집권당인 신 자유당의 일원” 이라는 매우 애매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지젝의 모호한 입장은 한 순간은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맑스주의에 관심이 있는 문화 비평가이며 다음 순간에는 정통 맑스주의자로 변모하는 지젝의 국제적 연혁 또한 설명한다.

-본 논문에서 나는 정통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지젝의 논의가 얼마나 '정통적'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이 보다 더욱 중요한 질문인 엄격히 '교조적' 라깡주의와의 관계에 있어 이 입장이 얼마나 지속적인가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면서 동시에 맑스주의에 대한 지젝의 양가적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지젝에게 맑스주의는 그의 비평가들에 의해 언급된 이상으로 그의 글들에 구심점이 되어 온 듯 하며, 이 사실은 그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성향의 모호함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킨다.

-지젝이 말하는 맑스주의의 정확한 본질은 가늠하기가 어려운 반면, 지젝의 라깡에 대한 관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바로 이러한 그의 일관된 라깡주의에 의해 맑스주의의 정통적 이해의 가능성이나 명백히 동일시할 만한 정치적 과업의 실현이 배제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국제적 지성의 출현
-서유럽과 북미 학계에서 이룩한 슬라보예 지젝의 주목할만한 성공은 폄훼하기 어렵지만 한편 내게 그 성공의 당위성은 한번도 자명해 보인 적이 없다. 헤겔의 변증법, 알튀세르의 맑스주의 그리고 라깡의 정신분석을 독특하게 혼합하는 지젝의 방법은 처음에는 포스트 모더니즘, 퀴어이론과 포스트 식민주의 연구에 주력하는 영미 학자들의 풍토에는 그리 알맞지 않은 듯 하다.

 

 

 

 

-<정치적 무의식>의 제임슨이 아마도 유일하게 지젝과 비교될 수 있는 학자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매우 다른 학문체계를 함께 다루려는 제임슨의 시도는 포스트 맑스주의 좌파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아 왔다. 지젝에 대한 주목할 만한 긍정적 반응을 초래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는, 비록 같은 농담이 세 권의 책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지젝의 농담할 줄 아는 능력에 있다. 짚고 넘어갈 점은 그의 글을 대중화시킨 가장 주된 요인인 그의 초기 두 권의 저작―<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자끄 라깡의 이해>(1991)와 <당신의 증상을 즐기세요! 헐리웃 안팎의 자끄 라깡>(1992)―은 지젝의 가장 비정치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맑스와 맑스주의는 이 두 권의 저서들 어느 곳에서도 주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으며, 헐리웃의 주류 영화와 장르 소설들을 악명 높은 라깡의 불가해한 문장들을 설명하는데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명료히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일원으로 분류되었다. 어려운 이론과 대중문화를 접목시키는 능란한 솜씨와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명백한 관심은 그의 인기에 가장 주된 역할을 해 왔다. 로버트 미크리취가 말하듯 지젝은 “미국을 내부에서부터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외국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지젝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을 우리에게 다시 투영해(reflects) 주며 이것이 우리가 그를 즐겨 읽는 이유이다 (이것을 라깡은 역투영(in reverse)이라 할 것이다).” 내용면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형식면에서 본다면 지젝은 명백한 포스트 모더니스트이며 때때로 지젝 자신이 그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해석을 선호하는 듯 보인다.

 

 

 

 

-두 번째로, 지젝의 이론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관심에서 정치적으로 더욱 중요한 요인은 지젝의 글에 나타난 포스트 맑스주의를 이용한 이데올로기적 필터이다. 지젝의 글들 중 영어로 번역된 첫 저서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은 라클라우와 무프의 프로네시스 총서로 출판되었는데 그 총서의 발간사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듯이 프로네시스 총서는 반-본질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급진적 다원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좌파를 위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한다.

-어떤 면에서, 지젝의 글을 번역하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동유럽에서는 “실재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붕괴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연이어 일어났으며 서유럽에서는 서구 맑스주의의 최종적 소멸이 이미 완성되었거나 보증된 듯 했다. 반면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학계의 경향은 최고조에 이르러 그 기세가 의기양양했다. 좋은 예로 라클라우와 무프의 글에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의 결론에서 보여주듯 그들의 주장이 본질적으로 맑스주의적 논쟁에 근거한다는 어떤 종류의 단서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국내에는 대표적인 포스트-맑시스트로 잘 알려진 라클라우와 무페(무프)의 책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터, 1992)로 번역돼 있다. 얼마전에 나온 무페의 신간이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이다. 두 사람은 '급진적 민주주의'의 주창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오히려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해박한, '사회주의'정부의 반대자인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부터 <삐딱하게 보기>까지 이 순간을 조명했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의 서문에서 라클라우가 말하듯, 지젝의 포스트 맑스주의의 구호가 명료한 동조를 끌어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라클라우는 지젝의 이론과 슬로베니아 학파를 한편으로는 라깡주의에 연결시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 철학에 연결시키는 반면 (철학가로서의) 맑스나 '맑스주의적 구조주의' 이론가들과 '맑스주의 경향'의 영향에 대해서는 단지 지나가는 참조사항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라클라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포스트 맑스주의 시대에 민주사회주의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이론적 전망을 모색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적이다."

-이번에도 역시 지젝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견해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된 첫 독립 공화국임을 발표하는 전날 행해진 <급진주의 철학(Radical Philosophy)>을 위한 1990년 인터뷰에서 지젝은 그의 입장을 신흥 슬로베니아 자유당과 연관지어 명시하였다. 슬로베니아의 자유당은 유럽의 그 이외 지역에서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반대체제를 구축하고, 여성주의 운동과 생태학적 운동을 포함하는 새로운 사회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지젝에 의하면, 자유당의 특징은 재건된 공산당, 녹색당, 그리고 극우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그룹들을 연합시킨 정치적 경향인 인민 민족주의에 대한 그들의 반대에 있다. 다원주의, 생태학 그리고 소수의 권리 옹호를 이데올로기로 삼으며 자유당은 그들 자신들이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자유주의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포스트 맑스주의 경향을 식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이것은 샹탈 무프가 <정치적인 것의 회귀>에서 현대 정치학의 목표는 국가 체제의 전복보다는 민주주의의 실천과 그 제도들을 심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더욱 분명해 진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지젝은 신자유주의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데, 비록 지젝이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로 정의하고 자유당을 자유 시장 경제에 대립시키지만, 경제 개혁에 관해서 만은 '실용주의자'라는 것이다 - “만약 어떤 것이 효과가 있다면, 조금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맑스의 유령들
-지젝의 글 자체와 비교하더라도 라클라우의 서문에 맑스나 맑스의 영향의 긍정적 가치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인식도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제1장의 제목은 “맑스는 어떻게 증후를 발명하였나?”이며 여기서 지젝은 상품형태, 상품물신숭배,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잉여가치에 대한 일관된 분석을 제시한다. 즉, 지젝의 서론에서 더욱 분명해 지듯, 정신분석 용어를 빌면 일종의 억압의 순간이 있는 듯하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은 하버마스의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제외되어 있는 몇몇 고유명사들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하버마스의 앞의 책에는 라깡의 이름이 단지 다섯 번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도, 라클라우의 서문에 나타난 맑스의 이름처럼, 매번 다른 사람과 함께만 말해짐을 지적하며 지젝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바타이유, 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푸코에 대해서는 상당량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이 책이 어째서 라깡과의 직접 대면을 거부하는 것일까?” 지젝의 글에 익숙한 독자라면 예측할 수 있듯이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라깡이라는 이름보다는 오히려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너무나 깊이 억압되어, 심지어 언급되지조차 않는 이름인 알튀세르에서 찾아진다.

-다시 말하면 하버마스-푸코 논쟁은 사실 이론적으로 더욱 광대한 영역을 포함하는 알튀세르와 라깡의 조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알튀세르 학파의 갑작스러운 쇠퇴에는 이론적 패배라고 결론 내리기엔 미흡한 뭔가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다. 이것은 마치 알튀세르의 이론에 조급히 잊혀지고 '억압되어야 하는' 외상적 중핵이 존재하는 듯한데 이것은 이론적 망각증세(theoretical amnesia)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공동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조차 알튀세르주의는 지젝과 포스트 맑스주의가 분리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라클라우와 무프 자신들의 이론 형성이 알튀세르적 맑스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주장은 다소 억지인 듯 느껴질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 맑스주의 그리고 지젝의 맑스주의는 모두 알튀세르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라고 한정지을 수 있다.

-라클라우는 라깡이 포스트 구조주의자라는 명제나 헤겔의 독법 등에 대해 항상 지젝과는 다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에 지젝이 포스트 맑스주의에 대한 실질적 비판을 공식화 할 때, 그는 라깡이나 헤겔이 아닌 알튀세르에 관한 이해하기 힘든 침묵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젝에 의하면, 1980년대의 라클라우와 무프의 공동 연구는 주체라는 의미 있는 관점에서 그 전의 그들 각자의 작업들로부터의 이론적 후퇴를 보여주는데, 즉 <헤게모니와 사회전략> 이후에 발전되는 “주체의 위치들”(subject positions)이라는 개념은 라클라우의 초기 저작들에 “정교하게 설명되어 있는 알튀세르의 호명이론(theory of interpellation)”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게 됨을 암시한다.

-이론적으로, “주체의 위치들”이라는 개념과 정체성의 논증적 구조는 이데올로기적 호명에 의해 주체가 성립된다는 본질적으로 알튀세르적 논쟁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한 마디로, “주체-위치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입장으로서 채택하게 되는 사회 과정의 한 대리인으로서의 우리의 위치를 자각하게 하며, 그 특정 이데올로기적 동기에 참여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에서의 동일시는 알튀세르의 호명이론과 더불어 우리가 호명과정 이전에 항상-이미 주체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

 

 

 

 

-지젝에 의하면, “엄격한 의미에서 개인들은 주체가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항상-이미’ 주체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알튀세르가 인지했던 것처럼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주체가 되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항상-이미 주체인 우리가 어떻게 특정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주체가 되는가에 있다.(*그러니까 알튀세르의 '주체'는 지젝에게서 '주체화'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쉬운 설명은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참조.) 

-알튀세르의 이론에서 고려되지 않은 채 남겨진 것은 영상과의 동일시 이전에 존재하는 호명의 순간이다. 주체화의 이전에 일종의 기괴한 주체가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즉 라깡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주체의 중심에는 빈 공간, 틈이 있어 이것이 “주체 자신과 더불어 주체의 자아-정체성을 침식한다”. 지젝은 라클라우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호명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데 실패함으로써 초래되는 직접적 결과로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에 나타나는 급진적 차원의 이론적 축소를 들고 있는데, 이는 즉 “사회의 적대구조”라는 개념에 나타나듯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일관되고 통합된 실체로서 구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

-지젝에 의하면, 주체 위치들이라는 개념은 이 근본적인 외상적 경험을 배제하는 데에만 주력하며 이 사실은 포스트 맑스주의의 급진적 성격을 약화시킨다. 다시 말해 파편화된 주체성과 다수의 주체위치들에 관한 반 본질주의 이론은 후기 자본주의의 중심을 벗어나 불안정하게 파동치는 지구 단위 경제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주체에 대한 학문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문화 다원주의와 정체성 지향 정치의 비판
-1990년대 초에 지젝이 제기한 포스트 맑스주의의 담론 개념과 '주체의 위치 정하기'(subject positioning)에 대한 비판은 라깡적 개념인 결핍과 적대관계(antagonism)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었다. 지젝에게 중요한 점은 적대관계라는 개념이 주체와 사회적인 것 안에 있는 내적 한계와 균열을 보여준다는 데 있는데, 즉 이 한계에 직면한다는 것은 바로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체계의 불가능성에 대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또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주체들 사이에 나타나는 외적 적대관계에 대면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후자의 경우는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한계 내에서 일어나므로, 체계적인 차원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실질적인 정치적 위협도 야기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더욱 최근의 저서에서 지젝은 다소 비이론적인 어투로 주체의 위치 정하기, 문화 다원주의 그리고 정체성 지향 정치(identity politics)의 정치적 결과를 지적한다:

-사회적 상상력의 범위가 이제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궁극적 몰락을 상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묵묵히 ‘자본주의는 영속적 체계’임을 받아들인다고도 볼 수 있으므로, 비판적인 에너지는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기본적 동질성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들의 옹호를 위해 투쟁하는 데에서 그 대체적 분출구를 찾았다. 그래서 우리는 좌파적 투쟁을 통해 소수민족들, 동성연애자들, 그리고 그 외 다른 삶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반면 자본주의는 그 승리의 전진을 감행하고, '문화 연구'의 가면을 쓴 오늘날의 비판 이론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존재를 감추는 데 주력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에 활발히 동참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발전에 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의 주도적인 형태인 포스트모던 '문화비평'의 자본주의가 세계체제라는 언급은 '본질주의', '근본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경제를 비정치화하면 정치의 영역 자체가 비정치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전의 정치적 투쟁은 소외된 정체성들에 대한 인정과 차이에 대한 관용을 위한 문화적 투쟁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최근 지젝의 글에는 그 자신의 이론을 프레드릭 제임슨의 작업에 동일시하는 흔적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그는 본래의 정치학을 윤리학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고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결핍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문화 다원주의는 합병된 세계경제의 문화적 표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정체성 지향 정치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비정치화의 부자연스러운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유일한 길은 보편성의 차원과 맑스주의의 메시아적 차원을 (재)강조하는 것이다.

-지젝은 요즘 세상에서는 공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즉 편들기를 거부하는 행위는 자본의 국제적 논리를 찬성하는 것을 뜻하며 역설적으로 “'편들기'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효과적으로 ‘보편성’을 획득하는 유일한 길임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로 후퇴한 급진적 민주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제 삼의 길 ― 즉 현실에 작용하는 사상들의 정치이다.

-지젝에 의하면 정치 고유의 행동은 “단지 현존질서의 체계 안에서 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작용을 규정하는 체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의 지젝은 앞에서 언급되었던 1990년에 동유럽은 경제 재건에 효과적인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던 자유 민주주의적 '실용주의자' 지젝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자유주의와 지젝의 양가감정
-지금까지 포스트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그의 최근 정통 맑스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지젝의 글에 나타나는 일련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지젝의 작업들을 정말 '정통' 맑스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포스트 맑스주의자들 전부가 정말로 그토록 엉터리 독자일 수가 있을까? 1990년에 지젝은 <신좌파 평론(New Left Review)>에 이전 동유럽의 국가들의 분열과 신 민족주의의 부흥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이년 후 그는 <신독일 비평>에 '동유럽의 자유주의와 그 불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이는 지젝이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한 강의록에 근거하고 있다.

-이 중 첫 번째 글에서 지젝은 서유럽에 이상화되고 매혹적인 것으로 비춰지는 동유럽을 라깡의 ‘물 자체’(das Ding)―즉 주체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한 포착할 수 없는 미지의 사물―이라는 개념을 통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동유럽 안에서 부활하는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과 신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체제라는 과거로부터의 급작스러운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연속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민족적인-것”(national-Thing)의 출현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라는 상징 체계가 해체될 때 사회적인 것의 중심으로 귀환하는 실재계, 즉 외상적 중핵의 회귀를 뜻한다.

-지젝은 동유럽의 사람들이 왜 그들이 앞서 전복시킨 바로 그 억압적이고 견디기 힘들며 인종차별적인 체계를 다시 부과하는지에 대해 물으며 이에 대한 대답은 서양의 해설자들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원초적인 증오와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격세유전의 심리학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서 찾아 진다고 답한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은 계속되는 위기와 현존하는 조건들의 끊임없는 혁신 사이에 나타나는 '그 고유의 구조적 불균형'과 그 심부에 자리잡은 적대적 성질에 있다.”

-지젝이 말하듯, 민족 우월주의의 고조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과잉과, 자본의 과잉이 사회에 초래하는 고유의 불안정성, 개방성 그리고 갈등의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발칸에서 보여지는 고삐 풀린 폭력과 증오는 공산주의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고대 종족의 증오가 다시 폭발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그 자체에 내재한 폭력으로 볼 수 있다.

-지젝이 같은 주제에 대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조금 다른 성격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하게 되었을 때 그는 <신좌파 평론>에 발표된 글을 지적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좌파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요구 자체에 대해 거울상 역할을 한다: 즉 우리는 이를 통해 그 동안의 의심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실망하였으며 서서히 그들이 얻게 된 것뿐만 아니라 (사회 안전처럼) 잃어버리게 된 것들까지도 인식하게 된다고 말하도록 요구받는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이 덫에 걸려들어 좌파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었다: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가, 민주주의적 열광이 어떻게 해서 민족주의적 조합국가로 귀결되고 있는가 - 한 마디로 해서 이것은 우리에게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권리를 부여해줄 뿐이라는 원한에 가득 찬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여기서 명백히 해야할 점은 지젝이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원래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그는 전체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제 삼의 길” 지지자들의―우리가 보기에는 지젝 스스로 자신을 이 그룹에 포함시키고 있는 듯도 하지만―순진함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지젝은 서구의 맑스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비난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그들의 전공인 듯하다고 혹평하기도 하는데 그에 의하면 이것은 “자신의 성적 무능과 성적 실패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나서 느끼는 만족감과 섬뜩하다할 정도로 유사하다.”

-물론 우리는 모두 청중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며, 제임슨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약호를 사용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젝이 제시한 예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 이면의 심층 논리에 있다. 최근에 정치적으로 문제되는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다.

-1999년 봄, <신좌파 평론>은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에 대한 일련의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여기에는 나토의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는 타리크 알리, 에드워드 사이드, 피터 고완의 글들과 '이중 블랙메일에 대항하여'라는 제목 하에 나토와 세르비아인들 모두를, 특히 밀로세비치의 정권을 비판하는 지젝의 글이 포함되어 있다. 폭격에 대하여 반-나토, 반-밀로세비치의 입장을 취하는 지젝의 관점은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과 나토 모두에 각별한 동정심을 품고 있지 않은 서유럽 좌파에게 명백히 큰 매력으로 작용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 이중 블랙메일을 거부해야 한다면 (만약 나토의 공격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인종청소를 감행하는 밀로세비치의 프로토-파시스트 정권에 찬성하는 것이며, 만약 밀로세비치에 반대한다면 당신은 지구 단위로 전개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지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인종적 근본주의에 대항하는 개화된 국제적 개입과 새로운 세계 질서에 영웅적으로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대립이 그릇된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밀로세비치 정권과 같은 현상들이 새로운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증후’이며 그래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지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중 블랙 메일에 대항하여'의 결론에서 지젝은 “제삼의 길”이 블레어와 클린턴의 신-자유주의적 제삼의 길과 혼동되어서는 안되고 “폐쇄된 민족주의와 지구단위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악순환을 타파”하는 진정한 제삼의 길이어야 함을 간명히 주장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글이 <신좌파 평론>에 발표되기 전에 이미 인터넷상에 유포되었다는 것인데, 거의 모든 내용이 동일한 이 두 글에 나타나는 유일한 차이점은 좀더 확신 있는 어투의 '좌파적' 결론 이외에 하나의 중요 문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지젝이 제안하는 밀로세비치 문제의 대안은 영어권의 주도적 맑스주의 잡지라는 테두리 밖에서는 그다지 호소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분명한 좌파의 한 사람으로서 "폭탄공격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직 폭탄의 양이 '충분치' 않으며 그나마 이것은 모두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단락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지젝은 라깡이 <햄릿>과 논리적 시간의 문제에 대해 다룬 글을 참고하고 있다. 여기서 지젝은 사회적인 것 자체에 내재하는 고유의 균열과 적대관계로 규정되는 실재계의 불가능함을 암시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실재계의 외상을 지우기에 '충분한' 폭탄은 있을 수 없으며, 충분한 폭탄이 있다 하더라도 폭탄공격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실재계와의 대면은 언제나 어긋나므로 우리는 항상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기묘하게 스스로의 논지를 취소시킨다. 어차피 너무 늦게 도착될 것이라면 더 많은 양의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폭탄 공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젝의 대답은 명백히 “그렇다인 동시에 그렇지 않다”인 것이다!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저자가 의식적으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증후적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즉, 아무리 많은 양의 폭탄도, 그리고 폭탄이 투하되는 시간이 언제이건 모두 절대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복잡한 라깡적 견해와, 순진하고 표면적인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토의 공격이 더욱 강력하게 그리고 더욱 일찍 감행되어야했다는 주장 사이에는 현저한 마찰이 존재한다. 지구단위 자본과 전체주의를 극복한 제삼의 길을 향한 솜씨 있는 접근방법은 사라지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나토가 세르비아인들에 대항하여 더욱 ‘일찍’ 그리고 더욱 ‘군사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위의 문장은 지젝이 동일시할 만한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제시하며, 또한 동시에 이것은 지젝의 심부에 내재한 민족주의로 인해 불투명해 진 그의 정치학을 증후적으로 드러낸다. 위의 문장이 ‘유일하게’ 인터넷에 실린 글로부터 제거된 문장이라는 거북한 사실은 지젝이 위의 문장의 정치적 반향, 즉 그 문장의 라깡적 독법뿐 아니라 순진한 정치적 독법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시한다. 사실, 이 문장은 전체 글의 어조를 완전히 바꾸며, 이것은 이 논문뿐 아니라 발칸의 국가들에 대한 지젝의 최근 글들의 다수에 명백하게 나타난 반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정체성 지향 정치가 지구단위 자본의 논리적 표현이라는 긴 인용문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이 인용문 직후에 지젝은 “문화 다원주의적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허상”에 대해 좌파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찰하는데, 비록 그가 '한 쪽의 편을 들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젝에 의하면 이로부터 내려져야 하는 역설적 결론은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자유주의적 문화 다원주의와 대중적 근본주의 모두를 거부하는 좌파 '비판이론가들'이며 그들은 지구단위 자본주의와 인종적 근본주의의 공범관계를 명백히 인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쉽게 주디스 버틀러, 라클라우 그리고 포스트 맑스주의를 좌파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에 우리가 묻게 되는 논리적 질문은 만약 우리가 이미 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였다면 자유주의와 지구단위 자본주의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여야 하는가이다. 벤 왓슨의 최근 논평을 바꾸어 말하자면 지젝에 관련된 문제는 그를 과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보다는 그의 어떤 주장을 심각하게 고려할 것인가에 있다.

실재계의 귀환
-1990년의 인터뷰에 이어 1993년에 다시 <급진주의 철학> 지젝의 인터뷰를 다루었는데 이 두 번째 인터뷰의 어조가 첫 번째와 매우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그는 자유 야당의 정치적 안건은 여전히 민족주의의 폐쇄성에 대항하여 개방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제안하는 반면, 종래의 포스트 맑스주의적 담론인 헤게모니, 접합(articulation), 담론 투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다:

"나는 라클라우의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데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단순히 표준적 자유 민주주의 게임의 수정본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그가 이상할 정도로 자본주의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이다. 즉 급진적 민주주의는 그의 허수아비인 것이다."

-이전의 지젝이 그의 반대 입장을 새로운 사회 운동들과 동일시했던 반면 최근 그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자본 자체의 모순들과 근본적 적대관계에 대한 투쟁이라는 더욱 시급한 관심으로부터의 이탈로 이해하고 있다. 더욱이 때때로 지젝은 여전히 정체성 지향 정치의 적법성을 받아들이는 한편―이것은 우리가 정체성 지향 정치가 근본적으로 사회변혁을 초래하리라는 바람을 포기하는 한에서만 적용된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성적 주체성의 새로운 형태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해방과업과 사회 변혁에 반대하는 작용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새로운 전략과 새로운 정체성들을 생성하는 푸코적 실천은 후기 자본주의의 주체성 게임을 즐기는 [매우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이전에 유고슬라비아였던 곳에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 후, 세 번째로 벌어진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의 더욱 잔인한 전쟁 끝에, 그리고 삼 년 간의 경제 개발이 수행된 후에 지젝의 글에 나타나는 정체성, 철학 그리고 문화의 섬세한 짜임은 마침내 실재계라는 부동의 바위, 다시 말하면 자본의 경제 논리에 직면한 듯 하다.

-지젝의 글에서 실재계는 그 의미가 다양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범주이다. 이는 또한 그의 입장과 고전적 맑스주의, 즉 정통 맑스주의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실재계는 명백히 ‘적대관계’라는 라클라우와 무프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실재계의 대상에 대한 정확한 정의: 실재계는 존재하지 않는 원인이고 항상 왜곡되고 전치되는 방식으로 일련의 효과 속에서만 존재한다. 만약 실재계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바로 이 사실이 일련의 효과들을 통해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그들의 ‘적대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실제계의 논리를 발전시켜 처음으로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에 적용하였다: 적대관계란 바로 그러한 불가능의 핵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종류의 한계를 뜻한다: 이것은 오직 일련의 효과들을 통해 소급적으로(retroactively) 구성된다. 적대관계는 모든 효과들에서 벗어난 외상의 지점으로서 그것은 사회 영역이 폐쇄되는 것을 저지한다.

-라클라우와 무프에 의해 주장되었듯이 우리는 여기서 적대관계란 변증법적 또는 결정론적 모순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명확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젝 또한 그의 역사주의에 대항한 논쟁에서 실재계를 알튀세르의 부재 원인(absent cause)으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정의와 연결시켰다.

-상징계는 '소거'(barred) 되었으며 의미 사슬은 본질적으로 비일관적이고 '전체가 아니며' 빈 공간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상징화에 저항하는 이 내재된 장애물이 바로 상징계와 실재계 간의 거리를 유지해 주며 상징계가 실재계 안으로 '침몰'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궁극적으로 실재계를 상징계와 관련짓는 주요 개념은 '원인'이다: 실재계는 상징계의 부재 원인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실재계는 지구단위 자본에 내재된 논리와 연관되었다. <난제>의 서문에서 지젝은 근래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 고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재난은 우리 시대의 실재계에 육신을 제공한다: 자본의 공격은 인간성의 존속을 위협하며 특히 세상의 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그러나 지젝의 맑스주의를 이해하는 데 곤란한 점은 그의 실재계에 대한 라깡적 해석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젝에게 실재계라는 라깡의 개념은 그의 작업을 포스트 맑스주의와 고전적 맑스주의 ‘모두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포스트 맑스주의가 정치적 갈등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특수성을 자본에 내재한 고유의 모순 같은 하나의 결정 층위로 환원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반면 라깡의 정신분석은 완전히 그 반대의 견해를 가진다.

-라깡의 관점에서 보면 현존하는 갈등들의 다원성과 특수성은 하나의 심급(審級)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다. 즉, 그것들은 실재계와의 불가능하며 외상적인 대면에 대한 동일한 반응인 것이다. 그러나 실재계를 맑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모순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라깡의 실재계는 칸트의 '물자체'(Thing-in-itself)와는 달리 모든 상징화에 저항하므로 주체나 사회가 참아 내기에 너무나 외상적인 것이다. 실재계는 근본적으로 주체와 사회의 심부에 있는 틈 또는 공백이며 주체의 통일성과 사회의 연대성을 저지하는 불가능의 순간이다:

-그러므로 실제계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단단한 관통 불능의 핵인 ‘동시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론적 일관성을 가지지 않는 순수한 정체불명의 실체이다 ... 실재계는 어떠한 종류의 상징화를 위한 시도도 좌절되는 바위이며 우리의 모든 가능한 세계들(상징적 우주들)에 항상 일관되게 존속하는 견고한 중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태가 매우 변덕스러워서 실패한 상태에서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후에만 흔적으로 지속되며 우리가 그것의 긍정적 특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로버트 미크리치에 의하면 실재계는 그 최종 분석에서 드러나는 헤겔의 순수한 “사유물”(Thing-of-thought)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역사적 현재의 구조를 가리키는 헤겔의 개념 속에서 <관념성>을 강조하는 것은 실재계에 고유한 역설을 망각하는 것이다. 실재계는 상징계를 유지시키는 동시에 그 기반을 약하게 하고 혼란시킨다. 이것은 부재하는 원인인 동시에 그 또한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지젝은 무산계급과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지젝에 의하면 맑스주의의 역사적 독창성은 그 이론이 계급과 계급투쟁의 체계적 역할을 자본의 논리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데 있다. 라클라우는 계급갈등 자체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것을 단지 잠재적 정체성과 차별성의 연쇄 안에서 가능한 하나의 주체 위치로 간주하며, 게다가 그는 이 입장이 현대 사회에서는 점차 쇠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지젝에 의하면 계급투쟁은 단순히 동등하게 중요한 일련의 투쟁들 중 하나의 사회적 적대관계가 아니라 “이 특수한 적대관계는 '나머지에 대해 우월하므로 이것과의 관계에 따라 그 이외의 투쟁들에 서열과 영향력이 부과된다. 즉, 이것은 모든 나머지의 색채에 영향을 미치는 광선과 같아서 그들의 특성을 변형시킨다'.” 다시 말하면, 계급 대립은 오늘날의 정치적 주체들과 정치적 갈등의 분화와 증식 속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맡게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은 모두 지구단위 자본 안에서 전개되는 “계급 투쟁”의 직접적 결과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지젝의 계급 투쟁의 중요성에 대한 확인과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에 대한 다원적 평가는 환영받게 되어있다. '정치적' 쟁점들은 우리가 그의 '계급 투쟁'이라는 말의 의미를 고찰할 때 제기된다. 즉 계급투쟁이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영역의 최종적 연대를 저지하는 “어떤 한계와 순수한 부정성 그리고 외상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논의하게 될 때 일어난다.

-라깡의 관점에서 주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기호에 의해 지배되는 주체이다: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를 상징하며 주체는 상징의 사슬에 존재하는 ‘틈’(breach)이다. 주체는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주체는 “세상에 무 대신 유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실재계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무산계급에 대한 맑스의 이론은 이러한 “실체 없는 주체성”의 완벽한 예를 제시해 준다:

"'소외'라는 역사적 과정과, 상품 생산의 '유기적' 물질적 조건들의 지배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는 노동력의 정점으로서의 무산계급 (무산계급의 이중 자유: 그는 모든 물질적-유기적 속박에서 벗어난 추상적 주체성을 대표하는 동시에 그는 가진 것을 박탈당하므로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그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맑스의 착오는 무산계급의 혁명을 통해 주체와 실체의 변증법적 화해―즉 반소외의 과정과 생산과정의 투명화―가 이루어 질 것임을 가정한 데 있다. <부정 안에 머물기>에서 지젝은 맑스의 “유물론적 역전”(materialist reversal)에 반대하여 헤겔의 변증법을 옹호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헤겔의 철학보다 맑스의 철학이 오히려 더 자폐적 체계이다. 그는 맑스의 무산계급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인 것이 전체성과 투명성을 획득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폐쇄의 순간이 구체화 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반해 헤겔의 이론에서 체계의 핵심에 위치하는 부정적인 것은 사회의 투명성이라는, 어떠한 종류의 소위 이데올로기적 시각도 부정한다.

-지젝은, “맑스주의에 의한 '헤겔철학의 유물론적 역전'이 일세기 이상 논쟁되어 온 후 이제 마침내 맑스에 대한 헤겔주의적 비판이라는 역전의 가능성이 필요한 시대가 된 듯 하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헤겔이 “절대적 관념론자”라는 맑스의 비판은 바로 그가 거부한 존재론의 전치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이는 “맑스주의 과업에 내재된 불가능성”의 증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 긍정적이며 또한 동시에 부정적이다?
-지젝에게 라깡의 실재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계기이다. 그것은 통합되고 일관된 정체성을 위조해 내려는 어떠한 종류의 시도도 저지하므로 이에 의해 정통 맑스주의적 반응의 가능성이 배제된다. 실재계는 주체성의 핵심에 있는 결여이며 사회 구성의 기반을 이루는 빈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것으로든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듯 보인다. 버틀러와 라클라우에 대하여 벌인 지젝의 논쟁에서, (내가 버틀러와 라클라우의 특수한 프로젝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좌파가 어떻게 특정 무대와 정치적 의제를 구성하고 체계화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버틀러는 비록 그것이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정한 정치적 투쟁에 참여해야 하며 그것이 단순히 그러한 종류의 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논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라클라우는 민주주의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람시적 “진지전”(war of position)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라클라우에 의하면 지젝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젝이 세계화의 차원에서의 정치라는 개념에 대해 한번도 분명히 정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담론은 고도로 세밀한 라깡적 분석과 충분히 해체되지 않은 고전적 맑스주의 사이에서 분열증적으로 파편화되어 있다.”

-라클라우와 버틀러 모두 지젝에게 필요한 것은 계급과 계급투쟁이라는 고전적 맑스주의 개념들의 포기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문제가 지젝의 일관된 라깡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 프로젝트가 어떠한 종류의 긍정적 내용도 내포하지 못하고 정치적 행위가 이의나 반대로 축소되는 것은 바로 라깡의 개념인 실재계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 때문이다. 드니스 기강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젝은 일종의 개념적 내용이나 비판적 진실을 가장한 어떤 종류의 입장을 채택하는 다른 문학이론가들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근본적으로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지젝은 반-자본주의적 선택을 취해 왔다.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는 자유주의와 새로운 사회 운동에 의해, 그리고 1990년대 초에는 생태학적 위기의 가능성에 의해 표현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이러한 입장은 지구단위 자본의 논리에 대항하는 것이 되었으며, 이제 그것은 <나약한 절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독교의 “급진적” 정통성에서 발견된다. 이것을 정통 라깡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정통 맑스주의라고 하는 것은 억지일 것이다.

 It's The Political Economy, Stupid! On Zizek's Marxism

I have a very traditional Marxist belief that the new liberal-democratic order cannot go on indefinitely, that there will be a moment of explosion, probably caused by some kind of ecological crisis or whatever - and that we must prepare ourselves for that moment.1

In a 1997 interview Slavoj Zizek was asked about the orientation of his series of books for Verso, Wo es War. He responded that, while he had no overall plan for the series, its guiding principle was the rehabilitation of two orthodoxies. `The fact is', remarked Zizek, `that the strictly dogmatic Lacanian approach combined precisely with a not-post-Marxist approach is what is required today.'2 Notwithstanding the rather coy reference to a `not-post-Marxist' approach here, Zizek's programmatic statement underscored an increasingly evident theoretical and political trajectory in his work, a trajectory that has spectacularly reversed his status as the most fashionable and mercurial theorist of the early 1990s to the b?e noir of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Zizek's recent polemics against post-Marxism, multiculturalism and identity politics have only served to highlight the distance that now exists between him and his previous collaborators in the UK and USA, Ernesto Laclau and Chantal Mouffe.3 As Peter Dews pointed out some time ago, Zizek has always maintained a peculiarly ambiguous political profile, `marxisant cultural critic on the international stage, member of the neo-liberal and nationalistically inclined governing party back home'.4 It seems to me, however, that the ambiguity of Zizek's position also extends to his international profile - as a postmodern, post-Marxist, cultural critic one moment, orthodox Marxist the next. In this article I want to begin to untangle something of Zizek's ambivalent relationship to Marxism; for example, just how `orthodox' is Zizek's orthodoxy and, more importantly, how consistent is this position with a strictly `dogmatic' Lacanianism. Marxism, I suggest, has always been much more to the fore of Zizek's work than many of his commentators have cared to acknowledge, and his endorsement of post-Marxism has been equivocal at best. On the other hand, the precise nature of Zizek's Marxism has always been more difficult to fathom, while his thoroughgoing Lacanianism appears to rule out the possibility of any orthodox `understanding' of Marxism, or, indeed, the formulation of a clearly identifiable political project.

The formation of a global intellectual

It is difficult, I think, to underestimate the extraordinary success of Slavoj Zizek in Western European and North American academic circles, and yet it has never seemed self-evident to me as to why this should be so. Zizek's idiosyncratic hybrid of Hegelian dialectics, Althusserian Marxism and Lacanian psychoanalysis would not at first appear to be particularly congenial to an Anglo-American academic climate preoccupied with postmodernism, Queer theory and post-colonial studies. The Jameson of The Political Unconscious is perhaps the only comparable figure who has tried to yoke together such theoretically incommensurable intellectual systems, and he has been unremittingly criticized by the post-Marxist Left for the attempt.5 A significant part in Zizek's overwhelmingly positive reception lies, to be sure, in his ability to tell a joke - more often than not the same one in three different books. Significantly, the two early books that did more than anything else to popularize his work - especially 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 (1991) but also Enjoy Your Symptom! Jacques Lacan in Hollywood and Out (1992) - are Zizek's least political works.6 Marx and Marxism do not figure prominently in either of these two volumes, and Zizek's facility to elucidate the notoriously impenetrable prose of Lacan through mainstream Hollywood film and genre fiction located him squarely with the postmodernists. The effortless shift from high theory to low culture and his undoubted love affair with North American popular culture have been crucial to his popularity. Zizek, as Robert Miklitsch writes, `appears to know the United States from the inside (as it seems only foreigners can do). This Zizek - the one we love to read because he reflects our own popular-cultural vision of the United States back to us (in reverse, as Lacan would say).'7 At least in terms of form, if not content, Zizek can be read as a thoroughgoing postmodernist and at times it would appear that Zizek himself has encouraged this reading of his work.8

The second, and certainly politically more significant factor relating to Zizek's reception in the UK and the USA was the ideological filter of post-Marxism.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1989), the first of Zizek's works to be translated into English, was published in Laclau and Mouffe's series Phronesis, which, as its opening statement makes clear, is committed to anti-essentialism, poststructuralist theory and `a new vision for the Left conceived in terms of a radical and plural democracy'. In a sense, Zizek's work could not have been translated at a more opportune moment. In Eastern Europe, the historic collapse of `actually existing socialism' and the break-up of the Soviet Union was gathering pace, while in Western Europe the final demise of Western Marxism seemed assured if not already complete. The intellectual currents of postmodernism and post-Marxism were at their most vitriolic and triumphalist. Any sense, for example, that Laclau and Mouffe remained within an essentially Marxian problematic, as with the conclusion of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985), was expunged from their work.9 From The Sublime Object to Looking Awry, Zizek, the former dissident under `socialism' who also knew American popular culture better than most Americans, encapsulated the moment. It is hardly surprising, therefore, to see Zizek so unequivocally co-opted to the banner of post-Marxism as in Laclau's `Preface' to The Sublime Object. Laclau situates the work of Zizek and the Slovenian school in relation to Lacanianism on the one hand and classical philosophy on the other, but with only a passing reference to Marx (as a philosopher) and the influence of a certain `Marxist-structuralist' theorist and `Marxist currents'. Laclau concludes: `For all those interested in the elaboration of a theoretical perspective that seeks to address the problems of constructing a democratic socialist political project in a post-Marxist age, it is essential reading.'10

Again, Zizek did much to encourage this view in interviews. As in his 1990 interview for Radical Philosophy, which took place on the eve of Slovenia declaring itself the first independent republic from the federation of Yugoslavia, and in which Zizek discussed his position within the newly formed Slovenian Liberal Party. In contrast to the neo-liberalism dominant in the rest of Europe, the Liberal Party in Slovenia formed part of the opposition bloc and was closely aligned with new social movements, in particular the feminist and ecological movements. What was distinctive about the Liberals, remarked Zizek, was their opposition to populist nationalism, a political tendency that united all the other major political groups, from the reformed communists and Greens to the far Right. With their ideology of pluralism, ecology and the protection of minority rights, the Liberals saw themselves as drawing on a tradition of radical democratic liberalism. It is not difficult to discern here the post-Marxist agenda, in so far as it is articulated in Chantal Mouffe's The Return of the Political, and according to which the goal of contemporary politics is not so much to overturn the structures of the state but to deepen and extend the reach of democratic practices and institutions.11 There is, however, one key area in which Zizek is in tune with neo-liberalism; despite defining himself as a Marxist and locating the Liberal Party in opposition to free-market economics, he observes that with regard to economic restructuring he is a `pragmatist' - `If it works, why not try a dose of it?'12

06. 05. 27.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인 2006-05-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읽고 싶지만, 오늘 박사입학시험을 본 관계로 너무 피곤해서, 우선 퍼갔다가 나중에 읽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페이퍼, 도움이 많이 됩니다 ^^

기인 2006-05-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박사시험을 보면서 조금 황당했던 것. 제2외국어과(?) 서문, 불문, 노문, 독문 분들은 전공과 제2외국어 시험을 보는데, 자기 전공어학을 선택할 수 있더라고요. 노문 분들이 노문 선택하고, 중문 분들이 중문 선택하더라고요....;;;
-_-; 거의 사전 없이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국문학 전공인지라, 그럼 우리도 한국어를... 이라고 중얼거려 보았을 따름입니다.

로쟈 2006-05-2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문과 교수 채용에서도 영어강의 가능자를 우대한다고 하니 부득불 신경을 쓰셔야겠죠.^^ 어학이야 여유만 있다면 많이 할수록 좋은 거 아닐까요? 천년만년 살 수 없어서 문제이지만... 그리고 사실 계급문학을 공부할라치면, 러시아쪽 문헌을 참고해야 할 필요성에 맞부닥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이왕이면 러시아어도...

기인 2006-05-2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여유가 많으면, 정말 불, 독, 노, 중어 다 하고 싶습니다만..
학부 때는 고전취향(?)이라서 한문과 라틴어를 했고, 이제 일어를 파고 있습니다.
언어... 참 문제에요... 쩝;;

로쟈 2006-10-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두 맑스주의는 <신체 없는 기관>에서도 드러나지만 전혀 상이하고 대립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난 김에 작년봄 '런던북리뷰'(LRB)에 게재됐던 지젝의 기고문 '두 개의 전체주의'를 옮겨온다. 우리말 번역은 '프로메테우스'(05. 03. 12)에 '지젝, 두 개의 전체주의'란 제목으로 게재된 김택님의 것이며, 그 아래에 원문을 이어붙였다. '전체주의'에 대해 사고하고자 할 때 유익한 참조가 되어주는 글이다.  

 

-(2005년) 2월 3일자 신문에 작은 기사 - 물론 헤드라인 기사는 아니었다 - 하나가 실렸다. 갈고리 십자를 비롯한 여타의 나치 상징물을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그 대부분이 구사회주의 국가 출신인 일단의 보수적인 유럽의회 의원들은 공산주의적 상징물 역시 동일하게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낫과 망치는 물론 붉은 별도 금지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쉽게 기각되지 못했다. 이것은 유럽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생겨난 깊은 변화를 말해준다.

 

 

 


 
-지금까지도 스탈린주의는 나치즘이 배격당하듯이 간단히 거부되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는 스탈린주의의 끔찍한 면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Ostalgie)는 아직도 허용되고 있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영화는 만들 수 있지만 ‘굿바이 히틀러!’라는 영화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왜일까? 다른 예를 들어보자. 독일에서는 구동독의 혁명가와 당가를 담은 많은 CD가 팔린다. ‘친구이자 동지인 스탈린’이나 ‘당은 항상 옳다’같은 노래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치 노래 모음집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우화적 수준에서도 나치와 스탈린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스탈린주의적 인민재판에서 고발당한 사람이 공개적으로 그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나치는 유태인에게 독일 민족을 향한 유태인의 음모에 어떻게 연루되었는가를 고백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탈린주의는 스스로를 계몽주의의 전통에 놓인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전통에 따르면 진리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타락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치에게 있어 유태인의 죄악은 유태인의 생물학적 구성의 한 요소였다. 따라서 그들의 죄를 증명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를 진 것이다. 


 
-스탈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허상을 살펴보면 보편적 이성은 역사적 진보라는 무정한 법칙의 외양을 통해 객관화된다. 지도자를 포함한 모두는 그러한 법칙의 노예이다. 나치의 지도자는 연설을 한 후에는 꼿꼿이 서서 조용히 박수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경우 의무적으로 치는 박수는 지도자의 연설의 맨 마지막에 터져나온다. 그리고 지도자는 일어서서 같이 박수를 친다.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사느냐 죽느냐(Be or Not to Be)>를 보면 히틀러는 나치식 경례에 대해 그의 손을 들고는 ‘나 자신 만세(Heil myself!)!’라고 외친다. 이것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순수한 유머이다. 하지만 스탈린은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스스로에게 만세를! (Heil himself)’이라고 외쳤다.

-스탈린의 생일날 죄수들은 어두침침한 굴락에서 스탈린에게 축하전보를 전송했다. 하지만 유태인이 아우슈비츠에서 히틀러에게 그러한 전보를 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밋밋한 차이는, 그러나 스탈린 치하에서는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인민이 역사적 이성에 종속된 자들로서 함께 만나는 공간을 지배이데올로기가 상정했음을 입증해준다. 스탈린 치하에서 모든 인민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평등했던 것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목숨을 걸고 소련 사회주의의 ‘관료주의적인 변형’과 투쟁을 벌인 것과 같은 것을 나치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나치 독일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나치즘’같은 것을 주장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보수적인 역사학자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 같은 사람들이 중립적인 위치를 취하며 공산주의에 적용된 동일한 기준을 왜 나치에게 적용해서는 안 되느냐고 질문하는 온갖 시도의 결점과 편향이 놓여있다. 그는  “만약 하이데거가 나치와 밀회한 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루카치와 브레히트 같은 자들은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스탈린주의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용서를 받는가?”라고 묻는다. 이러한 입장은 나치즘을 볼셰비즘이 먼저 저지른 실천에 대한 반응이자 반복으로 보는 것이다. ‘원초적 죄악’은 공산주의가 먼저 저질렀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놀테는 소위 수정주의논쟁에서 하버마스의 주요한 논적이었다. 그는 나치즘을 20세기의 전무후무한 죄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곧 나치즘만이 비난받을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나치즘은 공산주의 이후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나치즘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다. 또한 나치즘의 공포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에서 이미 자행된 것을 단순히 복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했다. 놀테의 생각은 공산주의와 나치즘이 ‘동일한 전체주의적 형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양자 간의 차이는 다만 구조의 역할 하나하나를 채우고 있는 구체적 행위자들이 다르다(‘계급의 적’ 대신 ‘유태인’)는 데에 있다.

 

-보통 자유주의자들은 놀테가 나치즘을 상대화하여 공산주의라는 악의 이차적인 메아리로 축소시켰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극단적인 사악함 사이의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이러한 비교를 집어치운다고 해도 놀테가 말한 요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즉 나치즘은 실제로 공산주의적 위협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다시 말해 나치즘은 실제로 계급투쟁을 아리안 종족과 유태인 간의 투쟁으로 대체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이트적 의미로 페어시붕(Verschiebung, 보통 정신분석학에서 ‘전치’로 번역됨)을 뜻하는 ‘대체’라는 말이다. 나치즘은 계급투쟁을 인종적 투쟁으로 대체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진정한 성격을 흐리게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나치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무엇이 변화했는가를 보는 것은 형식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나치의 이데올로기가 신비화된다. 즉 정치적 투쟁이 인종적 충돌로 화하며, 사회구조에 내재적인 계급적대는 아리안 공동체의 조화를 교란하는 이질적인 (유태인의) 육체들의 침입으로 환원된다. 놀테의 주장처럼 각각의 경우에 형식적으로 동일한 적대의 구조가 자리 잡는 것이 아니다. 대신 적의 장소가 상이한 요소(즉 계급이 인종으로)로 채워진다. 인종 간의 차이나 충돌과 달리 계급 적대는 완벽하게 사회적 영역에 귀속되어 버리며 그 구성부분이 되고 만다. 결국 파시즘은 계급간의 본질적 적대를 제거한다.

-그렇게 되면 10월 혁명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가가 분명하게 부각된다. 그 고유한 해방적 잠재력의 측면은 물론 그것이 스탈린주의라는 결과를 산출한 역사적 필연성의 측면 모두에서 말이다. 우리는 스탈린주의적 숙청이 어떤 의미에서 파시스트의 폭력보다 더 ‘비합리적’이었다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 숙청의 과도함은 스탈린주의가 파시즘과 달리 인증된 도착적 혁명의 예라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흔적이다. 파시즘 치하에서는 - 나치 독일에서조차 - 정치적 반대파로 활동하지만 않는다면 ‘평범한’ 일상의 삶의 외관을 유지하며 생존하는 것이 가능했다(물론 그가 유태인이 아닐 경우에).

-1930년대 후반의 스탈린 치하에서는 반대로 아무도 안전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돌연 고발당하고 체포되어 반역자로 총살당할 수 있었다. 나치즘의 비합리성은 반유태주의, 즉 유태인의 음모에 대한 믿음에 ‘농축’되어 있었다. 반면 스탈린주의의 비합리성은 사회전체에 퍼져있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나치 경찰 조사관은 반국가 행위의 증거와 흔적을 밝히려 한 반면, 스탈린의 조사관은 기쁜 마음으로 증거를 조작하고 음모를 발명해 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아직도 우리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만족할만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스탈린주의라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완벽한 분석을 생산하지 못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물론 몇몇 예외가 있긴 하다. 프란츠 노이만 Franz Neumann의 <베헤모쓰 Behemoth>(1942)는 3개의 거대한 세계체계- 뉴딜 자본주의, 파시즘, 스탈린주의-가 관료주의적이고 범지구적으로 조직된 동일한 ‘관리’사회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책 중 가장 열정이 식어 있는 <소비에트 맑시즘(Soviet Marxism)>(1958)은 이상하게도 헌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지 못한 채 소비에트의 이데올로기를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0년대에 몇몇 하버마스주의자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현상들의 출현을 반영하여 시민사회 개념을 공산주의 레짐에 대한 저항의 장소로 가공하려 시도했다. 흥미는 있지만 스탈린적 전체주의의 특수성에 대한 총체적인 이론은 아니었다. ‘현존사회주의’라는 악몽을 분석하는 것은 삼가면서 해방의 기획이 실패한 조건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맑스주의적 사유의 학파들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그들이 파시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진짜 외상(trauma)과 감히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침묵의 자백이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좌파 ‘전체주의’와 우파 ‘전체주의’ 모두가 정치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이에 대한 불관용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인간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나쁜 것이라는 ‘순수’ 자유주의적 태도는 선험적으로 오류이다. 한쪽 편을 들어 파시즘이 근본적으로 공산주의보다 ‘나쁘다’는 주장을 해야 한다. 합리적으로 두 개의 전체주의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함축적이든 명시적이든 파시즘이 덜 사악한 것이었으며 공산주의적 위협에 대한 이해할만한 반응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2003년 9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무솔리니는 히틀러나 스탈린 혹은 사담 후세인과 달리 누구도 죽이지 않았노라고 격렬히 외쳤다. 진정한 추문은 베를루스코니의 연설이 그의 특이한 성격에서 나온 표현이기는커녕 반파시스트 공동체에 기반하는 전후 유럽의 정체성에 대한 약정을 바꾸려는 진행형의 기획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유럽의 보수주의자들이 제기하는 공산주의의 상징물에 대한 금지 요청이 이해될 수 있는 정확한 맥락이다.

The Two Totalitarianisms

Slavoj Zizek

A small note – not the stuff of headlines, obviously – appeared in the newspapers on 3 February. In response to a call for the prohibition of the public display of the swastika and other Nazi symbols, a group of conservative members of the European Parliament, mostly from ex-Communist countries, demanded that the same apply to Communist symbols: not only the hammer and sickle, but even the red star. This proposal should not be dismissed lightly: it suggests a deep change in Europe’s ideological identity.

Till now, to put it straightforwardly, Stalinism hasn’t been rejected in the same way as Nazism. We are fully aware of its monstrous aspects, but still find Ostalgie acceptable: you can make Goodbye Lenin!, but Goodbye Hitler! is unthinkable. Why? To take another example: in Germany, many CDs featuring old East German Revolutionary and Party songs, from ‘Stalin, Freund, Genosse’ to ‘Die Partei hat immer Recht’, are easy to find. You would have to look rather harder for a collection of Nazi songs. Even at this anecdotal level, the difference between the Nazi and Stalinist universes is clear, just as it is when we recall that in the Stalinist show trials, the accused had publicly to confess his crimes and give an account of how he came to commit them, whereas the Nazis would never have required a Jew to confess that he was involved in a Jewish plot against the German nation. The reason is clear. Stalinism conceived itself as part of the Enlightenment tradition, according to which, truth being accessible to any rational man, no matter how depraved, everyone must be regarded as responsible for his crimes. But for the Nazis the guilt of the Jews was a fact of their biological constitution: there was no need to prove they were guilty, since they were guilty by virtue of being Jews.

In the Stalinist ideological imaginary, universal reason is objectivised in the guise of the inexorable laws of historical progress, and we are all its servants, the leader included. A Nazi leader, having delivered a speech, stood and silently accepted the applause, but under Stalinism, when the obligatory applause exploded at the end of the leader’s speech, he stood up and joined in. In Ernst Lubitsch’s To Be or Not to Be, Hitler responds to the Nazi salute by raising his hand and saying: ‘Heil myself!’ This is pure humour because it could never have happened in reality, while Stalin effectively did ‘hail himself’ when he joined others in the applause. Consider the fact that, on Stalin’s birthday, prisoners would send him congratulatory telegrams from the darkest gulags: it isn’t possible to imagine a Jew in Auschwitz sending Hitler such a telegram. It is a tasteless distinction, but it supports the contention that under Stalin, the ruling ideology presupposed a space in which the leader and his subjects could meet as servants of Historical Reason. Under Stalin, all people were, theoretically, equal.

We do not find in Nazism any equivalent to the dissident Communists who risked their lives fighting what they perceived as the ‘bureaucratic deformation’ of socialism in the USSR and its empire: there was no one in Nazi Germany who advocated ‘Nazism with a human face’. Herein lies the flaw (and the bias) of all attempts, such as that of the conservative historian Ernst Nolte, to adopt a neutral position – i.e. to ask why we don’t apply the same standards to the Communists as we apply to the Nazis. If Heidegger cannot be pardoned for his flirtation with Nazism, why can Lukács and Brecht and others be pardoned for their much longer engagement with Stalinism? This position reduces Nazism to a reaction to, and repetition of, practices already found in Bolshevism – terror, concentration camps, the struggle to the death against political enemies – so that the ‘original sin’ is that of Communism.

In the late 1980s, Nolte was Habermas’s principal opponent in the so-called Revisionismusstreit, arguing that Nazism should not be regarded as the incomparable evil of the 20th century. Not only did Nazism, reprehensible as it was, appear after Communism: it was an excessive reaction to the Communist threat, and all its horrors were merely copies of those already perpetrated under Soviet Communism. Nolte’s idea is that Communism and Nazism share the same totalitarian form, and the difference between them consists only in the difference between the empirical agents which fill their respective structural roles (‘Jews’ instead of ‘class enemy’). The usual liberal reaction to Nolte is that he relativises Nazism, reducing it to a secondary echo of the Communist evil. However, even if we leave aside the unhelpful comparison between Communism – a thwarted attempt at liberation – and the radical evil of Nazism, we should still concede Nolte’s central point. Nazism was effectively a reaction to the Communist threat; it did effectively replace class struggle with the struggle between Aryans and Jews. What we are dealing with here is displacement in the Freudian sense of the term (Verschiebung): Nazism displaces class struggle onto racial struggle and in doing so obfuscates its true nature. What changes in the passage from Communism to Nazism is a matter of form, and it is in this that the Nazi ideological mystification resides: the political struggle is naturalised as racial conflict, the class antagonism inherent in the social structure reduced to the invasion of a foreign (Jewish) body which disturbs the harmony of the Aryan community. It is not, as Nolte claims, that there is in both cases the same formal antagonistic structure, but that the place of the enemy is filled by a different element (class, race). Class antagonism, unlike racial difference and conflict, is absolutely inherent to and constitutive of the social field; Fascism displaces this essential antagonism.

It’s appropriate, then, to recognise the tragedy of the October Revolution: both its unique emancipatory potential and the historical necessity of its Stalinist outcome. We should have the honesty to acknowledge that the Stalinist purges were in a way more ‘irrational’ than the Fascist violence: its excess is an unmistakable sign that, in contrast to Fascism, Stalinism was a case of an authentic revolution perverted. Under Fascism, even in Nazi Germany, it was possible to survive, to maintain the appearance of a ‘normal’ everyday life, if one did not involve oneself in any oppositional political activity (and, of course, if one were not Jewish). Under Stalin in the late 1930s, on the other hand, nobody was safe: anyone could be unexpectedly denounced, arrested and shot as a traitor. The irrationality of Nazism was ‘condensed’ in anti-semitism – in its belief in the Jewish plot – while the irrationality of Stalinism pervaded the entire social body. For that reason, Nazi police investigators looked for proofs and traces of active opposition to the regime, whereas Stalin’s investigators were happy to fabricate evidence, invent plots etc.

We should also admit that we still lack a satisfactory theory of Stalinism. It is, in this respect, a scandal that the Frankfurt School failed to produce a systematic and thorough analysis of the phenomenon. The exceptions are telling: Franz Neumann’s Behemoth (1942), which suggested that the three great world-systems – New Deal capitalism, Fascism and Stalinism – tended towards the same bureaucratic, globally organised, ‘administered’ society; Herbert Marcuse’s Soviet Marxism (1958), his least passionate book, a strangely neutral analysis of Soviet ideology with no clear commitments; and, finally, in the 1980s, the attempts by some Habermasians who, reflecting on the emerging dissident phenomena, endeavoured to elaborate the notion of civil society as a site of resistance to the Communist regime – interesting, but not a global theory of the specificity of Stalinist totalitarianism. How could a school of Marxist thought that claimed to focus on the conditions of the failure of the emancipatory project abstain from analysing the nightmare of ‘actually existing socialism’? And was its focus on Fascism not a silent admission of the failure to confront the real trauma?

It is here that one has to make a choice. The ‘pure’ liberal attitude towards Leftist and Rightist ‘totalitarianism’ – that they are both bad, based on the intolerance of political and other differences, the rejection of democratic and humanist values etc – is a priori false. It is necessary to take sides and proclaim Fascism fundamentally ‘worse’ than Communism. The alternative, the notion that it is even possible to compare rationally the two totalitarianisms, tends to produce the conclusion – explicit or implicit – that Fascism was the lesser evil, an understandable reaction to the Communist threat. When, in September 2003, Silvio Berlusconi provoked a violent outcry with his observation that Mussolini, unlike Hitler, Stalin or Saddam Hussein, never killed anyone, the true scandal was that, far from being an expression of Berlusconi’s idiosyncrasy, his statement was part of an ongoing project to change the terms of a postwar European identity hitherto based on anti-Fascist unity. That is the proper context in which to understand the European conservatives’ call for the prohibition of Communist symbols.

06. 05. 27.

 

 

 

 

P.S. 현대 전체주의론의 모체가 되는 책이 12월에 출간됐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이 그것이다. 지젝의 '두 개의 전제주의'론과 대비해서 읽어봄 직하다.(*그리고 드디어 지젝의 전체주의론이 번역돼 나왔다. <전체주의가 어쨌다고?>(새물결, 2008). 'Wat's up?'시리즈의 하나로 바디우의 <사도 바울>과 함께 나란히 출간됐다. 굿뉴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인 2006-05-2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요즘 일제 말기에 대해서 논문을 쓰고 있어서, 전체주의에 대해서 계속 고심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파시즘과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은 물론 같으면서도 다른 문제라서 이것저것 새롭게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합니다.

로쟈 2006-05-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좋은 참고문헌을 읽게 되시면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