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주말마다 연재되는 '글로벌 책읽기'는 몇 주전부터 찾아 읽는 코너이다('세계의 책' 범주에 딱 들어맞는 연재이기도 하다). 이번주에 다루어진 책은 우리에게도 임지현 교수와의 대담 <오만과 편견>(휴머니스트, 2003)을 필두로 하여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된 바 있는 사카이 나오키이다('국민주의 비판'이 그의 주된 이론적 화두이다). 그의 신작이 <일본/영상/미국 - 공감의 공동체와 제국적 국민주의>인 모양인데, 얼른 소개되었으면 싶은,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다. 나는 소개기사나 챙겨두도록 한다.

중앙일보(07. 10. 06) 영화도 제국주의의 숨겨진 무기였다

20세기는 미국의 시대였다. 미국적 보편주의는 미국산 대중문화를 매개로 확산, 보급되었다. 특히 헐리웃 영화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의 정치적 작용을 도마 위에 올린다. 예컨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인 신문기자와 중국·유럽 혼혈의 홍콩 여성의사의 사랑을 그린 영화 ‘모정(慕情)’(1955)은 그 해 골든글로브 국제이해 공헌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중국여성 역으로 백인 여배우 제니퍼 존스를 등장시킨 것은 오로지 타인종과의 육체적 접촉을 금기시하는 ‘양식 있는’ 백인관객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속에서 동양인 여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의 눈에 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그 점에서 그녀는 미국인 해군장교에 버림받고 스스로 자결하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일본인 여성 ‘초초상’의 후예이다. 여기에는 여성은 백인 남성의 ‘인지’를 통해서만 자기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남성(서양)우월주의가 작동한다. 반면, 비서양인 여성의 호의를 얻기 위해 백인 남성이 새로운 자기정체성을 만드는 연애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저자에 의하면, 식민지 상황의 국제 연애를 그린 영화의 압도적 다수는 식민지지배 질서를 전복할 수 없는 여성의 종속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생산해왔다. 다시 말해서, 20세기에 만들어진 인종간 연애영화는 국제관계의 알레고리 그 자체이며, 이 경우 영화는 국제간 권력관계를 획정하고 추인하는 장치가 된다. 1940년 일본에서 만들어져 중국 및 동아시아 각지에 배급된 영화 ‘지나(支那)의 밤’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저자는 일본인 남성과 중국인 여성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가 남경학살(영어로는 ‘남경의 강간the Rape of Nanjing’으로 일컬어진다)의 3년 후에 만들어진 사실에 주목한다. 강간은 강제적인 종속을 의미하며 피지배자의 의지에 대한 폭력적인 침해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양국 남녀를 낭만적인 연애관계 속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일본의 중국 지배가 양자 간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정상적이고도 제도화된 정치현실이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관점을 적용하면,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축소하고자 하는 일본 보수층의 태도 역시 ‘강간이 아닌 연애로서 식민지 역사를 구성하고자 하는 의도’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또 ‘반전 영화’로 알려져 있는 ‘디어 헌터’가 실은 미국(서양)이 비서양세계에 행사한 폭력의 역사를 부인하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집단 심성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미국인에게 ‘러시안 룰렛’과 같은 비인간적 고문을 강요하는 베트남인을 등장시킴으로써 ‘피해자 의식’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에 의한 공감을 구축함으로써 국민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국민적 ‘반전영화’라 할 수 있는 ‘버마의 하프’ (1956) 역시 사카이식 비판적 감수성의 여과지를 거치면 일본판 ‘디어 헌터’가 된다.



한편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미국의 헤게모니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내전의 상처라는 시각으로 접근한 제4장에서 내내 유지되어왔던 비판적 사유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은 아쉽다. 그 역시 일본인 지식인으로서 숙명처럼 직면해야 하는 이른바 ‘제국의 원죄의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전후 일본과 한국의 민족주의가 미국의 패권주의와 공범관계에 놓여있다는 저자의 관점은 자위대를 ‘타위대’로 표현하는 등 더러 극단적인 주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철저한 국외자적 감수성을 토대로 영역을 가로지르면서 현존하는 일본·미국의 국민주의 및 식민주의적 정치·문화현실에 대해 비판을 전개하는 저자의 작업은 ‘밖으로부터의 사유’에 취약한 국내 인문학계에 의미있는 자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윤상인_한양대 교수)

07.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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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kim 2008-01-10 17:45   좋아요 0 | URL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들이 제국주의적 징후를 드러낸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책이 있었군요^^ 참고되겠슴다^^
 

컬처뉴스에서 오랜만에 출판기획자 이재원씨의 '인문학서평'을 옮겨온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6&title_down_code=002&article_num=8445). 서평 대상은 조르주 소렐의 <폭력에 대한 성찰>(나남, 2007)이다. 책의 출간소식은 지난 7월에 페이퍼로 올려놓은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398654). 아래는 아마도 그에 대한 가장 자세한 리뷰가 아닐까 싶다.

 

컬쳐뉴스(07. 10. 05) 폭력이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사회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실패했기 때문에, 그 관리권은 이제 박탈되어야 마땅합니다. 노동계급의 1백50만 명이, 나머지 노동계급 사람들을 포섭해서 합세시켜 가지고 여러분으로부터 관리권을 빼앗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용주 여러분, 그것이 바로 혁명입니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시죠.”

미국 소설가 잭 런던(1876~1916)의 『강철군화』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부르주아계급의 사교클럽인 필로머스 클럽에 초대를 받자마자, 자신의 연인 애비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고용주들을 흔들어 놓는 데는 실패했었지요. 당신은 단지 그들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돈주머니를 위협할 거예요. 그건 그들의 원시적인 본능의 밑뿌리까지를 뒤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어니스트는 맨 앞에 인용한 것처럼 말했고, 결국 고용주들을 뒤흔들어 놓는 데 성공한다.



『폭력에 대한 성찰』의 지은이 조르주 소렐(1847~1922)은 사상계의 런던, 아니 어니스트라고 할 만하다(공교롭게도 『폭력에 대한 성찰』과 『강철군화』는 모두 1908년에 출간됐다). 소렐이 이 책을 쓴 목적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의회사회주의자들,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부르주아계급, 궁극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은 미래의 혁명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박애주의에 얼이 빠져 있는 유럽의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옛 활력을 되찾도록 해주는 유일한 수단”임을 노동계급 자신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1908년은 노동총연맹(CGT)이 아미앵 헌장을 발표해 기존 정당의 존재를 부정하고 직접행동에 의한 사회혁명 실현, 노동조합에 의한 생산과 분배의 조직을 선언한 지 2년이 되던 해이다. 요컨대 프랑스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힘이 부쩍 성장하던 해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폭력에 대한 성찰』은 『강철군화』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성장해가던 사회주의운동의 자신감이 반영된 저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성찰』이 ‘지금’의 우리에게 흥미로운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에서 말하는 ‘폭력’이 현대 사상들의 ‘폭력’ 개념을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현대’란 대략 1968년 이후의 시기로서, 학문적으로는 구조주의 이후의 시대를 지칭한다. 1968년은 신좌파 운동이 전세계를 휩쓸던 해이자 온갖 도시 게릴라 단체들의 등장을 부추긴 해이기도 하다. 요컨대 민권운동이나 플라워무브먼트 등으로 대변되는 비폭력이든, 독일의 적군파나 이탈리아의 붉은여단으로 대변되는 폭력이든 폭력/비폭력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이 전면에 부각된 해인 셈이다.

1968년경부터 구상을 시작해 1970년 그 결실을 책(국내에는 『폭력의 세기』로 소개되어 있다)으로 낸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폭력(violence)과 권력(power)을 확연히 구분한다. 권력은 곧 폭력이므로 그에 맞서는 폭력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신좌파 활동가들과 이론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아렌트는 권력을 인간의 행동 능력에 근거한 무엇이라고 해석한다. 즉, 아렌트에게 권력이란 언제든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제휴하고 행동할 때 생겨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이미 정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이와 같은 인간의 능력에 조응하는 한 권력이란 영원히 파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렌트가 이와 같은 폭력과 권력의 구분을 무시한 채 폭력을 옹호하는 좌파 사상가들의 선조로 지목한 인물이 바로 소렐이다. 그러나 소렐이 말하는 폭력(더 정확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은 이와 다르다. 혹은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다면성을 갖고 있다.

이 점은 소렐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하고 있는 총파업을 일종의 ‘신화’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소렐에게 신화로서의 총파업은 거대한 사회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의 대의가 어김없이 승리할 전투의 이미지로 마음속에 그려보는 임박한 행동, 혹은 불특정한 시점에서 그려보는 어떤 미래에 대한 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로서의 총파업이 가져올 효과는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눈앞의 결과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장기적 영향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즉, 소렐에게 폭력이란 아렌트가 비판하는 강제력/무력(force)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소렐이 말하는 폭력이란 프랑스의 맑스주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1901~1991)가 말하는 ‘불가능의 가능’(L’impossible­ - ­possible)과도 유사한 기능을 한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 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또 다른 형태로 가능해지는 그 무엇이 곧 ‘불가능의 가능’인데, 르페브르가 즐겨 예로 드는 것은 유토피아 사상이다.

예컨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없는’[ou-]+‘장소’[toppos])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 사상은 분명 불가능한 것을 향한 열망이지만,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이 개념은 1968년 프랑스 5월 운동 당시의 구호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을 요구하자”를 통해 대중화됐다). 따라서 소렐은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대혁명의 진정한 결과가 혁명 초기에 가담자들을 열광시켰던 매혹적 청사진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사리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청사진이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신화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화를 역사의 흐름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모든 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전체로서의 신화 자체이다”라는 주장을 염두에 두면 소렐이 말하는 폭력은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이 말한 바 있는 ‘순수 수단’(reine Mittel)으로서의 폭력, 즉 ‘신적 폭력’과도 비슷하다.

앞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아렌트가 폭력을 권력과 구분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이라는 수단을 써도 무방하다(그리고 이때의 폭력은 정당한 수단이 된다)는 당대 좌파들의 인식을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럴 때의 폭력이라도 그것이 수단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벤야민의 질문을 바꿔서 말해보자면, 억압적이라고 판명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이든, 그에 맞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이든 둘 다 수단적 폭력일 뿐이다.



그러나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은 수단이긴 수단이되 ‘목적 없는 수단’이다. 즉, 신의 폭력이란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나약한 인간이 그것을 허구적으로 이해하고자 그 사건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폭력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신의 의지나 목적 같은 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소렐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이나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은 특이한 사건 자체, 혹은 그것의 출현이다. 그래서 소렐은 총파업, 벤야민은 혁명이라는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다.

결국 소렐이 말하는 폭력은 그 라틴어 어원인 ‘활력’(vis)에 더 가까운 것이다. 무릇 생명력을 지닌 생물이라면 모두 지니고 있는 그 활력 말이다. 어니스트의 사자후가 필로머스 클럽의 고상한 양반들을 들쑤실 수 있었던 것, 또한 소렐의 주장에 당대의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의회사회주의자들까지 불편해했던 것은 어니스트와 소렐이 노동계급의 활력을 전면에 부각했기 때문이다. 필로머스 클럽의 회원들(혹은 당대의 지배계급)이나 의회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그것은 길들어져야할 것이었지 분출해야 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렐의 폭력론이 무솔리니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러시아에서는 혁명적이었던 미래주의가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과 결합하게 된 것과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였을까?(이재원_출판기획자)

07. 10. 07.

P.S. '폭력'이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짐작할 수 있다시피 방대한 참고문헌이 존재한다. '20세기의 정치적 폭력'으로 시야를 좁히더라도 견적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때문에 갈피를 잡기가 어려울 수 있는데, 이 경우 사카이 다카시의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이 그래도 요긴한 로드맵이 되어준다(http://blog.aladin.co.kr/mramor/1486267, http://blog.aladin.co.kr/mramor/1538039 등의 페이퍼 참조). 특이하게도 벤야민의 '폭력론'과 이에 대한 데리다의 읽기를 생략하고 있는 게 흠이지만(저자는 벤야민의 폭력론을 언급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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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 뒤랑의 주저 <상상력의 인류학적 구조들>이 출간된 김에 관련서들의 리스트를 꼽아본다. 품절된 책이 많군...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질베르 뒤랑 지음, 진형준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38,000원 → 36,100원(5%할인) / 마일리지 1,140원(3% 적립)
2007년 10월 07일에 저장
구판절판
상상력의 위대한 모험가들- 융, 바슐라르, 뒤랑 - 상징과 신화의 계보학
송태현 지음 / 살림 / 2005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7년 10월 07일에 저장
절판
상상적인 것의 인간학:질베르 뒤랑의 신화방법론 연구
진형준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4,000원 → 3,600원(10%할인) / 마일리지 200원(5% 적립)
2007년 10월 07일에 저장
품절
뒤랑 전공자의 입문서. 기억에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다. 지금은 다 절판됐지만 저자의 평론집들에서도 뒤랑의 상상력 이론에 대한 해제들을 읽을 수 있다.
상상력의 과학과 철학
질베르 뒤랑 지음 / 살림 / 1997년 12월
5,000원 → 4,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5% 적립)
2007년 10월 07일에 저장
품절
소개된 뒤랑의 이론서들이 생각만큼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건 바슐라르도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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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퍼슨웹 주최의 북포럼에 패널로 참여해 작가 장정일씨와 흥미로운 만남을 가졌다. 화제는 <공부>(램덤하우스, 2006)와 <장정일의 독서일기7>(랜덤하우스, 2007) 두 권의 책이었고 나의 몫은 "단순한 작가 강연회나 독자와의 대화 수준이 아닌 독특한 지점의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는데, 어젯밤에 KBS에서 지난 1월에 방영된 'TV, 책을 말하다'란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다시 보면서(이 방송분에서 작가의 답변은 <독서일기7> 말미에 수록돼 있다) <공부>에 대해 '재탕' 질문을 던지는 건 별로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작가 장정일의 지난 20년'에 대한 독자로서의 감회부터 먼저 적기 시작했는데, 토론문은 그걸로 그냥 분량이 다 차버렸다(하기야 오전에 쓴 것이니 더 쓸 시간도 없었다). 그걸 약간 간추려서 옮겨놓는다. 

 

먼저, 이 자리에 패널로 초대해주신 퍼슨웹과 북포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책’이나 ‘공부’라면 늘 접하는 것이고(“당신이 그거 말고 잘 아는/잘하는 게 뭐있어?”라는 게 자주 듣는 소리죠!) 특히 오늘 독서토론의 대상이 평소 제가 즐겨 읽고 좋아하는 작가 장정일 선생님이라고 해서 제 역량과는 무관하게 초대에 흔쾌히 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가볍게 시작하겠습니다. 가볍게 시작하자면 개인사부터 들추게 되는데(^^), 사실 장정일의 첫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부터가 ‘파격’이 아니었나요?(게다가 이 시집은 ‘김수영문학상’ 수상 작품집입니다. 수상자의 면면을 보자면 장정일은 이성복, 황지우의 뒤를 잇는 ‘우리시대의 시인’이었던 것이죠). 그때가 저로선 대학 1학년 때인데 ‘근엄한’ 시들만 읽어오다가 이런 시를 맞닥뜨렸을 때의 ‘쾌감’은 요즘 다시 맛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시는 이런 식이었지요.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그렇게 해서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로 마무리되는데,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이 보다 더 유익한 시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장정일은 제게 문학의 모든 아우라를 제거한 말 그대로 ‘포스트모던’ 시인이었습니다(제 생각에 장정일은 시작(詩作)의 패러다임을 ‘시쓰기’에서 ‘타이핑하기’로 바꾼 ‘혁명가’입니다). 앞에 적은 이성복, 황지우의 ‘모더니즘’과 비교해보아도 그 차이는 확연합니다(*작가의 흥미로운 전언에 따르면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실린 몇몇 시편들 덕분에 북한에서 '장정일'은 '반미시인'으로 문학사에서 거명되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시인 장정일을 언제나 <무림일기>(1989)의 시인 유하와 나란히 떠올리게 됩니다(장정일 & 유하). 두 사람은 진작에 ‘시의 종언’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연찮게도 두 사람은 모두 시를 떠나게 됩니다(한 사람의 소설은 자주 영화화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영화를 만드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도 친연성은 없지 않네요). 


어쨌든 처음 두 권의 시집 이후로 저는 장정일의 책을 대부분 사들여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게 80년대말 90년대초인데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작가는 장정일도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였죠. 개인적으로 매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은 두 작가여서 언제나 두 사람을 짝으로 떠올리게 됩니다(장정일 &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도 유행이었지만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중에 <독서일기>를 통해서만 간접독서를 하게 됩니다. 해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쿤데라-하루키-장정일’이란 계열을 떠올리게 되는데 앞의 두 사람은 노벨문학상의 단골 후보 아닙니까?(장정일은 “내 소설을 쓰레기”라고 토로하지만, 개인의 기억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은 좀 다른 것이죠.)

 

 

 

 

 

 

 

 

 

 

21세기가 시작하자 ‘행복한책읽기’란 출판사에서 ‘우리시대의 인물읽기’라는 기획서를 내는데, 그 첫권이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2001)였습니다(그 이전에 <작가세계> 1997년 봄호가 ‘장정일 특집’이었습니다). 장정일 문학에 관한 아주 유익한 자료가 되는 책이고 저는 바로 사서 읽은 책입니다(그 사이에 ‘거짓말 사건’, <내게 거짓말을 해봐> 때문에 빚어진 필화가 있었는데, 분량상/시간상 생략합니다. 이때의 프레임은 ‘장정일 & 마광수’입니다. 이른바 ‘사회적 공모에 의해 암살’된 ‘수난자 장정일’인 것이고, 그가 마광수에 비유한 표현을 빌면 “우리시대의 모차르트”였던 것이죠).  

 

그 책의 기획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그렇게 낯설었으면서도 또 그렇게나 빨리 새로운 세대에게 전파된 것이 장정일이었고 장정일의 문학이었다. 장정일 이후의 문학은 독자적으로 이미 상당히 세를 굳힌 듯하다. 그리고 어느새 그가 문학 논의의 중심에서 슬그머니 밀려난 듯한 이즈음 우리가 그에 대한 책 한 권에 이르는 조명을 새삼 시도하는 것은 그가 일으킨 파장이 아직도 한때의 소동이 아니라 제대로 탐구되어야 할 사건이라고 여기는 까닭이다.”(구광본_소설가)

요는 그가 세기말/세기초 한국사회의 ‘문제적 인물’이었다는 것이죠(‘우리시대의 인물’이었다는 것이고요). 그건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2002)이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아시다피시 그는 그해 겨울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리하여 ‘장정일 & 노무현’이 되는데(대단한 거 아닙니까?), 장정일이 노무현과 함께, 노무현보다 먼저 다루어졌다는 사실을 혹 <공부>로 장정일을 처음 만나는 (87학번이 아닌) 87년생 독자들은 실감할 수 있을까요?


아무려나 두 사람은 ‘비주류’의 코드를 공유하는 우리시대의 화두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아시다시피 이 비주류성은 ‘장정일 & 김기덕’이 공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작가가 <공부>를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런 책을 내게 된 것은 2002년 대선 때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집필실을 얻어 글을 쓰고 있었는데, 옆 사무실의 중년들이 ‘노무현 그거 빨갱이 아닌가?’라며 성토하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장정일의 ‘공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우리사회의 ‘상식 혹은 희망’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닐까요?(출판사 문구로는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고 돼 있지만, 우리 사회에 언제 ‘인문학’이 만개하고, ‘상식 혹은 희망’이 만발했었는지는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그건 작가 자신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게, 요즘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그의 문학이 아니라 그의 <공부>입니다!

 

 

 

 

 


 

 

 

 

<공부>로 아주 넘어가기 전에 ‘소설가 장정일’도 잠깐 언급해두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나 <보트하우스> 같은 작품을 좋아하고(<보트하우스>는 특히나 러시아문학과의 관련성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온 편지>를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데(소위 장정일을 읽기 위한 코드를 다 ‘드러낸’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소설 대부분은 이젠 <선집>을 통해서만 읽어볼 수 있습니다(그래도 그는 ‘2만부 작가’였는데 말입니다!).



 

 

 

 

 

 

 

<중국에서 온 편지> 이후에 뜻밖에도(아주 뜻밖은 아니었지만) 작가는 <삼국지>로 나아갑니다(그는 “40세 때부터 <삼국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중년이라는 나이와 <삼국지>라는 역사 장르가 저의 독서 습관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라고 적는다). 문화일보에 연재되는 걸로만 가끔 읽었을 뿐 저는 그의 <삼국지>를 완독하지는 않았습니다만(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려 10권이고, 저로선 꽂아둘 만한 서재가 없습니다), 이게 기본적으로 80년대 주류 작가였던 이문열의 <삼국지>를 겨냥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장정일 vs 이문열).

 

이 구도에 황석영의 <삼국지>가 끼어드는 바람에 작가로서는 ‘물 먹은’ 경우가 된 게 아닌가 싶지만(판매가 상당히 저조합니다) 어쨌거나 우리시대의 삼국지 작가로서도 장정일은 앞 세대의 두 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이문열-황석영-장정일). 하지만, 다른 작가들이 가지 않은 장정일만의 길을 그는 개척했는데, 그건 바로 ‘의사pseudo 저자’로의 길입니다.

 

 

 

 

 

 

 

 

 

지난 1994년 <독서일기> 1권을 처음 내면서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린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 시인․소설가라는 꿈에도 원치 않았던 개똥 같은 광대짓과 함께 또 한권의 책을 출간하고자 머리말을 짜내고 있는 나는 ‘불행한 저자’이다.(...)

 

내가 한 권의 낯선 책을 읽는 행위는 곧 한권의 새로운 책을 쓰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의 양부가 되고 의사pseudo 저자가 된다. 막연하나마 어린 시절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꿈꾼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누가 얼굴을 똑바로 하고 자기 자신을 쾌락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단어가 가진 엄밀한 의미를 좇는 쾌락주의자가 되고 싶다” (강조는 나의 것)

 

 

 

 

 

 

 

 

그러한 그의 독서관은, 하지만 변화하게 됩니다. 재즈에서 클래식으로 음악에 대한 그의 취향이 변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일기> 10년째인 2004년에 낸 6권의 서문은 이렇습니다. “보혁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지난 몇 년간을 보내면서, 나의 독서관은 개인적으로 내밀한 쾌락을 좇아가는 독서에서 약간 다른 것으로 진화했다.(...)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책과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독서는 민주사회를 억견(臆見)과 독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대립쌍은 ‘시민 vs 우중’ 혹은 ‘좋은 시민 vs 나쁜 시민’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쾌락주의적 독서’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을 위한 ‘계몽(주의)적 독서’로 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질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공부>와 <일기7>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의 두 가지 집필계획은 두 가지입니다(저로선 가장 관심을 갖는 대목입니다). 

 

(1)선정해놓고 못 다 쓴(혹은 날려먹은) 30여 가지 주제로 <공부>를 한권 더 쓰기(하지만 그는 “공부는 저의 평생 친구입니다. 이 말은 무지가 평생 저를 따라다닐 것이란 뜻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공부>의 길로 가는가, 다시 <일기>의 길로 가는가, 혹은 둘 다인가? 그는 또 "한 주제로 묶는 게 성실로 여겨졌다“라고 적었다. 가령 그가 “의식적으로 포기했던” 문학작품 읽기는 다시 시작되는가?) (2)2002년 대선 이후의 한국 ‘풍속’을 관찰한 소설(가제는 <서울 금병매>로 돼 있다. 그에게 2002년과 곧 있을 2007년의 대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공부>의 마지막 마무리 또한 우연찮게도 2007년의 ‘아마겟돈’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독서/공부론과 인문서평의 자리에 오게 되면 작가의 경쟁상대는 달라집니다(흔히 리뷰어로 통칭되지만, 여기엔 ‘서평가-서평자-서평꾼’의 급이 있다). 장정일과 유사한 포지션을 점유하는 이는 도서/출판평론가 ‘표정훈 & 이권우’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2005)의 강유원입니다(둘은 62년생 동갑내기이다). 요컨대, ‘장정일 & 강유원’. 작가도 읽어보았을 텐데, 먼저 포문을 연 건 강유원입니다. 그는 96년에 나온 <장정일의 독서일기2>에 대한 독후감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그의 비판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작가에 대한 사전이해가 거의 백지상태라는 걸 보여준다).  

 

“두 번째 독서일기를 읽고 난 후 계속해서 독서일기를 사는 것은 책을 모으는 취미는 만족시켜 줄지언정 더 이상의 지식은 줄 수 없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독서일기를 읽었을 때나 두 번째 독서일기를 읽은 지금이나 놀라운 것은 장정일이 참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정일의 독서는 아주 폭넓은 듯하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진 않다. 자신이 소설가이므로 당연히 소설을 가장 많이 읽는다. 가끔 인문사회과학이 끼어 있다. 어쩌면 인문사회과학서적은 ‘젊은 시절’에 많이 읽었을 테니까 이제는 별로 안 읽는지도 모르겠다.(...) 장정일은 많은 분량의 책을 읽지만 그것이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구슬은 많지만 그것을 꿰어서 이론적 줄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또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해서는 단순한 내용 요약만을 하고 있는 것도 그가 책읽기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정일은 객관적인 데이터에 상당히 무관심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책>)

 

물론 우리는 <공부>와 <일기7>의 장정일이 더 이상 강유원이 비판하고 있는 장정일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그 변화의 분기점은 <삼국지>인가, 혹은 2002년 대선인가?)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하지만 그 공부 때문에 부당하게 폄하되는 것은 없는 걸까요?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서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들의 열정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우표 수집가나 난을 치는 사람을 지식인으로 존경할 수 없다.(<공부>, 머리말) 

그럼으로써 장정일은 지식인으로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리하여 그의 공부론과 지식인론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토론을 시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겨우...

07. 10. 06.

P.S. 곁가지 멘트들이 빠져서 토론문이 다소 싱겁게 읽힐 수는 있겠다. 작가에 따르면 시는 더 이상 쓸 수가 없고(그가 어느 책에선가도 적어놓은 것이지만, 그가 보기에 모든 시인에게 첫시집이 곧 '유고시집'이다. 이후엔 그보다 더 뛰어난 시집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고로, 두번째 시집을 내면서부터 시인은 '현역'이 아닌 '명예시인'이 된다. 전세계의 12마리쯤인가 있다는 시마(詩魔)가 빠져나간), 생계 때문에 쓰기 시작한 소설은 그나마 괜찮을 걸 쓰게 될 때쯤 문학판이 파장 분위기가 돼 버렸다. 그가 가장 욕심을 부리는 건 '정식'으로 데뷔한 부문이기도 한 희곡쪽(언젠가는 걸작을 써주길 기대한다).

나는 장정일의 이 세 가지 자기상이 모두 의미가 있고 우리문학에 기여한 바가 있으며 따라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나도 우표 수집가를 존경하지는 않지만 시인은 존경한다. 명함에 '시인'이라고 새겨서 다니는 시인들 말고 진짜 시인들). 포럼이 끝나고 잠시 나눈 사담에서 작가는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희곡들에 대해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경우 러시아에서는 연극으로도 공연된다고 알려주자 놀라워하기도 했다(이 작품은 곧 새 번역본이 출간된다). 그가 한번쯤 러시아에서 불가코프의 작품들이 어떻게 무대화되는지 볼 수 있기를 기원하지만(사실은 나도 못본 거 아닌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하니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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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정일판 우익청년 탄생기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05 00:30 
    문학 신간을 자주 검색해보지 않아서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작가 장정일의 신간이 출간됐다. <구월의 이틀>(랜덤하우스, 2009). 제목만 봐서는 9월에 나왔어야 하는 책. 여하튼 오랜만이어서(10년만이란다!) 반갑다.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먼저 스크랍해놓는다.      연합뉴스(09. 11. 04) 10년 만에 새 소설 낸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아담이 눈뜰 때'
 
 
변호사A 2007-10-0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차에,
아주.. 아주.. 아주 잘 읽었습니다 ^_^

로쟈 2007-10-0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참에 몇 권 읽어보시길...

2007-10-0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7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07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0-07 22:56   좋아요 0 | URL
같은 '애독자'네요.^^
 

아침신문에서 읽은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의 특집대담인데 김기봉, 박찬승 두 역사학 교수가 민족주의를 화두로 하여 나눈 것이다. 요 며칠 남북 정상회담이 국가적 이슈였는데, 남북 통일의 과제도 '민족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지역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인지 고민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경향신문(07. 10. 05) "脫민족 공화주의로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민족주의는 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힘을 발휘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우파 쪽에서도 ‘민족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현실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막강하다. 외국인 거주자 100만명 시대에, 왜 우리는 아직도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것일까. 학계 쪽 얘기를 들어봤다. 탈민족주의 사관을 펴온 김기봉 경기대 교수(서양사)와 항일독립운동 및 정치사상을 전공한 박찬승 한양대 교수(한국사)가 27일 오후 경향신문사에서 대담을 가졌다. 이들은 “민족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적 정체성이 필요하다”면서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기봉 교수(왼쪽)과 박찬승 교수는 단일민족은 허구이며, 이제 민족의 틀을 넘어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두 교수가 지난달 27일 대담을 갖고 경향신문사 별관 1층 경향갤러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찬기자

박찬승 교수=지난 8월말로 한국 거주 외국인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습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의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한국사회의 다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김기봉 교수=유엔 권고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실은 다민족이었는데, 말로는 단일민족을 주장해온 거죠. 족보들에 따르면 많은 성씨의 시조가 중국에서 왔지만 우리는 모두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라고 가르칩니다. 공적 역사와 사적 역사가 불일치하는 모순이죠. 이는 민족이라는 ‘매트릭스’가 작동해왔기 때문입니다.

박찬승=학습의 효과이기도 합니다. 올해 발간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보면 “우리 민족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 국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학생으로서 하등의 의심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죠. 역사책 가운데 단일민족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손진태 선생이 1948년에 쓴 ‘국사대요’입니다. 하지만 혈통은 씨족을 넘어가면 확인이 안됩니다. 고대의 부여, 삼한, 여진, 예맥 등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현재 민족을 형성했기 때문에 단일 민족이라는 표현은 사실로도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다민족국가가 되는 상황이어서 교과서 표현은 시급히 시정해야 합니다.



김기봉=우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걸까요, 한국인으로 되어지는 걸까요. 민족 개념 속에는 문화적, 선천적, 객관적인 종족이라는 뜻의 에스노스(ethnos)와 정치적 의미공동체라는 뜻의 네이션(nation) 두 가지가 있어요. 특히 네이션은 근대의 산물입니다. 민족에서 민족주의가 나온 게 아니라, 민족주의가 발명한 게 민족입니다. 그 공식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면 단일민족이란 건 말이 안되죠.



박찬승=한국에도 민족과 비슷한 개념은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아족류(我族類)’인데요. 왜족류나 여진족류와 구분할 때 썼는데, 에스노스 개념에 가깝습니다. 갑오개혁 이후엔 ‘2000만동포’ ‘조선동포’ 등에서 ‘동포’가 등장합니다. 이후 일제강점하에서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민족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죠. 여기서 그 주체로 민족이 등장했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민족 내적인 통합이 필요했고 여기서 신분의식의 청산이 필요했어요. 서양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이 등장한 거죠.

김기봉=민족에서 ‘족’은 족류에서 왔을 것이고, ‘민’은 평등에서 왔을 겁니다. 전통의 근대적 변형이 이뤄진 것 같은데,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게 아니라 일제시대를 통해 강박적으로 이뤄졌고, 또 한편으로 좌절됐습니다. 우리는 민족이라 하면 저항적으로 투쟁해야 된다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연결하는데, 이게 민족 개념이 굴절된 계기입니다. 이제 와서 자신감을 좀 갖게 되니까 그 불일치가 부각되는 거죠.

박찬승=한국 민족주의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식민지배에 저항해 국권을 지키고,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동원될 필요가 있었죠.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남녀평등이나 소수자의 문제는 억압됐습니다.

김기봉=세계화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린민족주의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 과정으로서 탈민족주의적인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반민족주의와는 다릅니다. 봉건적 신분질서의 위계적인 인간관계를 깨고 주권이 민에게 있다는 의식을 확립한 해방적 측면은 민족주의의 빛나는 기능입니다. 하지만 그게 악마적 속성을 갖게 된 것은 정치적 민족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기독교가 더 이상 제시하지 못하자 민족이 그것을 대신했죠. ‘나는 유한하지만 민족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민족 아닌 다른 민족은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종주의와 만나 나치즘이 되고 제국주의, 1·2차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서구사 경험에서 한국사는 면제될 수 있다고 봐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한국 민족주의도 그에 못지 않다는 얘기죠.



박찬승=1931년 만보산 사건 당시의 중국인 학살은 이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당시 조선의 중국인들 중 100여명의 중국인이 조선인에게 피살됐습니다. 총독부의 농간이 작용하긴 했지만 조선인들의 배타성이 잘 드러났습니다. 해방 후에도 정부 정책은 화교에 무척 배타적이었습니다.

김기봉=인종주의는 구별이 차별로 될 때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의식에 골상학, 비교해부학, 생물학 등 과학이 동원됐습니다. 우리는 과학까지 동원한 경험은 없었지만 인종주의가 분명 존재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처음 심어놓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박찬승=그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요.



김기봉=무리짓기의 원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는 의식이 생긴다’는 겁니다.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같은 우리’라는 의식이 만들어지는 거죠.

박찬승=학계에서는 신라 통일 이후 한국의 원형민족이 형성됐다고 봅니다. ‘우리는 신라인’이라는 동질성 개념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고, 아족류라는 개념이 조선초에 나오게 됩니다. 이 역시 하나의 무리가 되고 나서 ‘우리’라는 의식이 만들어진 셈이지요.

김기봉=해방 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우리 민족 운명이 결정된다는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이 과제였습니다. 식민주의 사학과 비슷한 게 지금의 샌드위치 국가론입니다. 세계화 상황 속에서 식민주의가 변형된 거죠. 하지만 이제는 민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 현실을 사유할 수 없습니다. 탈민족적 관점에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범주를 다시 고찰해야 합니다. 민족국가는 큰 문제 다루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 다루기에는 너무나 큽니다. 환경 문제는 초국가적이지만 자꾸 민족국가 틀 안에 갇히고, 지방분권은 중앙집권적 민족국가 때문에 방해 받습니다. 우리 안의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역시 조승희 같은 사람을 만들어낼 겁니다. 우리는 안으로도, 밖으로도 탈민족해야 할 상황입니다. 새로운 공동체적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박찬승=유럽이나 미주를 여행할 때 그쪽 사람들은 우리를 중국인, 일본인과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 나의 정체성 중 하나가 ‘아, 아시아인이구나’ 깨닫습니다. 동아시아 교역량도 엄청나서 경제공동체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고 이미 문화적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그런 사회는 올 것이라면 교육 안에서도 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식인들 사이에는 통일될 때까지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고, 일반인들 사이엔 중국과 일본 틈에서 한국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은 듯합니다.



김기봉=독일은 1964년에 외국인 100만명을 맞았습니다. 100만번째 노동자가 포르투갈인이었는데, 당시 독일 고용주 협회장이 그 노동자에게 꽃다발을 주며 “진심으로 축하한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 뒤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며 이게 부담이 됐습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민족 정체성이 훼손됐다는 정서가 등장하며 네오나치가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도 틀림없이 이런 현상이 생길 겁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출산율이 최저인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결국 우리 연금을 부담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럴 때 민족주의는 틀림없이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인스 워드가 왔을 때, ‘대한민국을 품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광고가 만들어졌죠. 하인스 워드를 언제 한국인으로 생각했습니까. 그의 정체성은 미국인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면 환영하고, 필요없으면 내쫓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박찬승=왜 한국사회에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가 오게 됐을까요. 9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학력이 인플레돼 대학 진학생이 80% 이상이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3D 업종 중심으로 노동력이 크게 부족해졌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초청했습니다. 처음엔 산업연수생으로, 이제는 고용허가제로. 앞으로 3D 업종뿐 아니라 고급인력 시장에서도 부족 현상이 올 겁니다. 결혼이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0~30년 전부터 태아감별이 시작됐고, 남아선호 사상과 결합되면서 남녀 출산 성비가 엄청나게 벌어졌습니다. 신부를 수입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우스개로 말했는데 그게 현실화됐습니다. 혈통을 잇는다고 남아를 선호한 탓에 결국 외국인 며느리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결국 한국사회의 책임입니다. 법무부에서는 향후 매년 10%씩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 대책이 필요합니다.

김기봉=미국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다문화의 전형입니다. 유럽은 우리와 다른 게 유럽인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해소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 여력이 없는 데다, 분단돼 있습니다.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이 헌법에 쓴 생명, 자유, 행복 추구 등의 원칙을 가지고 세운 공동체입니다. 헌법을 통해 미국이라는 민족을 만든 거죠. ‘용광로(melting pot)’로 미국 국민 만들기를 한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시민적 내셔널리즘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조승희는 용서를 받았지만 9·11 테러범들은 못받았어요. 그들은 시민이라는 카테고리로 우리와 타자를 나누는 겁니다. 그래서 용광로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그대로 존중해주는 ‘샐러드 접시(salad bowl)’ 얘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 모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 모델은 바로 ‘비빔밥’이지 않을까요. 우리 전통은 유교 불교 기독교 모두 밖에서 온 걸 하나로 만들었죠. 서로 다른 문화도 비빔밥처럼 버무릴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신라의 불상이든 뭐든, 우리가 나름대로 소화한 외국 문화를 찾아내는 식으로 민족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찬승=한국정부는 결혼이민자에게는 포섭과 동화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결혼이민 지원센터도 만들었죠. 결혼이민여성만 15만명 이상인 상황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아직 부족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가져온 문화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도 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베트남 문화를 버리라고 할 것인가요. 베트남 출신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그걸 살려갈 수 있도록 돕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아시아인의 동등한 자격으로 당신들은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도 당신들 것을 이해하겠다는 자세를 가질 때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교육, 방송 등이 많이 필요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안좋습니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들은 3년이 지나 자진출국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우리도 60~70년대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가면 대부분 잔류했습니다. 아무리 제한조치를 만들어도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상 다시 돌아가기는 힘듭니다. 그걸 현실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들을 불법체류자로 단속하며 코너로 몰면 집단거류지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중소기업들은 숙련 노동자도 많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들이 일할 만하면 내보내야 하는 정책은 문제입니다.



김기봉=지난 여름 베트남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문화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이 한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땅은 한반도보다 넓고 인구 8800만의 사람들은 굉장히 젊고 우수합니다. 민족해방전쟁에도 승리해봤고, 손재주도 좋습니다. 그간 우리는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만 사고하느라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과 연대·소통 노력을 소홀히 했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이들과의 공존이 우선입니다. 출산 후 찬물에 샤워하고 싶은 베트남 산모가 한국인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는다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교육하면 뭔가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것입니다.

박찬승=이주자들이 한국에서 문화제 같은 것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참여하는지 궁금해요. 우리도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신라 통일 이후 외국인들이 이와 같이 파도처럼 몰려온 적은 없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는 한국인들이 다인종사회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됐다는 시각은 아직 적습니다. 골치아픈 존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들이 왜 와 있는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김기봉=최근 혈통 민족주의에서 국가 민족주의로 코드 전환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단일민족주의에서 대한민국 국가주의로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올해 말 대선에서 누가 되느냐에 따라 북한 문제에서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통일과 외국인 문제는 민족이라는 틀로 껴안을 수 없습니다. 건국 60년이 되는 내년 역사학대회의 주제를 ‘역사상의 공화정과 국가 만들기’로 정했습니다. 이 시점에 우리는 민족 정체성이 아니라 공화국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 후 남과 북에 두 개의 공화국이 존재해 왔지만 정작 공화주의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공화주의는 사적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적 덕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공화주의는 남한사회 내 외국인 노동자를 포섭하면서 북한 주민도 담을 수 있습니다.

박찬승=한국사회는 전세계의 600만 해외 동포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잘 적응해주길 바라는 한편, 한국문화를 잊지 말기를 기대합니다. 역지사지로 한국 사회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도 한국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공동체의 성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또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문화는 우리 문화를 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정리|손제민기자)

07. 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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