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칼럼들을 둘러보다가 레디앙에서 눈에 띄는 글이 있기에 옮겨온다. 필자는 우석훈 교수인데, 한겨레의 북리뷰 섹션에도 칼럼을 연재하는 것으로 안다. 최근 들어 부쩍 자주 눈에 들어오는 필자이다. 알라딘의 저자 프로필을 보면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초록정치연대의 정책실장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작년부터 출간된 저서들이 눈에 띄며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론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2006)가 있다(이미 이런 소개가 필요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분이긴 하다). 레디앙에는 그의 칼럼이 연재되고 있는데, 프로이트(프로이드)의 (비관적) 문명론을 다룬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의 유학생활도 슬쩍 엿볼 수 있다(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레디앙(06. 11. 07) "프로이드의 우울한 유언을 생각하면서"

1.
사람들이 가끔 왜 나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갔느냐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얘기들로 말을 돌리지만 ‘운동권 학점’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진실일 것 같다. 그렇지만 프랑스에 가서 좋았던 점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사실 별로 없다. 하지 않았어도 좋을 고생을 더 많이 했고, 원래도 비주류인데 평생 비주류로 살 구실을 찾았다고 하면 오히려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어두운 기억 한 구석에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수학을 많이 공부할 수 있었고, 인류학을 공부할 수 있었고, 또 프로이드를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을 꼽을 것 같다. 내가 프로이드를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은 스물 세 살 때의 일이다. 후기 프로이드의 저서는 동구가 무너지던 시절에 그나마 마음을 붙일 수 있던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던 셈이다.



동구가 무너지면서 서울에도 충격이 심했다고 하지만 파리는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사회와 대학가에 던져진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수학 문제 푸는 것과 독서로 허무한 마음을 달래면서 살아갔고, 보통의 20대가 그렇듯이 내 눈으로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 시절에 알뛰세나 푸코가 서울에서는 한참 유행했지만, 당시 파리에서는 별로 그렇지는 않았다. 데리다 열풍이 지금도 서울에서는 만만치 않지만 실제로 내가 지냈던 90년대 초반의 프랑스 학계 특히 좌파 학계가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듯이 후기구조주의의 단일한 흐름과 대오를 형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EU 통합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놓고 통합파인 사회당과 비통합파인 공산당이 논쟁 중이었고, 60% 이상의 핵발전 국가인 프랑스의 에너지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당과 녹색당이 논쟁 중이었다. 그 와중에 “개인의 복귀”를 외치는, 나름대로 신자유주의 철학이 화려하게 등장하던 그런 시기였다. 그 와중에 프로이드를 읽던 나는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었고, 주류와는 상관없는 외톨이의 길에 혼자 서 있던 셈이다.

장장 2년에 걸친 프로이드 독서가 끝났지만, 나는 결국 프로이드로 박사 논문을 쓰지는 못했다. ‘맑스와 프로이드’, 이런 주제는 지나치게 우파들이나 좌파들을 모두 자극하게 되는데, 1년을 다시 헤매다가 조안 로빈슨,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힐퍼딩 같은 고전들을 끄집어내서 겨우 박사논문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프로이디안'인가라는 질문을 가끔 나에게 한다. 나는 프로이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프로이드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토템과 타부>에서 <동일화>를 거쳐 <문명의 병>까지 이어지는 후기 프로이드 저작은 아직도 풍성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후기 프로이드는 너무 염세적이다. 열심히 읽다보면 자살에 아주 적합한 핑계거리를 찾아내기 딱 좋은 책들이다.

‘평화’에 관한 단어가 요즘은 유행인가 보다. 그런 말을 많이 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평화라는 말은 간디에서 유래한 생각이 강하다. 물론 모든 평화파가 간디주의자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하여간 최근의 유행은 간디식으로 해석한 “용감한 자들의 선택”이라는 것이 평화 혹은 내 표현대로 하면 ‘극렬 평화주의자’들의 기본 뿌리를 형성한다. 지금 탁발순례 중인 도법스님의 경우가 그렇고 녹색평론의 많은 저자들도 간디의 생각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뿌리대로 올라가면 서양 근대 사상에서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면에 꺼낸 사람은 베트란드 러셀과 지그문트 프로이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사람 다 평화의 사상가들은 아니지만, ‘반전’이라는 흐름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다. 러셀과 반전시위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 냉전 시기에 핵위기로 달려가던 미국의 그 심장부에서 반전 시위를 하면서, 스퀘어 가든을 매웠던 사람들이다. 그 당시의 반핵이라는 흐름의 후반부로 가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따로 있지는 않았던 것 같고, 종교와 세속적인 힘들이 모두 “핵폭탄을 없애라!”라는 구호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일종의 ‘공멸’에 대한 두려움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 중에서 가장 심각한 논쟁을 이끌어내고 사회적 변화까지 만들어낸 영화를 꼽으라면 난 <크림슨 타이드>를 꼽는다. 존 웨인으로부터 시작된 미국 극우파의 마초들 중에 으뜸 마초라면 역시 잠수함 함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에는 핵잠의 함장이 미사일 발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잠수함이 작전을 나간 동안에 교신이 두절되었고, 통신교란된 상태에서 접수된 전문은 해독이 불가능하다. 미사일을 발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함장과 부함장 사이의 이 작은 함상 쿠테타에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운명이 사실상 달려 있는 셈이다.

해군으로부터 항공모함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던 <탑건>과는 달리 <크림슨 타이드>는 해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해군에서는 정 안되면 시나리오의 변경이라도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하여간 해병대를 가지고 있는 미해군의 최고 엘리트들이 근무하게 되는 핵잠에서 벌어지는 선상 소요사태는 간단하지만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진 셈이다.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해 핵잠 함장에게 주어지던 핵미사일 발사권이 사라졌다. 냉전의 마지막 시대는 한 사나이가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는 공멸의 직전에 서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2.
이 공멸에 대한 얘기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했던 사람이 바로 프로이드이다. 거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문명의 병>의 결론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결국 인류는 서로 전쟁으로 죽이면서 종말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생태주의자들은 보통은 지구온난화 혹은 기타 자원과 환경의 문제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런 걸 조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희망론이 있기도 하지만, 근본주의에 가까워질수록 종말론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이런 점에서 맑스나 레닌과 같은 “언젠가는 모든 것이 해결된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과 프로이드나 생태주의자들은 생각이 좀 다르다.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재림’에 의한 ‘구원’의 철학과 종말적 염세론의 기본 시각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어려운 생각은 아니지만, 프로이드의 얘기가 좀 심각한 것은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 그 근거를 끌어오기 때문에 생각보다 골치 아프다. 가만히 보니까 사람들이 ‘생산’이라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 다 뭔가를 찢고 쪼개고 부수는 일이기 때문에 일을 오래 하다보면, 결국 ‘파괴적 본능’이 강해질 것이라는게 프로이드 의 기본적인 생각인 셈이다.(생산에 대해서 시비를 붙은 사람은 루마니아 출신의 경영학자인 조르죠스큐-뢰겐이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었다.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는 맑스나 스미스가 이야기한 ‘생산’이 엔트로피라는 눈으로 보면 결국 에너지의 순수한 소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일하는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경구 위에 세운 노동의 사회에서 프로이드의 지적한 얘기가 좀 생뚱맞기는 하다. 신성한 노동이 결국은 ‘파괴의 본성’을 일깨우고, 이렇게 사람들이 점점 더 파괴와 살육에 익숙해져서 인류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라니... 그러나 하여간 프로이드는 세상을 그렇게 보았고, 그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니까 학자로서의 프로이드의 마지막 결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섹스나 사랑 혹은 최면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과 살육에 대한 예언인 셈이다.

3.
프로이드는 연애는 정말 못하는 사람인데, 말년에 루 살로메에 대한 짝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했다. 유럽의 지성 중에는 살로메가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도저히 와닿는 바가 없는 말이기는 한데, 프로이드의 결론을 살로메와의 짝사랑과 연결시키면 좀 재밌는 얘기가 나오기는 한다.

프로이드가 공식적으로 맑스에 대해서 지적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대체적으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본 것 같다. (이건 케인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이드는 혁명은 당연한 것이고, 언젠가는 노동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서 더 이상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사람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도 열렬한 혁명의 지지자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프로이드가 맑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불만은 혁명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지고 나더라도 노동 과정에 대한 변화가 특별하게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을 재생산하는 노동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점이 프로이드의 걱정인 셈이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별 걸 다 걱정한 셈이다.) 프로이드의 제안은 ‘사랑의 노동’인데, 별 특별한 건 아니고 부부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프로이드의 경우에는 같이 일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루 살로메였기를 열렬히 희망하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김빠지는 얘기 덕분에 인류와 사회의 기원에서 종말에 이르는 프로이드의 거대한 생각은 “사실 별 볼 일 없다”는 걸로 완전히 폄하되었다. 후기 프로이드는 철학사에서나 인식론에서나 완전히 비주류 중의 비주류이고, 그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심리학자 정도로 이해되게 되었다.

4.
“죽어라고 일하면 행복해진다”는 사회적 테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종종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맑스의 사위였던 폴 라파그(Paul Lafargue)라는 사람인데, 감옥에서 '노동권'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등장할 때 여기에 불만을 품고 '게으름의 권리'에 대한 책을 썼다. 우연한 일이지만 베트란드 러셀도 비슷한 책을 쓴 적이 있다(*'라파르그'와 러셀의 책은 모두 번역돼 있다).

 

 

 

 

<게으름의 권리>라는 책은 오랫동안 잠 자고 있다가 68혁명 이후에 높아진 임금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던 70년대 초반 다시 복권되었고, 이 때 서문을 달았던 사람이 바로 알랭 리피에츠이다. 프로이드는 부인 혹은 애인과 같이 일을 하면 그래도 노동이 좀 행복해지고, 사람들의 폭력에의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 잠시 정지될 것이라고 생각한 셈인데, 이건 좀 "글쎄올시다" 되겠다. 아마 부인과 직장에서도 붙어있다가 일과 가정 모두 파탄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고, 부인 몰래 직장에서 바람 피는 사람들의 인생도 내가 짧게 지켜본 것으로는 행복하게 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든 프로이드도 엄청난 낭만파는 낭만파다. 혁명에 관한 얘기가 별 볼 일 없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부인과 같이 일할 수 있게 해주라고 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프로이드가 없어지기를 바랬던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 20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더 위험한 일이라도 시켜주기만을 바라는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프로이드에서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스에 이르기까지 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철학이나 문학을 나름대로 시도했다는 점이다(여담이지만 블랙 사바스의 모티브도 반지의 제왕에서 나온다). 묘하게도 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나서는 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부국강병”의 이데올로기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뭐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5.
프로이드가 다시 복권되는 일이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게다가 줄기세포도 모르던 시절의 어느 촌놈 의사가 사회학과 인류학 그리고 철학 같은 걸 너무 하고 싶어서 의사생활 때려치고 호주의 캥거루에 얽힌 신화부터 다시 공부하면서 혼자 생각해낸 얘기들이라서 화려한 철학사에 대한 얘기도, 화려한 인문학에 관한 얘기도 프로이드에게는 없다(*그런 이유라면 소위 '고전들'이 굳이 읽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미건조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전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찬 프로이드가, 게다가 ‘남근주의자’로 몰려 마초들의 두목처럼 비쳐지는 지금, 프로이드가 다시 복권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필자가 라캉 이후의 정신분석학에 관해서는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듯하다. 전집이 출간된 지 얼마되지 않은 한국에서만 하더라도 프로이트는 이제야 읽히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프로이드가 촌놈이라면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촌놈이 바로 파레토였다. 근대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신고전학파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여간 그런 경제학의 기본은 왈라스로부터 나온다. 사람들은 안 믿겠지만 왈라스도 사회주의자였고, 그래서 하에이크가 왈라스의 일반균형 이론이 바로 사회주의 이론이라고 입만 열면 “그건 아니야”라고 외쳤었다. 그 왈라스가 스위스의 로잔느 대학에 경제학과 학과장으로 자기 후임으로 이탈리아까지 가서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파레토인데, ‘파레토 최적’의 그 파레토가 또 당시의 유명한 사회주의자였다.

파레토가 스위스 기슭에서 20년 이상 혼자서 연구하다가 드디어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의 비밀을 풀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산에서 내려와서 파리에 왔는데, 프로이드의 책들을 보고는 한탄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쓰려고 했던 말들이 이미 다 책으로 나와있는 걸 보고 파레토가 낙담을 했었다고 한다.



6.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질 때 혼자 틀어박혀서 읽기 좋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로이드의 <문명의 병>이다. 가만히 보니까 인류는 죽어라고 일 해서 결국은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면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어느 한 노학자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해보면 가슴 한 구석에 그야말로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오게 된다. 몰락한 집에 줄줄이 달린 형제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생물학과에서 의사로 전업하고 개업했던 그 집안의 아들이 전쟁을 겪고, 독일 사회와 유럽 전역의 전쟁의 광기로 달려가고 있던 시절을 살아내면서 유언 대신에 세상에 남긴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마약이 있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출발한다.

한국은 마약에 홀린 것처럼 ‘화페물신론’에 흠뻑 빠져있고, 노동의 의미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보다는, 그야말로 월급과 승진 혹은 ‘안정성’이라는 그게 그 말인 얘기에 흠뻑 빠져있다. 노무현 정부가 “2만불 경제”를 외치던 그 시절에 그게 문제 있다고 얘기하던 인문학자가 아무도 없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했다. 돈이 인류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나?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우석훈 / 성공회대 외래교수)

06. 11. 09.

P.S. 필자가 언급하고 있는 <문명의 병>은 아무래도 <문명 속의 불만>(열린책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원제는 'Das Unbehagen in der Kultur'(1930)이어서 <문화의 불안>(박영사, 1974)으로 번역되기도 했었고, 영역본의 제목은 <문명과 그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이다. 불역본의 제목이 아마도 '문명의 병' 정도인 모양이다(찾아보니 'Le Malaise dans la Culture'이다). 짐작에 필자는 프로이트의 한국어판 전집에는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참조하지도 않은 듯하다. 그의 프로이트는 여전히 스물 세 살때 파리에서 읽은 프로이트이겠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질 때 혼자 틀어박혀서 읽기 좋은 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바로 그 책은 <문명 속의 불만>이 아니라 'Le Malaise dans la Culture'인 것이다. "그 와중에 프로이드를 읽던 나는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었고, 주류와는 상관없는 외톨이의 길에 혼자 서 있던 셈이다."란 고백에서 알 수 있지만, '문명의 병'을 다루고 있는 이 칼럼은 (흥미롭지만) 한 지식인의 '나르시시즘적 고백'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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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제이북스, 2006)의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서양 고전철학 전공자들이 전력투구해서 낸 역저인데, 지난 월요일에 교보에 들렀다가 책이 나온 걸 보고서 바로 손에 들었다(물론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다. 최명관 교수 번역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갖고 있기 때문에). 번역에 대해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 역자들 못지 않게 교열자들의 손도 많이 간 번역서이기 때문인데, 그건 지난 여름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을 펴낸 이 출판사 전응주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어려운 개념이 많다보니 철학서 번역은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대여섯번 교열을 보는 건 기본. <헤겔>은 교열과 편집 작업에만 반 년 가까이 걸렸다. 전대표가 직접 교열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는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원전 번역물을 영어와 독일어 번역을 옆에 두고 비교하면서 보고 있다'면서 '그냥 대충 하면 손해보지 않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대표는 희랍어·라틴어 원본을 번역할 수 있는 세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 관련 철학서를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낼 예정이고, 플라톤 전집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로 그 책이 출간된 것이다. 

 

 

 

 

아마도 주말의 서평란들에서 이 신간에 대한 리뷰들을 읽어볼 수 있을 텐데, 여기서는 그냥 이태수 교수(역자들의 스승이기도 하다)의 해제 정도를 읽어보는 걸로 오리엔테이션을 대신하도록 한다(이 페이퍼 또한 '최근에 나온 책들' '작업실'에 올라와 있었는데 따로 분가시킨다).

동아일보(05. 07. 27)[서울대권장도서 100권](98) 니코마코스 윤리학

인간이 영위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은 어떤 것일까? 행복을 누리는 삶이라고 한다면 일단은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나 행복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해두지 않는 한 아직 알맹이 있는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삶을 보장해주는 행복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가 제시한 답은 인간에게 주어진 역량을 최대한 계발하여 발휘할 수 있게끔 삶을 꾸민다면 그것이 곧 진정 행복한, 즉 최선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답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역량에 관한 설명이 따라주어야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바로 그에 관한 설명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핵심부분을 이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관건이 되는 역량을 크게 지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두 종류로 나누어 상론한다. 그는 삶의 방식으로서는 지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진리탐구에 몰두하는 관조적인 삶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 때문에 그의 윤리관은 너무 주지(主知)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 비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실천적 역량을 지적인 것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실천적 역량이란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특정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으로서 흔히 말하는 덕(德)과 같은 것이다. 가령 의로움, 너그러움, 우애, 용기, 절제 등이 그 예다. 이런 덕목이 결핍된 인간은 지적인 역량을 갖추더라도 심각하게 잘못된 인생을 살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을 잘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상 실천적인 덕에 관한 논의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아주 세심한 정성을 쏟는다.

각 덕목에 관한 그의 논의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논변의 정교함과 깊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철학적 분석의 뛰어난 모범으로 통용되고 있다. 각론뿐 아니라 덕 일반에 관한 총론적 논의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 많다. 가령 정서적인 반응과 관련된 측면에서는 덕이 중용(中庸)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동양사상사에도 비슷한 이론이 있기에 비교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덕은 정서적 반응을 넘어 결국은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덕의 논의는 행위이론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여는 기념비적인 것이다. 행위 일반의 구조와 그중에서도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의 특성에 관하여 그가 시도한 분석은 최초의 본격적인 행위이론이라 할 만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떤 기발한 윤리교설을 창안해내서 열렬한 신봉자를 끌어 모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윤리문제에 관한 학문적인 논의의 기반이 되는 개념 틀을 차분하게 정리해서 마련해놓은 것이 그의 가장 큰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그 개념 틀은 적어도 이 책이 쓰인 기원전 4세기부터 계속 서양 윤리학의 사상적 골격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서양 윤리사상사의 큰 흐름을 그 저류에까지 깊이 탐사하고자 하는 지적인 호기심을 가진 독자는 이 책을 재독, 삼독하면서 저자와 토론하기에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번역으로는 최명관 역(서광사)을 추천한다.(이태수 서울대 교수 철학과)

이 해제의 마지막 멘트만을 교정하면 되겠다. 이제 번역으로는 '이제이북스판'을 추천한다.

06. 11. 08.

P.S.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판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악트출판사, 2004). 모스크바에서 6,000원을 주고 산 책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대윤리학>이 합본돼 있고 100쪽 정도의 주석이 붙어 있다. 한국어판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최소한 가격에 있어서는 러시아어판과 비교할 수 없겠다. 러시아의 서점들의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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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KE 2006-11-08 22:26   좋아요 0 | URL
플라톤 전집도 곧 나오겠군요. 기대중입니다.

로쟈 2006-11-09 00:48   좋아요 0 | URL
분량상 '전집'은 아마도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저도 기대를 갖습니다...

깜짝이야 2006-11-11 00:15   좋아요 0 | URL
5년으로 계획을 잡았으나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지치지 않는다면, 더디 가도 바로 갈 수 있겠지요.

로쟈 2006-11-11 00: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키케로보다는 양반이군요. 키케로 전집 발간은 50년을 잡고 있던데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 드니 디드로(1713-1784)의 <달랑베르의 꿈>(한길사, 2006)이 출간됐다. 지난주의 일이고, 최근에 나온 책들 '작업실'에 올라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그냥 따로 자리를 만든다. 책의 '명성'만을 알고 있는 탓에 일단은 전문가 서평을 읽어보는 걸로 대신하면서.

 

 

 

 

아직 <달랑베르의 꿈>은 구입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번역/소개된 디드로의 책들은 <회화론>(영남대출판부, 2004)를 제외하면 다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라모의 조카>(고려대출판부, 2006)가 재출간됐는데, 물론 그것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봐야 몇 권 되지 않는다. <운명론자 자크>(현대소설사, 1992)로 시작해서(밀란 쿤데라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다) <수녀>(장원, 1993)와 <라모의 조카>(세계사, 1998)를 거쳐서 <배우에 관한 역설>(문학과지성사, 2001)을 지나 <부갱빌 여행기 보유>(도서출판 숲, 2003)에 이르는 여정이니까 보유(부록)를 포함한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중 어떤 책은 불어본과 영역본도 갖고 있고, 재작년에 구입한 러시아어본 선집 한권도 소장도서이다. 그 선집은 짝이 맞지 않는 책이지만 디드로의 대표작들은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달랑베르의 꿈>을 포함해서.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좀 의아했는데, 서평을 읽어보니까 원래는 3부작으로 구성된 책이고 국역본은 그걸 옮긴 것이다.

교수신문(06. 11. 05)  感性에 대한 철학...꿈같은 서술 매력

중세 신의 품안에서 아직 미지각의 상태로 잠들어 있는 인간들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주고, 구질서의 편견이나 미망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계몽주의의 완결판인 ‘백과사전’의 편찬을 주도적으로 총괄했던 디드로. 기존의 사고체계를 혁신하고 새로운 질서를 기획했던 이 백과사전파 학자는 또 개인적으로 생물과 화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특히 유물론자로서 현상의 총체적 이해, 현상들의 내적 연관성,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새로운 우주관을 완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저작물을 생산했는데, 그 가장 중요한 결실이 바로 ‘달랑베르의 꿈’(1769)이다.

이 책은 선적인 명확한 구성을 갖춘 3부작(1부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대담, 2부 달랑베르의 꿈, 3부 대담후기)으로 이뤄진, 생명의 기원과 우주 생성론을 다룬 철학 텍스트다. 디드로는 이 텍스트에서 물질의 보편적 속성을 감성으로 보고, 동양학의 氣論이 그런 것처럼, 그 감성의 聚散을 통해 우주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으면 마치 최한기의 ‘神氣通’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육체와 영혼의 분리나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길 거부함으로써 디드로는 관념론적 철학의 논제를 극복하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배제하며, 우주에 대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데 ‘달랑베르의 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당대의 다른 철학 텍스트와 비교해보면, 아주 특이한 형식으로 서술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특이함은 대화, 꿈, 은유와 같은 문학적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대화라는 문학적 형식은, 디드로가 생산한 작품들의 전매특허이듯이, 이 텍스트 속에서도 철저히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역할을 하고 있다. 텍스트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대화는, 모든 대화자들이 하나의 주장을 이뤄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다. 이처럼 대화는, 자칫 단조롭고 따분하며 현학적이 쉬운 철학적 담론에 일상 언어가 갖는 생동감과 현실감과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어, 力說이 逆說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학적 형식이 된다. 그리고 텍스트 속에 꿈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디드로는 일상적인 담론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사실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꿈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한 인식과 이성적 분석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랑베르의 꿈’에서 은유는, 다소 역설적이긴 하나, 철학적 개념을 전달하는 가장 문학적인 형식이 된다. 한 단어나 이미지, 개념의 형태가 원래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이동할 때마다 유사성에 근거한 은유가 등장한다. 무수히 많은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벌 송이나 인간의 사고 작용과 현의 공명 현상을 비유하는 클라브생, 감각과 의식의 문제를 다루는 거미의 이미지는 추상적인 것을 물질화하고,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며, 불투명한 것을 자명한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자아낸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처럼 철학적 내용과 문학적 형식이 어우러지는 행복한 만남의 공간이다.

'달랑베르의 꿈’은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이 책의 번역작업은 생명의 기원이나 감각작용, 사고작용 등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던 18세기의 사고방식과 표현을 현대적으로 옮겨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텍스트에서 장황하게 우회적으로 설명된 사실들을 21세기의 독자들은 이미 알고, 그래서 그들은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소위 ‘옛날’의 표현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事象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문학적 우회를 통해 표현한 작품의 번역은 특히 용어의 정확성과 표현의 매끄러움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또한 생물학적 유물론을 대화의 틀 속에 담아낸 이 작품의 경우, 개별적인 대화의 분위기와 개념적 이해가 어우러진 특징을 살려내야 하고, 당시 학계와 문단을 풍미하던 이론들과 사교계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디드로 특유의 문체, 즉 확장 지향적이고 즉흥적인, 수다스런 분위기를 살려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된다. 이런 컨텍스트의 특징들을 옮긴이가 충분히 살려 내려 노력했지만 아주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현재 출판계의 번역상황을 감안한다면 18세기 작품이 출판됐다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소위 장르혼합이 이뤄진 ‘생경하고 어려운’ 작품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문재은/  한국외대·불문학) 

06.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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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i 2006-11-08 15:59   좋아요 0 | URL
수년전에 New School 철학과에서 발행하고 Charles T. Wolfe가 편집한 저널 하나 구입한적이 있었습니다. <유물론의 부활>이란 거창한 제목이었지요?? 펼쳐보니 디드로를 중심으로 논문들이 구성되었더군요. 네그리의 <혁명의 시간>의 한부분도 마지막에 실려있었죠...네그리가 그의 <혁명의 시간> 서두에서 언급한 친구가 바로 디드로 전문가인 Charles T. Wolfe죠. 물론 저는 디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그냥 ^^ 사실 Charles T. Wolfe는 들뢰즈,가따리가 만든 저널 Chimeres에 90년대 초반부터 글을 쓴 유일한 영어권 학자일 겁니다. 그의 책 Monsters And Philosophy 도 흥미롭고요.. 며칠전 <달랑베르의 꿈>을 구입하고 그 저널을 다시 뒤적이다보니, 맨 앞 논문에 프랑수와 다고네(당신의 아내는 왜 자살할 수밖에 없을까?)의 글이 있더군요

로쟈 2006-11-09 00:45   좋아요 0 | URL
흥미로운 정보 감사합니다. Monsters And Philosophy란 책은 관심을 끄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메일 하나가 와 있어서 열어보니 창비주간논평이다. 북핵문제를 다룬 논평이 뜨길래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사회학자 김종엽 교수의 논평이 눈에 띄었다.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 사이에 길을 내자'가 제목이고, 80년대 학번으로서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털어놓고 있어서 옮겨놓는다. 

 

 

 

 

뒤르켐 전공자인 김교수의 책으론 처녀작인 <웃음의 해석학, 행복의 정치학>(한나래, 1994)를 읽은 기억이 있다(이런 인문서 독자가 3천명밖에 안된다는 얘기가 서문에 나오는데, 그나마 좋았던 시절의 얘기 아닌가? 요즘은 인문서는커녕 웬만한 소설의 초판을 3천부 찍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복사해서 갖고 있었는데, 그게 책으로 나온 것이 <연대와 열광>(창비, 1998)이다. <시대유감>(문학동네, 2001)부터는 갖고 있지 않다.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새물결, 2002)는 너무 비싼 책이다. 대신에 내가 갖고 있는 건 그의 번역서 <토템과 타부>(문예마당, 1995)이며, 기억에 <사회학의 명저 20>(새길, 2001)에 실린 <자살론>에 대한 해설은 아주 일품이었다(그는 뒤르켐과 프로이트에 대해서 가장 맛깔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래의 논평은 80년대 학생운동권 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보이며 자기반성을 시도하고 있다.

창비주간논평(06. 11. 07)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 사이에 길을 내자 

최근에 권인숙 교수가 쓴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읽었다.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 군사화의 양상과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인데, 몇가지 점에서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바가 있었다. 우선 우리의 생활양식과 습벽 속에 깃든 군사주의가 분단체제에서 유래하는 것이기에, 권교수의 분석이 분단체제와 일상생활의 내적 연관을 밝히는 뜻깊은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군사주의가 남녀간의 불평등이나 가부장제 문화의 중요한 재생산고리라는 점을 떠올리자 여성학자가 이런 분석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 남성 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해내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화된 군사화가 마음의 습벽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미칠 집단이야 역시 군복무를 한 남성들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점보다 더 내게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은 80년대 학생운동을 다룬 장이었다. 권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이 보여주었던 격렬한 전투성에 대해 새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기존의 설명들은 조금씩 논리를 달리하긴 하지만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학생운동의 전투성을 정당화하는 데 반해 권교수는 그런 설명들의 헛점을 짚으면서 80년대 학생운동세대에는 누가 적인지를 지목해주면 그 적에 대항해서 공격적인 전투성을 표현할 성향이 확립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 논지를 따라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반공글짓기를 통해서 북한을 맹렬히 공격했던, 그래서 상을 타기도 했던 초등학생이 80년대 대학생활을 거치며 열성적인 운동권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린시절 받았던 교육내용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기조차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시위대 앞줄에 각목을 들고 섰을 때 그는 반공글짓기를 통해서 표현되었던 자신의 공격성, 그러니까 비록 동원되고 부양된 것이라 해도 종래 자기 안에 침전되어 성향으로 자리잡아간 공격성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나의 관심을 끈 이유는, 학생운동세대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실은 그들이 타도하려는 대상이 만들어낸 문화적 패턴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단지 학생운동의 전투성에 한정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오히려 그 문제는 그 세대의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며,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문제들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체제의 모체는 87년 민주항쟁이고, 그런 뜻에서 우리 사회체제를 87년체제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그 체제를 수립하는 데 주도적이었던 세력은 386세대라고 불리는 학생운동세대이다. 이 세대는 해방후 한국사회에서 대중적인 동시에 대규모의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학습한 최초의 세대이며, 민주적 가치에 대한 추구와 신념이 뚜렷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 중 일부는 노무현정부 시기에 국가권력의 중심부에 도달했으며, 사회영역에서도 빠른 속도로 중심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의 중심세력이던 그들이 사회 중심부로 진입했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되지도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의 하나는 현재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하고 있는 이 세대의 생활양식과 문화 속에 제대로 성찰되지 않았고 그래서 청산되지 못한 문화적 보수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초기 사회화과정을 지배한 것은 박정희체제였으며, 그런만큼 권인숙 교수가 지적한 군사주의를 비롯한 박정희체제의 부정적 유산과 그것이 부양한 욕망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만일 그런 부정적 유산, 예컨대 가부장적 문화와 관행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다면, 그것은 자기 욕망과 마음의 습속을 깊이 성찰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수립하는 데 힘썼던 민주적 제도가 불러온 사회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민주적 규범에 근거한 요구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불편한 것을 수용하는 태도만 해도 그 이전 세대에 비하면 꽤 진보한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요구와 압박이 없는 영역에서는 기존의 문화적 습속이 여과 없이 그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았다. 우리 사회 성원의 머리 한구석을 짓누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택문제다. 그런데 모두들 어느 지역 무슨 단지 몇평형 아파트를 살지, 그것이 얼마의 재산가치를 가졌는지, 언제 은행융자를 받을지에 대해서만 고심했을 뿐, 어떤 집에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난 십여년간 공적 논의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 집의 구조와 내부에 대한 문화적 표준을 정해준 것은 아파트 공급업자들이 제공한 모델하우스였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존재의 다양함을 표현할 기회를 잃었고 그럼으로 해서 그저 이웃과의 사소한 차이에 부심하고 집값 변화에 가슴이 벌렁거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정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세대가 자기 집도 못 바꾼 형국인데 당연히 이런 상황은 불만족을 낳는다. 그래서 일부는 전원주택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곧 여유층의 재테크로 변질되고 주택업자의 사업아이템이 될 뿐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제 손으로 황토집을 짓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은연중에 낭만적 아웃싸이더로 취급된다. '멋지다, 하지만 글쎄 나는 좀……' 이것이 그들에 대한 다수의 반응이다.


이런 양상에는 80년대적 투쟁이 극복하지 못한 자기 한계가 패턴처럼 어른거린다. 그때 민주화투쟁에 투신하는 것은 희생을 모델로 했다. 그래서 희생에 매혹되거나(그것은 때로 분신을 부를 만큼 치명적이기도 했다) 아니면 희생에서 비켜선 것에 대한 회오와 자기혐오에 빠지는 일이 빈번했다. 운동이 광범위했지만, 공적 대의와 사적 삶 사이의 합리적 연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과 농도의 희생의 분포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패턴에서 독재타도 같은 강한 규범적 요청이 빠져나가면 전위와 대중의 분리가 쉽게 일어나고 사회적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문화적 아웃싸이더로 떨어지게 된다.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을 매개하는 집합적 생활양식이 엿보이지 않는 한, 대안의 추구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적 삶과 공적 삶을 매개하는 생활양식, 현실에 적응하는 것과 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일하는 생활모델의 창출을 위한 끈기있는 노력은 태부족이다. 이에 비해 양자의 분리에 멍하니 자기를 내맡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둘을 매듭지어 묶는 것이 가능할 때에 비로소 아침 신문 사회면을 보며 치솟는 부동산값에 분개하고, 문화면에서 읽는 황토집이나 통나무집 짓는 이의 삶을 몽롱한 향수감정으로 소비하는 분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글러먹었다고 하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일이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욕하면서 조기유학 보낸 아이를 위해 송금하는 일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김종엽|한신대 교수, 사회학) 

 

06.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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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은 한국일보에서 눈길을 끈 기사는 이번 한국일보문학상 후보로 오른 작가 인터뷰 시리즈의 '편혜영/정미경' 편이었다(이 한국일보문학상의 전년도 수상자가 김애란이다). 모두 10명의 작가와 그 작품들이 후보작에 선정된 걸로 아는데, 두 사람은 각각 '사육장 쪽으로'와 '내 아들의 연인'이란 단편으로 후보에 올라 있다.

 

 

 

 

두 작품은 모두 지난 여름호 계간지들에 실렸었고, 마침 나도 읽어본 작품들이다. 더불어, 여기에 기사를 옮겨온 것에서 속내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두 작가를 신뢰하도록 만든 작품들이기도 하다. 나란히 거명되고는 있지만, 작년에 첫작품집 <아오이가든>(문학과지성사, 2005)를 펴낸 편혜영과 이미 연초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정미경은 경륜에서 얼마간 차이가 난다(정미경의 첫작품집은 <장밋빛 인생>(민음사, 2002)이다).  

 

 

 

 

그럼에도, 비단 이 인터뷰 기사가 아니더라도, 두 작가를 내가 나란히 떠올리게 되는 건 안정감있고 개성적인 문체 때문이다. 다루는 주제도 독특하지만 편혜영에게는 그녀의 작품임을 인지하도록 만드는 건조하면서도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문체가 있다. 그리고 정미경에게는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유려하면서도 정밀한 문체가 있다. 이 두 문체가 두 작가에 대한 신뢰를 낳으며 나로선 어느 작가의 작품들보다도 먼저 그들의 작품에 눈길을 주도록 만든다. 반가운 마음으로 두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6. 11. 07)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인터뷰] <2> 편혜영·정미경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천성적으로 착하고 교훈적인 얘기엔 흥미가 없어요. 이질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다 보니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이 발달한 것 같아요.”

작품과 작가의 실제 이미지가 상충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사육장 쪽으로>의 편혜영(33)씨는 그 충돌이 유별나다. 얌전하고 부끄럼 많은 성격을 보면 ‘천상 여자’이지만, 그의 작품은 엽기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통해 독자의 청각과 후각에 극한의 공포를 불어넣는다. “제 소설을 보고 집에 혼자 있을 때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쥐 배 가르며 놀아요’라고 농담했어요.(웃음) 제 작품이 저의 인상과 괴리되는 데서 오는 충격효과가 컸던 것 같아요.”

<사육장 쪽으로>는 평화로운 전원주택 마을의 중산층 소시민이 파산 경고장과 마을 사육장 개들의 습격을 동시에 받게 된, 강렬한 위기의 하루를 그린 단편. “처음부터 중산층의 속물성과 깨지기 쉬운 허구를 드러내자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이미지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생겼어요. 사육되는 개들은 사육장 안에서만 생활하고 삶과 죽음의 방식이 타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도시인과 비슷하기도 하잖아요.”

편씨는 “전에는 문제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 극단으로 이미지를 밀고 나갔는데, 이젠 그런 이미지들에 손이 안 간다”며 요즘의 변화에 대해 말했다. “워낙 강력한 감각이라 중복되면 효과가 체감되게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의 아기가 개한테 물리는 장면도 묘사를 참았는데, 많은 분들이 여전히 잔인하게 느끼시더라구요. 아, 나는 태생이 끔찍해서 이런 걸 너무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자책했어요.”

2000년 등단해 그 이듬해부터 직장생활과 소설쓰기를 병행하고 있는 편씨는 “사무원의 쓸쓸함에 관한 소설은 열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며 웃었다. “사실 소설이라는 게 노동으로선 참 형편없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소설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내가 유일하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혹적이에요. 사회적 인간으로 살다 보면 남들 눈에 보이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많은데, 소설을 쓸 때만은 그런 고민이 없으니까요.”

◆ 심사평: 삶의 부조리 감각적 형상화 탁월
<사육장 쪽으로>는 우리 소설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야생의 상상력이 그로테스크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도시 인근의 전원주택단지를 지배하고 있는 삶의 부조리를 이 소설만큼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소설도 드물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사육장의 개 짖는 소리로 청각화한 이 야만적인 공포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소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삶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놀라운 메타포라고 할 만하다.

편혜영이 이런 종류의 알레고리에 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상적 삶을 특유의 판타지로 추상화하는 알레고리 작가로서의 편혜영의 독특한 위상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은 역겹고 끔찍하며 엽기적인 상상력의 창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사육장 쪽으로>에 이르게 되면 이 작가가 그 기괴한 악몽 아래 하나의 현실적인 밑그림을 살짝 배치해 둠으로써 독자들에게 해몽의 실마리를 제공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섞여있다고 할까. 파산 직전에 이른 가장이 치매에 걸린 노모와 개에게 물어뜯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우리의 현실이 이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상상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문학평론가 신수정)

 

정미경, '내 아들의 연인'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결핍을 다루고 싶었어요. 과도한 자본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뭘 잃어가는가를 그리고 싶었던 건데, 작품 속 주인공과 저를 일치시키는 분들이 많더군요. 문단에 나오니 상류층이 다 되네요."(웃음)

정미경(46)씨의 단편 <내 아들의 연인>은 강남의 유한부인이 극빈한 여자를 사랑하는 아들로 인해 겪는 심리적 갈등을 치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 '나'의 갈등은 중산층 이상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겁니다. 대부분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지만, 과연 그런지 묻고 싶었어요."

주인공이 영문학을 전공한 40대 중년부인이라는 점 등 몇 가지 유사점이 자연스럽게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몇몇 평자들로부터 '가진 자가 바라본 가진 자의 세계'라는 평가를 받았다. "6년쯤 작업하다 보니 오독(誤讀)이란 독자의 고유하고도 즐거운 권리구나 하고 느낍니다. 자본이 주인공이 되면서 자기 삶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쓸쓸하고 비극적인 면을 느꼈으면 했는데, 부유층 삶에 대한 묘사만 눈여겨보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해요."

1987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가정주부로만 살아오다 2001년 계간지를 통해 다시 등단한 정씨는 치밀한 묘사와 풍부한 디테일로 정평이 났다. "계급이나 직업을 묘사할 때 입체감을 주기 위해 디테일 리서치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글에 빈틈이 너무 없어서 숨막힌다는 분들도 있는데, 글쎄요, 뒤늦게 소설을 시작하면서 군기가 강하게 잡혀서 그런지 어떤 때는 단편 하나를 몇 달씩 주물러요."

<내 아들의 연인>은 가난한 연인과 헤어졌다는 아들의 말에 주인공이 묘한 안도감과 공허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끝난다. "이제 가난은 돈의 문제만이 아니에요. 돈 외에도 다양한 자본과 권력들이 있고, 부(富)라는 것도 부정한 부와 성실한 부 등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삶이 훨씬 복잡해진 만큼 빈부의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시각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지난 6년간 친구들과의 교유조차 끊으며 소설쓰기에 매달려왔다는 정씨는 지금에서야 늦게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휴, 이거 젊어서부터 했으면 지금쯤 골병 들었을 거예요."

◆ 심사평: 상류층 묘사 소설사적 공백 메워
정미경의 소설은 전형적인 부르주아 소설이다. 소설이란 장르가 원래 부르주아 계급의 출범과 그 기원을 같이 한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간 한국 소설은 소위 최상류층 유한계급의 일상을 다룬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소설은 계급 문제에 관한 한 항상 도덕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한계급의 삶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설적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내 아들의 연인>이 문제적인 첫 번째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정미경의 소설이 비도덕적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아들의 연인>은 유한계급에 속하는 중년 부인을 화자로 등장시켜 계급 간 단절의 강고함을 다룬다. 계급은 경제의 산물일뿐만 아니라 부르디외 식으로 표현해 문화적 '구별짓기'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계급간 갈등이란 강자가 약자에 대해 베푸는 온정이나 약자가 강자에 대해 행사하는 투쟁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란 사실을 세심하게 보여준다. 19세기 영국 소설들의 예에 육박하는 섬세한 세부묘사와 심리묘사가 가히 압권이거니와, 손쉬운 온정주의와 도식적인 화해를 거부한 작가적 치열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문학평론가 김형중)

06.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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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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