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뉴스에 작년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김언수의 <캐비닛>(문학동네, 2006)에 대한 소설리뷰가 실렸길래 스크랩해놓는다. 필자는 젊은 평론가 복도훈씨이다. "<캐비닛>과 더불어 한국문학은 이제 또 한 명의 괴물 같은 작가를 갖게 되었다."(류보선)는 평이 있을 만큼 작품은 지난해에 거둔 한국소설의 수확 가운데서도 두드러진 케이스이다.

컬쳐뉴스(07. 01. 19) 캐비닛, 소설의 산해경(山海經)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일까? 흥미롭고도 진지하며 슬프도록 유쾌한, 지적인 분석과 멜랑콜리한 아포리즘이 결합하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들의 무진장한 꽃다발인『캐비닛』을 읽으면서 내내 품었던 물음이다.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일까. ‘구라’가 장난이 아닌『캐비닛』의 서술자가 들려주는, 한순간에 기억을 상실하고 한참 후가 되어서야 남태평양 섬에서 깨어난 한 타임스키퍼에 관한 13호 캐비닛 보고서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다가, 타임스키퍼라는 별종이 백년 묵은 신흥종교인 자본주의라는 제단(祭壇)이 요구하는 불우한 희생양이 아닐까하고 읽던 책을 접고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다가, 13호 캐비닛에서 꺼내어져 마술의 양탄자처럼 펼쳐질 다음 이야기들이 마저 궁금해져 서둘러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새 몇 쪽 남지 않은 책장의 부피를 못내 원망하며 한편으로는 이게 끝인가, 하고 갸우뚱해가다가, 가까스로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만드는 소설이 좋은 소설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럼『캐비닛』은 도대체 어떤 소설인가.『캐비닛』의 한 구절처럼,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마지막 종, 그리고 새로운 종의 탄생 사이에 존재하는 돌연변이들에 대한 믿거나말거나 “인류학 박물지”인가? 아니면 그 온갖 '심토머'(symptomer)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해부인가. 그들을 만들어낸, 적어도 IMF 이후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생리학에 대한 풍자와 비판? 심토머들마저 관리하고 화폐로 환산하려는 체계들, 군대, 학교, 회사의 규율들에 대한 저항과 거부? 작가가 생각하는 형식주의적 소설론에 대한 의미심장한 선언적 알레고리? 자본주의적 망딸리떼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분석, 허구의 인물인 아랍의사들의 의학논문과 다윈적 진화론, 블랙유머의 대화들, 갖가지 우화와 기담, “이쑤시개의 존재론적 본질”에 대한 에세이적 사변과 시적 아포리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곰탕 뚝배기 소설론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작가 특유의 구라와 능청이라는 긴 대꼬챙이에 줄줄이 북어 엮이듯 엮인『캐비닛』은 이채로운 부분들의 총합이되, 부분으로 환산되지 않으면서도 총합을 뚫고나오는 과잉과 혼돈의 마술램프라고 부를 수 있다.

『캐비닛』이전이라면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8, 90년대의 동사무소에서나 볼 수 있었던, 냄새나는 추리닝과 테니스 양말 한쪽, 바람 빠진 축구공과 기한이 다 된 자료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이고 구겨 넣어져 쾅하고 닫힌,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이 낡아빠진 13호 캐비닛에서 황당무계하면서도 현실적 연관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들이 이처럼 마구 쏟아져 나올 줄이야.『캐비닛』을 읽다보면 주(鴸)라는 새가 나타날 때 그 고을에 귀양 가는 선비가 많아지고 비(蜚)라는 짐승이 지나간 자리에 풀과 물이 말라 천하에 큰 돌림병이 생긴다는 식의 수백의 이야기들이 적힌 중국의 기서(奇書)『산해경(山海經)』을 자꾸만 연상하게 된다. 물론『캐비닛』의 심토머들이 해악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고 더군다나 상서로운 것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들임은 부언해야겠지만.

『캐비닛』, 21세기 한국판『산해경』에 실린 심토머들은, “진료과목이나 상담분류표” 등 합리성의 잣대로는 분류가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분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괴물에 가까운 존재들처럼 보인다. 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문방구 사내, 혀에서 붉은 혀를 내미는 도마뱀이 자라는 여자, 신용이 중요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시간을 잃어버린 타임스키퍼들, 자신의 분신을 만나는 '도플갱어'들, “시간이 곧 돈으로 환금되는 21세기”에 긴 잠을 자는 '토포러'들, 불행한 기억 대신 행복한 위장기억을 소유하는 '메모리자이커'들, 일명 어지자지 또는 남녀추니로 불리는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외계인 무선통신 회원들, 육체를 마음대로 바꾸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다중소속자들,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들, 침대 밑에 악어가 숨어있다고 호소하다가 악어에게 실제로 잡아먹힌 망상증적 '블러퍼'들.

그러나『캐비닛』에서 이 돌연변이들, 저마다 증상(symptom)을 호소하는 그들은 괴물처럼 보이지만, 시장이나 체계에 위협적인 존재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도심에서 외롭게 앓고 미쳐가지만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지극히 불쌍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우선 ‘앓는’ 자들이다. 소설 후반부의 키메라 파일을 둘러싼 납치와 감금, 탈출의 에피소드가 암시하듯, 심토머들 중 일부는 관리되고 교환되는 최신유전자정보를 소유한 값비싼 상품이지만, 대부분의 심토머들은 상품가치조차 없는, 버려진 존재들이다.『캐비닛』의 서술자이자 주인공 공덕근이 앓는 그들과 직접 만나거나 상담전화를 받고 충고해주는, 그 역시 증상을 가진 존재이면서도 더러 우뚝 서서 혼잣말을 내뱉거나 흥미롭고도 솔깃한 사례들만 소개하거나 둔탁한 사변을 늘어놓는, 다소 아슬아슬하고도 좌충우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유사분석가의 캐릭터로 설정된 것은 그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캐비닛』의 장점은 활달하게 말할 줄 알면서도 동시에 잘 귀 기울이고 세심히 듣는 소설이라는 특질에 있을 것이다.『캐비닛』은 시장과 체계에 대한, 시장과 체계가 낳은 돌연변이들의 반란을 그린 원한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시장의 잉여생산물들, 체계의 폐기물들인 돌연변이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의 “억지와 하소연”을 듣고 (샴쌍둥이였지만 지금은 혼자 살아가는 “안개꽃 같은 여자”인 안(眼)과의 만남에서처럼) 때론 안아주며 (“먼지 날리는 환풍기 아래에서 밥을 먹는” 거구의 독신녀 손정은과의 관계에서처럼) 때론 안기기도 하는, 위무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심토머들의 애환과 울혈, 외로움과 비존재감이 환기시키는 현실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산해경』이 고대 중국의 한 시대에 대한 우언(寓言)인 것처럼,『캐비닛』은 21세기, 구체적으로는 IMF 이후, ‘주’와 ‘비’가 활개치고 활보하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종신고용제가 무너지고 비정규직과 실업에 잠식당한 IMF 이후의 한국의 경제적 현실에서 산업예비군이나 임노동자에게 명백하게 드러난 가장 큰 증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불안일 것이다. 특별히 고용불안만은 아닌 이 불안은 일찌감치 발터 벤야민이 성찰한 것처럼, 자본주의가 앓고 있는 증상 중 하나다.

『캐비닛』에서 타임스키퍼들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는 자본주의가 불안과 걱정을 회피하려는 종교적 강박증과 연결되어 있다는 성찰과 탁월하게 결합한다. 타임스키퍼들은 그들이 시간을 전부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최상의 인간들이지만, 실제로는 불안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을 특정하게 반복되는 의례와 규칙에 종속시키려 매순간 긴장하고 애쓴다는 점에서 강박증자들과 흡사하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의례와 규칙을 수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소설에서 타임스키퍼들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가 어느 날, 전혀 상이한 시공간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은 그들의 비존재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자본주의에는 휴일(holiday)이 없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특정 교리도 신학도 모르며 십자가조차 없는 자본주의라는 신흥종교에는 평일이란 없으며, 매일매일은 강박증적 신도들이 극도의 긴장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축제일(holiday)뿐이다. 서술자의 말을 빌면, “에브리데이가 할리데이”인 것이다.

이쯤 되면,『캐비닛』을 자본주의의 증상학으로서의 소설로 정의해도 무방하다.『캐비닛』의 첫 부분, 상피에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상피에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둑 루저 실바리스의 일화와 마지막 부분과의 연결은 다소 무리하다싶다. 그렇지만, “개껌이라도 질근질근 씹어 먹고 싶은 지독한 무료함으로” 가득 찬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자발적으로 망명, 13호 캐비닛의 자료들을 옮겨 적는 서술자를 묘사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자본주의라는 망망대해로부터 유폐된 자리에서 선언된, 소설쓰기에 대한 작가적 자의식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예컨대, 작가와 더불어 이렇게.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 바야흐로 독자들은『캐비닛』과 더불어 새로운 소설 종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07.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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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07-01-1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중편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를 관심있게 읽은 독자로서 기대가 되긴 하는데, 이상하게도 클릭이 더뎌지네요.

로쟈 2007-01-20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뭐 아껴두시죠.^^
 

인터넷 한겨레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띈 글을 옮겨놓는다. '한겨레 필진'인 박노자 교수의 '만감: 일기' 한 꼭지이며 '박노자 글방'에 올려져 있다. 제목은 좀 길어서 축약해놓았다.

박노자 글방(07. 10. 19) 제정 러시아 ㅡ 대한제국을 식민화할 구체적인 계획은 있었는가?

오늘 모스크바에 있는 한 선배로부터 새해 선물 (?)로 러시아의 한국학 원로 보리스 박 선생의 역작, (<러시아와 조선>, 증보판, 모스크보, 2004)를 즐겁게 받았습니다(*'모스크보'는 '모스크바'의 오타이겠다? 한데, 제목을 굳이 <러시아와 한국> 대신에 <러시아와 조선>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대한제국'만 하더라도 '조선'은 아니지 않나? ). 1970년대에 나온 제1판이야 저희들의 교과서이었지만 증보판을 거의 처음으로 봤어요(*520쪽의 두툼한 책이다. 2004년이면 나도 모스크바에 있을 때인데,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Россия и Корея

저는 이 책을 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을 풀려고 했어요. 요즘 한국 보수의 일각에서는, "러시아도 대한제국을 식민화하려 했으니 일본이 러일 전쟁을 발발시켜 한반도 점령한 것이 일종의 자위권 행사"니 "일본에게 먹힌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 대신에 러시아에게 먹혔으면 결국 공산화됐을 것"이니 제정 러시아의 "한반도 점령 의도" 관련의 발언들이 많고, 대체로 일본과 동격으로 보려 하더랍니다.

여기에서 일단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제가 러시아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제정 러시아를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할 추호의 의도는 없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자기 나라 제국주의부터 공격하라"는 레닌적인 "혁명적 반제주의" 입장에 있고, 지금도 이라크 독립 운동을 지지하는 한편 체첸의 독립 운동도 동시에 지지합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지만 제정 러시아는 정말로 대한제국의 식민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는가요?

물론 제정러시아는 대한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침략적 외세이었음은 두말 할 것은 없지요. 그 전에도 별나별 짓거리를 다 했었지만 1900년에 이범진 공사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범진이 원래 친러적 성격의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망국을 좌시할 수 없는 애국자이었지요) 압록강 근방에서의 벌목 이권을 억지로 따내고, 1903년부터 용암포에 군인들을 침투시켜 사실상 대한제국의 영토 주권을 침범한 것은, 역시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지요. 그리고 1903년에 일본과 만한교환을 논했을 때에 "한반도에서 39선 이북에서 중립 지대를 설치해 일본 군대를 주둔하지 말 것"을 조건을 달아 "한반도에서의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수긍하려 했었지요.

결국 일본은 이 조건을 거부해 전쟁으로 갔었지만 만의 하나에 이토 히로부미 의견대로 러시아와 타협했다면 아마도 39선 이북에서의 러시아의 경제적 침투부터 만만치 않았을 걸요. 이외에는 알렉세에브 총독과 같은 그 당시 러시아의 고관대작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반도까지의 유라시아의 문명화의 사업"을 운운하면서 결국 러시아가 이기기만 한다면 한반도도 마땅히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가야 할 것임을 시사했었지요.

그런데, 39선 이북 지역의 중립화 요구와 그 지역에의 경제적 침투 계획 (한반도 분단의 아주 거친 청사진이라 할까요?), 마산포와 목포에서의 부동산 사들이기 (해군 기지 때문에), 그리고 모호한 "러시아 영향권에의 한반도 편입" 이야기는 사실이었지만 여태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신뢰한다면 "한반도 식민화"의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러시아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898년에 주한 러시아 공사의 함경도 병합 관련 의견서, 1899년3월18일의 알렉산드르 미카일로비치 대공의 한반도 이북 지역 "경제적 장악" 관련 의견서 정도는 거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계획서"의 전부입니다. 물론 연구자들의 의도적인 은폐나 문서 보관의 부실성 등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일단 1900-1904년간의 한반도에서의 러시아의 정책 흐름으로 봤을 때에 아마도 대일 승리시에도 계속 이용익, 이범진과 같은 친러파 대리인들을 내세워 고종에게 따낼 것 따내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영국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식민화는 물론 한반도의 보호국화마저도 제정 러시아로서는 이득에 비해 손실이 너무 많이 가는 무리수이었을 걸요.

물론 러시아가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영국 등의 유럽의 매이저들에 비해 형편없이 약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국제적인 약탈 행위를 벌였을 때에 러시아가 영-불-독에 비해 양심적인 적은 없었지만 일단 산업적 기반과 재정이 약한데다 파리 시장에서 늘 돈을 꾸어 적자를 메꾸는 주제에 눈치 볼 게 하도 많았지요. 그래서 "일본에 안먹혔으면 러시아에 먹혔으리라"와 같은 일부 수구주의자의 주장에는, "러시아가 일본보다 좋은 게 없었지만 일단 패권 국가 영국과 신흥 패권 국가 후보생 미국의 친구는 러시아가 아닌 일본이었기에 러시아의 승산이 어차피 적었으며, 러시아가 이긴다 해도 영국 등의 압력이 계속돼 아마도 계속 고종의 정권을 이용하여 간접적 영향력 행사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리고 구체적인 식민화 계획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답할 수 있을 듯합니다.(*방점은 '아직'에 있는 것인가?)

07. 01. 19.

Корея в огне войны

P.S. 내친 김에 러시아의 대표적인 인터넷서점 오존(www.ozon.ru)에서 '한국(корея)'을 검색해봤다. 음반과 DVD까지 다 포함해서 74종의 목록이 뜬다(엉뚱한 책들이 껴 있기 때문에 진짜 관련서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최근에 나온 책들을 훑어보다가 가장 흥미를 느낀 건 '20세기의 역사' 시리즈의 하나인 <전쟁의 포화 속의 한국>(2005)이다. 544쪽의 두툼한 책이고 발행부수는 1,000부. 제목 그대로 1950-53년까지의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 3인이 모두 러시아학자들이다. 그간의 '비밀'에 대해서도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소개도 포함돼 있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한 책이다. 한데, 오존에는 품절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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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돌아오니 책상에 작은 소포가 놓여있다. 물론 책이다(오늘도 세 개를 받았다). 아마존에서 온 걸 뜯어보니 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는 지젝의 <라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007)가 들어 있다(*들은 바로는 국역본이 곧 나온다고 한다).

이미지보다 별로 크지 않은 '포켓북'이다(한동안 전철에서 읽을 책이 정해졌다!). 지난 3일에 주문을 했으니까 보름 정도 걸린 셈이다. 책값보다 배송비가 더 비싸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이지만(합계 21.9불이다), '지젝'이라서 참아두기로 했다(이 시리즈의 최신간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이며 나는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했다).  

Этика психоанализа. Семинары. Книга 7. (1959-60)

이런 입문서들이 대개 그렇듯이 색인 앞에 붙은 마지막 장은 추천도서 목록이다. 라캉에 대해서라면 물론 <에크리>와 <세미나>를 읽어야 한다. 지젝의 권고는 반드시 둘다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어느 하나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게 지젝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둘을 겹쳐서, 잇대서 읽어야 하다. 사위인 밀레르가 편집하고 있는 라캉의 <세미나>는 국내에 단 한권도 출간돼 있지 않지만 불어로는 절반 이상이 출간됐으며 영어로는 1-2년의 터울을 두고 계속 번역되고 있다. 러시아어로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세미나7: 정신분석의 윤리>(2006)이다.

 

 

 

 

지젝의 설명에 따르면 예컨대 이 <세미나7>과 <에크리>에 실려 있는 '칸트와 함께 사드를' 같은 글을 같이 읽어야 한다는 것(물론 우리로선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세미나>건 <에크리>건 번역돼 있지 않으니까. 몇 편의 글이 <욕망이론>(문예출판사, 1994)으로 번역돼 있으나 불어본 <에크리> 이상으로 읽기 어렵다(이루어지지 않는 게 욕망이라지만 라캉 읽기에 대한 욕망만큼 이를 실증해주는 게 또 있을까?). 거기에 비하면 지젝은 얼마나 경쾌하며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

이어서 지젝이 제시하는 최고의 2차 문헌들(지젝은 이하의 책들을 화끈하게 'the best'라고 소개한다). 몇 권은 그래도 국내에 소개돼 있어서 나의 손끝이 가볍다. 제일 먼저, 가장 짧은 최고의 입문서는 숀 호머의 <라캉 읽기>(은행나무, 2006). 그리고 라캉 임상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는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정신의학>(민음사, 2002)과 다리언 리더의 <왜 여자들은 부치는 편지보다 더 많은 편지를 쓰는가?>(1996). 목록에서 내가 안 갖고 있는 유일한 책이다(몇 달전에 도서관에 주문해놓았지만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다리언 리더는 국내에 소개된 <라캉>(김영사, 2002)의 저자이다.

 

 

 

 

라캉과 철학에 대한 에세이는 조안 콥젝의 <나의 욕망을 읽어봐>(1994)와 알렌카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도서출판b, 2004). 콥젝의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와 함께 근간 예정인 것으로 안다(콥젝의 글은 <성관계는 없다>에서 읽어볼 수 있다).  

그리고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최고의 라캉주의적 독해는 에릭 샌트너의 <나만의 사적인 독일>(1996)과 믈라덴 돌라르의 <단지 목소리뿐>(2006). 돌라르는 알다시피 지젝의 단짝으로 지젝과 함께 슬로베니아의 이론정신분석학회 최초의 멤버 2인 중 한 사람이다. 

거기에 아직까지는 라캉에 관한 최고의 전기로 꼽히는 루디네스코의 <자크 라캉>(새물결, 2000). 이만한 분량으로는 유일한 전기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지젝에 따르면 몇몇 논란이 될 만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가장 방대한 전기적 자료를 제공해주는 책이라고.   

마지막으로 라캉에 관한 최고의 웹사이트, 는 여전히 www.lacan.com 이다.

07. 01. 19.

P.S. 지젝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건 겸연쩍은 일이었겠지만, 내가 꼽는 최고의 라캉 입문서는 물론 지젝의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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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1-19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문고는 이용안하시나요. 교보에서 주문하신 라캉책 12000원에 뜨는데요.

로쟈 2007-01-1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땐 제가 성미가 급해서 바가지를 쓰기도 합니다.--;

에바 2007-01-1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던 페이퍼였는데 드디어 책이 도착했군요. 저는 일단 학교 도서관에 신청해 두었는데 책이 도착한 듯 싶습니다. 추가 페이퍼도 기다리겠습니다.^^

로쟈 2007-01-1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가 페이퍼는 에바님이 쓰셔도 좋을 듯한데요.^^

기인 2007-02-2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다시 라깡을 공부하게 될 수도.. 왜냐하면 다시 알튀세를 공부하게 ‰映?때문이죠. 이는 다시 제임슨을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결국 그 라깡으로 간다면!!! -_-; 최대한 알튀세에서 멈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ㅎ
 

며칠전 '잠적할 때 들고가고픈 책'을 꼽으면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읽은 신문에서 공감하며 읽은 칼럼이 이 '오래된 정원'에 관한 것이어서 옮겨놓는다. 문화평론가 남재일씨가 쓴 기명 칼럼이다.

경향신문(07. 01. 19) '오래된 정원’ 누가 지켰나

마흔 살의 전문직 여성 K는 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가 운동권 주변을 오가다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인문학을 전공한 운동권이었다. 둘은 오랜 연애 끝에 ‘동지적 사랑’으로 결혼했다. 남자는 결혼 후 가정을 돌보지 않고 사회운동 언저리를 맴돌았다. 가계를 꾸려 나가는 것은 여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자는 불만이 없었다. 그게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지적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벌어 주는 돈으로 공부를 하고 바람을 피웠다. 둘은 이혼했다. 여자는 현재 유통되는 ‘운동권’이란 말에 약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또 다른 386여자 Y는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당한 경험이 있다. 그녀 역시 운동권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초기 둘은 잘 지냈다. 남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여자 역시 안정된 직장을 구해 사회생활을 잘했다. 몇 년 뒤 둘은 이혼했다. 남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여성스러움을 찾았고, 여자는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여자는 자신이 대학시절 여성스러움을 과도하게 억압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여자는 요즘 20대 여성들을 보면 부럽다고 한다.

주변에 있는 386 여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386 운동권’이란 말에 까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적지않다. 적당히 운동한 경험이 있는 여성일수록, 결혼이든 연애든 운동권 남성과 사적 관계를 맺은 여성일수록 그런 성향은 더 강하다. 아마도 진보를 표방하는 시대와 남자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이제 80년대를 여성에겐 매우 억압적인 시대로 인식한다. 남성의 경우는 다르다. 운동을 했건 안했건 80년대를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던 과거로 회고한다. 미디어에 재현되는 80년대의 이미지도 거의 예외없이 이 어조를 깔고 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정치민주화의 주역이 자긍심에 차서 뒤돌아보는 자신들의 청춘시절이 80년대다. 진보를 자처한 386세대에 유난히 여성들의 존재가 미미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상수 감독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오래된 정원’은 황석영 원작의 전형적인 운동권 후일담이지만 영화는 좀 다른 각도에서 80년대를 본다. 시국사범으로 수배중인 인물과 그를 숨겨주는 시골 학교 미술교사의 러브스토리인 이 영화의 초점은 여자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다. 분신을 하는 인물도 여자이다. 그들은 남자에 ‘엮여서’ 운동에 참여한다. 반독재의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운동의 방식은 철저하게 타인의 방식을 강요당한다. 그 방식은 남성의 방식이자 폭력의 방식이다. 그것이 시대적으로 불가피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영화는 시대의 요구에 이끌려 자신의 방식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386 여자들을 그린다. 그게 어디 여자뿐이겠는가. 반독재라는 대의와 투쟁이라는 방식의 부조화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 전 한 일간지에 학생회장 출신의 386 정치인 두 명과 기자의 대담이 실렸다. 거기서 두 정치인은 ‘386 진보이념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살아보니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참 웃겼다. 80년대 386세대의 노고가 몇몇 학생회장 출신 정치인들의 현재와 과거로 재단되다니. 실패한 것은 386의 이념이 아니라 386의 노고를 개인적 권력으로 전유한 정치판 386들의 미숙한 현실정치 일터인데도 말이다. 진보 이념은 일상적인 실천에 의해 사회속에 점진적으로 스며들지언정 ‘나의 단기적 성과’를 갈망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좀체 이룩되진 않는다. 정원을 오래 지키는 것은 무명의 잡초와 들꽃들인 모양이다.(남재일/ 문화평론가)

07. 01. 19.

P.S. 필자는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이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평으로 잘 알려져 있다(나는 <씨네21>의 칼럼란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듯하다. 김규항만큼 날카롭지는 않지만, 이 칼럼을 읽어보니 오버하지도 않는군). 대표작(?)은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강, 2006). 제목이 액면 그대로 저자의 포지션을 말해주는 듯하다. 작년에 구내서점에서 자주 보고 자주 지나쳤던 책인데, 언제 도서관에서 대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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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07-01-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드뎌 로쟈님 방주에 남재일이 등장했도다. 문체면에서 김규항이 (이오덕의 영향을 받아) 무만 넣은 동치미처럼 알싸하게 접근한다면, 남재일은 배나 밤 등속이 알맞게 들어간 백김치 같다고나 할까요?

'살아보니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요런 말 주절이는 자를 혐오하는 건 김규항이나 남재일이나 닮았네요. 실은 저도 조금 혐오해요. 로쟈님은?

춤추는인생. 2007-01-1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재일님의 대표작으로는 인터뷰집 나는 편애할때 자유롭다를 꼽고싶어요.
어떤부분에는 바늘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글쓰기의 표본을 보여주시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에 나와있는 감독 임상수 작가 김훈의 인터뷰가 꽤 인상적였어요 ^^ 오래된 정원은 개봉날 뛰어가서 보고왔는데요.
쿨하다
팔짱끼고 뒤에서 보는 시니컬함은 임상수감독의 색체 그대로더군요...

로쟈 2007-01-1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들이 많으시네요.^^ 저는 아직 책으로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살아보니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다는 거였다'면, 자진해야죠...
 

오늘 주문한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라마찬드란 등의 <두뇌실험실>(바다출판사, 2007)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는데, 사전 주문을 하면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 2005)까지 끼워준다고 해서 '막판'에 주문을 넣었다. 그렇기도 하고 전작인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바다출판사, 2006)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바 있는 데다가 두어 달 전에 구하기도 해서 내친 김에 라마찬드란 컬렉션을 갖추기로 한 것(두 권이니까 컬렉션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저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인도 태생의 뇌과학자이고, <뉴스위크>가 뽑은 21세기 가장 주목해야 할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고 한다. 출간된 첫해에 <이코노미스트>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었다는데, 그 '첫해'란 지난 1999년을 말한다.

사실 뇌과학 내지는 대뇌생리학의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내는 저자의 원조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이다. 작년에 한 출판사에서 재출간됐지만, 나는 지난 93년 살림터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을 갖고 있었다(어디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때는 사실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책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화성의 인류학자>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일약 (준)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국내에서 최근 몇 년간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심리학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라마찬드란은 그 바톤을 이어받는 저자인데, <두뇌실험실>의 서문 또한 올리버 색스가 쓰고 있다. 그의 말: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은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신경학 책이다."

내용 소개를 읽어보면, 다 두뇌의 특정 부위 손상으로 말미암아 이런저런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의 임상사례집처럼 보인다. "사고로 한쪽 팔을 읽었지만 계속해서 환상 팔이 움직이는 생생한 감각을 느끼는 아마추어 운동선수, 뇌졸중을 겪은 후 웃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사서의 이야기. 또 머리에 끔찍한 중상을 입은 후 자신의 부모가 복제인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한 젊은이" 등. 

"뇌과학계의 ‘셜록 홈스’라고 불리는 라마찬드란은 이 책에서 그가 해결한 가장 이상한 사례들과 함께 그것들이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통찰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면봉이나 거울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이용해, 사라진 팔이 실재한다고 느끼는 환자에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환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경병 환자들을 연구한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과학자도 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인간 본성의 심오하고 미묘한 질문들에 답한다. 우리는 왜 웃거나 우울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며, 또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꿈을 꾸는가? 우리는 왜 신의 존재를 믿는가?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마지막 남은 의학적 미개척지에 대한 의학적 탐사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흥미로운 지점은 각각의 임상사례로부터 '인간의 마음'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 대한 탐사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뇌과학계의 '홈스'와 색스는 그 유력한 길잡이가 되겠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란시스 크릭은 이렇게 적었다: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음주면 나도 읽어볼 수 있겠다...

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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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1-18 23:08   좋아요 0 | URL
이거 교양선데요...

로쟈 2007-01-18 23:31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형기증'에도 오타가 있네요.^^ 좋은 아침 맞으시길...

비로그인 2007-01-18 23:34   좋아요 0 | URL
로쟈님 뇌과학에도 관심 많으신지요? 교양서 수준의 책들은 거의 범람할 정도인 듯한데 .. ( 읽어봐도 감흥이 오는 책이 별로 없어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 있길래 반색했었는데 품절이더군요;

로쟈 2007-01-18 23:42   좋아요 0 | URL
몇몇 저자들만 읽습니다. 아주 유명한 책이라든가.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뇌과학이나 인지주의쪽에도 시선이 가게 되네요. 아니 원래는 별개의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다치바나의 책은 갖고 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에바 2007-01-19 00:21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지젝의 <시차적 관점> 뒤에 있는 색인을 보니 조지프 르두의 이름이 보이던데 지젝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체없는 기관>에선 데닛에 대해 꽤 호의적인 것 같은데요? 물론 어려운 내용이라 이해는 잘 못했습니다. ㅜㅜ

로쟈 2007-01-19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시차적 관점>을 갖고만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르두에 대해서는 'Synaptic Self'란 책을 인용하면서 두 페이지 정도 할애하고 있네요. 데닛에 관한 대목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올리도록 하지요. 나중이라...

sommer 2007-01-19 01:05   좋아요 0 | URL
에바/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인지과학을 '자유'와 연관지어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대로 거칠게 말씀드리면, 자유를 자기 의식의 환상으로 설명하는 인지과학의 입장을 '자유와 필연성'의 일치로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운명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서 운명 자체에 이미 필연적으로 그 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예로 들고 있더군요...지젝에게 자유는 계속해서 리버럴한 것에 대한 부정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네요...

머큐리 2007-01-19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사전주문해서 화성의 인류학자를 받고 싶은데... 지금은 안하나여?

이네파벨 2007-01-19 09:21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사이언스올제라고..Scientific American의 한국판 번역에 참여할 때...라마챈드런 박사의 글(공감각에 관한)을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글을 재미있게 잘 쓰셨던걸로 기억...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이라는 잡지...정말 멋집니다. 한동안 구독해보다가..자꾸 밀려서 지금은 안보고 있지만...약간의 지적 소양을 갖춘 비과학자 일반 대중이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좋은 매체죠...단...염치없는 이야기지만...국내 번역판보다 영어로된 SA 를 읽는 편이 이해가 빠릅니다. ^^)

사전주문...지금도 유효한지 달려가봐야되겠네요~ 지가 공짜라면 사족을 못써요..호호

이네파벨 2007-01-19 09:23   좋아요 0 | URL
X...벌써 이벤트 끝났나봅니다.
책값도 비싼데...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봐야쥐..흥...

로쟈 2007-01-19 11:16   좋아요 0 | URL
제가 본문에 '막판'이라고 적어드렸는데요.^^;

Runa 2007-01-19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 이미 10년도 더 전에 철학동네에서 데넷 등의 인지이론을 통해 자유의 문제를 나름대로 제기한 책이 있지요. 이정원선생님께서 쓰신 <의식과 자유>(동녘)라고. 갠적으론 존경하는 선생님의 사모님이기도 하고, 전공쪽으로도 들뢰즈의 영화철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신 몇 안 되는 분들 중 한 분이죠. 당시로선 아주 앞선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더구나 윤리학 차원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지만, 스피노자의 행동학적 관점과 통하겠죠. 요즘 철학쪽에서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오래된 책은 잘 모르실거 같아 그냥 소개해요.

로쟈 2007-01-19 13:21   좋아요 0 | URL
책은 알고 있습니다. 얇은 책이어서 그냥 넘어갔더랬는데, 깊이 있는 책이었나 보네요...

moonnight 2007-01-19 14:25   좋아요 0 | URL
앗.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색스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만 읽었어요. 무지 재미있었는데도 화성의 인류학자. 랑 나는 침대에서.. 는 사놓고 아직 못 읽었어요.; 두뇌실험실도 색스의 것만큼 재밌을까요? 로쟈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로쟈 2007-01-19 16:19   좋아요 0 | URL
색스가 추천하는 책이니까요. 한데, 제 리뷰를 기다리시면 안되는데요. 1년에 두어 개 쓰는 형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