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지만 매주 책들은 쏟아지고 그 중 주목할 만한 책들이 10여 권 정도 언론의 리뷰를 탄다(단평까지 포함하면 20-30권쯤 되겠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책들은 물론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관심을 제약하기 때문이다(그러고도 '책벌레'란 소리를 듣는다!). 금요일자 한겨레의 북리뷰들을 대충 훑어보다가(읽을 시간도 없다!) 이 주의 책으로 혼자서 꼽은 건 앨런 그로스의 <과학의 수사학>(궁리, 2007)이다.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 경우에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의외성'이다. 즉, '예기치 않은 책'에 아무래도 눈길을 주게 되고 <과학의 수사학>은 그런 책이다. 이때 수사학은 물론 '과학 수사'와는 전혀 무관한 '레토릭'을 말한다. 부제대로 하자면,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룬 (아마도 드문) 책이다. 원저는 지난 1990년에 출간됐다고 하니까(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왔다) 나이 좀 먹은 책이다. 관련리뷰를 먼저 읽어두고 언제쯤 구매할/읽어볼 것인지 가늠해본다.  

한겨레(07. 03. 09) 과학도 철학처럼 ‘설득의 산물’

백과사전은 ‘과학’을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이런 규정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으로 분석 가능한 정치적인 것, 사법적인 것, 나아가 철학, 문학비평, 역사 등과는 달리 과학에 절대적 신화나 특권을 부여한다.

<과학의 수사학>(궁리 펴냄)은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유래의 고전적 정의와 달리 수사학적 분석 대상이 가능하다는 걸 ‘설득’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앨런 그로스는 과학적 주장들도 단지 ‘설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이 ‘자연의 원초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지식이 아니며, 문제가 선택되고 결과가 해석되는 과정은, 설득을 통해서만 중요성과 의미가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수사학적이라는 것이다. 수사학적 관점으로는 과학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뉴턴은 1672년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광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 서설>의 부록에서 ‘백색광이 기본이며 색은 백색광의 변형으로 이차적인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백색광은 이차적인 것으로, 가시 스펙트럼의 모든 빛들이 합성된 결과’임을 밝힌 논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전통적 관점·방법들과 대립함으로써 ‘설득’에 실패했다. 결정적 실험의 설득 능력은 실험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에도 , 뉴턴의 논문은 결정적 실험에 대한 어떤 그림도, 분명한 실험방법들도 결여돼 있었다. 30여년 지나 1704년 뉴턴은 <광학>을 출간해 2차 시도를 한다. 뉴턴은 “데카르트가 한 일은…훌륭한 발걸음이었다.…만일 내가 더 멀리 내려본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광학>에 역사적 연속과 논리적 불가피성이라는 인상을 부여했다. 또 세밀한 실험을 거듭해 ‘압도적 현존감’을 창조했다. 그는 <광학>의 말미에 수사학적 질문을 쏟아내 실험에 의해 확실해진 것과 불확실한 채로 남은 것을 구분함으로써 질문 이전에 제시된 결론들의 ‘과학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로스에게 뉴턴의 <광학>은 ‘수사적 개종’을 통해 성취된 ‘수사학의 걸작’이다.

저자는 과학에는 종종 잘 숨겨져 있지만 수사학이 내포돼 있으며, 정치연설과 학술논쟁, 과학논증의 영역에는 서로 닮은 꼴(유비)이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새로운 ‘종’의 발견은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구분과 분류에 대한 설득을 통해 ‘창조’됨을 보여주고 있다. 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의 회고담 <이중나선>이 담고 있는 설화 서사구조와 왓슨과 크릭의 논문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DNA 구조의 실재는 설득을 위해 사려분별 있게 사용된 말과 수사, 그리고 그림의 결과들”이라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그로스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성의 개종’을 요구한 수사학적 혁명으로 해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이 이성의 혁명이기 위해서는 정밀관측과 틀림없이 일치하고 정확한 물리학에 부합하는, 수학적으로 깐깐한 체계가 돼야 했지만, 이런 이상적 설명은 그가 죽고나서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에야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가 증거와 논증이 아니라 ‘선전, 감정, 임시방편의 가설, 선입견에 대한 호소’ 등 비이성적 수단들에 의해 지지됐음을 저자는 당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과학과 수사학을 각각 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의 융합을 들고 있음은 과학저술의 전범인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뉴턴의 <프린키피아> <광학>, 왓슨의 <이중나선>,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을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저자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이근영 기자)

07. 03. 09.

P.S. 최근 '수사학' 붐이 얼마간 조성되고 있지만, <과학의 수사학>은 그러한 붐에도 한몫 낄만 하겠다. 책은 궁리출판사에서 내는 '궁리하는 과학'의 두번째 책인데, 왓슨의 <이중나선>(궁리, 2006)이 첫번째 책이었고 이번에 같이 나온 듯한 로저 트리그의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궁리, 2007)이 세번째 책이다. 트리그의 책에 대한 리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트리그의 책들은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내게 더 친숙한 책은 <과학의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이다. 그건 예전에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의 원서를 모셔둔 지가 벌써 오래됐기 때문이다. 'The Shaping of Man'(1982)이 그 원서이고 부제는 '사회생물학의 철학적 측면'이다(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186쪽의 얇은 책인데, 국역본은 333쪽. 책이 폼나게 나오긴 했으나 이런 식의 분량 '인플레'는 슬슬 염증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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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03-09 13:02   좋아요 0 | URL
벌써 꽤 되었는데, 제 꿈에 로쟈님이 나타나셔서는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는 읽으셨는지..?" 라고 물으시는 거에요. 제가 "아뇨, 아직..."이라고 대답했는데도 그 책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하시더라구요.
책을 사 놓긴 했는데 계속 미뤄두어서, 드디어 읽을 때가 된 것인가 생각했더랍니다. 그치만 여전히 미뤄놓고 있네요. -_-;;

로쟈 2007-03-09 18:14   좋아요 0 | URL
제가 어쩐지 밤낮으로 피곤하다 싶었습니다.^^; 때가 되면 읽으시겠지요. 읽고 안 읽는 것도 어쩌면 다 '확장된 표현형'의 힘입니다...

소경 2007-03-10 17:40   좋아요 0 | URL
<문화 기호학>에서 잠시 다룬 내용이 나오는 군요. 사실 이에 단지 유추로 이해하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언젠가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처음으로 접한 기호학책이라 어려움은 있지만 재미가 쏠쏠합니다. 대신 책을 읽자니 시간을 솔찬히 지났지만 ... 페이지수는 몇장 안되는 군요. 과학의 수사학이라~

로쟈 2007-03-10 20:08   좋아요 0 | URL
<과학의 수사학>이 분량은 좀 되는데요.^^
 

올해는 1937년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지 70주기가 되는 해이고 이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제작될 거란 소식은 작년 11월에도 전한 바 있다(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CID=2040276&paperId=1007817). 오늘자 프레시안의 '할리우드 통신'은 그 영화들이 대거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기사에서는 우리에게 '아이리스 장'이라고 소개된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원제는 <난징의 강간>)의 저자가 '아이리스 창'으로 표기되고 있다('Iris Chang'이니까 영어로는 그렇게 읽히겠다). 만지면 덧나는 상처 같은 역사적 상흔이지만 우리와 무관하달 수도 없기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국내에서도 개봉되는 것인지...  

프레시안(07. 03. 08) 아이리스 창의 <난징대학살> 영화화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사과하지 않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야당 및 진보세력, 그리고 미국 정가 일각에서도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는, 올해가 난징 대학살(1937~38) 70주기를 맞는 해란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임지는 최근호(12일자)에서 난징 대학살 70주기를 맞아 미국, 일본, 홍콩, 중국 등에서 관련 극영화, 다큐멘터리들이 대거 제작, 개봉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한 난징 주민은 무려 26만명. 강간 피해여성만 2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일본정부와 보수파는 난징대학살의 실상이 왜곡됐거나 과장됐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난징대학살 관련 영화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을 계기로 세계각지에서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타임은 전망했다.

난징대학살 관련 영화 중 가장 먼저 개봉되는 영화는 빌 구텐타그, 댄 스터언 감독의 <난징>. 지난 2003년 9.11테러 관련 다큐멘터리 <쌍둥이 빌딩>으로 아카데미 장편다큐부문상을 수상했던 두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우디 해럴슨과 마리엘 헤밍웨이가 1930년대말 난징에 거주하다가 일본군에 의한 현지 중국인 학살을 목격하게 되는 미국인들로 등장한다. 두 감독은 사건 당시의 기록필름, 생존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 극중인물들처럼 난징에 살았던 외국인들의 서신 및 일기 등을 기초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지난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처음 선보여 호평받았으며, 이번달 말 홍콩 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난징>제작 뒤에는 아메리칸온라인(AOL) 부회장 테드 레온시스의 재정적, 정신적 뒷받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4년 카리브해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베스트셀러 <난징대학살(원제 : 난징의 강간)> 저자인 아리리스 창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됐다"며 "그때까지 내가 그처럼 끔찍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영화 <난징>제작에 뛰어들게 됐던 계기를 털어놓았다.


  
레온시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난징대학살>은 지난 97년 미국에서 출간돼 무려 10주간이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목록에 올랐던 저서.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난징에서 직접 발굴한 광범위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실상을 상세하게 재구성해냈다. 이 책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알지못했던 미국 독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아이리스 창은 당시 나이 29세로 유명 작가반열에 올랐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뒤인 2004년 아이리스 창은 갑작스럽게 자살로 생애를 마쳐 다시한번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 하지만 주변인물들은 창이 생존시 일본 보수우파로부터 많은 협박을 받아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그것이 그의 죽음에 한 원인이 됐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미국사회에 난징학살의 진상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창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현재 제작 중에 있다. 캐나다 감독 빌 스파힉의 <잊지 못하는 여자 : 아이리스 창 스토리>가 바로 그것. 그런가하면 창의 책도 곧 영화화된다. 제작자인 제럴드 그린은 <난징대학살>의 영화화 판권을 3800만달러에 구입,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툼레이더>를 만들었던 사이몬 그린.

이 밖에 올리버 스톤 감독, 홍콩 감독 스탠리 통, 중국감독 류추안 등도 난징 관련 영화를 준비중이거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타임에 따르면, 아이리스 창의 어머니 잉잉창은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난징의 비극을 알리려는게 아이리스의 소원이었다"며 딸의 책을 기초로 한 작품 등 관련 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대해 감격을 나타냈다.
  
그런가하면 일본에서도 난징 영화가 만들어진다. 지난 1월 미시마 사토루 감독은 기자회견을 열고 빌 구텐타그 감독의 <난징>을 "중국의 조작된 자료만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맹비난하며, 자신의 영화<난징의 진실>이 "사실있는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알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우파인 미시마 감독은 " 30년대 말 난징에서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학살, 강간이 자행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한편, 구텐타그 감독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법의학적 증거,수많은 사진증거, 수많은 필름 증거, 그리고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이 존재한다. 난징의 참상을 입증하는데 이 이상 더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라며, 역사의 진실을 거부하는 일본을 날카롭게 비판했다.(신영 기자)

07. 03. 08.

P.S. 난징대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http://www.youtube.com/watch?v=YoW2WYdOsv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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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존 라베와 난징대학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7 22:01 
    난징대학살을 다룬 책이 오랜만에 출간됐다. 아이리스 장의 <난징대학살>(이끌리오, 1999), 혹은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2006) 이후니까 3년만이다. 아이리스 장의 책은 난징대학살 60주년이 되는 해에 출간됐고, 국역본은 70주년을 앞두고 나온 것이었으나 정작 70주년이 되는 해였던 지난 2007년은 너무도 '조용히' 지나갔다. 중국과 일본 모두 이 '불편한' 과거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합의라도
 
 
해적오리 2007-03-0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징에 갔을 때 난징 대학살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관을 다녀왔어요. 어디를 가나 그런 곳을 방문할 땐 마음이 참 쓰라려요. 영화도 책도 참 관심이 가지만 정작 직접 볼 수 있을 지는 모르겠네요.

로쟈 2007-03-08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책이나 영화 모두 읽고 보는 게 괴롭고, 그렇다고 무심할 수도 없는 그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yoonta 2007-03-0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군의 난징등에서의 학살이 농민들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더군요. 만약 일본군의 학살이 없었다면 중국공산당은 국민당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긴데 그럴듯한 가설이더군요.

로쟈 2007-03-09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럴 법하네요. 역사적 가정법이라는 게 대개는 호사담에 그치는 것이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보이지만요...

외로운 발바닥 2007-03-0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의 국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난징대학살도 어느정도 많이 알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로쟈님 말씀처럼 실상을 알기도 괴롭고 무심할 수도 없는 문제같습니다. 살짝 퍼갑니다.
 

담비(http://www.dambee.net/)에서 학술동향기사를 하나 옮겨온다. 담비에는 학술저널들에 실린 논문들을 '리뷰팀'이 정리해주는 기사들이 게재되는데, 어차피 일반 독자들과는 거리가 먼 논문들이지만 '리뷰' 정도는 따라가볼 수 있고, 그게 교양의 한 부분을 이룰 수도 있겠다. 플라톤에 관한 이 정리기사는 '19-20세기 플라톤 연구동향 총정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짤막한 리뷰로서는 너무 큰 타이틀이 아닌가 싶지만 믿거나 말거나 한번 읽어봄 직하다. 이제이북스의 플라톤 전집은 곧 나오기 시작하는 건지 궁금하군...  

담비(07. 03. 03) 플라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풀라톤의 대화편들은 플라톤의 당대와 그의 사후 이래로 각 시대나 사상가들에 의해 매우 다양하고 상이하게 해석되어 왔다. 이런 플라톤 저작연구의 다양성과 상이성은 근본적으로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이러한 플라톤에 대한 메타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변이 시도돼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김진 경희대 교수로 '철학탐구' 제19집에 실린 '플라톤,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칸트 전공자인 김진 교수와는 동명이인인 모양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1855년 슐라이에르막허(*슐라이어마허)가 플라톤 대화편의 형식과 내용은 '분리될 수 없다'는 관점을 내보였으나, 이러한 해석의 원칙은 당시 헤어만이 이끄는 발전론적 관점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재음미되고 있다. 그것이 대화드라마적 관점의 연구를 견인해내고 있다. 이것은 대화편 안에 내적으로 구성된 철학적 요소들을 주목함과 동시에 대화편의 문학적, 희곡적 요소들, 등장인물, 무대장치적 묘사, 해설자의 설명, 기타 문학적 장치 등을 고려하여 본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역사상 유래없이 자신의 전 저작을 대화의 형식으로 저술한 유일무이한 철학자다. 그는 서술의 형식 그 자체를 자신의 철학적 사상에 포함시키려고 했다는 것(*그렇다면 데리다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철학자는 바로 플라톤?). 김 교수는 플라톤의 대화편이 다른 철학적 대화편의 저술가와 비교해 보았을 때 문학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하며 체계적인 구성양식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희곡적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로 저자가 대화의 내용으로만 전달하기 힘든 철학적, 역사적, 대화상황적 뒷배경을 정교하게 묘사한다는 것.  

그러려면 무엇보다 논문식 해석을 지양해야 한다. 대부분의 철학적 저작이 저자가 주장하려는 바가 분명하지만, 플라톤의 저작은 이러한 직접적 이해의 방식이 우선적으로는 배제되어 있다는 것. 일단 플라톤이 등장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쉽게 그의 주장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익명성'이란 주제로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저자 자신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대화편을 어떻게 읽어나가야 할까. 여기서 두번째 원칙이 발생하는데, 철학적, 문학적 요소를 꼼꼼히 고려하는 것이다. 철학적 요소의 예를 들자면 질문과 대답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플라톤 대화편에서는 '질문'보다는 '답변'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고 한다. 때로 질문을 주장으로 착각하여 해석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김 교수는 플라톤 대화편의 대화논증술적 서술들이 가만히 보면 규칙성이 감지된다고 한다. 먼저 가장 많이 등장하는 형식은 "예"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런 의미인가 아니면 저런 의미인가"와 같은 선택질문의 형식이 많다.

마지막으로 각 대화편은 완결된 일회적인 통일적 전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각 대화편은 플라톤에 의해 탄생된 허구이며, 등장인물들이 역사적 인물이고, 역사적 모티프를 갖는 것이라고 해도, 결국 플라톤이라는 저자에 의해 재구성되고 창조되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대화편끼리 서로 부딪히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편에 나오는 참주와 법률편에 나오는 참주는 매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국가편의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 피레아스(pireas, 당시 상업과 민주정치의 요새)로 시라쿠스(Syrakus) 출신의 거주외국인 케팔로스(Kephalos)의 집이다. 여기 등장하는 케팔로스의 두 아들은 참주정치의 희생자들로 이들에게 참주정의 장점을 얘기할 수 없다는 상황이 있다는 것. 반면 법률편의 상황은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플라톤이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었다는 식이다.

플라톤은 동시대부터 그 난해성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위에서 고찰한 대화드라마적 해석방법은 이러한 난해성을 뚫고 플라톤과 만나기 위해 지난 19~20세기 동안 플라톤 연구자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도달한 대체적인 합의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리뷰팀)

07.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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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자료 퍼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제의 일이다. 기억엔 작년엔가도 방한했던지라 건강이 양호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듯하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고 비교적 적지 않은 책들이 번역/소개된지라 왠지 '가까운' 저자 한 사람을 잃은 듯한 기분도 든다(얼마전에 <예술의 음모>에 관해 페이퍼를 적기도 했지만, 나는 그의 책들을 열댓 권은 갖고 있는 듯하다).

급하게 검색을 해보니 그의 최신간은 (영역본이긴 하나) <연기된 유토피아(Utopia Deferred)>(2006)이다. 앙리 르페브르가 이끌던 그룹/잡지 '유토피아(Utopie)'에 1967년부터 1978년까지 10여년간 게재한 글들과 인터뷰를 모아 펴낸 책이라 한다. 당연한 말이긴 하나 이 '시뮬라시옹'의 철학자도 자신의 죽음은 연기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내달쯤에는 그의 책도 한 권 정도 읽어봐야겠다. 경향신문의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필자는 국내에서 '보드리야르 전문가'로 통하는 배영달 교수이다(꽤 많은 번역서들을 냈지만 추천할 만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경향신문(07. 03. 08) '기호화사회 파헤친 급진 이론가’ 佛 장 보드리야르 별세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가 6일 파리의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시뮬시옹’ 이론으로 유명한 고인은 1929년 서부도시 랭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뒤 파리 10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5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그는 지난 1991년의 걸프전쟁에 대해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9·11 테러에 대해서는 세계화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타계한 프랑스 지성계의 거목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상의 모든 경향과 유파를 벗어나 독자적인 자리를 확보한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죽음과 변형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사회학자였으며, 실재가 기호와 이미지에 의해 대체되는 시뮬라시옹 과정 속에서 사라져버린 세계의 잃어버린 의미를 찾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자였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신화를 명쾌하게 분석한 롤랑 바르트처럼 그는 현대사회의 모든 현상을 파헤치는 현대성의 분석가였으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격화시키고 급진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미래주의적 비전을 확립하기 위하여 그러한 현상들을 파악하는 급진적인 작가였다. 이렇듯 보드리야르는 사상사적 위치를 설정하기 어려운 탁월한 사상가였다.

사회학과 철학의 테두리 밖에 머물면서 어느 한 곳에 구속되기를 거부한 보드리야르는 초기 저작 이후 끊임없는 도전과 도발을 시도한 급진적인 이론가였다. 그는 ‘급진적 사유’를 통해 전통적인 사회문화이론을 배격하는 독특한 글쓰기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글이 철학·문화·사회 이론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스타일로 인해 다채로우면서도 아이로니컬하고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프랑스 안에서는 부르디외·들뢰즈·라캉·데리다와 견줄 수 없는 보드리야르이지만, 그의 첫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 이후 그는 줄곧 프랑스 밖에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지성들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주요 저작인 ‘소비의 사회’ ‘기호의 정치 경제학 비판’ ‘생산의 거울’ ‘시뮬라시옹’이 잇달아 소개되면서 국내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반향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별’로 불리는 보드리야르 사상은 크게 세 가지 핵심적인 개념들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개념들은 소비·기호체계·하이퍼리얼리티(시뮬라크르)인데, 이 개념들에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단지 텍스트에 따라 이 개념들 중에서 한 개념이 번갈아가며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보드리야르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이 핵심적인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보드리야르 사상 전체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 유수의 다양한 학술지와 웹진 등에 꾸준히 기고하는 등 글쓰기와 강연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뮬라시옹’이 존재하는 현대사회를 새롭게 조명한 ‘시뮬라시옹’을 분석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사상가 보드리야르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시뮬라시옹 이론’이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은 그의 저작 ‘사물의 체계’ ‘소비의 사회’ ‘상징적 교환과 죽음’ ‘악의 투명성’ ‘완전범죄’ ‘토탈 스크린’ 등에서도 그 흔적과 아우라가 발견된다.

현대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그의 이 시뮬라시옹 이론은 ‘현대=시뮬라시옹 시대’로 이해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다(*물론 이 영향력에는 영화 <매트릭스>의 기여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현대 이론에서 시뮬라시옹에 관한 담론들은 흔히 우리가 새로운 현대사회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파토스와 반향을 얻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시뮬라시옹 이론은 성숙한 현대이론의 핵심요소이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실재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 유명한 명제는 시뮬라시옹 시대에 사물의 내재적 실체성이 증발해 버린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데, 그 자신도 이제 시뮬라시옹 시대의 이미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배영달|경성대 프랑스지역학과 교수)

07. 03. 07.

P.S. 보드리야르에 '관한' 책으로 두 권을 꼽아두고 싶다. 그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꼽은 그 두 권 중의 하나는 폴 헤가티의 <장 보드리야르: 살아있는 이론>(2004)으로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고, 다른 하나는 보드리야르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마이크 게인이 편집한 인터뷰집 <보드리야르 라이브>(1993)이다.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특히 후자는 입문서로서 적합하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사람은 가도 이론은 살아남는 것인지, 아니면 그 또한 시뮬라시옹에 불과한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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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7-03-07 23:52   좋아요 0 | URL
오늘 프랑스의 인터넷 르 몽드지를 통해서 그의 죽음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한 명의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가 우리의 곁을 떠나는 것 같아 아쉽네요.

기인 2007-03-08 07:44   좋아요 0 | URL
견고한 모든 것은 안개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 맑스 & 엥겔스
포스트 모던은 정말 '포스트' 모던 한것인지, 역시 의문이네요 ^^;
 

'국가지식포털'이란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심봤다!'가 아니라 이 또한 '요지경' 속이다. 왜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이 모양인가? 아마도 아침신문의 기획특집쯤 되는 모양인데(정치만 고민할 일이 아니다!), 근심스러운 기사이지만 남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는지라 옮겨놓고 함께 고민해보시길 제안한다.

한국일보(07. 03. 06) 국가지식포털은 '정보의 고물상'

“지식의 만물상이라고요? 여기저기 헤매다 시간만 버렸어요.” 디지털미디어방송(DMB) 사업 자료를 찾기 위해 국가지식포털(www.knowledge.go.kr)에 접속한 P사 대표 박모(39)씨의 푸념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 1,000여 단체가 보유한 지식정보를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은 차라리 비아냥거림 같았다. 검색된 자료 대부분이 DMB 서비스가 시작되기 이전 것인데다 원문보기를 누르면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뜨기 일쑤였다. 박씨는 “운영자가 최신 이슈에 관해 선별한 자료를 제공한다고 자랑한 ‘테마지식’ 코너마저 철 지난 자료들만 올려놓았다”라며 “지식의 미로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지식포털’(이하 지식포털)에 쏟아 부은 예산의 규모를 알게 되면, 박 씨는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포털의 기반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500억원을 투자했고, 포털 구축에만 20억원을 썼다. 정통부가 지난해 말 확정한 ‘지식정보자원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2011년까지 5년간 DB 확충 등에 1,831억원이 추가로 투자될 예정이다.

지식포털 구축은 미래 국가경쟁력의 바탕이 될 ‘공공정보의 재이용(Re-Use)’, 다시 말해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일반인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 그러나 1일 평균 순방문자(UV)는 지난해 말까지 500명 미만, 검색 기능 등을 강화해 재 개장한 올 1월에도 1,300명에 그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것. 검색의 정확도가 떨어져 같은 정보가 수십 건 중복 검색되는가 하면,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할 ‘요약’ 정보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운영자가 선별한 ‘테마지식’의 조류인플루엔자 관련 자료 중 ‘전염병 위기관리 전략’을 찾아보자.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자료인데도 요약 정보에는 발행처 ‘미확인’으로 나온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공공 DB 구축 사업도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됐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공공정보의 DB화와 보급을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어느 기관이 어떤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활용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는 “공공 지식정보자원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DB화를 추진하다 보니 정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이희정기자)

한국일보(07. 03. 06) "정부주도 포털 필요한가" 무용론 제기

국가지식포털의 운영은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문화진흥원에서 직원 단 1명이 맡고 있다. 콘텐츠 관리부터 신규서비스 기획까지 하고 있지만, 이용자 질문에 답하고 오류를 점검하기에도 벅차다. 진흥원측은 3월 중 민간기업 가운데 운영업체를 선정하고, 서포터즈 3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공공 정보의 관리를 민간 업체에 맡길 수 있느냐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이 지식포털 활성화의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식포털의 부실은 그 기반인 공공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통합ㆍ연계 사업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선 지식포털이 제공하는 공공 정보가 제한돼있다. 공공 DB는 1993~97년 구축한 초창기 DB와 외환위기 당시 정보화근로산업 성과, 2005년부터 행정자치부 주도로 구축한 행정DB 등 여럿이지만, 지식포털에서는 정보통신부 주관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에 따라 구축된 DB만 서비스한다. 게다가 DB 표준화도 이뤄지지 않아 애초부터 공공 포털 형태로 통합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리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공 기관들마저 지식포털보다는 민간포털과 직접 손잡고 싶어하는 실정이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관계자는 “사이트 방문자수로 실적 평가를 받는데,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지식포털과 제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통합사이트를 운영하는 대신에 민간의 정보가공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식을 바꾸는 게 어떠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들도 “민간포털에서 쉽게 각 기관의 사이트를 찾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정부 주도 포털이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이희정기자)

한국일보(07. 03. 06) 엉뚱한 정보·잠자는 코너

지식과 정보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활용하도록 하는 것은 정보화시대 국가의 의무다. 가령 국가가 보유한 과학 정보를 공유하면 대학과 연구기관의 신기술 생산으로 이어지고, 첨단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로 가치가 확산된다. 정보통신부가 내세운 ‘국가지식포털’(www.knowledge.go.krㆍ이하 지식포털)의 목표도 정부ㆍ공공ㆍ민간 기관 등 1,000여 곳이 보유한 활용가치 높은 지식정보자원을 누구나 손쉽게 찾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원 스톱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만물상’이라는 화려한 포장과 달리, 실상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초라하다.

이름값 못하는 국가포털

정통부는 1월 지식포털 서비스를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대폭 개편했다고 밝혔다. 검색 기능 업그레이드, 분류체계 개선, 블로그를 비롯한 개인화 서비스 강화 등이 골자다. 그러나 여전히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없다. 같은 정보의 중복 검색 문제도 여전하고, 주제별 분류체계도 일반 기사가 ‘연극/영화’ 항목에 뜨는 등 엉터리가 많다.  요약 정보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어떤 것은 목차, 어떤 것은 원문 일부를 맥락 없이 뚝 떼내 보여주는 등 기준이 제 각각이고 내용도 부실하다.

간판과 달리 검색 가능한 DB가 제한된 경우도 있다. 초기 화면에 배너까지 달아 서비스 하는 ‘국가전자도서관’은 본래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법원도서관 등 7개 주요 국립도서관의 통합검색 시스템이지만, 지식포털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만 이용할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 유통을 위해 개설한 국가지식포럼과 국가지식블로그의 운영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식포럼 개설자의 상당수가 포털 운영자인 정통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직원들이고, 인기포럼이라는 곳도 개설자가 자료 몇 건을 올려놓았을 뿐 사실상 ‘휴면상태’다. 블로그 서비스는 업로드 한 글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글자가 깨지는 일이 잦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식포털은 지난해 공공부문 우수 웹사이트로 선정돼 ‘2006 웹어워드’를 수상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이 상을 수여한 웹어워드코리아의 후원기관이다. 정보화의 거센 물결도 우리나라의 관료주의 만큼은 깨뜨릴 수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저작권 개념이 없는 지식사업

경기 양평에 국악음반박물관을 운영하는 노재명(38)씨는 지난달 14일 정통부 장관을 저작권 침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가 20년간 전국을 돌며 발품과 돈을 들여 수집하고 정리한 국악 관련 자료 가운데 1만여점을 지식포털에서 허락 없이 무단 게재했기 때문이다.

노씨가 인터넷((www.hearkorea.com)에 올린 이 자료들은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가 운영하는 문화포털(www.culture.go.kr)을 통해 지식포털에 제공됐다. 지식포털에 연계된 5개 전문정보센터의 하나인 문화포털은 민간 콘텐츠까지 검색로봇을 활용한 웹 수집 방식으로 검색한다. 문화포털의 경우 제목과 2, 3줄의 정보만 보여주고 클릭하면 원문 사이트로 이동하는 딥 링크(Deep Link) 방식인 반면, 지식포털은 팝업 창을 통해 제공하는 요약정보에 원문 전체 혹은 일부를 그대로 띄워놓는다.

저작권조정심의위원회 이영록 책임연구원은 “딥 링크의 저작권 침해 여부는 견해가 갈리지만,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원문 전체 혹은 일부를 그대로 보여줄 경우 저작권 침해”라면서 “요약 정보도 원문의 창작적 표현이 포함되면 2차 저작물에 해당돼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식포털은 노씨가 지난달 초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자 해당 콘텐츠를 삭제했고, 노씨가 고소장을 낸 직후인 지난달 17일 문화포털의 웹 수집 방식으로 들어온 자료 37만건을 모두 삭제했다.

한국일보(07. 03. 06) 외국의 공공정보 관리 실태

위성의 지리정보, 경찰의 교통정보, 기상청의 날씨정보…이 같은 공공정보를 민간이 가공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조한다. 컨설팅그룹 파이라 인터내셔널이 집계한 데 따르면 미국에서 공공정보 활용으로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2000년 기준 약 877조원, 유럽연합(EU)에선 약 79조 5,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의‘국가지식포털’처럼 정부 주도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검색 하게 하는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미국 유럽은 민간이 공공 정보를 자유롭게 가공ㆍ유통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정보 공개’를 넘어 적극적인 ‘정보 배포’로 정책을 전환했다. 2003년 11월 유럽의회는 ‘공공정보 재이용(Re-useㆍ상업적 이용)에 관한 지침’을 공표했다. 회원국 간 제도의 차이를 최소화해 기업들이 공공정보 활용을 통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 것. 또 EU는 민간 수요가 많은 지리 교육 문화 과학 학술 등 정보를 활용해 기업과 공공기관이 함께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개발하는 ‘e콘텐츠플러스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2005년부터 4년간 총 1억4,900만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공공정보의 활용을 시장에 일임해왔다. 1966년‘정보자유법’이 연방정부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권을 보장한 이후, 미국은 정부 문서의 이용, 재판매ㆍ재배포 제한금지 등 일정한 원칙을 정해 민간에서 정부의 지식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발전시켰다. 자치단체와 공기업은 지적재산권을 판매할 뿐 아니라, 민간기업을 통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문준모기자)

07. 03. 06.

P.S. 정보화 격차, '디지털 디바이드'란 용어가 유행어처럼 쓰인 적이 있었다. "정보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따라 정보 습득 능력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격차가 커지는 것"을 말하는데, 주로 사회적 불평등이 계층별 정보화 수준(인터넷 활용 등)에 있어서 격차를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불평등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걸 경계하는 말이다. 나는 거기에 덧붙여 국가간/언어간 '콘텐츠 디바이드'라는 걸 근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엊저녁 한 모임에서도 화제가 됐었지만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 정보의 양과 질에서의 차이를 고려하면 이 '디바이드'는 만만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 같지 않다. 10년, 20년후에도 인터넷세상에서 지식언어로 한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가지식포털' 같은 마인드라면 이미 시작도 해보기 전에 진 게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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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3-06 12:35   좋아요 0 | URL
그 차이라는것이 지금 학생들의 수준에서는 영어능력의 차이로 나타날것 같습니다.초등학교 3학년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는데 이건 공적인 배움이고 사적으로는 미국원어민들보다 쓰기나 단어능력들은 한 2-3살 위에 이르도록 배우는것이 지금 현실이니까요. 그대로 먹고살만하면 다들 외국으로 보내는지도?
올해들어 회사때문에 미국과 캐나다로 떠난 두분이 있는데 자식들은 초딩이고 한국에서 영어유치원 다니면서 영어공부했는데 그쪽나라 가서 언어테스트하고 나서는 한학년 월반했다고 하더군요. 구글과 네이버의 차이만큼이나 영어를 원어민 수준에서 하면서 영어로 과외받으면서 크는 애들과 그렇지 못한 애들, 국가에서 뭘 해주길 바라는거, 그것이 도서관이나 접할수 있는 자료(한겨레인가 학교 도서관 상황에 대한 기사도 본것 같은데)같은, 거의 요원하지 않나 싶습니다.

로쟈 2007-03-06 19:57   좋아요 0 | URL
제가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개인간 차이가 궁극적으론 국가간/언어간 차이로 고착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국에 대한 의미있는 자료도 영어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게 아닌가 염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