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의 종말'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읽은 가장 유익한 책은 러셀 자코비의 <이데올로기의 종말: 무관심 시대의 정치와 문화>(모색, 2000)이다. 저자는 미국 UCLA의 역사학 교수인데, 주로 지성사 분야의 책을 내고 있으며 국내에는 <이데올로기의 종말> 외에 <사회적 건망증>(원탑문화사, 1992)이 소개돼 있다(저자가 '럿셀 제이코비'로 표기돼 있다. 'Russell Jacoby'이므로 본토에서는 '제이코비'라고 부를 듯도 하지만 일단 처음 소개된 대로 여기서는 '자코비'라고 부르겠다).

 

 

 

 

'자코비'는 최근에 들춰본 에드워드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탑, 1996) 4장에서도 미국 지성사를 다룬 <마지막 지식인들(The Last Intellectuals)>이 자세하고 언급되고 있어서 다시금 상기하게 된 이름이다(국역본은 <최후의 지성인들>이라고 옮겼다). 알라딘에서는 검색도 되지 않는 책 <나르시시즘의 문화>(문학과지성사, 1989)의 저자 크리스토퍼 래쉬(라쉬)(1932-1994)가 왠지 자코비와 나란히 연상되었는데, 찾아보니 서로 긴밀한 교류를 나눈 사이이기도 하다(래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코비가 추모기사를 쓰기도 했다). 래쉬의 저작으론 <엘리트의 반란과 민주주의의 배반>(중앙M&B, 1999), <여성과 일상생활>(문학과지성사, 2004)이 더 번역돼 있다. 하지만 대표작인 <나르시시즘의 문화>가 절판된 건 유감스럽다. 1970년대 미국문화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지만 요즘 우리의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자코비로 돌아오면, 그의 최신작은 <미완성 그림: 반-유토피아 시대를 위한 유토피아 사상>(2005/2007)이며 며칠전에 <마지막 지식인들>과 같이 입수했다. 두 권의 책표지는 이렇다.  

 

모두가 번역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좀 성의껏 소개되었으면 싶다는 것. <유토피아의 종말>의 경우에도 유명한 전문번역가가 나섰지만 어떤 사정에서인지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처음 읽을 때는 따로 원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대조해보지 못하다가, 최근에 도서관에서 원서를 대출해 묵은 궁금증을 풀어본 결과이다(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정운영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기증도서다. 장서가로 알려진 그의 책들이 도서관에 기증된 덕분에 접해보게 된 책이 개인적으로는 벌써 여러 권 된다. 감사한 일이다). 일단 색인도 빠졌거니와 40쪽에 이르는 미주들을 모두 날려버린 것은 역자나 출판사나 독자에게 별로 배려할 의사가 없음을 말해준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을 독자 말이다. 책의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55년 1월, 레이몽 아롱과 아더 슐레진저를 비롯해서 수백 명의 저술가와 학자가 밀라노의 국립 과학기술 박물관에 모여들었다. '자유의 미래'라는 주제를 토론하기 위한 국제학술대회였다."(11쪽) 원문은 "In September 1955, several hundred writers and scholars from Raymond Aron to Arthur Schlesinger, Jr., assembled in Milan's National Meseum of Science and Technology to discuss 'the future of freedom.'"

오역의 여지가 별로 없는 서두이지만 번역문은 'September'를 '1월'로 잘못 옮겼다. 물론 실수인데, 첫문장에서의 이런 실수가 암시해주는 것은 번역문이 제대로 교정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 암시는 암시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걸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상당한 분량을 요하는 일이기에 이 페이퍼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제목대로 여기서는 '레이몽 아롱'을 떠올리게 된 계기만을 늘어놓을 참이다. 그렇다고 그 계기란 게 거창하게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인용한 문장이니까. 참고로, 아롱과 같이 언급된 '아서 슐레진저 2세'의 책으론 <미국 역사의 순환>(을유문화사, 1993)이 번역돼 있다(분량이 57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이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슐레진저는 "냉전시대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을 정립한 역사학자"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사회학자 아롱이나 역사학자 슐레진저나 거물급 학자들이면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반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1955년 밀라노에 모였을 때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이어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데탕트를 선언한 이후였다. 미국과 서유럽은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스탈린식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은 퇴조하고 있었다. 때문에 학술회의장은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장' 같았다고 하며, 한 참석자는 "공산주의가 서구와의 이념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확신에 들뜬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것이 말하자면 첫번째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풍경이었다(1장의 제목은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이며 아직 두번의 반전을 더 남겨놓게 된다).    

 

동갑내기이자 고등사범학교의 동창으로서 사르트르와 함께 전후 프랑스 지성계를 양분했던, 그리고 프랑스 지식인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우파였던 레이몽 아롱(1905-1983)의 화제작 <지식인의 아편>이 발표되는 것이 바로 1955년이다(영역본은 1957년에 나왔다). 내가 갑자기 궁금해진 것은 그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서가 왜 시중에서 눈에 띄지 않을까, 라는 점(뉴라이트들도 아롱까지는 못 챙기는 것일까?). 찾아보니 국내에는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다. <지식인의 아편>(중앙문화사, 1961; 삼육출판사, 1986)은 안병욱 번역이고,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지식인의 아편>(미문출판사, 1983)이라고 만하임의 책과 같이 묶인 건 정하룡 번역이다. 나는 뒤늦은 관심 때문에 여기저기 검색해보다가 <지식인의 아편>을 교보에서 주문했다(삼육출판사본이 아직 남아 있는 걸로 떠 있어서). 지금은 모두 품절이지만 사실 아롱의 책은 <사회사상의 흐름>을 비롯해서 여러 권이 소개된 바 있다. 그 몇 권의 표지 이미지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다시 <지식인의 아편>에 대한 자코비의 설명: "마르크시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레이몽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은 미국 의회의 무기가 되었다. 밀라노 회의를 주도한 사람으로서, 아롱은 그 책에서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데올로기는 혁명과 유토피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혁명과 유토피아는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선진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방안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다."(13쪽) 이 인용문의 첫문장은 역자의 '작문'인데, 원문은 이렇다. "Raymond Aron's The Opium of the Intellectuals, his criticism of Marxism, appeared just before the Party Congress."

<지식인의 아편>이란 책이 '전당대회(Party Congress)' 직전에 나왔다는 말이 어떻게 '미국 의회의 무기가 되었다'는 뜻이 되는지? 게다가 그 '전당대회'는 1956년 2월 소련의 제20차 전당대회를 가리키는 것인데 말이다. 스탈린을 비판하는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이 행해진 바로 그 전당대회다. 아무튼 <지식인의 아편>은 그러한 맥락에 놓여 있는 책이며 나는 지성사와 '유토피아의 종말'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조만간 읽어볼 참이다.

참고로, 같이 읽을 만한 책은, 자코비도 이어서 다루고 있는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1960)이다. 재작년에 <탈산업사회의 도래>(1973)가 뒤늦게 번역되어 화제가 되었지만 국내에도 3-4종의 번역이 나올 만큼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이었다. 물론 이제는 모두 '역사'가 되었다...  

08. 08. 21.

P.S. 자세히 적을 여유가 없어서 간단히 언급하면, 자코비의 한 가지 지적은 1989년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 이후의 정세가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의 정세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때 똑같이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이 대두하는바,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은 (본인은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애쓰지만) 다니엘 벨의 주장과 "한치의 차이도 없는 결론"에 이른다. 벨은 1960년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단언했지만 그가 예기치 않게도 1960년대의 시대정신은 곧 급진주의쪽으로 흘러가며 신좌파(뉴레프트)가 장악하게 된다(그것이 1968년 혁명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이다. '역사의 종말'을 구가하던 1990년대가 지나고 우리가 2001년 9.11과 함께 봉착하게 된 것은 '역사의 종말의 종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유토피아의 종말의 종말'이다. 여기에 어떤 '순환'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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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8-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에 봤던 이효인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에서 한국 영화에 반영되는 쾌락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평가가 래쉬의 저 책에서 나온거였다는 기억이 납니다...기억이라서..^^

로쟈 2008-08-22 10:30   좋아요 0 | URL
저자가 '이효인'입니다.^^

드팀전 2008-08-2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맞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사상의 흐름>에 파레토도 나오는군요.경제원론에 나오는 학자는 사회사상이나 정치사상에 잘 안 나오는데 이 양반은 아니더군요.그렇다면 사회사상의 흐름을 사야겠군요.헌책방에 있는 걸 봤거든요.

로쟈 2008-08-23 20:56   좋아요 0 | URL
파레토는 코저의 <사회사상사>에도 나오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더 슐레진저 2세의 책 중에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케네디 정부 때 보좌관 시절을 회고한 <1000일>.우리나라에선 한림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원본 일부를 뺐다는 데도 엄청나게 두툼해서 읽을 맛이 나죠.드골을 굉장히 비난했던 내용이 기억납니다.그때 독자노선 걸으면서 미국 속을 확 뒤집어 놓던 때라서요.

로쟈 2008-08-23 21:01   좋아요 0 | URL
원서 이미지를 봤는데, 국역됐군요. 대학 도서관들에는 없는 책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경제원론에도 나오고 정치,사회사상사에도 나오는 유일한 사상가라는 의미로 쓴 거예요.저는 휴즈<의식과 사회>에서 파레토를 읽었을 때 이 사람이 파레토 최적이론을 만든 그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그 사람 같아서 아...그렇구나...했죠.이데올로기 론에도 나오구요.
코저 책에도 나오는군요.경제사상사에는 파레토가 안 나오는 책이 없는데 사회사상사에는 안 나오는 책이 있어요.역시 경제학 쪽에서 더 많이 취급하는 인물인 듯 합니다.
 

<고교 독서평설>(8월호)에 '유토피아의 종말, 그 후의 유토피아'란 타이틀로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그러니까 고등학생을 독자로 상정하고 쓴 것이다). 병기된 설명들과 미주는 제외했다.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갑론을박' 연재 중 네번째이자 마지막 글 꼭지였는데, 다시 쓴다면 러셀 자코비의 <유토피아의 종말>(모색, 2000)을 추가로 참조했을 듯싶다.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의 유토피아'는 자코비식의 표현을 빌면, '유토피아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쯤 되겠다. 그의 책 1장의 제목이 '이데올로기의 종말의 종말의 종말'이어서 그렇다. 거기에 또 한권을 보태자면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유토피스틱스>(창비, 1999). 모두 읽은 지 너무 오래된 탓에 원고를 쓰면서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서두의 에피소드는 지젝의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의 서론에 나오는 것을 조금 더 풀어쓴 것이다('스페인'이 '에스파냐'로 바뀐 것은 교과서 표기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토피아 - 마법과도 같은 자유

1964년 에스파냐의 마드리드 교외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 <닥터 지바고>를 촬영할 때 생긴 일이다. 영화의 배경은 1905년에 일어난 제1차 러시아 혁명01.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러일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사회가 동요하고 민중의 불만이 폭발하여, 학생 소요와 함께 정치적 테러, 암살이 횡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겨울 궁전 앞에서 평화 시위를 하던 군중을 제국의 군대가 무차별적으로 유혈 진압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시위대가 가두 행진을 하며 부른 노래가 <인터내셔널가>였다.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전 세계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 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 이후 구소련(구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이 1944년까지 국가(國歌)로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에스파냐의 국가주의자들은 이 시위 장면을 찍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러야 했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 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영화의 제작진들은 에스파냐 엑스트라들 모두가 이 노래를 알고 있고 게다가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부르는 데 놀랐다. 그 당시 프랑코 정권의 경찰들이 진짜 정치 시위를 하는 걸로 오해하고 개입할 정도였다. 그리고 때마침 촬영은 저녁 무렵에 이루어졌는데,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걸 듣고는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쟁취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들은 포도주 병을 따고 길거리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 ‘정상적인’ 현실로 복귀해야 했지만 그들은 잠시나마 환영(幻影,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도 같은, 하지만 반드시 환영만은 아닌 자유를 맛보았다. 이 자유야말로 마법적이며 유토피아적인 자유가 아닐까?

21세기의 시작 - 유토피아의 종말, 그러나 끝나지 않은 꿈
이제까지 유토피아란 말은 주로 ‘불가능한 이상 사회’라고 정의되었다. 그것은 ‘이상 사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며, 또 현실에 구현된 ‘유토피아’는 끔찍한 악몽이 되기 일쑤였다. ‘유토피아 문학’이 곧장 ‘안티 유토피아 문학’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상 사회’ 지향으로서의 유토피아주의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원래의 말뜻을 그대로 따라가자면, 유토피아는 ‘가장 좋은 곳’을 뜻하기 이전에 그냥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왜 없는가? 기존의 사회적 공간에서, 곧 사회적 좌표계에서 자리가 할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의 건설이란 이 기존의 좌표계 바깥에 있는 사회적 공간의 건설을 뜻한다. 그것은 순수하게 ‘가능한 것’의 목록을 다시 쓰고, 그 좌표를 바꾸는 제스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이며 문제적인 충동이고 광기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그러한 유토피아적인 제스처의 사례로 다시금 레닌을 불러들인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1914년,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려 했던 사회주의 운동은 재앙적인 상황에 놓인다. 전 유럽이 군사적 갈등 속에서 대립하고 있었고, 사회 민주주의 정당들마저도 전쟁에 동조하는 ‘애국주의 노선’을 채택해 레닌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레닌은 그렇듯 절망적으로 보이던 시점에서 혁명의 절묘한 기회를 포착해 낸다. 국가 그 자체를 뜻하는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상설적인 군대나 경찰, 관료가 없이도 만인이 사회 문제를 관리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코뮌적 사회 형태를 만들어 내려 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레닌에게 그것이 머나먼 미래를 위한, 또는 먼 섬나라에서나 가능한 이론적 기획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2,000만 명은 안 되더라도 1,000만 명으로 이루어진 국가 기구는 즉시 가동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레닌식의 유토피아적 충동이며 진정한 유토피아다.

하지만 레닌의 유토피아적 기획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1990년을 전후로 한 구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의 붕괴는 통상 정치적 유토피아의 붕괴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흔히 거기서 이끌어 내는 교훈은 ‘고귀한 정치적 유토피아가 어떻게 전체주의적 공포로 끝나고 마는가.’이다. ‘현실 사회주의 이후’는 그래서, ‘포스트-유토피아’, 곧 ‘유토피아 이후의 세계’로 지칭되기도 한다. 이 포스트-유토피아 세계에서는 실용주의적 관리와 행정이 정치를 대신한다. 하지만 정말로 유토피아는 종말을 고했던 것일까?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에야 뒤늦게 자각된 것이지만, 실상 현실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 이후의 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자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최후의 거대한 유토피아였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을 경험한 셈이 된다. 하나는 70여 년을 버티던 정치적 유토피아로서의 공산주의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 10년을 승승장구하던 자유 민주주의 유토피아의 종말이다. 전자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였다면, 후자의 종언을 보여 주는 실재적 사건은 바로 9·11 테러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9·11 테러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역사의 종말’ 같은 ‘게임 오버’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해 준다. 단지 무대만 바뀌었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자본주의의 평화적 팽창이 끝난 1914년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1990년까지를 20세기로 규정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20세기가 시작됐다면, ‘테러 시대’라고도 불리는 21세기는 9·11 테러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는 1차 유토피아(1917~1990)와 2차 유토피아(1991~2002)가 모두 종말을 고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종말 이후’에 깨달은 교훈이라면 ‘진정한 종말’이란 아직도 멀었으며,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와 여정을 남겨 놓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그 뒤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역사의 현실로 복귀했고, 사회적 차별과 갈등 또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더욱 빈번해진 각종 국지전(局地戰)은 유토피아의 종말 이후 잠시 우리를 도취하게 만든 ‘역사의 종말’이라는 관념 자체가 얼마나 유토피아적(공상적)인가를 보여 준다.

끝없는 열망 - 새로운 대중의 탄생, 또 다른 모습의 유토피아 
가장 기본적으로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라는 삶의 절박함이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서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을 만들어 낸다고 하면, 유토피아적 충동과 기획은 여전히 우리의 것이고 또 우리의 것이어야만 한다. 유토피아는 실제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이상 사회에 대한 몽상과는 무관하다. 유토피아는 우리가 더 이상 ‘가능한 것’의 한계 안에서 살아갈 수 없을 때 제기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가장 심층적인 차원에서의 어떤 불가피성의 문제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철학자 지젝은 우리가 레닌이 1914년에 대응해서 한 일을 1990년에 대응해서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다른 가능성은 없어. 민주적 합의에 충실해야 돼.”라는 일종의 ‘사고 금지’에 대응해 다시금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되는 것은 오늘날 유토피아 전략들의 심미적 경향이다. ‘심미적’이란 말 대신에 ‘유희적’이란 말을 써도 무방하다. 포스트모던의 상황에서, 정치적 저항은 심미적 현상들로 강하게 물들어 있다. 가장 간단하게는 ‘피어싱(piercing)’이나 ‘옷 바꿔 입기(crossing-dressing)’에서부터 ‘플래시 몹(flash mob)’ 같은 공개적 스펙터클(spectacle, 장관·구경거리·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플래시 몹이란 사람들이 정해진 시각에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 간단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다시 흩어지는 걸 말한다.

가령, 2006년 5월 벨로루시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한 직후, 한 네티즌이 이에 항의하는 표시로 수도 민스크의 광장에 나와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플래시 몹 제안을 인터넷에 올렸다. 벨로루시 경찰은 이에 과민 반응 하여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 몇 사람을 잡아갔다. 하지만 단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일은 더욱 커졌다. 더욱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플래시 몹의 최대 장관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일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여 2008년 봄과 여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자발적인 평화 시위에 대하여, 정부는 ‘배후’를 찾아서 사법 처리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유례없이 거대하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만을 자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주부 인터넷 모임의 대표는 배후 세력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정(母情)일 것이라 말했고,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영어 몰입 교육, 0교시와 우열반 부활, 그리고 ‘미친 소’ 수입 등을 결정한 집단, 곧 이명박 정부가 촛불 시위의 배후라고 일갈했다.

경찰은 혹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떠 검은 망토와 모자에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인 한 DVD 동호회 사람들에게도 배후란 혐의를 지울 수 있을까? 이들은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영화 속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를 패러디한, 이런 팻말을 들고 거리를 순례했다. “촛불은 내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어요. 제 친구였고, 저이기도 했죠. 촛불은 우리 모두였어요.” 이러한 시위의 현장에서 유토피아는 결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최대 수십만 시민들이 자발적이면서도 통일된 행동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테크놀로지의 사회적·경제적 효과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이렇듯 ‘조직 없이 조직된’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디지털과 인터넷에 기초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테크놀로지 덕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거대하고 더 널리 흩어져 있는 공동 작업 그룹이 탄생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행동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국가의 관리에 대한 레닌의 ‘전체주의적’ 기획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젝의 제안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해방 - 그 영원한 꿈을 향한 노력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거대 은행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면서, 자본주의적 기구인 중앙은행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중추적 기관으로서 중앙은행의 자리에 오늘날 ‘일반 지성’의 상징인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갖다 놓는 것은 어떨까? 자본주의 신(新)경제의 첨병처럼 보이는 월드 와이드 웹은 한편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 레닌적 제스처, 곧 유토피아적 광기는 국가 기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과 싸우는 대신에 그것을 사회화(국유화)하는 것이다. 또 가령, 다음(Daum)의 아고라 같은 인터넷 토론 광장을 사회적 공유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사회주의=전력화(電力化)+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레닌의 공식은 ‘사회주의=인터넷 무료 접속+소비에트 권력’으로 변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두 번째 요소이며, 이를 통해서만 인터넷은 확실한 해방적 잠재력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해방적 잠재력인가? 물론 인간 해방이다.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또한 유토피아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서 무가치한 것은 아니며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의 성취보다도 그것을 향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의 마지막 3절은 이렇다.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08.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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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이 글 어제 도서관 정간실에서 읽었는데...독서 평설의 평설 위원으로 소개되었더군요.무슨 일을 하는 직책인지요?

로쟈 2008-08-20 23:18   좋아요 0 | URL
그냥 거기에 글을 쓰는 필자는 다 '평설위원'이라고 불립니다.^^;

- 2008-08-2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평설, 고등학생 때 재미있게 봤던 책입니다. 좋은 책 소개 많이 해주세요ㅎㅎ

로쟈 2008-08-21 09:59   좋아요 0 | URL
제 몫은 책 소개는 아니고 갑론을박의 소개인데, 눈높이에 대한 감이 없어서 좀 어렵습니다.^^;

게슴츠레 2008-08-2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같이 블로그 눈팅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번 글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젝을 만나고 또 이해하는 데 항상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로쟈 2008-08-22 02:00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신다니 저로서도 다행입니다. 아주 뻘짓은 아니구나 싶어서.^^;
 

지난 8월 9일자 가디언지에 소개된 지젝의 인터뷰(Q&A)를 옮겨놓는다(http://www.guardian.co.uk/lifeandstyle/2008/aug/09/slavoj.zizek). 인터뷰어는 로잔나 그린스트리트(Rosanna Greenstreet)이며, 우리말 번역은 다음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39Cq/879)에서 가져왔다.  

Slavoj Žižek 

Slavoj Zizek, 59, was born in Ljubljana, Slovenia.

He is a professor at the European Graduate School, international director of the  Birkbeck Institute for Humanities in London and a senior researcher at the University of Ljubljana's institute of sociology. He has written more than 30 books on subjects as diverse as Hitchcock, Lenin and 9/11, and also presented the TV series The Pervert's Guide To Cinema.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어떤 행복한 순간을 기대했던 혹은 기억했던 몇 번 - 그것이 발생하고 있었던 때는 결코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에 깨어나는 것 - 그래서 나는 곧바로 화장되기를 원한다.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어머니가 벌거벗고 있던 기억. 역겨웠다.



가장 존경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아이티의 두 번 파직된 대통령.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인민을 위해 무엇이 행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당신 자신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타인들의 곤경에 대한 무관심.

타인들에게서 당신이 가장 개탄하는 특성은?
내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을 때 나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그들의 얄팍한 심성.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사랑을 나누기 전에 한 여자 앞에 벌거벗은 채 서 있었을 때.

자산을 별도로 하고, 당신이 구입했던 가장 값비싼 것은?
새로운 헤겔 선집 독일어판.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앞의 답을 볼 것. 

당신을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우둔한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는 일.

당신의 외모에서 가장 싫은 것은?
나를 나의 실제 모습으로 보이게 한다는 점.

가장 매력 없는 습관은?
말하는 동안 내 손의 우스꽝스럽게 과도한 틱.

가장무도회의 의상을 고른다면?
내 얼굴에 나 자신의 마스크를 써서, 사람들이 나를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인 척하려는 누군가로 생각하게 하고 싶다. 



가장 죄책감이 드는 쾌락은?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당혹스럽도록 애처로운 영화를 보는 것.

부모에게 빚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를. 나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 일 분도 소비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가장 말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고 이유는?
나의 아들들. 충분히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서.

사랑의 느낌은?
거대한 불운, 기괴한 기생물, 일체의 소소한 쾌락들을 망쳐놓는 항구적인 비상상태.

일생의 사랑은 무엇 혹은 누구인가?
철학. 비밀이지만, 나는 현실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사색할 수 있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냄새는?
썩은 나무 같이, 부패된 자연.

그런 뜻이 아니면서 "널 사랑해"라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언제나. 정말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나는 단지 공격적이고도 고약한 언급들을 함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가장 경멸하는 생존 인물은, 그리고 이유는?
고문을 돕는 의사들.

당신의 최악의 직업은?
가르치기. 나는 학생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대개 우둔하고 따분하다.

가장 큰 실망은?
알랭 바디우가 20세기의 "모호한 재앙"이라고 부르는 것. 즉 공산주의의 파국적 실패.

당신의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나의 탄생. 나는 소포클레스에게 동의한다. 즉 가장 큰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농담에도 있듯이, 이에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19세기 초 독일로, 헤겔의 대학 강의를 들으러.

어떻게 쉬는가?
바그너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얼마나 자주 섹스를 하는가?
섹스의 의미에 달려있다. 살아 있는 파트너와의 통상적 자위라면, 나는 전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때는?
가벼운 심장 발작이 있었던 때. 나는 나의 신체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에게 맹목적으로 봉사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를 거부했다.

당신의 삶의 질을 향상해줄 단 하나가 있다면?
노인성 치매를 피하는 것.

당신의 최대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헤겔에 대한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개하는 챕터들.

삶이 당신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삶은 당신에게 가르쳐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

우리에게 비밀을 하나 말해달라.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아래는 인터뷰 원문이다.

When were you happiest?
A few times when I looked forward to a happy moment or remembered it - never when it was happening.

What is your greatest fear?
To awaken after death - that's why I want to be burned immediately.

What is your earliest memory?
My mother naked. Disgusting.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admire, and why?
Jean-Bertrand Aristide, the twice-deposed president of Haiti. He is a model of what can be done for the people even in a desperate situation.

What is the trait you most deplore in yourself?
Indifference to the plights of others.

What is the trait you most deplore in others?
Their sleazy readiness to offer me help when I don't need or want it.

What was your most embarrassing moment?
Standing naked in front of a woman before making love.

Aside from a property, what's the most expensive thing you've bought?
The new German edition of the collected works of Hegel.

What is your most treasured possession?
See the previous answer.

What makes you depressed?
Seeing stupid people happy.

What do you most dislike about your appearance?
That it makes me appear the way I really am.

What is your most unappealing habit?
The ridiculously excessive tics of my hands while I talk.

What would be your fancy dress costume of choice?
A mask of myself on my face, so people would think I am not myself but someone pretending to be me.

What is your guiltiest pleasure?
Watching embarrassingly pathetic movies such as The Sound Of Music.

What do you owe your parents?
Nothing, I hope. I didn't spend a minute bemoaning their death.

To whom would you most like to say sorry, and why?
To my sons, for not being a good enough father.

What does love feel like?
Like a great misfortune, a monstrous parasite, a permanent state of emergency that ruins all small pleasures.

What or who is the love of your life?
Philosophy. I secretly think reality exists so we can speculate about it.

What is your favourite smell?
Nature in decay, like rotten trees.

Have you ever said 'I love you' and not meant it?
All the time. When I really love someone, I can only show it by making aggressive and bad-taste remarks.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despise, and why?
Medical doctors who assist torturers.

What is the worst job you've done?
Teaching. I hate students, they are (as all people) mostly stupid and boring.

What has been your biggest disappointment?
What Alain Badiou calls the 'obscure disaster' of the 20th century: the catastrophic failure of communism.

If you could edit your past, what would you change?
My birth. I agree with Sophocles: the greatest luck is not to have been born - but, as the joke goes on, very few people succeed in it.

If you could go back in time, where would you go?
To Germany in the early 19th century, to follow a university course by Hegel.

How do you relax?
Listening again and again to Wagner.

How often do you have sex?
It depends what one means by sex. If it's the usual masturbation with a living partner, I try not to have it at all.

What is the closest you've come to death?
When I had a mild heart attack. I started to hate my body: it refused to do its duty to serve me blindly.

What single thing would improve the quality of your life?
To avoid senility.

What do you consider your greatest achievement?
The chapters where I develop what I think is a good interpretation of Hegel.

What is the most important lesson life has taught you?
That life is a stupid, meaningless thing that has nothing to teach you.

Tell us a secret.
Communism will win.

08.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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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답이라기는 애매하지만... &lt;가디언지에 실린 지젝 인터뷰 따라하기&gt;
    from La luna vino a la fragua, con su polisón de nardo 2008-08-29 00:02 
    수쟁님 댁에서 보고 나도 덩달아 따라하기~. 8월 9일자 가디언지에 나온 인터뷰에서 지젝이 받은 질문들이라고. http://www.guardian.co.uk/lifeandstyle/2008/aug/09/slavoj.zizek 아, 원 출처는 요기 http://blog.aladdin.co.kr/mramor/2250312 로쟈님의 알라딘 서재. 가져가도 좋을지 허락을 받는 게 먼저인데... 회원 덧글만 허용이라 그, 그냥 퍼오는 무례를... When w..
  2. franny의 생각
    from frannyglass' me2DAY 2009-01-28 19:32 
    오랜만에 을 다시 들춰봤더니 또 웃음이 슬금슬금. 귀엽잖여.
 
 
가을산 2008-08-1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문답이네요.
더불어서.... 로쟈님의 답도 궁금해요. ^^

로쟈 2008-08-19 22:53   좋아요 0 | URL
지젝만큼 솔직하게 답하긴 어렵울 듯싶은데요.^^;

뽀르르 2008-08-1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은 누구신지요? 굉장히 비관적이시네요
ㅋㅋㅋ


로쟈 2008-08-19 22:53   좋아요 0 | URL
인터뷰 서두의 소개를 참조하시길...

마늘빵 2008-08-1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저도 퍼갈게요. ^^

로쟈 2008-08-20 11:58   좋아요 0 | URL
^^

람혼 2008-08-20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지젝에 의한, 지젝을 위한... 마치 그의 사상적 요점들을 또한 마치 그만의 저 예의 농담과 유머들처럼 풀어내고 있는 간결한 답변들이군요. 읽으면서 계속 쿡쿡 웃어댔더니 배가 좀 아픕니다.

로쟈 2008-08-20 11:57   좋아요 0 | URL
네, 진심을 농담처럼 얘기하는 게 주특기죠...

드팀전 2008-08-2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즐겁군요.정말로...

농담같이 진담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제가 좋아하는 거에요. 지젝이 아니더라도
제가 바보같은 배트맨보다 조커가 좋은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네요.
why so serious? ha ha ha...

갑자기 저도 따라해보고 싶어지는데요...ㅋㅋㅋ

로쟈 2008-08-20 11:57   좋아요 0 | URL
벌써 많이들 따라하시더군요.^^

허리우스 2008-08-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갑니다. 허허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비밀을 누구가 알고 있을까요. 이거 비밀인데 ^^

로쟈 2008-08-20 11:57   좋아요 0 | URL
네,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비밀입니다.^^;

nada 2008-08-2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한 질문도 진부하게 넘기지 않네요. 헛스윙이나 파울볼 없이 최소한 1루타, 2루타를 꾸준히 날려주시는 센스.^^ 본인은 센스고 나발이고, 그저 만사 귀찮다는 듯한 식이지만요. 마지막 항목이 홈런이네요.ㅋㅋ

로쟈 2008-08-20 11:56   좋아요 0 | URL
모처럼 저도 '홈런' 장면을 따왔군요.^^

뽀르르 2008-08-2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부끄런 리플을 달다니 땀이 다나네요.ㅋㅋㅋ
지젝이 로잔나 그린스트리트라는 분을 인터뷰한글인줄 알았습니다.
아는게 지젝 얼굴과 이름뿐이었던지라 이런 황당한 리플을 남겼네요
예전에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이걸로 지젝을 접해보려다 실패한 사람입니다.
무엇부터 읽을지 조사해보고 다시 시도해봐야겠다는 두리뭉실한 마음만 먹어봅니다.^^

로쟈 2008-08-20 22:03   좋아요 0 | URL
잘못 보신 거군요. 저도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낭만인생 2008-08-2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산주의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다만 부활할 뿐입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모든 세력의 종착역은 보수주의 폐쇄적 권력집단이며, 공산주의는 권력이란 존재의 태아기일 뿐입니다. 더 이상 북한도, 러시아도, 중국도 공산주의는 아니다.
권력집단일 뿐이다.
진정한 공산주의는 항상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한채 막을 내린다.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다.

로쟈 2008-08-20 22:04   좋아요 0 | URL
'부활' 정도라면 놀랄 만한 '비밀'은 아닌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리스티드 관련한 번역에서 what can be done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의 영어 번역인데 수동태 번역으로 하니 좀 이상하군요.여하튼 아리스티드를 좋아한다니 저와 공통점입니다.18세기 말 아이티의 투쎙 류베르테르는 프랑스에 맞서 노예 해방 투쟁을 하다가 옥사했고 20세기 말엔 아리스티드가 미국에 맞서 해방신학의 정신으로 싸웠으니 아이티의 역사는 기구하기도 합니다.

로쟈 2008-08-20 23:16   좋아요 0 | URL
네, 영어 번역으론 본때가 좀 안 납니다.^^ 아리스티드에 관한 자료도 좀 소개돼 있나요? 아, <가난한 휴머니즘>이 소개돼 있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셍 류베르테르의 투쟁을 전세계에 알린 책이 제임스<블랙 자코방>입니다.그리고 지젝의 답변 중에서 또 맘에 드는 것이 효도 이념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

로쟈 2008-08-21 10:02   좋아요 0 | URL
네, <블랙 자코뱅>(필맥, 2007)도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08-2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인터뷰네요.. 기억해 놨다가 써먹어 볼까 싶기도 하네요 ^^

로쟈 2008-08-22 12:46   좋아요 0 | URL
이미 써먹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람진이 젊었을 땐 투셍 류베르테르를 존경했대요.그래 놓고 나이들어선 알렉산드르 1세와 친구가 되는 등 왕당파가 되다니...

로쟈 2008-08-22 12:45   좋아요 0 | URL
카람진은 귀족이었는데, 당연한 것 아닐까요? 당시에 다른 포지션은 가능하지도 않았는데요...

쥬베이 2008-08-2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메인사진의 주인공인가요?
비슷하게 생겼네요ㅋㅋㅋ

로쟈 2008-08-22 12:46   좋아요 0 | URL
이제야 아시다니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2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어서 진보주의자였다가 나중에 보수파가 되는 인물은 흔하지만 까람진이 한때나마 유색인종을 존경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서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왕당파가 된 뒤에도 류베르테르를 계속 존경했을까요? 궁금해지는군요.

로쟈 2008-08-23 21:06   좋아요 0 | URL
카람진 얘기는 어디에 나오는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스니아 내전 때 지젝은 뭘 했나요?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에는 '세르비아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슬로베니아'라는 이미지는 조작되었고 사실은 슬로베니아가 세르비아를 도발했다는 견해가 소개되어 있던데요.지젝 집안도 카톨릭인가요? 물론 지젝은 아니겠지만.

로쟈 2008-08-23 21:02   좋아요 0 | URL
유사한 질문은 받고 지젝이 답한 부분이 있는데,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지젝의 집안사정은 저도 모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S.미르스끼<러시아 문학사>입니다.

로쟈 2008-08-23 23:22   좋아요 0 | URL
미르스키도 제가 학부때 읽은 것이니 기억이 안 날 만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 전 읽었어요.
서점에 나가 보니 까람진 소설선이 나왔더군요.정막래란 분이 번역했더라구요.이름이 특이해서...예전에 딸 많이 나오면 지었던 이름 같기도 하구요.그래서 까람진에 대해 한 번 알아볼까 해서 도서관에서 미르스키 책 찾아 19세기 전반기만 살짝 훑어봤죠.

로쟈 2008-08-25 00:09   좋아요 0 | URL
카람진은 사실 굉징히 큰 인물이고, 작가로서보다는 역사가로서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푸슈킨도 좋아하고 존경했지요. 일종의 롤 모델이었다고 할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람진이 역사 책 쓰다가 보수파가 되었다고 하더라구요.문장이 뛰어나서 그 러시아사가 꽤 잘 팔렸다고 하던데요.역시 대역사가는 대문장가! 푸슈킨은 진보적이라는 인상을 간직한 채 죽어서-게다가 결투라니! 얼마나 장렬한가요-어찌 보면 다행?이지요.

로쟈 2008-08-26 17:35   좋아요 0 | URL
푸슈킨은 생전에 이미 상당한 굴절을 겪었습니다. 20대 청년시절에나 제카브리스들의 우상이었고 봉기 이후엔 주변으로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았습니다. 황제와의 독대도 있었고, 모종의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죠. 결과를 놓고 보자면 푸슈킨이 황제 니콜라이에게 배신당한 거지만. 푸슈킨은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중용'과 '균형'을 지킨 작가라고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지난주말 리뷰기사 중 <옛사람의 눈물>(글항아리, 2008)에 대한 것을 뒤늦게 읽었다. 제목만으로는 눈물 나지 않는데, 기사를 읽다 보니 마음이 무겁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조선시대 '만시(挽詩)' 모음집이다. 만시는 종류도 다양해서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등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남을 대신해 지으면 ‘대만시’이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쓰는 건 ‘자만시’라고. '제망매가'가 만시의 '원조'쯤 되지 않을까 싶다. 삶과 죽음의 길이 멀리 있지 않다...

한겨레(08. 08. 16) 죽은 자를 애달파하는 남의 자의 토설

“통곡이 끝나도 또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 거두니 또 울음이 터지네/ 울음이 터짐에 또 무슨 말을 하랴/ 그저 애간장만 마디마디 끊어질 뿐”

조선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조태억이 둘째아들을 잃고서 남긴 오언절구 10수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한문학자 전송열(연세대 강사)씨의 <옛사람들의 눈물>은 조선 시대 만시를 종류별로 모아 엮고 작품의 배경과 미학적 특징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우리 형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던가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을 보곤 했지요/ 오늘 형이 그리운데 어디 가서 볼까 하다/ 옷매무새 바로 하고는 시냇물에 비춰봅니다”

연암 박지원의 시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호가 난 연암이지만, 산문에 주력하느라 그가 쓴 시는 15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버지와 두 형제 사이의 닮은꼴 외모를 통해 아버지와 형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솜씨는 ‘역시 연암’이라는 찬탄을 자아낸다.

만시의 대상은 가족과 친구, 또는 스승이나 제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남을 대신해 지은 ‘대만시’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쓴 ‘자만시’도 없지 않았다. 특히 부부유별의 엄격한 유교적 법도가 중시되던 조선 사회에서 만시는 점잖은 선비들이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거침없이 표현할 통로가 되기도 했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 제주에서 아내의 죽음을 한 달여 만에 알고서 쓴 작품이다. 월모란 자식을 점지하는 삼신할미처럼 배우자의 인연을 맺게 해 준다는 전설 속의 노파를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그렇게 아내를 떠나 보낸 지아비의 아픈 심사를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추사가 자기 중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살아서도 이별했는데 이제 죽어서 또 이별함을 참담히 여긴다”며 “저 푸른 바다 저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끝이 없을 뿐”이라 탄식한 산문 ‘애서문’(哀逝文)을 추사의 알리바이 삼아 읽어 볼 만하다.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기 대여섯”

조선 후기의 빈한했던 선비 이양연이 처와 둘째아들을 연이어 잃고 쓴 <슬픔을 피하려고>라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몇 달 상관으로 떠나 보낸 가장의 아픔이 은근하면서도 둔중하게 다가온다. 제목에서 보듯, 슬픔을 표나게 내세우는 대신 ‘딴청’을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슬픔과 아픔을 자극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너희 남매의 혼은/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랄까”

“해 떨어져 하늘은 칠흑과도 같고/ 산은 깊어 골짜기가 구름과 같네/ 천 년토록 지키자던 군신의 의는/ 슬프게도 외로운 무덤뿐이로구나”

앞의 것은 비운의 여성 예술가 허난설헌이 어린 남매를 차례로 잃고서 쓴 <죽은 자식을 통곡하며>라는 작품이고, 뒤엣것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죽임을 당한 기준이 사약을 받고서 자신의 죽음을 읊은 ‘자만시’다. 어느 죽음이 무겁고 어느 죽음이 가벼우며 어느 죽음이 억울하고 어느 죽음이 통쾌하다 하겠는가. 계절처럼 오고 가는 생과 사 앞에 다만 옷깃을 여밀 따름.(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8.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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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19 20:45   좋아요 0 | URL
이덕무도 슬픈 사연이 깃든 시를 썼었죠. 그의 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얻은 폐병과 영양실조로 죽었고, 누이도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서 영양실조로 죽었잖습니까. 이덕무가 정조에게 발탁되어 녹봉을 받기 전까지 너무 가난해서 굶는 일을 밥 먹듯이 하며 책까지 팔아야 했다는. "어두운 흙구덩이에 차마 어찌 옥같은 너를 어찌 묻으랴"는 제문은 막막한 글이죠.

로쟈 2008-08-19 22:54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하면 막막한 죽음들입니다...

2008-08-2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0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정부수립 60주년' 기획기사 꼭지들을 읽었다. 최근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건국신화 만들기'에 '지배 엘리트의 승리만 있고 민중의 피나는 투쟁은 없다'란 지적에서 바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벤야민의 역사주의 비판이다. 그가 보기에 역사주의는 승자들의 역사만을 기록한다. 반면에 역사적 유물론은 패자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며 그들을 상기하는 것이다(벤야민의 경고는 따라서 진보주의적 역사관으로는 파시즘에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벤야민의 유명한 경구이지만, 승자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다(그러니까 일면 부듯하더라도 양식이 있다면 큰소리로 떠들 것까지는 없는 역사다). 저들의 이승만 건국신화나 북한의 김일성 건국신화나 그러고 보면 한 통속이다. '기적의 역사' '승리의 역사'를 내세우지만 역사관에서만큼은 서로 식별되지 않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경향신문(08. 08. 19) 이승만 건국에서 성공 씨앗 찾는 뉴라이트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가 추진 중인 ‘건국신화 만들기’가 위험한 것은 현대사를 바라보는 몇 가지 인식틀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한국 현대사가 예정된 성공을 위해 걸어온 과정으로 본다. ‘기적의 역사’ ‘승리의 역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는 이러한 ‘역사 결정론’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이승만의 건국에서 이미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공의 씨앗이 배태돼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이승만의 건국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적화된 공산국가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라는 우익의 인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최근 극우 논객 조갑제씨가 했던 “박태환의 올림픽 우승은 이승만, 박정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 잘 보여준다.

역사 결정론은 한국 현대사가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이제 선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단계론’으로 이어진다. 해방 직후 공산화와 북한의 침략을 이겨내고 건국을 달성했고, 이를 토대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그렇게 해서 성장한 중산층이 물적 토대가 돼 민주화까지 성취했으니, 이제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다시 제2의 산업화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이 도식의 레이더 망에 잡히지 않는 모든 것은 역사에서 배제된다는 데 있다. 가령 1948년 제헌헌법의 균등 교육, 토지 균분 등 사회주의적 요소들과 친일파 처벌이라는 민족주의적 의제는 좌우 갈등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정부 차원에서 사라져버렸다. 진짜 건국 정신은 여기에 있는데도 이 정부와 뉴라이트는 그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은 주류 무대에서는 사라진 듯 했지만 끊임없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의 의제로 남아 이후 87년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는 토대가 됐고, 한국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데 기여해오고 있다.

산업화가 먼저 있었기에 민주화가 가능했다거나 둘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었다는 주장도 그런 점에서 사후 합리화의 성격이 짙다. 민주화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누군가가 ‘빨갱이’로 지목돼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배제될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문제 제기하며 실천하려 노력했던 가치이며 그 결과로 민주화도 가능했다. 산업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민주화를 한 것이 아니다. 산업화가 일어나기 전의 4·19가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도 참여했다는 6·3 항쟁이 그렇다.

신주백 국민대 연구교수(한국현대사)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는 이승만이 4·19 혁명에 의해 쫓겨난 일을 정면에서 주목할 수 없으며, 만주국군의 중위였던 박정희 같은 엘리트 장교 가운데 민족의 운명보다 일본의 운명과 자신의 미래를 동일시했던 반민족적인 성실한 기회주의자가 여럿 있었다는 점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 역사관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배 엘리트 중심의 역사관, 승리의 사관이라는 점이다. 이는 현대사 논쟁이라고 하면 늘 이승만, 박정희 등의 정치 지도자 얘기로만 이뤄지는 것과도 관계있다. 여공과 식모, 건설노동자, 농민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또 짓밟힌 민초들의 삶은 간단히 무시해버리거나 그저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넣는 정도의 인식이다.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한국현대사)는 “역사란 다양한 가능성의 갈등과 그 역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것”이라며 “여러 가능성들 중 현실화된 한 가지 가능성만 보고 희생된 다른 가능성들과 그로 인한 갈등을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식의 역사 인식은 과거를 현재에 종속시키려는 태도”라고 말했다.(손제민기자)

08. 08. 19.

 

 


 

P.S. 오늘 읽은 기사의 나머지 두 꼭지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체성과 건국신화 만들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808181834035)와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의 위험한 현대사 인식'(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808181839225) 이다. 기사에서도 참고자료가 밝혀져 있지만, 이 주제와 관련하여 네 권만 꼽자면, 박찬표의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7), 참여사회연구소가 기획한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 2007), 그리고 서중석 교수의 <한국 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 2007)과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펴낸 <건국 60년의 재인식>(기파랑, 2008)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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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19 20:54   좋아요 0 | URL
이명박 정권은 수순을 원칙적으로 잘 밟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제가 부디 오해하거나 잘못 본 것으로 확인되길 바라지만
이 생생한 현실이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로쟈 2008-08-19 22:56   좋아요 0 | URL
이번주 시사잡지들은 모두 인천공항 민영화 플랜을 다루고 있더군요. 그걸 읽으며 '무서운 놈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19   좋아요 0 | URL
이번 주에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의 최근 글을 읽으며 그들의 건국론을 파악해 보고 있습니다.특히 이승만 살리기와 관련해서 보고 있습니다.제 서재에 그 감상을 올릴까 생각중인데 상상 외로 읽을 분량이 많군요.

로쟈 2008-08-20 23:22   좋아요 0 | URL
돈 주고 사서 읽을 생각은 없는지라 노이에자이트님의 감상이나 고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