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00년대 들어와서 인문학계 주요 화두의 하나로 떠오른 게 '파시즘'이 아닐까 싶다. 계간 당대비평에서 주도했던 '일상적 파시즘'(혹은 '부드러운 파시즘') 담론이 그 계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임지현 교수 등이 엮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이 물꼬를 튼 책이다. '파시즘 결정판'이라 할 만한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 2005)이 두번째 기폭제쯤 되고 이후에는 파시즘 관련서들이 해마다 댓권씩은 출간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저명한 역사학자 조지 모스의 <대중의 국민화>(소나무, 2008)가 최근에 스타트를 끊었다(임지현 교수가 공역자의 한 사람이다). 모스는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 2004), <남자의 이미지>(문예출판사, 2004) 등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저자. <대중의 국민화>는 이미 제목으로도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부제는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이다. 더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책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4. 05) 어떻게 독일 대중이 ‘히틀러 국민’이 돼갔나

“아돌프 히틀러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시니, 당신의 이름은 적들을 떨게 하나이다. 당신의 왕국에 임하옵시고, 당신의 뜻만이 이 땅 위에서 법칙이 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며, 또한 우리의 삶을 투신하여 복종하길 원하옵는 당신. 지도자의 지위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구세주 히틀러여, 이를 언약하나이다.”

‘주기도문’을 본뜬 이 ‘히틀러를 위한 기도문’을 나치 지배하의 독일 국민들이 지극정성으로 외웠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광기어린 파시즘의 표상이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를 히틀러나 파시즘 체제가 강제한 걸까. 오랫동안 수많은 역사가와 정치·사회학자들은 파시즘이 강제동원과 세뇌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적 강요로 유지돼 왔다고 믿었다. 독일 대중이 ‘일탈적인 히틀러의 국민’이 된 것도 야만적 소수 권력의 조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통념을 처음 깨뜨린 것은 나치 통치 아래서 인종 청소의 대상이었던 유대인이었다. 객관적인 제3자가 아닌 당사자, 그것도 최대의 피해자가 코페르니쿠스적 시각 교정에 앞장선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뒤 나치 통치를 피해 모국을 떠나야 했던 역사학자 조지 L 모스가 바로 그다. 모스는 ‘대중의 국민화’에서 파시즘이 히틀러 같은 소수의 독재자가 민중의 역사를 강제로 탈취한 것이 아니라 ‘18세기에 떠오른 인민 주권 사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의 절정’이라고 해석하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모스는 이 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와 인민주권 사상이 파시즘을 낳는 세속적 정치 종교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을 탐사한다. 히틀러가 독일 민족주의를 강압적으로 만들어나간 게 아니라 독일 대중이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어 가는지를 추적한 것이다. ‘일반 의지’는 루소의 국가론에 나타나는 중심 개념이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 계약의 당사자로서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국민 의지가 그것이다. 개별 의지의 총합이 전체 의지라면, 일반 의지는 공동선을 위한 개별 의지의 총합인 셈이다.

루소는 과거 대사건들의 명칭을 새긴 기념비 주변에서 10년 주기로 애국 축제를 개최하라고 폴란드 정부에 권유한 적이 있다. 폴란드 국민이 조국과 자신들의 역량에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선 대중적인 경기와 체전, 기념식을 기획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루소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은 막상 폴란드가 아닌 통일 의지가 충만하던 독일이었다.

사실 ‘새로운 정치’는 이미 19세기 초부터 ‘일반 의지’의 구체적 표현인 의례(儀禮)와 축제, 신화와 상징을 통해 민족이라는 신비에 민중이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라이프치히 민족전투기념비가 제막된 1913년, 축제의 주제가 된 ‘독일의 통일과 권력을 위해 싸우고 피 흘려 죽자’는 라이프치히 전투를 기념하던 이전의 전통에서 비롯됐다.

히틀러는 1935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역사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민족 가운데 자신만의 기념비를 세우지 않은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연설했다. 나치즘은 등장 이전 1세기에 걸쳐 민족 제의(祭儀)의 발전 위에 건설됐다. 그런 발전은 나치의 정치 양식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걸 빼고는 대중운동으로서의 나치즘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민족주의 제의는 히틀러라는 헌신적인 지지자를 찾아냈을 뿐이다. 히틀러는 이런 의례의 실용적인 면과 이데올로기적인 면을 모두 꿰뚫어 현실적인 정치적 고려와 자신의 본능적 믿음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게르만 민족주의 상징체계는 기념비와 공공 축제의 신성한 불꽃이었고, 민족 축제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 합창단, 사격동호회, 체조동호회 같은 조직은 ‘새로운 정치’의 비중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 책은 합창단과 동호회의 변화, 건축 양식, 음악, 대중 예술, 미장센, 조명 등 미시사의 분석을 통해 공통점이 없던 대중이 강력한 정체성을 지닌 독일 국민으로 변해간 과정을 살갑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파시즘은 끝났다고 여기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여전히 ‘현재의 역사’라고 결론지은 대목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많다. 번역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덧붙인 해설에서도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불과 1년여 전에 새로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리 국민 대다수의 희망에 따른 ‘자발적 복종’이었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북한의 개인숭배와 가족 국가적 이상주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논객인 임 교수는 정치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독재와 민주주의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형용모순적인 개념의 ‘대중 독재’라는 편저에서 파시즘을 모스와 흡사한 시각에서 살핀 적이 있다.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 논리나, 폭력과 억압을 통한 강압적 지배라는 단색의 이미지로 포착하기엔 근대 독재의 현실은 몹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라고.(김학순 선임기자)

George L. Mosse: Toward the Final SolutionGeorge L. Mosse: The Fascist RevolutionGeorge L. Mosse: The Crisis of German Ideology

P.S. 아직 번역되지 않은 조지 모스의 책들에 <최종 해결책을 향하여>, <파시스트 혁명>, <독일 이데올로기의 위기> 등이 있다. 거기에 보태서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은 <대중과 인간>, <타락한 병사들>, <나치 문화> 등이 더 있고, 회고록 <역사와의 대면>도 눈에 띈다. 모두 관심이 가는 타이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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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개념글 9 ; 최장집, 미코노미, 파시즘
    from 일체유심조 2008-04-06 01:30 
    어제 아버지 산소를 돌보고 와서 계속 떠나지 않는 생각이 시간의 감옥 속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사람은 나이에 따라 '쾌락의 의지'-'권력의 ...
 
 
라주미힌 2008-04-04 23:16   좋아요 0 | URL
'로자의 낚시' ㅋㅋㅋ 제가 물고기가 된 듯, 막 끌리는 책이네요.

로쟈 2008-04-05 00:18   좋아요 0 | URL
일단은 제가 먼저 '낚인' 책들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13   좋아요 0 | URL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나 골드하겐(나치의 협력자들)의 주장은 보통사람들에게 굉장히 불편할 것 같아요.지배자는 나쁜 놈이고 민중은 억압당했다는 식으로 자위하지를 못하게 해버리니까요.이 책의 이론을 일제시대에 적용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나게 불편하겠군요.임지현 씨가 번역할 만한 책이군요.평소 이런 주장을 많이 하니까요.

로쟈 2008-04-06 23:24   좋아요 0 | URL
악용하지 않는다면 음미해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의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8)는 요즘 매주 두어 장씩 가장 주의해서 읽고 있는 책이다. 필요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의의 품위와 격조가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어서다. 교수신문에서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26). 필자는 <신곡> 번역서와 해설서를 낸 바 있는 김운찬 교수다.

교수신문(08. 03. 31) 50년 고전 읽기의 모범

아마 『신곡』만큼 다양한 해석으로 열린 작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소위 고전 작품들의 특징이라면, 『신곡』은 그런 정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때로는 깊이 읽을수록 오히려 헷갈리게 보이거나 더 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주기도 한다. 언제나 새롭고 신비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일부 열성적인 독자들에게 『신곡』은 지속적인 탐색과 산책의 무대가 된다. 읽을 때마다 여러 가지 사색의 실마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진정한 ‘텍스트의 즐거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도쿄대 문학부 교수를 역임한 이마미치 도모노부(今道友信)의 『단테 ‘신곡’ 강의』는 50년에 걸친 『신곡』 사랑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 사랑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매주 토요일 밤 3시간씩의 만남을 통해 지속됐다고 한다. 아마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강렬한 사랑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1997년 3월부터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이뤄진 15차례의 ‘강의’를 통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내게 됐으니, 그 정도와 깊이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마미치는 단순히 『신곡』을 읽고 이해하는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전공 분야인 철학이나 미학의 관점으로만 읽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곡』을 매개로 해 자신의 삶과 학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테뿐만 아니라 다른 위대한 인물들과 어울려 마음속의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일종의 창조적인 읽기가 된다. 텍스트의 전통적인 해석에만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연상 작용과 함께 새로운 연결 고리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 책은 고전 읽기의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신곡』을 읽기는 쉽지 않다. 『신곡』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테의 개인적인 삶과 사상을 비롯해 당시 유럽의 시대적인 상황, 정치적 싸움과 종교적 갈등,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 스콜라 철학과 신학의 주요 관념 등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으면 단테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거기에다 텍스트의 의미 구조가 복잡하다. 하나의 표현 속에 여러 가지 의미들이 중첩되고 겹쳐진 구조로 돼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외에 알레고리, 즉 友誼(우의)적 의미와 신비적 의미, 도덕적 의미 등이 동시에 함축돼 있다. 따라서 어떤 구절에서는 서너 가지의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중세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특히 성경 텍스트의 해석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으며, 또한 단테 자신이 그렇게 읽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신곡』에는 무슨 뜻인지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구절들이 종종 발견된다. 일부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학자들마다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감추어진 비밀이나 은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도 바로 그런 해석을 토대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마미치가 『신곡』의 첫 3행을 해석한 것처럼, 악센트 하나가 있는가 또는 없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우리말 번역본에서는 그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독자들에게 탐색의 재미를 찾게 해준다. ‘철학자 시인’ 또는 ‘시인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단테는 자기 텍스트의 여러 곳에다 마치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이 흥미로운 해석의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다. 게다가 『신곡』은 중세를 총체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작품,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만큼 풍부한 상징적 의미들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신곡』 읽기는 일종의 지적 도전이 된다. 제대로 음미하면서 읽으려면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마미치의 책은 전체 15번의 강의로 구성돼 있는데, 처음 세 번의 강의는 그런 준비 작업에 할애돼 있다. 단테와 『신곡』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양’을 탐색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작업이다. 먼저 호메로스에서 베르길리우스를 거쳐 단테에 이르는 고전 서사시의 전통과 특징을 더듬어본다. 또한 단테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유럽 문화의 양대 뿌리에 해당하는 그리스 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고전’, ‘문학’, ‘성경’, ‘역사’ 등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교양 용어들의 어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특히 클래식, 즉 ‘고전’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와 역할을 다시금 되새겨 봄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알찬 읽기를 준비하도록 배려한다.
 
본격적인 『신곡』 읽기에 들어가서 이마미치는 오랜 세월 동안 관심과 사랑을 기울인 노련한 학자답게 수많은 해설서와 번역본, 관련 자료들을 상호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거기에다 나름대로 독창적인 해석과 번역까지 곁들여 제공한다. 인상적인 것은 놀라운 외국어 능력이다. 단테의 이탈리아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어와 라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넘나들면서 『신곡』의 세계를 파헤치고 숨겨진 의미들을 찾아낸다. 인문학 연구는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실증적으로 보여주듯이, 작품의 연구로서 해석이란 원래 작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미까지 발견해내는 작업이다. 때로는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독특한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읽기에는 다른 분야의 관점들이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 이마미치는 『신곡』을 일본 문학의 고전 작품이나 구비 문학, 또는 다른 전통적 요소들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읽기를 시도한다. 일부 구절에 대해서는 다른 예술 분야나 종교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들은 특히 강의가 끝난 후 청중들과의 자유로운 질의응답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중들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단테의 목소리는 색다른 어조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스콜라 철학의 본질을 노래하는 『신곡』이 불교나 동양 사상과 비교되거나 접목될 수도 있다.

그렇게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은 분명 『신곡』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나 입문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먼저 최소한 한 번 이상 『신곡』을 주의 깊게 통독해야 할 것이다. 또 가능하다면 단테의 목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이탈리아어 지식도 필요하다. 이마미치의 강의를 듣고 질문이나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마미치가 관심을 기울이는 또 한 가지 문제는 번역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신곡』을 읽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단테의 언어로 읽는 것이리라(물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테가 직접 쓴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필사본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이탈리아 단테 학회에서 정한 판본이 일종의 표준 판본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번역본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번역은 출발 언어와 도착 언어 사이의 차이 때문에 불완전한 ‘옮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운문의 경우 특히 그렇다.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기 직전에 쓴 미완성 작품 『향연』에서 시의 번역 불가능성에 대해 언급한다. 호메로스의 작품과 「시편」을 예로 들면서 단테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형식적 조화를 특징으로 하는 운문 작품은 다른 언어로 번역할 경우 필연적으로 고유의 감미로움과 조화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언어로 번역하든 음절의 숫자와 각운, 리듬 등 단테의 시가 간직하고 있는 고유의 형식적 아름다움은 훼손되거나 변화될 수밖에 없다. 이마미치는 권위 있는 『신곡』 주석본들과 여러 개의 일본어 번역본을 서로 비교하면서 설명하는데, 그것은 주로 단테의 이탈리아어가 갖는 시적 풍부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본어로 옮길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 일본어 번역문의 표현 방식, 또는 시적 느낌이나 뉘앙스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석이나 오역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우리말로 옮기다 보니(이것은 일종의 重譯이다) 그 구체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일본어의 시적 표현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어떤 번역이 뛰어나거나 훌륭한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곡』의 경우 번역과 관련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20여 종류가 넘는 『신곡』 번역본이 출판됐다. 그 중에는 정체불명의 번역이나 번안 작품도 포함돼 있으며, 최소한 절반 이상이 중역이다. 물론 중역본이 더 훌륭한 경우들도 있지만 원본, 즉 출발 텍스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또 대부분이 내용 위주의 번역에 치우쳐 형식적 조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시적 전통을 고려하는 참신한 번역을 시도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 지향적 번역은 『신곡』의 난해함이나 지루함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번역의 문제와 관련된 책을 번역할 때에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를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으나, 일부 일본어식 한자 용어들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또한 베르길리우스의 이탈리아어 이름을 ‘베르질리오’로 표기했는데 국적 불명의 이름이 돼버렸다. 굳이 우리말로 표기하자면 ‘비르질리오’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원문에서 라틴어 이름과 이탈리아어 이름을 뒤섞어서 쓰고 있지만, 하나로 통일하고 역주로 처리해도 좋을 듯하다. 단테의 저술 『제정론』을 『제왕론』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신곡』의 경우처럼 모든 번역은 언제나 수많은 가능성 앞에 노출됨으로써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김운찬/ 대구가톨릭대·이탈리아어과) 

08.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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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8-04-04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토요일 3시간을 할애해서 열심히 읽으리라 다짐을 하지만...토요일만큼은 놀고싶다요~~
요 챕터 가져갑니다.

로쟈 2008-04-04 09:36   좋아요 0 | URL
공부의 즐거움도 노는 즐거움 이상인데요.^^
 

최근 <나의 '햄릿' 강의>(생각의나무, 2008)을 출간한 원로 영문학자이자 연극평론가 여석기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그의 <강의>는 지난 월요일에 손에 들었고 마침 모니터 바로 앞에 놓여 있기도 하다.

경향신문(08. 04. 02) 여석기 교수 “연극은 바보 짓, 그래서 의미있다”

21년 전 대학 강의실을 떠난 원로 학자가 못다 한 강의를 책으로 옮겼다. 영문학자로 셰익스피어 전문가이자 한국연극평론 1세대인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86)가 최근 ‘나의 햄릿 강의’(생각의 나무)를 펴냈다. ‘해방 학문 1세대’로 평생을 영문학에 매진해오며 날카로운 비평으로 연극계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노학자는 학생들에게 건네듯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매주 월·수·금 서울 종로2가 사무실에 나가 오후 5시까지 책읽기와 글쓰기를 계속한다. 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에서 만난 여 교수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일찌감치 겉옷을 갖춰 입고 기자를 맞아주었다. 그의 서재는 가난했다. 평생 학문연구를 위해 모아온 방대한 자료들은 진작에 기증했다.

해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여석기 연극평론가상’ 얘기가 나오자 쑥스러워했다. 60여년 넘게 품어온 햄릿에 대한 생각, 연극평론가로서 바라본 연극계의 현실 등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침침한 눈과 뻣뻣해진 몸 탓에 연극을 못본 지 10년이 넘었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은 변함없다. 흥미를 끌만한 가벼운 질문에는 학자다운 진지함과 냉철함으로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책은 어떻게 내셨나요.

“내가 책 낼 나이가 아닌데 작년에 엉뚱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다면 뭐가 달라질까? 딱딱하고 힘든 책은 못쓰겠고, 햄릿이 텍스트 연구보다는 공연 쪽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으니 무대 위의 ‘햄릿’은 어떻게 그려지는지도 함께 담아 편히 읽도록 했죠. ‘맷집’ 좋은 햄릿이니 시종 편안한 건 아니고…. 읽다가 딱딱한 얘기는 그냥 건너뛰면 돼요. 1년 넘게 작업했죠.”

-연극과는 언제 인연을 맺으셨나요.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작이 ‘햄릿’이었어요. 당시 유치진 선생이 번역을 부탁했죠. 그 전에도 햄릿이 자주 공연됐으니 번역대본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개관 3~4개월 앞두고 급하게 공연대본으로 번역했어요. 51년 이해랑 선생이 이끈 극단 신협이 대구에서 ‘햄릿’을 공연할 때도 그 자리에 있었지요. 전쟁의 와중에도 구경꾼들이 많아 난리가 났어요. 예전 배우들이 여관에 발 묶여있을 때 쉽게 올렸던 작품이 ‘춘향전’ 아니면 ‘햄릿’이었어요. 그만큼 인기가 좋았던 작품입니다.”

-‘햄릿’이 왜 인기일까요, 햄릿과 60여년 살아오셨는데요.

매력적이에요. 그러나 한마디로 말할 순 없어요.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 가운데서도 드문 인물이죠. 햄릿 1막부터 5막까지의 시간 경과를 따지면 채 1년이 되지 않아요. 그러나 1막의 햄릿과 5막의 햄릿은 달라요. ‘내면적 성숙’, 인간적으로 바라본 햄릿의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42년 도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햄릿을 만났으니 오랜 세월 함께했죠. 청년 때 만난 햄릿과 점점 늙어가며 느끼는 내 마음속의 햄릿은 분명 다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야단스러운 얘기일 테고 난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게 햄릿에 대한 나의 결론입니다.”

-요즘 자기 확신에 차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햄릿과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흔히 ‘햄릿형’이라고 해서 ‘귀공자인데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하고 행동이 부족하다’ 그런 말을 하죠. 19세기부터 내려온 이미지입니다. 시대마다 햄릿에 대한 풀이가 달랐던 것 같아요. 햄릿이 너무 일찍 죽었어요. 햄릿에게 ‘본심이 뭐냐’고 물으면 씩 웃고 치우겠죠. 대답도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질문에는 뭐라고 답변할 수가 없군요. 햄릿의 본심을 모르니까요.”

-요즘 연극,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이 참 묘합니다. ‘연극 위기론’은 사람들이 연극을 즐겨보던 60~70년대에도 끊임없이 나왔어요. TV·영화에 이어 요즘은 뮤지컬이 자리를 빼앗는다고 하죠. 연극도, 연극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굶주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극이 줄어들지는 않았어요. 중요한 것은 관객 수가 아니라 좋은 극작가, 좋은 배우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많은 관객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연극의 역할은 뭘까요.

연극은 산 사람(무대)과 산 사람(객석)이 교류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연극처럼 비효율적인, 바보같은 짓이 어딨습니까. 한 번 공연하고 사라지는 일회성, 참 골치아픈 겁니다. 얼마나 낭비입니까. 하지만 그 비경제성이 의미있어요. 산사람끼리의 소통을 이끄는 그 매체(연극)의 깊이를 어떤 것도 못따라갑니다. 능률만 갖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연극은 그것을 일깨워주죠.”(김희연기자)

08. 04. 03.

P.S. 한겨레의 인터뷰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80076.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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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관심에다 필요까지 겹쳐서 앤 애플바움의 <굴락>(드림박스, 2004)을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오늘은 아예 원서까지.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굴락)에 대한 이 방대한 저작은 지난 2003년에 출간됐고 이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국역본이 나온 게 2004년 12월이니까 분량을 고려하면 초스피드로 나온 셈이다. 역자가 'GAGA 통번역센터'라는 건 그래서 이해할 만하다. 이른바 '집단번역'인 것. 하지만 동시에 '강제번역'이었는지 번역의 수준이 '수용소'만큼이나 열악하다(이미 절판된 책이니 이런 흠을 잡는다고 해서 매출에 지장을 초래하진 않겠군. 혹은 이런 평도 명예훼손감일까?).

 

 

 

 

'당신에 없는 사이에' 나온 책이어서 기억에 내가 국역본의 존재를 안 건 마냐님의 리뷰를 읽고서이다(http://blog.aladin.co.kr/goodmom/601472). 너무도 허술하게 번역됐다는 지적을 읽었기 때문에 따로 구입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출간된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조해보니 원서와 같이 읽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누가 그렇게 읽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책의 헌사에서부터 번역은 '번역'이 필요하다.

저자인 애플바움은 "이 책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신 분들께 바칩니다."라고 헌사에 적었다.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Described What Happened." '알려주신'이라고 옮긴 단어는 'Described'이다. 이 경우엔 '기록한' 혹은 '기록으로 남긴'이란 뜻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 저자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수용소 체험자들의 기록과 증언 덕분이었을 테고 그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노벨문학상 수장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수용소군도, 1918-1956>라는 방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애플바움은 영역판의 서문을 썼다). 그런데 이 헌사는, 특히 'Described'란 단어는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1889-1966)의 한 서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 사실이 국역본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데 옮겨보면 이렇다.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끔찍했던 몇 년 후 나는 레닌그라드의 수용소 밖에서 줄을 서며 17개월을 보냈다. 어느 날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내 뒤에 서 있던 여자는, 추위로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으며, 물론 이전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은 없었다. 이제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 마비상태에서 벗어나서 나에게 속삭이며 물었다(그곳에서는 모두가 속삭이며 말했다). "이걸 설명할 수 있나요?" 나는 말했다. "할 수 있어요." 그러자 미소 비슷한 것이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쳐갔다."

인용문의 출처는 아흐마토바의 연작시 '레퀴엠 1935-1940'의 서문이다. 국역본에는 "서두 해설 대신 진혼곡 1935-1940"이라고 돼 있는데, "Instead of a Preface: Requiem 1935-1940"을 옮긴 것이고, '서문을 대신하여'는 이 연작시의 서문격으로 1957년에 붙인 에피소드다(시의 전문은 http://www.wikilivres.info/wiki/index.php/Requiem_%28Akhmatova%29 참조, 영역으로는 http://www.poemhunter.com/poem/requiem/).

그런데, 이 인용문 번역의 첫문장, 첫단어부터 국역본은 잘못 옮겨놓았다.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끔찍했던 몇 년 후 나는 레닌그라드의 수용소 밖에서 줄을 서며 17개월을 보냈다."의 원문은 이렇다. "In the terrible years of the Yezhov terror I spent seventeen months waiting in the outside the prison in Leningrad." 

여기서 'Yezhov terror'를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라고 옮겼는데, '예조프'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설사 인명인 줄 모른다고 쳐도 단 몇 초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건만!). 니콜라이 예조프(1895-1940)로 KGB의 전신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총수였고 악명 높았던 1937-8년의 대숙청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물론 이후에 그 자신도 숙청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쓰는 스탈린 시대'란 페이퍼 참조(http://blog.aladin.co.kr/mramor/1745168). 그러니 'Yezhov terror'는 '예조프에서 일어난 테러'가 아니라 '예조프의 테러'를 가리킨다. 거기에 '몇 년 후'란 번역은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지 알기 어렵다. 첫문장을 다시 옮기면, "예조프의 테러가 판을 치던 끔찍한 시절 나는 17개월을 레닌그라드 감옥 바깥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보냈다." 

 

누굴 기다리며? 짐작엔 아들 레프 구밀료프를 기다리며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레프는 남편인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의 사이에서 낳은 외아들이다. 그는 나중에 부모 이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가 된다). 스탈린은 유명시인이었던 어머니를 직접 핍박하는 대신에 아들을 체포하여 '볼모'로 삼았고 때문에 아흐마토바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시까지 써서 바치기도 했다.

여하튼 그런 곡절 때문에 수용소 밖에서 기다리던 아흐마토바를 어느 날은 한 사람이 알아봤다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 아흐마토바의 이름을 부른 것이겠다. 그리고 그걸 들은 뒤의 여자가 굳었던 입을 열고 이 '시인'에게 속삭였을 터이다. "이걸 기록하실 수 있겠어요?(Can you describe this?)" 물론 '이것'이 가리키는 건 이 '말도 안되는 사태'이겠다. 그에 대해서 아흐마토바는 이렇게 답한다. "할 수 있어요.(I can.)" 그때 스쳐간 희미한 미소라는 건 이 터무니없는 역사적 수난이 그래도 기록(의미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작은 위안의 표시겠다. 아흐마토바의 '레퀴엠(진혼곡)'은 바로 그 '기록'인 것이고.

해서 나는 애플바움의 헌사 "This Book is Dedicated to Those Who Described What Happened."를 "이 책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기록해준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앤이 쓴 건 '히스토리'이고 안나가 쓴 건 '레퀴엠'이지만 두 여자는 현대사의 한 비극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서로 교신하고 있다...

08.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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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4-03 22:37   좋아요 0 | URL
아흐마토바의 책들이 좀 소개되면 좋을 텐데요...

수유 2008-04-04 09:26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녀의 저 우아한 프로필과 더불어 그녀의 시를 올려놓고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제니친이 사실상 지금은 러시아 민족주의자가 되어버린 지금 자신의 저작인 수용소 군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요.그 책이 서방진영에서 소련을 씹을 때 많이 이용되었잖아요.서방진영에서 나온 30년대 소련의 대숙청을 다룬 로버트 콘케스트의 책은 이제 오래되어 아펠바움의 책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아펠바움이나 콘케스트나 강경한 보수주의자들인데...솔제니친은 이 책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소련 수용소를 직접 체험한 이들의 회고록 풍 글은 우리나라에도 꽤 많이 번역되었더라구요.

로쟈 2008-04-07 00:47   좋아요 0 | URL
'서재 투어'를 하시는군요.^^ 솔제니친은 요즘도 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자이면서 (러시아식) 공산주의자의 포지션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펠바움의 책은 시각보다는 자료 집성에 의의가 있는 것 같고요...

Sati 2011-08-08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에 조예가 없다보니, 저는 다른 것보다 prison을 수용소라고 번역한 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
 

교수신문의 기획연재에서 다시 서평이 특집으로 다루어졌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0). 취지에 따르면, "이번 특집기획은 ‘다시, 서평을 말하다’이다. 지난 <비평> 특집기획 ‘한국 서평의 현 주소’의 문제의식을 더 밀어보자는 주문이 많았다. 이번에는 △좋은 서평의 조건(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1) △문학서평의 갈 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2) △사회과학서평의 위상학(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3) △과학서평의 위치와 갈 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4) 등으로 나눴다. 지난 특집기획이 일반적인 서평을 놓고 그 지나온 길을 짚었다면, 이번 특집기획은 분야별로 차이를 갈라 ‘그럼 어떻게 쓸 것이냐’를 제안한다." 그 중 문학서평에 관한 꼭지를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8. 03. 31) 비평으로서의 서평과 비평적 판단

문자 그대로 책에 대한 評을 뜻하는 한 서평이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해야 할 듯하다. 물론 서평과 비평을 가르는 형식적 기준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다. 지면의 할애 면에서도 구분이 되지만 특히 우리 학계에는 비평을 서평보다 한 급 높은 지적 활동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서평이 비평과 절대적으로 차별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비평안이 없는 독자가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비평적 안목이 뒷받침하지 않는 서평 행위가 玉石을 제대로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뿐더러 더러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데 일조하는 현상을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현상이 만연해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우리 인문학계 전체를 부당하게 폄훼할 위험도 있지만 2008년 1월 28일자 <교수신문>만 보더라도 대체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서평문화’가 튼실하게 정착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3).

다른 한편 <교수신문>이 제시한 여러 통계적 수치나 여론조사 자체도 비판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하나의 텍스트적 성격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 데이터’와는 약간 성격이 다른, 좋은 서평에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 장애물을 환기해보는 것도 훌륭한 서평의 덕목을 다시 성찰해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필자가 특히 주목한 장애물은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와 ‘비판을 꺼려하는 전통문화’다.

분과의 경계가 해체되고 비판이 장려되는 학문세계에서 이 두 문제는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져보면 양면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적 행태야 타개해야 마땅하지만 그 나름의 전문성을 살리는 협동작업은 분과학문에서도 필수적이다. 논쟁을 꺼리는 전통문화도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어 패거리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내는 방편으로 선학들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무분별한 비판도 관행이 되다시피 한 면이 있다. 전문성을 키우되 전공 결속주의에 빠지지 않고 논쟁을 지향하되 격을 갖추려는 노력은 건강한 서평 문화를 키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점이다. 인문학 가운데서도 문학 분야는 그러한 비평으로서의 서평 문화의 토대가 특히 허약한 듯한데, 여기서는 그 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서평의 공정성과 객관성  
문학 서평도 비평의 범주에 속한다면 평단에서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물론 예전에 ‘죽비소리’라 해 신간이 나오면 익명으로 사정없이 질타한 적도 있었지만 일방적인 찬사와 덕담을 늘어놓는 주례사나 작품의 미덕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흠잡기에 열중하는 죽비소리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물론 이 상반된 서평 태도와 거리를 두면서 비판과 찬사를 적당히 섞어 작품을 얼버무리는가 하면, 아예 서평대상과는 무관한 자기의―십중팔구는 수입돼 유통되는― ‘이론’에 몰두하는 논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얼버무리는 경우도 그 간이 절묘하지 맞지 않을 경우 비판의 유효성을 중화시키기 십상일 뿐더러 찬사의 온당한 근거를 댈 수 없기 십상이라서 절충적인 서평의 위험도 주례사나 죽비소리에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비평문화에서 주례와 죽비, 절충 등으로 분류되는 서평에도 오랜 관행이 있다. 출판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자본’이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평 장르는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는바, 근대가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 자신 프랑스라는 ‘문필 공화국’의 자부심 강한 시민으로서 정열적인 삶을 살다간 발자끄가 『저널리스트』(1843)에서―때로는 자신의 발등을 찍어가면서―풍자한 그대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 평단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문화정치적 세계와 긴밀하게 연동된 언론사와 출판사가 조장하는―발자끄가 그야말로 꼼짝하기 힘든 독설을 퍼부은―파당의식과 이해관계는 과거만의 일이 아님이 절절히 실감된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서평으로서의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덕목인 공정한 평가와 비평적 객관성이라는 난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필자 자신도 서평이나 촌평을 여러 차례 하면서 그같은 난제를 충분히 감당했다고 자신하기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근래 우리 문단의 화제인 김훈의 역사소설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도 그런 난제를 서평으로서의 비평이라는 맥락에서 짚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 역사소설에 대한 서평에서도 눈에 띄는 점은 상반된 평가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두고 독자의 견해가 다른 것은 물론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훈에 관한 대조적인 평가에서 흥미로운 것은, 문학비평을 업으로 삼는 논자치고 그의 역사소설을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읽었다는 느낌을 주는 비평가는―허무주의니 파시스트니 하는 ‘재’를 과장되게 뿌린 비평에 비하면―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부연하자면 <교수신문>에 기고한 오창은의 평문은 이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15). 그런 서평은 오히려 비문학도들이 시도했다.

가령 심사위원들이 “한국문학에 내려진 벼락과 같은 축복”이라며 동인문학상을 수여한 『칼의 노래』(2001)도 그러하다. 국어학자인 이익섭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들을 세세하게 골라내면서 “너무 기초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작품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심사 기준에 뭔가가 더 추가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푸념한 바 있다(<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 또한 역사학자인 정옥자는 이 작품을 두고  “식민사관에서 우리를 집중적으로 세뇌시킨 당쟁론이 여과없이, 아니 더욱 심하게 묘사돼 있”음을 지적하면서 선조와 당대 현실정치에 대한 작가의 편향된 시각을 꼬집은 바 있다(<문학동네> 2006년 가을호).

비록 문학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들은 쉽게 넘겨버리기 어려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두 논자의 문제제기는 사실 재현의 정확성과―‘역사의식’과 완전히 동의어라고 말하기는 힘든―역사인식으로 모아진다. 역사소설을 다루는 데서도 이 쟁점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가령 『칼의 노래』에서 왜 거북선이 나오지 않느냐, 고고학계도 아직 정확히 밝히지 못한 殉葬의 구체적인 거행과정을 『현의 노래』처럼 그런 식으로 묘사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드는 것도 역사소설의 평가에서 초점을 흐릴 공산이 다분하다. 史觀의 결여를 비판하는 일은 더 까다로운데, 그것은 문학의 역사화라는―‘역사주의’라는 잣대로 문학을 재단한다는―반론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성과 역사인식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역사소설을 제대로 논하기 힘든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런 문제가 소설 비평에서의 일반적인 쟁점과 분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익섭은 『칼의 노래』에서 시간이나 사건의 전개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을 적시했지만, 그건 차라리 창작 일반에 해당하는 기본을 환기했달 수 있다. 즉 작품 “뒤에 연보며 海戰圖까지 붙여 역사적 사실과 연관 지으려는 의도가 뚜렷하”고 “史實에 맞추어 소설을 전개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칼의 노래』의 무수한 사실왜곡과 부주의함을 적시한 것이다.   

김훈은 ‘일러두기’에서 15세기의 임진왜란과 5세기의 가야 멸망, 17세기의 병자호란이 배경이 되는 각각의 작품을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소설(=허구)로만 읽혀야 한다고 되풀이해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소설의 이름으로 그같은 왜곡과 부주의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역사소설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팩션’으로 가공된 역사적 소재나 사건이기 때문에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도 사실과 허구의 관계, 더 나아가 ‘역사적 진실’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옥자는 이보다 더 차원이 높다면 높을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 여부만 가지고는 제대로 해명할 수 없는 것, 즉 작가의 세계관 또는 역사를 보는 관점의 문제점까지를 들추어낸 것이다. 이 관점도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이냐 진실이냐, 역사냐 허구냐를 가르는 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난점에 부딪히게 된다.  
   
전문적으로 읽고 즐기는 독자의 의미
우리 문단에서 비평가라는 이름의 독자들이 이 난점과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가를 소개할 지면은 없다. 다만 원래 이 글의 주제로 돌아와 짤막한 서평도 비평의 차원을 겸해야만 이 난제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음을 강조할 만하다. 다른 한편 김훈의 역사소설 평가를 둘러싼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어떤 한 탁월한 독자가 홀연히 나타나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낭만적 공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책을 전문적으로 읽고 즐기는 독자들이 하나의 실체적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비평에 값하는 수준의 서평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식과 통찰을 문화적으로 축적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문단에서 촌평이나 서평의 형식으로 각종 문예지에 실리는 많은 글이 책의 단순한 선전이나 소개의 차원에 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족할 수는 없다. 우리 문화현장에서 인터넷 서평을 선도하는 블로거의 활약도 옥석을 분별하는 본격 비평의 지평을 지향해야만 ‘시장’의 들러리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유희석/ 전남대·영문학, 문학평론가)

08. 04. 01.

P.S. 필자의 주장은 서평도 '평'인 이상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리 분량이 짤막하더라도 비평의 차원을 겸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예전에 적은 대로 약간 다른데(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6), 아무래도 '분량'과 '지면(자리)'의 성격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10-20짜리 서평(혹은 리뷰)과 50-70매 규모의 비평은 체급이 다른 것 아닐까. 한편으로 서평문화의 걸림돌로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와 ‘비판을 꺼려하는 전통문화’에 대해 지적한 대목은 공감하게 된다. 필자가 '침묵의 카르텔'과 '자기의 이름을 내는 방편으로 선학들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무분별한 비판 관행', 어느쪽이 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지적은 이것이다.

"비평문화에서 주례와 죽비, 절충 등으로 분류되는 서평에도 오랜 관행이 있다. 출판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자본’이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평 장르는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는바, 근대가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서평이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비평도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서 예외가 아니다(비평 또한 출판시장 바깥에 있지 않다). 거기다 문제는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이건 아주 래디컬하다. 주례이건 죽비건 '포장의 바깥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그에 비하면 "비평에 값하는 수준의 서평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식과 통찰을 문화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한 필자의 요구는 좀 뭉툭하다.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비평의 지평'(공정성과 객관성) 이상의 뭔가 더 뾰족한 수가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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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에 대해서...
    from Hemingway's I love text 2008-04-02 21:24 
    난 독서토론모임인 책과 세상의 회원이다. 토론은 사실 익숙치 않다. 가입이유는 책이 좋아서, 다른 사람의 시각과 나의 시각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관심분야는 인문사회관련, 역사관련 책이다. 어째튼, 난 책을 고를 때 미리 생각해 둔 책 1권과 인문사회 관련(역사포함) 1권과 다른 사람이 추천한 1권을 고른다. 이렇게 3권 정도 구입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추천한 1권을 고를 때 신중히 고른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글(서평 혹은 소개)이나 말들은..
 
 
드팀전 2008-04-01 18:08   좋아요 0 | URL
로쟈님 서재가 사진으로 ㅋㅋ

로쟈 2008-04-01 19:31   좋아요 0 | URL
네, 들러리로 들어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