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상을 떠난 솔제니친과 관련한 칼럼이 눈에 띄어서 옮겨놓는다. 인권에 관한 책들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는 조효제 교수의 칼럼인데, '진보의 복합적인 현실인식'을 주문하고 있다.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을 진보로 포용하자는 취지이다.

한겨레(08. 08. 08) 솔제니친과 진보의 복합적 현실인식

며칠 전 타계한 솔제니친만큼 평생을 격렬한 논쟁 속에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련 당국은 그를 반역자로 몰았다. 그의 러시아 민족주의 경향은 사르트르와 같은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를 반소 지성인의 상징으로 칭송하던 서구의 우파 지식그룹은 그가 구미의 도덕적 타락과 방종, 물신숭배를 비난하기 시작하자 반자유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판했다. 1994년 그가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자 전통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던 <모스크바 타임스>는 ‘호메이니의 귀환인가?’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설왕설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뢰였다. 로버트 인차우스티가 보기에 그는 사라진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쓴 현대의 사가였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민주파들이 경청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진보·개혁 진영에서 솔제니친은 많이 읽히지도,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의 비판적 지성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같다.

우선, 솔제니친이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던 때 우리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반독재 투쟁을 벌이고 있던 민주화 진영은 솔제니친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둘째, 한국의 극우보수 세력이 솔제니친을 철저히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했다. 문화계의 이데올로그들은 그를 최고의 반공작가로 떠받들었다. 남한에 있었더라도 반체제 민주인사가 되었을 인물을 엉뚱한 존재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런 왜곡된 시대상황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솔제니친을 균형 있게 인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서거를 계기로 이제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지적 역량에 얼마만한 여유 공간이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모든 정치권력은 어떤 이념이든 억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는 복합적인 인식을 가져보면 어떨까?


진보·개혁 진영이 이런 태도를 지닐 때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현실의 뉘앙스와 아이러니를 깊이 이해하는 세련된 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그런 태도는 사울 알린스키의 표현대로 일반대중의 욕망과 희비의 결을 ‘그래야만 하는’ 렌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렌즈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태도는 진보·개혁 진영에서 등에 구실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도록 장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진보·개혁 진영은 더욱 풍부한 콘텐츠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가령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라. 그것은 지난해 말 대선과 올봄 총선에 이은 보수 선거혁명 3부작의 완결판이었다. 한국 보수세력의 능수능란함이란! 비비케이(BBK), 인사파동, 광우병, 촛불집회, 남북관계, 독도주권, 외교참패 등 현실정치의 온갖 악재를 선거 이벤트로써 단숨에 돌파하지 않았는가. 대선에선 항의 성향 투표를, 총선에선 욕구 지향 투표를, 교육선거에선 계급 취향 투표를 교묘하게 동원하여 기어코 권력의 핵심 제도들을 움켜쥐고야 마는 저 모습을 보라.

이게 우리의 솔직한 현실이다. 단기간의 선명한 투쟁만으론 이길 수 없는 현실이다. 싸울 때는 안경 벗고 싸우더라도 세상을 읽을 때엔 다초점 렌즈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최근 어느 진보적 출판인으로부터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이런 것이 복합적인 현실인식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한다.(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08. 08. 08

P.S. 칼럼 말미에서 언급되고 있는 아서 케슬러의 소설 <한낮의 어둠>(한길사, 1983)은 한길 세계문학의 한 권으로 묶여서 출간된 적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폭력이란 무엇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747960)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어느 진보적 출판인이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복합적인 현실인식의 좋은 사례"로 지목된 것은 이 책이 스탈린시대의 숙청을 비판한 일종의 '반공문학'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휴머니즘과 폭력>(문학과지성사, 2004)에서 이러한 케슬러의 입장을 비판한 바 있다('쾨슬러의 딜레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이 가장 유익한 참고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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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08 12:43   좋아요 0 | URL
저는 부하린 재판과 박헌영 재판을 비교연구해보고 싶습니다.저의 필생의 소원입니다.문학작품으로는 부하린 재판을 다룬 한낮의 어둠.그리고 박헌영 재판을 직접 다루진 않지만 해방공간에 미군정이 남로당 핵심에 정보원을 심었음을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마쓰모도 세이죠<북으로 간 시인 임화>를 연구목록에 넣고 있습니다.이 소설은 북한에서도 남로당 노선비판할 때 중요한 교재로 쓰였습니다.

로쟈 2008-08-08 14:46   좋아요 0 | URL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를 꼭 읽어보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8-09 00:08   좋아요 0 | URL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에 나오는 부하린 재판을 비롯한 대숙청 작업에 대한 스탈린 주의적인 해석은 결국 숙청도 혁명을 위해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는 식의 변명이라고 봅니다.지젝이 카프카를 인용한 것은 스탈린 식의 이런 변명을 거부하면서 부하린을 비롯한 당시의 숙청대상자들은 난 데 없이 죄인이 되었다는 비판이죠. 그 밑바탕엔 당시 재판정에 선 피고들은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외국세력의 앞잡이라는 소련 당국측의 견해 자체가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하지만 남로당 지도부는 상당수가 미군정에 포섭되어 있었음이 해제문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정창현 <인물로 보는 북한 현대사>).임화도 그렇고 이강국도 그렇구요.물론 박헌영 자신이 포섭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그래서 제가 <북으로 간 시인 임화>를 언급한 겁니다.거기엔 연세대 설립자 집안인 언더우드가가 미군정의 앞잡이로 나옵니다.

로쟈 2008-08-09 00:05   좋아요 0 | URL
미군에 포섭됐었다는 건 확정적인 건가요? 한데, 만약에 사실이 그랬다면 아무런 미스터리도 없는 것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9 00:14   좋아요 0 | URL
예.우리나라 신문에서도 그게 나왔습니다.정창현 책엔 그 문서 번호까지 나와 있구요.방선주와 기광서가 확인했습니다.정병주 씨도 인정했구요.그런데 학계에서는 아직도 수용을 안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작년에 나온 심지연<이강국>에서도 이강국이 북한에서 희생되었다...그런 식이구요.여하튼 마쓰모도 세이죠는 문서해제가 되기 전에 거의 정확히 짚은 거죠.

로쟈 2008-08-10 00:31   좋아요 0 | URL
미 군정문서인가 보군요. 그 경우엔 소련측 문서보다는 신빙성이 있을 거 같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0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미군 방첩대 문서죠.하지만 저는 북한 것을 복사한 것이나 한민전(이런 단체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에서 나온 남로당 비판서는 적당히 에누리해서 읽습니다.박헌영 재판 기록은 구할 수 있습니다만 그걸 소재로 삼은 소설이나 논문이 없고 부하린 재판을 다룬 소설이나 평론은 있는데 국내에선 재판기록을 구할 수 없지요.부하린 기소의 이유가 독일과 일본의 간첩들이 준동한다! 였는데 아예 첩보의 역사를 읽어보려고 해요.박헌영 사건도 아예 남과 북 그리고 미군정 첩보전까지 다뤄보려고 합니다.인문 사회 하는 이들은 군사 첩보분야를 멀리하고 군사 첩보 연구하는 이들은 인문 사회적 시각이 부족하여 문제이니 아예 두 분야를 함께 해보려구요.
제가 부하린 재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연구서인 김남국<부하린:혁명과 반혁명의 사이>(문학과 지성사1993)을 읽은 후부터예요.이 책을 통해 <한낮의 어둠>과 <휴머니즘과 테러>에 대해 알게 되었죠.

로쟈 2008-08-10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철학적으론 관심있는 테마인데, 엄두는 잘 나질 않습니다. 김홍우 교수의 <현상학과 정치철학>에도 관련 논문이 들어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55   좋아요 0 | URL
오...감사합니다.내일 낮 도서관에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로쟈 2008-08-10 22:03   좋아요 0 | URL
시립도서관들은 보통 월요일에 휴무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1 11:31   좋아요 0 | URL
격주로 쉬니까 문 연 곳에 가면 됩니다.오전 일 끝내고 이제 왔습니다.저쪽 도서관은 오늘 쉬는 날!

로쟈 2008-08-11 20: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18   좋아요 0 | URL
현상학과 정치철학 중 관심가는 논문을 봤습니다.케슬러가 인간을 콤미싸르 형과 요기 형으로 분류하여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관과 비슷하더군요.그리고 이 책의 제일 첫번 논문인 행태주의에 관한 글은 경제학의 방법론까지 다루어 매우 유용했습니다.이 부분을 좀 더 정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사회실재론과 사회명목론의 대결은 최근에 관심을 갖는 쟁점이라서요.

로쟈 2008-08-12 23:21   좋아요 0 | URL
기회가 되면 나중에 세미나라도 해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48   좋아요 0 | URL
근데 메타이론 쪽의 독서는 두뇌소모가 엄청나서 괴롭습니다.개별학문 분과를 넘어서 버리니까요.
 

이번주 시사IN에서 출판리뷰를 스크랩해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14#). 최근 출간된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너무북스, 2008)를 다루고 있는데, <백범일지> 정본 연구의 진일보한 성과라고 한다. 현재로선 백범의 진의에 가장 가까운 판본인 듯하므로 주목을 끌 만하다. 현재까지는 도진순 교수가 교열한 <백범일지>(돌베개, 2002)가 표준본 역할을 했었다.

시사인(08. 08. 05) 당신은 백범을 정확히 아는가

우리나라 학계와 출판계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본(定本)이다. 정본은 연구나 인용을 하는 데 가장 믿을 수 있는 본문을 제공하는 서적, 고전 텍스트의 여러 다른 판본 가운데 검토하고 교정해 원본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한 표준이 될 만한 책이다. 어떤 텍스트에 ‘관하여’ 연구한 책을 쓰는 것보다, 그 텍스트의 정본을 만드는 게 몇 십 갑절 더 어렵다.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는 백범일지 정본 텍스트에 성큼 다가선 성과다.



엮은이는 논쟁적인 문제나 시대적 배경 이해가 필요한 내용을 자세히 해설했다. 이러한 깊이 읽기가 58개에 달하며 기존 출간본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원문의 맥락을 설명하는 해설도 132개에 달한다. 예컨대 기존 출간본 주석에는 ‘조선 중기 해서 지방의 유명한 문인 유응두’로 설명돼 있는데, 엮은이는 유응두를 조선 중기 문인이 아니라 대한독립의군부 황해도 대표를 역임한 유학자로 바로잡았다.

백범일지 원문에 나오는 ‘정각에 소위 부문(赴門)-과거장을 개방-을 한다는데’가 기존 출간본에는 ‘정면에 있는 과거장 입구로 선비들이 열을 지어 들어갔다’로 돼 있다. 엮은이에 따르면 이는 정각을 정면으로 잘못 풀이했고, 과거장 문을 개방한다는 뜻의 ‘부문’도 잘못 이해했다. 당시 과거제도는 수험번호와 지정 좌석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다툼이 심했다. 이를 ‘쟁접’이라 하는데, 기존 출간본은 과거제도의 폐단을 묘사하는 백범일지 원문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이렇게 꼼꼼하게 고증하는 엮은이의 관심이 백범 신화화가 아니라 백범을 정확하게 보고 평가하는 데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 관심은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백범일지 첫 문장,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서도 드러난다. 친필원본의 첫 문장은 ‘우리 선조는 안동 김씨로 김자점씨의 방계 후손이다. 김자점씨가 반역죄를 저질러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이다. 이렇게 달라지면서 백범이 보여준 평민의식과 저항의식의 근거가 희박해져버린다. 이런 부분이 백범일지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비판적 백범 읽기를 방해한다.

“젊은 아내 팔아 한 끼 밥 맛나게 먹고 싶다”
이승만에 대한 백범의 인식은 어땠을까?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승만이 설치한 옥중 도서실의 서적을 보고 백범은 ‘이 박사의 손때와 눈물 흔적이 묻은 책을 볼 때마다 책의 내용보다는 배알치 못한 이 박사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들었다’. 백범이 친필원문의 여백에 적어둔 글이다. 백범일지 전체를 통해 이승만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은 없다. 적어도 백범이 일지를 기록한 1920년대 말에는 이승만을 존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특히 하권으로 갈수록 백범은 공산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자주 한다. 엮은이는 백범일지가 매우 정치적인 텍스트라고 지적한다.

서대문 감옥에서 고문받으며 배가 너무 고파 ‘젊은 아내를 팔아서라도 한 끼 밥을 맛나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하는 백범. 안악사건으로 투옥됐을 때 며칠 밤을 새워 자신을 고문하는 일본 경찰을 보고, ‘평소 애국자라고 자부하던 자신은 저렇게 나라를 위해 밤을 새워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반성하는 백범. 그 진솔함이야말로 <백범일지>의 백미다.

엮은이가 보기에 백범정신의 백미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허물까지도 숨기지 않고 세상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정신이며, 백범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대가리 싸움을 하지 말고 발이 되라’는 겸허의 정신과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되라는 ‘역수어 정신’이다.(표정훈_출판 평론가)

08. 08. 07.

P.S. 소설가 김별아씨의 신작 <백범>(이룸, 2008)도 눈길을 끈다. 엊그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8. 05) 역사장편 ‘백범’ 낸 김별아씨 “문제적 인간 백범 그렸죠”

“문학적으로 접근할 때 백범은 ‘문제적 인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동안 출간된 ‘백범일지’나 관련 서적을 보면 영웅으로 묘사하잖아요. 또 생애 마지막에 정돈된 모습을 보여줘 인간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죠.”

광복절을 앞두고 ‘건국 60주년이냐, 정부수립 60주년이냐’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 소설가 김별아씨(39)가 백범 김구를 소재로 한 장편 ‘백범’(이룸)을 발표했다. 소설은 백범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해 1945년 11월23일 백범이 중국 상하이 강만비행장에서 미군정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4일 열린 간담회에서 작가는 “백범을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끌어 내리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첫장과 마지막장을 제외한 10개의 소제목에는 ‘냉혹한 슬픔’ ‘쓰라린 슬픔’ ‘아련한 슬픔’ ‘자욱한 슬픔’ ‘거룩한 슬픔’ 등 슬픔이라는 공통단어가 붙어 있다. 백범을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읽어내려는 작가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도 일반대중과 마찬가지로 백범에 대해 애국자, 영웅이라는 이미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범일지’를 읽다보니 내용이 너무 많더라고요. 슬플 겨를이 없을 정도죠. 사실 집필 중에 백범이 강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무엇이 도대체 인간을 이렇게 강하게 만드는가, 끝까지 가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이건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겠지요.”

김씨는 이 작품을 캐나다에서 썼다. 2005년 ‘미실’로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후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싶어” 캐나다로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가을 작업하기로 마음 먹고 자료를 찾다보니 의외로 한국근대사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다. 결국 근대기 상하이와 문화사 등에 관한 영문서적을 읽으며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국사 살피기 공부를 했단다.

그는 백범이 자신과의 싸움을 끝까지 멈추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백범은 횃불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제일 낮은 자리에서 끝까지 싸웠기 때문이죠. 그러나 백범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상실의 시대에 갈 길을 찾아 자신의 자리에 올랐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미실’ ‘논개’ ‘영영이별 영이별’ 등 그간 일련의 역사소설을 발표해온 작가에게 ‘백범’은 네번째 역사소설. 근대를 소재로 한 첫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근대기 무정부주의자에 관한 소설을 비롯, 앞으로 근대에 관한 작품을 두어편 더 쓸 생각이다. 백범의 경우 사료도 비교적 많고,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까닭에 소설로 재구성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소설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자기가 알고 싶은 백범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더군요. 총제적인 모습은 없어요. 사료가 많든 적든, 소설의 몫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웅을 해체하는 작업이 문학이라고 했다.(윤민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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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꾼 2008-08-07 21:11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백범을 존경하는 인물로 거론하는 정치인은 일단 배제대상으로 삼습니다. 백범 역시 이승만 못지 않은 극우 파시스트이지 않습니까?

로쟈 2008-08-07 21:29   좋아요 0 | URL
주로 해방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 걸로 아는데, 소설 <백범>도 "1945년 11월23일 백범이 중국 상하이 강만비행장에서 미군정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기까지의 과정"까지만 다룬다는 것이(그러니까 암살까지가 아니라) 징후적이란 생각도 드네요. '극우 파시스트'란 범주로 이승만과 백범을 동일시하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는데요('친일'의 문제도 가려지고)...

역마살꾼 2008-08-07 22:09   좋아요 0 | URL
광복 이전의 이승만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광복 이후에는 김구와 이승만이 상당한 기간동안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걸로 아는데요. 김구 역시 찬탁 주장에서 반탁으로 돌아선 건 이승만의 입지에 밀린 최후의 정치적 돌파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구요

역마살꾼 2008-08-07 22:16   좋아요 0 | URL
특히 임정 시절 같이 손을 잡았던 약산이 노덕술에게 고문을 받는 걸 방치(당시 김구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방치라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한 정도라면 저는 우남과 백범이 그리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현대사에 그리 밝지 못한 관계로 쓰다보니 정념 가득한 추정이 되버렸네요 ^^;)

로쟈 2008-08-08 01:38   좋아요 0 | URL
보기에 따라선 중도파도 극우파와 다르지 않게 평가될 수 있겠지만, 그놈이 그놈이란 평가는 '물타기'로 악용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8 12:44   좋아요 0 | URL
상해임정 땐 좌우갈등이 극심했고 중경임정 땐 좀 나아져서 화해하는 듯하다가 해방이후 또 임정인사들이 좌우로 갈라집니다.인간은 파당을 짓는 동물이고 그래서 백범일지에도 그런 편견이 드러나 있죠.반탁운동이 단정세력과 친일파의 주도로 변질되는 것에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백범은 너무 늦게 깨달았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8 12:32   좋아요 0 | URL
히로히토 텐노 사후 우리나라엔 이조시대라는 말을 쓰면 식민지 잔재를 청산 못한 인간으로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백범일지엔 이조를 쓰고 있습니다.

로쟈 2008-08-08 16:44   좋아요 0 | URL
중학교때 영어 교과서에도 '이조'란 표현을 썼으니까 백범을 탓할 일은 아니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8 23:51   좋아요 0 | URL
백범도 썼던 이조를 일제 잔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상하다는 의미였어요.처음 그 주장을 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군요.저는 하노버 조,로마노프 조하듯이 이조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북한도 리조실록이라고 하니까요.

로쟈 2008-08-10 00:34   좋아요 0 | URL
북한에서 '리조실록'이라고 할 땐 봉건왕조에 대한 폄하의 의미가 있겠죠. 국명을 '조선'이라 했으므로 공식적으론 '조선'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조'라고 하면 왕실만을 지칭하는 게 되니까요. '로마노프조'가 그렇듯이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08   좋아요 0 | URL
북한에서 나온 책을 보면 조선과 이조를 함께 씁니다.우리도 예전엔 그랬죠.그런데 아예 이조라는 단어 자체가 일제잔재다 하는 식의 난폭한 단정을 무슨 권리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국명으로서의 조선과 왕실로서의 이조를 병기할 수 있으니까요.조선은 이조시대였지 김조시대는 아니었으니까요.
백범 최고의 명문은 김일성과 회담하러 가기 위해 우사 김규식과 북으로 건너가면서 발표한 <<삼천만 동포에게 울면서 알림>이죠.읽다가 울 뻔 했습니다.감동 자체였죠.

로쟈 2008-08-10 21:34   좋아요 0 | URL
언제 감동이 필요할 때 읽어봐야겠네요.ㅠㅠ

노이에자이트 2008-08-11 11:34   좋아요 0 | URL
헌데 그 글이 백범일지엔 없어요.저는 <분단전후의 현대사>일월서각1983 뒤의 부록에서 봤어요.요 부록에 현대사 관련한 중요한 글들이 많죠.

로쟈 2008-08-11 20:09   좋아요 0 | URL
네, 참고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사회주의 운동사'란 마이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 계기가 되었던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5). 임경석 교수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역사비평사, 2008)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 자료에 대한 언급이 눈길을 끈다.

시사인(08. 07. 29) 한 역사학자의 혁명가 ‘발굴기’

대략 7년 전 일이다. 2001년 10월21일. 역사학자 성대경 교수(전 성균관대·사학)와 그 제자인 교수·연구원 7명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경남 창녕에 있는 고택의 한 귀퉁이였다. 당시 빨치산 생존자 성일기씨가, 자기와 함께했던 빨치산 부대 사령관이 어떤 문서를 작은 항아리에 담아 파묻었다고 증언한 곳이다. 한나절을 팠다. 구덩이가 넓고 깊어졌다. 그리고 유리병이 나왔다. 그 안에는 빨치산 부대 ‘제3지대장’ 남도부의 ‘비장문건(秘藏文件)’이 들어 있었다. ‘비밀스럽게 숨겨두는 문서’였다. 소설가 이병주가 쓴 대하소설 <지리산>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알려진 빨치산 남도부. 그가 작은 공책에 당시 상황을 소상히 연필로 적어둔 것이었다. 유품이 발굴되자 예순아홉 살의 빨치산 생존자는 울었다. 그곳에 무언가 파묻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된 무엇이 또다시 자신의 삶을 옭아맬까 공포스러워 50년 동안 비밀로 간직했던 노인은 오랫동안 꺼억꺼억 울었다. 회한의 눈물이었다.



당시 ‘문서 발굴’에 참가했던 임경석 교수(성균관대·사학)가 최근에 펴낸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제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혁명가 9인의 초상을 그렸다. 윤자영,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강달영, 김철수, 고광수, 남도부, 안병렬.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한에서 잊힌 사람이다. 임경석 교수는 “사료를 통해 논리적 인과관계를 찾는데, 간혹 감정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사료를 읽는 도중에 만났던, 눈길을 거두기 어려웠던 사람들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모아두었다”라고 말했다. 2000년부터 계간 <역사비평> 등에 연재했고, 2006년까지 쓴 글 여덟 편을 모았다.

임경석 교수는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이다. 그가 대학원에 진학했던 1982년에만 해도 한국사 연구 대상은 주로 1919년 3·1운동까지였다. “3·1운동 이후로 가면 사회주의적 운동이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 풍조에서도 중요한 현상이 되기 때문에 연구 자체가 불온시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의식을 가진 젊은 연구자들은 3·1운동 이후를 연구하는 것을 일종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4800여 명의 ‘이명 사전’ 만들기도

당시만 해도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일본 관헌 문서 정도였다. 그것도 접근이 어려웠다. 강덕상, 박병식 등 재일 한국인 연구자가 평생을 바쳐 일본에 있는 ‘식민지 조선’ 관련 자료를 모았는데, 그 자료집이 주된 연구 자료가 되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학계 내에서 ‘몰래 복사본’이 유통되었다. 자료난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였다. 소련 밖의 나라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한 내밀한 자료가 모스크바에 있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1993년부터 이 자료가 서방 학자에게 개방된 것이다. 임경석 교수도 그 공개된 자료를 참고해 박사 논문 <고려공산당 연구>를 마무리했다.

“러시아에서 공식 출간된 조선 관계 자료만도 대단한 연구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1990년 봄부터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1994년, 1995년 러시아에서 1년6개월 동안 머물며 문서보관소로 출근했다.” 러시아에서도 난관이 많았다. 문서 한 장을 복사하는 데 1달러20센트였고, 연구자 1인당 복사할 수 있는 양이 1년에 최대 1000장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 러시아에 유학 중이던 전현수 교수(경북대·사학)의 도움을 받아 문서보관소 직원과 친분을 쌓아 비용과 복사 분량 제한 문제를 그럭저럭 풀었다.

임경석 교수의 연구실 한 면에는 러시아에서 복사해온 자료가 빼곡히 차 있었다. 연구실 중앙에 책장을 마련해 한두 사람이 앉으면 꽉 찰 정도였다. 임경석 교수가 자료와 싸우는 ‘현장’이다. 사료를 읽다 보면 또 한 가지 난점이 있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해 동일 인물의 이명을 찾는 일이었다. 임 교수는 사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명을 인물별로 출처를 표기해 정리했다. ‘이명찾기 사전’이다. 근 20년 동안 갱신한 인물들이 4800명가량 된다. 

임경석 교수가 이번에 쓴 책은 잘 읽힌다. 시대와 정면으로 맞선 인물들의 고뇌가 느껴진다. 그래서 임 교수에게 ‘문학적’이라고 물었다. 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학은 행위의 사슬로 인과관계를 구축한다. 때로는 인간의 행위만 건조하게 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줄밖에 안 되는 인간의 행위라도 그 현장에서 겪은 내면은 우주적 고민을 담을 수도 있다. 어떤 행위와 결합한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내 공부의 목표이기도 하고, 역사가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임경석 교수는 책에 나온 인물을 ‘중음신’이라고 했다. 사람이 죽어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 49일 동안 떠도는 것을 이르는 불교 용어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남한에서 잊힌 인물들. 그리고 북한에서는 종파로 몰려 역사에서 지워진 인물. 그는 그 인물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스스로 지켜야 할 ‘공부 약속’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 후속편을 써야 한다. 1920년대 조선공산당을 내재적 방법으로 해명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임시정부 시절  자금을 횡령했다고 알려져 암살당한 초기 사회주의자 ‘김립’이라는 인물을 다룬 <암살>이라는 단행본도 준비 중이다. 횡령 여부에 대해서는 당시 코민테른이 임시정부에 지원한 독립자금의 성격과 관련해 달리 볼 부분이 있다.” 임경석 교수의 책상에는 러시아어로 쓰인 복사본 문서가 놓여 있었다. <암살>을 쓰는 데 주요하게 참고할, 코민테른의 결산 보고서였다. 그는 오래된 사료에서 한 인물을 ‘발굴’하고 있었다.

08.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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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8-08-05 21:58   좋아요 0 | URL
철학을 전공한 저는 사학과 수업에서 글을 쓰기위해 읽어야 했던 그 엄청난 사료앞에서 항상 좌절하곤 했습니다. 임선생님의 수업을 안 들었던 것은 약간 후회되긴 하지만, 다른 수업에서 <한국사회주의의 기원>을 읽으며 '아, 이런 책을 쓰려면 도대체 얼마만한 시간과 공력이 들어야 하는가' 암담했던 좌절의 기억만 떠오릅니다.

지금도 역사관련 서적을 보면 책 속 한줄을 쓰기 위해 얼마만큼의 사료를 읽어야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 항상 두려움과 함께 경외감이 먼저 듭니다. 제도권 공부의 엄정함만은 짧은 기간에도 톡톡히 맛봤던 셈이지요.

그러한 고생을 톡톡히 하고 나면 서평에서 한줄로 씹어제끼는 재기발랄한 글들이 그저 왕재수발랄한 지저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도 비평 한줄보단 원사료 한줄에 대한 해석의 노고가 더욱 소중하다 생각하고요.

간만에 임경석선생의 글을 꺼내 쓰다듬으며 써야할 논문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로쟈 2008-08-05 21:59   좋아요 0 | URL
그게 분야마다 적성이 따로 있나 봅니다. 그런 작업에도 '흥미'와 '재미'를 느껴야 계속할 수 있는 것이죠.^^;

열매 2008-08-05 22:0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엉덩이가 무거워야 할 뿐만 아니라 나름의 사명감이 있어야만, 또 그 사명감을 뒷받침해줄만한 경제력이 있어야만 그 사료들을 읽어낼 수 있을겝니다^^

로쟈 2008-08-05 22:09   좋아요 0 | URL
네, 엉덩이와 돈!..

노이에자이트 2008-08-05 22:17   좋아요 0 | URL
전에 소개해드린 노가원<남도부>말고 반공물 중에 남도부 체포하는 내용이 김중희<한국전쟁>제 10권에 있습니다.전형적인 반공물이지만 시나리오 작가 특유의 스피디한 문체에다가 상당한 자료를 섭렵한 방대한 기록물입니다.이 책을 통해서 빨치산들이 휴전 이후에도 남한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남도부도 1954년 정월에야 대구시에서 생포됩니다.혹시 나시찬이란 배우 기억하세요? 40이 못 되어 요절한 배우인데 KBS<전우>에서 김소위 역을했죠.그때 전우의 시나리오 작가가 김중희 씨입니다.제가 꼬마였을 적의 일이죠.

로쟈 2008-08-05 22:34   좋아요 0 | URL
네, 나시찬 기억하죠. 저도 꼬마였을 때.^^

노이에자이트 2008-08-05 22:20   좋아요 0 | URL
기사내용 중 재일 한국인 연구자 강덕상,박병식이라고 나오는데 박병식이 아니라 박경식입니다.일제시대사 전공자로 강덕상,강동진과 함께 늘 손꼽히는 대가입니다.우리나라엔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가 번역되어 있는데 책 뒤에 소개된 일제관련 자료와 일제시대 연표가 정말 유용합니다.

로쟈 2008-08-05 22:33   좋아요 0 | URL
이 주제에 관해서는 따로 비블리오그라피를 쓰셔도 되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5 22:45   좋아요 0 | URL
연구자를 위한 독서안내 식의 글을 써볼까요? 일제시대사와 해방 이후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로쟈 2008-08-07 12:18   좋아요 0 | URL
네, 기대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5 22:46   좋아요 0 | URL
로쟈 님은 꼬마였을 때보단 좀 나이가 드셨을텐데...

로쟈 2008-08-07 12:1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게 연로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7 12:3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좀 나이가...했지 많이 나이가...이렇게 한 건 아니잖아요.다 아시면서!
 

무더위 때문에 밤낮이 바뀌었다. 그래서 좀 어둑해져야지 무얼 해볼 생각이 든다. 이럴 때는 영화도 심야영화가 제격이다.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다크 나이트>가 딱 심야관람용인데, 이미 '걸작'이라는 입소문이 파다하다. 팀 버튼의 <배트맨>을 능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실 팀 버튼과는 코드가 잘 맞지 않아서 재미있게 봤을 테지만 별로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다크 나이트>는 흥미를 끈다. 매일같이 한심한 뉴스들만 쏟아지는 것도 이 '비극적인 영웅'에 대한 판타지를 부추긴다. 지난주 심야에 본 <놈놈놈>이 다 해갈시켜주지 못한 갈증을 <다크 나이트>는 해소시켜줄지 모른다(<놈놈놈>은 뮤직비디오로 훌륭하다).  

한겨레(08. 08. 04) '다크 나이트’ 악의 화신 vs 고뇌하는 영웅

6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다크 나이트>가 북미에서 개봉 10일 만에 3억달러가 넘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미 개봉 전부터 ‘걸작’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는 미국만이 아니라 기자시사회를 연 국내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과연 팀 버튼의 <배트맨>을 능가하는 걸작이 나올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팀 버튼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팀 버튼의 <배트맨>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새로운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크 나이트>는 야심만만하게도, 낮 장면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첫 장면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다. 팀 버튼이 <배트맨2>에서 펭귄맨을 중심에 세운 적이 있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전략은 그것과 다르다. 슈퍼히어로의 신화를 뒤틀린 엽기 동화로 대체하는 전략을 썼던 <배트맨2>와 달리, <다크 나이트>는 코믹북의 이미지에 머물렀던 슈퍼히어로를 완벽하게 현실로 이끌어낸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있으면 조커이건, 배트맨이건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럴 듯하다, 라는 느낌을 넘어서 거의 완벽한 리얼리티를 구현한다. 현실의 어디에선가 그들을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배트맨’이란 캐릭터는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배트맨이 처음 등장했던 1930년대 말은 미국의 갱단이 사회 곳곳으로 한창 세력을 넓혀가던 시점이었다. 일상에서 갱단의 폭력을 목도했던 시민들에게는 정말로 배트맨과 같은 ‘자경단’이 필요했다. 또한 배트맨은 외계에서 오거나 기이한 사고로 초인이 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슈퍼히어로를 택한 존재다. 악당에게 부모를 잃고, 복수의 일념으로 자신을 단련하여 ‘초인’이 된 사나이. 공포의 존재인 ‘박쥐’를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한, 선과 악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고뇌하는 슈퍼히어로. ‘보이 스카우트’의 정의를 구현하는 슈퍼맨과는 대조적으로, 배트맨은 악의 근원을 쫓아가며 때로 악에 물들기도 하는 ‘탐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초월적인 영웅이 아니라, 우리도 능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히어로가 바로 배트맨이었다.

<다크 나이트>는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적인 캐릭터 배트맨을 필름 누아르와 갱스터의 공간으로 과감하게 밀어 넣는다. 초현실주의적인 판타지로 <배트맨>을 재구성했던 팀 버튼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재해석한 것이다. 다만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의 원점에는 1986년에 발표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크 나이트 리턴스>에서 배트맨은 권력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시민들을 위한 자경단이 된다. 배트맨은 진짜 정의를 지키기 위한 ‘범죄자’, 즉 진정한 다크 나이트가 되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리턴스>와 <왓치맨> 등 미국 만화가 성인들의 오락이자 예술인 그래픽 노블로 성장하면서 성취했던 모든 것들은 이제 영화로 녹아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악을 멸하고자 폭력이라는 위법을 택한 배트맨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정의를 위해 싸우면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지금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상황이다. 슈퍼히어로는 단지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현대의 슈퍼히어로는 21세기 대중의 이상이며, 그들이 갈구하는 새로운 영웅 신화다. <다크 나이트>야말로 가장 완벽한 비극적인 영웅이고.(김봉석/영화평론가)

08. 08. 04.

P.S. 영화평론가 김봉석씨가 시사인에 쓴 기사도 참조할 만하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50). <다크 나이트>란 걸작의 배경에 '그래픽 노블'의 힘이 놓여 있다는 걸 지적하고 있다.

시사인(08. 07. 29) '배트맨’의 힘은 ‘그래픽 노블’의 힘

지난 7월18일 북미에서 개봉한 <다크 나이트>는 사흘 동안 무려 1억8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한다. 단지 흥행기록만이 아니다. 각종 매체의 비평에서도 찬사 일색이고, 세계 최대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에서도 역대 1위였던 <대부>를 누르고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배트맨>의 팀 버턴을 시작으로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와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가 슈퍼히어로 영화, 코믹스 영화의 수준을 한 계단 높여놓기는 했지만 <다크 나이트>의 엄청난 성공은 어리둥절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코믹스 영화라는 장르가 갱스터, 필름 누아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슈퍼히어로, 그 중에서도 배트맨은 팀 버턴과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명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왜 사람들은 ‘배트맨’에 열광하는 것일까? 1930년대에 시작된 <배트맨>은 가장 현실적인 슈퍼히어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슈퍼맨이나 엑스맨 등은 초월적 능력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배트맨은 다르다. 그는 악당에게 부모를 잃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세상의 악을 없애는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수많은 무술을 익히고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배트맨은, 국가권력이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악을 스스로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경단’이다. 경찰이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지는 않는다. 권력이 정해놓은 법질서의 바깥에서 암약하거나 슬쩍 빠져나가 버리는 악이 너무나도 많다. 경찰이나 검찰이 부패한 경우도 있고, 법의 한계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우리는 배트맨을 원하게 된다. 나에게 힘만 있다면, 당장 거리에 나서 악당을 처단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영화 제목에서 ‘배트맨’을 뺀 까닭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의를 위한 것인지, 그런 행동으로 과연 완전한 정의가 도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쥐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리에 나선 순간부터, 배트맨은 고뇌할 수밖에 없다. 왜 경찰이나 검찰에게 맡기지 않고, 배트맨은 스스로 정의의 수호자가 된 것일까? 만약 그가 정당하다면, 왜 그는 가면을 쓰는 것일까? 어쩌면 배트맨은 단지 사적인 복수를 위해, 아니 부모를 죽인 악당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해소하기 위해 악당을 물리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아닐까?

<다크 나이트>의 배경인 고담 시에서도 유사한 의문이 제기된다. 배트맨이 악당을 잡기는 하지만, 똑같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점은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정의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을 용납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크 나이트’라는 제목이다. <배트맨> <배트맨 포에버>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비긴즈>로 대중에게 이미 익숙해진 ‘배트맨’을 버리고 왜 <다크 나이트>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1986년에 발간된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배트맨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어둠의 전사가 된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며, 철학과 정치 논쟁을 일으킨 기념비적 작품이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앨런 무어의 <왓치맨>과 함께, 코믹스라고 불리던 미국 만화를 성인의 ‘그래픽 노블’로 끌어올린 걸작이다.

‘다크 나이트’는 어둠의 기사, 밤의 기사라는 뜻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정의로운 검사 하비 덴트를 ‘화이트 나이트’라고 부른다. 하비 덴트는 고담 시의 악당 절반을 감옥에 집어넣고, 조커를 잡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내건다. 배트맨은, 자기가 아니라 하비 덴트가 시민의 영웅, 고담 시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비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배트맨은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화이트 나이트’는 성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혼돈과 악의 화신인 조커에 의해, 그의 내면에 있던 광기가 분출하며 새로운 악당 ‘투 페이스’가 되어버린다.



투 페이스는 어쩌면, 배트맨과 조커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조커는 완벽한 광기와 혼돈의 상징이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돈에도 욕심이 없고, 권력에도 욕심이 없다. 단지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여버리는 데만 열중한다. 그런 조커가 배트맨에게 말한다. 절대로 너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너와 노는 것이 가장 신나기 때문에. 네가 있어야만 내가 완성된다고. 그 말의 의미는, 조커의 극단에 배트맨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 조커와 달리, 배트맨은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자경단’이지만, 배트맨은 결코 선을 넘지 못한다. 누구도 죽이지 않고, 무엇도 파괴할 수 없다. 배트맨은 모든 것을 지켜야만 한다. 다만 법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면 제대로 악을 처단할 수 없기에, 스스로 세간의 비난을 받으며 묵묵하게 정의를 수호하는 ‘다크 나이트’를 자임하는 것이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뭔지 보여주다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액션이나 스펙터클은 물론 최고다. 그리고 슈퍼히어로라는 비현실적인 존재가 사실은 대중의 이상이며 현대의 신화에 비견될 존재임을 탁월하게 증명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지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물론 최근 출간된 제프 로브와 짐 리의 <배트맨:허쉬>와 조지 프랫의 <배트맨:악마의 십자가>를 보면,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수십 년 세월 동안 엄청난 세공과 실험적인 변주를 거치며 다듬어져온 과정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배트맨:허쉬>는 배트맨의 모든 조연과 악당 캐릭터는 물론 슈퍼맨까지 등장해 심오한 캐릭터로 다듬어진 배트맨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런 ‘그래픽 노블’의 성과가 있었기에, 팀 버턴의 <배트맨>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존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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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8-0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고 있는 영화 중에 하나랍니다.
배트맨도 배트맨이지만 배우들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요.
한 명은 이제 더 이상 볼 순 없지만요.

로쟈 2008-08-05 09:10   좋아요 0 | URL
네, 히스 레저죠. 팬들이 많더군요...

2008-08-05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05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05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겨레21에서 '김창진의 제국의 그늘' 마지막회를 스크랩해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5000/2008/07/021165000200807300721026.html). 미국 경제가 '뚜렷한 쇠퇴 경향'을 보인다는 기사들이 최근 자주 눈에 띄는데, 그런 경향의 '배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해준다(우리가 '쇠고기 선물'도 받은 만큼 어려움에 처한 미국을 돕기 위해 '금 모으기'라도 해야 할까?). 우리는 이 '뚜렷한 쇠퇴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겨레21(08. 07. 30) 두 번째 위협이 내부에서 터져나온다

인간의 역사에서 ‘제국’은 정치적 꿈의 최대치를 표현한다. 그것은 계급·성별·지역·종교 간 이해관계의 차이와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권력을 통해 지배의 욕망을 거의 완벽히 구현하려는 정치체제다. 하지만 제국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타자에 대한 정복과 억압을 넘어 그것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질서와 안정, 곧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팍스로마나, 팍스아메리카나 또는 대동아공영권 따위로 명명된, ‘제국의 힘에 의한 평화’는 그 추종자들에게 당대 문명이 이룬 최고의 업적으로 추앙된다.



제국, 한여름 밤의 꿈
그러나 제국은, 좀더 넓고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결국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하다. 그들이 이뤘다고 자부하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보는 소극적인 관점을 인정하더라도, 제국의 총칼과 군함, 미사일 아래 모욕당한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를 헤아리지 못하는 편협한 질서다. 제국은 한 번도 세계평화를 이룬 적이 없고, 심지어 제국의 경계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저항의 싹이 움트고 모반이 숲 속의 버섯처럼 소리 없이 자란다. 카를 마르크스의 비유를 모방하자면, 제국은 그 자신의 거대한 몸속에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2001년 9·11 동시테러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세계평화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며 제국의 꿈에 취해 있던 미국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날벼락이었다. 그것은 ‘팍스아메리카나’라는 질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라는 사실을, 대다수 세계인들이 백악관과 할리우드가 선전하는 미국의 꿈에 취해 있지 않다는 현실을 극명히 드러내준 충격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지배 엘리트는 미국인들을 달콤한 제국의 꿈에서 깨어나게 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벌이고, 7개의 ‘불량국가’와 3개의 ‘악의 축’을 지목해, 그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야기함으로써 세계를 더욱더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제 두 번째 도전이 바로 제국의 내부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지난 세기 미국인들이 누려왔던 ‘우월한 문명과 풍요로운 일상생활’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는, 미국 경제의 뚜렷한 쇠퇴 경향이다. 최근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투기 자본가들이 거듭해 ‘생애 최대의 위기’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 단지 미디어를 의식한 제스처일까? 혹자는 향후 몇 년간 미국 경제가 겪게 될 혹독한 경기 후퇴는 1930년대 대공황기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될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곪아터지기 시작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올해 들어 경제 전반을 강타한 국제적인 고유가의 여파로 미국인들의 생활 방식은 중대한 조정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근 〈CNN방송〉의 조사에 따르면, 폭등하고 있는 휘발유값 탓에 여름휴가 계획을 축소하는 등 생활 태도를 변경하겠다는 응답자가 10명 중 9명에 달했다. 그나마 휴가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지난 몇 년간 은행들이 선심 쓰듯 마구 내준 주택담보 대출 덕분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고 좋아하던 수천만 명이 앞으로 몇 년간 그 집을 잃고 중산층의 꿈을 접어야 할 판이다. 부동산 전문 사이트 ‘리얼티트랙’이 7월10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6월 중 미국 전역에서 대출 할부금을 제때 내지 못해 주택을 차압당한 비율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3% 급증했다. 전국적으로 500가구당 1가구꼴로 차압을 당했고, 캘리포니아의 일부 지역에선 72가구당 1가구꼴로 차압을 당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 전역에서 150만 가구에 달했던 차압 사태가 올해에는 약 250만 가구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가구당 부채, 대공황기와 비슷
미국 경제를 덮고 있는 음울한 구름은 이것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들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11만7962달러(약 1억1800만원)에 달한다. 이는 대공황기인 1930년대 수준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빚이 없는 가구는 1957년 42%에서 2004년 24%로 줄어들었다. 대신 가구당 저축액은 단 392달러(약 40만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빈곤선 이하에서 허덕이는 미국인들이 37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전국의 교회들이 빈민구제 사업을 중요한 사업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조지 부시 행정부는 지난 7년간 ‘테러와의 전쟁’에 약 7천억달러(약 700조원)를 쏟아부었다.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보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데 취미가 있는 자본가 정부 탓에 미국이라는 국가는 지금 해외 각국에 진 빚의 이자를 갚기 위해 매월 30억달러(약 3조원)를 빌려와야 한다. 미국 정부와 일반 가계가 완전히 빚더미에 올라 있는 셈이다. 채무도 자산이라는 회계장부의 마법이 과연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지금은 미국의 군사력과 이데올로기가 그 자체로 세계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냉전 시기도 아니고, 19세기 세계제국이던 영국이 1차 대전으로 사실상 파산 상태에 몰려 있던 20세기 초반도 아니다. 유로화에 비해 달러가 계속 힘을 잃고 미국 경제가 더 이상 세계경제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라시아의 경쟁국들이 더욱더 부상하게 되면, 필경 미국이라는 이름의 ‘안전 자산’ 신화도 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제국의 역사에서 사태가 항상 일직선적으로 파국을 향해 가는 것만은 아니다. 일시적인 침체를 이겨내고 회복기에 들어서거나 심지어 과거보다 더 강해지는 경우도 가끔씩 관찰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하강 국면에 접어든 제국의 한계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제국 체제에 내재한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지배 엘리트의 전략적·정책적 선택이 존재하며, 그 방향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국의 힘과 영향력은 언제나 외부 환경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이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선도적인 혁신 능력과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우위를 확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국의 이익을 누구보다 더 많이 누려온, 사회 곳곳에 포진한 기득권 집단의 완고한 저항을 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안팎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적절하게 위기를 극복한 제국들은 결코 흔하지 않다. 지금 미국은 기로에 서 있다. 설령 제도권 정치인 버락 오바마(민주당)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연 미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제국의 생활양식을 조정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판에, 존 매케인(공화당)이 당선된다면 그것은 미국인들 스스로 파국을 재촉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자기 기만에서 벗어날 때
벌거벗은 군사력만으로 세계제국을 유지하기에는 21세기 지구는 너무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다. 그 군사력마저 유지할 경제력이 소진돼가는 마당에 더 말해 무엇하랴. 지금이야말로 미국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이름으로 세계를 구원한다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제국적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08. 08. 03.

P.S. 페터 벤더의 <제국의 부활 - 비교역사학으로 보는 미국과 로마>(이끌리오, 2006)처럼 한때 미국을 로마 '제국'에 비유(하면서 비교)하는 책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비유를 계속 이어받자면 이번에 새로 완역돼 나온(총 여섯 권 중 두 권이 먼저 나왔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민음사, 2008)는 단지 역사책으로만 읽히지 않을 듯하다. '미 제국주의 쇠망사'로도 읽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제국의 그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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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28   좋아요 0 | URL
6월엔가 미국 현지 취재에서 봤는데 미국 디트로이트는 완전히 유령의 도시더군요.자동차 산업 완전 붕괴로요.그리고 플로리다는 비우량 담보대출 때문에 어떤 동네는 전체가 차압 딱지 가 붙어 있구요.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로쟈 2008-08-03 20:32   좋아요 0 | URL
말로만 듣던 '종말'이 오려나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42   좋아요 0 | URL
그런데 그런 낙오자를 양산해야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도 해봅니다.그렇다면 이건 종말보다 더 무섭죠.

로쟈 2008-08-03 21:23   좋아요 0 | URL
그렇긴 하지만 낙오자도 '임계치'가 있지 않을까요. 양질전화가 되는, 폭발하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