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문광훈 교수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가 출간됐다. 784쪽짜리 책이다. '마음, 이데아, 지각'은 그 부제인데, 아주 두툼하고 그만큼 값도 세다. 그래도 주문을 넣었다.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집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 2008)를 유익하게 읽은 기억 때문이다. 예전에 나온 '김우창과의 대화' <행동과 사유>(생각의나무, 2004)에서도 엿본 바 있지만, '우리시대 인문학의 한 모델'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내주에 책을 읽게 되겠지만 미리 리뷰를 챙겨놓는다. 한국일보의 것이다(같이 읽은 건 경향신문의 리뷰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9051659465&code=900308 이며 사진은 거기서 가져왔다).  

한국일보(08. 09. 06) 일상에서 우주까지… 두 교수 '대화의 향연'

인문학의 대가와 후학이 일궈내는 대화의 향연은 이 시대,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 왜 더욱 절실한가를 명징하게 밝혀준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1)와 문광훈 고려대 아시아 문제 연구소 연구교수는 '향연'을 가졌고, 일상에서 우주까지를 대화라는 담론의 그물로 건져 올렸다.

김 교수는 끊임없이 답하고, 문 교수는 쉴새 없이 묻는다. 인문학이라는 그물코로 건져 올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주제다. 이들은 "없는 대량 학살 무기를 있다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블레어"(58쪽) 등 해외의 정세를 논하다, "통일은 자유ㆍ민주주의ㆍ풍요한 삶 등 여러 가지 개념과의 연쇄 속에서 얘기돼야"(689쪽)한다며 한국의 미래를 바라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이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크게 혹은 작게 변주돼 간다. 김 교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텅 빈 마음"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특유의 '정제된 엄밀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이다. 책에는 어떻게 감정이 성찰의 과정을 거쳐 특유의 '표백된 언어'로 나타나는지가 두 사람의 구체적 언어를 통해 기록돼 있다. 그는 "인문학을 너무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인간 존재의 근본을 상실하게 된다"며 경계를 요청했다.

아주 가끔씩 나오는 현 정부 평가는 인문주의의 현유한 숲에서 독특한 광채를 발한다. 김 교수는 "(현 정부는)부동산이라는 관점에서 자기 집을 평가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늘 만들어 낸다"며 "삶의 안정을 약속하는 아무 대안도 없이 마구 흔들어 놓기만 하는 정책들에 경고를 준 것이 이번에 나온 현 정부의 지지도 조사 결과가 아닌가 하는 느낌"(27쪽)이라며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



대담은 2006년 6~10월 모두 11차례에 걸쳐 김씨의 평창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회당 4~5시간 걸렸던 마라톤 대담이었다. 김 교수는 "문 교수는 대담 전 수십여쪽의 질문지를 작성, 논리와 일관성을 세웠다"며 "퇴고 과정에서도 수정과 보충 등 성의를 다했다"고 밝혔다. 세 개의 동그라미란 인식의 기본 도구인 지각, 이데아, 마음을 뜻한다.(장병욱 기자) 

08. 09. 07.

P.S. 이번에 두 권의 책이 같이 나왔다. 마치 가을로 넘어서자 마자 추수를 보는 듯하다. <전환의 모색>(생각의나무, 2008)은 장회익, 최장집, 도정일, 김우창 4인의 대담을 싣고 있으며,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한 패러다임'이란 주제의 김우창 교수 대담은 박명림 교수가 진행했다. 그리고 곧 출간될 '問 라이브러리'의 첫권 <정의와 정의의 조건>(생각의나무, 2008)도 눈길이 가게 만든다. 136쪽이니까 시집 정도의 분량이고 값 또한 그러하다. 이 시리즈가 장수해서 '포켓 인문학' 시대를 열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사에서 "김 교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텅 빈 마음"을 출발점으로 잡는다"는 대목을 읽을 수 있는데, 김우창 용어로 '자유'가 그 '텅 빈 마음'에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그 '자유'와 '텅 빈 마음'은 디폴트값으로 '조건화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우창과 나란히 떠올리게 되는 이름은 하버마스와 롤스이다(<정의와 정의의 조건>은 롤스의 주제이기도 하다). 차이라면 아마도 김우창식 '심미적 이성'의 자리에서 두 이론가들을 수용한 것에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다(미학의 결여는 하버마스 이론의 구성적 결여이다). 그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세 개의 동그라미>에 가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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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9-07 11:02   좋아요 0 | URL
작년에 출간되었던가요, 김우창 전집 5권도 아직 완독을 못한 저로서는 완전 과부하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 '가을의 추수'를 음미해봐야겠습니다. 김우창 선생의 자택이 참 아늑하고 여유롭게 보이는군요('default value'라는 말씀에 슬쩍 미소 짓습니다^^).

로쟈 2008-09-07 11:06   좋아요 0 | URL
재작년에 재출간되었지요.^^ 입문서로는 대담집이 적격이라 많이들 읽어볼 만하지만, 분량은 좀 부담스러울 듯도 합니다...
 

낮에 재미있게 읽은 한국일보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인터뷰이는 '영원한 현역 소설가' 황석영이다. <개밥바리기별>(문학동네, 2008)이 그의 말대로 '중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덕분인지 말에 여유가 있고 구라에 힘이 붙었다(그가 눌변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요즘 재밌는 일들도 없는지라 황작가의 구라를 잠시 감상해보는 것도 정신건강을 위해선 나쁘지 않겠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한국일보(08. 09. 05) [박선영 기자의 Who's Now] 영원한 현역 소설가 황석영

일찍이 그는 문학사(文學史)의 편애를 받은 복된 작가였다. 생애는 파란만장했으나, 시대와 함께 호흡한 그의 문학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치우침 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느덧 문필활동 40여년. 여전히 현역작가로 붓놀림이 유려한 행복한 작가, 그는 황석영(65)이다. 그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했던 소설 <개밥바라기별>이 서점가에 잔잔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노년의 거장이 뒤돌아본 사춘기의 갈등과 방황이 반세기 가까운 시차를 두고 이 시대 어린 청춘들의 가슴에 풍랑을 일으킨 탓이다. 청바지에 흰 남방 차림으로 40대의 인상을 풍기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는 과연 걸출한 입담의 소유자였다. 질문이 끝나지 않아도 대답이 먼저 나오니 이 얼마나 후련한가. '황구라'라는 별명은 역시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다.

- 오늘 인터뷰는 아주 기대가 큽니다. 조선의 '3대 구라'를 직접 만나는 자리여서요.

"하하하하하. 그래요? 구라도 '3대 라지오'(라디오)가 있고, '3대 교육방송'이 있잖아. 교육방송은 1대가 이어령, 2대가 도올 김용옥이고, 3대가 유홍준. 라지오 3대는 백기완, 방배추, 황석영. 그게 분파로 쫙 갈렸어요."

- 혹시 3대 구라가 다 같이 모여보신 적 있으세요? 누가 제일 세던가요?

"다 같이 모인 적은 없는데, 최근에 50대 후배들이 주축이 돼서 '세기의 대결'이 추진되고 있어요. 70년대에 방구라하고 나하고 대결을 했거든. 그때 막상막하로 가다가 막판에 내가 깨졌지. 그래서 이번엔 모두 모여서 21세기의 대결을 한번 하자. 표를 한 장에 10만원씩 한정판으로 팔아서.(웃음) 날짜 정해지면 새로운 레퍼토리 연습도 하고 그래야 돼요."



- 새 책 <개밥바라기별>이 출간 한 달 만에 11만부나 팔렸다고 하던데요. 베스트셀러 2위더라구요.

"그러게 말야. 아이들한테 그렇게 팔려나가는 모양이지? 고등학생, 사춘기, 20대 고 아이들인데, 요새 내가 고무적인 건 이 젊고 새로운 독자들이에요."

- 소설이 선생님 어린 시절 얘기잖아요. 그래서 든 생각인데, 만약 선생님 자제분이 선생님처럼 학교를 때려치우고 산 속을 헤매고 다닌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사람이 나이가 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보수화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아, 속상하겠죠. 그래서 내가 어머니한테 정말 미안하더라구요. 이걸 쓰다 보니까 내가 우리 어머니를 얼마나 속 썩였는지, 그 40대 과부가 참 대단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바친다고 헌사를 했는데, 쓰다 보면 울컥 하고 그랬어요.

우리 큰 아이도 나처럼 고등학교 때 퇴학을 맞았어요. 근데 나랑 다른 게 나는 자유주의적인 그런 거였지만, 걔는 광주에서 (5ㆍ18 민주화항쟁을) 겪었잖아요, 꼬마 때. 그리고 우리 집에 맨날 드나든 게 그런 삼촌들이니까 영향을 받아서는 고등학교 때 전고협을 구성하다가 걸려서 잘렸어.

근데 그놈도 검정고시 봐서 대학 들어갔어요. 나랑 비슷한 길을 간 거지. 지금은 제일 유명한 국악 작곡가예요. 재즈밴드도 지가 갖고 있고." (퓨전음악밴드 '우주낙타'를 이끌고 있는 그의 장남 황호준씨 얘기다.)

- 아주 젊은 시절부터 문학사(文學史)의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거의 유일한 작가시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까지 현역으로 계속해왔다는 것. 그것 보면 참 운도 좋았어요. 그게 아마 중간에 10여년 이상 쫓겨나서 가로 돌고 징역 가고 그런 과정이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건강상으로도 피가 되고 살이 됐던 것 같애요. 왜냐면 그 중간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때 계속 어울려서 술 먹은 놈들은 다들 빌빌하고 있거든. 하하하.

또 하나는 사회 변화과정을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도 해외에서. 좋은 기회가 됐죠.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게 다 문학적 우여곡절이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문학을 수업하는 과정이었다고 봐요. 글을 못 쓰고 있는 동안 형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게 아마 지금 하반기 문학의 밑천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다 써도 못 쓸 만큼의 얘깃거리들을 갖고 있거든. 레퍼토리가 너무 많아서 출판사에 물어볼 정도야. 야, 뭐부터 줄까?" (웃음)

- 보통 장편소설들을 신문 연재를 통해 생산해내셨고, 이번 소설도 인터넷 연재 작품이잖아요. 근데 그 연재 스트레스라는 게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원고 펑크 내고 늦기로도 악명 높으신데.

"내가 한국일보에 <장길산> 연재할 때 원고 '빵꾸' 내서 기자들 내지는 데스크를 아주 골치 아프게 한 건 사실이지만, 요샌 거의 '생활의 달인' 식으로 됐어요. 옛날에 빵꾸 내는 과정을 보면 새벽녘까지 한 줄도 못 쓰고, 괜히 자료들 뒤지고 그래요. 두 세줄 쓰다가 찢고 그러다가 때려치고 나가서 방황을 하죠, 새벽거리를. 그리곤 저 모퉁이의 대폿집, 해장국집 가서 술국 시켜서 소주 한 병 훌쩍훌쩍 마시면서 별 생각을 다 하는 거예요. 난 재주가 없구나, 소설 때려치워야겠다, 내일 당장 공고를 내서 난 소설가를 폐업한다 그래야겠다, 뭐 별 절망적인 생각을 다하고 헤매다가 들어와서 자요.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져있는 거예요.

근데 요새는 무조건 안 돼도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있어요. 그럼 막혀있다가도 한 시간쯤 생각을 하면 또 생각이 나요. 그러니까 지금은 일정 분량을 일정 기간에 써내야겠다 그러면 쓰는 거야, 딱. 수수해졌다고 할까,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이번에 잘 못 쓰면 다음에 고치거나 다음 작품 잘 쓰지 뭐. 이건 유명한 얘긴데 어떤 선배가 하도 내 원고가 딱딱 제 날짜에 맞춰서 들어오니까 놀래가지고 그러더래. '황석영이를 봐라. 한국 교도행정의 일대 승리다.' 하하하."

- 젊은 작가들한텐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작가라는 점이 참 닮고 싶은 점일 것 같아요.

"그걸 '중박'이라고 그러죠. 내 인생은 중박인생이야. 대박을 하려면 죄를 많이 지어야 돼. 욕과 얼룩도 어느 정도 묻혀야 되고. 그걸 좀 피하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견지하려면 그게 한 중박 정도 돼요. 근데 뭐 중박 정도만 해도 품위를 지키면서 작가 생활 할 수 있고, 먹고 살 만해요. 그걸 유지하면 되는 거야. 굳이 욕심 내서 대박으로 가거나 뭘 고수한다고 혼자 써서 쪽박으로 가는 길, 쪽박과 대박 사이 중박을 유지한다는 균형이 굉장히 힘들면서도 기량이 없으면 못하죠. 그러니까 내가 기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지. 하하하."

그의 생애는 가팔랐다. 민주화운동, 방북, 망명, 수감 등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생의 이력에 포갰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윌리엄 포크너 식의 상상의 세계보다 헤밍웨이의 체험의 세계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그가 양쪽의 세계를 모두 아울렀음에도.

- 참 파란만장한 생애를 사셨어요.

"난 난민으로 태어나 늘 '이동'하는 삶을 살았어요. 늘 경계에 서고. 디아스포라(이산)라고 하면 너무 추상적이고, 레퓨지(난민)라고 해야 맞아. 장춘에서 태어나서 해방 후 고국으로 귀국, 평양에 있다가 분단 직전에 38선 넘어서 남쪽으로 오니까 피난민, 조금 있다가 학교 들어가자 마자 6ㆍ25 터져서 피난지 전전하다가 또 전후복구 시절을 넘기고, 그랬더니 또 4ㆍ19 꽝, 5ㆍ16 꽝, 그러고선 청년이 되면서 군대 가서 베트남 전쟁 끌려가고….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전쟁을 세 차례 겪은 거예요. 그리고 돌아와서 민주화운동, 또 광주항쟁, 또 방북, 베를린 갔더니 베를린 장벽 무너지고, 망명. 돌아다니다 와선 징역 살고, 뭐 그런 연속에 있죠. 내 중단편 전집 뒤에 약력을 보면 하여튼 1~2년에 한번씩 큰 변화가 있더라고. 누가 그걸 보더니 그래요. 야, 그걸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동아시아 현대사가 되겠다."



- 그 많은 사건들이 제각각 영향을 끼쳤겠지만, 가장 중요한 생애의 사건을 꼽으라면 뭐가 1순위에 올까요?

"베를린장벽 무너지는 거 보면서 서구사회가 변화하는 걸 본 게 가장 큰 소득이었죠. 베를린에서 2년 반 망명하고 있으면서 굉장히 성숙해졌어요. 왜냐면 방북을 하고 나서 남북 양쪽의 국가주의적 체제로부터 왕따 당했잖아요. 어디 설 데도 없고. 게다가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놨던 여러 가지 제약들이 흩어지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봤고요. 거기서 개인과 일상이라는 가치들을 재발견했죠. 그때 이미 후반기 문학의 여러 가지 구상들을 시작하거든요."

- 방북을 1순위로 꼽으실 줄 알았어요. 워낙 큰 타격을 입은 사건이라. 당시 북한 가실 때는 어떤 각오셨나요? 그런 파장을 예상 못 하셨나요?

"거의 못했죠. 그때 노태우 정부가 7ㆍ7선언을 하고 남북교류를 자유화하겠다고 발표했던 때니까. 그때 전대협, 전농, 전노협 등 전국화된 단체들이 '전씨 5형제'라고 있었거든요. 문익환 목사가 의장단의 대표였고, 내가 대변인이었는데, 내가 지방 가 있는 사이에 방북이 결정됐어요. 그걸 뭐 나이든 놈이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 가보자 했죠. 그냥 귀싸대기 몇 대 맞고 끝날 줄 알았지 뭐,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나. 알았으면 안 갔지. (웃음)

그런데 거기 갔다가 나와서 베를린 있을 때 보니까 우리 방북을 결정했던 새끼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제도 정치권으로 들어가버렸더라고. 나만 말이야, 게임 후 헹가래 치고선 확 던져놓고 불 꺼진 운동장에 허리 다쳐 혼자 누워있는 그런 꼴이 됐지."

- 최근 촛불집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셔서 화제가 되셨어요.

"중도에서 살짝 삐딱한 거, 그게 난데 젊은 놈들은 불만이지, 그게. 타도하는 데 같이 가자고 하는데, 그럼 '야 이 새끼야, 느이들이 뽑지를 말든가, 투표를 열심히 하든가, 둘 다 안 해놓고 이제 와서 그걸 뒤집으면 뭘 어떡할래? 그 담엔 군인이 잡을 텐데.' 헌정질서 거부하고 박살내면 군인이 나올 명분이 생깁니다. 우린 무력이 50만이나 됩니다, 그것도 서울 지척에.

근데 애들이 그걸 몰라요, 철이 없어서. 헌정질서라는 게 우리가 피땀을 흘려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거 엎어버리면 그 다음엔 다른 세력들도 그렇게 할 거 아니냐 이거죠. 우리가 겪어봤잖아요. 이 질서, 형식적 민주주의 이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거든. 그랬더니, 야, 이건 누구를 위한 거냐, 또 이러면서 욕을 먹는 거죠."

- 이런 저런 나라 걱정들, 작품활동 말고 다른 방식으로 해보실 계획 같은 건 없으세요?

"그래서 미디어를 하나 해볼까 해요. 내가 지금 작품을 1년마다 내놨기 때문에 좀 텀을 가지려고 하거든. 새로운 작품은 내년 연말쯤 시작할까 하는데 그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인터넷으로 하는 문화매거진을 창간하려고 해요, 친구들하고. 거의 합의가 끝나고 이제 금년 안으로 착수를 하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70년대 문화운동 선언을 했듯이 이제 인터넷 문화운동을 하는 거죠."

- 고은 선생님과 함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시잖아요. 항간에는 선생님께서 유럽에 체류하신 게 노벨문학상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라는 말도 있었어요.

"아냐, 아냐. 나는 사실 관심이 없어요. 노벨문학상이라는 게 웃기는 게 뭐냐면, 한국이 이제 시작이에요. 그게 무슨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은 문화적 마인드도 전혀 없고 국제적으로 자기 문화를 알리려는 노력도 전혀 없어요. 일본은 자기 문화를 서구에 알린 한 100년 한 뒤에 노벨상도 타고 그랬어요."

그는 끊었다던 담배를 인터뷰 중간중간 다시 물었다. 그러면서 "아, 우리 마누라가 이거 알면 혼나는데"라는 말을 자동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20세 연하의 세 번째 아내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 속으로 불러들여졌다.

- 아니, 왜 이렇게 공처가세요?

(웃으며) "무서워. 나 요번에 또 짤리면 어디로 가란 말이야. 하하하."

- 선생님은 아들로선…?

"불효자지."

- 남편으로선…?

"거의 기초적인 것도 해오지 않는 사람. 요샌 둘이 사니까 조금 시늉을 하는데도 굉장히 힘드네요. 공처가라고 언뜻 비쳤지만, 그렇게 해야 되잖아. 화도 좀 내지 말아야 되고, 집에 좀 있어야 되고, 때때로 데리고 어디도 댕겨야 되고."

- 소설가 황석영 말고 생활인, 자연인 황석영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그건 생각할 수가 없는데. 나는 거의 살아있는 것의 목적이나 목표가 문학인 거 같애. 그런 얘길 예전에는 창피해서 못했어요. 그런데 중요한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내가 바탕이 기독교인이니까 절대자한테 기도를 하는데, 가령 베트남 가서 구정물에 막 구르면서 폭탄 터질 때면, 날 살려주면 내 좋은 작품 쓰겠다, 살아남게 해주라, 기도를 했어요. 감옥에서도 어려울 때, 내 나가서 좋은 작품 쓰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러니까 소설가가 되지 않았으면 굉장히 무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난 다른 건 할 줄 모르거든."

- <개밥바라기별>에 보면 "나는 아무렇게나 마구 살았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살면서 하고 싶은데 못하고 안 했던 것이 있나요?

"거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저지르고 싶은 대로 저지르고 살았죠. 그런데 못했던 것도 있어요. 어린이날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가서 가족이 논다든가 그런 거 안 해봤죠. 할 수 있는 건데 어떻게 못했어. 틈이 없었어요."

- 문학사의 황석영 챕터가 어떻게 기록되길 바라세요?

"글쎄 그건 내가 할 바는 없는데, 다만 나는 시대와 함께 소멸하고 싶어요. 시대와 함께 기억되고. 나는 이문구 작가를 참 좋아하는데, 그가 그런 식으로 태도를 정해서 죽을 때도 그렇게 죽었어요. 문학상도 안 만들고 기념관도 안 만들고 문학마을도 안 만들었죠. 나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기 문학이라든가 문학의 완성도라든가 문학사에서의 앞으로의 위상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욕심이 전혀 없게 되죠. 솔직히 그건 없어요. 대신 지금 현재 글 쓰는 거,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요샌 문청 시절하고 똑같아, 그 열정이. 거의 뭐 소설 쓰기에 미쳐있다고 할까. 나 요새 쓰고 싶어 죽겠어. 그런데 좀 텀을 가지려고 해요. 너무 자주 내면 독자들이 나이든 게 말야, 자발없이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뽑듯이 한다고 할 거 아냐? 하하하."

08.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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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8-09-06 0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가지 말이 크게 인상적입니다. "한국 교도행정의 일대 승리"(여기서 크게 소리내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뽑듯이"(많은 분들이 오히려 그렇게 안 돼서 문제고 고민이죠^^).

로쟈 2008-09-06 08:48   좋아요 0 | URL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도 했던 말들인데, 이 양반이 요즘 '문청'이지만 능구렁이를 여러 마리 삶아드신 후 '회춘한 문청'이시죠...
 

박홍규 교수의 신작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필맥, 2008)이 떠올려주는 전작은 바로 한달 전에 나온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글항아리, 2008)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청어람미디어, 2005)이다. 한국의 지식인과 독자들이 자주 언급하지만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는 책들. 한데, 이번에 나온 '니체 비판서'는 새롭다기보다는 좀 '올드'하다는 인상을 준다. 1960년대에 소위 '니체 르네상스'(혹은 '새로운 니체')가 일어나면서 타겟으로 삼았던 전통적인/보수적인 니체관을 그대로 리바이벌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사내는 전투를 위해, 또 여인은 전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양육되어야 한다. 그밖의 모든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란 대목에서 "여성을 남성의 도구로 보는 관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보는 식(너무나 당연한 독해다!). 그의 '다시 읽기'는 '곧이 곧대로 읽기'이기도 하다(그의 주장은 니체를 비틀어 읽지 말라는 것이다!). 책이 흥미로울 듯했으나 리뷰를 읽으면서는 주저하게 된다(사실 오늘도 이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지만 눈에 띄지 않는 바람에 깜박 잊고 말았다. 다행인가?).  

한겨레(08. 09. 06) 니체는 인종주의자·제국주의자였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은 근년 들어 부활해 거침없이 활보하고 있는 니체(1844~1900) 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한 저작이다. 지은이는 부활한 니체의 등 뒤에 감추어져 있던 반민주주의자 니체의 모습을 돋을새김한다. 니체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최근의 현상은 프랑스판 탈근대주의 물결과 함께 등장했다. 미셸 푸코가 사유의 지렛대로 삼은 ‘계보학’이 국내에서 니체의 탈근대적 재해석의 도화선 노릇을 했고, 뒤이어 질 들뢰즈 철학의 유행이 니체의 전면적 복권을 이끌어냈다. 이 흐름이 발굴한 니체는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니체,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니체다. 니체의 사유를 거점으로 삼아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반역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니체 르네상스의 바탕에 깔려 있다.

지은이는 이런 식의 니체 해석이 니체를 ‘오독’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니체의 일부를 전부로 치환하고, 니체의 핵심적인 주장을 지워버리며, 왜곡·과장으로 니체의 본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니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늘날의 니체 이해와는 정반대로 인종주의자·제국주의자·반여성주의자였다고 말한다. 이 모든 점을 요약해 지은이는 니체가 반민주주의자였다고 강조한다. 니체는 강자·주인·귀족·지배자를 위한 철학을 했으며, 그 지배자의 지배를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지배의 실현을 총체적으로 요구했다. 반면에 약자·여성·노예·피지배자를 멸시했고, 그들의 사상과 제도인 민주주의를 극단적으로 혐오했다. 지은이는 니체의 이런 면모가 그의 저작 전편에 일관성 있게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니체 사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구절로 이 책에 소개되는 것이 말기의 저작 <도덕의 계보> 중 ‘금발의 야수’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아마도 소름 끼치는 일련의 살인·방화·능욕·고문에서 의기양양하게 정신적 안정을 지닌 채 돌아오는 즐거움에 찬 괴물[이다.] (…) 이런 모든 고귀한 종족의 근저에 있는 맹수, 곧 먹잇감과 승리를 갈구하며 방황하는 화려한 금발의 야수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 로마·아라비아·독일·일본의 귀족, 호메로스의 영웅들, 스칸디나비아의 해적들-이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같다.”

이 ‘소름 끼치는 야수’야말로 니체가 지배자 종족의 표상으로 인식하고 옹호했던 대상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니체의 이 근본 이미지는 다른 저작에서 다양한 형태로 끝없이 변주되고 반복된다. 약자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다.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자, 패배자, 좌절한 자-가장 약한 자들인 이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이나 인간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 가장 위험하게 독을 타서 그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니체는 여성에 대해서도 경멸적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사내는 전투를 위해, 또 여인은 전사에게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양육되어야 한다. 그밖의 모든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여성을 남성의 도구로 보는 관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니체는 제국주의적 침략과 전쟁을 권하기도 한다. “세계에 아직 남아 있는 야만적이고 신선한 지역의 주인이 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주인이 되려 하자. (…) 모험과 전쟁을 회피하지 말고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각오를 하자. (…) 유럽의 주민 중 4분의 3만큼이 빠져나가면 좋을 것이다.”


지은이는 니체가 노동자들을 노예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음도 상기시킨다. 니체는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는 것이 강자의 지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보았다. “목표를 원한다면 수단도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예를 원하면서 노예를 주인으로 교육한다면 바보가 아닐 수 없다.” 니체의 이런 반민중적·반여성적·반민주적 발언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된다. “오늘날은 소인배들이 주인이다. 여인의 근성을 지닌 자, 하인의 피를 타고난 자, 그리고 누구보다도 천민 잡동사니, 이제 그런 자들이 인간의 온갖 숙명 위에 군림하려 드니, 오, 역겹도다! 역겹도다! 역겹도다!”

지은이는 애초 독일정신을 찬양했던 니체가 1871년 이후 반독일로 돌아섰던 것도 독일에서 민주주의가 번지는 데 실망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아리아인의 지배자 정신을 체현해야 할 독일이 자신의 정신을 배반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많은 ‘탈근대적’ 니체주의자들이 니체의 반독일주의를 인종주의·국가주의·군국주의에 대한 니체의 반대를 뜻한다고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관점이다. 지은이는 니체주의자들이 니체의 이런 본모습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회피한 채로 니체의 몇몇 발언에 기대 그를 민주주의·페미니즘·급진주의의 새로운 대안으로 삼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한다. 니체를 여과 없이 찬양함으로써 반민주적인 엘리트주의자·귀족주의자 니체가 활보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지점이다.(고명섭 기자)

08. 09. 05.

P.S. 찾아보니 니체와 하이데거 전공자인 박찬국 교수의 <니체, 인간에 대해서 말하다>(철학과현실사, 2008)도 지난 여름에 나온 책이다. '병든 인간 건강한 인간, 니체의 잠언과 해설'이 부제인데, 니체 혐오가가 아닌 니체 애호가의 책이긴 하지만 '잠언의 철학자, 니체' 또한 나로선 별로 흥미를 갖게 되지 않는다. 타이틀로만 보자면, <니체의 체계(Nietzsche's System)>(http://books.google.co.kr/books?id=XATb3iOXQVcC&dq=nietzsche's+system&pg=PP1&ots=Vl2TL3EczX&sig=1bdakrETQzG73R4-iHnT_mczznI&hl=ko&sa=X&oi=book_result&resnum=1&ct=result) 같은 책이 내가 읽고 싶은 책이다(그래도 뭔가 새로운 걸 말해주는 책들 말이다). 니체에 관한 지안니 바티모의 책들이나 읽는 게 그냥 더 나을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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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와 약자의 원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9 23:50 
    서평후보로 꼽아두었다가 다른 책에 밀리는 바람에 잠시 독서를 미뤄두고 있는 책이 김진석 교수의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개마고원, 2009)이다. 책은 이달초에 구입을 했으니까 좀 됐다(니체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전작 읽기를 시도한 적은 없다. 다음 학기에 강의를 하게 되면 겸사겸사 유고들까지 읽어볼 계획이다). 나는 책소개라도 해놓은 줄 알고 있었는데, 
 
 
전자인간 2008-09-05 23:21   좋아요 0 | URL
'비틀어 읽기'는 지젝의 특기죠. 이를테면, 영화 <300>에 대한 전복적 해석...
흠, 지젝을 비판한다기 보다는, 박홍규 식의 관점이, 말하자면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박홍규 식 니체 해석이 '복고풍'의 새로운 유행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로쟈 2008-09-06 08:46   좋아요 0 | URL
유행까지는 모르겠고, 니체 마니아들의 '반발'은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생산적인 논쟁이 오고간다면 좋겠지요...

Joule 2008-09-06 02: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재미없는 분이네요. 뻔한 얘기 하는 책은 읽어서 저에게 독이 되기도 하는데 내 무지를 오만하게 잘못 길들이니까요. <니체의 체계>가 어느 성실하신 분의 번역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음, 배송비 때문에 지젝 책을 아마존에서 아직도 구입 못하고 있어요. ㅡㅡ' 그래도 최소한 4권은 질러야 좀이라도 덜 손해보는 기분일 텐데. 이상하게 손이 오그라드네요. 국내에서 파는 곳은 예스24뿐인데 거긴 회원 가입도 안 되어 있어서. 쩝.

로쟈 2008-09-06 08:45   좋아요 0 | URL
때론 상식의 확인이 생산적인 자극을 주기도 하는데, 책은 니체에 대한 나치즘의 선호/열광을 니체 자체에 들씌우고 있는 듯싶어서 머뭇거리게 되네요. 지젝의 책들은 알라딘에서도 구입하실 수 있지 않나요?...

Joule 2008-09-06 13:4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선 9월 30일 이후에나 구입 가능. ㅡㅡ'

람혼 2008-09-06 04:58   좋아요 0 | URL
박홍규 선생의 니체에 관한 책을 단순히 '진부한 독해'로만 치부하지 않고 징후적인ㅡ혹은 반복[강박]적인ㅡ측면에서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곧, 니체와 파시즘의 문제는 '곧이 곧대로 읽는 독해/비틀어 읽는 독해'의 대립구조로만 해소할 수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오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 문제의 지층을 조금 달리 해보자면, 손쉽게 소위 '니체주의자'로[만] 분류되는 경향이 있는 바타이유의 경우, 아감벤은 바타이유를 결국 '또 다른 파시즘'에 가닿을 수밖에 없는 사상구조를 가진 자로 규정하는 반면, 올리에는 이에 맞서 오히려 바타이유의 '체험(experience)'이 지닌 '반-파시즘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문제는 이들의 니체/바타이유 비판 혹은 옹호가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사상구조 안에서 의도하고 목표로 하는 지점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과 결부될 수밖에 없을 텐데요, 박홍규 선생의 이 책에 관해서도 왜 이 시점에서 그가 니체의 저 '반민주적인' 성격ㅡ그것이 비록 매우 '진부한' 독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ㅡ에 주목하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저 '독일적인 것'에 대한 니체의 복잡하고 착종된 감정을 단순히 '독일에서 민주주의가 확산되는' 현상에 대한 실망이 낳은 감정으로만 분석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니체의 이러한 착종성 혹은 분기점에는 바그너로 대표되는 어떤 '독일정신'에 대한 태도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민주주의'에 관련해서 이를 '해석'하자면, 오히려 니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그너의 '반민주주의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입장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로쟈 2008-09-06 08:43   좋아요 0 | URL
아시다시피 니체는 상당히 모순적인 말들도 많이 남기지 않았나요? 그에 대한 '곧이 곧대로 읽기'가 도달할 수 있는 니체는 '모순적인 니체'가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종주의자, 반민주주의자' 등으로 확정되는 게 아니라요. 그런 모순을 피하자면 어떤 '체계'를 가정해야 할 텐데, 그것이 징후적 독해가 아니라 진부한 독해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나중에 독후감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2008-09-06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8-09-06 07:46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이 책의 성격을 한 줄로 정리해주셨네요..

"그의 '다시 읽기'는 '곧이 곧대로 읽기'이기도 하다." (곧이 곧대로가 문자적으로 라는 뜻이겠지요)

람혼님의 징후적 독해의 댓글도 잘 봤습니다.

전 이 '진부한 독해'라는 것이 굳이 나쁠 건 없다고 보이는군요. 나면서 부터 '진부하지 않았던' 독해에 익숙해져 있었다면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진부하지 않았던 독해'부터 알았던 것 같고, 그 '진부하지 않았던' 독해에서 말하는 '진부한 독해'만을 들었을 뿐이니까.. 뭐 그런거 있잖아요 "니체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편협하게 적용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지젝이 소련의 붕괴 이후 '레닌/스탈린'을 단절시키는 트렌드 속에 '스탈린주의 속에 들어있던 레닌'의 얼굴을 이야기한 것 정도로 이해하면서 보면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이 책이 제 쫓기는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는 싶군요..

로쟈 2008-09-06 08:38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진부한 독해'의 결과가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였다' '니체는 제국주의자였다'라고 식으로 귀결된다면 무얼 더 말해주는 것인지 좀 의문이 듭니다. 거기서 독해가 '시작'된다면, 그래서 '니체 르네상스'에 대한 '계보학적 독해'로 나간다면 더 유익하지 않을까 싶어요. 독전감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리뷰'의 기능이 원래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하게 해주는 것이니까요...

yoonta 2008-09-06 14:55   좋아요 0 | URL
니체를 "곧이 곧대로 읽는"다면 "반민주적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수 있는게 아니라 "모순적이며 역설적이다.".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로쟈님 표현처럼 "모순적인 니체"라고 해야 할것 같은데 말이지요. 다만 람혼님 말씀대로 박홍규씨와 같은 니체독해의 시도도 "진부한" 오늘날의 시대(MB시대)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치를 평가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08-09-06 21:43   좋아요 0 | URL
신간 덕분에 <니체와 철학>을 다시 빼들었는데, 펴본 대목들이 우연찮게도 요령부득입니다. <니체, 철학의 주사위>도 확인해보고 불만을 적든가 해야겠습니다. 유행이었다고 해도 국내에 '니체 르네상스'가 있었던 것인지 의문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06 16:08   좋아요 0 | URL
박홍규 씨가 그동안 써온 책이나 칼럼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책은 니체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니체를 비판하면서 니체열풍에 맹목적인 한국인들을 비판하는 책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카뮈나 세익스피어에 관한 비판서도 그런 성격이 강했죠.

로쟈 2008-09-06 21:47   좋아요 0 | URL
그 '니체 열풍'이란 게 사실 속빈 강정입니다. 꼼꼼하게 읽(었)을 독자는 손에 꼽을 정도겠지요. 그리고 셰익스피어나 니체 정도 되면 이미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정반대의 논증들이 가능하기 때문에요(헤겔 좌파, 우파 하는 식으로). 취향의 문제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6 21:58   좋아요 0 | URL
독일에 그런 학자들이 많아요.헤겔도 그렇고...헤겔이나 니체나 둘 다 나치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요.루터도 일정정도 가톨릭 세력에 균열낸 공은 있지만 또 반유대주의자라서... 윌리엄 샤이러<제3제국의 흥망>에는 나치즘에 영향준 사상가로 루터 헤겔 니체를 꼽는데 특히 니체의 초인사상이 원인이라고 했더라구요.물론 샤이러는 독일 관념론을 연구한 이는 아니었지만요.니체의 비판정신을 살리려는 이들은 마르크스와 니체를 결합하려고도 했으니 해석이 다양하긴 하나 봐요.

로쟈 2008-09-06 22:03   좋아요 0 | URL
슈미트만 하더라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재해석되기도 하니까요. '고전'급이 되면 글은 저자를 초월/초과합니다. 못난 사람이 쓴 작품이어서 못났다, 란 주장은 B급에나 해당하는 것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6:49   좋아요 0 | URL
레이몽 아롱이 슈미트의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네요.사실은 우리가 중고교 시절 사회시간 때부터 듣는 이름이지만 슈미트 책은 거의 안 보잖아요.근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많더라구요.저는 독일 낭만주의에 관심이 많아서 <정치적 낭만>을 봤어요.굉장히 해박한 학자더라구요.

로쟈 2008-09-07 16:59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 악명이 높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7 17:34   좋아요 0 | URL
거의 100살 가까이 장수했죠.전범으로 복역한 후 출소해서는 꽤 유유자적 산 것 같더라구요.

로쟈 2008-09-07 22:49   좋아요 0 | URL
<칼 슈미트의 도전> 같은 얇은 책이 있는데, 소개가 되면 좋겠습니다...
 

9월의 첫날이자 가을의 첫날 비가 내렸다. 원래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는 '좋아한다'는 표현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기분을 한껏 가라앉게 만드는 가을비는 은근히 '이렇게 끝나는구나' 내지는 '이렇게 끝나겠구나'란 예감과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곧 몰락의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지리라. 책은 대책이 될 수 없지만, 대책이 없기에 책을 집어든다. 이달에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한 '9월의 읽을 만한 책'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1. 문학

문학분야의 책은 황석영의 신작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 2008)이다. 이미 출간과 함께 화제를 모은 책이기에 군말이 필요없을 듯하다. 소설가 신경숙씨의 소개는 이렇다. "책 맨 앞에 “젊은 시절 언제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께 이 책을 바칩니다” 라는 헌사가 붙어있는 황석영의 성장자전소설이다. 지나간 시대나 현 시대나 그 시대를 대표했던 작가의 변화무쌍했던 인생 이력 중에서 십대시절이 60년대 우리 사회 상황을 뒷배경으로 소설 안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 요컨대, 황석영 문학의 '원점'을 가리키는 작품이다. 특이한 것은 작년의 '9월의 읽을 만한 책'도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 2007)였다는 점. 내년 9월도 기대가 된다.

자전적인 소설이란 점에서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중국 작가 장룽의 <늑대 토템>(김영사, 2008). 방대한 분량 자체가 '대륙풍'이다. 소개에 따르면,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내몽골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깨우친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늑대와 인간이 벌이는 생존을 위한 두뇌싸움이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장대하고 긴장감 넘치게 펼쳐진다. 여기에 작가가 품고 있는 문명관, 역사관, 세계관, 사상, 지식 등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로 꿰뚫고 있다." 요컨대, 1960년대 개밥바라기별을 바라보던 청년이 한국에 있었고, 초원에서 늑대들과 뒹글던 쳥년이 중국에 있었다.

 

 

 

 

2. 역사

역사저술가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백범학' 연구자 배경식의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너머북스, 2008)이다. 이 선정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데, 얼마전 '당신은 백범을 정확히 아는가'(http://blog.aladin.co.kr/mramor/2231110)란 리뷰도 옮겨놓은 적이 있다. 이덕일씨에 따르면, "교양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치고 『백범일지』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기라는 뜻의 ‘日誌(일지)’가 아니라 숨은 일을 기록한다는 뜻의 ‘逸志(일지)’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부터도 그런 처지이므로 이번에 나온 (현재까지로는) '정본'을 손에 들어봄 직하다. 이미 한번쯤 읽은 독자라도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가 어떤 것인가 살펴보면 좋겠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건국절' 논란의 중심인물인 우남 이승만에 대한 책들이다. 최근 우파 계열에서 앞다투어 책을 냈지만 정병준의 <우남 이승만 연구>(역사비평사, 2005)를 넘어서는 저작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적어도 분량으론 넘어서는 책이 없다). '다이제스트'급으로는 서중석의 <이승만과 제1공화국>(역사비평사, 2007)을 들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모두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책이로군...

 

 

 

 

3. 철학

철학분야의 책으로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것은 제롬 뱅데가 엮은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문학과지성사, 2008). "이 책은 완전히 변하고 있는 세상, 21세기의 전망을 담은 책이다. 지구촌의 공적 교육을 책임진 유네스코가 기획했고, 철학에서 정책 실무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명망을 자랑하는 전문가 49인이 참여했다. 가령 데리다, 리쾨르, 보드리야르, 미셸 세르, 크리스테바, 제레미 리프킨 등과 같은 인사들이 그들이다." 49인이나 참여한 만큼 분량도 두둑하다. 가치가 어디로 가는지 알기도 전에 9월이 먼저 지나갈 것이다. 겨울밤까지 읽을 '양식'이라고 해두자.

그렇게 겨울까지 읽을 만한 책에 <알랭 바디우와 철학의 새로운 시작>(새물결, 2008)도 있다. 저자인 김상일 교수가 거물급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주저 <존재와 사건>의 독해를 시도한 책인데, 아직 <존재와 사건>이 번역되지 않은 마당인지라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다만 그러한 사건을 재촉한다는 의미는 갖겠다. 소개에 따르면, "알랭 바디우의 주저인 <존재와 사건>과, <도덕경>으로 대표되는 동양 철학을 동서양 공통 언어인 수학을 통하여 설명해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독자에 따라서는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짐작에 김상일 교수는 동서양 철학을 넘나드는 스케일에 있어서 김형효 교수와 쌍벽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이제까지 '원효에서 화이트헤드까지'였는데, 이젠 '노자에서 바디우까지'이다!). 남는 게 여가/여유뿐인 독자라면 따라가볼 만하겠다.

 

 

 

 

4. 정치

김광웅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프로네시스, 2008)이다. 얼마전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프로네시스, 2008)와 같이 나온 책으로 이미 '반-반미주의 좌파'(http://blog.aladin.co.kr/mramor/2220146)란 페이퍼에서 소개한 바 있다(<그럼에도 나는 좌파다>에 대한 박홍규 교수의 리뷰는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728 참조). 추천의 변은 이렇다. "'나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자칭하는 저자는 ‘권력과 언어’, ‘권력과 역사’, ‘자본주의와 죽음’ 등에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면서 “권력 없는 사회는 없고, 남용 없는 권력은 없다”라는 명제를 앞세워 인류역사상 인간의 얼굴을 한 전체주의와 내일의 천국을 가장하는 자본주의를 맹박한다. 기술·욕망· 사회주의 등 세 비극의 원형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성취될 수 있을까?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수단, 앙골라 등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부정되는 지역을 누비며 인간사회의 모순을 설파한 ‘신철학’을 접하기 바란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비교하며 읽으면 와 닿는 것이 더 있을 것이다." 해서 여차하면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같이 읽어도 좋겠다(2권은 개정판이 안 나온 것인지?). 한데, 포퍼도 '내일의 천국을 가장하는 자본주의'를 맹박했던가?..

 

 

 

 

5. 경제/경영

정운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역시나 전폭적으로 동의할 만하다. 게다가 시의적절하다. 찰스 모리스의 <미국은 왜 신용불량 국가가 되었을까?>(예지, 2008)이 그것인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계속 악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미국경제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우리도 사정은 좋지 않아서 9월 위기설도 나오는 등 뒤숭숭한데(오늘도 환율은 폭등하고 코스피 주가는 폭락했다) 미국 경제의 전망은 어떨까? "저자에 따르면 미국경제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다. 향후 1,2년간 금융기관들은 자산상각의 공포와 도가니 속에서 들끓고, 부도는 급증할 것이며, 아마도 2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소비는 위축되어 경기침체가 오래 갈 것이다. 미국은 대전환을 할 시점에 왔다. 규제완화로 인해 불투명해진(위험)금융상품에 대한 ‘정보’를 다시 투명하게 유통하여 금융시장의 대기를 뒤덮고 있는 독기를 걷어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몫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더불어 떠올린 책은 마쓰후지 다미스케의 <미국경제의 종말이 시작됐다>(원앤원북스, 2008). 거기에 '국제금융기구와 외채에 관한 진실, 세계 밖의 세계'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다미예 미앵 등의 <신용불량국가>(창비, 2006)와 'IMF, 세계은행, WTO는 세계를 어떻게 망쳐왔나'를 따져본 리처드 피트의 <불경한 삼위일체>(삼인, 2007) 등은 포개 읽을 만한 책. 사실 후자의 두 권은 미국보다는 한국 경제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을 법한 책들이겠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유승호의 <문화도시>(일신사, 2008)이다. 생소한 책인데, 일종의 교재인 듯싶다. "애초에 학술서로 기획된 이 책이 일반 독자층에 널리 읽힐 수 있는 교양서로 꼽힐 수 있게 된 데에는 저자의 아기자기한 필치가 한몫하고 있음이 분명하나, 세계 문화도시 성공사례를 사진과 함께 간결이 제시한 기획력이 보다 결정적이라고 본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지역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부제.

개인적으론 '문화도시'보다 '시민사회'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라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창비, 2008), <시민사회의 다원적 적대들과 민주주의>(후마니스트, 2007), <한국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산책자, 2008) 등을 고른다. 고르면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7. 과학

과학분야의 책으로 장경애 편집장이 고른 건 로이 스펜서의 <기후 커넥션>(비아북, 2008)이다. 환경운동가가 아니라 기상학자가 쓴 이 책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상식의 교정을 의도하고 있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인정하지만 그 원인이 인간이 사용한 화석연료를 포함해 다양한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현재의 기후 모델이 기후시스템에 민감한 강수, 구름, 바다 같은 변수를 포함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류를 지구온난화 공포로 몰아가기보다 정교한 기후모델을 개발하는 데 투자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는 '회의적 환경주의자' 비외른 롬보르의 <쿨잇>(살림, 2008)을 떠올리게 한다('7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았었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어느 기후 과학자의 불편한 고백'과 맞장뜰 만한 책은 모두 '지구 온난화'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토로하고 있는 책들이다. 앨 고어의 '긴급환경리포트' <불편한 진실>(좋은생각, 2006)이 아마도 널리 알려진 경우이겠다. 거기에 마크 라이너스의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돌베개, 2006)의 부제는 '투발루에서 알래스카까지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을 가다'이고, 팀 플래너리의 <지구 온난화 이야기>(지식의풍경, 2007)의 부제는 '기후 변화와 생태계 위기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이다. '불편한 고백 vs 불편한 진실'의 구도다.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이영재, 이영수의 <추사정혼>(선, 2008)이다. 그러고 보니 추사(秋史)의 '추'가 '가을 추'였다. "20대 후반부터 70대 만년에 이르기까지 추사가 남긴 200여 편의 작품에 대한 세심한 감평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글도 글이지만 추사의 아름다운 서화들이 오래된 색을 그대로 머금고 책 속에 단아하게 편집이 되어 책갈피를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평한다.

그런 즐거움에 몰입하다 보면 '추사에 미치'는 지경도 남의 일만은 아닐는지 모른다. 이상국의 <추사에 미치다>(푸른역사, 2008)가 그런 경지 아닐까. '150년 전의 천재와 사랑에 빠진 빈섬의 황홀한 지적 탐험'이 담겨 있다. 작가 한승원 선생도 <추사1,2>(열림원, 2007)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추사'에는 중독성이 있나 보다. 섣불리 읽어서는 곤란하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꼽은 교양서는 안나 레드샌드의 <빅터 프랑클>(두레, 2008)이다. 보통은 '빅터 프랭클'이라고 표기되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정신의학자 빅터 프랑클(1905-1977)의 평전이다. 대표작 <죽음의 수용소> 등으로 잘 알려져 있기에 어인 평전인가 싶긴 하다. "그는 유태계 독일인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훗날 ‘의미의 심리학’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치료법까지 창안했다. 1945년 수용소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인간의 의미를 찾아서’는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팔리는 필수교양서로 자리잡았다. 이 책은 미국의 교사인 저자가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빅터 프랑클의 생애와 작업을 잘 압축해놓았다." 그러니까 '학생용'인 것.

정신의학자를 다룬 또다른 평전에 디어드리 베어의 <융>(열린책들, 2008)도 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를 다룬 이 두툼한 평전은 무려 1166쪽 짜리다. 저자나 역자나 놀라울 따름이고, 이 책을 집어들 독자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책 3권 정도 읽는다 치면 독서가 불가능한 건 아니겠다(융처럼 재력가 아내를 만난다면 훨씬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카더라'에 만족하는 수밖에...

 

 

 

 

10. 기행 

얼떨결에 평전까지 교양에서 다루는 바람에 '여유'가 생겼다. 중앙아시아(실크로드) 기행쪽에 투자하고 싶다(돈 드는 투자가 아니니!). 얼마전에 출간된 피터 홉커크의 <그레이트 게임>(사계절출판사, 2008)이 빌미가 되어준 것인데, 그의 전작 <실크로드의 악마들>(사계절출판사, 2000)까지 챙겨도 좋겠다(관련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2256615 참조).

제국주의 영국과 러시아의 쟁탈전이 벌어졌던 장소라는 사실에서 떠오로는 책은 로버트 카플란의 <타타르로 가는 길>(르네상스, 2003). 우파 이데올로그로 유명한 저자의 전략적 기행문이다. 소개에 따르면, "지은이는 터키와 시리아, 레바논과 그루지야 등 중앙 아시아와 이슬람, 동유럽 일대를 직접 여행하면서 체득한 내용들을 기행문 형식으로 서술한다. 기행문의 형식을 빌어오긴 했지만, 카스피해 송유관을 둘러싼 국제적 암투와 이란과 시리아, 그루지야 등의 정치적 불안, 동구권 몰락 이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경제 침체에 따른 혼란 등을 낱낱이 분석해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견줄 만한 국내서들로는 물론 정수일 선생의 책들이 있지만, 한권만 고르려니까 <실크로드, 움직이는 과거>(강, 2007)가 떠오른다. "변호사 차병직이 동료 변호사 문건영과 함께 한겨울의 실크로드를 다녀와 펴낸 에세이집. 실크로드학의 대가 정수일 선생과 함께했던 한겨울의 실크로드 여행에 대한 기억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생동감 넘치는 실크로드 여행기와 깊고 풍부한 문학ㆍ역사ㆍ인문학적 에세이가 겹쳐있다." 아, 언제쯤에나 여행기 한번 써보나...

08. 09. 01.

 

 

 

 

P.S. 이달의 고전은 괴테의 <파우스트>이다. 하지만, '여행'에의 유혹 때문에, <이탈리아 기행>으로 바꾸었다. 여러 종의 번역본이 이미 출간돼 있다.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그의 이탈리아 여행은 1786-1788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이루어진다(그는 9월에 떠났다가 6월에 돌아온다). 그의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아래는 티슈바인의 그림 <로마의 숙소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괴테>. 며칠전부터 이 그림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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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2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8-09-02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마음에 들어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도 저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 있죠. 괴테씩이나는 아니지만 여자아이가 내다보는. 이번 추석에도 추석 특집 써주실 거죠. (10분 전에 로쟈 님의 작년 추석 특집을 읽고 와놓고서는 이 뻔뻔함이란.)

요즘엔 로쟈님의 읽을 만한 책 페이퍼를 열심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로쟈 님 페이퍼 보면 의욕만 넘쳐서는 그래 이번엔 이걸 읽어볼까,하며 통장 잔액은 생각도 않고 체크 카드를 긁어대서 말이죠. 로쟈의 길과 쥴모 양의 길은 다르다는 인식에 이제야 간신히 도달했다고나 할까요. 얼마 전에 헌책방에 최근 1년간 읽지 않았으며 어쩐지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방출하면서 굳힌 결심이죠. 그럼에도 두세 상자 더 보낼 수 있는 책들이 잔뜩 있긴 하지만 어쩌면 난 생각보다 좀 더 이해력이 뛰어날지도 모르겠다는 환상을 접지 않는 거죠. 사실 책을 읽는 행위 못지않게 읽지않은(혹은 읽지 못할) 책을 눈 앞에 쌓아놓고 미지의 쾌감을 지레 맛보는 것도 꽤 쏠쏠하잖아요.

아, 지젝에 대해 여쭤보려고 들렀죠, 참. 지젝은 한 권을 원서와 번역서를 대조해가며 꼼꼼하게 읽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추천해주실 것 같긴 한데 번역서가 없어요. 제가 가진 건 <죽은 신을 위하여>와 <지젝이 만난 레닌>인데 어떤 게 좋을까요. 셋 다 읽어보라고 하시면 노니 개 팬다고 그래도 좋겠지만 어쨋든 스타트는 끊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번역서 없이 <이데올로기...>를 원서로 그냥 봐도 좋을까요. 취미가 번역이라는 하루키 씨도 있는데 저도 취미로 <이데올로기...>를 번역해볼까 싶기도 하고.

로쟈 2008-09-02 08:20   좋아요 0 | URL
<지젝이 만난 레닌>이 더 쉽습니다. 국역본이 휴대하긴 좀 불편한 게 문제랄까(2권짜리 소프트카바로 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10여 개 장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에 관심있는 장을 대조해서 읽다보면 독해력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용어법에 익숙해지시면 <이데올로기>도 번역하실 수 있을 겁니다.^^

yoonta 2008-09-02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일씨가 알랭바디우의 존재와사건을 분석한 책이 나왔나보군요. 원래 이분이 러셀의 역설이나 괴델 그리고 집합론등에 관심이 많은 분이긴 한데 바디우의 책까지 섭렵하시다니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많은 프랑스철학전공자들은 뭐하고 아직까지 바디우의 주저라고 할수있는 <존재와 사건>도 번역안(못)하고 있는 건지..원..바디우저서에 나오는 수학때문일까요?

로쟈 2008-09-02 16:34   좋아요 0 | URL
yoonta님도 수학에 관심이 많으시죠?^^ 수학에 나름 정통한 철학도를 찾는 것도 쉽지는 않겠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타르로 가는 길> 상당히 재밌더군요.일종의 시사 기행문? 보수파 냄새가 확 풍기지만 실력있는 저술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루지아의 시인대통령 이야기가 재밌더군요.임지현<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카프카즈와 중앙아시아를 다뤄서 같은 시기에 두 책을 연속해서 봤습니다.임지현 씨도 해박한 지식에다 글을 매끄럽게 잘 쓰더군요.

로쟈 2008-09-03 08:32   좋아요 0 | URL
네, 엘리트 보수주의자이죠. 공산주의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는 두 사람이 비슷한 포지션 같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0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지현 씨가 들으면 그다지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은 평가네요.임지현 씨가 조선일보에 글을 쓰니까 조선일보가 좌익지가 되었다고 흥분했던 열혈 매파 아저씨가 있었다는 전설같은(그리고 우습기도 한) 일화가 있었습니다만...

로쟈 2008-09-04 23:41   좋아요 0 | URL
임지현 교수가 조선일보화 되는 것인지, 조선일보가 임지현화 되는 것인지 헷갈리네요.^^;

람혼 2008-09-05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부분에서 '미셸 세르'가 '미셰 세르'로 오타가 났네요. 그렇지 않아도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를 처음 사들고 데리다, 바티모, 슬로터다이크의 글과 함께 가장 먼저 찜해두었던 글이 세르의 글이었는데, 저로서는 아마도 책 전체의 정독은 겨울쯤에나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0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한 수렴현상이죠...임 교수는 요즘은 조선일보에 글 안 써요.7월부턴가 안 보이네요.조선일보 주말의 독서란이 대폭 줄었거든요.거기에 임 교수가 글을 종종 썼는데...

딸기 2008-10-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온난화 이야기>... 뭔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드네요.
저 책 낸 사람들이 저같은 사람의 리뷰를 읽었을리야 없겠지만
이미 팀 플래너리가 쓴 책이 <기후창조자>라는 이름으로, 딱 지난해에 나왔었고요.
그때 제가 '기후변화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라는 리뷰를 올렸기 때문에 기억합니다.

그런데 1년만에'기후 변화와 생태계 위기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라는 부제를 달고
다시 출간되어 나왔다니, 희한하군요.
혹시나 싶어 목차를 확인해보니 같은 책 맞는데...
먼저 나왔던 책도 번역은 괜찮았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번역자가 이충호선생이신걸 보니 번역이야 뭐 확실할 것 같고...
하지만 어떻게 된 사정인지 궁금하네요.
 

'세계화의 윤리와 만민법'은 한가지 주제도 되지만 두 권의 책을 가리킨다. 피터 싱어의 <세계화의 윤리>(아카넷, 2003)와 존 롤스(롤즈)의 <만민법>(이끌리오, 2000)이 그 두 권의 책이다(<세계화의 윤리>의 원제는 그냥 <하나의 세계>이다). 알라딘에는 모두 품절/절판으로 나온다. 필요 때문에 며칠전 <세계화의 윤리>는 구입했고 <만민법>은 오래전에 구입해둔 책이지만 짐작엔 롤스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스보관도서여서 당장 손에 들지 못한다(말 그대로 '박스의 책'이다). 해서 관련자료를 검색해보다가 참고할 만한 기사들이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순서는 역순이다.

한겨레(00. 11. 20) '현실적 유토피아' 가능한가

IMF사태 뒤 우리는 한 나라의 주권마저 뒤흔드는 세계화의 영향력을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다. 서구중심 신자유주의 사조에 대한 최근의 거센 비판또한 따져보면 경제논리로 간섭과 배제를 일삼는 국제관계의 타산적 변화가 주된 요인이다. 바꿔말해 그것은 곧 나라사이의 정의로운 관계가 과연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론>으로 세계지성의 반열에 오른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만민법>(이끌리오·장동진 외 2인 옮김)은 정의를 갈구하는 보편적 이성에 기대어 정글화된 국제관계에 `죽비'를 때리는 연구서다. 명저 <정의론>(71년)과 <정치적 자유주의>(93년)에서 합당성과 공적 이성(Public Reason)을 토대로 한 사회의 분배정의를 역설했던 그의 도덕주의는 책에서 나라 사이의 공존과 평화를 좇는 만민법 개념으로 재생되고 있다.

저작을 구성하는 만민법과 공적 이성에 대한 두 논문들은 겉보기에 도덕군자의 규범론에 가깝다. 세계평화를 도덕적 명령으로 본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사색의 지렛대 삼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만민법'은 롤스가 재정립시킨 윤리적 정의가 세계 시민의 유토피아를 이룩하기 위한 외교적 원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입증한다는 점에서 통찰의 깊이가 엿보인다. 일반적 사회계약론을 여러 나라간의 관계짓기로 확장시킨 셈이다. 그에 따르면 만민의 사회는 자유민주적인 만민의 사회와,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지만 여러 다원적 논의가 가능한 `적정수준의 만민의 사회', 무법적 사회로 나뉘어지는 데,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인간이성의 특징 때문에 앞의 두 사회는 만민법에 동의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유토피아'가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국제정치 현실에서 가능하기나 할까. 롤스는 확답을 피하고 관용에 바탕한 만민법 이상이 실천과정에서 국제관계의 정의실현을 위한 가능성을 꾸준히 높인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반전론보다 인권을 위해 무법적 나라에 대한 무력개입을 옹호하는 그의 견해는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적이성의 재조명'또한 같은 맥락에서 종교와 인종 등의 가치관 차이를 넘어선 만민법의 합당한 고갱이로서 공적 이성을 다루고 있다. 관용에 뿌리를 둔 공적 이성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종교교리, 이해관계의 갈등을 완화하는 정의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실천하는 이성의 권능을 믿는다는 점에서 롤스는 마치 21세기의 칸트처럼 비친다. “정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이 지구상에 살 가치가 없다”는 칸트의 명제는 그래서 담론의 중요한 전제이며 “정치적 개념이 본질적, 도덕적 가치로서의 정의를 포함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이성적 의지를 채찍질하는 중용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서구적 사고방식이 지고의 문화적 가치로 뿌리내린 현실에서 이 강단학자의 견해가 시국한담이나 서구우월주의의 근거로 잘못 읽힐 수 있는 점은 분명 경계할 대목이다.(노형석 기자)

 

주간동아(04. 01. 15) 국가 초월한 지구촌 웰빙 지침서

2003년 지구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세계화 현상들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절망적인 상황이주를 이루었다. 유례없는 반전열풍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테러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으며,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개발도상국들이 강대국의 일방적인 경제 세계화에 반발해 결렬되고 말았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를 미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거부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희망도 샘솟았다. 최근 이란에 엄청난 지진 피해가 발생하자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계의 수많은 선량한 손길이 지구 저편의 곤궁한 이웃을 돕고 있다.

자국의 사소한 일 하나도 그 나라만의 문제일 수 없는 지구촌 시대다. 이제 문제는 세계화의 수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세계화를 진행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실천윤리학의 거장인 피터 싱어는 근저 ‘세계화의 윤리’(원제 One World: The Ethics of Globalization)에서 “우리가 어떻게 전 지구화의 시기를 잘 겪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윤리적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윤리적 문제라는 것은 예컨대 우리 개인적으로는 가난하고 약한 나라를 돕는 윤리의식이, 세계 전체로는 합법적인 노동기준과 환경기준을 ‘잘 관리할’ 지구적인 단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전 지구적 공동체 윤리를 가지려면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중시된 ‘민족국가(nation-state) 중심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이제까지 우리들의 행동윤리는 국가라는 공동체 범위 안에서의 일이었다. 그러나 국가간의 통합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만큼 세계화가 진척된 상황에서 민족국가 중심 개념은 세계를 힘의 논리에 따라 비윤리적으로 재편할 방편이 될 수 있다.

피터 싱어는 미국을 그 예로 든다. 미국이 강제하는 전 지구적 평화주의인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아무리 건전한 원칙과 고매한 이상을 가졌어도 전 세계 60억 인구의 지구를 3억 인구의 나라가 지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재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을 막을 견제와 균형의 장치도 없는 상황은 우려할 만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보인 그간의 행동을 보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싱어는 꼬집는다. 예컨대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것은 대표적인 이기주의의 사례라는 것. 또한 집단살해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로 기소된 자들을 재판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에 미국이 반대하는 행동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논리였던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필요한 실천 가능한 방법들은 무엇일까. 싱어는 크게 네 가지 주제를 살펴보고 그 방법들을 제시한다. 첫째, 지구온난화 문제.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를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보여주고, 미국의 교토의정서 탈퇴와 같은 강대국의 전횡을 막기 위해 국제기구의 강화를 제안한다.

둘째, 환경과 인권 등의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며 국가 주권에까지 개입해온 WTO를 개혁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 옹호, 환경 보호, 동물권리 보호 등에 대한 전 지구적 기준과 이를 시행하는 기구를 마련하자는 것.

셋째, 집단살해 등 개별 국가의 특정 사안에 대한 국제적인 개입은 어떤 경우에 가능한지를 제시한다. 그 결정은 반드시 한 국가가 아니라 합당한 절차에 따라 유엔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것.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왜 비윤리적인지를 짚어내는 대목이다.

넷째, 지구상의 극빈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각국이 GNP의 1%를 해외원조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 방식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저소득국가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인 ‘하나의 세계’를 위한 싱어의 생각은 구체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그래서 어려운 수치와 논리가 전개되면서도 호소력이 있다. 마치 존 레논이 ‘이매진(Imagine)’에서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본다 … 온 세계를 함께 나누는/ 모든 사람을 상상해본다’고 노래했듯, 그도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노래 부르고 있다.(정현상 기자)

08. 08. 31

 

 

 

 

P.S. 피터의 싱어의 책에는 롤스의 두 저서인 <정의론>과 <만민법>에 대한 논평이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끈다. 먼저 <정의론>에 대해서: "윤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변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자우주의적이 미국이 성립되는 과정에서의 정의에 대한 20세기 후반의 사고를 대표하는 롤스의 <정의론>을 살펴보아야 한다. 1971년 출판된 직후에 읽었을 때, 나는 거의 600쪽에 이르는 이 책이 서로 다른 사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극단의 빈부 간의 부정의(injustice)를 전혀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32쪽) 말하자면 롤스의 '정의'는 사회'간' 정의가 아니라 사회'내' 정의에 국한되고 있다는 것.

"원초적 선택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롤스는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사회에 속해 있으며 그 사회 내에서 정의를 이룩하는 원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가정한다.(...) 만약 정의롭게 선택하려면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도 몰라야 한다는 것까지 롤스가 받아들인다면, 그의 이론은 세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향상시킬 강력한 논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에서 씌어진, 정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인 <정의론>에서 이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32-33쪽)

롤스가 이 문제를 비로소 제기하는 것은 <만민법>에 와서인데, 여기서도 문제는 없지 않다. 싱어에 따르면, "그의 접근방식은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결정하는 단위가 오늘날의 민족국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확고하게 뿌리 박고 있다. 롤스의 모델은 국제적인 질서의 모델인지, 전 지구적인 차원의 그것이 아니다. 이러한 그의 가정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33쪽, 이에 대한 부연설명을 싱어는 226-231쪽에서 제시한다). 두 철학자간의 쟁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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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02 23:05   좋아요 0 | URL
싱어의 롤스 비판! 궁금하네요.강정인 씨도 한국의 롤스 열기가 문제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죠.존슨 행정부의 복지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책이 정의론인데 국내학자들이 이런 맥락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지적했죠.롤스가 고교윤리의 사상과 철학 편에 소개된지도 20년 가까이 된 것 같아요.

로쟈 2008-09-03 08:29   좋아요 0 | URL
'롤스 열기'도 옛날 얘기 같은데요. 그것도 한때 주저들이 번역되고 학위논문들이 많이 나온다는 정도 같습니다. 그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조차 국내에선 '좌파', 혹은 빨갱이 이론으로 낙인이 찍히겠죠...

딸기 2008-09-03 17:49   좋아요 0 | URL
세계화의 윤리, 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

로쟈 2008-09-04 23:39   좋아요 0 | URL
네, 리뷰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3 21:15   좋아요 0 | URL
롤즈가 쓴 논문 중에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게 있었는데 문득 이 논문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우리나라 사람중에는 히틀러도 좌익으로 구속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이들도 있겠죠.

로쟈 2008-09-04 23:39   좋아요 0 | URL
남아도는 게 그런 실력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5 15:56   좋아요 0 | URL
그런 실력을 필요로 하는 나리들이 계시니까요.

로쟈 2008-09-06 08:51   좋아요 0 | URL
임기제 대통령이 아니라 총통을 모시는 듯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6 16:38   좋아요 0 | URL
반대자들 다루는 모양이 구사대 동원하여 진압하는 식이죠.이 정도인줄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