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체리 한 종지를 먹고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한 접시를 먹어야 했나
아니면 한 사발
아니면 체리라고 먹은 것이 앵두였나
작은 건 앵두고 큰 건 체리라지만
자두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각자가 자기 수준으로 먹는다
앵두생활자, 체리생활자, 자두생활자
그런데 버찌와 체리는 뭐가 다른가
벚나무가 동양종과 서양종이 있어 다르단다
국내산은 버찌고 수입산은 체리인가
더 달달한 게 체리여서
우리는 주로 체리를 먹고
나도 아침에 체리를 먹은 것이지만
여물이 아니어서 쟁기질할 기운이 없다
그럼 시는 무슨 기운으로 쓰는가
없는 기운으로 쓰는 게 시
체리 먹고 쓰는 시
누구는 이슬만 먹고도 쓴다지만
나는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해
꼬박꼬박 체리를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값을 치른다
체리 먹고 쓰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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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0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리__20대 딸아이가 지금도 말해요- 엄마, 미국에서 먹은 체리,
정말 맛있었는데!
딸 6학년때 뉴욕을 갔었지요. 한낮의 여름 센트럴파크와 미술관을 찾아
걸어다니던 때. 거리의 가게에서 산
체리 한 팩. 체리가 원래 이렇게 달고
맛있냐며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쌤! 체리로 기운 나나요?^^
여름엔 <맘스 터치 삼계탕>이죠!
Try! *^^*


로쟈 2018-07-07 15:07   좋아요 0 | URL
요즘 체리가 다 수입산이라는데, 신맛이 없더라고요.~
 

책은 도끼다
라스콜니코프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전당포 노파를 찾아간다
전당포에서는 책도 받아주는가
가진 게 책밖에 없는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책 잡히러
전당포에 가는가
그러나 책은 도끼여서
라스콜니코프는 책등으로
전당포 노파를 내려치고
전당포 노파는 고개를 수그리며 쓰러진다
전당포 노파는 너무 아프다
전당포 노파는 머리를 긁적인다
이복동생 리자베타가 나타난다
당황한 라스콜니코프는 급하게
책을 집어던진다
리자베타도 이마에 책을 맞고 쓰러진다
이마가 얼어붙는다
가진 게 책밖에 없는 라스콜니코프는
두 여자를 책으로 쓰러뜨린
라스콜니코프는 기진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온다
전당포에는 왜 갔다온 것인가
라스콜니코프는 머리를 싸매고 눕는다
이건 아니잖나
라스콜니코프는 머리맡 책장을
다시 펼친다
죄와 벌을 다시 읽는다
라스콜니코프가 하숙집을 나선다
찌는 듯한 칠월 초순이다
얼어붙은 바다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스콜니코프는 책에 고개를 묻는다
라스콜니코프는 열이 난다
라스콜니코프는 중얼거린다
책은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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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카프카가 죄와 벌을 읽고 남긴 말은 없나요?

로쟈 2018-07-07 00:13   좋아요 0 | URL
읽은 건 확실하고 <소송>과 비교도 많이 되는데, 구체적인 언급은 안 보이네요.~

syo 2018-07-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쟨 왜 도끼를 거꾸로 들고 저러고 있냐 싶었다가 다시 확인해 보니까, 실제로 최초 타격은 도끼날이 아니라 도끼뿔이었네요. 당연히 도끼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세 번이나 읽어놓고.....

로쟈 2018-07-07 15:06   좋아요 0 | URL
네, 첫번째 살인은 날이 아니라 등으로.~
 

의미에게 꽃을 묻는다
살 만하냐고 묻는다
피우는 것 없이도
열매 맺는 것 없이도
노골적으로 말하면
뿌리 없이도
의미는 의미로 서 있는가
누구도 본 적 없는 의미는
누구 못지않은 자세로
의미를 구가하는가
날렵한가
절묘한가
의미의 안부를 묻는다
꽃보다 다급하게
의미의 안녕을 근심한다
꽃들은 무탈하다
꽃들은 무관하다
의미의 의미를 묻는다
항복할 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도 버티겠느냐고 묻는다
묻는다
묻어버린다

비로소 꽃이 아름답다
모양도 향기도 없는 꽃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무의미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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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의 안부는 모르는 척 하기로합니다
잘 있데도
잘 못 있데도
불편한 마음일테니...
이렇게 또 비겁해집니다

로쟈 2018-07-07 00:14   좋아요 0 | URL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이죠.^^
 

기본데이터를 모두 이용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나도 바닥이 났다는 느낌으로
배를 깔고 누워 있던 참
마음은 암스테르담으로도 날아가고
바그다드 카페에라도 들르겠다지만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 옆에서
얌전히 충전중이다
주말이면 나의 국적은 피곤한 나라
나의 여권번호는 피로로 시작하지
피곤한 나라에도 산과 들이 있고
심지어 아이슬란드도 있지만
우리는 집에만 있기로 담합한다
우리의 안목은 피로감
부석부석한 얼굴에 충혈된 눈
피곤한 나라에서는 기본값이다
모두가 누워 있어서
눕기는 우리의 국민적 자세
아, 우리의 축구는 침대축구지
언제 어디서건 드러눕는 게 우리의 국민성
우리는 바닥이라 바닥 친화적이다
아, 침대는 사랑이니
이제는 드러누운 자세로 마무리하자
누워 있다 보면 애국심도 생기는 법
피곤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공공의 적들을 성토한다
주말에 더 기운이 넘치는 자들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자들에게 저주를
그렇다고 광장에 나갈 수는 없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건 국민적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무슨 기운으로 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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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3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군편에 서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스파이라고 우기지도 못할만큼
아군티가 난다는게
슬푸네요.(오타아님ㅋ)

로쟈 2018-06-30 18:10   좋아요 0 | URL
내국인이시네요.^^
 

쿠마는 누구의 이름인가
누구의 이름도 아닌 쿠마
쿠마는 그렇쿠마에서 떼어낸 말
그렇쿠마는 그렇구마에서
그렇구마는 그렇구나에서 온 말
본적이 그렇구나인 쿠마
하지만 집 나온 쿠마
오갈 데 없는 쿠마
국적도 없고 소속도 없는 쿠마
집 없는 개가 있다면
그런 개 같쿠마 쿠마
노숙자 같은 쿠마
난민 같은 쿠마
이름도 아니면서
그렇게 불리는 쿠마
쿠마라고 부르니 안쓰러운 쿠마
발바닥 티눈 같은 쿠마
쓸데없는 쿠마
쓸데없어서 미안한 쿠마
쿠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누구의 이름도 아닌 쿠마
사랑도 아닌 쿠마
그래도 마음 쓰이는 쿠마
결국은 이렇게
시로 적게 되는 쿠마
더는 해줄 게 없는 쿠마
정녕 그렇쿠마 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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