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지나니 아침이었다가슴에 손을 대 패스포트를 확인하고다시 눕는다지나온 날들이 모두 되돌아갈 수 없는 나라무단잠입한 경우는 있었지영원한 반복은 믿을 수 없어도어쩌다 반복은 가능하니까두번째 스물이 가능하고 두번째 서른이 가능한 것처럼그때도 슬픈 서른일까반복은 감정을 무디게 한다네괴테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의 반복이었지되돌려받으려는 몸짓이었지사랑은 얼마나 지루한 것일까그 많은 사랑이 사랑의 무덤일 것이니눈 뜨면 나는 전철을 타고 있네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지하철이 첫 운행한 날도 있었지그날은 대통령도 지하철을 탔지모두가 가슴이 벅찬 날이었지세월이 지나 아침 전철은 지옥철이 되었지그 아침에 나는 어제 넘은 국경을 떠올린다모두가 쉽게 넘어온 건 아니다언젠가 나도 넘어질 날이 오겠지모든 죽음이 첫 죽음이기를
책을 사랑해도 잃을 수가 있다내가 잊은 것인가 잊힌 것인가책은 자주 보이지 않기로 작정하고나는 책에게 약점을 잡힌다사랑에 빠진 자들은 굽신거린다보이지 않는 것들을 당할 수는 없다나는 수시로 책을 잃어버린다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잃어버리고서야 시작되는 사랑아, 어떤 책은 절판된 뒤에야!사랑은 무엇이건 공백을 만든다공백은 확고하다 비누칠이라도 하고 싶다언제가 나 또한 누군가의 공백이 되리아끼던 비누를 당신에게도 빌려주리라
너는 어디에 어느 뜨락에어느 탁자에 너는 눈을 뜨고새장의 문을 열고 너는 기지개를 켜고너는 아침의 신호가 되고 너는어디에서건 너다운 표정을 완성해야하기에 너는 포장된 미소를 뜯어서 오늘을 위해 남겨둔 말들과 나란히 걸어두고 너의 걸음은 유난히유난스럽지 않은 소리를 내며 활보할 차비를 하지그날이 마지막 날이었을 테지너는 어디에서건 존재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이제는 어느 뜨락에 뜬 달처럼어디에서건
작별에도 예식이 있지나뭇잎이 가지를 떠날 때정해진 날짜에 이사를 떠나는 것처럼가지는 나뭇잎을 떠나보낼 채비를 하고웅크린 나뭇잎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밖에서 문을 닫고 안에서 문을 닫아걸고마지막 포옹은 어디에서 나눈 건지생각에 잠길 즈음이미 나뭇잎은 길바닥에서 몸을 떤다인연은 그렇게 완성된다는 듯이무성한 인연들이 한여름 푸르렀구나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는 안성공도터미널 승차장 바닥에 죽은 듯 붙어 있는 나방 한 마리 죽은 건가 건드려 보려다내게 무슨 권한이 있나 싶다그러다 버스에 몸을 실으니인연도 아니구나 그렇게 죽은 듯 붙어 있는 나방이었으리죽은 건가 건드려 보려다인연이 아니구나 떠나갔으리그대 떠나고 나는 남은 건가 싶다안성공도터미널 승차장 바닥에승천을 기다리 듯 나는 숨죽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