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어 가자
여름밤 매미 소리도 잦아든다
잠시 쉬는 것도 같고
소리 죽여 우는 것도 같다
너도 열대야겠지
너도 잘못 산 일이 있겠지
너도 흘려버린 인연이 있겠지
소리 죽여 우는 소리는
알아들을 것 같다
나도 숨죽여 시를 쓴다
열대야가 아니면
언제 숨죽이며 땀을 흘릴까
네겐 이 여름이 마지막 계절인가
나도 이번 생이 마지막이야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인연
너는 쉬다가도 다시 울고
나는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숨죽여 시를 쓴다
어쩌면 네가 쓰고
내가 우는 건지도 모른다
너는 바짝 시를 쓰고
나는 숨죽여 운다
네가 울면 나는 쓰고
네가 쓰면 나는 운다
우리가 무얼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네게 내일이 남아있다면
하루치의 울음이 더 남아있다면
나도 힘을 아껴두어야지
너는 한껏 소리 죽여 울고
나는 또 숨죽여 시를 쓰고
여름밤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연을 완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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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8-0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야로 새벽에 잠드는 날이 이어지면서
내일치 힘까지 당겨 쓰는 하루하루네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시를 쓰고
하루치 값도 못하고 사는 못난 1인.

로쟈 2018-08-07 22:40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냥 버티는 게 몸값하는 것 같아요.~

로제트50 2018-08-0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을 향한 감정표현은 울음인가 봐요.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에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이
버스로 사막을 지나는 장면이었는데 그 사막에서 김영현은 울었다네요...
작가의 또 다른 수필에서
초목에 대한 감성이 저랑 많이 닮아서, 그에게 남다른 친밀감을 느낍니다.
지난 7월말은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날이라 하죠.
이젠 밤하늘이 정답게 보여요^^
칼 세이건에 대한 단상 등이 덧붙여져서요...
이번 달 로쟈쌤 강의 일정표 보고 살짝 놀랐어요. 부산에서 강의하시는 날이
제가 며칠간 휴가 보내고 올라오는 날.
또 제가 사는 동네에 쌤이 오시네요@@ 강의 마치시는 시간이
녹초가 돼 퇴근하는 시간^^
아, 제가 생각하는 인연은 일방적이네
요^^;;
이또한 이 시대의 반영이겠지요*^^*

로쟈 2018-08-07 22:49   좋아요 0 | URL
네, 언젠가 인연이 닿겠지요.~
 

독일을 둑일로 적으니
둑일문학기행도 괜찮겠다
둑일은 어느 행성의 나라인가
둑일에도 물론 문학이 있을 테니
독일문학을 닮은 둑일문학
둑일문학의 괴테와 토마스 만은
둑일문학의 하이네와 둑일문학의 릴케는
둑일문학의 카프카는 잘 있는지
카프카는 카브카지
둑일문학의 카브카는 외판원
그레고르 감자가 나오는 변신을 쓰고
감자는 포테이토로 변신하던가
바이올린 소리에도 감동하는 포테이토
포테이토는 가족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
마지막 숨이 새어나오는 포테이토
방바닥에서 말라가는 포테이토
카브카문학기행도 다시 가볼만 해
둑일문학에는 괴터와 실레도 있지
둑일의 바이마르도 찾아가보자
괴터의 젊은 베르터의 고생도 읽고서
아, 가련한 베르터!
유부녀 롯데와 사랑에 빠져
여덟 명의 아이들을 떠안고
생고생하는 베르터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결국은 권총으로 자살하는 베르터
괴터와 실레를 찾아가는 둑일문학기행
파우스터와 빌헬름 털도 읽어야지
하이너의 둑일, 어느 겨울동화도
그러고 보면 마르크스는
원래의 마륵스로 되돌려놓자
평행우주 저편의 둑일에서는
허세가 더미안을 쓰고
릴커가 두이너의 비가를 쓰지
브레이트는 한쪽에서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적고
맥스 저발트는 폐허를 노래하지
토성의 갈고리 같다고
둑일문학을 찾아서
떠나보자 인터스텔라의 세계로
어차피 둑일로 적은 김에
항성간 여행을 떠나보자
우주의 구멍속으로 빠져보자
˝음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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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이 올 리가 없지만 모두가
그런 표정이었으므로 나는
네가 오지 못할 거라고 믿었고
믿음은 백년만에 한번 피는 꽃도
능히 피울 수 있기에 나는 달력에다
X자를 그렸고 그건 네가 오지 못한다는
그런 표시였다 언젠가 입을 틀어막고
너를 위해 울었던가 우리는 자주
울먹였어도 그게 나중에는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했지 우리가 어쩌다 만난 것인지
그게 백년에 한번 있을 만한 일이었다고
너는 믿었어 믿기지 않는 믿음으로
강변을 걸었어 바람에 흔들리는 건
구름이었을까 멋쩍게 바람 맞은 날
모든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었지
그런 날 갈대들은 어깨를 들썩이고는 하지
네가 오지 못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건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
분명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게 되지
네가 오지 못할 이유는 세상에나
단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게 세상의 법칙이라니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자꾸 뒤집어지는 모래시계처럼
많은 쪽은 언제나 적은 쪽이 되고 말지
태연하게 시간은 모든 구도를 바꿔놓는 거야
그렇다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건 아니고
다만 전세를 거꾸로 바라볼 뿐이지
유정한 사랑은 언제 무정한 사랑이 되는지
그걸 알지 못하고서야 벗어날 수 없는 법
네가 오지 못한다는 연락은 올 필요도 없지
나는 네가 올 거라고 믿으니까
네가 올 수 없다는 게 너무도 분명하니까
너는 기적과도 같은 표정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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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8-0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시인가요!!!
가벼운 시어들인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잘못 느낀거라면 저의 무지를 용서하십시오ㅎ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며‘가
동시에 떠오른 까닭이 뭘까요

로쟈 2018-08-04 19:18   좋아요 0 | URL
제가 황지우를 떠올린 아니지만, 느낌은 잘 전달한 거 같습니다.^^

two0sun 2018-08-0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왕자 강의를 앞두고 이시를 읽고
삼십년만에 어린왕자를 다시 읽고
오십살에 만나는 어린 왕자는 어떤 너로 올런지.
내게서 오라는 연락을 삼십년만에야 받은 어린왕자.

로쟈 2018-08-05 01:22   좋아요 0 | URL
시를 읽는 맥락도 다양하네요.^^
 

세상은 점점 따뜻해져
어제보다 더운 오늘
그리고 더 뜨거운 내일
어미 없이도 계란이 부화한다니
암탉의 품속 같은 세상
숨막히는 사랑이란 이런 거구나
지구가 맘먹고 계란을 품는구나
그래 이젠 부화지
우리 생에 남은 일이라곤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
그러니 좀더 버티자
우리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체온으로 체온을 버티는 일
북극의 빙하도 녹인다는 사랑이지
아프리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이야
마침내 부화할 그날까지
좀더 버티자

그런데
우리가 유정란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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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도 매미가 울었다
감시, 아니 감청한 게 아니라
내가 잠에서 깼기 때문이다

아마도 밤낮이 없는 모양이다
어제만 철야한 건 아니겠지
교대는 하는 건가
이런 걸 매미한테 묻는 건가

매미는 울었고 나는 잠에서 깼다
어제는 일찍 자야 했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그게 증상인 것도 같았다

매미는 여름내 울어도
언제 목이 쉬어야 하는지 안다
그날이 오겠지
목숨이 가벼워지는 날

아침이라고 매미소리가 잦아졌다
이제 좀 쉬어가는 것인가
그래 아침은 먹고 다시 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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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24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이 시를 읽으니 신기하게
매미소리가 일제히 울렸어요^^
무더위 견디는 방법은 몰입이 최고인 것 같아요. 제 오랜 피서법 하나인 추리소설. 그리고
올해는 과학서를 추가하려구요~
책에 코박고 있다보면 ...
이 계절이 끝나겠죠^^*

로쟈 2018-07-25 07:43   좋아요 0 | URL
예년보단 많이 쌓아두어야 할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