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타고 다니는 것은 자동차
아니 자가용 비행기라고 하자
그는 아침마다 자전거 체인처럼
비행기를 닦고 기름칠한다
엔진오일과 냉각수가 필요하겠지
그런 건 동네 이마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아침마다 비행기를 타고
걸어다닌다 비행을 해야 했을까
가끔 착륙하여 그는 가방에서 공구를 꺼낸다
책과 노트, 그리고 지난주에 신은 양말
하지만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자전거를 탄 적이 있다
자동차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라고 해서
차고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핸들은 물론 따로 보관해야 한다
그게 러시아식이지
그는 기차를 타기도 한다 그는
걸어다닌다 자가용 비행기도 활주로가 필요한가
페달을 얼마나 밟아야 하는 걸까
그가 비행을 모른다고 하면
오산이다 그는 한걸음에 김포공항으로 간다
자가용 비행기도 관제탑과 교신해야
하는 걸까 그는 걸어다닌다
그는 어제도 걸어다녔다
그는 아침마다 비행기를 타고
어떤 날은 뛰기도 했다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고양이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는 수없이 고양이를 태우기로 한다
이제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다
이륙하지 않을 뿐 그는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 귀가한다 그는
오늘도 화성에 착륙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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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료칸 기행 어디로도
가지 못할 때 나는 료칸에 간다
간다면 가는 것인가 료칸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료칸은
어디에나 있는 게 료칸이지
싶지만 무궁화호를 타고 밀양 지나니
료칸은 온데간데 없다
일본에 간다면서 나는 진주행 기차를 타고
료칸에 간다면서 나는 진영에서 내린다
무궁화호는 료칸으로 가지 않는다
여기가 일본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니 나는 아침에 인천공항으로
가지 않고 서울역으로 갔고
료칸에 간다는 기분으로 대구로 향했지
일본 료칸 기행이란 다
그런 것인가 그러면
어디에나 있다는 건 무엇인가
료칸이 아니라는데 료칸에 가지
못할 것도 없지 간다면 가는
료칸 자다 말고 일어나서
일본 료칸 기행 언젠가
나는 지금 료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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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키르기스스탄에는 눈이 내리고
나는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걸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맞고
나는 키르기스스탄의 위도를 알지 못해
키르기스스탄에 내리는 눈을 가늠할 수 없었다
비슈케크에는 낙엽이 날려도 무방한 것인가
하기야 모스크바도 이맘때면 눈이 내렸지
모스크바에 있을 때는 나도 모스크바인
모스크바의 나무들과 똑같이 눈을 맞았지
비슈케크의 지붕들이 과묵하게 눈을 맞은 것처럼
키르기스스탄에는 키르기스스탄의 눈이 내리겠지
눈은 일찍부터 지상과 내통하기에
어디에건 소리없이 내려앉지
키르기스스탄의 아침이 밝으면
이제 백년보다 긴 하루가 시작되겠지
친기스 아이트마토프의 하루는 백년보다 길었지
나는 낙엽이 떨어진 밤거리를 걸으며
다시금 눈 덮인 키르기스스탄을 떠올린다
비슈케크의 밤거리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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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세상에 구두를
던지라고 했지 구두 말고 불타는
구두를 던지라고 했지
두 짝 다?
불타는 구두는 어디를 집어야 할지
왼쪽과 오른쪽은 상관이 없는 걸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걸까
지루한
면상을 향해 던지는 거라면

구두약도 던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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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이나 베란다에 빨래를 널 때마다
그리고 걷을 때마다
이건 아니었지 싶다
빨래건조대에 집게도 없이 널었다가
거두어들이는 빨래라니

빨래란 모름지기 옥상에다 널어야 하는 것
손빨래 대신 세탁기를 돌린다 해도
빨래는 옥상에서 말려야 하는 것
마치 식물처럼
빨래한테도 햇볕과 바람이 필요하기에

햇볕 받으며 마른 빨래는 촉감이 다르지
바람에 한껏 부풀어올랐던 빨래는
생각의 품도 다를 거야
흰 빨래는 그렇게 다시 희어지고
젖은 삶은 그렇게 생기를 되찾고

언젠가 옥상에 널었던 빨래가
소나기에 흠뻑 젖은 날도 있었지
부리나케 뛰어갔지만
소나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어
거둬다가 세탁기에 도로 넣을 수밖에

하지만 마음은 즐거웠지
다시금 헹궈지면서 빨래도 즐거웠을까
인생은 모험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빨래는 옥상에 널어야 하는 거지
집게로 집어서 빨랫줄에 널어야 하는 거지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빨래건조대에 누워 있는 것 같은 날
나는 옥상이 그리워진다네
이건 아니었지 싶으면서
햇볕과 바람과 소나기가 그리워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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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8-11-06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건조된 옷이 머금은 햇볕과 바람냄새 참 좋지요~^^ 하지만 요즘은 건조기가 다 해준다는..ㅋ

로쟈 2018-11-06 22:02   좋아요 0 | URL
편리해지면서 잃어버리는 것들도 많아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