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어느덧 중순이다. 지난주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칼럼을 읽었다. '올해의 책으로 뽑을 책이 없다'라는 제목이었다. 시작은 이렇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해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올해 혁혁한 성과를 낸 책이나 출판사를 꼽아보는 일이 늘었다. 나 역시 책을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물음에 답할 책을 별로 찾지 못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특별히 고민할 일도 아니지만, 올해의 책이 없다는 출판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판단의 비교기준이 되는 책은 2000년말부터 출간되기 시작해서 작년에 12권으로 완간된 <한국생활사박물관>(사계절) 시리즈라고 한다(아직 소장하고 있진 않지만 명성은 익히 들어본 책이다). 무엇보다도 책의 디자인이 탁월하다고 하는데, 그 시리즈의 아트디렉터인 김영철씨가 최근에 디자인한 책이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휴머니스트)라고. 북디자인을 보고 책을 사는 일이 워낙에 드문지라 조만간 읽어볼 성싶지는 않지만, "그러나 앞으로 우리 출판계는 이런 책들을 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비감한 진단 앞에서는 괜히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출판환경이 그만큼 나빠진 모양인데, 한소장이 거론하고 있는 문제점은 인터넷서점들과 관련되는 것들이다: "인터넷서점들은 책의 입고율을 심하게 낮추고 있다. 게다가 경품,쿠폰, 광고 등 인터넷서점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면 출판사는 책을 팔아봐야 적자다. 실제로는 출판사들이 죽을지 뻔히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낮춰주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책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으며, 출판시장에서 다양성과 창의성과 혁신성은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한 해를 대표하는 출판물을 뽑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출판계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가 출판계의 자구노력에 동참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단지 좋은 책을 많이 산다, 정도가 나의 몫인 듯싶다(책값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더라도). 더불어, 좋은 책에 대한 입소문 정도는 많이 내줄 수 있으리라.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해서 줄기차게 떠벌이는 것도 자칭 그런 소문 진작의 일환이다. 그래도 이 연재와 관련한 땡스투 마일리지가 한달에 8000점까지 되는 걸 보면 헛짓은 아니겠다. 그걸 변명삼아 맘에 드는 책 몇 권에 대해서 잠시 또 입담을 늘어놓도록 한다.

 

 

 

 

맨처음에 꼽을 책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박영률출판사). 이번에 새로 나온 게 아니가 작고한 김붕구 선생의 옛 번역본(성문각, 1976/1984)이 재출간된 것이다. 당시엔 7권짜리 '루소 전집'도 나왔었고 <고백>(혹은 <참회록>)만 하더라도 네댓 종의 번역서들이 즐비했었다. 하지만, 다 과거지시이고, 요즘은 눈을 씻고 봐도 구할 수 없었던 게(특히나 가로본으론) 루소의 자전적 주저인 <고백>이다. 흔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또한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범우사)과 함께 세계 3대 고백록으로 꼽히기도 하는 작품(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런 데 약하기 때문에 언급해 둔다).

다소 분량이 많지만(719쪽), 그게 오히려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진작부터 이 책을 소장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국역본을 구하지 못했었다. 해서 옥스포드대학의 영역 문고본을 갖고 있는 데 만족하고 있었는데(작년에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어본을 들고 내내 망설이다가 중량이 부담스러워 끝내 놓고왔었다), 이번에 구색을 맞추게 되었다. 자전적인 내용인 만큼 객관적인 전기와 같이 읽어보는 것도 유용할 듯싶은데, 게오르크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 1997)를 추천하겠다. 단숨에 읽을 만큼 재미있었던 책. 저자인 홀름스텐은 로로로시리즈의 <볼테르>로 썼는데, 아직 국역서가 나오고 있지 않다(내가 고대하는 책이다).

 

 

 

 

루소와 볼테르, 당대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대비가 아주 흥미로운데('듀오그라피'감이다), 상대적으로 국내에선 볼테르가 홀대받고 있는 듯하다(한국에서 볼테르는 <캉디드> 하나로, 말 그대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 그나마 읽을 만한 책은 내 견문으론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문예출판사)이며, 거기서 저자는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운동'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볼테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강준만 교수의 최근작은 <한국 논쟁 100>(인물과사상사)이다. 그럼, '한국의 루소'는 누구인가? '급진 좌파'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다 맡길 만한 위인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군(자기 자녀 교육에 공들이는 '좌파'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루소의 책들을 나열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또다른 주저들인 <에밀>과 <사회계약론> 정도를 구경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대신에 아직 국내 불문학계에서 그만한 저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는 <보들레에르>(문학과지성사, 1997)의 저자 김붕구 선생의 번역서 몇 권을 음미해보도록 하자.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부터, 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 <인간의 조건>, 그리고 스탕달의 <적과 흑>. 나는 <지상의 양식>과 <적과 흑> 정도는 (현재의 판본들이 아니지만) 김붕구 선생의 번역으로 읽은 듯하다. 젊은 날의 양식들.

 

 

 

 

두번째 책은 이미 각 언론의 북리뷰에서 크게 다루어진 책, 애덤 팬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생각의나무)이다. 제목 그대로 칠레의 대표 시인 네루다(1904-1973)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이고, 작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나왔던 만큼 방대한 분량(730쪽)과 읽을 거리를 자랑한다. 책에 대해서는 이미 일간지들에서 다룬바 있으므로 나는 좀 다른 얘기들을 덧붙이겠다. 사실, '네루다'란 이름이 내게 각인된 것은 정현종 시인 덕분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 1989)를 번역하기도 했지만, 네루다는 정현종 시인의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서슴없이 꼽았던 시인이다(로르카가 차석쯤 될까?). 하니 네루다의 전기는 그의 시집들과 같이 읽어야 제맛이겠다.

한편으로 네루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네마 천국>으로 잘 알려진 배우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 역으로 나왔던 영화 <일 포스티노>(1994)이다. 그 원작소설이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 <인어와 술꾼들의 대화>(솔, 1995)란 시선집은 종로의 코아아트홀에 영화를 보러갔다가 받아온 시집이다. 그밖의 시집으로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문학과지성사, 2000), <100편의 사랑 소네트>(문학동네, 2004)가 더 번역/소개돼 있다. 그 정도면 네루다에 빠져볼 만하겠다.

 

 

 

 

세번째 책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만능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미의 역사>(열린책들)이다. 영역본은 작년 이맘때 나온 걸로 돼 있다. 소개에 따르면, "'미'라는 관념이 고대의 입상에서부터 기계 시대의 미학에 이르는 동안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예술과 미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한 모든 것에 대한 웅대한 역사를 담아냈다. 회화, 조각, 건축을 비롯하여 영화, 사진, 뉴미디어에서 가져온 넉넉하고 화려한 도판과 문학과 철학, 예술가들의 자전적 증언을 통해, 미에 대한 시각과 사고의 변천을 압축해 보여 준다." 원래 중세미학 연구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던 만큼 이 걸출한 기호학자가 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다만 상당한 분량에 상당한 책값이 다소 부담스럽다.

에코의 책은 제목만으론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민음사, 1995)를 바로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크리스테바 책의 영역본은 'Tales of love'(1987)이고 내용도 말 그대로 '사랑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불어의 'histoire'가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지만 이 경우에 '역사'란 역어는 약간 오버다). 한편, 임춘갑 교수의 번역본이 몇 달전 재출간된 키에르케고르의 <사랑의 역사>(다산글방, 2005)에서도 '역사(役事)'는 'work'란 뜻이다. 해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랑의 역사'를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미의 역사'에서 바로 '체위의 역사'로 건너뛰는 것. 이런 게 한국식 속도전인가?     

 

 

 

 

더불어, 에코의 제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강의>(열린책들, 2003) 등을 옮긴 바 있는 김운찬 교수의 <현대 기호학과 문화분석>(열린책들)도 언급해둔다. 말 그대로 기호학 입문서인데, 목차상으론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카바하고 있다(실제적인 분석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김광현 교수의 <기호인가 기만인가>(2000)보다는 업그레이드된 입문서로 보인다. 현재 나와 있는 '너무 많은' 입문서들이 평정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미'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여보는 책은 '영화가 사랑한' 시리즈이다. 얼마전 김석원의 <영화가 사랑한 사진>(아트북스)가 나왔고 그 전에는 정장진의 <영화가 사랑한 미술>이 출간됐었다. 미술값, 사진값 하는 책들로  보이는데, 한창호의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돌베개) 같은 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주변에 리뷰해 줄 이가 없는 게 유감스럽다).

 

 

 

 

네번째 책은 자연과학계에서 에코와 맞장뜰 만한 스타 지식인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조상이야기>(까치글방)이다. 에코가 미의 역사를 거슬러내려왔다면 도킨스는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순례여행의 형식을 그는 영시(英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빌려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초서의 이야기에서는 모든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출현하지만, 이 책에서는 인류가 길을 떠나면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종들과 차례대로 합류한다는 것이다. 이 합류 지점은 도킨스는 '랑데부'라고 하며, 인류와 함류하는 순례자 무리의 가장 최근 공통 조상을 '공조상'이라고 부른다."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들의 조상을 찾기 위한 이 순례에서 고작 40번의 랑데부를 통해서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여정이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책들을 툭툭 써내는 도킨스도 경이롭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도킨스와는 달리 횡으로 펼쳐놓은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다양성>(까치글방, 1995)와 나란히 읽으면 좋겠다.

한편, 도킨스식의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도 그 무신론적 함의를 반박하는 <다윈 안의 신>(지식의숲)도 신간이다. 과학과 종교간의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저자 존 호트 교수에 따르면 다윈주의가 종교에 대한 이해에 나름의 빛을 던져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진화생물학이 원칙적으로 종교와 생명 자체에 더 할 나위 없이 깊은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진화를 유전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유전자들의 맹목적이고 비인격적인 흐름뿐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이기는 하다. 여기까지는 도킨스가 옳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유전자 눈높이에서 생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이는 다섯 살배기 아이가 자기 나름의 차원에서 멜빌의 <백경>을 읽어도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도킨스와 호트의 대결은 <캔터베리 이야기>와 <백경>의 대결이기도 하다. 짐작에 호트의 입장은 '목적론적' 진화론이라는 진화론적 신학을 정립한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인간현상>(한길사, 1997)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도킨스가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이 '목적(end)'의 유무라는 게 알튀세르(<철학에 대하여>)에 의하면 관념론과 유물론을 가르는 기준이다(유물론이란 어떠한 목적론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 혹은 유신론(관념론)과 무신론(유물론)은 어떻게 조화와 상생에 이를 수 있는가? 얼핏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생명현상으로서의 자연 자체를 신으로 간주하는 것 정도이다. 즉, 신을 초월적 존재자나 초월적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한데, 그 경우에도, 즉 (헤겔-지젝을 따라) '0'을 '1'로 카운트하는 경우에도 신학은 여전히 신학인가? 내가 대략 갖게 되는 의문은 그것이다(참고로 국내에는 제대로 번역된 <백경>이 나와 있지 않다. 우리가 주로 대하게 되는 번역본은 '똑똑한 다섯살 배기'라면 읽을 수 있는 아동용 축약본이 대부분이다. 즉, "읽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백경>을 우리는 아직 안 갖고 있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젊은 '사회화학자' 고병권의 <화폐, 마법의 사중주>(그린비)이다. 이미 니체와 마르크스에 관한 저역서로 잘 알려진 역량있는 연구자인 저자는 학부 화학과를 나와서 사회학과에 진학해 니체에 관한 석사논문을 쓰고 이어서 화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남들이 보기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신간은 그의 박사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다듬은 것이다(이젠 특이할 것도 없지만, 한국에서도 외국박사 못지 않은 논문들을 써낸다).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저자의 머리말을 읽어보았는데, 제목의 '마법의 사중주'에 대한 해명은 이렇다. "나는 근대 화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어떻게 산출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근대의 시장, 국가, 사회, 과학에 주목했다. 화폐를 통해 상품을 거래하고 채무를 지불하는 시장, 화폐를 발행하고 그 질서를 관리하는 국가, 화폐적인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는 사회, 부(富)와 관련해서 화폐를 개념화하고 화폐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제공하는 과학. 이 네 요소들을 나는 화폐거래네트워크, 화폐주권, 화폐공동체, 화폐론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사중주이다. 그리고 저자는 "근대화폐를 이 네 요소들로 이루어진 성좌(constellation) 내지 구성체(formation)로 이해한다."

거기까지는 따라가볼 수 있는데,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 "고대의 어느 철학자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모든 별들은 음악적 조화 속에서 운행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화폐의 운행 속에서 어떤 노래를 듣는다. 상품들 사이에서, 권력들 사이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개념들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들." 해서 감탄하는 수밖에. 화폐의 운행 속에서 주로 내가 듣는 소리는 빈 깡통 소리이거나 하늘 같은 마누라의 잔소리뿐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이 신간을 읽고 나면, 또 누가 알겠는가? 나도 화폐의 운행 속에서 쩔렁거리는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이왕이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화폐와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저작으로 문외한인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책은 케인즈의 <화폐론>(비봉출판사, 1992)이나 짐멜의 <돈의 철학>(한길사, 1983) 등이다. <돈의 세계사>(까치, 1998)나 <금과 화폐의 역사>(까치, 2000) 등은 돈 생기면 사서 읽어볼 생각이다. 하긴 갖고 있는 책으로 자크 르 고프의 <돈과 구원>(이학사, 1998)도 아직 안 읽어봤으니 돈으로 구원받기는 그른 셈이 아닌지 걱정된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은 '화폐와 언어'의 문제이다. 이미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민음사, 1997)에서부터도 언어의 체계를 설명할 때 화폐는 주된 참조대상이었다(<일반언어학강의>는 현재 절판되었다. 소쉬르의 책을 서점에서 사 읽을 수 없는 '아주 드문' 나라가 한국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한나래, 1999)가 이쪽으로는 유익한 참고문헌이고, 김상환 교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비, 2002)에도 '화폐, 언어, 무의식'이란 글이 실려 있다.

참고로, 혹은 보너스로 말하자면, 돈에 가장 궁색했으며 작품에서 돈 얘기를 가장 많이 하는 러시아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와 구원'의 문제보다 더 감동적인 테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이다. 그걸 놓친다면, 도스토예프스키 읽기는 '내용없는 심오함'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05. 11. 15.

 

 

 

 

P.S. <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에 이은 수잔 손택의 세번째 에세이집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이 출간됐다. 원제는 '토성의 영향 아래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자 이 걸출한 에세이스트에 대해서 본문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따로 페이퍼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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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5-11-15 12:57   좋아요 0 | URL
우연히 들어왔는데 거의 실시간으로 로쟈님의 리뷰를 볼 수 있겠네요 ^^

생활사시리즈는 2권 정도 봤는데 읽으면서 정말 그 시대에 사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중고등학생들에게 특히 좋을 듯 합니다.

로쟈 2005-11-15 16:25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사주려고 합니다. 설마 절판되지는 않겠죠.^^

이리스 2005-11-17 21:31   좋아요 0 | URL
음, 언제나 드는 생각인데 이런 님의 글을 날로 (-.-) 먹어서 죄송해요. ㅎㅎ
그리고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05-11-17 22:01   좋아요 0 | URL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와 생활사 박물관의 북디자인이 같은 사람이었군요. 저도 북디자인은 별로 관심없지만 예외적으로 이런류의 책은 북디자인이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그런면에서 정말 탁월한 책이예요. 둘다....화보와 사진 삽화만으로도 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싶은데.... 출판사가 어려워 이런 책을 만드는게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건 역시 우울한 소식이네요.

로쟈 2005-11-18 11:14   좋아요 0 | URL
낡은구두님/ 떡국을 드린 것도 아니고 고작 책소개에 고마워하시다니요?^^
바람돌이님/ 저도 활자가 빽빽한 책들을 좋아하는 취향이지만, 어쨌든 좋은 책들, 공들인 책들은 인정받고 대우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리스 2005-11-18 20:08   좋아요 0 | URL
어흠, 겸손의 말씀을... 로쟈님의 책소개는 고작 책소개... 가 아니랍니다. ^^;
모니터로 읽는것보다는 인쇄해서 읽고파서 프린트 해가지구.. 오늘 출근길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당.. 호호..
 

오늘은(11.03) 유치원이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아이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보내야 한다). 점심으로 피자를 시켜먹고 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바래다준 후, 학원 윗층의 PC방에서 메일함과 서재 등을 확인한다. 별거 없는데, 아이가 피아노를 치는 시간 동안 집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도 뭐하고 PC방 요금도 최저시간제인지라 좀더 죽치고 있어야 한다. 그 시간만큼만 최근에 나온 책들 몇 권을 구경해보기로 한다.

 

 

 

 

첫번째 책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김영사). 788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지난주 중앙일보에 최재천 교수와 다이아몬드의 대담이 실려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다이아몬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바 있기 때문에 군소리를 달지 않겠다. 대신에 소개글을 좀 옮겨오면,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번에는 '과거의 위대한 문명사회가 붕괴해서 몰락한 이유가 무엇이고,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즉 이 책은 파괴된 문명의 역사에서 배우는 인류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는 붕괴(Collapse)의 개념을(어감상으론, 최재천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말의 '몰락' 정도가 더 적절한 듯싶다. 물론 붕괴는 너무 '갑작스런 몰락'을 지시하기도 한다. 우리에겐 '성수대교 붕괴'가 있었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인구 규모, 정치.사회.경제 현상의 급격한 감소"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가 택한 문명의 붕괴 지역은 단순히 지배계급이 전복되고 교체된 지역이 아니라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 곳, 또는 서서히 붕괴의 조짐을 보이는 곳이다." 해서, "로마 제국이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몰락보다는 마야 문명, 남태평양의 이스터 섬, 아시아의 앙코르와트 등처럼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완전히 몰락해버린 사회들을 주로 비교,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붕괴의 조짐이 보이는 곳, 즉 르완다, 아이티, 중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상황도 점검하고 있다."

그가  지적하고 있는 붕괴의 이유들: (1)환경 파괴 (2)기후 변화 (3)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4)우방의 협력 감소 (5)사회 문제에 대한 그 구성원의 위기 대처 능력 저하.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국에는 한 사회나 문명이 붕괴하거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데, 그 기준에서 자유로운 문명, 국가, 사회가 현재 몇이나 될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요는, 망할 땐 망하더라도 이유나 알고 망하자는 것이 될까? 

참고로, 그의 다음 책은 '국가'의 성립에 관한 것이라고 하며 5-6년 정도 걸릴 예정이라고. 다이아몬드의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다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방대한 시야와 스케일이다(그는 역사를 대륙 단위로 훑어내린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무기는 생물지리학. 역사학 방법론으로서 인구학과 함께 더 주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비하면 국내 역사학자들의 관심사는 다소 협소해 보인다. 거의 유일한 예외인 듯싶은 이는 동서문명 교류사의 권위자인 정수일 선생이다. 그의 <한국 속의 세계>(창비사)가 2권 짜리로 이번에 출간됐다. 한겨레에 연재됐던 걸 몇 번 읽은 적이 있는데, 언제 그의 주저들까지 다 모아놓고 읽어보는 호사를 누렸으면 싶다. 아이에게 (피아노 대신) 골프를 가르쳐야 할까?

 

 

 

 

두번째 책은 남미의 언론인 에드아르도 갈레아노의 3부작 <불의 기억>(따님). 중남미사로 분류되는 역사책인데, 저자가 "스페인에서 두번째 망명생활을 하던 80년대 전반에 라틴아메리카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아우른 3부작이다. <불의 기억>에 담긴 역사는 박물관에 갇히고, 헌화와 놓여진 동상이나 대리석 기념물 아래 매장된 역사가 아니다. 연표 속의 공식 역사에서 지워진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낸 살이 있는 역사이다."라고 소개돼 있다. 여기서 '하위주체(subaltern)'란 말은 탈식민주의자들의 용어이다. 김택현 교수의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박종철출판사, 2003)이 관련서. 우리로 치면 구술 민중사가 하위주체를 역사 속으로 적극 수용하는 방식이 될까? '민중의 함성'?

내가 갖고 있는 라틴아메리가 관련 서적은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까치글방, 2001), <영화 속의 문학 읽기>(책이있는마을, 2001) 등이고 작가 카를로스 푸엔떼스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까치글방, 1997) 정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이번에 '풍족한' 두께의 책이 나와서 반갑다. 이 또한 언제 읽을 수 있을는지는 전혀 기약할 수 없지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갈레아노의 책은 그간에 많이 번역돼 있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가 중남미를 이해하는 한 '통로'이다. 갈레아노의 통역으로 우리는 중남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그 중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책은 교육서인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르네상스, 2004)인 듯하다. 소개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열 번째 작품. 재치있고 예리한 언어로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를 재해석하며 우리사 사는 세상의 모순들을 고발한다." 물론 그런 모순으로 치자면 우리도 남못지 않다. 한데, 왜 우리 책들은 수출되지 않는 걸까? 

 

 

 

 

세번째 책은 지역을 러시아로 옮겨보자. 작년에 영화화되어 초대형 히트를 기록한 러시아 영화 <나이트 워치>(영역본 제목이며 '야간 경비대' 정도의 뜻)의 원작 소설 <나이트 워치>(황금가지)가 영화 개봉에 즈음하여 출간됐다. 영화는 올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는데, 기대만큼(!) 국내에서 별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작가 루키야넨코는 이 작품이 300만부 이상 팔리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고. 하긴 나도 작년 모스크바 체류시 이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다빈치 코드>만큼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꿋꿋하게 사지 않았고 대신에 영화를 비디오CD로 사두었다(아직도 보지 않았다!).

물론 원작소설 자체가 대중성을 갖고 있기도 하겠지만, 작품이 유명해진 건 영화가 큰몫을 했다.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방송 (제1채널)에서 3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만 17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반지의 제왕> 3편을 앞질렀다), 각국에 수출되었다. 헐리우드의 '20세기 폭스사'는 이후에 제작될 2, 3편의 세계배급권까지 선매한 상태이니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이들의 반응을 그닥 신통찮은데, 딱 우리의 <쉬리>를 생각하면 되겠다. 즉, 영화적 의미보다는 영화시장의 크기를 바꾸어놓은 '초대형' 블록버스터로서 사회학적 의미를 더 많이 갖는 작품. 이후에 러시아영화는 90년대 이후의 부진을 씻고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중흥기를 맞고 있다(올가을에 개봉된 또다른 블록버스터 <9중대>는 <나이트 워치> 2배 가량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고).

소설의 무대는 "현대 러시아의 대도시 모스크바"로서, "크고 오래 된 도시의 일각에는 현대적인 고층 건물과 위락 시설들이 늘 새롭게 생겨나고 있지만 우중충한 옛 건축물들과 근대화의 흔적들 또한 곳곳에 남아 있"는 모습. "음습한 골목길, 지저분한 술집, 1층이 주차장으로 되어 있는 초라한 서민 아파트, 사람들에 부대끼는 지하철 등이 소설 속 장면들의 주 배경"이며, 여기에 빛의 마법사와 어둠의 마법사들의 또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어림짐작할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의 구도. 판타지 독자라면 '러시아 판타지'란 별미를 감상해보셔도 좋을 듯하다.

물론 내가 조만간 이 책을 집어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 경우에라도 동기는 '판타지'가 아니라 '러시아'이다. 왜 이런 작품이 읽히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비슷한 동기에서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을 두어 권 더 소개한다. 하나는 KBS의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조재익 기자의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 우리말로 씌어진 러시아 입문서로서 가장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강점은 '지금의 러시아 현실'에 대해서 많은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 '러시아 여성'에만 관심있는 독자들도 일독해 볼 만하다.(나는 이 책을 모스크바에서 연초에 떡국을 먹으러 간 선배기자의 집에서 처음 보았다. 감동적인 떡국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외교관 출신 예일 리치먼드가 쓴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러시아인>(일조각, 2004). 원제는 'From Nyet to Da : Understanding the Russians'(2003 개정판)인데, 제목에서 'Nyet'는 'No', 'Da'는 'Yes'란 뜻이다. 이건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러시아에 대해서 몰랐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러시아에 대해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개가 불친절한 러시아인들 자체가 서로간의 교제를 통해서 부정적 태도(Nyet)에서 긍정적 태도(Da)로 변모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초면에 'Yes'라고 말하는 친절한 러시아인은 짐작에 창녀들 빼고는 없다. 이 '서비스 문화'의 부재에 대해서는 모스크바통신에서 다룬 바 있다). 여하튼 비교적 얇은 분량의 책이지만 러시아 입문서로선 (기대에 안 맞게) 최적이다. 값이 좀 비싼 게 흠.  

 


 

  

 

네번째 책은, 이제 이웃나라 일본으로 넘어와서 '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이란 부제의 책 <아니메>(루비박스). 원제는 'Anime from Akira to Princess Mononoke'(2001), 그러니까 '아키라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의 일본 아니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책. 저자인 수잔 네피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적 권위자라고 하는데, 한 일본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해 이처럼 예리한 해석이 담긴 책이 태평양 저편에서 씌여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지은이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책에 대해선 오늘자(11.04) 한겨레의 리뷰가 자세므로 참조하시길. 더불어 문득 갖게 되는 의문. 우리는 한국문화에 관한 그런 책을 갖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일본 아니메를 즐겨보진 않지만 가끔은 보며, 러시아에 소개된 아니메를 두어 편 사서 보기도 했다. 때문에 <아니메> 같은 책도 나중에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생각은 있다. 비교적 최근에 국내에서 나온 일본만화 관련서로는 정현숙의 <일본만화의 사회학>(문학과지성사, 2004), 그리고 작가론인 <미야자키 하야오>(살림, 2005)가 있다. 그 이상의 참고문헌들은 그 책들을 참고하면 되겠지.

 

 

 

 

아는 체할 형편은 아니지만, 일본 아니메에서 자주 다뤄지는 테마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일본인들은 유난히 자주 던지는 모양인데, 그런 주제와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으로 <시냅스와 자아>(소소)가 눈길을 끈다. 부제는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이 어떻게 자아를 결정하는가'이고 당연히 (만화가 아니라) '과학책'이다. "뉴런들 사이의 공간인 시냅스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상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통로다. 즉, 시냅스는 우리 각자가 독립적이고 복합적인 개체로 기능하도록 매순간 도와준다. 이 책에서 저명한 뇌과학자인 조지프 르두는 뇌가, 특히 시냅스가 어떻게 퍼스낼러티를 만들고 유지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소개는 간단하지만 분량은 630쪽이다. 이 신간이 막바로 떠올려주는 책은 호프스태터와 다니얼 데넷이 편집한 <이런, 이게 바로 나야!>(사이언스북스, 2001). 원제는 'The mind's I : fantasies and reflections on self and soul'(1982)이고 보르헤스의 '보르헤스와 나'부터 시작해서 유익한 읽을 거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소 '경망스런' 책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이 읽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시냅스와 자아>는 소소출판사에서 내는 'new humanist classic' 시리즈의 제5권으로 돼 있는데, 같은 시리즈에서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제프리 밀러의 <메이팅 마인드>(소소, 2004)이다. 부제는 '섹스는 어떻게 인간 본성을 만들었는가?' 이고, 원제는 'Mating Mind: How Sexsual Choice Shape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2000). 이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 그닥 주목받지 못했다면 그건 '메이팅 마인드'라는 어정쩡한 제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제를 내세우는 것이 선정적이었다면, '성과 인간의 진화' 같은 제목을 어땠을까? 아니면, '짝짓기 본능'은? 저자는 "아무리 생존능력이 뛰어난 호미니드라 할지라도 섹스 파트너를 유혹하여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없었다"라는 말로 진화에서 성선택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건 진화론의 ABC이다. 더불어 진화적으로 성공한 개체의 기준은 자녀의 수가 아니라 손자의 수이어야 한다(손자의 수가 자녀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므로). 이런 기본적인 감각/본능이 부실하거나 고장난 이들은 필독해야 할 책.

한데, 성선택설의 원조라고 해야 할 다윈의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는 왜 아직 소개되지 않는 것일까? 그 책의 테마를 뒤집은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The Ascent of Man)>(바다출판사, 2004)까지 작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말이다. 게으름의 소치이되, 다윈에게 불공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섯번째는 프랑스로 건너가 보자. 20세기초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아카넷)이 재번역돼 나왔다. 연초에 <창조적 진화>가 재번역된 데 이어서 이번에 또 한권의 주저가 번역됨으로써 베르그송의 새단장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지난 봄에는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서광사, 1998)을 번역했던 송영진 교수의 연구서 <직관과 사유>(서광사)가 출간되기도 했었다. 해서, 베르그송에 관해서라면 면피의 여지가 없다. 꼬박 읽는 수밖에. 개인적으론 들뢰즈의 영화론 때문에, 그리고 세기초 러시아 모더니즘 문학과의 연관성 때문에 읽어야 하고 읽고 있다.   

내게 베르그송이란 이름을 의미있는 이름으로 처음 알게 해준 이는 작년 가을에 세상을 뜬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다(고인의 명복을 빌어줍시다). 그녀가 18세인 1954년에 발표한 데뷔작 <슬픔이여 안녕>에서 여주인공을 대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준비하기 위해 플로베르의 <감정교육>과 베르그송 같은 '고리타분한' 책들을 읽느라 고생한다. 그 책을 나는 고등학교때 삼중당문고(1984)로 읽었었는데, 책에 실린 대담에서 작가가 카뮈보다 사르트르를 좋아한다고 하여 내가 읽게 된 책이(꼭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겠지만) 사르트르의 단편집 <벽> 등이다(역시 삼중당문고). 그 <벽>(문학과지성사, 2005)이 이번에 김희영 교수의 번역으로 다시 출간됐다. 알다시피 올해는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별다른 소식이 없다 싶었더니 좀 뒤늦게 구색을 맞추는 듯하다. 나는 해가 가기 전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1998)이나 예의상 다시 읽어둘 참이다. 예전에 내가 읽은 건 김붕구 선생 번역(문예출판사)이었는데, 정명환 선생의 번역은 '1947년의 작가적 상황'이란 장문의 글까지 마저 완역한 책이다. 이럴 땐 러시아어본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사들고 오지 않은 게 후회되는군...

04. 11. 03-04.

P.S.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개진하고 있는 사르트르의 문학론은 시와 산문을 구별하고 시를 '앙가주망'(참여)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에 대한 반론으로 유력한 사례가 시인 김수영이다. 김수영의 시를 꼼꼼하게 읽고 있는 책도 출간된바 오봉옥 시인의 <김수영을 읽는다>(랜덤하우스중앙)이다. 저자는 재작년에 <서정주 다시 읽기>(박이정, 2003)을 낸 적이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시강의를 묶은 이 책은 그 연장선이기도 하다. 특징은 시 한편 한편에 대한 꼼꼼한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며, 나는 무엇보다도 그런 식의 '읽기'를 '비평'보다 선호한다(요즘 '숲'을 보는 비평가들은 많으나 '나무'를 찬찬히 뜯어보는 독자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김수영에 관한 책들은 언제부턴가 해마다 여러 권씩 쏟아지고 있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동호 교수 등이 쓴 <다시 읽는 김수영 시>(작가, 2005), 김명인/임홍배 교수가 엮은 <살아있는 김수영>(창비사, 2005) 등이 출간됐었다. 이 정도면 김수영은 '풀'이나 '나무'라기보다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자세히 읽기' 시리즈로는 2003년에 열림원에서 <서정주의 화사집을 읽는다>를 비롯해 댓 권의 책이 나온바 있는데, '실패한' 기획인지 후속작이 없다. 독자로서 유감스럽다.

P.S.2. 또다른 유감은 독일 철학자 가다머에 관한 것이다. 며칠 전 서점에서 그의 강연 <고통>(철학과현실사)이 출간된 걸 봤는데, 103세 타계한 금세기 '최장수' 철학자가 평생 척추질환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철학자 가다머의 크기를 가늠하기에는 역부족인 소품. 이상하게도 이 해석학의 거두는 주저인 <진리와 방법>이 완간되는 대신에 좀 한가한 소품들만이 번역/출간되고 있다.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동문선, 2004)나 <현대의학을 말하다>(몸과마음, 2002) 같은 책들이 그렇다. 국내엔 한국해석학회도 있고, 그 학회지에 실리는 논문의 상당수는 가마머의 해석(철)학에 관한 것인데도 사정이 이렇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단합해서 <진리와 방법> 정도는 번역해주는 것이 온당하며 가다머에게도 공정한 일이지 않을까?

 

 

 

 

<진리와 방법>은 저자가 나이 60세에 출간한 책이지만 그의 최초의 주저이다(뛰어난 철학교수였지만 그는 글쓰는 걸 힘들어 했다고). 하지만 이후에 40여년 이상을 더 장수했으니 '청년 가다머'의 저작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니겠다. 이미 영어로는 두 차례 번역된바 있으며 독일 철학이 강의되고 있는 나라에는 대부분 번역돼 있을 법하다. 물론 이런 책이 번역돼 있지 않다고 해서 한 문명이 붕괴될 리는 없겠지만 '문명의 수치' 정도는 된다. 참고로, 부분역인 <진리와 방법1>(문학동네, 2000)은 5년전에 출간됐다. 물론 10년째 소식이 없는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의암, 1995)에 비하면 사정이 나쁜 건 아니지만, 이런 책들이 나오길 기다리려면 과연 가다머만큼의 장수가 필요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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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03 22:56   좋아요 0 | URL
"PC방 요금도 최저시간제인지라 좀더 죽치고 있어야 한다"
-.- =b 진정한 폐인이십니다. ㅋㅋㅋ

parioli 2005-11-03 23:48   좋아요 0 | URL
종종 들러서 글 읽고 갑니다. 좀 전엔 스크랩도 하나 했습니다. 격려(?)의 글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요.

로쟈 2005-11-04 19:56   좋아요 0 | URL
제가 '자주' 글을 올리는 건 아니므로 '가끔' 들르시면 됩니다. '격려금'도 환영합니다.^^
 

창밖은 단풍이 절정이고 오늘은 10월의 마지막날이다. 이런 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세월은 제 갈길을 가고 남아있는 자들만 뒤늦게 정신 (못)차린다(그런 세월 죽이는 일로 세월을 다 보내다니!). 그나마 가을이어서 다행이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좀 붉어져도 단풍에 묻혀갈 수 있으니. 점심 먹고 잠시 걸었지만, 천성이 다소간 게으른 탓에 산책은 눈으로만 즐기기로 한다. 그럴 때 도서 산책은 꽤나 요긴한 핑계가 된다. 교양있는 척하며, 게으름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덤으로 천재들과도 아는 척하고...

 

 

 

 

이번에 맨처음 꼽을 책은 단연 도날드 스포토(D. Spoto; 1941- )의 <히치콕>이다. 나대로 히치콕의 대해서는 작년에 지젝 편,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 2001)에 실린 평문들을 자세히 읽으면서도 언급한 적이 있고, 그때 스포토의 저명한 전기 <천재의 이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생애>가 번역되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더랬다. 이번에 <히치콕>이란 제하에 신간이 나왔길래 나는 그 전기인가 했는데, 책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예술세계: 그의 영화인생 50년>이란 원제의 또다른 책이다. 국역본의 제목은 <히치콕: 히치콕의 영화 50년>(도서출판 동인).

이번주 영화주간지 <필름 2.0>에도 소개가 됐는데, 잠시 옮겨보면 이렇다. "드디어 나왔다. <히치콕>의 저자 도날드 스포토는 슬라보예 지젝과 로빈 우드, 그리고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와 클로드 샤브롤에 뒤지지 않는 히치콕 마니아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예술'이라는 원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처음 1976년에 나왔고(*아마존에서 현재 판매중인 건 1991년판이다), 이를 받아본 히치콕은 도날드 스포토를 LA로 초청해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히치콕의 초기 무성영화로부터 <로프> <이창> <토파즈>까지 45편의 영화들을 연대기적 접근방식으로 세밀히 분석하고 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스포토의 신간은 그의 전기와 함께 히치콕 기본서에 속한다. <필름 2.0>의 기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1994)가 그런 기본서이며, 역시나 '까이예' 비평가 출신의 샤브롤과 에릭 로메르가 편집한 책으로 작년에 국역본이 나온 <알프레드 히치콕>(현대미학사, 2004)도 히치콕의 초기작들을 다루고 있는 기본서이다. 거기에 새로운 기본서로 추가된 것이 지젝의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이고. 해서, 반갑고 고무적이다(기본서들은 우리 교양의 기초를 튼실하게 해준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히치콕의 영화 대부분은 국내에 비디오나 DVD 타이틀로 출시돼 있다(주로 '유니버설'이나 '씨네코리아'에서 나왔고, 나오고 있다). 하니 여유만만한 분들은 45편의 영화 리스트와 스포토의 해설을 옆에 놓고 히치콕의 영화들을 연대기순으로 죽 관람하시면 되겠다. 

로로로 시리즈로 나온 또다른 전기 <앨프레드 히치콕>(한길사, 1997)은 너무 간략한 느낌이 있지만 일독할 만하다(이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저작 목록을 보건대 스포토는 일급의 전기작가이며,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즈와 배우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로렌스 올리비에, 잉그리드 버그만 등에 관한 전기도 갖고 있다. 그 중에서 국내엔 <제임스 딘>(한길아트, 1999)이 번역돼 있다. 예수와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전기도 쓴 걸로 봐서 거의 종횡무진이라고 해야 할 듯. 국내에 잘 알려진 전기작가로서는 20세기 전반기의 슈테판 츠바이크와 자웅을 겨룰 만하다. 물론 그의 책들이 더 많이 소개된다면...  

 

 

 

 

두번째 책은 히치콕(1899-1980)과 같은 생년을 가진 미국 작가 헤밍웨이(1899-1961)가 "모든 현대 미국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헉핀>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예찬한 가장 '미국적인' 작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의 '철학이야기' <정말 인간은 개미보다 못할까>(북인)이다. 원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What is man?)'. 지난 여름에 <지구로부터의 편지>(베가북스)라는 풍자적인 이야기가 번역/소개된바 있지만, 근년/최근에 와서 트웨인의 책들이 신간으로 자주 눈에 띈다. 사실 이번 신간 때문에 새삼 더 주목하게 된 책은 지난 2월에 나온 그의 자서전, <마크 트웨인 자서전>(고즈윈, 512쪽)이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와 내가 이 연재를 잠시 쉬던 때에 나온 책이서 거명하지 않고 지나갔던 책인데, 이 기회에 눈도장을 찍어둔다.

그의 자서전은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대작가 마크 트웨인이기 전에 인간 마크 트웨인으로서 철저한 자기성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 이웃으로서의 모습과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성격, 삶을 꿰뚫는 예리한 풍자 밑에 흐르는 슬픔과 페이소스가 담겨 있는 자서전 문학의 정수"라고 평하고 있는 책으로 트웨인의 독자나 예비독자라면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이다.

 

 

 

 

미국 문학의 '간판' 작가답게 트웨인은 국내에도 헤밍웨이만큼 잘 알려져 있지만 주로 '아동물'을 통해서이다. <톰 소여의 모험>이 웬만한 아동/청소년 문고에는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고, 나도 초등학교 때 소년소년 세계명작 시리즈로 트웨인을 처음 만났다. 유감스러운 건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게 트웨인과의 인연의 전부라는 점. 나 또한 사실 대학에 와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미국문학사에서 그토록 '중요한' 작품이란 걸 알게 되고서 다소 놀랐을 정도였다(특히, 현대 미국문학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의 견해 참조). 그간에 머리가 큰 만큼 <허클베리 핀의 모험>(민음사, 1998/2005)도 이젠 '고전'으로 다시 읽어볼 만하다.

 

 

 

 

레슬리 피들러의 제자이기도 한 김성곤 교수의 <미국문학과 작가들의 초상>(서울대출판부, 1993)은 내가 '미국문학 사전'으로 자주 애용하는 책인데, 거기엔 영국시인 오든(W. H. Auden)의 흥미로운 평문 '허크와 올리버'가 실려있다(전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든은 두 작품, 즉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현대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명하면서 두 주인공 허크와 올리버를 비교한다. 그는 자연에 대한 태도, 현실에 대한 태도, 그리고 시간과 돈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하여 이들을 대조하는데, 가령 유럽(영국)인에게서 자연이 어머니의 품 같다면, 미국에서의 자연은 야성적이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인들이 읽기에 <헉핀>은 매우 슬픈 소설이라고 말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끝장면에서 올리버가 사랑이 있는 가정에 입양되면서 그의 꿈을 실현하는데 반해서 유사한 모험들을 겪게 되지만 허크는 그의 친구 짐과 결국엔 헤어질 것이며 다시는 못나게 되리라는 걸 독자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또, 사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요소를 보지 못하는 반면에(사건들은 '반복'으로 의미화된다) 미국인들은 반복의 요소를 보지 못한다(사건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지각된다. 이런 경우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돈의 경우도 대비되는데, "올리버의 경우, 그것은 법적 상속권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다. 허크의 경우에는 그것이 순전히 행운일 뿐이다." 오든은 거기서 조금 더 나간다: "미국에서 돈은, 자연이라는 용(龍)과의 전투를 통해 빼내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곧 성인의 표증을 상징한다. 미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다... 유럽의 단점은 탐욕과 인색이며, 미국의 단점은 이 양적인 돈이 성인의 표증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어디에서 중단해야 될는지 알기 어려운 데서 기인하는 근심이다... 사실 미국인들은 물질에 대해서 별로 연연해하지 않는다. 충격적인 것은 미국의 소비일 뿐이다. 마치 유럽의 미국인들에게 충격적인 것이 유럽의 탐욕이듯이." 음미해볼 만한 견해이다.

 

 

 

 

세번째 책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초원>(범우사). 이번에 나온 5권짜리 체호프 선집 중 제3권인데, 특별히 이 책을 꼽은 건 중편 <초원>이 최초로 번역됐기 때문이다(책에는 '구세프' 등 4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작년에 서거 1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들이 치러졌었다는 얘기는 '모스크바 통신'에서 전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오종우 교수의 체호프 선집 2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벚꽃동산>이 열린책들에서 나왔었는데, 탄생 145주년을 맞은 올해 좀더 그럴 듯한 5권짜리 선집이 나온 것. 그간에 많이 번역된 드라마의 경우에는 이채로울 것이 없지만(희곡 <바냐 아저씨>가 <바냐 외삼촌>으로 번역된 게 좀 튄달까), 초기 단편들이 대거 포함된 1-3권은 주목할 만하다.

1888년에 발표된 <초원>은 진지한 주제를 담은 분량 있는 작품을 써보라는 주위의 충고에 답하기 위해 씌어진 작품인데(방점은 '분량'에 있다) 주로 콩트나 단편들 위주로 써온 체호프에게 '중편' <초원>은 모험적인/실험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이었다. 한 소년의 초원 여행을 기본 플롯으로 갖고 있는 서정적인 작품인데, 초기 체호프의 전매특허인 '코믹'은 극소화되어 있으며 내게는 작품 자체의 의미보다는 작가가 왜 '장편'으로는 나아가지 못했을까를 궁리해보게 만드는 작품. 역자는 이 작품으로 학위논문까지 쓴바 있기에 적역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초원>이란 작품이 단연 상기시켜주는 이름은 러시아의 저명한 체호프 학자 알렉산드르 추다코프(추다꼬프)이다. 국내 대학에서도 강의를 한바 있고(나도 강연을 한번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 제자들도 길러낸 분인데, 그의 출세작 <체호프의 시학>에 이 <초원>에 대한 자세한 비평적 분석이 실려 있기 때문(<체호프의 시학>은 체호프에 관한 단일 연구서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그의 또다른 주저가 <체호프의 세계>이고, 이것은 <체호프와 그의 시대>(소명출판, 2004)로 번역돼 있다. 물론 전문서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과는 다소 무관한 책이지만. ('모스크바통신'에서도 거명한 바 있는) 추다코프 교수를 다시금 언급하는 것은 정정하던 그가 얼마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작년에 푸슈킨과 체호프에 관한 그의 강의를 청강해두지 못한 게 아쉽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국내에선 체호프 전공자 오종우 교수의 연구서 <체호프의 코미디와 진실>(성균관대출판부, 2005)이 이번에 출간됐다는 것도 기록해둔다. 역시나 전문서이지만 애호가들도 읽어볼 만하겠다.  

  

 

 

 

네번째 책은 종교학자 엘리아데(1907-1986)의 <세계종교사상사>(이학사)이다. 전3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는데, 우리 출판의 '역량'을 과시하는 듯해서 나름으로 부듯하다. '엘리아데'란 이름은 내게 좀 각별한데, 대학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들은 낯선 이름이 바로 '엘리아데'였기 때문이다(나는 첫학기에 조기수강신청했던 '철학개론'을 물리고 대신에 '종교학 개론'을 들었다). 해서 엘리아데는 내게 '대학'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모든 것과 결부돼 있다. 지성, 학문, 자유, 학자, 열정, 강의 등과 말이다. 하여간에 이번에 나온 방대한 저작은 <종교형태론>(한길사, 1996)과 함께 서가에 꽂아두고 쉬어쉬엄 읽어보면 좋겠다. 사실 모스크바 체류시 막판에 가장 망설였던 게 고서점에서 본 엘리아데 러시아어본들을 사느냐, 마느냐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은 인터넷에 전문이 올라와 있었다. 덕분에 이 방대한 책의 러시아어본을 나는 손에 물 안 묻히고 소장하고 있다. 

   

 

 

 

그 자체가 종교학 입문의 성격도 갖는 엘리아데 입문은 엘리아데의 제자이기도 했던 정진홍 교수의 <엘리아데: 종교와 신화>(살림, 2003)이 단연 독보적이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다른 적임자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엘리아데 자신의 저작으론 <종교의 의미: 물음과 답변>(서광사, 1990)과 함께 <성과 속>(한길사, 1998)이 기본서. 독문학 연구자인 안진태 교수의 <엘리아데.신화.종교>(고려대출판부, 2005)도 다소 전문적이지만 지난 5월에 나온 관련서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실재의 윤리>의 저자 알렌카 주판치치의 니체론 <정오의 그림자>(도서출판b)이다. 원제는 '가장 짧은 그림자(The Shortest Shadow : Nietzsche's Philosophy of the Two)'. 저자 주판치치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 여성 '사무라이'로서 슬라보예 지젝이 가장 총애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칸트와 라캉'을 다룬 전작에 이어서 잔뜩 기대를 모으는 책인데(앞으로 '주판치치의 모든 책'이 될 것이다) 혹자는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에 비견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인연이 닿았다면 번역을 맡을 수도 있었던 책이라 이번 출간이 반갑고 기대된다(나 같이 게으른 역자를 안 만난 게 여러 모로 다행스럽다). 또 마침 책세상판 니체 전집도 완간된 김에 이번 겨울은 니체에 폭 빠져보는 것도 일리 있겠다. 초심자라면, 이번에 나온 로런스 게인의 '만화책' 입문서 <니체>(김영사) 정도는 떼주시길(나는 작년에 러시아어본으로 읽었다).

니체에 관한 전기로는 자프란스키의 <니체>(문예출판사, 2003)와 홀링데일의 <니체, 그의 삶과 철학>(이제이북스, 2004)가 기본서이다. 전자는 독어권을 대표하며(철학자 전기에 있어서 자프란스키는 최고의 실력자이다) 후자는 카우프만, 아서 단토 등의 책과 함께 영어권(미국)의 대표 저작. 참고로 홀링데일은 카우프만과 함께 니체 영역(英譯)을 양분했었다. 그리고 국내의 대표 저작은 '한국의 책 100권'에 선정된바 있는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민음사, 2000). 이젠 외국어로도 읽을 수 있다!(독역되었나?)...

기타 여러 시인들의 시전집들과 토마스 쿤 평전, 몇 권의 정치학 책과 데이비드 흄에 관한 책 등이 보관함에 들어 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어느새 캄캄하다...

05. 10. 31.

P.S.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제발 이젠, 그만 만나자구요?!

P.S.2. 이 페이퍼를 계기로 즐찾 400이 되었다. 평균 하루에 한 명꼴로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었다. 찾아주시는 분들의 상당수는 출판관계자들인 것으로 안다(일부는 나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물론 엉터리나 찍어대는 분들은 나와는 아직도 계산할 게 많이 남아있다. 서로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겠으니, 모쪼록 독감들 주의하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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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10-31 15:25   좋아요 0 | URL
한 발 빠르셨습니다. 흐흐...

로쟈 2005-10-31 15:32   좋아요 0 | URL
이런 거 먼저 찜하면 혹 상품이라도?..

이네파벨 2005-10-31 16: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천재의 이면...>의 원제가 혹시 The Dark Side of Genius: The Life of Alfred Hitchcock 아닌가요? 이 원서 저에게 있어요! 10년쯤 전 미국에 있을때 벼룩시장에서 $1.5 주고 산 페이퍼북...
몇페이지 읽다 말고 처박아두었는데 시간나는대로 읽어보아야겠네요.

이 책을 쓴 스포토가 뛰어난 전기작가였군요...
전 개인적으로 평전이라는 장르를 무척 좋아하는데....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주 유명한 인물이 아니고서는...

전 히치콕은 개인적으로 잘 모르고...("새"와 "vertigo"를 보았을 뿐예요. 둘 다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파고들어온 느낌은 아니라서...)
오히려 "테네시 윌리엄스"의 전기를 읽어보고 싶어요.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들은....저에게 정말이지 intimate한 감동을 주기 때문에....
실제로 윌리엄스의 삶도 그의 작품들 못지않게 어둡고 불행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

고통의 진흙탕에 속에서 딍구는 돼지처럼 온 몸에 고통을 처덕처덕 발라가며....
고통의 실을 잣는 거미처럼 제 몸 가장 깊은 곳에서 누구나 외면하고 싶고 누구도 감히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가장 어둡고 아픈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예술가들....
삶과 작품을 떼어놓을 수 없는 예술가들...

그런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고 싶어요.
(을유문화사에서 기획중이라는 빌리 할러데이의 전기도 기대 중...)

근데 우리나라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전기를 번역해 내놓으려는 용감한(or 돈벌생각 없는) 출판사는 아마 없겠죠?

바람구두 2005-10-31 16:19   좋아요 0 | URL
아니, 그 대신에 땡스 투 했답니다.

로쟈 2005-10-31 17:30   좋아요 0 | URL
이너파벨님/ 그 책 맞습니다(잘 사두신 겁니다). 부피가 좀 되죠. 저는 같은 1899년생인 작가 나보코프와 히치콕을 비교해보려는 생각에서 관련 대목을 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두 사람이 같이 작업을 할 뻔 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바람구두님/ 땡큐...

니브리티 2005-11-01 09:14   좋아요 0 | URL
와~ 주판치치의 책이 나왔군요! 마침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을 읽고 있던 참인데...이중긍정 얘기는 도통 머리가 아파서...이해할 듯 하면서도 논점을 놓치거나...그동안의 내 글쓰기가 '원한의 글쓰기'는 아니었나 섬뜩했다는...ㅜ.ㅜ 정말 잘됐군요. 당장 주문해야지...ㅋㅋ

비로그인 2005-11-01 17:08   좋아요 0 | URL
김재인 씨가 이경신의 "니체의 철학" 번역을 "쓰레기"라고 평하셨던데 로쟈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로쟈 2005-11-01 17:13   좋아요 0 | URL
제가 <니체와 철학>을 아직 통독하지 않았는데, 진태원씨 같은 경우는 읽을 만한 번역이라고 했었죠. 제 생각엔 <니체와 철학>보다도 <들뢰즈 커넥션>에 더 오역이 많을 거 같은데...
 

이 연재의 경우 주로 알라딘의 신간 소개를 참고하기 때문에 간혹 빠트리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들을 일간지 북리뷰에서 보게 되면 반가우면서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부득불 새로운 소개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최근에 그런 책들이 몇 권 되기 때문이다. 피터 게이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책의 부제는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의 삶을 통해 본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로 돼 있는데, 원제가 '슈니츨러의 세기(Schntzler's Century)(2002)이다.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로서 현재는 예일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는 분이라는 데, 우리에겐 <계몽주의의 기원>(원제는 '계몽주의: 한 가지 해석 The Enlightenment: An Interpretation')라는 방대한 책으로 소개된 양반이다. 계몽주의에 관한 저서도 갖고 있지만 서지를 보면 바이마르 시대가 '주전공'인 듯하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도 800쪽이 넘는 전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도서관에서 보던 책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관해서라면 미국에서도 최고 권위자일 듯하다. 그러니 '문학의 프로이트' 슈니츨러에 대해 이 만한 규모(430쪽 가량)의 책을 쓰는 건 뭐 식은 죽먹기일 수도.

소개에 따르면 책은 "1815년부터 1914년에 이르는 19세기 중간계급의 '전기'다. 지은이가 길잡이로 삼은 인물은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극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아르투어 슈니츨러. 슈니츨러는 14세부터 5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지은이는 슈니츨러의 일기를 펼치면서 슈니츨러 자신과 그가 그려낸 인간 군상, 곧 부르주아 계급의 전기를 쓴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을 역사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 "이 책에서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대표적인 요소들이 - 섹슈얼리티, 불안 - 서구 부르주아의 내면을 이해하는 열쇠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역사학의 프로이트'인 피터 게이는 '문학의 프로이트'인 슈니츨러의 눈으로 19세기를 조명함으로써 정신분석학과 역사학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원로 학자의 성 '게이(Gay)'는 이래 저래 검색하기 불편한(!) 이름인데, 그가 프로이트에 빠져들게 된 게 비단 성(性) 때문이 아니더라도 혹 그런 성(姓)과 관련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간에 개인적으론 관심을 갖게 되는 저자이며 더 많은 그의 책들이 번역되기를 기대한다(주로 두꺼운 책들을 쓴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한편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전기를 감당하게 된 슈니츨러는 우리에게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 원작자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이다. 프로이트로부터는 '심층 심리의 탐구자'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는데, 52년 동안 일기를 쓸 정도면 '숨기고 싶은' 그러나 '기록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기도 많았을 것이다(물론 대부분은 이상 성심리나 콤플렉스에 관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큐브릭이 현대적으로 각색한 <꿈의 노벨레>부터도 성에 관한 오해와 판타지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슈니츨러의 다른 책들은 읽어본 바 없는데, <특별한 사랑이야기> (문화사랑, 1998), 희곡 <사랑의 유희>(성대출판부, 1999), 소설 <마지막 도박>(세계사, 1999), 단편집 <죽은 자는 말이 없다>(문예출판사, 2000), <사랑의 묘약>(문예출판사, 2004) 등이 번역/소개돼 있다. 최근에 '도박'과 관련한 논문도 쓴 김에 <마지막 도박> 정도는 읽어봐야겠다(이 책의 소개에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작가가 쓴 장편소설'로 돼 있다! 정선에 가실 분들은 미리 필독하시길.). <사랑의 묘약>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개정판이다(호프만의 <악마의 묘약>을 패러디한 제목인 듯한데, 원제가 그런지는 모르겠다). 

 

 

 

 

두번째 책은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나노미디어).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저자는 현재 텍사스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는데, 우리에겐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청림출판, 2003)로 알려져 있다. 나는 둘다 갖고 있고 전자를 읽었다. 버스는 도킨스 같은 스타 과학자들의 필력을 자랑하진 않는다. 원제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 the new science of the mind)'인 이 책도 언젠가 도서관에서 원서를 본 적이 있는데(1999년에 초판, 작년에 2판이 나왔다) 딱 대학교재 같은 구성과 내용으로 돼 있다(그러니 '진화심리학 입문' 정도의 책인데, '마음의 기원'이란 역서명은 좀더 많은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방책인 듯싶다).  

물론 '좀더 많은 독자들'께서 바로 이 600쪽이 넘는 책을 집어들기는 어려울 테고, 딜런 에반스의 <진화심리학>(김영사, 2001) 정도로 먼저 몸을 푸시는 게 좋겠다. 그런 후에 최재천 교수 등이 쓴 <살인의 진화심리학>(서울대출판부, 2003)은 진화심리학 '연습' 정도로 훑어보고 그래도 내키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을 경우에 비로소 버스를 읽어나가는 게 제대로 된 코스 같다. 그 코스에서 옆길로 새는 독자들을 위해선 신간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바다출판사)가 준비돼 있다(이런 제목들은 다 누가 짓는 것인지?). '낚싯대로 건져 올린 인간, 진화 그리고 심리학 이야기'란 부제를 갖고 있는데, 낚시광인 저자가 "물에서 뭍으로 진화를 거쳐 '낚시하는 인간'으로 진화해온 인류와 낚시꾼의 경험담을 전해준다"고. 물론 거기에 걸려들 독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구호: "헤이, 우리는 삼천포로 간다!"

버스의 또다른 책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의 원제는 '위험한 열정(The Dangerous Passion)'(2000)인데, 많이 '노력한' 역서명이지만 원제가 유인책(미끼)으로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판매율이 아주 저조하다). 책은 <언어본능>의 저자 스티븐 핀커도 추천하고 있는 만큼 '엉터리'는 아니다. '성적 질투와 살해', '배우자 살해에 대한 진화적 설명', '배우자 살해를 당하기 쉬운 여성들' 등 자극적인 내용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독해볼 만한 책. 사실 <살인의 진화심리학>도 '배우자 살해'에 관한 연구인데, 이게 초창기 진화심리학의 '인기 있는' 주제였다.  배우자 살해라면, 물론 대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인데('나는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케이스가 아니라면) 좋다고 쫒아나딜 때는 언제고 죽이는 건 또 뭔가?(죽도록 사랑해서 죽이는가?) 

그런 게 문득 궁금한 독자라면 <남자는 원래 그래?>(리좀)을 손에 들만 하다. 저자 모리오카 마사히로 교수는 <무통혁명>(모멘토, 2005)의 저자이기도 한데, 신간은 남성의 성심리와 '불감증'을 다루고 있다(오늘자 한겨레가 자세한 리뷰를 싣고 있다. 참조하시길). 변태적이거나 도착적인, 하지만 일반적인(!) 남성심리에 대해서라면 일본인 저자의 통찰을 참조해볼 하다. 일본이 그 방면으로는 상당히 앞서가고 있는 나라니까 말이다(여고생 팬티를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세번째 책은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한길사)이다. 원제는 'Sovereign Virtue'(2000). '주권의 미덕'이란 뜻인가? 개략적인 소개를 옮겨오면 이렇다: "현대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롤스 이후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서 자유주의가 평등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평등권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드워킨은 지금까지의 현대 정치철학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대다수 정치사상의 입장들을 평등에 대한 하나의 견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고,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철학의 문제를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의 문제로 다루고자 한다. 드워킨의 정치철학에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철학에서 공동체는 자유와 평등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정치적 이상으로 인정된다. 그는 공동체와 자유와 평등을 동일한 하나의 정치적 비전의 상호보완적인 측면들로 본다."

사실 작년,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들 중에는 <법의 제국>(아카넷)이라는 두툼한 법철학서도 있어서 다소 놀랐더랬는데('드워킨'이란 이름은 인문서를 읽다 보면 곧잘 등장한다), 이번에 '쐐기'를 박는 책이 출간된 것. 며칠 전 주문했던 <법의 제국>은 오늘 받았는데, '법'과 관련한 논문을 준비중에 있기 때문에 일단 구매를 했고 언제 통독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드워킨의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법철학의 문제들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책은 역시나 작년에 출간된 데리다의 <법의 힘>(문학과지성사)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책들이 나와 있는데, 내 생각에 역시나 표준적인 것은 스티븐 뮬홀(멀할)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한울, 2001)이다. 그 책의 한 장이 드워킨에 할애돼 있다.

 

 

 

 

네번째 책은 '소련'에 관한 책이다. 미국인 저자들이 쓴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이후).  원제는 '계급이론과 역사'이고, 부제가 '소련에서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이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니까 비교적 신간이며 빨리 소개된 편인데, 거기엔 역자가 저자들에게 배운 제자라는 속사정도 들어 있다. 한국어판 서문이 2003년 9월에 씌어지고 옮긴이의 말도 작년 1월에 작성된 걸로 돼 있는데, 책이 지금에야 나온 건 무슨 사정 때문인지? 하여간에 비록 소련 '경제'를 다룬 책이지만 넓은 의미에선 '전공서적'에 속하기 때문에 나로선 반갑다. 스티븐 레스닉과 리처드 울프, 두 공저자는 맑스주의 계급투쟁이론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는 '앰허스트학파'의 리더들이라고 하는데, 그 방면으론 눈이 어두워 어느 정도 지명도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여러 권의 공저를 냈지만, 한국어로는 처음 소개되는 듯하므로 나의 무지가 흠은 아니겠다.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해 보이는데, 저자들은 소련의 경제를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분석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러한 시각을 빌려 남북한도 비교해볼 수 있으리라고 시사하는데, 가령 남북한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대립적인 체제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각각에서 작동하는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집단소유와 국가계획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농장과 공장에서 공상주의는 결코 성취되지 않았다. 대신, 북한에는 국가자본주의가 존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북한사회에 여전히 가능한 대안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라면, "남한과 북한 사회 모두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한 판단을 입증/반증할 만한 데이터를 나는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동의할 만한 견해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와 김일성은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며, (손호철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강정구나 조갑제나'이다. 오늘자 한겨레 북리뷰에 실린 도정일 교수의 칼럼에서도 '상식적인' (그러나 현재 간과/무시되고 있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는 북두칠성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자도 관용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게 그 체제의 짐이고(*혹은 딜레마이고) 영광 아니더냐? 그 짐을 질 자신이 없거든 일찌감치 걷어치워라. 너희가 북한과 같아지고 싶어서 안달이냐?"

어떤 나라는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하고 경축 분위기인데, 또 어떤 나라는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거의 '국난'을 당한 듯 시끌벅적이다. 만경대 정신을 떠받들겠다는 지식인이 (우리식 분류로) 좌익이고 친북인사라는 건 부인하지 말자.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지난 월요일자 한 신문의 칼럼에서 한 헌법학자는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기본질서'라는 제하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들어 국가적 범죄도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하나 사상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는데, 과거 유신헌법 기초에 관여했었다는 그의 전력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걸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원로들이 며칠전에는 구국운동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그 구호가 대한민국 만세였는지, 말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그런 취지로 만경대주의자들을 다 잡아넣는다고 치자. 한데, 바로 그런 것이야말로 '북한식'이며 '북한식 인권의식' 아닌가? 현 국가보안법이 이렇듯 '북한과 같아지고 싶어서 안달'하는 이들을 처분할 수 없다면, 그건 뭐하는 법인가? 거꾸로 만경대주의자에 대한 관용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강변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또 무슨 자격으로 진보주의자인가? 북한보다 나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인데, '강정구 사건'과 관련하여 이보다 '보수적인' 태도가 또 있을까?(실상 남한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못한' 체제라는 것이 폭로되어야 혁명/통일 대업 달성에 유리한 것 아닌가?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국보법으로 잡혀가야 정세가 더 호전되는 것 아닌가?) 내막은 또 짜고 치는 수작들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상식적으론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인 듯한다... 

어쨌든, 예전에 <소련국가자본주의>(책갈피, 1993)란 책이 나왔었는데, 신간과는 기조가 유사할 듯싶다. 소련 경제에 대해서는 권위자라고 하는 알렉 노브의 <소련경제사>(창비, 1998)도 참고할 만한 책.

 

 

 

 

마지막 책은 얼마전 101세로 세상을 떠난 중국의 대작가 파금의 <파금수상록>(학고방). 우리에겐 그의 대표작 <집(家)> 등이 소개돼 있는데, 한때 노벨문학상 단골후보이기도 했던 '큰집' 작가에 대한 예우로서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언론에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바진'이라고 표기했던데, 아마도 중국어로는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다(대역본 <바진 소설선>이 출간돼 있다). 등소평(덩샤오핑)과는 동갑내기로서 서로 막역했다고 하는데, 젊은 시절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듯 파금(바진)이라는그의 필명은 그가 존경하던 러시아의 무정 부주의자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한자음에서 각각 첫 음절과 마지 막 음절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식으론 '바킨'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데, 우리로선 이 '바킨' 같은 작가를 기대할 수 없는데, 우리말로 된 '바쿠닌' 책이 한권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E. H. 카가 쓴 평전 <미하일 바쿠닌>(종로서적, 1989)이 좀 돌아다녔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그나마 크로포트킨은 사정이 좀 나아서 그의 <자서전>(우물이있는집, 2003)과 상호부조론 <만물은 서로 돕는다>(르네상스, 2005)가 나와 있는 정도. 이 걸출한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에 대해서는 할 수 없이 <아나키스트의 초상>(갈무리, 2004) 같은 책들을 참조하는 수밖에 없겠다. 저자인 폴 애브리치는 아나키즘 전문가로서 그의 책으론 <러시아 아나키스트, 1905>(1989),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예문, 1989) 등이 더 번역된 적이 있다. 지금은 다 어데로 갔나? 하긴, 뭐이 아나키스트는 아무나 하나...  

05. 10. 21.  

 

 

 

 

P.S. 언젠가 한번 언급했었는데, 시인-비평가이자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친구이기도 한 이장욱의 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문학수첩)이 출간됐다.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소설가 공지영의 평에 따르면, "만만치 않은 문장력과 사회에 대한 통찰, 소설의 구성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였다. 고심을 많이 했다고 해서 꼭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은 아니지만 그 치열한 대결의식에 점수를 주고 싶었다. 최근에 나온 신인의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자부한다"고.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다음 생(生)으로 미룬 장래 희망이 있었다. 아주 유연한 유격수. 무표정한 프로바둑 기사. 소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소설가가 되었다. 가능하다면 유연하고 무표정한 그런 소설가가 되도록 하자." 지인(知人)의 책이라고 나도 따로 표정을 짓지는 않겠다...

덧붙여,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진주 태생의 시인 허수경의 네번째 시집이 나왔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나는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창비, 2001)가 다소 불만스러웠으나 새 시집에 대한 기대마저 놓은 건 아니었다. 소개에 따르면, "시인은 시편들을 통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反전쟁에 대한 노래, 이 아이러니를 그냥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먼 이국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시인이 오래된 지층 사이에서 혹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넘쳐나는 전쟁 소식을 접하며 마치 발굴하듯 모국어로 옮긴 한 자 한 자의 시어는 '시'가 '역사'를 대할 때 보일 수 있는 한 전범이"라고 하니까 일독해 보시길. 그이의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은 지난달에 나온 책이다.

이제 '감자의 시간'이다. 빨리 귀가해야겠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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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fire 2005-10-22 03:06   좋아요 0 | URL
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는 예전에 모 출판사 문고판시리즈인가로 번역되었습니다. 도서관(어떤 곳은 구간)에서 찾으실 수 있을 거에요. 90년대 이후 바이마르 문화연구가 서구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기(막강 [바이마르 리퍼블릭 소스북] 이후로) 전까지 이 책이 유용한 입문서 역할을 했었죠. 지금은 당장 보기 힘들지만 관심이 가네요. 일단 보관함에 걸어둡니다.

푸른꽃 2005-10-22 08:43   좋아요 0 | URL
피터 게이의 성은 원래 Froehlich였어요. 독일어로 "즐거운"이란 뜻이죠. 나치 집권 후 유태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같은 의미의 Gay로 바꾼 거예요. 물론 요즘엔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지만요.^^

로쟈 2005-10-22 15:03   좋아요 0 | URL
palefire님/ 예, <바이마르 문화>는 탐구당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푸른꽃님/ 그렇군요. 독일문화사에 정통한 이유가 있었군요. 하긴 니체의 '즐거운 지식/학문'도 영어로는 'Gay science'죠.^^

evopsy 2005-11-01 12:07   좋아요 0 | URL
추측하신대로 데이비드 버스의 [마음의 기원]은 원래 대학의 심리학과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입니다. 그가 텍사스대학에서 하고 있는 [진화심리학]강의도 이 책을 교과서로 하고 있습니다. "오셀로...헤라"' 이 책은 차라리 원제 그대로 [워험한 열정]이라 하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말씀에 십분 동감합니다. 흑..
 

오늘 저녁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노벨문학상을 발표한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한 명의 작가'가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는 특별한 제의(ritual)이기도 하다. 이번엔 한국 시인/작가의 수상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는데(이런 분위기라면 올해가 아니더라도 예상보다 빨리 우리는 노벨상 수상작가를 갖게 될 듯하다) 그럴 경우 특정한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기보다는 '한국문학'에 주어지는 상이라는 성격이 더 강할 것이다. 그때 '한국문학'이란 (1)'한국어로 씌어진 문학'이면서 (2)'외국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을 가리킨다. 문학상의 심사위원 누구라도 한국어로 우리 작품들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문학이란 '존재'는 즉자적이면서도 (번역에 의해 매개되는) 대자적인 존재이다. 즉, 즉자-대자적 존재이며, 이때 번역은 한국문학의 본질적인 규정항이다. 그거 없이 (한국)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사실, 사카이 나오키를 따라서 보다 일반화하자면, 번역 없이는 주체도 없다). 

 

 

 

 

한글날도 들어 있고 해서 해마다 이맘땐 한글이나 한국어 관련서들이 여러 권 출간되는 듯하다. 그런 사정도 고려하여 첫번째 꼽은 건 최경봉 교수의 <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이다.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란 부제가 내용을 어림짐작하게 해주는데, 소개에 따르면 "우리말 사전이 만들어지기까지 50년 동안의 길고 험난했던 전 과정을 최초로 집중 조명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민족사의 격동기에 오로지 우리말 사전 편찬 하나에 온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완성의 기쁨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굳이 보태자면, 저자는 '우리말의 죽음'에 관한 책도 공저로 썼다는 것. <한국어가 사라진다면>(한겨레신문사, 2003)이 그것이다).

한국어와 관련한 또다른 현대사, 혹은 야사로서 고길섶의 <스물 한 통의 역사진정서>(앨피)도 꼽아둘 만한 책이겠다. 책의 형식에 대해서 말해주는 제목은 내용에 관해서는 별반 말해주는 바가 없는데, 소개에 따르면 "이 책에는 갖가지 형태로 된 언어가 주제어로 등장한다. 우리가 쓰는 일상어와 유행어.영어.특정 표현.한자.한글 등 '협소한 의미의 말'뿐만 아니라, 삐라.국가보안법.근로기준법.저항시.국어사전.한글맞춤법.문법 등 언어를 매개로 구성된 각종 역사적 사건과 지표 등 '광의의 말'이 망라돼 있다." 거기서 저자가 끄집어내려고 한 것은 이 말(언어)를 매개로 한 한국 현대사의 '권력투쟁'이다. 요컨대,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말(언어)과 역사의 관계는, 말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자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직후 '삐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뿌려주었지만, 그 이후 전개된 상황은 이 상상력과 권리를 뺏고 빼앗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는 것.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보다 확장시키고자 하는 독자라면, 언어학자 장영준 교수의 <언어 속으로>(태학사)를 참조해볼 만하다. 책은 한국어를 매개로 한 알기 쉬운 언어학 입문서인데, "발음, 어원, 어형, 통사, 의미 등 다양한 분야의 언어학적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더불어 "우리말의 유래에 관한 학문적 발견들을 제시하고, 어휘의 음운변화 및 의미분화의 과정을 밝힌다. 북한어에서의 모음변화, 모음조화, 표기법 등도 함께 소개했다." 서점에서 들춰본 결과 편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혹 그 책을 읽다가 보다 '학문적인' 관심을 갖게 된 독자라면 김진우의 <언어>(탑출판사, 2004)를 펼쳐보시길. (교수신문에 따르면) 이미 '우리시대의 고전' 반열에 올라와 있는 언어학 입문서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니어서, 학부에서 '일반언어학 입문' 강의를 들을 때 제일 처음 교재로 사용했던 책이다(너무 쉬운 책이어서 나는 '언어학'이란 게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지 의아했었다. 물론 이후에 일반언어학을 하려면 10개 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에 기가 죽긴 했지만). 작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언어에 대해서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언어학'을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좀더 느긋하고 감칠맛 나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언어학과 출신의 작가/언론인 고종석의 책들을 애독해보시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감염된 언어>(개마고원, 1999)이지만,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6), <국어의 풍경들>(문학과지성사, 1999), <언문세설>(열림원, 1999) 모두 지적인 산문으로 씌어져 있으면서 우리말에 대한 시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책들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종석은 몇 달 전부터 한국일보 지면에 매주 수요일 '시인공화국'을 전면으로 연재하고 있다(해서 나는 매주 화요일, 수요일에는 한국일보를 본다. 화요일자엔 '나는 왜 공부하는가'와 시인 강정의 '나쁜 취향'이 연재된다).

매주 한 시인, 혹은 한 권의 시집 읽기를 선보이는데, "요즘도 시를 읽나?"라고 생각하는 '교양 없는' 독자라면 이제라도 그의 시 읽기에 동행하면서 우리말과 시에 대한 사랑을 배워보시길 바란다. 사유는 언어라는 옷을 입고 있는바, 입는 옷만 패션을 따지지 말고 자신이 입은 사유의 옷이 혹 누더기는 아닌지 우리는 가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군말 하면 잔소리지만, 시란 게 바로 언어의 '명품' 아닌가. 비록 엽기시 같은 '전위적인' 명품도 있지만). 잘만 하면, 우리도 하이데거나 데리다 같은 사유의 거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로 사유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나온 시비평집도 한권 소개하기로 하자. 얼마전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을 냈던 시인 겸 평론가 권혁웅의 <미래파>(문학과지성사)가 그것이다. 제목만으로는 책이 비평집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듯한데, 영어로는 'Futurism'이라고 하는 '미래파' 혹은 '미래주의'는 지난 세기초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 각각 발흥했었던 전위적(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가리킨다. 마리네티 등이 주도했던 이탈리아 미래파에 대해서는 <미래주의>(열화당, 2003)란 책이 요긴한 안내서로 보인다. 저자는 이 미술운동이 "전통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거의 것이나 낡은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 속도, 기계, 전쟁 등을 찬양하고 무정부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자국과 유럽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계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의 경우에, 미래파의 주동자는 마야코프스키 같은 시인들이었다(물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합류했지만). 그들의 선언문을 포함하고 있는 책이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책세상, 2005)이며, 책제목은 그대로 '미래파 선언문'의 제목이기도 하다(한번 맞아볼텨?).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새비평집의 제목을 감당할 만한 전위적인 시운동(이건 정치운동과 분리되지 않는다)이 과연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서, 우리의 '미래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말 그대로의 미래파이다. 저자의 말을 잠시 옮기면, "나는 여전히 시의 역사가 감각의 역사라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시사의 기술은 전대 시인과 후대 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각의 주고받음, 곧 시적 영향의 수수관계에 대한 해명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감각적 현실이 이후의 감각을 보증하고 예견하는 것, 시는 그런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해서, 새로운 시는 새로운 감각(들뢰즈의 용어론 'sensation'), 새로운 센세이션을 보증하고 예견하는 시이기도 할 테다. 겨우 그런 게 너희가 느끼는 세계인가?, 라고 우리를 다그치며 따귀를 때려줄 시인들을 우리는 기다린다.  


 

 

 

세번째 책은 거꾸로 과거에 관한 책이다. 중세학의 대가로 인정받는 자크 르 고프의 <중세를 찾아서>(해나무)가 그것인데, 소개에 따르면 "중세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프랑스 역사학계의 거장 자크 르 고프의 학문적 여정을 집약해놓은 대담집이다. 이 책은 열정적이면서도 읽기 쉬운 문체로 감춰져 있던 혁신적인 모습의 중세, 종말론 때문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중세의 정신을 오롯이 그려내고 있다.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장-모리스 드 몽트르미가 대담을 정리했다." 중세는 사실 나의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닌데, 특별히 이 책을 고른 건 '대담집'이기 때문이다(나는 '거장들'의 대담집을 좋아한다).

르 고프의 책은 이미 여러 권이 소개돼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건 <서양중세문명>(문학과지성사, 2001)과 <연옥의 탄생>(문학과지성사, 2000) 등이다(물론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서양중세문명>은 작년에 러시아어본이 나왔는데, 국역본보다 더 크고 더 두꺼운 판본이다(이 러시아어본에 대한 한 현지 서평은 러시아의 중세사에 대해선 이 만한 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었다). <연옥의 탄생>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 "즉 '제3의 처소'에 대한 신앙이 고대 유대, 기독교 이래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추적하고, 중세유럽 문명의 개화기인 12세기에 탄생한 이후 급속히 발전한 과정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르 고프보다 좋아하는 중세사가는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호이징하이며, 그의 <중세의 가을>(문학과지성사, 1997)은 '삶의 쓰라림'이란 장으로 문을 연다(이제나 저제나 삶은 쓰라렸던 것이다). 호이징하의 책들도 작년에 러시아어본이 나오고 한바, 내가 기꺼이 사들고 왔노라고 덧붙이는 건 사족이리라.   

 

 

 

 

네번째 책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아예 '시간이 사라진 세상(A World without Time)'에 관한 책이다. <괴델과 아인슈타인>(지호)이 국역본의 제목인데, 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쿠르트 괴델'이라는 두 천재의 교우기를 겸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괴델의 연구와 그 의미에 대해서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어떤 연구인가? "1949년 괴델은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더 나아가 만약 그런 이론적인 우주들에서 시간이 부재하다면, 시간은 우리 세계에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대성이론의 아버지' 아인슈타인은 이에 충격을 먹고...

이 책을 꼽은 건 모처럼 눈에 띈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괴델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이미지로 나열한 책들은 내가 모두 갖고 있는 책들이다). 그의 '불완정성 정리'라는 걸 제대로 이해할 만한 능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생활'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해볼 용의를 나는 갖고 있다(이런 게 '대중심리'이다). <괴델의 삶>(사이언스북스, 1997)을 예전에 읽었었는데, 좀 실망스러웠다(그의 아내가 6년 연상의 연예인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제대로 된 평전을 읽고 싶었는데(왜, '뷰티불 마인드'를 가진 수학자들의 전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가?) 이번 신간은 그런 갈증을 얼마간 해소시켜줄 걸로 기대된다. 올해 나온 따끈한 원서의 한 추천사는 이렇다: "괴델과 아인슈타인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동시에 물리학과 수학에서 그들이 이룬 업적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괴델이 이룬 업적을 매우 알기 쉽고 통찰력 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20세기를 괴롭혔던 철학적 전통을 예리하게 개괄하고 있다. 훌륭하고 인상적인 책이다."

 

     

 

 


마지막 책은 이런 책들을 만드는 출판인들 중 한 명에 관한 평전이다. 프랑스 출판계의 대명사이기도 한 '갈리마르'(시공 디스커버리 총서가 갈리마르에서 나온 것이다), 그 갈리마르의 창립자 '가스통 갈리마르'의 일생을 다룬 <가스통 갈리마르, 프랑스 출판의 반세기>(열린책들)가 그것. 처음 제목을 보고, 나는 '가스통 바슐라르'에 관한 책이 새로 나왔나 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갈리마르'였다. 이 갈리마르는 "앙드레 지드와 함께 NRF(갈리마르의 전신)를 창립하고 탁월한 작가 발굴 능력과 기획력으로 20세기 프랑스 문학과 사상의 산파 역할을 해낸 프랑스의 대표적 출판인이다." "저자는 갈리마르의 일생을 통해 출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정신적 가치를 상업적 성공과 연계시켜야 하는 출판이라는 산업의 복잡한 실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고. "숨겨진 작가의 발굴과 작가 쟁탈전, 문학상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베스트셀러 탄생의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출판계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니까 읽어볼 만하겠다(왜, '뒷얘기들'이 재미있지 않은가?).

내주엔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국제도서전이 개최되며 알다시피 올해엔 우리가 주빈국으로 참여한다(작년엔 러시아가 주빈국이었다). '괴테와 박물관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살림, 2005)에 대해서 한권쯤 읽어두는 것도 좋을 듯. '한국의 책 100권'까지 1년 만에 '성공적으로' 번역/출간해서 도서전에 출품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할 것이므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출산률은 세계 최저이면서 평규수명은 선진국을 따라잡았다고 하니까 곧 우리는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다(제일 '어른'이 된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우리의 모토이지만, 적어도 '작지만 늙은 나라'는 곧 확실하게 될 거라는 얘기. 늙어서 무엇하겠는가? 미리미리 책과 사귀어두길 권유하는 바이다...

05. 10. 13.

 


 

 

P.S. '앵콜'에 부응하여 한권 더 언급하자면, 라플랑슈/퐁탈리스의 <정신분석사전>(열린책들, 600쪽)을 넘어서는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정신분석사전이 이번에 번역돼 나왔다.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편?)의 <정신분석대사전>(백의, 1551쪽)이 그것이다. 가격 또한 기록을 갱신하여 웬만한 전집 가격인 150,000원. 도서관에서나 구경해볼 책인데, 저자나 역자들이나 모두 놀랍다. 비록 번역어들이 통용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루디네스코 여사는 자크 라캉에 대한 가장 방대한 평전으로도 유명하며 프랑스에서의 정신분석사에 관한 한 권위자이다(더러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라캉의 <에크리>는 언제 나오는 것일까?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나온다던 책 나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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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3 11:33   좋아요 0 | URL
사유의 옷이 누더기는 아닌지라는 말에 맞다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저는 추천하고 퍼가겠습니다..^^
당장 읽지는 못하겠지만 한국어에대해 관심가는 책들이 많네요

2005-10-13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5-10-13 21:39   좋아요 0 | URL
고종석씨는 법학과 출신이지 않나요? 음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공연히 말을 섞어봤습니다

페일레스 2005-10-13 22:01   좋아요 0 | URL
고종석씨 책들은 재미있게 읽었고, <시인공화국 풍경들>과 강정의 <나쁜 취향>,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로쟈님 글은 추천을 안 하고 지나갈 수가 없네요. ^_^

로쟈 2005-10-14 11:45   좋아요 0 | URL
산책님/ 다시 확인해보니 학부는 그렇군요. 그런데, 워낙에 언어학 얘기만을 늘어놓은지라.^^ 아마 법학과에 들어갔던 건 적성과 무관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