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에 들어 있는 책들이 얼추 열권은 넘어가기에 비우는 기분으로 몇 자 적는다. 식후에는 바로 일(혹은 공부)하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에, 게다가 오늘은 바깥 산책을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쌀쌀하기에, 단순작업으로 시간을 좀 때워보려는 의도도 있다. 지난 주간에 나온 책들은 다 막상막하이지만(그러니까 결정적으로 눈에 띄는 책은 없었다는 얘기), 가장 먼저 꼽을 책은 스티븐 존슨의 <굿바이 프로이트>(웅진지식하우스, 2006)이다.

 

 

 

 

'인간 심리의 비밀을 탐사하는 뇌과학 이야기'란 우리말 부제를 단 이 책의 원제는 'Mind Wide Open'(2004). 스탠리 규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을 패러디한 제목이란 걸 바로 알 수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책으론 "복잡계 과학을 새롭게 설명한 베스트셀러" <이머전스>(김영사, 2004)와 <무한상상 인터페이스>(현실문화연구, 2003) 등이 소개돼 있으니까 우리 서가와는 이미 안면을 튼 사이이다. 이번에 그가 낸 책은 "흥미진진한 뇌과학의 세계"이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 웃음의 전염성, 집중력과 공포심의 정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 마인드컨트롤의 원리, 자폐증의 원인 등을 살핀다. 질문이 일상적인만큼 그 질문을 푸는 방법도 대중적이고 쉽게 접근한다. 전문용어를 제한하고, 뇌의 영역·신경화학물질·신경 전달체계 등을 설명하는 데 있어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사항만 모아 독자들을 배려했다. 특히 프로이트가 만들어놓은 심리적 가설을 뒤흔들며 마음에 관한 이론을 새로 쓰게 만들었던 유명한 실험들을 폭넓게 다뤘다. 실험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흥미로우며, 실험 속엔 인간 행동과 감정의 비밀을 푸는 과정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책에 나온 선구적인 실험들은 최근에 와서 뇌과학 실험으로 다시 한 번 입증됨으로써 인간과 마음의 풍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이런 것이다: "프로이트는 뇌의 특정한 영역이 의식의 통제 바깥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옳았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한 뇌의 구조에 생물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없다(우리 신체 기관들에게 일상적인 관리 업무를 중단할 때를 말해주는 생체 시계의 형태로, 우리의 유전 구조에 죽음 충동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공포 반응은 그것이 아무리 우리를 무력화시키든 간에 근본적으로 살아 있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미처 생각할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절반만 옳았기에, 그러니까 절반은 틀렸기에 국역본의 제목은 '굿바이 프로이트'가 된 모양이다.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가 "이 책은 뇌과학의 최전선을 둘러보고 쓴 명쾌하고 재미있는 여행담"이라고 칭찬하고 있고, 동료 저널리스트인 존 호건도 "스티븐 존슨의 신나는 현대 뇌과학 여행담은 내 뇌를 자극하고, 흥분시키고, 감동시키고, 놀라게 하고, 무엇보다도 즐겁게 한다"고 증언하고 있으니까 책의 품질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겠다. 게다가 부지런한 전문번역가의 번역이다. 분량도 312쪽으로 아주 부담스럽지는 않다(물론 프로이트와 작별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비록 뇌과학보다는 정신분석학 책들에 더 자주 손이 가는 편이지만, '적들의 생각'은 언제나 유익한 자극을 주므로 한번쯤 읽어볼 생각이다.

 

 

 

 

두번째 책은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부탁해요, 아인슈타인>(모티브북, 2006)이다. 불어본 원제가 'Einstein S'il Vous Plait'(2005)이니까 국역본의 제목은 지어낸 게 아니라 직역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철학'이라고 부제가 달려 있는데, 270쪽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갔을 뻔한 책이지만, 알고 보니 저자가 제법 지명도가 있는 사람이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데, 한편으론 프랑켄슈타인 전문가이며, 국내엔 <영화, 그 비밀의 언어>(지호,1997)와 <프랑켄슈타인>(이룸, 2004) 외에도 <현자들의 거짓말>(영림카디널, 2000)이나 <시간의 종말>(이끌리오, 1999) 등 그가 단독 혹은 공동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책들이 이미 소개돼 있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소설 형식으로 아인슈타인의 과학과 철학을 들여다본다. 어떤 여대생이 시간의 법칙을 이탈해 20세기 초중반에 살고 있던 아인슈타인 앞에 나타나고,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3차원 위에 시간의 차원을 덧붙여 인간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탈바꿈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그 바탕이 된 사상, 그리고 그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겠다. 마치 이번에 나온 스티븐 호킹의 개정판 <시간의 역사>,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까치글방, 2006)처럼.  

 


 

 

세번째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이산, 2006)이다. 이 또한 '지피지기'하기 위한 텍스트인데, 후쿠자와는 알다시피 일본 메이지 시대 최대 계몽사상가이며, 1만엔권 지폐에 초상화가 실려 있을 만큼 일본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더불어, '문명(civilization)', '연설(speech)', '경쟁(competition)', '저작권(copyright)' 등의 번역어들의 저작권자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의 용어들로 숨쉬고 생각하고 있는 셈(그는 '문명'의 아버지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자서전(원제 '복옹자전')은 1897년 후쿠자와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만년까지의 인생역정을 구술하여 속기사에게 필기시킨 것이다. 가난한 하급 무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양이론과 쇄국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일본의 서양문명화에 평생을 바친 일대기를 만날 수 있다. 일본 자전문학의 백미이자 일본근대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 기록이다. 성장기와 나가사키 유학 당시의 비화나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자녀교육관, 술을 끊기까지의 에피소드 등 후쿠자와의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한 부분도 상당부분 포함되어있다. 또한 부국강병으로 시작하여 군국주의로 이어지는 대표되는 일본 근대 지식인의 어두운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하여, 일본 근대사에 대한 흥미로운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

지난번 WBC 준결승에서 우리는 일본에 아쉽게도 분패했는데(먼저 두 번 이긴 걸로 위안을 삼지만), 사실 실력으로는 아직 우리가 '흑번'이다. 근대화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비록 삼성이 소니를 앞질러가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론 이 '이웃'에게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후쿠자와의 자서전을 읽는 건 그런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그의 주저 중 하나는 <학문을 권함>이니 읽어서 손해볼 일이 있겠는가?

 

 

 

 

네번째 책은 제리 멀러의 <자본주의의 매혹>(휴먼&북스, 2006). 원제는 'The Mind and The Market'(2002)이고, 부제는 '돈과 시장의 경제사상사'. 이른바 자본주의 경제사상사인데, 저자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상사를 다루면서, "자본주의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자본주의가 낳은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 현실을 관찰하고 이를 당대 현실에서 비판하거나 정당화하거나 혹은 그 대안을 찾고자 했던 모든 현실 운동과 이론화 작업의 역사"를 조명한다고.

소개를 더 보태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은 모두 당대의 자본주의 현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 혹은 발전시키기 위해 평생을 몰두했던 사람들이다. 볼테르를 선두로, 애덤 스미스, 유스투스 뫼저, 에드먼드 버크, 헤겔, 마르크스, 매튜 아널드, 막스 베버, 지멜, 좀바르트, 루카치, 프레이어, 슘페터, 케인스, 마르쿠제, 마지막으로 케인스를 부정하고 완전한 자유주의 정책을 주창함으로써 20세기 마지막 2, 30년간 서구에서 가장 각광받은 경제학자가 된 하예크 등, 총 16명의 사상가와 주요 사상이 소개된다."

 

그러니 이 또한 (당신이 자본가가 아니라면) '적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한편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월가에서 가장 많이 읽는다고 하잖는가?). 이번에 론스타펀드가 수년전 헐값(?)에 인수한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4조원 이상의 이익을 챙길 거라고 하니까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는 가히 '매혹 덩어리' 아닌가?!  

북치고 장구치는 책소개: "‘자본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적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그리고 이 새로운 현상이 인간의 다른 사회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파급 효과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성격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좌파는 좌파대로 자신들의 사상적 기반의 원천을 살펴보는 것이며, 우파는 우파대로 논리를 가다듬는 기회가 된다." 고로, 양다리에 양수겹장인 책. 저자는 역사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처음으로 번역/소개되는 그의 책이다.

유사한 성격의 책으론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와  피에르 독케스 등이 쓴 <모호한 역사>(한울, 1995)가 있다. 전자는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이며, 후자는 아는 사람도 아주 드문 '모호한' 책이다. 하여간에 둘다 소장도서이긴 하다. 이들과  같이 읽을 만한 책 몇 권을 더 꼽아보자면, 피에르 잘레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책벌레, 2000), 강만길 편,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역사비평사, 2000), 복거일의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삼성경제연구소, 2005) 등이 눈에 띈다. 자유주의 전도사 복거일이 자본주의의 수월성과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정의'에 호소하고 있는 건 뭔가 어색하다는 인상을 주지만(정의롭지 않을 경우 '현실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란 뜻을 함축하는 거 아닌가?).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폴란드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1930- )의 <초보자의 삶>(하늘고래, 2006). 제목에서 얼마간 짐작할 수 있는데, 책은 "인간사회의 위선을 위트 있게 표현한 풍자적 단편집"이며,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39개의 주제를 다룬 짧은 이야기가 일러스트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저자는 <탱고>, <이민자>, <스트립티즈> 등의 희곡으로 유명하다는 폴란드 작가인데, 나로선 첫대면이다. 유머러스한 동구권 작가로는 카렐 차페크가 먼저 떠오르는데, 짐작엔 비슷한 색깔의 작가이지 않을까 싶다.

소개에 따르면, "므로제크는 현대사회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포착하는 발군의 통찰력과 유머를 자랑한다. 단편소설로 데뷔하고 풍자만화가로도 활동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작가 특유의 해학과 정교한 표현은 삶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쓴 이야기들은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쓴, 혹은 살아가기 위해 저절로 두터워진 각질을 콕콕 찌른다. 묵직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위트, 뛰어난 혜안이 일상의 몰상식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분량도 가뿐하므로 어느 화창한 봄날 단숨에 읽어봄 직하다. 아래는 므로제크의 연극작품 <탱고>(1964)의 한 장면.

06. 03. 28.

P.S. 미술과 영화 책 몇 권이 소개에서 빠지게 됐는데, 다음에 몰아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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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3-29 15:05   좋아요 0 | URL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이 나왔군요. 소개 고맙습니다.

로쟈 2006-03-29 15:47   좋아요 0 | URL
저보다 먼저 아실 거 같은데요.^^
 

점심 먹고 산책 삼아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봄비가 살짝 내렸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볕이 좋다(당연한 말이지만, '봄날'이다). 어제 한국일보에 실렸던 고종석의 칼럼 '봄날의 만보(漫步)'는 오늘 날씨에 더 어울렸음 직하다. 그 칼럼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삶의 큰 부분은 싸움이다. 사람이라는 종(種)이 출현한 뒤 줄곧 그랬겠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거리낌없이 상품화하고 있는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 악착같이 싸우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쉬기 위해서다. 깊숙한 수준에서, 그것은 뜻밖에도 초월의 소망과 잇닿아 있다. 둘레 세계와 거리를 두고 혼자 느릿느릿 걸을 때 우리는 문득 제 주인이 되어 초월의 문턱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제 주인으로 태어났지만, 일상 속에서 대체로 제 주인이 되지 못한다. 홀로 느릿느릿 걷는 것은 잠시라도 제 주인이 되는 길이다. 지금이 바로 이런 성찰적 걷기의 적기다. 조금 있으면 선거와 축구의 미친 바람이 휘몰아칠 테니."

 

 

 

 

'둘레 세계'란 표현을 굵을 글씨로 강조한 것은 나의 견문으로는 '최초의' 조어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어제 인터넷 검색을 잠시 해보았는데, 같은 표현을 찾지 못했다). 보통은 '주변'이나 '주변 세계'란 말로 대신할 대목에서 고종석은 '둘레 세계'라고 적었고, 이 새로운 조어 때문에 나는 반나절이 즐거웠다. 요즘 흔히 쓰는 '배둘레' '허리둘레' 할 때의 '둘레'가 '둘레 세계'로 스카웃된 것은 마치 WBC에서 한국야구팀이 미국과 일본팀은 연파한 것과 같은 (대견한) 쾌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고종석의 영어이야기> 같은 책도 간혹 내지만 고종석의 (한)국어 사랑은 각별한데, 지난주부터 연재를 시작한 '말들의 풍경'(그의 자백대로 작고한 평론가 김현 선생의 제명을 훔쳐온 것이다)에 내가 기대를 거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그의 가지런한 한국어는 요즘의 어지간한 비평가들도 주지 못하는 '읽는 재미'를 내게 준다).  

여하튼 점심을 먹었으면 '봄날의 만보'라도 다녀올 일이거만, 나는 고작 이런 페이퍼나 쓰다가 잠시 도서관에 다녀오는 걸로 오늘의 산책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은 '산책'열이라고 하면 세계 정상을 자부하는 나라 러시아이다. 모스크바의 산책로들이 기억에 새로웠는데, 이미지는 요즘 분위기에 맞게 모스크바대학의 야구장을 띄워놓는다(이미지 버점 참조). 러시아 야구수준이라는 건 별 게 없지만 대학간 친선경기가 이 경기장에서 열리며(나는 구경가보지 못했지만) 내가 있던 본관 기숙사에는 한동안 와세다 대학의 야구 선수 한 명이 초청을 받아 기숙한 적이 있었다. 이런 날에는 저런 경기장에서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뛰어보는 것도 부듯하겠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 그런 부듯함을 안겨주는 건 최선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대역본 <예브게니 오네긴>(서울대출판부, 2006)이다. 이미 지난 99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두 종의 번역서가 출간된 적이 있는데(물론 그밖에도 국역본이 두엇 더 된다) 이번에 나온 대역본의 특징은 러시아어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한 페이지당 한 연씩 할당해서 배치하고 있다는 점. 그러니 이미 러시아어본, 영어본 등을 포함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는 처지이지만 '애서가'의 구미를 당기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대역본으로는 서정시편들을 담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민음사) 이후에 처음이 아닌가 싶다(역자의 또다른 푸슈킨 번역으로는 <보리스 고두노프>와 <벨킨 이야기/스페이드 여왕>이 있다). 아래는 푸슈킨의 친필 원고.

특히나 역자는 '오네긴 연(스탄자)'라고도 불리는 고유한 형식과 리듬감을 우리말로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애를 쓴지라 이런 봄날에 산보하면서, 혹은 벤치에 앉아서 읽기에 더욱 좋겠다(밤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곡들과 함께). 한번쯤 러시아 문학의 '대명사' 푸슈킨의 세계에 한번쯤 빠져보시길. 혹은 각별한 애정이 담긴 손으로 받아보시길. "반은 우습고, 반은 슬프고, 소박하고 서민적이고 또 고답적인 각양각색의 장을 모은 이 작품을. 내 즐거움과 불면과 날개 돋친 영감의 결실, 설익은 시절과 시들어버린 시절의 열매, 이성의 냉철한 관찰과 심장의 슬픈 기억으로 내키는 대로 엮은 결과물을."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덧붙이자면,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석으로는 역자가 참조하고 있는 유리 로트만의 주석과 작가 나보코프의 번역/주석이 가장 유명하다. 나보코프의 주석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으며 나도 재작년에 구했던 책이다(저렴하기에). 아무려나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고전'이었으면 싶다.

한가지 더. 이번에 나온 번역본에서는 '타치야나'나 '따찌야나'로 표기되었던 여주인공이 '타티아나'로 표기됏다. 구개음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은 것인데(읽을 때는 '타치야나'로 읽어야겠다), 다소 독특한 선택이다. 그리고, 작품의 대단원에서 '끝'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까녜츠(конец)'가 '까녜치(конеч)'로 잘못 표기됐다. 오타일 텐데, 한편으로는 이 작품에 대한 읽기와 번역이 결코 종결될 수 없는 것임을 고지하는 듯도 하다.

푸슈킨 자신이 이렇게 적어놓고 있지 않은가? "삶의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 내가 내 오네긴과 그런 것처럼 갑자기 소설과 작별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 받은 자이다."

 

 

 

 

두번째 책은 앙그레 라콕과 폴 리쾨르의 공저 <성서의 새로운 이해>(살림, 2006)이다(이 책은 이미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있다). 살림출판사에서 나오는 '우리시대 신학총서'의 10번째 책으로 나온 것인데, 원저는 'Thinking Biblically'(1998)이고 역자 김창주 교수는 시카고 신학대학의 교수인 라콕의 제자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작년 연말에 나온 폴 존슨의 기독교사 <2천년 동안의 정신>과 같이 읽어보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영성 함양'에 도움이 되겠다.

두 공저자는 책의 부제 '주석학과 해석학의 대화'에서 각각 성서 '주석학'과 '해석학'을 떠맡고 있는데, 작년에 타계한 프랑스 철학자 리쾨르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테고, 라콕 교수도 저명한 성서학자로서 시카고 신학교에 재직하면서 멀치아 엘리아데, 리쾨르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눈 것으로 돼 있다.

지난 연초에 '시편'을 좀 읽으면서 관련 주석들을 찾아읽은 적이 있는데,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종교(성) 혹은 '종교적 인간'에 대한 나의 관심은 뿌리가 깊은 편이다. 거기에 레비나스나 데리다의 종교론에 자극을 받아서(거기에 지젝의 '유물론적 신학'까지 보태진다) 성서와 그 관련서들을 조금씩 읽고 있다(데리다식의 성서 읽기로는 'Derrida's Bible'(2004) 같은 논문집이 나와 있고 데리다와 종교라는 테마에 대해서는 Yvonne Sherwood의 'Derrida and Religion'(2004)가 가장 포괄적이다. 데리다와의 인터뷰도 포함돼 있다). '주석학과 해석학의 대화'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것은 그 읽기에 요긴한 지침이 되어줄 듯하다.  

 

 

 

 

세번째 책은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소오건축, 2006). 모처럼 건축(비평)가의 책을 꼽게 됐는데, <아르누보>(예경, 2005)에 잠깐 소개돼 있다는 저자 아돌프 로스(1870-1933)는 "현재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나 빈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 건축가이자 비평가"로서 "<장식과 범죄(1908)>를 비롯한 많은 사회, 문화비평들로 빈 아르누보(제체시온)에 반기를 들고 현대의 정신이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고 한다.  

사실 로스의 책은 오늘 한겨레의 북리뷰를 읽다가 '발견'한 것이다. '장식'과 '범죄'라는 제목부터가 눈에 띄는데, 한마디로 "장신은 죄악이다"라는 게 그의 세계관이라고 한다. 리뷰에 따르면, "그는 건축의 진정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건축은 건물의 실제 목적과 부합해야 한다는 것,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대가 보유한 진보적 기술로 지을 것을 주문했다."(그에 따르면 대중의 수준이 낮을수록 장식을 원하며 장식만 강조하는 것은 범죄와 문신의 관계와 같다고.)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는 츠빙거 궁전 같은 건축 대신에 당연히 심플하고 실용적인 건축을 지향했겠다. 그가 디자인한 아파트라고 한다(아파트 값도 좀 저렴해지지 않을까?). 한데, 국내의 아파트들은 다 그런 '심플한' 아파트들 아닌가?(오히려 로스의 아파트가 장식적으로 보일 정도로!)

과거 유럽의 궁전들 같은 '장식적인' 건축들을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지라(서울이 세기말의 비엔나도 아니고) 아돌프 로스의 '세계관'은 감동적이면서도 멋쩍다. 우리 현실에 대입하자면, "실내장식(인테리어)은 죄악이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면 세간이 별로 없는 나로선 더욱 감격했을 것이다.

 

 

 

 

네번째 책은 브루스 모런의 <지식의 증류>(지호, 2006)이다. 부제는 '연금술, 화학, 그리고 과학혁명'이며 오랜만에 나온 '연금술' 책. '오랜만'이라고 한 건 내가 갖고 있는 앨리슨 쿠더트의 <연금술 이야기>(민음사, 1995)를 염두에 두어서이다. 물론 그간에 관련서들이 없지 않았다(코엘료의 <연금술사> 탓인가?). 이번의 책은 과학사가인 저자가 과학혁명의 장애물로 간주되어온 연금술의 복권을 시도하고 있는 책. 저자에 따르면, 16-17세기에 연금술이야말로 과학혁명의 원동력이었다는 것.

소개에 의하면, "지은이는 연금술사들의 발견이 비록 부정확한 오류 투성이지만 정밀하고 장시간에 걸친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과학적 연구의 토대를 세웠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현대 의학과 화학, 인체에 대한 이해 등에 끼친 영향을 상세히 묘사한다. 연금술사들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등의 저작을 분석하면서 당대 많은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연금술을 과학적 학문으로 여기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최적의 입문서라고 하니까 믿어봄 직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역시나 산책할 때 들고나가기 좋은 책(다소 두꺼운가?), <한시의 세계>(문학동네, 2006)이다. "한시 감상의 기초 개념과 한시의 양식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입문서. <김시습 평전>, <한시기행>의 고려대 심경호 교수가, 2001년부터 2년간 월간 「현대시」에 연재했던 원고를 다듬고 여기에 새로운 내용을 보충하여" 펴낸 책으로 "한시 구성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한시 미학의 핵심적인 개념들, 한시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 한시 창작의 방법론 등을 200편이 넘는 다채로운 한시와 더불어 설명했다. 당시와 송시뿐 아니라 뛰어난 한국 한시까지 골고루 소개해 '한시의 세계' 전체를 균형 있게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해서 읽어보면 된다.

그간에 한시 입문서의 최강자는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솔출판사, 2006)과 어린이용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보림, 2003)였다. 이에 심경호 교수의 <한시의 세계>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그 귀추가 주목된다. 여기서 맛보기 한 수와 그 해설을 잠시 감상해본다.

春宵一刻値千金 봄날 밤은 한 시각이 곧 천금
花有淸香月有陰 꽃은 맑은 향기 품고 달빛은 어스름하다.
歌管樓臺聲細細 누대에선 노래와 피리 소리 가늘게 들려오고
楸韆院落夜沈沈 그네만 남은 정원에 밤은 점점 깊어간다.

"술자리가 벌어졌던 누대에도 밤이 깊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희미하다. 그래도 불빛이 여전히 휘황한 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시인은 정원에 홀로 서 있다. 낮에는 여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깔깔대는 웃음을 흘리며 그네를 뛰던 정원이다. 밤이 깊도록 시인은 홀로 깨어 서성인다. 독성(獨醒), 이것이 한시의 영원한 주제이다. 세상 물결에 휩쓸려 잠길락 뜰락 하면서 흘러가면 그만인 인생을,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이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시에는 그 긴장이 있다."(강조는 나의 것) 조오타!

거기에 호응하여 김수영의 시 '봄밤' 한 수.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이 봄밤이다. 그런 밤들이 지나가고 있다...

06.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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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3-20 01:28   좋아요 0 | URL
16, 17세기의 연금술이나 헤르메티즘이 과학혁명의 원동력이었다는 분석은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과학의 탄생>라는 책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죠. 그밖에도 다빈치코드의 히트이후 관련서들이 나오면서 같이 나온 <성혈과 성배>.<다빈치코드의 비밀> <다빈치코드와 숨겨진 역사>등과 같은 책도 기본적으로 연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최근들어서 로버트 보일이나 아이작 뉴튼등과 같은 당대의 대과학자들이 연금술이나 시온수도회등과 같은 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로쟈 2006-03-20 12:35   좋아요 0 | URL
뉴튼이 밤에는 딴짓을 했다는 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다만 과학사가들이 정면으로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거 같습니다. <다빈치 코드>는 제가 아직 읽지 않아서.^^ 나중에 정리를 한번 해주시면 좋겠네요...

yoonta 2006-03-20 15:00   좋아요 0 | URL
다빈치코드는 안읽으셔도 되고요..^^ 대신 <성혈과 성배>..그리고 <다빈치코드와 숨겨진 역사>(원제는 Templar revelation...-_-)를 보시는게 좋습니다.

서구에서 과학의 발전은 원래 연금술사들이나 오컬티스트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왔죠...르네쌍스의 핵심적 인물들의 대부분도 연금술사들이고요. 다만 데카르트이후에 과학이 정신과 물체의 이원론에 기반한 근대적 방식으로 재정의 되면서 연금술적 지식들이 가진 통합적이고 일원론적 접근법이 폐기된 것이죠. 사실 그 이전까지는 지식과 과학이라는 말과 연금술, 헤르메티시즘등은 같은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하더군요.
 

점심 먹고 산책 삼아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봄비가 살짝 내렸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볕이 좋다(당연한 말이지만, '봄날'이다). 어제 한국일보에 실렸던 고종석의 칼럼 '봄날의 만보(漫步)'는 오늘 날씨에 더 어울렸음 직하다. 그 칼럼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삶의 큰 부분은 싸움이다. 사람이라는 종(種)이 출현한 뒤 줄곧 그랬겠지만,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거리낌없이 상품화하고 있는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 악착같이 싸우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쉬기 위해서다. 깊숙한 수준에서, 그것은 뜻밖에도 초월의 소망과 잇닿아 있다. 둘레 세계와 거리를 두고 혼자 느릿느릿 걸을 때 우리는 문득 제 주인이 되어 초월의 문턱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제 주인으로 태어났지만, 일상 속에서 대체로 제 주인이 되지 못한다. 홀로 느릿느릿 걷는 것은 잠시라도 제 주인이 되는 길이다. 지금이 바로 이런 성찰적 걷기의 적기다. 조금 있으면 선거와 축구의 미친 바람이 휘몰아칠 테니."

 

 

 

 

'둘레 세계'란 표현을 굵을 글씨로 강조한 것은 나의 견문으로는 '최초의' 조어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어제 인터넷 검색을 잠시 해보았는데, 같은 표현을 찾지 못했다). 보통은 '주변'이나 '주변 세계'란 말로 대신할 대목에서 고종석은 '둘레 세계'라고 적었고, 이 새로운 조어 때문에 나는 반나절이 즐거웠다. 요즘 흔히 쓰는 '배둘레' '허리둘레' 할 때의 '둘레'가 '둘레 세계'로 스카웃된 것은 마치 WBC에서 한국야구팀이 미국과 일본팀은 연파한 것과 같은 (대견한) 쾌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고종석의 영어이야기> 같은 책도 간혹 내지만 고종석의 (한)국어 사랑은 각별한데, 지난주부터 연재를 시작한 '말들의 풍경'(그의 자백대로 작고한 평론가 김현 선생의 제명을 훔쳐온 것이다)에 내가 기대를 거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그의 가지런한 한국어는 요즘의 어지간한 비평가들도 주지 못하는 '읽는 재미'를 내게 준다).  

여하튼 점심을 먹었으면 '봄날의 만보'라도 다녀올 일이거만, 나는 고작 이런 페이퍼나 쓰다가 잠시 도서관에 다녀오는 걸로 오늘의 산책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은 '산책'열이라고 하면 세계 정상을 자부하는 나라 러시아이다. 모스크바의 산책로들이 기억에 새로웠는데, 이미지는 요즘 분위기에 맞게 모스크바대학의 야구장을 띄워놓는다. 러시아 야구수준이라는 건 별 게 없지만 대학간 친선경기가 이 경기장에서 열리며(나는 구경가보지 못했지만) 내가 있던 본관 기숙사에는 한동안 와세다 대학의 야구 선수 한 명이 초청을 받아 기숙한 적이 있었다. 이런 날에는 저런 경기장에서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뛰어보는 것도 부듯하겠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 그런 부듯함을 안겨주는 건 최선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대역본 <예브게니 오네긴>(서울대출판부, 2006)이다. 이미 지난 99년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두 종의 번역서가 출간된 적이 있는데(물론 그밖에도 국역본이 두엇 더 된다) 이번에 나온 대역본의 특징은 러시아어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한 페이지당 한 연씩 할당해서 배치하고 있다는 점. 그러니 이미 러시아어본, 영어본 등을 포함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는 처지이지만 '애서가'의 구미를 당기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대역본으로는 서정시편들을 담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민음사) 이후에 처음이 아닌가 싶다(역자의 또다른 푸슈킨 번역으로는 <보리스 고두노프>와 <벨킨 이야기/스페이드 여왕>이 있다). 아래는 푸슈킨의 친필 원고.

특히나 역자는 '오네긴 연(스탄자)'라고도 불리는 고유한 형식과 리듬감을 우리말로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애를 쓴지라 이런 봄날에 산보하면서, 혹은 벤치에 앉아서 읽기에 더욱 좋겠다(밤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곡들과 함께). 한번쯤 러시아 문학의 '대명사' 푸슈킨의 세계에 한번쯤 빠져보시길. 혹은 각별한 애정이 담긴 손으로 받아보시길. "반은 우습고, 반은 슬프고, 소박하고 서민적이고 또 고답적인 각양각색의 장을 모은 이 작품을. 내 즐거움과 불면과 날개 돋친 영감의 결실, 설익은 시절과 시들어버린 시절의 열매, 이성의 냉철한 관찰과 심장의 슬픈 기억으로 내키는 대로 엮은 결과물을."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덧붙이자면,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석으로는 역자가 참조하고 있는 유리 로트만의 주석과 작가 나보코프의 번역/주석이 가장 유명하다. 나보코프의 주석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으며 나도 재작년에 구했던 책이다(저렴하기에). 아무려나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고전'이었으면 싶다.

  

한가지 더. 이번에 나온 번역본에서는 '타치야나'나 '따찌야나'로 표기되었던 여주인공이 '타티아나'로 표기됏다. 구개음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은 것인데(읽을 때는 '타치야나'로 읽어야겠다), 다소 독특한 선택이다. 그리고, 작품의 대단원에서 '끝'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까녜츠(конец)'가 '까녜치(конеч)'로 잘못 표기됐다. 오타일 텐데, 한편으로는 이 작품에 대한 읽기와 번역이 결코 종결될 수 없는 것임을 고지하는 듯도 하다.

푸슈킨 자신이 이렇게 적어놓고 있지 않은가? "삶의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 내가 내 오네긴과 그런 것처럼 갑자기 소설과 작별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 받은 자이다."

 

 

 

 

두번째 책은 앙그레 라콕과 폴 리쾨르의 공저 <성서의 새로운 이해>(살림, 2006)이다(이 책은 이미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있다). 살림출판사에서 나오는 '우리시대 신학총서'의 10번째 책으로 나온 것인데, 원저는 'Thinking Biblically'(1998)이고 역자 김창주 교수는 시카고 신학대학의 교수인 라콕의 제자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작년 연말에 나온 폴 존슨의 기독교사 <2천년 동안의 정신>과 같이 읽어보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영성 함양'에 도움이 되겠다.

두 공저자는 책의 부제 '주석학과 해석학의 대화'에서 각각 성서 '주석학'과 '해석학'을 떠맡고 있는데, 작년에 타계한 프랑스 철학자 리쾨르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가 필요하지 않을 테고, 라콕 교수도 저명한 성서학자로서 시카고 신학교에 재직하면서 멀치아 엘리아데, 리쾨르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눈 것으로 돼 있다.

지난 연초에 '시편'을 좀 읽으면서 관련 주석들을 찾아읽은 적이 있는데,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종교(성) 혹은 '종교적 인간'에 대한 나의 관심은 뿌리가 깊은 편이다. 거기에 레비나스나 데리다의 종교론에 자극을 받아서(거기에 지젝의 '유물론적 신학'까지 보태진다) 성서와 그 관련서들을 조금씩 읽고 있다(데리다식의 성서 읽기로는 'Derrida's Bible'(2004) 같은 논문집이 나와 있고 데리다와 종교라는 테마에 대해서는 Yvonne Sherwood의 'Derrida and Religion'(2004)가 가장 포괄적이다. 데리다와의 인터뷰도 포함돼 있다). '주석학과 해석학의 대화'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것은 그 읽기에 요긴한 지침이 되어줄 듯하다.  

 

 

 

 

세번째 책은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소오건축, 2006). 모처럼 건축(비평)가의 책을 꼽게 됐는데, <아르누보>(예경, 2005)에 잠깐 소개돼 있다는 저자 아돌프 로스(1870-1933)는 "현재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나 빈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 건축가이자 비평가"로서 "<장식과 범죄(1908)>를 비롯한 많은 사회, 문화비평들로 빈 아르누보(제체시온)에 반기를 들고 현대의 정신이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고 한다.  

사실 로스의 책은 오늘 한겨레의 북리뷰를 읽다가 '발견'한 것이다. '장식'과 '범죄'라는 제목부터가 눈에 띄는데, 한마디로 "장신은 죄악이다"라는 게 그의 세계관이라고 한다. 리뷰에 따르면, "그는 건축의 진정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건축은 건물의 실제 목적과 부합해야 한다는 것,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대가 보유한 진보적 기술로 지을 것을 주문했다."(그에 따르면 대중의 수준이 낮을수록 장식을 원하며 장식만 강조하는 것은 범죄와 문신의 관계와 같다고.)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는 위의 츠빙거 궁전 같은 건축 대신에 당연히 아래와 같은 심플하고 실용적인 건축을 지향했겠다. 그가 디자인한 아파트라고 한다(아파트 값도 좀 저렴해지지 않을까?).

한데, 국내의 아파트들은 다 그런 '심플한' 아파트들 아닌가?(오히려 로스의 아파트가 장식적으로 보일 정도로!)

 

과거 유럽의 궁전들 같은 '장식적인' 건축들을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지라(서울이 세기말의 비엔나도 아니고) 아돌프 로스의 '세계관'은 감동적이면서도 멋쩍다. 우리 현실에 대입하자면, "실내장식(인테리어)은 죄악이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랬다면 세간이 별로 없는 나로선 더욱 감격했을 것이다.

 

 

 

 

네번째 책은 브루스 모런의 <지식의 증류>(지호, 2006)이다. 부제는 '연금술, 화학, 그리고 과학혁명'이며 오랜만에 나온 '연금술' 책. '오랜만'이라고 한 건 내가 갖고 있는 앨리슨 쿠더트의 <연금술 이야기>(민음사, 1995)를 염두에 두어서이다. 물론 그간에 관련서들이 없지 않았다(코엘료의 <연금술사> 탓인가?). 이번의 책은 과학사가인 저자가 과학혁명의 장애물로 간주되어온 연금술의 복권을 시도하고 있는 책. 저자에 따르면, 16-17세기에 연금술이야말로 과학혁명의 원동력이었다는 것.

소개에 의하면, "지은이는 연금술사들의 발견이 비록 부정확한 오류 투성이지만 정밀하고 장시간에 걸친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과학적 연구의 토대를 세웠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현대 의학과 화학, 인체에 대한 이해 등에 끼친 영향을 상세히 묘사한다. 연금술사들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등의 저작을 분석하면서 당대 많은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연금술을 과학적 학문으로 여기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최적의 입문서라고 하니까 믿어봄 직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역시나 산책할 때 들고나가기 좋은 책(다소 두꺼운가?), <한시의 세계>(문학동네, 2006)이다. "한시 감상의 기초 개념과 한시의 양식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입문서. <김시습 평전>, <한시기행>의 고려대 심경호 교수가, 2001년부터 2년간 월간 「현대시」에 연재했던 원고를 다듬고 여기에 새로운 내용을 보충하여" 펴낸 책으로 "한시 구성의 기본 원리에서부터 한시 미학의 핵심적인 개념들, 한시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 한시 창작의 방법론 등을 200편이 넘는 다채로운 한시와 더불어 설명했다. 당시와 송시뿐 아니라 뛰어난 한국 한시까지 골고루 소개해 '한시의 세계' 전체를 균형 있게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해서 읽어보면 된다.

그간에 한시 입문서의 최강자는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솔출판사, 2006)과 어린이용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보림, 2003)였다. 이에 심경호 교수의 <한시의 세계>가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그 귀추가 주목된다. 여기서 맛보기 한 수와 그 해설을 잠시 감상해본다.

春宵一刻値千金 봄날 밤은 한 시각이 곧 천금
花有淸香月有陰 꽃은 맑은 향기 품고 달빛은 어스름하다.
歌管樓臺聲細細 누대에선 노래와 피리 소리 가늘게 들려오고
楸韆院落夜沈沈 그네만 남은 정원에 밤은 점점 깊어간다.

"술자리가 벌어졌던 누대에도 밤이 깊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희미하다. 그래도 불빛이 여전히 휘황한 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시인은 정원에 홀로 서 있다. 낮에는 여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깔깔대는 웃음을 흘리며 그네를 뛰던 정원이다. 밤이 깊도록 시인은 홀로 깨어 서성인다. 독성(獨醒), 이것이 한시의 영원한 주제이다. 세상 물결에 휩쓸려 잠길락 뜰락 하면서 흘러가면 그만인 인생을,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이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시에는 그 긴장이 있다."(강조는 나의 것) 조오타!~

거기에 호응하여 김수영의 시 '봄밤' 한 수.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이 봄밤이다. 그런 밤들이 지나가고 있다...

06.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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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3-17 13:16   좋아요 0 | URL
아아....^^; 그렇군요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원저가 독일에서 발간된 지 25년만에 완역, 출간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이다. 숱한 고전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실정에서 '25년'이면 그다지 대단한 시간차는 아닌 듯도 하지만, 저자의 지명도와 국내에서의 명성을 고려해볼 때 이번 출간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니 일단은 타박부터 터져나온다.

 

 

 

 

아마도 가장 적절했을 타이밍은 10년전, 그러니까 그가 방한했었던 지난 1996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국내에는 하버마스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었다(현재의 역자를 포함하여). 그건 방한에 맞춰 출간됐었던 <현대성의 새로운 지평>(나남, 1996)이나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집 <하버마스: 이성적 사회의 기획, 그 논리와 윤리>(나남, 1997)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해서, 소위 하버마스 후기철학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의 번역출간이 이렇듯 지체된 이유를 나로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각한' 번역서이지만 출간을 환영한다. 이젠 전공자들이 독어나 영어로 진땀을 빼가면서 읽지 않아도 되니까. 내친 김에 일반 독자들도 읽어볼 수 있게 됐으니까(번역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소개를 옮기자면, 이 책은 "<공론장의 구조변동>(1962),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과 함께 합리성 옹호의 3대 주저로 평가받는 책"이다. 더불어 (있으나 마나한 번역서란 얘기를 듣는) <인식과 관심>(고려원 1996), <사실성과 타당성>(나남, 2000)과 함께 이론적인 '주저'로 평가된다. 사회철학과 법철학, 윤리학 등을 망라하고 있는 '종합적인' 하버마스에게 단 하나 빠진 게 있다면 '미학' 정도인데, 언젠가 한 대담에서 그는 미학쪽의 책은 쓸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나는 이 '공백'이 하버마스의 사유에서 필연적이면서 그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버마스의 미학'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연구서들은 나와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이 세계가 '생활세계(Lebenswelt)'와 '체계(System)'의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과 "이때 생활세계는 언어와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들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진리를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가능한 세계"이며 "반면 체계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 조정이 이뤄지는 영역으로 윤리를 배격하고 오로지 합목적적 합리성(도구적 합리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같은 구분을 바탕에 두고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침입해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함으로써 생기는 현대 사회의 병리현상을 지적한다." 거기에 수반되고 있는 것이 사회학 이론사에 대한 하버마스식 정리이다. 그는 "맑스, 베버, 뒤르켐, 미드, 파슨스에 이르는 사회학의 이론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인지심리학으로부터 언어이론, 행위이론, 문학인류학에 이르는 현대 사회이론을 총망라"한다. 가히 사회학 이론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러한 '종합선물세트'를 뜯어보기 전에 잠시 반성해볼 것은 고전적인 사회학 이론서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번역/소개돼 있느냐는 것. '맑스, 베버, 뒤르켐' 같은 3대 이론가는 아직 부족한 대로 입맛 정도는 다실 수 있지만, 미국의 사회학자 미드와 파슨스에 이르면 우리의 번역 살림이 매품이라도 팔아야 할 흥부네 처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때 이들의 책들을 뒤적거렸지만, 미드에 관한여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책은 <미드의 사회심리학>(일신사, 1994)이며, 파슨스도 <현대 사회들의 체계>(새물결, 1999) 와 오래전에 절판된 <지식과 사회>(탐구당, 1972) 정도가 고작이다(사회체계론자이자 하버마스의 이론적 맞수인 니클라스 루만의 국내 번역/소개도 빈곤하기 짝이 없다. 일단은 방대한 주저인 <사회체계론>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해서, 한국어로 사회학 고전들을 읽는다는 건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코저의 <사회사상사>나 터커의 <현대 사회학 이론> 같은, 혹은 앤서니 기든스의 입문서들을 참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인지 모르겠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에 사회학 이론은 불필요하든가, 아니면 사회학의 고전이론서나 번역하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학자(혹은 사회철학자)들이 한가하지 않든가. 정말로?..

 

 

 

 

두번째 책은 줄리아 우드의 <젠더에 갇힌 삶>(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제목에서 팍 풍기는 바이지만, 여성학 교재로 쓰일 만한 책이다. 특이한 건 책을 낸 출판사와도 연관된 것이지만 젠더의 문제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연관지어 조명한다는 점. 요컨대, '젠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이다. 그러한 연구가 지향하는 바라면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으레 그렇듯이) '해방적 커뮤니케이션'일 텐데, 아마도 그런 지점쯤에서 줄리아 우드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혹은 '커뮤니케이션적 합리성'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여성학 관련서들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 김현미,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또하나의문화, 2005),  권혁범,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또하나의문화, 2006) 등이 눈에 띈다. 주디스 로버의 교재용 이론서 <젠더 불평등 - 페미니즘 이론과 정책>(일신사, 2005)도 작년에 나온 책인데, 리뷰를 접해본 바 없어서 필독서인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세번째 책은 안드레아 가보의 <자본주의 철학자들>(황금가지, 2006). 얼핏,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이마고, 2005)를 떠올리게 하는데, 차이라면 후자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전자는 '위대한 경영학자들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겠다. 거명되고 있는 경영학자들 가운데, 내게 좀 친숙한 이름은 테일러와 드러커 정도인데(사실 드러커의 책을 읽다가 테일러에 대해 알게 됐다. 워낙에 강조하길래) 자기 경영도 잘 못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이 '20세기 학문'에 대한 '무지'가 새삼스러울 건 아니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프레더릭 테일러에서 피터 드러커에 이르기까지 현대 경영학을 만들어낸 열 세명의 사상가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개인적인 면모에서부터 그들이 어떻게 경영학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상들이 어떻게 거대 기업들을 좌지우지했는지 등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보다 폭넓은 맥락에서 경영학은 시장과 정치라는 변수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그 시장과 정치를 묶어주는 키워드가 '자유주의'인 모양이다. 국내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출간한 <자유주의: 시장과 정치>(부키, 2006)를 보건대 그렇다. 책은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동양과 한국의 자유주의 사상'이라는 3단락을 통해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한국'이라는 화두를 풀어나간다. 이런 주제로 이만한 부피의 책이 나오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므로 치하(?)할 만하다.

역사적 전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논리적으로나 권리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가 우선적이며,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것은 그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한 파생적 논리(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한때 논술학원에서. 자유에 대한 나의 생각은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에서도 밝힌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아이디어에 내가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는지 나중에라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같이 읽어둘 만한 책으론 김영진,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한울, 2005), 김비환,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성균관대출판부, 2005)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읽다가 지루하면 문학평론가 이동하 교수의 <한국문학속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새미, 2006)를 들춰보기도 하면서.

 

 

 

 

네번째 책은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김영사, 2006)이다. '시장' 얘기만 읽다가 가슴 한쪽이 답답해질 경우에 딱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언젠가 한번 쓴 적이 있는데, 나는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김영사, 1997)을 오래전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적이 있다. 이후엔 저자 미치오 가쿠는 나의 '무조건 호감' 대상이다(그는 "뉴욕시립대학의 헨리 세매트 석좌 교수로 이론물리학 분야와 환경 및 평화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권위자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신간은 원저 자체가 작년에 나온 것이니까 저자의 최신간인 듯싶다. 6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이론물리학 전공자들은 사회학이론 전공자들과는 처지가, 아니면 태도가 좀 다른가 보다(혹은 한가한 것일까?). 아무튼 반가운 출간소식이다. 사두고 아직 못읽고 있는 <엘리건트 유니버스>(승산, 2002)나 <우주의 구조>(승산, 2005)와 함께 언제 읽어볼 시간이 났으면 좋겠다. 모두가 박병철 교수의 번역인데, 그 열정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평행우주>와 겨룰 만한 책으로 동물행동학, 혹은 비교행동학, "즉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문적 방법을 정립한" 동물학자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에 대한 세밀한 평전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 2006; 원저는 2003)가 있다.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었는데, 로렌츠 입문서이자 필독서이겠다. 더불어 로렌츠가 들려주는 '개의 세상살이' <인간, 개를 만나다>(사이언스북스, 2006)도 나란히 출간됐다. 작년에 나온 김훈의 소설 <개>(푸른숲, 2005)와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한데, 로렌츠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는 데다가 '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나로선 미치오 가쿠를 선택했다.

 

 

 

 

이런 선택을 유감스러워 할 만한 책으로 박해철의 <딱정벌레>(다른세상, 2006)도 있다. 책은 '자연의 거대한 영웅 딱정벌레에 관한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비슷한 책들 가운데에서 가장 두툼한 분량을 자랑한다. 저자는 곤충학자이면서 딱정벌레 전문가. 국내에는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낸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사이언스북스, 2004)도 있고, 번역서로는 <딱정벌레의 세계>(까치글방, 2002)도 나와 있다. 말 그대로 '다른세상'이다. <딱정벌레>의 저자에 따르면, "현세를 딱정벌레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딱정벌레들의 다양성과 뛰어난 적응성 때문이다. 알려진 생물 종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딱정벌레는 지구상에서 깊은 바다를 제외하곤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다." 딱정벌레의 시대라,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비틀즈, 딱정벌레들! 

 

 

 

 

다섯번째는 좀 가벼운 책으로 골랐다. 데이비드 노리스의 <조이스>(김영사, 2006)이 그것이다. 역자는 시인 이수명씨인데(나는 데뷔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세계사, 1995)를 읽어본 기억이 있다), 같은 시리즈의 <라캉>, <낭만주의>, <데리다> 모두 좋은 번역이었다. 해서, <조이스>는 아일랜드 출신이 걸출한 작가 조이스의 세계에 대한 입문 가이드로서 요긴할 거란 생각이 든다. 소개에 따르면, "그의 대표작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 <율리시스>와 그 원전이 된 <오디세이아>의 구조를 비교하며 <율리시스>의 상징과 신화적 구조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조이스의 작품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더블린 사람들>이란 초기 단편집도 있지만, 이번 계절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한번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지. 읽을 만한 국역본이 4종 정도 나와 있다. 번역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창비사, 2005)를 참조할 수 있다. 조이스의 현란한 곡을 어떤 번역자-연주자가 솜씨있게 연주하고 있는지 비교도 해보면서. 젊음이 아직 다 지나가기 전에...

06. 03. 14.

 

 

 

 

P.S. 주문한 책 배송이 왜 늦어질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소개에서 빠뜨린 책을 발견했다. 미레유 뷔뎅의 <사하라 - 들뢰즈의 미학>(산해, 2006)가 그것이다. 도서관에서 보던 불어본 책이 번역돼 나온 것인데, 저자는 생소하지만 '들뢰즈의 미학'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해부가 이루어질 듯도 해서 기대를 모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불륜, 오리발 그리고 니체>(산해, 2006)도 신간인데, 뷔뎅과 마찬가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 루이즈 디살보는 작가이자 영문학자로 "한때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함께 뉴저지 주 티넥과 뉴욕 주 새그 하버를 오가며 살고 있다"고. 그런 소개를 접하니 더더욱 종잡을 수 없는 책이다(그나마 '불륜'에 관한 책이란 건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니체'는 왜? 하여간에 사하라-들뢰즈, 오리발-니체란 커플이 접속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사태는 더 두고봐야겠다. 이런 건 먼저 읽고 리뷰를 써줄 친구가 아쉽다...

P.S.2. '마감' 후에 눈에 띈 책으로 망구엘의 <독서일기>(생각의 나무, 2006)가 있다.

 

 

 

 

이미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 <나의 그림읽기>(세종서적, 2004) 등으로 은근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비서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내용인즉, "학창 시절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다. 시력을 잃어가던 세계적인 문호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그의 독특한 촌평에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전에도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지만 이 만남을 계기로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된다." 현재는 캐나다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최고의 작가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한다. 'A Reading Diary'는 2004년에 나온 그의 최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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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3-15 02:00   좋아요 0 | URL
'불륜과 오리'발까지는 대충 홍상수적으로 해석해 보겠지만 니체까지 따라 붙으면 대략 난감해지는군요...쿨럭...그나저나 이동하 교수의 근간은 반갑습니다.

로쟈 2006-03-15 09: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원제는 'Adultery'니까 그냥 '불륜'(혹은 '간통')인데 말입니다...
 

2월의 끄트머리이고 겨울의 끝이다. 그리고 내일이 봄이다. 봄풍경이 들어서기까지는 몇 주 더 걸리겠지만(그림은 러시아의 풍경화가 레비탄의 '봄 홍수'(1897)), 교정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차는 건 당장 (대개의 입학식이 예정돼 있는) 모레부터이다(그러면 나도 덩달아 좀 바빠지겠다). 여기저기가 북적거리겠지만, 가장 북적댈 곳은 건 강의 교재들이 판매되는, 북새통같은 구내서점이겠다. 그런 게 변함없는 내 주변의 풍경이다(한적한 봄풍경을 맞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새학기 개강도 출판계에서는 일종의 특수일 것이다. 눈에 띄는 책들이 부쩍 많아진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재나 교양학술서 범주에 들어갈 만한 책들을 북적거리기 전에(!) 몇 권 꼽아본다(일단은 점심시간 동안만).  

 

 

 

 

가장 먼저 꼽을 책은 학술명저번역총서로 출간된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한길사, 2006)이다. 아마도 다윈 자신의 책으론 <종의 기원> 다음으로 유명할 이 책이 이제서야 국역본을 얻었다는 건 한참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또 한편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법이기도 하다(1871년에 나온 책이니까 135년만에 한국어본이 나온 셈이다). 다윈과 다위니즘에 대해서는 우리시대의 가장 탁월한 다위니즘 해설자 리처드 도킨스의 <에덴의 강>(사이언스북스, 2005)을 참조하는 게 좋겠다. 다윈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갈라파고스, 2003)와 <30분에 읽는 다윈>(랜덤하우스중앙, 2004)도 워밍업으로는 좋겠다.

문제는 <인간의 유래>를 읽는 것이지만, 고전의 가치는 읽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모셔두는 데에도 있으므로 일단은 저마다 서가에 꽂아두고 볼일이다. 나만은 아니겠지만, 특별히 관심있는 대목은 다윈의 '성선택설'인데 그런 대목만 미리 챙겨읽는 게 흠은 아니겠다. 이때는 저래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사이언스북스, 2005)를 반드시 참조할 필요가 있는바 곁에 두고 같이 읽으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더불어 좀 여유가 있는 '교양인'이라면 제이콥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바다출판사, 2004) 정도를 <인간의 유래>와 나란히 꽂아두면 좋겠다. 이 책의 원제 'The Ascent of Man'(1973)는 다윈의 책 'The Descent of Man'을 뒤집은 것으로 "인간이 상상력과 이성, 정서적 예민함과 강인성으로 환경을 변화시켜온 문화적 진화의 상승과정을 담고 있"는 고전적 저작이다. BBC의 다큐 시리즈였는지라 DVD 타이틀로도 나와 있다.  

 

두번째 책은 패트리샤 처칠랜드의 <뇌과학과 철학>(철학과현실사, 2006)이다. 처칠랜드 여사는 남편 폴 처칠랜드와 함께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이며(이 분야에 대한 개괄적인 책으론 김영정 교수의 <심리철학과 인지과학>(철학과현실사, 1996)을 꼽을 수 있다), 폴은 국내에 '심리철학 입문서' <물질과 의식>(서광사, 1992)으로 진작에 소개된 바 있다(저자의 성이 '처치랜드'로 표기됐었다. 국내 학계의 관행이 어느쪽인지 모르겠지만, 이 부부가 별거하는 것도 아닌데 '처치랜드'와 '처칠랜드'로 따로 검색되는 것은 보기에 안 좋다). 이번에 나온 건 패트리샤의 저작이며 훨씬 두껍다(766쪽이고 원저는 560쪽. 물론 두께가 지성에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폴도 분발해야겠다).  

책의 원제는 'Neurophilosophy'(1986, 1989)이고, 이미 20년전에 나온 저작이다. 컴퓨터공학의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법한 분야인 만큼 다소 '낡아보이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거꾸로 20년을 버틸 수 있었다면, 이미 이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좀 낡은 책이 번역된 것인지, 고전적인 저작이 번역된 것인지는 관련 서평을 읽어봐야 알겠다(이런 서평도 제 때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드문 것인지?).

 

 

 

 

뇌 얘기가 나온 김에 요로 다케시의 <유뇌론>(재인, 2006)도 언급해 두도록 하자. 소개에 따르면, "다치바나 다카시와 함께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의 책. 2003년 출간되어 그해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바보의 벽> 등의 저작을 통해 해부학자로서의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사유와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바 있다. <유뇌론>은 요로 다케시 사상의 출발점이자 근간이 되는 저서이다. 유뇌론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뇌라는 기관의 법칙성을 통하여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유물론과 유심론 중 굳이 따지자면 유심론, 또는 관념론과 가깝다."(<뇌를 단련하다>란 다치바나의 책도 있지만, '뇌'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는 대조되는 일본적인 특성의 하나가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든다.) 

236쪽 정도의 분량이 그닥 미덥지는 않지만, 역시나 두께가 통찰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므로 한번 일독해봄 직하다. '뇌를 향한 두렵도록 새로운 시선'이란 부제를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지 확인도 해볼 겸. '새롭다' 싶으면 이미 알게 모르게 많이 소개된 요로 다케시의 세계로 푹 빠져들어가면 되겠다. "일본에 있을 때 일주일에 한번쯤 술을 마셨던 일본 친구가 그의 책을 권했다. 그는 일본인이라면, 아니 누구든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며 나무젓가락을 넣은 좋이에 '요로 다케시'란 이름을 써줬다. 그의 책 <유뇌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이 책을 추천한 전여옥 의원도 아마 '요로 다케시'의 팬인 듯한데, 겸사겸사 치매에 안 걸리는 법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런데 책에선 왜 "일본엔 요로 다케시가 있더라"라고 하지 않았을까?).

 

 

 

 

세번째 책은 한국칸트학회 편으로 나온 <포스트모던 칸트>(문학과지성사, 2006). 제목은 '포스트모던'하지만, 내용은 '칸트적인' 논문 모음집이다. 칸트학회장인 강영안 교수의 서명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기획자인 총무이사 서동욱 교수가 작성한 글임에 분명한 서문은 '그레고어 칸트와 그의 벌레 변신'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거기서 주장되는바, "이 책은 바로 이 칸트의 변신 '모던 칸트'에서 '포스트모던 칸트'로의 '변신담'이다."

이 화려한 예고편에 이어지는 것은 그러나 '칸트와 하이데거', '칸트와 라캉', '칸트와 레비나스' 등등이며, '칸트와 하버마스', '칸트와 로티'로 마무리된다. 칸트의 변신담이라고는 하나 '칸트'는 거의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꼴은 아닐까? 그 서론에서 인용되는바, "나는 옷을 벗고 <순수이성비판>과 담배 한갑을 들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풋볼>)나 "뒷주머니에 <프롤레고메나>를 넣어둔 것은 그 탓이야. 내가 슬럼프인데도 계속 이기고 있는 것도, 모두 칸트 할아범의 덕분이지."(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같은 대목들이 '포스트모던 칸트' 현상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면, 그와 정면대결하여 '칸트와 하루키'나 '칸트와 일본야구' 같은 글 꼭지가 아마도 '포스트모던 칸트' 변신담에 더 적합할 것이다.  

해서, 이 변신담은 아직은 제목과 서문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끝으로 이 책은 한국칸트학회 기관지 <칸트연구>의 특별호로서 16집 2호에 해당함을 밝혀둔다." 그리고 그렇게 읽을 때 이 논문집은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엽기적인 식탁이 아니라) 읽을 만한 논문들을 두루 갖춘 풍족한 식탁이 된다.

 

 

 

 

'포스트모던'이란 말이 나온 김에 또 언급해 두는 책은 마크 포스터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문화사>(이대출판부, 2006)이다. 원제는 'Cultural History and Pstmodernity: disciplinary reading and challenges' (1997)이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맥락 속에서 문화사와 관련된 쟁점들과 논제들을 검토하고 역사학의 미래를 전망한 책. 역사학계에 퍼져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역사학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지혜를 밝히고자 했다. 문화사를 다루는 데 있어 작용하는 인식론적 조건과 프랑수아 퓌레, 린 헌트, 미셸 푸코 등의 실제 연구 기록들을 사례로 점검함으로써 논지를 구성했다"고 한다. 230쪽의 컴팩트한 분량이므로 단숨에 읽으면 되겠다. 아니면 국내 필자들이 참여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푸른역사, 2002)이나 김현식 교수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2006) 같은 책들과 천천히 비교해 보면서 읽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다.

<푸꼬, 마르크시즘, 역사학>(인간사랑, 1990)이란 책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포스터는 이후에 <뉴미디어의 철학>(민음사, 1994), <제2미디어의 시대>(민음사, 1998),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기 전에 인터넷을 생각한다>(이제이북스, 2005) 등의 번역서명들이 말해주듯이, 주로 문화이론이나 미디어 이론 분야의 책들을 내왔다. 해서, '역사학'을 주제로 하고 있는 이번 신간은 한동안의 딴살림은 접고 애당초 그의 이름을 알린 <푸꼬, 마르크시즘, 역사학>의 '족보'를 다시금 잇고 있는 것으로도 읽힌다(그는 원래 직분은 역사학 교수로 돼 있다).  

 

 

 

 

네번째 책은 정치사상과 세계화 분야의 책으로 골랐다. 일단 가장 최근에 나온 두툼한 책으로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아카넷, 2006). "서구 정치사상의 중요한 줄기를 이루는 이데올로기의 개념과,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고 하니까 간단히 말해서 '교재'이다. 교재류의 특성상 '예리한 시각'을 담고 있을 법하지는 않지만, 교양의 토대는 튼튼하게 해줄 것이며 차후의 보다 깊이 있는 독서로 안내해줄 것이다. 작년에 바라다트의 <현대정치사상>(평민사, 2005)도 그런 책으로 보인다.

'정치사상'이 원론이라면 '세계화'는 작금의 현안이다. 이 주제와 관련한 책들은 차고 넘치지만,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를 넘어서는 길'이란 부제를 단 <세계화의 두 얼굴>(이른아침, 2006)이 일단 눈길을 끈다. "세계화와 불평등, 그리고 양극화 문제에 대한 비판서. '모든 이들이 똑같이 부유해질 수 있다'는 청사진을 걸고 나온 세계화 운동이 오히려 국가간, 계층간에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현상을 분석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이 책은 "세계화 시대의 부자들과 빈자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자들이 세계화 물결을 타고 어떻게 세계 경제를 장악했는지, 그리고 빈자들이 어떻게 끝없는 가난의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미국과 인도 등의 사례를 제시하여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국가 간에, 혹은 비(非)선진국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분석내용은 '상식적'인데, '넘어서는 길'이란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하다.

작년 연말에 나온 <진화하는 세계화>(아이필드, 2005)는 부제가 '현대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이고 원제는 'Many Globalization'(2002)이다. 제목 그대로, 다수의 다양한 세계화의 진행현황에 대한 리포트적 성격의 책이다. 이 세계화를 둘러싼 찬반 양론은 실상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귀결될 듯한데, 이 '차이'를 조망해주는 책으로 <비전의 충돌>(이카루스미디어, 2006)이 또한 눈길을 끈다. 저자는 "수세기에 걸쳐 지속되어 온 보수와 진보 사이의 논쟁을 '비전의 충돌'이라는 아이디어로 분석했다"거 하며, "미국의 대표적 두뇌집단 중 한 사람인 정치학자 토마스 소웰이 미 행정부 정책 자문의 경험을 바탕으로 30년간의 사상사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라고 소개된다.

소웰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해 온 두 가지 관점(비전)"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제약적 비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본성은 완벽해질 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무제약적 비전'이다." 이러한 비전관은 마치 본성(nature)과 양육(nuture)이라는 생물학 화두의 정치학 버전 같다. 하면,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김영사, 2004)도 같이 읽어봄 직하다(그렇게 다 찾아 읽으신 분은 내게 결론을 좀 알려주시압).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와 주디 시카고가 쓴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이 국역본의 부제인데, '여성과 미술'이란 주제사나 '페미니즘 미술사' 교재로 적합해 보인다.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세계 미술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여성 미술가들의 성취를 재조명했다. 남성 화가들의 그늘에 가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위대한 여성 화가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생애와 미술사적 업적을 소개한다"고 하니까.

공저자의 한 사람인 자마이카 태생의 영국 비평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1933- )는 전방위 작가인 듯한데(시인에다가 사진작가까지 겸하고 있다), 많은 교양미술서들을 집필했고 또 국내에 많이 소개돼 있다(그림 읽어주는 할아버지?). 내가 갖고 있는 건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시공사, 1999) 한권뿐이지만. 아래와 같은 사진이 그의 작품인데, 그만한 지명도라면 어쩌면 사진집도 국내에 소개될지 모르겠다.

덧붙여 교양미술 교재로도 쓰일 만한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연구, 2006)이 재출간됐다. 예전 판본에 대해 쓴 리뷰에서 나온 흑백 도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새로 편집하고 칼라 도판을 추가한 개정판"이 나온 것. 그런 수고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도 책의 장점이다. '교재' 정신에 충실한(턱없는 책값의 '교재'들을 나는 혐오한다).

06. 02. 28 - 03. 02.

P.S.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학자 자크 오몽의 책 <영화 속의 얼굴>이 번역돼 나왔다. 소개를 옮기면, "영화이미지들 중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얼굴 이미지'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담은 책이다. '영화'라는 매체와 '이미지'라는 표현 수단의 관계에 대해, 나아가 '이미지'와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방대하고 심도 깊은 사유를 펼쳐 보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학자 중 한 사람인 자크 오몽의 저서로, 그의 제자인 김호영 교수가 우리 말로 옮겼다." 그리고 예상과 다르게 400쪽이 넘는 듬직한 분량이다.

물론 <영화 속의 얼굴> 같은 책이 <영화미학>(동문선, 2003)처럼 영화학 교재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내게 더 흥미로운 건 <미학>이 아니라 <얼굴>이다. 한국영화통으로도 잘 알려진 오몽이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미 3~40년 전부터 한국 영화에는 임권택의 완벽하게 통제된 고전주의와 김기영의 장중하면서도 통속적인 가면 예술, 홍상수의 '모던한' 얼굴들, 봉준호나 박찬욱의 '기발함' 등이 평화롭게 계승되고 공존해왔다. 물론, 김기덕처럼 모든 장르와 스타일에 재능을 보이는 시네아스트들도 있었다... 판타스틱 영화나 초자연적 영화에서도, 조지 로메로의 산송장들이나 팀 버튼의 비현실적 피조물들, 혹은 만화영화로부터 유래된 슈퍼 히어로에서조차도,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여전히 '배우'의 얼굴이며 '타인의 얼굴' 이다."(강조는 나의 것, 레비나스의 상용구를 오몽에게서도 읽게 되는군!)

가령, 내가 작년에 본 영화들에서 <여자, 정혜>의 김지수나 <나의 결혼원정기>에서 수애의 얼굴은 영화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기억해 둘 만한 얼굴들이었다(이미지는 '이미지 버전'에 있음). '배우'의 얼굴이면서, '타인'의 얼굴. 그 무한자의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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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6-03-02 14:25   좋아요 0 | URL
요로 다케시의 '바보의 벽'은 저에게 책값이 매우 아깝다고 느끼게 했던 드문 책 중의 하나였는데...

로쟈 2006-03-02 14:30   좋아요 0 | URL
요로 다케시의 책은 읽은 게 없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라시니 '복음'입니다.^^ '바치바나' 정도라고 소개돼 있는데, 그건 아닌가 보죠?..

하이드 2006-03-02 14:53   좋아요 0 | URL
'여성과 미술'과 '세계화의 두얼굴'을 찜합니다.
'고전의 가치는 읽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셔두는데도 의의가 있으므로' 라니,
'아멘' 입니다.

瑚璉 2006-03-02 15:55   좋아요 0 | URL
제가 읽었을 때는 내용이 꽤나 피상적인데다가 구성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연과학 쪽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경력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저, 순전히 사견인데다가 내공까지 부족한 관계로 잘라 말하기는 무엇하니까 로쟈 님이 한 번 읽어보시고 의견을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6-06-17 21:23   좋아요 0 | URL
[뇌과학과 철학] 과연 덤벼볼만한 책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요. 누가 옆에서 조언 좀 해주시면 좋으련만....

로쟈 2006-06-17 23:03   좋아요 0 | URL
두께 때문에 엄두가 잘 안나는 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