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 강론 전문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마태 7,15)

▶대한민국 민주주의 심각한 위기 맞고 있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하여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했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하여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조중동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론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 많은 부분 속이고 있는 현실 더 큰 불행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 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경찰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 꺼지지 않도록 지키겠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은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2.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합니다.

4.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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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웨쥬의 생각
    from ways' me2DAY 2008-07-01 14:31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마노아 2008-06-30 23:55   좋아요 0 | URL
신부님이 '이명박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선창 시켰는데, 차마 그 말은 안 떨어지더라구요.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지만..;;;;

로쟈 2008-07-01 00:11   좋아요 0 | URL
이명박은 국민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요.--;

에링 2008-07-01 00:15   좋아요 0 | URL
로쟈님도 촛불집회에 참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로쟈 2008-07-01 12:20   좋아요 0 | URL
글이나 보태고 있습니다. 한데 요즘 같아선 연장전에 페널티킥까지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지난주 시사인의 칼럼이 문득 생각이 나서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0). '에세이스트' 김현진씨의 연재칼럼인데, '우리 안의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촛불 투쟁'은 승산이 없다고 주장한다. 시각 자체가 젊은 논객답지 않게 노숙(?)하다. 오래전에 읽은 칼럼마저 생각나게 한다(그래서 같이 옮겨놓는다).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고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 촛불 ‘문화제’ 때는 두세 번 참석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광우병에 대한 위협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고, 내 이웃과 가족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쓰러지게 될 거라는 상상은 SF영화처럼 낯설었다. 거리로 본격 뛰쳐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국 5월24일 이후였다. 처음에 거리로 나섰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8차선, 4차선 도로를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함께 걷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놀라워하면서도 불안해하고, 또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몰라 두려워했다. 그렇게 강제 진압이 닥쳐왔다. 바로 그날 이후부터, 퇴근 후 물먹은 솜 같은 몸을 말 그대로 질질 끌어서라도 광화문에 갖다두게 되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광우병은 멀었으나 물대포는 가까웠으므로.

처음에 구호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 “너나 먹어 미친 소”가 대부분이었지만, 폭력 진압이 거듭될수록 군중은 “이명박은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나 지도부 없이 비폭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분모는 분명히 존재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근심,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이다.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표를 주었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고해성사에 참여하듯 촛불을 켰다.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시사인(08. 05. 26) 그래도 우리는 MB와 대화해야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 겨우 3개월이지만 벌써 2~3년은 지난 것 같다. 대운하에 영어몰입교육에 0교시에 이중국적 허용에 쇠고기에…. 일 년에 한두 개 터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일을 꼽아보자는 이야기에 “투표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대답이 우스개로 나돌 정도니 국민이 느끼는 암담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을 이루는 이들이 부자라거나 아파트를 많이 가졌다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부자 정치인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정상적인 대화의 틀에 진입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을 배제한 채 쇠고기 협상을 진행한 뒤 “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라거나, 국민을 향해 손자 대하듯 “떼쓴다고 다 되는 것 아니다”라고 말할 리가 없다. 대통령의 측근도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땅 투기 의혹에 “땅을 사랑했을 뿐이다”라거나 “내 나이 11세 때 내 계좌에 있던 돈으로 아버지가 땅을 샀다”느니, 스칼렛 오하라에 워런 버핏이 따로 없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다. 시작은 고학생으로 미약했을지 모르나, 36세에 사장이 된 뒤 그의 인생은 심히 창대했다. 그는 자식을 위장 전입시켜 좋은 학교에 보냈고, 자기도 건축법 위반, 수뢰 의혹, 근로기준법 위반, 범인 도피, 사기 혐의 등으로 여러 사람 바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한 나라의 최고 공직자이자 동시에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 세를 준 건물 주인이며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세계에서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것이야 애틋한 부정일 터이며, 건축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사기 혐의를 받는 것쯤은 사업하다 보면 흔히 겪을 수 있고, 선거법 위반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일이리라.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그들’

훌륭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방법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저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실로 저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열렬히 믿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난 정말 땅을 사랑했다, 11세 때 내 계좌에는 정말로 돈이 많았다, 광우병 쇠고기가 무서우면 안 사먹으면 된다, 촛불 든 애들 공부하기 싫으니까 괜히 나와서 저런다, 집회 저거 배후 세력이 분명히 있다….

이 정권이 국민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자고로 사장과 직원 간 대화는 잘 안 된다. 사장은 직원을 끌어다 놓고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고는 “아 오늘 정말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라며 흐뭇해한다. 그런 사장 노릇을 몇 십년 한 이 대통령이 한순간에 그 습관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습관을 반드시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사원이 아니니까.

지금 상태에서 보면 그들을 정상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향한 대화를 포기할 수 없다. 희망이 안 보이면 끈질기게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대화하기를 체념하고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하며 그들을 포기해주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사인(07. 11. 26)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아버지와 대화하다 보면 과연 내가 이 사람의 직계비속이 맞는지 늘 의심하게 된다. 서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투다가 같이 핏대 세우고 있는 얼굴이 내 얼굴과 판박이인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사람 딸 맞구나 싶다. 그와 나는 이렇듯 거의 모든 면에서 취향과 견해가 다르다. 그는 공부를 사랑하고 나는 먹물을 혐오하고, 그는 분명 내가 모든 선거 때마다 민노당에 투표한 걸 알면서도 걸핏하면 나를 ‘노사모’라고 부르니 이건 뭐 어디에서부터 평행선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또 어영부영 잘 지내곤 하는 우리의 이 위태로운 평화는 최근 주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탓에 와장창 깨진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화끈하게 봉헌했을 때다. 신실한 개신교 목사로서 당시 그 발언을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평했던 아버지를 비롯해 모조리 독실한 신자인 이모들은 새벽마다 그가 대통령이 되라고 모여서 기도한다. 그런데 나는 그토록 뜨거운 기도를 받는 장로님이 하필이면 무대 위에서 성경을 찢고 생닭을 잡는 록 가수와 왜 그렇게 닮았는지 실없이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러면 또 그들은 나를 몹시 못마땅해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웃기를 그칠 수 없어서 피차 매우 곤란했다.

이명박 후보는 이번에 자녀들 유령회사 직원 등록 건으로 또다시 나를 화끈하게 웃기고 말았다. 아들딸을 본인 사업체 관리인으로 위장 취업시켜 8800만원을 탈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의 해명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딸이 결혼도 했는데 수입이 없어 집안 건물 관리나마 도우라 했고, 생활비에 보탬이 될 만큼 급료를 주었다”라는 것이다. 당신 일처럼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입을 꾹 다문 아버지 앞에 나는 그 집 자식들 부러워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 좋은 학교” 하면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좋은 학교 보내주고, “아버지 히딩크” 하면 히딩크와 사진 찍어주고, “아버지 돈이 없어요” 하면 “아버지 건물 관리나 해” 하는 아버지라니, 대통령 후보 이전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식이 바랄 수 있는 아버지의 최대치가 아닌가.

“옳지 못한 것 부러워하는 것도 죄다”

한참 웃다가 나는 문득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방금 내뱉은 말은, 100% 진심이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 때도 “아이고 우리 아버지면 얼마나 좋을까. 나한테 못되게 군 남자들은 죄다 야산에 묻혔을 텐데” 하고 농담 삼아 지껄인 것도 돌이켜보니 다 진심이었다. 정의가 실종된 부끄러운 아버지들의 제국을 만든 데 일조한 것은 뻔뻔한 자식들이었고, 그 아버지들의 힘을 더욱 강고히 만든 것은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사양하지 않으리라’ 는 자세로 그것을 바라본 나와 같은 ‘없는 집’ 자식들이었다.

옳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죄였다. 내가 이 후보의 자식 사랑을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내 아버지에게 그와 같은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버지가 너무 허약해서 기회가 없었을 뿐, 가능하기만 했다면 아버지가 먹여주는 단물을 얼마든지 빨았을 것이다. 제 가족, 제 집단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끄러운 아버지와 그것을 얼른 받아 삼키는 뻔뻔한 자식이 이루는 부정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근본에는 바로 나처럼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행여나 나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면 눈감아줄 준비가 언제라도 된 그 눈빛 역시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이란, 진보란, 좋은 날이란 이토록 호락호락한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올 리 없는 것인데도.

08.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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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6-23 08:54   좋아요 0 | URL
퍼 갈께요^^

로쟈 2008-06-23 23:33   좋아요 0 | URL
^^

BRINY 2008-06-23 10:55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인가 '속물이 뭐가 어때서? 다 그렇게 사는거야'라는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해진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그렇게 되어간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안그런 애들이 왕따 당하는 세상. 휴..

로쟈 2008-06-23 23: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IMF가 결정타였다고 봐야겠죠...

기록인 2008-06-23 10:00   좋아요 0 | URL
우리안의 이명박...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 꼭 집어 쓴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8-06-23 23:34   좋아요 0 | URL
꽤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마립간 2008-06-23 18:11   좋아요 0 | URL
http://www.newstoon.net/sub_read.html?uid=9484§ion=section2
김진호 미친소시리즈9

로쟈 2008-06-23 23:34   좋아요 0 | URL
같은 컨셉이군요...

스위스 2008-06-27 15:27   좋아요 0 | URL
중간에 있는 딩크횽아 사진 퍼갑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에 대한 재협상도, 내각의 쇄신도 모두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화물연대의 파업까지 가세한 탓에 정국은 더욱 어수선하다. '불도저'란 기대치에 걸맞지 않게 정말로 '대책 없는' 정부와 마주하고 있는 탓에 '촛불' 국면 또한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듯하다(물론 국민의 '정치의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놓은 건 이명박 정부의 최대 공로다. '경제 대통령'은 아무래도 헛말이었다). 국정을 책임질 의사나 능력이 없다면 일찌감치 '사후'를 대비해야 하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혹 브레히트의 시집이 그럴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어떤 시들을 읽어야 할지도 친절하게 짚어주고 있다.  

한겨레21(08. 06. 12) 브레히트가 대통령에게

참여정부가 물러나고 ‘오해정부’가 들어섰다는 농담을 들었다. 영어몰입 교육도 오해, 숭례문 국민모금도 오해, 언론사 성향조사도 오해, 급기야 검역주권 포기도 오해.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김소연, <마음사전>)라는 한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불과 100일 만에 이 정부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이해한 셈이다. 국민이 정부와의 결별을 심각하게 고민하자 이 정부는 그제야 소통 운운하면서 반성하는 척한다. 다들 알다시피 부인에게 폭력을 일삼는 남편도 술 깨고 나면 처절하게 반성은 잘하는 법이다. 이 정부는 도대체 소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심란한 마음으로 신간 시집을 뒤적였으나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다 오랜만에 브레히트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전문)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당신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산다. 행여나 빗방울에 맞아 죽을까봐 두렵다는 이 엄살은 또 얼마나 애틋한가. 정부와 국민의 소통이란 이런 것이다.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을 위해 산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것이고, 당신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소통’은 정반대에 가깝다. 일방적으로 말하려 하고 오히려 국민을 바꾸려 한다.

“6월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연맹 서기장은 스탈린가(街)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해결방법’ 전문)

이미 다른 칼럼에서 한 번 인용했지만 다시 옮겼다. 1953년 6월에 스탈린이 사망한 직후 동독의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동독 정부의 대답이 걸작이다. ‘정부는 인민들에게 실망했다.’ 브레히트의 냉소는 더 걸작이다. ‘차라리 인민을 다시 뽑아라.’ 이명박 정부도 2 대 8로 싸우려거든 차라리 국민을 다시 뽑는 편이 낫겠다.

이 두 편의 시는 소통의 극과 극을 보여준다. 앞의 시는 “아침저녁으로” 곱씹어야 할 진정한 소통의 방법을, 뒤의 시는 실로 간단하기 짝이 없는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이 시들을 대통령과 함께 읽고 싶다. 이 정부는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래도 감을 못 잡으실까봐 한 편 더 읽는다.

“이제 한 사람의 지도자가 된 당신은 잊지 말아라,/ 당신이 옛날에 지도자들에게 의심을 품었었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의심하는 것을 허용하라!”(‘의심을 찬양함’에서)

그래도 안 된다면, 그래서 만약 쇠고기 문제 어물쩍 넘어가고 마침내 대운하까지 강행한다면, 그때는 이런 시.

“칠장이 히틀러는/ 말했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갓 만든 회반죽을 한 통 가져와/ 독일 집을 새로 칠했다네./ (…) 이 신축가옥은 곧 완공됩니다!/ 그리고 구멍 난 곳과 갈라진 곳과 빠개진 곳들/ 모든 곳을 모조리 발라버렸다네./ 모든 똥덩이를 온통 발라버렸다네.// (…) 칠장이 히틀러는/ 색깔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배운 바 없어/ 그에게 정작 일할 기회가 주어지자/ 모든 것을 잘못 칠해서 더럽혔다네.”(‘칠장이 히틀러의 노래’에서)

청년기에 화가를 지망했던 히틀러를 ‘칠장이 히틀러’라 조롱하고 있는 시다. 대운하 강행을 발표하는 순간 우리는 ‘칠장이 히틀러’를 ‘불도저 이명박’으로 바꿔 읽으려 한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20세기 최악의 정치인과 비교하는 사태가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8. 06. 15.

P.S. 스탈린주의자로서의 브레히트의 면모에 대해서는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의 2부 3장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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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6-16 00:0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지젝이 읽은 브레히트를 재미있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로쟈 2008-06-17 00:27   좋아요 0 | URL
^^

마립간 2008-06-16 15:21   좋아요 0 | URL
나경원 대변인이 방송에서 '그럼 대통령을 바꾸시겠습니까?'라는 이야기한 것을 동영상으로 보았은데, 상대편에서 '그럼 국민을 바꾸시겠습니까?'라고 맞받아 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로쟈 2008-06-17 00:2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연두부 2008-06-16 13:0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책장 어딘가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을건데 함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ㅎㅎ

로쟈 2008-06-17 00:28   좋아요 0 | URL
한때 많이 읽히던 시집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6-18 23:31   좋아요 0 | URL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의 신조-불평은 얼마든지 말하라 그러나 나는 복종시키겠다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프리드리히를 부러워하지 않을까요.오...모름지기 지배자란 저래야 하는데...하면서...

로쟈 2008-06-19 00:01   좋아요 0 | URL
프리드리히의 신조는 칸트의 그것이기도 하잖아요. 비판하라, 하지만 복종하라...
 

오늘, 아니 정확하게는 어젯밤에 읽은 칼럼 중의 하나는 '한겨레 프리즘'에 실린 고명섭 기자의 '죽은 권력의 사회'이다. 현 정세를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듯싶다. 내친 김에 지나간 칼럼들도 몇 편 읽어보고 옮겨놓는다. 지난 두어 달의 추이가 그려진다.

 

한겨레(08. 06. 03) 죽은 권력의 사회

청와대를 저만치 두고 광화문 앞에서 수만명의 시민과 중무장한 공권력이 대치했다. 세종로 그 큰길을 좌우로 틀어막은 전경버스는 불통과 폐색과 단절의 상징물이다.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아무리 애타게 호소해도 버스로 둘러친 장벽은 요지부동이었다. 참다 못한 시민들은 장벽을 밀어붙이고 기어오른다. 불통이 된 권력은 그 안간힘을 향해 할론 소화기를 분사하고 물대포를 쏜다. 방패로 내리찍고 군홧발로 짓이긴다. 그러나 폭력이 커질수록 권력은 약해진다.

살아 있는 권력은 영향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영향받을 줄 아는 권력만이 살아 있다. 들뢰즈도 말하지 않았던가.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을수록 그는 더 많은 방식으로 영향받을 수 있다.” 영향을 줄 생각만 하고 영향을 받을 생각은 하지 못하는 권력은 그러므로 무능한 권력이다. 입력된 프로그램의 명령을 끝없이 반복하는 기계와도 같아서 망가지고 난 다음에야 멈춘다.

한의학에서 쓰는 ‘불인’(不仁)이라는 말은 인체의 마비를 가리킨다. 인(仁)이 없는 상태, 느낄 줄 모르고 아파할 줄 모르는 상태, 요컨대, 감수성이 말라붙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불인이다. 어질지 못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불도저에게 앞에 놓인 모든 것은 장애물일 뿐이다. 건물을 부수고 땅을 파헤치는 데 익숙한 불도저는 밀고 나가면 되는 줄 안다. 그것은 추진력이 아니라 무사유다. 현명한 스피노자는 말한다. “가장 큰 오만은 가장 큰 무지이며 가장 큰 무능이다.”

권력은 태풍과 같아서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을 때만 권력이다. 후끈거리는 대양의 열기와 습기를 빨아들이며 태풍은 힘을 키운다. 그러나 바다를 잃어버린 순간 태풍은 열대성저기압으로 변해 흩어지고 만다. 지금 민심의 대양은 인터넷에 떠 있다. 그런데도 낡은 관념에 붙들린 이 정부는 권부의 요직에 자기 식구를 앉히면 되는 줄 안다. 방송을 장악하고 신문을 들러리 세우고 사정기관을 틀어쥐면 일사천리일 줄 안다. 국민의 마음을 내다버린 권력기관은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껍데기일 뿐이다.

스피노자는 또 이런 말을 한다. “대중이 두려워하지 않을 경우, 대중은 두려운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이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겸손과 후회와 외경을 그토록 장려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그 대중을 위해 <에티카> 뒤편에 이런 말을 써 놓았다. “오직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가장 유익하고 가장 끈끈한 우애로 결합한다. 그들은 똑같은 사랑의 노력으로 서로 친절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오직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서로에 대하여 가장 감사한다.”

촛불을 나눠 켜고 우비를 나눠 쓰고 김밥을 나눠 먹으며 불인의 권력과 맞서는 대중이야말로 우애의 공동체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이름을 불러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인사도 하기 전에 벌써 오랜 친구가 되는 만남, 그 자유인들의 공동체야말로 현실로 나타난 이상이다. 반면에 낡은 권력의 장벽 뒤에서, 이 시련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야말로 허망한 권력에 사로잡힌 예속인이다. 광화문의 대치는 자유인 대 예속인의 대치다. 정부가 마지못해 ‘쇠고기 고시 연기’를 발표한 것은 말하자면, 시민들의 힘으로 전경 버스 몇 대가 끌려 나온 것과 같다. 그 버스들이, 장벽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는 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명섭 책·지성팀장)

한겨레(08. 05. 13) 대중지성과 촛불 민주주의

대중은 20세기 현상이다. 정치의 지각을 뚫고 일어선 대중의 출현에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대중의 맹목성과 수동성을 분석했다. 대중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경멸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대중이 정치의 주체이자 주인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때의 대중은 익명성과 평균성을 본질로 하는 대중이다. 대중은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괴력의 존재이지만 그 존재 안에는 지성이 결여돼 있었다. 뇌는 없고 힘만 있는 괴물이 그가 발견한 대중이었다.

오늘 우리는 대중과 지성의 결합, 곧 대중지성의 등장을 본다. 대중지성이라는 새로운 현상 앞에서는 르 봉의 설명도 가세트의 해석도 낡은 것이 돼 버린다. 촛불을 켜 들고 자기 얼굴을 비추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맹목의 군중, 사나운 폭도를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작은 불꽃들이 모여 어둠을 밝힌다. ‘촛불 민주주의’라고 해도 좋을 현상이다.

대중지성은 말하자면, 촛불의 네트워크다. 청계천에서 3만 개의 촛불이 타오르기 전에 인터넷에서 수십만, 수백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졸속협상·자화자찬·감언이설, 은폐와 변명을 낱낱이 적발·해부해 퍼뜨린 것은 인터넷 대중이다. 어떤 이는 광우병 위험을 알리고 어떤 이는 검역주권을 문제삼고 어떤 이는 합의문 내용을 분석하고 어떤 이는 정부의 앞뒤 안 맞는 해명을 추적한다.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퍼 나르고 댓글을 달고 문자를 보낸다. 지도부도 없고 관제탑도 없지만, 촛불만한 관심과 열정과 분노가 모여 거역할 수 없는 집합적 지성을 이룬다. 우리 뇌가 수없이 많은 뉴런의 집단 활동으로 창조성의 불꽃을 피우듯이, 인터넷상의 수많은 뉴런들이, 수많은 촛불들이 하나로 연결돼 거대한 지성을 산출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네그리와 하트는 말한다. “만약 천재적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대중의 천재성이다.”

그 지성의 힘이 현실의 정치권력을 흔들어 놓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누리집이 초토화되고, 대통령 탄핵 서명자가 130만 명을 넘어섰다. 대중지성의 위력에 당황한 정부는 배후를 찾는다고 법석을 떨었다. 배후 세력도 없고, 음모의 중심도 없다. 음모자가 있다면, 인터넷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음모자다. 인터넷을 통째로 철거하지 않는 한, 분노한 시민의 마음을 모조리 적출하지 않는 한, 음모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중지성은 네트워크 지성이다. 네트워크는 체로 걸러내듯 오류를 스스로 걸러내며 진화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지성이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뉴런의 총합인 우리 뇌가 총기를 잃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듯이, 대중지성이 자기 정화의 긴장을 놓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촛불이다. 촛불은 세상을 밝히기에 앞서 자기 얼굴을 밝힌다. 자기를 먼저 투명하게 내보인다. 그 투명함에선 거짓도 기만도 자라지 않는다. 정치가 앨 스미스는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의 해악을 치료하는 유일한 치료제는 더 많은 민주주의다.” 이명박 정부를 낳은 것도 민주주의이고 거기에 대항해 일어선 것도 민주주의다. 제도 민주주의의 결함을 메우고 극복하는 것은 촛불 민주주의다. 국가지성이 구멍 숭숭 뚫려 멋대로 날뛰고 고꾸라지는 걸 막으려면 대중지성이 더 많은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명섭 책·지성팀장)

한겨레(08. 04. 22) 윤리적 정치를 위하여

정치의 영토에서 진리를 추방한 사람은 한나 아렌트다. 아렌트가 보기에 정치와 진리는 섞여 앉으면 둘 중 하나가 죽는 상극이다.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독배를 받아 마신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무력함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정치는 진리를 실현하는 장이 아니라 진리를 죽이는 장이다. 반대로 진리가 정치를 장악했을 때 ‘진리의 폭정’이 시작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주장하는 이런저런 의견들은 진리의 눈으로 보면 무가치하다. 이 의견들을 쳐내고 제압하면 그것이 바로 진리의 독재다. 어떤 경우든 진리는 정치와 화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리와 가족유사성 관계에 있는 윤리는 어떨까. 진리를 추방한 아렌트도 ‘진실성’을 추방하진 못했다. 뻔뻔스런 거짓말이 정치적 효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길게 보면 끝내 진실성의 힘을 이기진 못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진실성을 포함한 윤리는 정치를 정치답게 만들어주는 필수 조건이다. 아렌트의 이런 견해를 욕망의 문제로 풀 수도 있다. 인간의 욕망은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윤리적 욕망도 있다. 물질적 향유를 넘어 자신의 삶을 윤리적으로 높이고 누리려는 욕망도 있다. 정치의 장에서도 이 욕망이 작동한다.

지난 몇년의 한국 정치는 바로 이 윤리적 욕망을 한없이 부추겼다가 끝없이 좌절시킨 과정이었다. 참여정부의 탄생은 이 윤리적 욕망의 한 극점이었다. 윤리적으로 하자 많은 후보를 제치고 또 ‘후보 단일화’ 약속을 선거 직전 파기한 비윤리적 일탈을 딛고 탄생한 것이 참여정부였다. 승리의 감격에는 윤리적으로 성숙한 정치에 대한 짙은 열망이 담겨 있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이 열망은 쉼없이 주저앉고 찌그러졌다.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살해될 때, 대통령 핵심 측근은 “사람 한 명 잡혀갔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냉정하게 무시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참수 장면을 보면서 국민은 깊은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국가가, 정치가 그 외상을 돌봐주기는커녕 되레 덧냈다. 윤리적 좌절감이 번졌다. 정권 초기 거셌던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은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1년 뒤 대통령은 야당에게 연정을 제안하는 폭탄 선언을 했다. 태생 자체가 반윤리적인 정당을 향해 동거하자고 내민 구애의 손은 참여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이들의 윤리 감각을 뿌리까지 흔들어 놓았다.

윤리적 허무의 자리에 남는 것은 물질적 욕망이다. 이후 선거가 윤리의 제어를 받지 못하는 물질적 욕망의 적나라한 전시장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은 윤리적으로 가장 의심스러운 후보를 눈 딱 감고 대통령으로 뽑았다. 새 정부 인사들의 윤리적 결격조차 대부분 용인했다. 지난 4·9총선은 그 대선판도의 재연이었다. 집값 상승 기대로 서울 시민들은 ‘뉴타운 사기공약’에 몰표를 던졌다. 지난 정권 시기에 윤리적 트라우마를 깊게 입은 사람들은 투표장을 외면했다.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는 여당 유력 정치인의 말이 유사-윤리적 쟁점을 이루었을 뿐이다. 통합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진보권은 이 쟁점 바깥에서 맴돌았다. 지난 총선은 우리 정치의 윤리적 욕망의 한 저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의 이번 선택이 조만간 회복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결과인지 아니면 향후 한국 정치를 규정할 구조적 조건을 보여준 것인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사람 하기 나름이다. 국민이 각성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민주·진보파 정치가 각성해야 한다.(고명섭/책·지성팀장)

08.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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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德不孤 必有隣, 1인용 게임에는 Virtual 이 없다
    from 암흑의마법에서정의의칼로 2008-06-06 07:33 
    德不孤 必有隣 제1 해석: 덕을 가진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에겐 반드시 이웃이 있기(따르기) 때문이다. A virtuous man is never lonely, He has neighbors. => 덕은 사회에 앞서 따로 존재한다. 목적이 된 덕. 제2 해석: 덕은 고립되어선 안된다. 반드시 이웃이(과) 있어야(소통해야) 한다. Virtue should not be isolated, it must be with neighbors. => 사회적..
 
 
게슴츠레 2008-06-05 13:54   좋아요 0 | URL
"윤리적 허무의 자리에 남는 것은 물질적 욕망이다."라는 문장을 보니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말이 기억나는군요. "고집스런 희망 뒤에 찾아온 것은 맥빠진 이기심이다."-<<냉소적 이성 비판 1>>

로쟈 2008-06-06 20:24   좋아요 0 | URL
덕분에 생각났는데, <냉소적 이성비판> 2권은 언제 나오는 건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냉소해야 하는 건지...

노이에자이트 2008-06-05 23:53   좋아요 0 | URL
인터넷 대중의 두 얼굴...황우석 사태 때의 네티즌들은 르봉이나 가세트의 대중관이 설득력이 있음을 실증했지요.당시 진중권 씨,PD수첩과 한겨레가 당했던 비난을 최근의 찬사와 비교해보면 참...진중권 씨가 당시의 황빠들을 파시즘 민족주의에 가깝다고 했죠.

로쟈 2008-06-06 20:23   좋아요 0 | URL
대중의 다면성에 대해서는 진중권씨 자신도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대중은 어리석다, 하지만 그들은 신이다, 라고 인용했던가요...
 

연일 계속되고 있는 촛불시위에서 20년전(87년 6월)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드물진 않다. 하지만 세상은 좀 달라졌고 시위문화 또한 그러하다. 웹2.0 기반의 인터넷이 새로운 '참여형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진단은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 민주주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것인지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오늘자 지면에 실리는 듯한 기사 두 편을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6. 03) '참여형 인터넷’이 민주주의 토양

새로운 정보화 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촛불시위대’가 집회·시위 문화에 일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가 ‘웹2.0’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웹 2.0이란 공급자 중심이던 초창기 인터넷 이용과 달리, 서비스 업체가 플랫폼을 이용자에게 개방하며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면, 이용자 스스로 참여와 소통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콘텐츠까지 만들어내는 ‘참여지향형 인터넷 이용 형태’를 말한다.

무선인터넷 활용한 현장 생중계= 과거에 특정 게시판과 사이트를 중심으로 정보교환과 연락이 이뤄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무선인터넷 기술과 동영상 중계가 전면에 등장했다. 이런 변화는 대규모 장외집회가 열릴 때마다 이를 중계해온 <오마이뉴스>의 중계방식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오마이뉴스는 그동안 텍스트와 사진을 중심으로 편집한 기사를 ‘현장 O신’ 형태로 시차를 두고 올려왔지만, 이번에는 동영상 현장중계가 중심이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방송팀장은 “현장에서 와이브로를 이용해서 중계센터로 송출해서 화면을 변환하고 자막을 입혀서 내보냈다”며 “전에는 생중계를 하려면 차 한 대 분량의 장비가 출동해야 했으나, 무선인터넷 덕분에 노트북과 캠코더면 충분해 기동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1일 하루 인터넷 중계를 본 사람만 122만2천명으로, 사상 최고치였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개인이 채널을 열고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프리카(www.afreeca.com)는 플랫폼 개방을 통해 이용자들의 적극 참여를 끌어낸 곳이다. 아프리카를 서비스하는 나우콤의 집계로, 촛불집회가 본격화한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생중계된 인터넷 개인방송의 누적 시청자 수가 400만명을 넘어섰다. 갈수록 생중계 채널과 시청자가 늘어 1일에는 2501개 채널을 통해 시청자가 127만명을 넘어섰다. 2500개가 넘는 중계 채널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채널당 200명인 접속자가 꽉 차면 자동으로 영상을 전달받아 방송하는 또다른 채널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우콤 박은희 팀장은 “노트북·캠코더·무선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생중계가 가능하다”며 “현장에서 노트북에 물린 캠코더로 찍은 영상이 편집 없이 실시간 중계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박 팀장은 “중계방송을 보다 집회현장으로 달려나갔다는 사람들도 많다”며 “서비스를 한 지 3년간 이번처럼 많은 이용자가 몰리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앞선 정보화 마인드= 이번 집회에서 중심으로 나선 10대들의 앞선 정보화 마인드도 변화를 설명하는 요소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청소년 세대는 휴대전화·캠코더 등 정보화 기기를 사용하는 능력이 20·30대에 비해 탁월하다. 이들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읽는 용도로 사용되던 인터넷 기술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박수호 사무국장은 “인터넷이 정보를 확산시키는 역할은 잘 하지만 구체적 행동을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게시판은 익명성이지만 휴대전화를 통해 친구에게 집회 참가를 제안할 경우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인터넷을 통한 인지 확산과 휴대전화를 통한 네트워킹으로 실제 참여를 이끌어낸 데에는 정보화 마인드가 뛰어난 청소년들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가담을 선동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성급하다. 윤영민 한양대 교수(정보사회학)는 “선동이란 잠시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로 대중을 속이려는 것인데 웹2.0 시대의 인터넷에서는 선동이 통하지 않는다”며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채널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잠시 동안 일부를 속일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구본권 기자)

한겨레(08. 06. 03) “공유와 연대는 우리의 힘”…실시간 ‘일파만파’

동호회 카페, 주부 모임 등 각종 온라인 소모임들이 빚어내는 인터넷 여론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싹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기민한 대응력. 편을 가르고 탁상공론할 시간도 없이 실시간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이들 온라인 풀뿌리 조직은 새로운 ‘피플파워’로 등장할 조짐이다.

■ 뒤흔든다=라인에서 형성된 ‘촛불 여론’의 힘은 시장까지 뒤흔들 정도다. 주방용 생활용품 전문업체인 락앤락은 1일부터 문화방송 라디오의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에 협찬을 중단했다. 진행자인 정선희씨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비하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뒤, 이 회사에 누리꾼들의 항의가 빗발친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과 고객상담실에 정선희씨가 진행하는 정오의 희망곡에 협찬을 하는 데 항의하는 글과 전화가 쏟아져 6월부터 협찬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자 다시 격려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또 2일치 <조선일보>에 광고한 업체들의 목록을 게시판에 올려놓고 전화 돌리기 운동을 펴고 있다. ‘조중동’ 웹사이트에 배너광고를 게시한 업체에도 항의중이다. 이들 사이트에 1일까지 배너광고 내보냈던 지마켓은 2일 배너광고를 아예 내려야 했다.

■ 끝이 없다=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와 주부들이 활동하는 82쿡, 마이클럽 등의 사이트에는 ‘조·중·동’ 3개 언론사에 광고를 실은 기업들 리스트가 올라온다. 기업 이름은 물론 고객 의견을 접수하는 전화번호, 사이트 주소까지 시시각각 ‘업데이트’된다. 한 누리꾼은 매일 주요 일간지 1면을 디지컬카메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전날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비교하기 위해서다.

누리꾼들이 올리는 정보들은 제각각이지만 여러 정보들이 스크랩되고 퍼날라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한 누리꾼이 ‘집회때 전경이 여학생을 밟았다’고 올리면 다른 목격담들이 합해져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다. 곧 이어 언론매체에 관련 동영상이 뜨고, 학생의 신상이 나오고, 현장에서 치료했다는 의사의 얘기도 더해진다. 조각조각의 정보들이 합해져 누리꾼들은 ‘폭력경찰 규탄하자’는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른다.

■ 빠르다=누리꾼들의 움직임은 실시간이다. 김이태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 연구원이 지난달 23일 ‘양심선언’ 글을 올리자 곧 이어 “김이태 연구원을 보호하자”는 글들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고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에 다음날 건기연 쪽은 “김 연구원을 처벌할 근거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청에서 지난달 “온라인 시위 주동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히자마자 시민들은 “나도 잡아가라”는 글을 실시간으로 올렸다. ‘새로고침’을 누르기가 무섭게 한 페이지씩 글이 올라오더니 경찰청 홈페이지는 결국 마비되기도 했다.

지난 1일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자 한 누리꾼은 구글어스에 대치 위치를 표시해 올려놨고, 곧 이어 초 단위로 현재 상황에 대한 댓글들이 달렸다. 신광영 중앙대(사회학과)교수는 “누리꾼들은 이른바 관료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기 때문에 사안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성과 내기도=누리꾼들의 이런 양태는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목우촌 등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던 기업들은 ‘국민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광고 중단 선언과 함께 사과문을 올렸다.‘촛불집회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던 정선희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일부 광고가 중단되는 경험을 해야 했다.(송경화 박현정 기자)

08.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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