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독자라면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모색, 1999)를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원제는 'Profit over People'이고 부제는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이미 10년 전에 나온 '고전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서다. 요점은 이 제목들에서도 확인된다. '비즈니스-프렌들리'한 정부와 기업의 이익(profit)이 국민(people)보다 우선하는 게 신자유주의라는 얘기.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노암 촘스키의 새로운 평론 모음집.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글들은 인터넷 진보잡지 <Z>에 기고된 글들이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전세계에서 일종의 계급 전쟁을 촉발하고 있는 친기업적 정치·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 투쟁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시민권과 정치권을 제한하려는 책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자유시장, 기업에 의한 여론의 지배를 통해 민간 기업의 이익만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강요하여, 결국 사회보장과 환경을 철저히 무시하는 결과를 낳은 소수의 폭력을 비판한다.   

10년 전 책에 대해서 뒷북성 멘트를 붙이는 것은 내가 아직 안 읽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책의 제목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기 때문이다(내일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해봐야겠다). 사실 촘스키의 또 다른 책 <미국의 제3세계 침략정책>(일월서각, 1999; 원래는 <미국대외정책론>(일월서각, 1985)이라고 출간됐던 책으로 원제는 '워싱턴 커넥션과 제3세계 파시즘')에 관해 찾아보던 차여서(유감스럽게도 절판됐다) 쉽게 연상됐을 수도 있다. 아무려나 경제상황 못지 않게 정치상황도 10년, 혹은 20년전으로 퇴행한 것처럼 보이는지라 읽어야 할 책도 덩달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듯싶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오늘의 멘트'로 정하고 엠파스에서 검색해보니 뉴스쪽으론 이런 칼럼들이 뜬다. 조선일보의 시론은 오늘자이고, 한겨레의 프리즘은 작년 봄의 것이다. 이 대조적인 칼럼을 읽자니 '국민'에 대해서, 그리고 국민을 빙자하는 '저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새삼스럽지 않더라도 한번 읽어보시길. 엠파스 검색시 나타나는 형광펜 표시는 일부러 놔두었고, 굵은 글씨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만평은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에서 가져왔다.

조선일보(09. 01. 10) [시론] 난동을 망각하는 죄(罪) 

1969년 일어난 도쿄대 야스다(安田) 강당 사건은 일본 학생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도쿄대는 전해부터 좌파 학생조직인 전공투(全共鬪)가 점령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더러운 제국대학 엘리트의 재생산을 막자는 것이었고, 그 뜻대로 도쿄대는 1969년도 신입생 선발을 포기했다. 1월 18일 경시청 기동대 8500명은 야스다 강당에 집결한 7000여 명 투쟁대에 대한 진압을 개시했다. 작전은 다음 날 강당이 불타면서 종료됐다. 이 치열한 공방전은 이틀간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풍속이나 패션으로 여겨질 만큼 막강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공투는 야스다 강당 극렬투쟁으로 학생과 시민의 혐오를 사고 사회로부터 외면됐다. 결국 이들은 소수 과격화 집단이 되어 요도호를 납치하고 해외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등 자멸의 길을 가게 된다. 도쿄대는 야스다 강당이 불에 탔던 흔적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폭력집단의 극단적 일탈행위를 후대에 길이 기억시키기 위해서다.  

1989년의 부산 동의대사건은 한국판 야스다사건이라 할 만하다. 동의대 총학생회는 원래 입시부정행위 때문에 교내투쟁을 시작했으나 노동절 날 느닷없이 파출소를 습격했고, 사태가 확대되자 전경 다섯 명을 납치했다. 끝내 경찰이 투입되자 시너와 석유를 바닥에 붓고 불을 질러 경찰관 7명을 사망하게 했다. 일본의 야스다 강당 사건과는 달리 이 엽기적 난동행위는 뒤틀린 역사적 판정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는 동의대 사건 주역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격상시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게 해준 것이다. 또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헌법재판소는 동의대사건으로 희생당한 경찰 유족들이 이 같은 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낸 헌법소원마저 각하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극렬투쟁이 되풀이되고 오히려 고무를 받아 확대 재생산된다. 광우병사태의 경우 우리 국민 다수는 소수집단의 조작에 놀아난 자신을 치욕스러워하고 그 음모자가 다시 준동 못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MBC의 왜곡방송 행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사직당국은 이들을 소환조사조차 안 하고 있다. 광우병사태가 진정된 지 반년도 안 돼 작금의 국회의사당 난행사태가 발생했지만 이것도 곧 잊힐 것이다. 현 정치행태로 보면, 민노당 대표를 포함해 시정의 폭력배처럼 난동한 국회의원들, 그 보좌관들은 아무 처벌 없이 넘겨질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넘지 못할 선이 없다. 한국사회는 파괴적 소수 정치집단의 광분(狂奔)에서 해방될 면역력이 없는 것이다.  

한 사회는 물적 토대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국가사회에는 누구나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가 있고 이를 수호하려는 국민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곧, 지식과 이성 수준, 법률, 도덕과 질서를 건전하게 유지하려는 국민정신이 존재해야 함을 말한다. 국민이 동의대사건, 광우병사태, 국회난동 등 되풀이당하는 유린(蹂躪)에 무감각한 것은 그만큼 국민정신이 마비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국민 새로운 사회발전을 수용할 수 없다. 비열한 소수 야만집단에 앉아서 당하는 국민 국제사회에서도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현 정권이 우선 정신적으로 강력해져야 한다. 광우병과 국회의 무정부 난장판은 모두 이명박 정권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이 정권은 상황을 피하고 타협했을 뿐이지 과거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법질서를 세움에 치열하게 나서지 못했다. 국가경영자의 결단력이 훼손됨을 보면 국민 정권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를 상실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 국가 운영방향을 단호히 세우고 명백한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향후 국정파괴의 책임자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그들은 기억력이 짧고 단기적 인기영합 약속에 쏠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 국회는 이미 18대 의원의 역사적 난동현장을 모두 청소해 버렸다. 그러나 지난 20일간의 국회파괴사건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 국민 이 기록물을 국회 로텐더 홀에 365일 24시간 전시하도록 강력히 꾸준하게 요구해야 한다. 과거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이 어떻게 선진국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8. 04. 25) [한겨레프리즘] 철탑에서 본 대한민국 주식회사

인천지하철 부평구청역 3번 출구 옆 지상 25m 0.6평짜리 공간. 잠깐 올려다봐도 아찔한 철탑에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지엠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가 터져 나온다. 한 사람은 그곳에서 시린 겨울을 보냈고, 또 한 사람은 잔인한 봄을 견디고 있다. 회사 서문 앞에선 또다른 노동자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오늘로 120일을 넘긴 고공농성과 18일째 이어온 단식. 원청업체인 지엠대우차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고, 정부도 이렇다 할 중재 노력이 없다. 대화를 기다리는 이곳엔 철거 위협과 벌금 고지서가 날아든다.   

지엠대우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찾아가 노사 화합의 상징으로 치켜세운 곳이다. 비정규직의 철탑 농성장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그는 이번 미·일 방문에서 “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시이오(최고경영자)다”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친기업’을 넘은 ‘국가의 기업화’ 선언이라 할 만하다. 외국인 투자자들한테 박수를 받은 발언 뒤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300일을 넘긴 이랜드 노동자들의 복직 요구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교도 자율화하겠다’며 0교시-우열반을 허용해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몬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건강보험을 민간의보로 바꿔 가겠다고 말한다. 고공철탑 위 비좁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동자, 등수 공개 압박감에 모의고사를 잘못 봤다며 몸을 던지는 아이, ‘손가락이 잘려도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서 봉합수술을 받지 못하는’ 영화 <식코> 장면처럼 의료비 부담에 가슴을 졸이는 환자들.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풍경이다. 경쟁과 시장화라는 구호 아래 사회 공공성은 뿌리째 흔들린다. 정부는 국민 섬기기보다 기업에 대한 봉사를 우선시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경쟁력 없는 건 희생돼도 어쩔 수 없다는 섬뜩한 맹신이 퍼져간다. 사회적 약자는 ‘다수의 이익이 먼저’라는 이데올로기 앞에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런 모습은 국민과 소통 없는 통상정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위해 광우병 위험까지 수입하는가’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라는 대한민국 최고경영자의 소신이다. 정부는 국회에 비준동의를 조속히 해 달라고 압박할 뿐 보완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대답이 없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마저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최대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들의 절박한 호소는 ‘희생 불가피론’에 묻힌다. 함께 대책을 고민해 주길 바라는 최소한의 희망조차 번번이 배신당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성을 지키는 건 정부가 할 일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무책임을 자율로 포장하는 이명박 정부. “(국가의) 기업화는 대중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여론을 조종하며, 세상의 운영방법에 대한 기본적 결정권을 소수 권력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촘스키의 저서 <그들에게 국민 없다>에 실린 경고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에서 졸지에 대한민국 종업원으로 바뀌어 버린 듯한 지금, 대한민국 주식회사에 묻는다. 국민이 낸 세금을 쓰면서 정부를 기업처럼 운영해도 되는가?(정태우) 

09. 01. 10.   

P.S. 김영봉 교수의 칼럼에서 배울 점이 많다. 조선일보를 요즘 거의 보지 않아서 이렇게 노골적인 '선동'도 오랜만에 읽어본다. "향후 국정파괴의 책임자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그들은 기억력이 짧고 단기적 인기영합 약속에 쏠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 유권자들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에 언론과 사회단체에서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 백번 맞는 말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도 그 말 그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왜 있잖은가. '747'이니 '3000포인트'니 '뉴타운'이니 하던 말들. 제발 현 정권과 정치인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두었다가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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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기의 생각
    from bbb's me2DAY 2009-01-11 11:09 
    로쟈님 알라딘 블로그 (제대로된 읽을꺼리들을 이야기해주시다니 느무 좋음)
 
 
노이에자이트 2009-01-11 00:08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 칼럼 정말 과격하고 섬뜩하네요.무서워요.야스다 강당 사건을 왜 저런 식으로만 볼까요? 전형적인 강경우익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았군요.굉장히 익숙한 논리예요.5공 때도 야스다 강당 사건 그리고 적군파...비판하는 다큐멘타리를 텔리비전에서 방영했지요.

로쟈 2009-01-11 20:50   좋아요 0 | URL
5공때와 뭐가 다른지 슬슬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똑같이 반민주적 정권인데, 사실 경제는 더 안 좋죠...

cretois 2009-01-11 00:28   좋아요 0 | URL
조선의 어제 사설도 막상막하죠. 국민 혹은 유권자의 상당수가 이런 신문에 동조(!)하는 현실 역시 괴기스럽습니다. 미네르바와 아고라들에 찬성하진 않지만 이런건 정말 옛날의 '토끼몰이'를 연상케하는군요.

로쟈 2009-01-11 20:50   좋아요 0 | URL
당장은 이렇게 망해가는구나, 내지는 말아먹는구나란 생각밖에는...

2009-01-11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1-11 20:51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고 다이나믹하죠. 외신란에도 자주 오른다잖아요...^^;

jouissance 2009-01-11 19:50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괴기스러운 풍경입니다. 70%의 이 나라 신문독자들이 저런 어처구니 없는 선전선동으로 도배된 기사를 매일 읽고 있다니 말입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퍼센티지입니다. 저 70%가 이 나라 저질 민족주의와 결합해 유사시 어떤 형태로든 파시즘 태동의 토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미래입니다. 어떻게 보면 파시즘에 가장 취약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쥐박이 정권은 유사 파시즘이라 봐야겠지요. 로쟈님도 조심하세요^^ 쥐박이 친위대원들이 로쟈님 글까지 호시탐탐 감시하고 있을 줄 모릅니다. 아다시피 저들이 들이대는 죄목이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잖아요. 정말 쥐박이 무리들이 벌리고 있는 짓거리들을 보고 있자면 화염병 던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겠어요. 대체 무슨 이런 회괴망측한 놈들이 있습니까..ㅠㅠ

로쟈 2009-01-11 20:52   좋아요 0 | URL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여럿 계시네요...^^;

jouissance 2009-01-11 22:02   좋아요 0 | URL
저는 훗날 무지 쪽팔릴 것 같아서 기회가 주어지면 최소한 '구류'라도 살고 나오려구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년 뒤에 '그래도 이 아빠는 쥐박이 정권에 저항했단다' 한마디는 날릴 수 있는 명분은 쌓아야지 않겠어요...^^ 어제 미네르바 동영상을 보면서 조금 아쉽더라구요. 쥐박이 정권을 향하여 '의연하게' 한마디 던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ㅠㅠ

로쟈 2009-01-11 22:21   좋아요 0 | URL
아고라에는 문체를 분석한 글들도 올라오던데, 아무래도 제 생각엔 '미네르바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고티 2009-01-11 23: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국민'은 '없'군요!
 

교과부가 '역사' 교과서에 이어서 '도덕' 교과서에까지 손을 댄다는 기사가 떴다.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실재' 취지는 그러한 부인의 제스처 속에 숨어/드러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도덕적으로 약점 없이 출범한 정권인 만큼 공직자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도덕'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성'이 문제인 정권인 만큼 도덕 교과서를 손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이미 걱정할 수준은 한참 지난 듯하다...   

한겨레(08. 01. 06) 교과부, 새 도덕교과서 ‘평화교육’ 통째 삭제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부터 중학생들이 쓸 새 도덕 교과서에서 ‘평화교육’ 부분을 삭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집필기준’을 갑자기 바꿔 집필자들과 출판사에 보냈다. 도덕 교사들과 집필자들은 “민족 통합과 통일을 강조하는 교육을 포기하고 옛 냉전시대의 안보교육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5일 교과부와 도덕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교과부는 기존의 ‘중학교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평화의 가치와 갈등 해결 태도 및 기술을 중심으로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접목시킨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한 ‘집필기준 수정안’을 지난달 새롭게 만들어 출판사 등에 보냈다. 기존의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은 옛 교육부가 교사와 관련 학회 등의 의견을 들어 2007년 8월 최종 확정한 것이다. 도덕 교과서는 2007년 2월 7차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었으며, 검정 교과서는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하려면 ‘집필기준’을 따라야 한다.

집필기준 수정안을 보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되”라는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다. 또 애초 기준에서 ‘새터민’과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쓰도록 한 것을 ‘북한 이탈 주민’으로만 쓰도록 했다.

북한에 대한 서술 기준도 대폭 수정됐다. 애초 집필기준에는 “남북한 간 체제의 차이와 경제적 우월성”을 구분하고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는 긍정적 측면도 포함해 균형 있게 기술”하며, “북한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과서 내용 체제를 구성한다”고 돼 있었으나, 이런 대목이 대부분 삭제됐다. 대신 수정안은 “남북한 간 차이와 북한 사회에 대해서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균형적으로 기술”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통일 환경의 변화에 대해 진술하고, 통일 대비 과제들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도록 했다. 김일성 항일무장투쟁과 주체사상의 경우 애초 기준에서는 역사적 증거 자료가 확인되면 언급할 수 있게 했지만, 수정안에서는 아예 다루지 못하게 했다.

현재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출판사별로 이미 집필이 끝나 검정 절차에 들어갔으며, 중학교 2~3학년용은 최근 집필이 시작됐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서울 상암중)은 “교과서가 냉전시대 북한을 바라보던 관점으로 돌아가고, 통일교육이 안보교육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남북 체제 차이를 인정한 민족 통합적 통일이 아닌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 흡수통일을 강조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시각’을 배제한 채 사실관계 위주로 기술하자는 의견이 있어 수정안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김소연 기자) 

한겨레(08. 01. 06) 거꾸로 가는 통일교육…체제 우월성 내세워 북한 적대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중순 만들어 고시한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기준 수정안’은 체제의 우월성을 내세워 북한을 적대시하는 등 옛 냉전시대의 통일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8월 마련된 집필기준을 근거로 도덕교과서 집필을 해온 저자들은 “어떻게 여론 수렴도 없이 이처럼 갑자기 내용을 바꿀 수 있느냐”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과부의 집필기준은 18쪽 분량으로, 중학교 1~3학년 공통 기준과 학년별 집필기준으로 나뉜다. 이번에 수정된 통일교육 영역은 △북한 사회에 대한 서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 △평화교육 시각 도입 등 8개 항목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평화교육’ 항목은 완전히 빠졌다. 평화교육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낮추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의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도입됐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는 “통일교육에서 평화교육을 빼자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일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서술 방향 지시는 남북관계의 성과를 부정하고, 우리의 우월성을 앞세워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평화통일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사안이고, 교육과정에도 ‘평화교육’이라는 용어가 없어 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한 교사는 “교과서를 쓰는 데 집필기준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라며 “기준에서 평화교육이 빠지면 교과서를 집필할 때 ‘평화교육’ 자체를 언급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집필기준 수정안은 북한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관점을 부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의 인권 문제와 남북한 차이에 대해 ‘객관적 사실’를 강조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잣대로 북한을 대하는 것은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칫 대결구도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집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집필기준을 수정하면서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자인 또다른 교사는 “전체적인 (교과서) 틀 구상이 끝났는데, 관점이 바뀐 집필기준이 고시되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은 “2007년 당시 교사·학자 등 7개 단체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평화교육 도입 등이 집필기준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번 수정안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용어변경 수준의 수정이기 때문에 따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김소연 정민영 기자)    

한겨레(08. 01. 06) [사설] 이번엔 ‘도덕 교과서’ 조작인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검인정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을 느닷없이 바꿔, 출판사들에 보냈다고 한다. 정부 직권으로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누더기로 만들더니, 이번엔 집필이 끝났거나 집필 중인 도덕 교과서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다시 쓰도록 한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의 집필기준에 따라야 채택되는 만큼 출판사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한다.

변경된 집필기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변경 절차와 배경이다. 교육부는 국정이던 도덕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2007년 8월 집필기준을 마련했다. 역사는 물론 윤리나 경제·사회 영역의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 평가가 존재하는 만큼, 이런 요소들을 반영하는 과정은 집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당시 교육부는 집필기준을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 교육 현장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번엔 어떤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이명박식 속도전’을 교과서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집중적으로 변경된 집필기준은 통일교육 영역이었는데,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5월 통일교육 지침서를 만들어 1만여 초중고교에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국정 체제에서 교사 참고용으로 배포됐을 뿐, 학계나 교육 현장,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과는 무관하다. 지침에 포함된 것은 오로지 정파적 시각으로 무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의견뿐이다.

변경된 내용도 국민 정서나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통일교육을 미래지향의 평화교육에서 냉전회귀의 대결교육으로 돌려놓은 게 고작이다. 북 체제와 변화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관점 대신, 안보 위협 요인으로서 북한, 실패한 체제로서의 북한 등 대결적 관점을 요구한 것이다. 학생에게 식민지 근대화론, 독재체제 불가피론, 냉전적 체제 대결론을 주입하려 했던 근현대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맥락이다.

검인정 제도는 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시각·해석·평가를 제시하고 학생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창의적 학습력을 키우려는 제도다. 이렇게 정치권력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른 시각과 해석을 강제하고 학생의 사고와 판단을 조작하려 하면서, 검인정 교과서를 표방하는 것은 사실상 사기다. 사기꾼 소리를 듣느니, 시대착오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국정 체제로 되돌리는 게 차라리 떳떳할지 모른다. 

09.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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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06 09:25   좋아요 0 | URL
하하 이런.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군요.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06 22:50   좋아요 0 | URL
아프님의 '교과서 이야기'가 아직 안 올라오네요. 재미있을 듯싶은데요.^^

마늘빵 2009-01-07 20:02   좋아요 0 | URL
쓰더라도 수위조절을 해야 해요. -_- 아직 발표도 안 난 교과서고, 회사에서 보면 안되니까요. 하하.

비로그인 2009-01-06 11:26   좋아요 0 | URL
고국의 어린 학생들이 걱정입니다.

로쟈 2009-01-06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학생들이야 어차피 별로 신경도 안 쓸 문제인데(역사도 그렇지만 교과서만 갖고 공부하는 건 아니니까요)저로선 이게 집권층과 관료층의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라서 우려스럽습니다. 하긴 '우려'할 단계도 지났죠...

무해한모리군 2009-01-06 11:51   좋아요 0 | URL
걍 교과서 만들어서 배포하지 왜 저럴까요?

로쟈 2009-01-06 22:53   좋아요 0 | URL
네, 정답입니다. 드라마도 알아서 만든다고 하니까. 조만간 교과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로그인 2009-01-06 23:06   좋아요 0 | URL
"우려할 단계도 지났다"고 하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군요. 조금 전, 아침 일찍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기 위해 딜러 서비스에 갔다 왔습니다. 대형 TV가 켜져 있는 대기실에서 몇몇 미국인들과 1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 TV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이 간간히 보도되고 있었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각자 책을 보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할 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TV에서 뉴욕 거리의 유태인 두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오바마가 이스라엘 폭격을 조금도 차질없이 전폭 지지할 것을 촉구하더군요. 아침부터 이런 광경을 보고 와서 그런지 로쟈 님의 댓글이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군요.
 

방송법 개정안(개악법안)에 반대하는 MBC노조의 파업(전국언론노조의 파업으로 확산될 예정이라 한다) 때문에 지난 여름에 흘려보낸 책을 다시 책상맡에 갖다놓았다.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2008). '집단지성, 공영방송을 말하다'가 부제이고, 말 그대로 '집단지성' 편저로 돼 있다. 이미 현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가 "1단계는 <와이티엔> <아리랑> 등의 사장을 특보단 출신으로 낙하산 임명하는 것, 2단계가 한국방송 사장 교체, 그리고 마지막 3단계가 문화방송 민영화"라는 것은 공공연한 기밀이었는데, 그렇게 다 노출된 시나리오를 이처럼 대놓고 철면피하게 밀어불일 줄은 몰랐다. 이런 게 '공구리 정신'인가? 여차하다간 그 공구리에 같이 파묻힐지도 모르겠다(그러니 '부탁해'는 너무 얌전한 부탁이다!). 늦게라도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8. 08. 09) 위기의 공영방송, 당신이 지켜줘!  

2008년 4월29일 <문화방송>(MBC) ‘피디(PD) 수첩’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1편을 방영했고 그 며칠 뒤부터 촛불시위가 시작됐다. 이로써 ‘피디수첩’은 한국 사회를 뒤흔들면서 ‘68혁명’에 비견되고 브로드밴드(인터넷 광대역) 직접민주주의 실험의 선구로 칭송받는 역사적 사건인 촛불시위의 진원지가 됐다.  

하지만 아주 다른 시각도 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조선일보> 7월7일치 ‘시론’에서 다우너 소와 아레사 빈슨의 죽음에 관한 피디수첩의 “모든 장면들은 허위로 드러났다”고 단정했다. 그는 이어 “그것은 무서울 만큼 교묘하게 계산된 공포와 선동의 메시지”였고 “사실과 주장, 진행자의 말실수와 오역 등이 적절하게 섞여 소름끼칠 만큼 잘 만들어진 거짓의 몽타주”였다고 다시 확언했다. “이러한 몽타주는 순진한 어린 학생들, 그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 가정주부들, 그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들을 선동”하였으며, 그 결과 “이성이 마비되었고, 분노가 치솟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우리 사회는 또다시 갈가리 찢긴 가운데 정부와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였다. 무엇보다도 진실이, 그리고 진정한 언론이 붕괴하려 하고 있다.”  

윤 교수 주장대로라면 촛불시위에 참가한 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한 방송사의 무서울 만큼 계산된 공포와 거짓 선동에 놀아난, 다른 아무런 정보도 주체적 판단력도 없는 맹목의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정부 신뢰 추락과 국가 위기 사태도 이 용납 못할 방송사가 내보낸 저주받을 단 하나의 ‘거짓 몽타주’ 프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정권의 횡포로부터 피디수첩을 지켜 달라고 호소한 피디들은 “자신의 잘못을 선동의 정치로 돌파하려는” 파렴치범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론이 무게를 갖는 것은 그게 바로 정부 뜻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펴냄)에서 이 시론을 인용하며 “현재 수사 중인”, 그리고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검찰의 논고문도 이처럼 과격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동적인 용어로 넘쳐나고 있다”며 “저널리즘의 윤리적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사안을 확대·과장한 이면에는 어떤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누가 정말 선동적이고 정치적인지를 묻고 있다. 그는 피디수첩 위법 논란과 관련된 주요 쟁점들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 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로 단정해서 한쪽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몰아갔는가.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인간광우병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 보도했는가. 피디수첩의 보도는 언론의 감시·견제 역할이라는 공적 권한을 넘어 의도적 왜곡 보도를 시도했는가. 그리하여 피디수첩은 과연 거짓의 몽타주인가. 이를 하나하나 검토한 김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추가협상까지의 과정, 장관고시의 성급함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모든 잘못을 ‘피디수첩’에 돌려 단죄하려 든 것은 윤 교수의 성급한 단견이 아닐까.” 한때 유행했던 빌 클린턴 어법을 약간 비틀어 김 교수의 속내를 표현한다면, “문제는 정부의 엉터리 협상과 처방이야, 바보들아!”쯤 될까.  

“조·중·동이 떠들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질의하고, 검찰이 수사하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결정하는 기가 찬 공조체계”(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가 단죄하려는 것은 당연히 윤석민 교수가 아니라 그가 피디수첩에 덮어씌운 혐의들이다. 일방적이고 일사천리다. 공조체계가 노리는 것은 전면적 방송 장악이라는 게 이 책 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금 전 교수가 지적한 그 기가 찬 공조체계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피디수첩, 엠비시, 공영방송만을 표적으로 삼는 게 아니다. 인터넷과 네티즌, 촛불집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탈법적인 저질 우중, 폭력배, 폭도로 싸잡아 매도한다. 광고 보이콧 운동을 펼치는 소비자들을 고발하고, 인터넷 카페를 문닫게 한다. 마치 자신들이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선한 약자인 양, 나머지를 좌파, 빨갱이, 반사회·반정부·반국가 집단으로 내몬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을 정치와 언론 권력자들은 “‘10년 좌파세력의 저항’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들은 존재 여부도 불분명한 좌파, 까놓고 말해 ‘빨갱이’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실책과 범죄행위를 모두 빨갱이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1950년대에나 통했던 매카시 수법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놓으려 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많다. 상대를 다른 의견을 지닌 공동체 구성원이 아니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 이런 전면적인 권력투쟁의 파괴적인 영향이 곧 해일처럼 밀려올지도 모른다.  

<MBC, MB氏를 부탁해>는 바로 이런 현실을 대중들에게 보고하고 그들을 공영방송의 외부자가 아닌 핵심 당사자로 인정하면서 그들이 미디어 공공성 지키기와 발전을 위해 직접 행동의 주체로 나서도록 촉구하는 ‘공영방송 담론 대중화’ 기획, ‘엠비시에 관한 새로운 대중적 집단 글쓰기 실험’이다.  

따라서 외부의 적에 대한 항쟁만이 아니라 거리의 저널리스트들과 연대하라(김형진 미디어운동가), 거리의 민중성이 갖는 민족주의적 속성을 경계하라(민임동기 <미디어스> 기자), 시민민주주의와 결합하라(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엠비시 내부를 향한 주문들도 담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MB氏에게 엠비시를 부탁해선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한승동 선임기자)   



■ 정부의 언론장악 이래서 안된다 
“상식이 좌파로 공격당하는 이 비상식적 환경을 두고 볼 수 없었다.” <MBC, MB氏를 부탁해>를 전규찬 교수와 함께 기획한 ‘문화관찰자’ 완군(29·사진)씨는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국가기관을 총동원해도 <한국방송> 사장 한 사람 날릴 전망조차 불투명해지지 않았느냐. 어떤 정권도 언론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자충수다.” 왜 그렇게 볼까?  

“<한겨레>도 그렇지만 <문화방송>도 오너가 없는 회사다. 지난 10여년 방송인들이 콘텐츠를 생산할 때 간섭이나 외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 책 ‘닫는 글’에서 김현철 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지부 홍보국장이 얘기했듯이 그들은 자기 아이템에 대해 안팎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들에겐 그게 상식이 돼 있다. 그런 그들을 이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윗선은 가능할지 몰라도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실무 성원들에겐 절대 불가능하다. 아직 정권의 간섭이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거기까지 가면 내부의 그들이 들고일어설 것이고 시민들이나 1인미디어 등 외부 지원세력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정권의 목표는 그들 내부문건을 통해서도 드러났듯 명확하다. “1단계는 <와이티엔> <아리랑> 등의 사장을 특보단 출신으로 낙하산 임명하는 것, 2단계가 한국방송 사장 교체, 그리고 마지막 3단계가 문화방송 민영화다.”  

책을 기획한 건 지난 6월 중순. 그러니까 책은 기획한 지 달포 만에 초고속으로 제작 완료했다. “촛불시위 이후 문화방송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크게 호전되면서 책 만들 궁리를 했고, 문화방송 노조 쪽과도 한번 해 보자는 사전 교감을 했다. 전규찬 선생과 필진 섭외를 함께 했는데, 이미 많이 알려진 전문가들은 될수록 빼고 젊은 활동가들 중심으로 짰다. 모두 25명이 참여했다. ‘집단지성’을 통해 문화방송을 권력의 정치적 계산에서 지켜내고 더 좋은 방송으로 만들자, 문화방송의 공영성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내자, 문화방송한테서 우리한테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 그런 게 기획의도다.”(한승동 선임기자)  



■ 공영방송 민영화 이래서 안된다 
공영방송의 민영화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김동준(36·사진)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문답식으로 정리한다.  

1. 선진국과 비교해 공영방송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1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영국, 일본은 1공영체제지만 한국의 방송환경과 공영방송 운영방식은 이들 세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프랑스는 공영방송이 넷이나 되고 네덜란드는 셋, 독일과 스웨덴·벨기에·덴마크·스페인·포르투갈은 각각 둘씩이다.”  

2. 공영방송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니 축소해야 한다.
“궤변이다. 현재 조·중·동의 신문시장 점유율은 70% 수준이지만 뉴스프레임 형성과 논조 주도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중·동의 시장장악이 95%를 넘어선다. 공영방송은 조·중·동이 그나마 최소한의 저널리즘 흉내라도 낼 수 있도록 압박하는 구실을 한다.”  

3. 민영화로 경영합리화를 이룰 수 있다.
“이윤 창출만을 추구하여 서비스 질의 하락을 초래한다. 보수세력이 케이티(KT) 민영화로 얻을 수 있다고 그토록 강조한 ‘국익’은 어디로 갔나? 케이티 수익의 50%는 외국에 유출되고 있고 사원은 6만여명에서 3만여명으로 축소해 무려 3만여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4. 민영화를 통해 여러 공급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수용자 복지가 증진된다.
“오히려 프로그램 다양성이 훼손될 여지가 크다. 민영화가 콘텐츠 제작 주체의 증가나 다양화로 이어지기보다는 대중들과 광고주의 취향에 부합하는 상업적 프로그램만 양산한다. 드라마는 ‘불륜’ ‘삼각관계’라는 시청률 문법만 강조되는 쪽으로 획일화하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연성화한 외주제작 정책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  

5. 공공부문을 축소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다.
“신자유주의와 국제 금융자본에 굴복하는 거다. 민영화로 포항제철은 외국인이 전체 주식의 60% 안팎을 소유하게 됐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정부지분을 인수한 자본 역시 외국 금융자본이며, 주요 공기업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는 주체도 사실상 외국자본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큰 신문사와 재벌,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외국 미디어자본이 장악하게 될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08.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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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30 17:13   좋아요 0 | URL
조중동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는 많아요.촛불시위 때 조중동이 곧 망할 것 같았지만 이름없는 조중동 애독자들의 뒷심이 아직은 상당한 것 같아요.

로쟈 2008-12-31 01:21   좋아요 0 | URL
관성인지 무관심인지 그것도 아니면 (탁석산의 지적대로) 실용주의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애독'은 아닐 거라고 믿어봅니다...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그나마 기분을 풀어준 기사는 '88만원 세대'의 칼럼이었다. 필자는 대학생 논객. 비록 청소년 울리는 '알바'의 실상을 여실히 폭로하고 있는 칼럼이지만 그 주장의 예리함과 미더움 때문에 오히려 흡족한 기분이 들게 했다. 오늘 아침 환승하기 위해 서 있던 용산역 플랫홈에서였다. 연구소에 도착해서 칼럼을 다시 찾았더니 중앙일보의 칼럼까지 덩달아 눈에 띄었다. '기성세대'의 감각을 여실히 전해주는 것이어서 나란히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모아놓는다. 제목을 '88만원 세대 vs 기성세대'라고 붙여놓을 수도 있겠다...

경향신문(08. 12. 19) [88만원 세대 논단] 청소년 울리는 ‘알바’

11월부터 약 한 달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디든 지원자가 넘쳐났고, 위치도 좋고 시급도 괜찮은 곳은 나 같은 비숙련자들이 넘보기가 힘들었다. 며칠을 집중해서 알바 사이트를 뒤지다 보니, 알바 구직 시장에서 쓰이는 몇 가지 상투적인 표현들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용모 단정’. 고등학생 때는 정말로 ‘용모’가 ‘단정’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한 미모 하는 사람만 연락하라’는 뜻이다.

시급 협의. 시급 협의라고 써놓은 데 치고 최저임금 제대로 주는 곳을 못 봤다. 만일 직종이 편의점이라면 십중팔구 최저임금에서 한참 깎아서 준다. ‘가족 같은 분위기.’ 알바 체험 게시판에 따르면, 불합리한 일이 생겨도 ‘가족처럼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한다. ‘왜 임금이 더 작아요? 좀더 쉬게 해 주세요’라고 하려면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으로 막으려는 수사다. ‘열정을 가지고 일하실 분!’ 예전에는 ‘근면 성실한 분’이 차지했던 자리다. 제 정신 가지고 일하려면 견디기 힘든 격무라는 소리 되겠다. 실제로 “일이 힘들어요. 열정을 갖고 하셔야 합니다”라고 면접 때 이야기했던 그 패밀리 레스토랑은 실제 일을 해 보니 보통 체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조금 괘씸하게 느껴진다. 근면 성실은 습관과 인내로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열정은 내가 그 일에 대한 강한 목표가 있고 일에서 주체적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에서 가지는 적극적인 태도다.

일을 시작해 보니, 왜 그렇게 열정 어쩌고 하면서 힘들다는 걸 강조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는 곳에서 접시와 컵의 물기를 닦았는데, 동작 자체가 힘이 드는 건 아니어서 처음에는 할 만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곧 점심시간이 되고, 식기세척기에서 끊임없이 그릇들이 나오고, 그릇을 빼내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접시를 닦아 쌓고, 낑낑대며 홀에 갖다 놓고, 그러고 나면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그릇들이 또 한참 쌓여 있고….

그런데 앉을 수가 없었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앉을 수가 없었다. 거의 열두 시간을 그렇게 서서 접시를 닦았다. 행주를 말릴 틈도 없이 접시를 닦다 보니 젖은 행주와 접시에서는 고릿한 냄새가 올라오고, 손은 퉁퉁 부었다. 나보다 몇 주 먼저 일을 시작한 아이는 주부습진으로 손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월급날까지 한 달을 채워야 임금을 주기 때문에 참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 전에 그만두는 아이들은 일을 했어도 시급을 받지 못한다.

월급날 통장을 확인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적었다. 다음날 물어보니 식사시간 한 시간을 제하고 주는 거란다. 내가 29분을 일했다 해도 30분을 다 채우지 않고 퇴근하면 그만큼의 시급은 없다. 모두 노동법 위반이다. 그러나 알바 사이트에는 광고만 가득 있을 뿐, 관련 법규에 대한 안내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 수능 끝난 고3인 알바생들은 알바가 원래 이런 것이려니, 원래 돈은 그렇게 주는 것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일하고 있었다.

얼마 전 노동부에서 최저임금제 적용범위 완화를 추진했다는 소식과,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가파르게 올라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언급을 들었을 때, 언젠가 소설에서 읽었던 좀 적나라한 표현이 떠올랐다.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먹지.” 그러나 친애하는 노동부 장관께서는, 우리의 완전 소중한 기업들이 혹여나 최저임금의 굴레에 발목 잡힐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우리의 똑똑한 기업들은, 굳이 그렇게 법을 고쳐가며 돕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의 위대한 힘으로, 적정 임금을 알아서 조정하고 있다. 아,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이응소 | 인터넷 논객)

중앙일보(08. 12. 19) [노재현 시시각각] 바닥을 겁내지 말자

며칠 전 충북 제천의 청풍호(충주호) 부근을 다녀왔다. 짧지만 인상 깊은 여행이었다. 이 일대의 명물인 벚나무들은 아직 봄을 기다리며 은인자중하고 있었지만, 호수를 끼고 도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는 철을 타지 않았다. 호숫가 산마루에 자리 잡은 청풍문화재단지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1983년부터 3년에 걸쳐 옛 가옥과 누각·향교, 생활물품, 고인돌·비석 따위를 옮겨 조성해 놓았다.

뜻밖에도 문화재단지 안의 고가(古家)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문화재’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거의가 어릴 때 살고 쓰던 집 구조요,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내 또래 이상의 연배라면 누구나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쟁기·고무래·삼태기·다래끼·종다래끼·망태기·도롱이에서 오줌장군과 안방에 턱 놓인 사기 요강까지, 정겨웠다. 탈곡기와 씨아(목화씨를 빼내는 기구)도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고, 누에를 치던 집이었는지 섶이랑 잠박도 전시돼 있었다.

고가의 부엌 아궁이에서는 지금도 매캐한 연기 내음이 나는 듯했다. 그랬다. 솔가지와 장작을 때다 어느 시점엔가 연탄 아궁이로 바뀌었다. 나는 지금 기름 때는 집에 산다. 고가의 도구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에서 나왔다. 공장 물건은 드물다. 그만큼 결핍의 시대, 내핍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십대에 갓 들어선 나도 생활도구에 관한 한 문화재와 첨단을 두루 경험하지 않았는가. 압축성장의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시대에 한국전쟁까지 겪은, 더 연세 드신 분들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돈을 찾으러 시골 단위농협에 들렀다. 자그마한 사무실 창구 옆에 알사탕이 소복이 놓여 있었다. 공짜 서비스용이다. 한 쪽엔 무료 커피 자판기도 있었다. 저 알사탕이 옛날엔 얼마나 선망받았던가. 세계적인 뇌영상 과학자인 조장희(72·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박사의 회고록이 떠올랐다. 그는 62년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 유학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와 커피 자판기, 인기척이 나면 자동으로 켜지는 복도등, 더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 모두 처음 대하는 것들이었다. 한국은 나무들이 땔감으로 잘려나가 대부분 민둥산인데, 스웨덴은 온통 빽빽한 숲 천지였다. 강의실마다 필기구를 비치해 학생들이 공짜로 쓸 수 있게 한 것도 놀라웠다. 조 박사가 스웨덴에 가는 데 든 항공료는 550달러였다. 그런 거금(?)을 들여 해외에 가기 때문에 국무총리의 출국 결재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당시의 한국은 가난했다.

많이 쓰이는 영어로 ‘Been there, done that’이라는 말이 있다. ‘I have been there, I have done that’을 줄인 표현이다. 말 그대로 ‘거기에 가 보았고, 해보았다’는 뜻이다. 현장을 충분히 목격한 데다 온몸으로 겪어도 보았다는 말이다. 한국의 기성세대야말로 ‘Been there, done that’ 세대다. 식민지에, 전쟁에, 산업화 시대 일중독에, 민주화 열망에, 게다가 10년 전 혹독한 외환위기까지 현장마다 가 있었고 빠지지 않고 체험한 세대다. 만만치 않은 내공이 몸에 배어 있다. 문화재급 유물에서 시작해 첨단 제품까지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젊은이들이 ‘88만원 세대’ 운운하며 상대적 빈곤과 취업난을 호소하지만, ‘가 보았고 해 본’ 기성세대가 겪은 적빈(赤貧)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성세대가 예전에 경험한 바닥보다 더한 바닥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바닥도 두렵지 않다.

경제위기의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쯤이 바닥일지 감 잡기도 힘들다. 그러나 바닥을 겁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숱한 고난으로 단련된 기성세대가 이번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노재현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08. 12. 19.

P.S. 경험과 내공에 차이가 있고 그런 만큼 생각이 다른 두 세대가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 '역지사지'하는 수밖에. 자기 주장을 맛깔나게, 그리고 당당하게 펼칠 줄 아는 이응소 학생이 아예 일간지 논설위원을 하고, 만만치 않은 내공에다가 안해본 일이 없어서 어떤 바닥도 두렵지 않다는 노재현 논설위원이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열정'을 갖고 접시를 닦으면 되겠다(이번에 사표를 내신 1급 공무원들께서도 솔선수범하여 같이 닦으셔도 좋겠다). 서로 한 달만 바꿔서 일한 다음에 다시 칼럼을 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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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8-12-20 01:14   좋아요 0 | URL
두 칼럼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물론 느껴지는 감정은 다르겠지만요.

로쟈 2008-12-20 00:18   좋아요 0 | URL
저도 착잡하면서 한편으론 '이런 거로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Ritournelle 2008-12-20 02:02   좋아요 0 | URL
아! 우리 훌륭하신 노위원님의 글은 곳곳에서 무시무시하고 괴기스러운 좀비들이 유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이응소 학생의 글은 단단하고, 앙칼지면서, 사태의 정곡을 단칼에 베어내는 느낌이듭니다. 둘 다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 한쪽에선 참된 실천의 천사들이 살아 움직이고, 다른 한쪽에서 거짓된 말들의 악마들만이 미쳐 날뛰네요. 답답합니다. ㅠ.ㅠ

로쟈 2008-12-20 10:53   좋아요 0 | URL
아주 선명하게 나눠지는 건 아닙니다. 사실 기성세대의 상당수도 나름으론 혈기방장한 반항적 청춘이었으니까요...

2008-12-20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0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8-12-20 10:25   좋아요 0 | URL
어떤 바닥도 두렵지 않다는 그 '말의 바닥'이 두려워지는군요 --;

로쟈 2008-12-20 10:48   좋아요 0 | URL
'바닥이여 어서 오라!'는 것이니 존경할 만한 자신감입니다. 다만 지지율 바닥도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리더십을 떠올리게 하네요...

마노아 2008-12-20 12:22   좋아요 0 | URL
p.s에 환호하고 싶군요. 진짜 바닥이란 걸 디뎌본 적이 있으신건지...

로쟈 2008-12-20 23:48   좋아요 0 | URL
네, 부당한 노동조건과 착취에 맞서본 경험이라면 88만원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텐데요...

무해한모리군 2008-12-20 13:43   좋아요 0 | URL
이 시대를 살아내면서 제가 느끼는 절망, 무력감과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한켠 잘라 보여주고 싶습니다.

로쟈 2008-12-20 23:48   좋아요 0 | URL
약간의 희망은 보존하셔야 하는데...

노이에자이트 2008-12-20 15:33   좋아요 0 | URL
저에게 이영희 씨가 군사정권 때 크리스찬 아카데미 활동 때 쓴 논문이 있는데...왜 저렇게 되어버렸을까요.노동부인지 전경련인지...

로쟈 2008-12-20 23:49   좋아요 0 | URL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연말까지 혀를 차게 되는 일의 연속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일들이 요즘 한국사회에선 떼로 일어난다('블랙 스완'이 떼지어 날아다니는 듯하다). 고난도의 관심분산 전략이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일제고사에 반대했다고 교사들이 파면당한 일도 현 정권의 자랑할 만한 치적일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교사들의 부당징계 철회투쟁을 지지하며 관련칼럼과 수기를 모아놓는다. 다른 일로 좀 일찍 일어났다가 또 속 터지는 기사들만 읽었다...  

한겨레(08. 12. 19) [기고] 시험을 치르지 않을 헌법적 권리 / 박경신

최근 전국수준 학업성취평가(일제고사)에 학생들이 응시하지 않도록 허용했다는 이유로 담당 교사들이 해임·파면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 논란의 당사자들은 기본적으로 교육권의 주체가 학생임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징계당한 교사들은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이 아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한 것은 학생이며 교사들은 이 학생들이 억지로 시험을 보도록 강제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할 권리가 있다면 이를 침해하지 않은 교사는 상을 줘야지 징계를 할 수는 없다.

학생의 교육권이 헌법적으로 독특한 점은 교육자의 방침에 따라 교육 수용자(학생)의 권리가 일정하게 제약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더라도 일정한 ‘강요’를 통해 조금씩 재미를 들이도록 하여 나중에는 큰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방법이다. 하지만 강요의 도구는 교육적이어야 한다. 곧 공부를 잘 못하거나 열심히 안 하는 학생은 평점을 낮게 주거나 다음 단계의 교육과정으로 진급시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징계 또는 과태료 등의 강제수단을 동원할 수는 없다.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거나 다른 학생의 교육을 방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은 보통 학생이 한 단계의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수하여 다음 단계의 교과과정으로 이행할 준비가 되었는지, 또는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학력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학생 본인이 진급이나 학력평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해 부모의 동의를 얻어 그 시험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 해서 교육당국이 그 부모나 학생을 징계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시험을 영점 처리하면 될 일이다. 시험을 보고 틀린 개수대로 학생들을 때리던 과거의 교육은 명백히 잘못된 것임을, 우리는 몸서리치며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학생이 부모의 동의를 얻어 ‘일제고사’를 보지 않겠다는 것은 학생의 헌법적인 권리였으며, 교사들은 학생의 헌법적 권리를 존중해줄 의무가 있었고, 그러한 의무를 이행한 교사들을 징계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일제고사’는 다른 시험과 달리 순전히 교육당국이 각 학생 및 학교의 성취도를 전국적으로 판단해 보고 교육시스템의 효율성을 자체평가하기 위해 진행했던 것이다. 순전히 교육당국의 정보수집 활동으로 학생의 교육권 보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시험은 학생들이 더욱더 거부할 권리가 있다. 미국의 몇몇 주들은 주 단위 졸업시험을 보지만 어떤 학생도 이 시험을 볼 의무는 없으며, 어떤 교사도 학생들이 빠짐없이 이 시험을 보도록 하지 않았다고 하여 징계당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이와 같은 자신의 권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교육당국과 학교가 위계와 강압으로 시험응시를 강요하고 있었고, 일부 교사들이 그 학생들이나 그 부모들에게 학생들의 권리를 고지해 준 것 이라면 교사들은 공익적인 내부 고발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학생은 자신의 전국 석차를 알지 않을 권리가 있다. 치기 싫은 시험을 침으로써 다른 학생들이 자신들의 전국 석차를 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 이번 일제고사는 교육시스템의 점검 및 학교간 성적 비교 등 순전히 교육당국의 행정적 필요로 수행된 것이다. 학생은 이에 동원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징계를 당한 교사들은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므로 이들 교사들에 대한 징계는 위헌이다.(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경향신문(08. 12. 19) [금요논단]홉스의 국가論, 한국의 국가폭력

근대 초기 영국의 철학자였던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늑대와 같아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인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없다. 이런 자연적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통해 인간의 폭력적 공격성을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국가라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가신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도 타자의 폭력으로부터 나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울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것이 홉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국가이론은 서양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잘못된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다른 사람의 폭력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이야말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행패를 부리지 않으면 개인의 삶이 훨씬 더 평화롭고 조화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국가기구는 시민을 적으로 삼아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시민들 사이의 전쟁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국가기구와 시민공동체 사이에 전쟁상태를 스스로 조성해 왔던 것이다.

자유·권리 지키는 울타리
이 세상에 국가와 시민공동체 사이에 불화가 없는 나라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 역시 특정한 개인들인 까닭에 다른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조정되는 한에서 국가는 정치적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나라 안에서 자기와 이해관계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대등한 시민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폭력으로 억압하려 하거나 적대적으로 말살하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경우 만약 국가기구가 표면적으로라도 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소수자들을 희생양 삼는 파시즘적 전체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기구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국민을 적으로 몰아간다면 그 때는 국가기구와 대다수 시민공동체 사이에 전쟁상태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파시즘이 서양 나라들의 병리현상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기구와 시민공동체 사이의 전쟁상태가 수백 년 이래 나라의 불치병이었다. 왜냐하면 국민 모두의 공공적 이익이 아니라 자기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이 이 나라 지배계급의 집요한 습속이기 때문이다. 공공적 이익을 지키는 데는 지극히 무능하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들이 이 나라의 상류층인데, 이들은 자기들의 그런 무능과 탐욕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틀어막기 위해 다시 국가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에 원한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이를 테면 자동차를 몰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운전면허를 취소하여 가난한 장애인 부부의 생계를 막거나, 일제고사에 반대했다 하여 여러 명의 교사들을 한꺼번에 해고하는 것이 모두 그런 권력 남용이라 할 수 있다. 사소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 이런 일은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폭력이다. 그런데 이런 만행을 법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것이 한국의 권력집단인 것이다.

‘촛불’을 짓밟은 권력 남용
멀리는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가까이는 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서 20~30년 만에 한 번씩 엄청난 봉기가 나라를 뒤흔들고 때때로 국가기구를 전복시켜온 까닭도 바로 이런 야만적인 국가폭력 때문이다. 권력집단이 동료시민을 적대시하고 법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할 때 그들은 이를 통해 시민 봉기의 에너지를 스스로 축적하게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씨알들의 분노는 지진처럼 대지를 뒤흔들고 썩은 권력의 성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지난 봄, 여름 이 나라를 밝혔던 촛불은 명백히 그런 지진의 전조였다. 머지않아 그 전조는 현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니 가난한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이 추위를 견디자.(김상봉 | 전남대 교수·철학)

오마이뉴스(08. 12. 18) 졸업앨범에서 사진도 빼겠답니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학생들의 대체수업을 허락한 교사 7인에게 파면 및 해임 처분 결정이 17일 최종 통보됐다. <오마이뉴스>는 징계를 받은 7인의 교사 가운데 한 명인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12월 16일 수요일 저녁, 농성장에 도착한 난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과 만남, 나라는 사람을 말로서 드러내야 하는 인터뷰, 앉으면 이어지는 회의, 추운 농성장,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생경하기만 하고 피곤했다. 그리고. 내일 학교에 가면 해임통지서를 받을 것이란 말이 선생님들 사이에 술렁이고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중징계 방침 이후부터 지난 주 수요일, 해임결정까지, 오늘의 이 장면을 난 꽤 구체적으로 상상해내려 했었던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어렵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선배언니의 차를 타고 조금 일찍 농성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찾아온 교감 선생님이 내민 해임 통지서
집에 가면 뭘 해야 하나? 글을 써야지. 학교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학교 선생님들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얼굴 뵐 용기가 나질 않아 편지로 대신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아이들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아니 떠올려야만 했다. 오늘 이 저녁이 내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을 준비할 유일한 시간인 거다. 집에 가면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아 어쩌지. 아이들 하나하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이날 모든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불가능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허깨비 같은 몸을 이끌고 선배와 함께 들어와 내일 해야 하는 일, 그래서 지금 준비해야 하는 일을 나누어 생각해봤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문을 열었다. 내 앞엔 교감선생님과 부장 선생님이 서 계셨다. 한 손엔 누런 봉투. 현관에 서서 봉투를 내미신다.

해임통지서.

이건 그동안 상상해낸 장면과 너무 다르다. 10월부터 늘 이런 식이다. 조금 더 견뎌내기 위해, 덜 상처받기 위해 난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뒀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 앞에 전개되는 건 늘 그 이상이었다. 많은 말을 쏟아냈던 것 같다. 나와 이 사람을 둘러싼 이 기묘한 공기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선.

"교감선생님, 저 그다지 다른 사람 아닙니다. 우린 그냥 아이들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 다른 것뿐이에요.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교감선생님 마음 할퀴려고 그러는 거 아니란 거 제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학교를 떠나지만 전 정말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우리 조합원 선생님들, 그렇게 너무 상처주지 마세요. 모두 다 너무너무 열심히 하고 아이들 사랑하는 후배들이잖아요. 우린 그저 조금 다른 것뿐인데요. 제발 제발 알아주세요."

교감 선생님은 내일 학교에서 아이들 보는 건 어렵겠다고 하신다. 새 담임을 만나는 날인데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았으면 한단다. 새 담임을 맞을 시간은 있는데, 열 달을 고스란히 함께했던 우리 아이들과 내가 헤어지는 시간은 왜 주지 않는 거죠? 도대체 왜?

교감선생님은 이러니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교감선생님에겐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내 이야기만 하는 걸로 보이나 보다. 이것 또한 지침이라면, 난 또 부탁해야만 했다. 제발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짐싸는 것으로 하고 인사하고 나올 테니 모른 척하시라 했다. 이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17일, 교사가 아닌 신분으로 난 아이들을 만났다. 교문부터 막아서시는 교감선생님을 옆에 두고, 평소에 늘 출근하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은 모든 게 그대로였다. 아이들, 협동해서 다같이 꾸몄던 판화, 일하는 손 그림, 아기자기해서 모든 이가 부러워하던 내 책상, 모든 게 그대로인데 이제 이곳은 내가 설 곳이 아니라 한다. 밤새 머릿속에 뒤엉켜있었던 많은 말들 속에서, 겨우 몇 마디를 하는데도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복도에서 채근을 하신다. 아이들과 난 그냥 이렇게 헤어져버렸다.

아이들 보며 겉으로 웃었고, 속으로 울었다
다시 돌아온 농성장. 아이들의 문자메시지는 이어진다. '화이팅, 글로 갈게요, 어떠케 가요?, 선생님 곁엔 저희들이 있어여, 힘내요.' '오늘 급식 케익 나오는데, 저희 밥 먹어요 밥 드셨어요? 카레 나왔어요 카레 제일 싫어하는데, 이제 곧 수학경시봐요 응원해줘요.'

아이들이 곁에 있는 듯 나의 손가락은 핸드폰 위로 바쁘게 움직이고, 그렇게 아이들은 계속 내 옆에서 속삭이고 살아 움직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시교육청 앞까지 찾아온 아이들은 17일,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로 들려주고. 아이들은 촛불 문화제에서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또 선생님이 유도해서 집회 나왔다고 사람들이 말할까봐, 그게 걱정이 되어 발언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을 보며 겉으로 웃었고, 속으로 울었다.

나에게 학교는 유리로 둘러싸인 성이다. 소통하고자 하지만,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내 목소리는 투명한 벽에 부딪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 난 그 유리벽 밖에 있다. 세상은 나와 아이들을 떼어놓았다. 아이들 졸업앨범에서 내 사진을 빼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다시 한 번 오열을 터뜨렸다.

그냥. 그냥 오늘(17일) 하루는 좀 많이 힘들다. 하지만 늘 그랬듯, 난 다시 기운을 차릴 거고 일어날 거다. 이 거리에 나와 함께 서있는 사람들과 내 앞에 가로막힌 벽을 부수고, 난 다시 우리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0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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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19 15:15   좋아요 0 | URL
공교육의 경쟁력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한 이들.하지만 성추행 교사,학생을 구타하는 교사들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면서 이런 일에는 서슬퍼렇게 나서가지고 무슨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건지...학교를 군사정권 때의 반공궐기 대회장으로 만들려는 계획이 있나보죠.

로쟈 2008-12-19 23:31   좋아요 0 | URL
어차피 막가파식이니까요. 동료교사들이 얼마나 연대할지 개인적으론 궁금합니다...

Julio 2008-12-20 10:46   좋아요 0 | URL
제가 촛불에서 찾은 단어 '연대'란 단어 댓글 달아봅니다.
로쟈님이 말하시는 연대가 어떻게 될지....

식의주와 연계되면, 우리나라에선 어떤 식의 연대가 이루어질지...
저역시 금해지는군요!

갠적으로는 23일 하루라도 가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로쟈 2008-12-20 22:52   좋아요 0 | URL
암튼 여러 가지 방식의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