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한겨레에 실린 강명관 교수의 '고금변증설'을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4576.html).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이란 제목 자체가 이미 많은 걸 말해주고 있다. 안 그래도 오늘 시사IN의 사회면에서 기륭전자 두 노조원의 단식 농성이 60일이 넘었다는 기사를 읽고(그게 가능하다니!) '대단한 한국사회!'란 말을 속으로 되뇌어야 했다(필자인 김현진씨처럼 동조 단식은 못하고 점심 한끼만을 굶었다). "누가 굶으라고 했냐?"가 사측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보다 선명한 '계급의식'(일상어로는 '악'이라고 한다)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하지만 생각하면 슬프다. 단식밖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인지?)...

한겨레(08. 08. 16)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

흔히 옛날 문헌을 읽고 인용하지만 그 진위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 같은 관찬 문헌은 어떤 정파, 혹은 당파가 실록을 편찬하느냐에 따라 기록의 출입이 적지 않고, 사건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다르다. 문헌에 남은 것이라 해서 모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옛 문헌 중에서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고문서를 들 수 있다. 이것도 조작이 가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래도 고문서는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친다.

예전에 고문서를 연구한 책이나, 고문서를 모은 책을 훑어보곤 했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그중 내 눈길을 가장 끈 문서는 ‘자매문기’(自賣文記)란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남에게 파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문서’라는 뜻이다. 한두 가지 실례를 보자. 1862년 1월 서른한 살 된 사내 심성옥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 복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자식들을 50냥을 받고 원진사 집에 팔고, 자매문기를 작성한다. 문서 끝에는 차후에 만약 자신의 친척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서를 증거로 내세우라는 말도 붙어 있다.

이 문서는 최승희 교수의 <한국고문서연구>에 나오는 것이다. 같은 책에는 자매문서 몇 장이 더 실려 있다. 1869년에 작성된 문서를 보면, 이미봉이란 사내가 흉년에 먹고살 방도가 없어서 자신과 자신의 딸을 돈 15냥에 아산군수를 지낸 김씨 양반에게 팔고 있다. 인신매매는 어떤 사회나 중죄인데, 이 경우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내와 자식, 여기에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까지 모두 노비로 팔아먹고 있으니, 중죄 중의 중죄라 할 것이다.

이런 중죄를 저지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빈곤 때문이었다. 이런 부류의 자매문기가 적잖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가난에 시달리다가 자신과 가족을 부유한 사람에게 노비로 파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더 들어보자. 1731년에 작성된 자매문기에, 한영이란 사람은 굶주리고 얼어 죽을 지경이 되자 자신의 11살 된 딸 분절이를 아무 대가 없이 김귀일이란 사람에게 노비로 넘겨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1832년의 정정옥은 어머니의 장례 비용을 마련한다며 자기 아내와 자식을 돈 8냥과 쌀 한 섬을 받고 팔아넘기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노비로 파는 사람은 당연히 양민이다. 이들이 만약 경작할 토지가 있다면, 당연히 자신과 가족을 팔지 않을 것이다. 농민이 토지를 잃고 쫓겨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소수 양반지주의 토지 집적이었다. 박지원이 ‘한민명전의’에서 역설하고 있듯,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바닥나면, 나라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라의 기민(飢民) 구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하던 땅문서를 부잣집에 넘기고 곡식을 받아 연명한다. 이 기회에 부자들은 얼마 안 되는 곡식으로 안방에다 토지 문서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흉년이 들면 팔 것도 없고, 빚은 쌓이고 해서 땅을 떠나고, 마침내 자신과 가족을 파는 처참한 지경으로 전락하는 것이 농민의 운명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이 문제를 사회개혁의 핵심으로 생각했다. 경작하는 농민이 토지를 보유하는 것, 농민이 토지를 떠나지 않음으로 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실학자들 최대의 관심이었다. 이익이나 박지원이 농민에게 일정한 토지를 분배해 주고 강력한 법을 제정해 그 토지는 절대 매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견해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왜냐?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흡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바로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개혁이 될 리 만무했던 것이다.

토지를 헐값에 양반에게 건네준 양민은 마침내 자신의 신체와 영혼까지 양반 지주들에게 넘긴다. 그들은 자신의 몰락이 모순된 양반 지배체제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당장 자신과 가족을 사들인 양반지주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이들의 은혜가 아니라면, 굶주려 산골짜기나 들판에 뒹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사회에는 노비제도 같은 후진적 제도는 없다. 자신과 가족을 파는 사람도 없다. 대신 노동력 외에 다른 수단이 없어 오직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자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문제는 그 노동력을 구매하겠다는 쪽이다. 옛날 양반들이 굶주린 백성을 노비로 사들이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였듯, 이제 자본은 노동력을 사들이거나 말거나 자유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젊은이가 도서관마다 넘치고, 자기 노동력을 제값에 팔지 못하고 궁핍에 전전긍긍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수백만 명이다. 그들의 모습에 살기 위해 스스로를 팔아야 했던 조선시대 농민의 모습이 겹친다.

정치가 소수층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술책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먼 산에 난 불을 바라보듯 왜 딴청으로 일관하시는가. 비정규직의 애절한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없으니, 날마다 신문이며 방송에 이 문제의 해결에 골몰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보여야 하겠지만, 그런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무엇인지를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는 분들은 모쪼록 답을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강명관/ 부산대 교수 한문학)

08. 08. 18.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nada 2008-08-18 20:25   좋아요 0 | URL
노조원의 건강(혹은 목숨) 같은 게 쓸 만한 협상 카드가 될 거 같지 않아요.
저들이 겁낼 만한 걸 내걸어야 하는데, 눈도 깜짝 안 하잖아요.
정말 다른 방도는 없는 걸까요..

로쟈 2008-08-18 23: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궁금합니다...

마늘빵 2008-08-18 22:29   좋아요 0 | URL
-_- 투쟁하고 시위하는 우리가 손해볼 짓은 안하는게 좋을거 같아요. 이런거 안 먹힌지 오래됐죠. 우리는 저들이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있을거라 전제를 깔고 시작하지만, 그 전제가 잘못됐다는 걸 항상 뒤늦게 깨닫습니다. 너무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거죠. 양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건 아니란걸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처럼 말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주변에 깔렸어요.

로쟈 2008-08-18 23:25   좋아요 0 | URL
네, 양심을 기대할 일은 아닌 듯해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8 23:2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나라당의 든든한 핵심지지층이기도 합니다.그러니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현상을 즐기는 거죠.

로쟈 2008-08-18 23:24   좋아요 0 | URL
자영업자들은 그렇다고 쳐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그런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9 00:16   좋아요 0 | URL
예.그렇답니다.어제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집권 15년 언론의 위기라는 KBS스페셜을 보니 거기도 택시운전사가 경제를 살릴 거라면서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한다고 말하더군요.

로쟈 2008-08-19 15:09   좋아요 0 | URL
그건 그럴 수 있겠는데요, 비정규적 노동자가 한나라당의 '핵심지지층'이라는 통계를 보셨나 해서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0 23:48   좋아요 0 | URL
서울의 모 기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이가 알려준 겁니다.그리고 경향신문이 지금도 특집기획으로 내고 있습니다만 올 초에도 비정규직에 대해 계급배반 투표를 하는 대표적인 직업군이라고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하지만 이런 현상은 거의 세계 보편이라고 봅니다.그래서 레이코프의 책이 우리나라 정계에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고 봅니다.
 

광복절이라고 해서 따로 개인적인 행사를 치를 일은 없고, 그냥 읽어놓은 관련기사나 스크랩해놓는다('건국절'은 저들이 알아서 챙기거나 말거나). 하나는 ‘광복 63주년 기념 8·15 민족통일대회’를 준비한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인터뷰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 63년'의 삶을 살아온 한 한국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본 기획기사이다.   

한겨레(08. 08. 15) “광복 의미 무시…분단정부 자괴감이 없다”

“근본적으로 너무나 천박한 역사인식이기 때문에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광복 63주년 기념 8·15 민족통일대회’를 앞두고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건국 60년 행사와 관련해 “1948년 정부수립을 주도한 세력조차 분단 단독정부 수립이란 자괴감과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최근 건국 60년 담론에는 이런 현실 인식이 아예 없어진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민족통일대회는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6·15와 8·15를 남북이 공동 기념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8·15 민족통일대회의 경우 2001년과 2003년엔 평양, 2002년과 2005년엔 서울에서 공동행사로 치러졌다. 그러나 2004년과 2006~08년엔 정세 악화, 수해 등 여러 이유로 8·15 공동행사가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이번 8·15 민족통일대회가 15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남쪽만의 행사로 치러지는 것에 대해 “금강산 6·15 공동행사로 (남북 공동행사의) 명맥은 이어놨고, (8·15 행사 분리 개최는) 6·15 행사 때 합의사항”이라며 “아쉽지만 좌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백 상임대표는 최근 남북관계 악화와 관련해선 “6·15 및 10·4 선언 계승 입장의 공표가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내심 유신시대로까지 역주행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며 “경륜과 역사인식이 없으니 갈팡질팡하며 자기들도 고생하고 국민들도 고생하는 결과가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인터뷰는 13일 낮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8·15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정부가 ‘건국 60년’에 초점을 맞춰 논란이 일고 있다.

1948년 8월15일 당시 표현은 정부수립이었다. 당시 전국 현상공모에 당선된 표어가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었다. ‘건국’ 주도세력 스스로가 ‘정부수립은 기쁜 일이지만 단독 정부수립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있었고, ‘남북이 통일된 온전한 건국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정부가 수립돼 60년이 됐으니 꺾어지는 해를 기념하는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광복의 의미가 사라지거나 폄하되고, 분단 정부 수립이란 자괴감, 문제의식이 없어지는 일이다.”

-뉴라이트가 굳이 광복 대신 건국을 고집하는 이유는 뭐라 보나.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은 굉장한 역사적 사건인데 뉴라이트에게는 그런 인식이 없다. 광복을 단독 정부 수립에 필요한 수순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너무 천박한 역사인식이다. 우파정권이 들어섰다고 해도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데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법석을 떨다가 정체를 드러내고 끝날 일이 아닌가 싶다.”

-남북관계가 삐걱거린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한편으론 이 정부의 체질과 관련 있고 다른 한편으론 무능과 무식의 소치다. 미국에만 잘 보이면 잘 풀릴 것이란 망상이 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못사는 사람을 깔보는 성향이 있다. 이런 자세는 안 통한다. 실용을 표방하면 대북관계가 잘 되는 게 유리할 텐데, 그것을 할 실력이 없는 것 같다. 남북관계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

-이명박 정부가 6·15 및 10·4 선언에 대한 이행 의지를 밝히는 데 소극적인데.

“10·4 선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정서는 이해간다. 노무현 정권이 임기 말기에 후임자가 해야 할 많은 일을 합의해버려 기분 나쁠 것이다. 그렇지만 10·4 선언을 존중한다는 전제 위에 이행의 완급을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 같은 정상간의 선언이지만 6·15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10·4 선언은 6·15 선언의 실천강령으로 나온 것이지 동일한 차원의 새로운 선언으로 되어있진 않다. 6·15 선언은 이 정부가 부담을 느낄 게 없다. 통일방안과 관련해 ‘낮은 단계의 연방’이란 표현이 들어있지만, 내용은 북쪽이 고려연방제를 철회한 것이다. 이제 국정을 책임졌으니 선거 때 구호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6·15와 10·4 계승 입장의 공표가 남북관계를 푸는 열쇠라고 본다. 특히 6·15 선언을 인정하면 일이 뜻밖에 잘 풀릴 것으로 본다.”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이 해법을 못찾고 한 달을 넘겼다.

전문성의 부족이 남북관계를 꼬이게 한 좋은 예라고 본다. 남북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다. 비무장 50대 주부가 사망했고 유가족과 국민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북은 이를 위로할 수 있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했다. 최근 통일부에서 진상 규명 방법에 대해 남북이 만나서 협의하자고 밝힌 것은 통일부의 전문 식견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지금 같은 남북관계에서 대통령이 나서 ‘남쪽 당국이 참여하는 공동 현장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운신의 폭이 없어진다. 어느 나라든 자기 주권 관할구역, 그것도 군사구역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적대적 국가와 공동조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쪽이 남쪽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성의있는 해명과 남녘 동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진솔한 유감 표명을 하고, 남쪽은 좀 더 성숙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폭주, 역주행이 뚜렷한데.

정부 내 역주행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내심은 5·6공 정도가 아니라 유신체제까지 역주행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접촉사고와 인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륜이나 역사인식이 없으니 갈팡질팡하면서 자기들도 고생하고 국민들도 고생하는 결과가 될 것 같다. 정부는 역주행이 안 된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 자세를 바꿔야 한다.”

-앞으로 통일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똘똘 뭉쳐서 투쟁하는 양식은 6·15 이전 방식이다. 6·15 이후엔 달라졌다. 투사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참여할 길이 열렸고, 다양성과 시민들의 창의력을 존중하는 6·15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역주행이 보이니까, 통일운동도 과거식의 강력한 투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있다. 싸울 일은 싸워야 하나 크게 봐서 역주행은 저쪽의 일방적인 소망사항일 뿐이다. 촛불 정국이 보여주었듯이 우리 사회는 시민 역량의 엄청난 축적이 이뤄져 있다. 이런 시민들과 소통하는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이 돼야 한다. 6·15 남측위는 ‘연대와 합의’ 정신으로 운영한다는 규약대로 느슨한 결합체로 가야한다. 단단한 단일조직으로 비끄러매려고 하면 시민들한테서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촛불시위가 100일이 지났는데 촛불이 다 꺼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70년대부터 민주화 현장을 지켜온 원로로서 소회가 궁금하다.

“저를 포함한 각계인사 32인이 지난달 1일 성명을 내어, 촛불축제는 위대한 국민 승리를 성취했기에 7월5일 모여 승리를 대대적으로 확인하자는 제안을 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이 제안을 상당부분 받아들여 국민승리선언대회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국민승리 개념은 승리의 기준을 정부가 87년 6·29 선언 같은 것을 내놓고 쇠고기 재협상하겠다고 항복하느냐 마느냐에 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상, 아니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유례가 드문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승리라는 것이다. 이런 국민승리를 정부가 인정해 6·29처럼 항복선언을 하면 정부가 지면서도 이기는 길이고, 폭력 집회를 유도하고 탄압하면 정권의 몰락을 재촉하는 길이다. 정부가 그 시점에서 폭력 진압하며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나왔는데, 이에 말려들지 말고 우리 할 일을 하자는 취지였다. 지금은 정부가 촛불이 꺼졌다고 기고만장하는 것 같은데 그런 정권의 앞날은 암담하다.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계속 시위할 사람은 시위하고,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도 하고, 언론분야에서 싸울 건 싸우면서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면 된다.

한겨레(08. 08. 15) “나는 일본군이었고 인민군이었고 국군이었다”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의 향리에서 은퇴 생활을 하는 이재섭(83)씨는 1945년 8월1일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된 새색시를 남겨두고 평양에서 입대했다. 전쟁 막바지라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고 북만주 하이라르의 20495 무라카미 대대에 도착해 하룻밤을 자고 나니 병영 앞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련군의 진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일본군 생활은 보충소까지 포함하더라도 2주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이 재앙의 씨가 돼 일제의 항복 때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는커녕 48년 12월 말까지 소련에서 억류 생활을 하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는 억류 기간 중 숨진 동포 가운데 이귀남이란 이름을 잊지 못한다. 황해도 해주 사람인데 결핵에 걸려 작업도 못 나가고 결국 다리수술까지 받았다. 혈액형이 같아 수혈을 해주고 나서 자신도 많이 앓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나온 시베리아 억류자 사명자 명부에 이귀남은 도고 기난이란 일본 이름으로 올라 있다. 사망일 48년 4월12일, 매장지 제4지부 부로샤트카역 부근 등이 기재돼 있다.

동토의 땅에 묻히지 않고 돌아온 생존자들에게도 고난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귀국 경로와 일시는 일정하지 않다. 일본인들에 섞여서 일본 마이즈루로 간 사람도 있고 선박편으로 청진, 웅기로 오거나 육로로 두만강을 건너온 사례도 있다. 이재섭씨는 가장 많은 귀환자가 돌아온 48년 12월 소련 화물선편으로 흥남부두에 도착한 약 2천3백여명에 끼였다. 흥남인민위원회에서 환영행사를 벌이고 임시 숙박처를 마련해주었다. 적응교육을 거쳐 집이 만주인 사람 약 1천명, 북한인 사람 8백명이 먼저 가족을 찾아 떠났다.

북한 당국은 49년 2, 3월에 남쪽이 고향인 사람을 수십명씩 쪼개 내려보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원산에서 기차편으로 철원이나 연천까지 와 한탄강이나 산악지대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꿈에도 잊지 못했던 가족과의 재회를 그리며 38선을 넘다가 총격을 당해 숨진 사람들을 보았다거나 나중에 얘기를 들었다는 증언이 생존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돌고 있다. 접경지역에서 남북 교역을 한다며 이중스파이나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의 농간에 곤욕을 치렀다는 사례도 들린다. 아무리 남북에 정부가 따로 수립됐다고 해도 이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한 최소한의 접촉조차 없었다.

귀환자들은 고양이나 파주경찰서를 거쳐 인천 만석동에 있던 수용소로 옮겨졌다. 정보·사찰 기관 요원들이 합동으로 소련과 북한에서 한 행적과 언동 등을 면밀히 조사했다. 맥아더 사령부 정보요원들에게 넘겨져 신문을 받은 사람도 있다. 한 달 정도의 조사과정에서 특이한 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가족들의 품에 인계됐다. 그래도 적성국가 소련에서 돌아왔다는 요시찰 딱지가 따라다녀 생활이 안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생존자 가운데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을 거치고 소련과 남한에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한 사람도 있다. 평남 순천 출신의 ㅂ아무개(84)씨는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남의집살이를 하느라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44년 8월 징병 1기생으로 끌려가 홋카이도 북쪽 시코탄섬(현재 러시아령 쿠릴열도의 하나로 일본은 자국령이라고 주장)에서 해병대 격인 선박부대에서 근무하다가 소련군 포로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가혹하기 그지없었던 수용소 생활이 견딜 만했다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48년 12월 북한에 돌아와 한동안 소련에서 왔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고 탄광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평온한 삶도 잠시였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자원입대해 수색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야간에 도보로 이동해 낙동강 전선에서 격전지의 하나였던 다부동 지역에 배치됐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의 대공세에 밀려 인민군의 패주가 시작되자 낙오했다가 50년 9월 미군의 포로가 됐다.

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 때 거제수용소에서 풀려난 그가 오갈 데가 없어 문을 두드린 곳은 군대였다. 바로 신병훈련을 받고 화천 지역에서 2년간 사병으로 근무하다 제대를 했다. 일본군, 인민군, 국군에서 그는 줄곧 말단 사병이었다. 한국 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에서 병사들이 무더기로 죽어갈 때 그는 며칠간 분대장을 맡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북한에 사는 친지들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삶에 아직도 분단과 냉전의 유령이 가시지 않고 있다.(김효순 기자)

08. 08. 15.

P.S. 한국일보는 한홍구 교수와 이영훈 교수, 두 사람의 대담을 특집으로 싣고 있다. 8.15의 의미에 대해서 이젠 '기억의 전쟁' 모드로 들어간 듯싶다.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 대한민국 60주년이 8ㆍ15의 성격에 대한 보수, 진보세력의 기억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를 건국사로 해석하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분단의 역사로 보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의 난상토론의 자리를 마련했다. 8ㆍ15와 건국주체세력의 성격, 이승만ㆍ박정희 시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에서 두 사람의 시각 차는 확연했다.

▲ 이영훈=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사건은 '건국'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새로운 이념에 의해 인간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하나의 질서이자 하나의 문명으로서 새로운 국가가 태어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건국(1392년) 이후 556년 만의 사건이다. 불교사회에서 유교사회로 문명 전환을 꾀한 조선 건국처럼 대한민국의 건국도 자유, 인권, 재산권, 개인주의 등 새로운 이념들이 들어와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 한홍구= 왜 광복과 건국이 대립해야 하는가, 가슴 아픈 생각이 든다. 독립운동세력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와 새로운 국가, 정치체제를 만든다는 과제를 함께 추구했다. 의아한 것은 친일행위를 문명의 기원으로 보는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건국절을 기념하자고 나선 점이다. 광복이나 해방의 의미가 지워진다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당혹해하는 것이다. 건국이라는 개념이 약했던 이유는 우리 헌법에 이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하고 있다는 대목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처음에는 임정 연호를 썼고 제헌의회에서도 임정을 계승했다는 의식이 있었다.

▲이= 대한민국이 임정의 도덕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의 국민국가라는 실체가 1948년 8월 15일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모순되지 않는다. 한 국가가 생겨나는 데 있어 필요한 여건을 법적으로나 실체적으로 갖춘 것은 이 날이다.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건국을 이야기할 때 1948년 8월 15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사적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이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는 있을 수 없다.

▲한= 1948년 8월 15일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건국주체와 국가 정체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가 정체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제헌헌법과 실체적 독립운동집단인 임정의 구상이다. 임정에 참가했던 세력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정체로는 민주공화국이고 경제 정책에 토지 국유화, 중요사업 국유화, 무상교육과 무상치료가 포함돼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제헌헌법에 계승됐다. 또한 대한민국은 건국주체로 우파들만 들어간 반쪽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한다는 약속을 했다.

▲이= 대한민국 건국세력이 잘못했다는 뜻인가.

▲한= 국민적 기억을 만드는데 핵심 되는 내용인 제헌헌법과 임시정부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친일 반민족행위자를 청산하겠다고 했지만 건국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남로당 프락치사건, 반민특위 습격해산, 백범 암살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반드시 숙청됐어야 할 반민족행위자들의 쿠데타였다고 생각한다. 왜 제대로 국가를 세우지 못했는가, 왜 방향이 틀어졌느냐라는 점에서 1949년 5, 6월에 있어던 친일파 쿠데타에 의한 대한민국 정통성의 훼손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

▲이= 대한민국이 친일파 세력에 의해 세워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방 직후 농촌사회에서는 면장이나 면서기 중심으로 친일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이 있었다. 그리고 일제 때 드러내놓고 친일했던 사람들, 즉 영혼까지 팔아 친일했던 이들이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 참여하거나 주요 요직에 참여한 사례는 없다. 설령 한 두 사람이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 건국세력을 친일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한= 친일 문제는 입장이 좁혀지지 않는다. 자유 인권의 가치가 건국을 통해 국가의 기본 원리가 됐다고 하는데, 그것이 살아있는 가치가 된 것은 뉴라이트가 건국주체로 부르는 당시 국가를 장악하고 있었던 세력에 대한 민중들이나 시민들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 덕택이다. 소위 건국세력들은 헌법에 좋은 내용을 담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을 실현할 의지와 능력이 있었는가. 이승만 시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어떠했느냐를 보면 쉽게 평가할 수 있다.

▲이= 건국이 요구하는 다양한 과제들 가운데 적어도 정치, 안보, 군사 등 기본적인 틀은 이승만 시대에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그가 있어서 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적 기틀이 만들어졌다. 공산진영의 공세를 방어했고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과 동맹을 이끌어냄으로써 건국과정의 큰 기틀을 잡았다. 지금 단계에서 그런 정도의 공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 이승만이 그 이후 어느 대통령도 보여주지 못한 안목과 결단력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에 대해 그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정확하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결과를 꼭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는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는데 장기적으로 이른바 '통미봉남'이 나오게 된 구조적인 원인이 됐다. 이승만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실했다고 했는데 그 표현을 받아들인다면, 이승만은 자기 신념을 배반한 사람이다. 국회에서 부결된 개헌안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뒤집는다든지, 국회의원들이 탄 버스를 크레인으로 끌고간다든지, 정치적인 라이벌을 국가보안법으로 사형시킨 일 등을 볼 때 그 민주주의라는게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였는지 묻고 싶다.

▲이= 야당 자체가 개헌을 하고 미국을 통해 이승만을 축출하려는 음모를 했다는 연구도 있다. 이승만은 가만히 있으면 쫓겨나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이승만은 전쟁 중에도 헌법에서 규정한 선거를 다 치렀다. 또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국민적 가치로 정착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라는, 이승만이 포기할 수 없는 제도적 가치와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의 모순 때문에 발생한 것이 독재다.

▲한= 실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현한 공을 이승만에게 돌릴 것인가, 아니면 한국전쟁 후 새로운 교육을 받으면서 태어난 세대들에게 돌릴 것인가를 묻고 싶다. 새로운 세대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 이승만의 선택과 결단을 강조하는 것은 영웅사관이다.

▲이= 박정희 시대는 권위주의적 정치에 따른 희생이 컸다. 그러나 나는 역사의 양쪽을 다 봐야 한다고 본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독재자, 권위주의자라고 비판하기 전에 그들은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대해 자발적인 동의가 안 나올 때, 그 상황에서 박정희라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강인하게 실행했다. 민주주의를 지체시켜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화의 결과로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토대인 중산층을 만들어놨다.

▲한= 대한민국이 도저히 다시는 용납할 수 없는, 가져서는 안 된다고 보는 지도자가 이승만이고 박정희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산물이라면서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보는 주장은 박정희가 명확히 책임져야 할 역사적 책임 문제에 대한 물타기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산업화와 민주화는 동시에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그것을 대립되는 가치로 주장하며 자신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눌렀다. 역사적인 책임은 엄정하게 내려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 1960~70년대에 정치적 억압이 있었지만, 그 시대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대단히 활기차게 세계로 뻗어나갔고 개인적인 성취를 이룬 시대이기도 하다. 정치적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건국과정이 한번에 자기완결적으로 가져진 것이 아니고 굉장히 폭력적인 선택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전반적으로 우리가 성취해온 역사였다는 것이다. 20~30년간 성취해온 것은 길게 보면 거의 동시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게 보면 우리 건국사를 좀더 밝고 긍정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 친일이나 학살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도 충격이고,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억압을 과장이라고 하는 해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 보수층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박정희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는 말을 하려면 그 시대에 벌어졌던 인권침해에 대해 보수층이 좀더 적극적으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보측과 합리적인 대화가 될 것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8-08-15 15:33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양반 연구나 일제시대 경제사 연구를 보면 이영훈 씨가 참 열심히 연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하지만 해방 후의 역사 평가나 특히 박정희,이승만 평가는 수긍하기 어려운 데가 많죠.안타깝습니다.이대근 씨와 함께 낙성대 연구소를 세우면서 보수화되었던 것 같아요.
한영우 씨는 태종 때의 억압적인 독재때문에 세종의 번영이 가능했다면서 박정희더러 독재라고 하는데 그가 과감한 산업화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민주화도 가능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요즘 이런 주장이 유행이더군요.

로쟈 2008-08-15 20:57   좋아요 0 | URL
하용출 교수의 <후발 산업화와 국가의 동학>(2006)이란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관심사에 맞으실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6 15:43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조선일보에 쓴 하 교수 칼럼으로 보아 대충 성격은 짐작이 갑니다만...

로쟈 2008-08-17 00:39   좋아요 0 | URL
칼럼은 경향에도 쓰는 분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8-17 15:28   좋아요 0 | URL
반미를 하지 말고 미국을 활용하는 용미를 하자는 주장으로 유명하죠.

로쟈 2008-08-17 17:49   좋아요 0 | URL
그런 얘기는 오프 더 레코드로 해야 할 듯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7 18:4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죠.친미주의라는 말은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그런 단어를 쓰려고 하지요.
 

점심을 먹고 돌아와 메일함을 여니 창비주간논평이 들어와 있다(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279.aspx).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됐는데, 최근 KBS 사태 등을 다루면서 작금의 민주주의 농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현 정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짓기엔 상황이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 않기에 일독해보시길 권한다.

  

창비주간논평(08. 08. 13) 붉은 여왕의 민주주의

맑스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을 이렇게 시작한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번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처음엔 비극(悲劇)으로, 그다음에는 소극(笑劇)으로." 나는 두 사상가의 내공은 인정하지만 이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무엇을 사건으로 보고 누구를 인물로 볼 것인가' '두번의 유사성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레토릭이지 엄격한 명제는 아니다.

그런데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서 전에 본 듯한 기시감(deja-vu)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노태우정권 때인 1990년에 이미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의 해임요구, 이사회의 해임제청, 고위인사의 압박, 대통령의 해임 그리고 새로운 사장. 그 수순은 18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차이라면 예전의 사건은 언론말살의 비극이었지만 지금의 사건은 정신나간 소극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반복될 때 뒤의 사건이 소극이 되는 이치는 단순하다. 세월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되풀이되면 시대착오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민의 반응이 '분노'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반응은 '실소'에 가깝다. 어차피 유유상종이기 때문에 내 주위의 반응들이 나처럼 하나같이 비판적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반응들이 '어처구니없다' '황당하다' '어이없다'인 것은 사건의 본질이 시대와 동떨어진 소극임을 보여준다.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과연 그저 웃기고 자빠진 일인가? 주로 성희롱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유머만을 전문적으로 구사하던 분들이 갑자기 이렇게 수준높은 개그를 할 리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반응과 달리 대단히 진지한 사건인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성인이 된 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군사독재,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권력이 '소수에서 다수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폭력에서 논리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아왔고, 그것이 사회의 법칙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군사독재에 뿌리를 둔 정치세력이 승리하더라도 사회경제적인 문제야 할 수 없다 치고 민주주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의 느낌은 20년 전 노태우 후보가 승리했을 때의 비참한 심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정권이 교체되는 것도 길게 보아서 나라에 도움이 될 거라는 낙관적 견해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반년도 되지 않아 국민들은 분노해야 할지 실소해야 할지 모를 사태들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함께 미칠 듯이 달리지만 이상하게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 붉은 여왕은 깜짝 놀란 앨리스에게 말한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계속 있고 싶으면 힘껏 달려야 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적어도 그 두배는 빨리 달려야 하지." 그렇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는 것, 그 노력을 게을리할 때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뒤로 처지고 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민주주의의 문제는 너무 시급해져서, 시한폭탄을 장착한 것 같은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조차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민주주의는 죽을힘을 다할 때 지켜지는 것
이제 이명박정부는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정치사찰만 하면 군사독재정부와 똑같은 정부가 된다. 앞의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뒤의 것은 장담할 수 없다. 어느 현명한 판사에게 재판과 관련한 전화를 걸었다가 망신당한 국정원 직원의 사례는 어떤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이 정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보수인사들이 입만 열면 지키겠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몇가지 원리는 잘 알고 있다. 주권자는 국민이고,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기 곤란한 부분을 대리인들에게 위임했다는 것. 맡겨진 권력은 주권자를 위하여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만들어진 법은 게임의 규칙으로서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는 것. 나는 보수적인 견해보다는 진보적인 견해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게임의 규칙'만 준수한다면 어떤 보수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하고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약자라서 불리할 것 같은 때에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권력을 쟁취한 후에는 그것을 사유화하는 자들, 국민들에게만 법의 지배를 받으라 하고 막상 자신들은 힘의 지배가 사회의 냉혹한 규칙이라고 믿고 실천하는 자들과는 한 세상에서 살 수 없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 배를 불리고 공공의 이익을 말하는 척 패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의 적이며, 민주주의의 파괴자다.



그대들에게 '게임의 규칙'을 묻는다
혹시 그대들이 민주주의와 법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가? 한번 따져보자. 뜻을 모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판사의 조정 아래 분쟁을 합의하여 처리한 것이 왜 사장의 배임인가? 이득은 도대체 누가 보았는가? 그렇다면 판사와 국세청장도 공범이란 뜻인가? 어느 법률가가 그따위 법률해석을 하는가? 도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출국정지하여 괴롭히는 것이 공권력의 집행인가? 공권력은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는 것을 그대들이 정녕 모르는가? 해임할 빌미를 찾기 위하여 정해놓고 하는 감사가 '바른 감사'인가? 그대들이야말로 감사대상이다.

나는 KBS가 경영을 어떻게 했는지는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영상의 잘못이 있다 쳐도 그것이 사전적 의미에서 '비위(非違)'라는 표현에 들어맞는가? 그대들은 일상생활에서 '비위'라는 말을 그런 경우에 쓰는가? 그렇다면 쇠고기협상이야말로 엄청난 '비위' 아닌가? 이전의 법에서 '임면권(任免權,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규정한 것을 '임명권'이라고 고친 것이 해임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국회가 심심해서 문장을 다듬었다는 뜻인가? 진실을 구부려 권세에 아부하는 그대들의 논리는 '비위'가 상해서 더이상 못 들어주겠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무리 적이라도 온당한 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배제하라고 말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법을 고치든가, 법을 고칠 수 없으면 참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법과 '게임의 규칙'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심지어 '국어의 원칙'을 무시한다. 이기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무리에게는 더이상 관용이 적용될 수 없다. 그대들은 우리의 신성한 민주주의의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대들은 승자인 자신들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프로레슬링 시합에서 상대의 눈을 찔러 비만한 배에 챔피언벨트를 찬 반칙왕에 지나지 않는다.

붉은 여왕은 우리가 저들로부터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하고, 그래야지 제자리나마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저들은 힘과 반칙과 불법과 기만으로 국민을 능멸하지만 국민은 오로지 비폭력, 민주주의, 법치주의, 선거 그리고 단결로써 저들을 심판하자. 저들을 신성한 민주주의의 경기장에서 기필코 퇴장시키자.(조광희/ 영화제작자)

08. 08. 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래한알 2008-08-13 18:01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블로그에서 제 글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로쟈 2008-08-13 22:02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군요! '저들'이란 표현이 맘에 듭니다. 더 자주 쓰시면 더 자주 옮겨놓지요.^^
 

대학강사의 처우 문제가 어제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개선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요즘처럼 강의 소득이 전혀 없는 방학 때면 우스개소리로 대리(운전) 알바를 뛰어야 한다는 얘기도 강사들끼리는 한다(그런데 우스개가 아니다!). '비정규직 800만' 시대라고 하니 '비정규적 강사'의 존재 자체가 스캔들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적 지위/계층의 존재와 그에 대한 대우는 온전히 그 사회 시스템의 산물이다. 800만 비정규직과 6만 5천여 시간강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이란 사회의 시스템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다수가 그걸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총파업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굴종하든가. 다만, 그것이 부당하며 부도덕한 시스템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저임금 착취를 등에 업고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적하는 칼럼과 기사를 옮겨놓는다. 강명관 교수의 '고금변증설' 연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1994.html)와 경향신문의 '비정규직 800만 시대' 기획기사 중 시간강사에 관한 꼭지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81757155&code=210100). 이번주 신간 중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사회평론, 2008)의 저자 모모세 타다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로 “겉모양은 선진국인데 속에는 아직도 후진적인 생각, 가치관, 질서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류 국가가 되기엔 품격이 모자란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도 좀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하기야 현 정부에 와서는 아예 '품격'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러워졌지만).

 

한겨레(08. 08. 02) 훈장 내쫓는 학부모, 강사 내모는 대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니 서둘러 학위논문을 제출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있다. 또 어렵사리 학위논문을 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서 학문의 길로 일로매진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지 않는다. 후자 역시 계속 논문을 써 내어 자기 학문의 밭을 일구지 않는다.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 학위과정을 밟은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에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과외도 한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다 이 연구소 저 연구소,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로 옮겨 다니며 연구비가 아닌 생계비를 벌어야 하기에 차분히 자기 연구를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곁에서 몇 해를 지켜보지만, 공부에 큰 진척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내심 답답하다. 문제는 공부하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았지만, 그 일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백범일지>는 구한말의 사회 사정을 아는 데 아주 요긴한 책이기에 자주 들추어본다. 백범이 공부를 소원하자 아버지는 문중과 동네 사람들과 의논해 상놈 아이들을 위해 서당을 열어준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모아 주기로 하고 이생원이란 선생을 초빙한 것이다. 백범은 이생원을 따르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는 반년이 되지 않아 해고된다. 멍청한 손자를 둔 신존위란 사람이 백범이 공부 잘하는 것을 시기해 이생원을 쫓아낸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백범이 실망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백범일지>의 이 부분에서 늘 짠하였다. 하지만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해고의 이유라는 것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한데 임형택 선생의 ‘이조말 지식인의 분화’(<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 창작과비평사, 1985)란 논문을 읽고는 백범의 선생 이생원만 당한 일이 아니라 매우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논문은 ‘대구훈장 원정(原情)’이란 글을 소개하고 있다. 원정이란 요즘말로 진정서다. 곧 대구의 훈장이 관에 올리는 진정서다. 무슨 진정서인가. 논문을 따라가면서 읽어 보자.

충청도의 한 선비가 서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10년 세월을 놀다 보니 주머니는 바닥이 나고, 과거에 합격할 길도 아득히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타관 객지 시골 서당에서 훈장으로 나선다.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고 <사략> 첫째 권을 꼬맹이들에게 가르치노라니, 정말이지 신세가 처량하다. 한데 훈장을 초빙한, 제자들의 아비들이 “타관 양반인데, 예조(禮稠) 한 섬, 의자(衣資) 반 냥을 주지 않은들 어찌하겠느냐”며 그 쥐꼬리조차 떼어먹으려 든다. 훈장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려 다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궁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그들은 냉소를 하면서 지껄인다. “이 양반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군. ‘생원의 문자’는 값이 대체 얼마요? 그동안 먹은 밥값으로 치면 될 터이지. 의자고 예조고 말도 꺼내지 마시오.” 이 말에 훈장은 관청에 진정서를 올린 것이다.

<백범일지>의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해고되었듯, 대구 훈장 역시 보수를 주지 않는 학부형들에게 거세게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만다. 보수를 주는 쪽이 약자의 호소할 데 없는 처지를 십이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린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분들을 훈장에 견주어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백범의 선생을 내쫓은 자와 훈장의 보수를 떼어먹은 자들이 한 짓거리가 지금의 대학이나 정부의 강사 대우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시간강사의 강의료라는 것은 말로 꺼내기에도 창피할 정도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강의료를 올리고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은, 나도 20년 전에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왜냐고? 대학과 정부가 강사들이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국강사노조가 있지만,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란 참으로 힘들다. 강사는 학기 단위로 위촉되기 때문에 그 학기에 한해서 강사 신분을 갖는다. 또 자신을 가르친 선생들이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연고로 다 익히 아는 분들이 강의를 의뢰한다. 그분들의 안면 때문에 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곧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전임 자리를 얻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 강사노조에 힘이 모일 리 없다. 이런 약점을 대학은 십이분 이용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보다 절박한 일은 없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을 생계비 버는 데다 보낸다면, 그 뒤 무슨 정열과 힘이 남아 연구를 한단 말인가. 대학에서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받아서는 살 방도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강사에게 정당하게 지급해야 할 강의료를 착취함으로써 자기 덩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은 다른 어느 기관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 자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노동력을 이토록 착취해서야 되겠는가?

대학마다 요사이 하는 말인즉 발전기금을 모은다, 세계적 대학을 만든다고 자랑이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기 대학에서 가르치는 강사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대학의 행태는 훈장의 예조와 의자를 떼어먹는 아비들의 짓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 언필칭 내세우는 발전과 개혁이란 구호가 위선이 되지 않으려면, 강사 처우 문제부터 해결하시기 바란다. 그게 학문 후속세대를 키우고, 대학을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경향신문(08. 07. 29) [비정규직 800만 시대]“대학 교육 절반 담당… 월급 60만원대”

28일로 326일째.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대학 시간강사들의 천막농성이 열리고 있다. 처음 스무 명으로 시작한 농성인원은 이제 다섯 명으로 줄었다. 1주일의 절반은 대구에서 올라오는 강사 3명이, 나머지 절반은 서울지역 강사 2명이 돌아가며 천막을 지키고 있다. 먹고 자는 일을 모두 천막 안에서 해결해왔지만 최근 폭우가 쏟아지면서 천막을 지키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이들이 폭우와 무더위 속에서도 천막을 지키는 것은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를 위해서다.

대학 시간강사들. 이들은 현재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이다. 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7년 전국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정규직 교수)은 5만5612명으로 시간강사 6만5399명보다 적다. 하지만 교양강좌의 경우 전임교원 강의(5만636개)보다는 시간강사 강의(7만8204개)가 훨씬 많다.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전임교원들의 강의(2만5381개)까지 합하면 전임 교원 강의 수의 두 배에 이른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이들의 처지는 일반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그보다 더 못한 경우도 흔하다. 시간강사들은 따로 고용계약서가 없고 시급을 적용받는다.

교수신문이 전국 30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2008년 평균 시급은 4만1000원. 보통 한 학기에 두 강좌씩 맡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 16시간을 강의(강좌당 1주일에 2시간 강의 기준)하고 받는 월급은 64만원 정도다. 학교에 따라 연이어 강의를 하면 한 학기를 쉬거나 학교별로 한 사람의 강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어 시간 강사들의 수입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교통비와 숙박료를 부담해가며 강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4대 보험 가입률도 낮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만 가입되고 이마저 허용하지 않는 대학도 14곳이나 된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 두 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영곤씨(61)는 “대학만큼 악랄한 사용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대학에서 시간당 5만300원씩 1강좌, B대학에서 3만원씩 2강좌를 하는 김씨의 한 달 급여는 88만2400원이다. 방학 때는 계절학기 강좌를 잡지 못하면 수입은 0원이 된다. 적은 월급보다 더 힘든 것은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김씨는 “어떤 설명도 없이 다음 학기 시간표에 이름이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 학기의 수입을 예상할 수 없으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

1995년부터 시간강사로 일해 온 한수경씨(42·가명)는 “5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공부가 좋아 적게 벌어도 공부하며 늙자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50만~60만원 수입으로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한씨는 “강사 자리는 알음알이로 채용되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강의라도 잘리지 않으려면 단체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시간강사는 “다들 쉬쉬하지만 시간강사들의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1999년 이후 시간강사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열악한 처우가 몇 차례 사회문제화됐지만 그때뿐이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시간강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현실은 그대로다. 학교 노동자라는 특성상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외에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법과 노동법 사이에 끼어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강사의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4년 국가인권위에서 차별개선에 대한 권고안을 교육부에 냈으나, 교육부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 10년 가까이 시간강사로 일해 온 하모씨(49)는 “대학은 해고도 편하고 임금도 적은 시간강사들을 쉽게 쓰고 버리고 있고, 정부는 모른 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애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장은 “시간강사는 일반 직장인보다 10년 늦게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며 “학문이나 직업의 특수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고 다른 길을 찾기도 힘든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반항할 겨를도 없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장은교기자)

08. 08. 01.

P.S.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서는 두 차례로 나뉘어 게재된 한겨레21의 르포기사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대학의 작은 지옥'(http://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8/08/021046000200808070722057.html)과 '정규직 교수가 비극을 끝내라'(http://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8/08/021046000200808140723013.html)를 참조.


댓글(18)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비정규 교수가 쏘아 올린 작은 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5 21:21 
    이번주 신간 국내서 중에는 작년에 비정규 교수(시간강사) 문제를 다룬 프레시안의 연재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을 묶은 책도 포함돼 있다. 해가 바뀌어서 제목은 <비정규 교수, 벼랑끝 32년>(이후, 2009)이 됐다. 따로 서평이 뜨지 않아서 프레시안의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9. 04. 25) 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때때로 묻
 
 
paviana 2008-08-01 23:47   좋아요 0 | URL
며칠전 시간강사인 친구를 만났는데 백수인 제가 술값을 계산했어요. 방학이잖아요.사정 뻔히 아는데 계산하게 둘 수가 없더라구요.에이참..

람혼 2008-08-02 01:23   좋아요 0 | URL
갑자기 눈물이 울컥... ㅜㅜ

로쟈 2008-08-02 17:52   좋아요 0 | URL
저도 어디 가서 계산하는 일은 드뭅니다. 강사들만 있을 때를 빼곤.^^;

porori 2008-08-02 01:24   좋아요 0 | URL
제생각엔요...강사료가 저렇게 저임금이라면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는 사람은 드물것 같습니다. 특히 교양과목이라면 학생들이랑 농담하면서 딱 60만원어치의 정보와 지식을 주지 않을 까요?? 학생들은 또 지적 소득없이 학점만 따 갈테고요... 또, 좋은 학점을 위해 학생들은 교수/강사에게 약간의 굴종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왠지 악순환 같은데요..
학생입장에선 학점 때문에 돈을 지불 하면서 '굴종'을 겪으니, 저로선 학생이 가장 약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털세곰 2008-08-02 16:34   좋아요 0 | URL
할 말은 아니지만 강사료 비싼 학교의 수업은 솔직히 신경 더 많이 씁니다. 강의평가도 있거든요. 강사로 싼 곳은 주는 만큼 한다는 생각으로 가끔 태업도 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학생에 대해 약간의 "권한"을 갖고, 그것을 행사하기를 때로는 꺼리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상당히 놀라고 있습니다

로쟈 2008-08-02 17:55   좋아요 0 | URL
그게 요점입니다. 사실 학교와의 관계에서 강사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질 못하는데요. 학생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므로 교육 '소비자'입니다. 약자가 아니예요. 당연히 강사들 수업은 안 듣겠다고 당연히 보이콧해야죠! 대학에선 자질이 안되서 전임으로 못 뽑는다고 하니까...

anathema 2008-08-02 08:58   좋아요 0 | URL
작년에 시간강사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왕복 차비(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6시간)와 강사료가 같아서...

로쟈 2008-08-02 17:56   좋아요 0 | URL
그걸 대단찮게 생각하는 대학이 문제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06   좋아요 0 | URL
여기도 댓글들이 슬프네...제가 학교 다닐 때 29살 먹은 남자가 전임강사로 온 적이 있었는데 이젠 이런 일은 없겠죠?

로쟈 2008-08-02 17:57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대우는 반에 반 수준도 안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걸 감수하는 강사들의 '마인드'도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구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23   좋아요 0 | URL
더 슬퍼요...

로쟈 2008-08-03 00:31   좋아요 0 | URL
최석하의 '죽'이란 시가 생각나네요.ㅠㅠ

천재뮤지션 2008-08-03 11:26   좋아요 0 | URL
그 놈의 BK21. 휴...
전 그래서 이제는 민간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잘 모르겠지만...

(자선의 정치.)

로쟈 2008-08-03 20:29   좋아요 0 | URL
구체적인 방안이 떠오르면 알려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20   좋아요 0 | URL
그리고 우리나라 호칭문제인데 같은 나이라도 교수는 무슨 무슨 교수인데 시간강사는 무슨무슨 씨라고 해서 구별을 짓더라구요.우리나라 호칭에 직함이나 직업 붙이는 관행이 굉장히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사실 저는 모두 씨를 붙이는 평등호칭을 찬성합니다.시사잡지 보면 80년대까지 그랬거든요.

로쟈 2008-08-03 20:28   좋아요 0 | URL
미시정치죠.^^ 퇴직하거나 사직해도 '전(前)교수'라고 붙이죠. 장관이나 의원처럼. 예전에 교수가 드물던 시절에는 사회적 예우였겠지만(검사들이 영감님 행세하던 시절) 요즘은 그저 '관행'으로 남은 듯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50   좋아요 0 | URL
예...그 전 장관이니 교수니 그런 것 좀 없앴으면 좋겠어요.특히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진행자가 그렇게 부르면 진짜 이상해요.그런 관행 때문에 직함이나 이런 걸 강조하는 풍토가 안 없어지죠.인간 자체를 존경하는 호칭이 없어요. 저는 어린이에게 존대말 쓰자는 방정환 님의 뜻을 따르고 있죠.

로쟈 2008-08-04 13:13   좋아요 0 | URL
한국어 경어체계는 미덕과 악덕을 고루 갖춘 듯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는 며칠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살림, 2008)의 메시지라고 한다. 책의 띠지에 그렇게 씌어 있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강의'도 분명 들을 만한 좋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의 이면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무려 6억 이상의 선인세를 지불한 책이기에 그렇다. 아래 칼럼에서 소설가 박상우씨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금액이면 국내 필자 200-300명의 선인세와 맞먹는다. '번역서 1권 vs 국내필자 213명'이란 표현이 그래서 가능해진다. 간단히 말해서, 출판사로선 그 213명이 쓸 책보다는 이 한 권의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시크릿>(살림Biz, 2007)의 교훈일까?

경향신문(08. 07. 31) [문화로 읽는 세상]‘번역서 1권과 국내필자 213명’

최근 번역 출간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의 선인세가 64만달러(약 6억4000만원)라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까지 최고가를 기록한 책이 20만달러였다니 3배가 넘는 놀라운 기록 경신이다. 선인세를 그렇게 많이 지불했다는 건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뜻이므로 광고비 또한 비례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국내 10여개의 대형 출판사가 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이니 가격이 올라간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출판시장이 10배 이상 큰 일본에서도 선인세가 10만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64만달러는 무모한 경쟁의 결과인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그렇게 파이를 키워 놓으면 향후 외국 출판사들이 제시하는 기본 금액의 출발선이 달라질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자본의 위력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대형 출판사들만 살아남고 피땀 흘려 좋은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중소 출판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출판사가 출판사를 죽이고, 출판사가 출판시장을 죽인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좋은 책과 좋은 출판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좋은 편집자와 좋은 필자가 많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는 전적으로 출판인의 몫이다.

출판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없다면 자칫 출판사업은 한탕주의에 대한 환상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런 환상 속에서 명멸한 출판사들을 나는 지난 20년 동안 숱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런 출판사들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런 명멸의 이면에서 소리·소문 없이 좋은 책을 꾸준히 양산해내는 소금 같은 출판사들도 나는 알고 있다. 출판인이 누구인지 일면식도 없지만 나는 그들에게 참으로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6억4000만원의 선인세는 국내 필자들의 질을 더욱 저하시킬 것이다. 블록버스터급 책이 아니면 출판을 하지 않으려는 출판 마인드가 자잘한 국내 필자들의 책에 관심을 기울일 턱이 없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책 한 권 출간하고자 하는 필자들은 더욱 선정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너도 나도 책을 쓰고자 덤비는 세상이니 더욱 심각한 질적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등단 작가는 작가가 됐음에도 소설집 한 권 출간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소설집은커녕 소설에 대한 자질을 검증받을 만한 발표 지면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평균적인 계약 관행을 예상수치로 삼아 300만원씩 선인세를 지급할 경우, 6억4000만원이면 국내 필자 213명과 계약을 할 수 있다. 번역서 한 권과 국내 필자 213명, 이것이 아마도 우리 출판 마인드의 현주소일 것이다. 안을 존중하지 않으면 밖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니 번역물 선인세가 100만달러를 돌파할 날도 그리 머지않은 일인 듯싶다.(박상우|소설가)

08. 07. 31.

P.S. 바야흐르 대한민국 1%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강남 땅값을 걱정해주던 '교육감' 후보가 결국엔 당선됐다(저조한 투표율이 이미 예견케 한 결과이다.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은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07/h2008073102454922020.htm 참조). 해서, '촛불의 중간평가' 운운하던 이들은 '입방정'을 탓하게 됐다(촛불은 '다수'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결과를 예상하진 않았지만(서울시민이 아니어서 나는 투표권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최악의 결과'에 환멸과 분노를 느낀다. 나는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정말 능력만 된다면 이민가고 싶다). '리치스탄(부자동네)'에 대한 선망과 함께 모든 아빠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로 나뉜다고 주입시키는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다(언제부턴가 '글로벌 인재 양성'이란 문구가 각 시군 교육청의 교육목표가 돼버렸다. 좀 환멸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컴퓨터공학 교수였던 랜디 포시는 이런 교훈을 남겼다고 한다('이게 다예요'라고 덧붙였을 법하다).

★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세요. 감사할수록 삶은 위대해집니다. ★ 준비하세요.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온답니다. ★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 ★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벽은 깨라고 있는 것. ★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 당신이 뭔가를 망쳤다면 사과하세요. 사과는 끝이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는 시작입니다. ★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세요. ★ 가장 어려운 일은 듣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전해주는 말을 소중히 여기세요. 거기에 해답이 있답니다. ★ 그리고 매일같이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지 마세요.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 누군가 당신을 위해 했던 일을 당신도 다른 이들을 위해 하세요. ★ 당신 스스로 당신의 꿈을 허락하세요. 당신 아이들의 꿈에도 불을 지피세요.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지침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일이지 않을까? 거기, 줄 서시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열매 2008-07-31 16:59   좋아요 0 | URL
'살림'출판사의 살림이 제대로 될런지 살짜쿵 의문이 드는군요^^? 양귀자씨 책 팔아 이렇게 오바를 해도 되는 것인지...<마지막강의>가 마지막 출판이 되는 건 아니길 바래봅니다. 그 마지막 강의가 무슨 알짜배기 강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영원히 모를 가능성이 높지만, 그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들으신 분들께 그 책 가격만큼의 댓가가 있길 바랍니다.

로쟈 2008-07-31 15: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고전'하지 않을까 싶네요. 잘 돼도 문제입니다. 선인세가 더 치솟아오를 테니까. 한국에서만...

qualia 2008-07-31 04:00   좋아요 0 | URL
천박한 대한민국 인종들, 정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촛불이 타올라도, 이 개한민국의 “개민”들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경고하건대, 촛불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오판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위신, 주권, 살림살이(경제), 정신을 하나둘씩 말아먹어 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인가? 수구꼴통 친외세의 주구 조중동인가? 경복궁을 자금성 화장실쯤으로 깔보는 기고만장 짱께들인가? 독도를 빌미로 야금야금 재침략을 노리는 노회하고 야비한 쪽발이들인가? 그 누구도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우리 국민들” 자체입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상투적인 말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남한 사회의 주류는 바로 『시크릿』 따위를 열독하는 일반 국민들입니다. 『시크릿』에 따위에 감동하는 그들의 (집단적) 심성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남한 사회의 “시대 조류”입니다. 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시대 조류가 (저는 이것이 지극히 괴이하고 변태적이라 판단하는데요) 이명박 같은 천하의 범죄꾼을 일국의 대통령으로, 강남 땅값 걱정 후보를 서울시 교육감으로 뽑은 주범입니다.

이런 심성이 고착화돼 가는 남한 국민들, 이 심성들이 만들어내는 남한 사회의 변태적 시대 조류 따위가 『마지막 강의』 선인세 64만 달러 지불 같은, 제 살 뜯어먹는 밥통 같은 짓을 자연스럽게 저지르도록 만든 것입니다. (타의 추종 불허, 국제적인 “봉” 짓을 대한민국은 참으로 잘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짓을 지식계, 혹은 지식산업계의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좌절하게 만듭니다.)

(너무나 슬픈 사건이지만) 금강산 피격 사건을 싱가포르 아세안 안보 포럼(ARF)에 가져가서, 일종의 민족의 집안 싸움을, 민족끼리 해결할 집안 문제를, 국제 마당에 나가 제 민족 못난 꼴을 멍청하게 이리저리 떠벌리고, ㄱ망신 흠씬 당하고, 이런 따위 쓸개 빠진, 민족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자학적이고, 국제적 반푼이를 자처하는, 너무나 무뇌아적인 이명박 정권은, 그러나 또다시 남한을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남한 국민들 과반수 이상이 『시크릿』 따위의 독자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촛불이 아무리 수십만, 수백만 타올라도, 남한 사회의 시대 조류, 남한 국민들의 심성을 희망적으로 돌려 놓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판해선 안 됩니다.

qualia 2008-07-31 04:40   좋아요 0 | URL
말이 너무 거칠고 천박해서 죄송합니다. 감정이 치밀어서 좀 입이 걸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로쟈 2008-07-31 15:36   좋아요 0 | URL
'천박한 대한민국 인종들' 안에 qualia님이나 저도 포함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nada 2008-07-31 08:32   좋아요 0 | URL
정말 요즘 이 나라가 너무 우울하네요. 교육감 선거도 결국 그렇게 되고.
애 낳을 생각은 원래도 안 했지만, 이런 세상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러울 정도예요.
사회적인 연대로 뭔가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개인적 선택뿐이라는 게 답답해요.
우리 현실이 정말로 저 쓰레기통하고 다를 바 없어 보이네요.

로쟈 2008-07-31 15:35   좋아요 0 | URL
우울 모드하고 꽃양배추님은 안 어울리시는데요. 힘 내시길.^^

가을산 2008-07-31 10:44   좋아요 0 | URL
랜디의 '마지막 강의'는 작년에 인터넷에서 히트친 동영상 '마지막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책 같네요. 저도 그 영상 봤는데 재미있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는 괜찮은 강연이었어요. 그런 꿈의 실현이 가능한 시스템이 부럽기도 했구요. 인세 내면서 책 사보기보다는 동영상을 보는 것을 더 추천합니다.
http://kr.youtube.com/results?search_query=randy+pausch+%EC%9E%90%EB%A7%89&search_type=&aq=f

로쟈 2008-07-31 15:36   좋아요 0 | URL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만으로도 충분히 괜찮고 감동적입니다.^^;

유리우스 2008-07-31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민가고파요...-_- 더군다나 '서울시'교육감의 권한이 사실상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로쟈 2008-07-31 15:37   좋아요 0 | URL
정작 이민가도 좋을 만한 이들은 남아서 민폐들을 끼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2:19   좋아요 0 | URL
댓글들이 슬프네...

로쟈 2008-07-31 15:38   좋아요 0 | URL
좀 과장하면, 1848년 게르첸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12   좋아요 0 | URL
투표의 힘이 무섭군요.다 도둑놈이야! 투표같은 거 안 해! 이런 사고방식이 이런 결과를 낳았죠.투표 안 한 이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깊이 생각해야겠네요.부작위의 책임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로쟈 2008-08-02 20:16   좋아요 0 | URL
정치적 냉소주의도 그것이 가능한 최소한의 '토대'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냉소주의자들은 그걸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32   좋아요 0 | URL
이쳥준 씨도 불귀의 객이 되었군요.장흥의 쌍벽중 이제 한승원 씨만 남았네요.

로쟈 2008-08-02 20:17   좋아요 0 | URL
한승원 선생도 기사에서 언급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58   좋아요 0 | URL
이청준 씨 고향이 장흥군 회진면인데 거기 천관산은 아래의 골짜기에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정상에서 보는 바다경치가 일품이라 경상도에서도 많이 등산 와요.전라도 특유의 요리도 괜찮고...근데 서울 경기 지방에서 오기엔 너무 멀겠네요.광주에서도 좀 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