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문학 강의에서 레오폴도 알라스(1852-1901, 필명 '클라린')의 <레헨따>(1885)를 읽었다. 아주 드물게 읽을 수 있는 19세기 스페인문학의 고전. 19세기 스페인 최대 작가로 평가받는 페레스 갈도스(1843-1920)의 <포르투나타와 하신타>(1887)와 함께 19세기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놀랍게도 <레헨따>는 클라린(창비 표기 '끌라린')이 30대 초반에 쓴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그는 두 편의 장편소설만을 남겼다). 아무튼 19세기 스페인소설이 워낙 희소하게 소개돼 있는지라 번역본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다(<포르투나타와 하신타>는 발췌본만 나와있다).


 













19세기 후반 스페인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긴요한 작품이라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지만 <레헨따>('레헨따'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판사 부인'을 뜻하는 보통명사다)는 한편으로 여성주인공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넓은 의미의) '여성소설'이기도 하다. 비교 가능한 작품으로 유럽소설로는 네 편을 떠올리게 되는데,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강의에서 비교하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1857)-프랑스



<안나 카레니나>(1878)-러시아
















<레헨따>(1885)-스페인


<에피 브리스트>(1895)-독일



분량으로는 <안나 카레니나>와 비슷한데, 특이하게도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한 논문은 찾지 못했다(<마담 보바리>나 <에피 브리스트>와 비교한 논문들은 있었다). 시야를 넓히면 추가할 수 있는 작품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는데(이탈리아문학?) 여하튼 내가 떠올리게 되는, 그리고 강의에서 다룬 작품들로는 그렇다. 기회가 되면 이들 작품만 모아서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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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아프리카문학을 향하여

2년 전 페이퍼다. 아프리카문학으로 아체베와 쿳시 등은 이미 다룬 바 있다.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구르나도 번역되어서, 늦어도 내년에는 아프리카 문학을 어느 정도 규모로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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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문학 강의를 다시 진행하고 있는데, 여느 강의와 마찬가지로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소감과 과제가 남는다. 1960년대 문학을 최인훈과 김승옥의 작품으로 정리하고 이번주부터는 70년대로 넘어간다(이청준과 조세희를 다루게 된다). 60년대 문학을 두 작가로 다룬다면, 나로선 최인훈과 김승옥밖에 떠올리지 못한다(<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의 목차대로다). 하지만 선택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소설가로서 이호철과 박태순이 내가 고를 수 있는 다음 순번의 작가들이다. 
















문학강의에서 이들 작가들을 다루지 못한 것은 일정의 제한 때문인데, 거기에 덧붙이자면 마땅한 작품(집)이 없는 것도 문제다(내가 주로 문학과지성사의 한국문학전집을 교재로 쓰고 있어서 그렇기하지만). 분단문학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이호철의 작품으론 <서울은 만원이다>(1966)를 먼저 고르고 싶다. 60년대 사회상을 다룬 세태소설로 평가해볼 수 있겠기에(김승옥의 장편소설들과견주어보고 싶다). 
















박태순은 작품집 출간을 기준으로 하면 70년대 작가로 분류되지만, 60년대 후반에 데뷔한 4.19세대 작가다. <무너진 극장>이 4.19혁명을 다룬 대표작. 아쉬운 것은 작품집들이 대부분 절판되었다는 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교재로는 선호하지 않는 지만지판이다. 게다가 장편소설로는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도 읽어보고 싶지만 알라딘에서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강의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세계문학 작가들에 대해 불평하고는 하는데, 정작 한국현대문학 작가들도 다룰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한국문학 강의를 시대별로도 넉넉하게 꾸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일정과 작품, 수강자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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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1948년생)의 작품 세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구르나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의 작가로 영어로 작품을 쓴다. 18세에 탄자니아를 떠나 스무살에 영국에 정착했고, 1982년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서 켄트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장편소설은 1987년부터 발표(단편은 1984년부터). 이번에 번역된 작품은 <낙원>(1994), <바닷가에서>(2001), <그후의 삶>(2020)이다(목록을 보니 10권의 장편소설 가운데 선별한 것으로 보인다).

분류상 구르나는 아프리카문학과 탈식민주의문학에 속하겠다. 자연스레 같이 떠올리게 되는 작가들이 여럿 된다(쿳시나 나이폴을 포함하여). 아프리카문학이건 탈식민주의 문학이건 좀더 자세히 짚어보는 강의를 기획해보려 한다. 아프리카문학, 이탈리아문학 등이 내년 세계문학 강의의 아이템인데 구르나의 작품들 덕분에 아프리카문학의 목록을 충분히 채울 수 있게 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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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3 2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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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4 0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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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수년만에 다시 강의에서 다루면서(이번에도 전체 7권 가운데 2권까지 읽는다)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와 함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서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유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읽는다(저자가 포로수용소에서 진행한 프루스트 강의다). 두권 모두 그 사이에 나온 책들.

‘프루스트와 톨스토이‘라고 제목을 적은 건 차프스키가 비교하고 있어서인데, 비교대상은 <전쟁과 평화>의 서두다. 러시아 상류 사교계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소설이니(영화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사교계를 정밀하게 묘사하는 프루스트 소설과의 비교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에 착오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초반부에서 20여 페이지나 할애하여, 러시아 황후를 어머니로 둔 귀족 부인 안나 파블로브나 셰레르가 그녀의 집에서 연 야회를 묘사한다. 그는 칭찬 뒤에 숨은 계략과 그것이 풍기는 분위기를 거장의 솜씨로 탁월하게 그려낸다. 이로써 우리는 안나 파블로브나에게 초대받은 귀족들의 세계를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접한다. 톨스토이는 바질 왕자와 야회를 연 여주인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제1장의 첫 두 페이지만에 이 걸작이 품은 정교함을 보여준다.˝(77-78쪽)

정말로 <전쟁과 평화>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인물이 안나 파블로브나인데 역자가 엉뚱하게 옮겨놓았다. ‘러시아 황후를 어머니로 둔 귀족부인‘? 어머니가 황후이면 황제의 오누이이자 공주라는 건가? 안나 파블로브나는 당시(알렉산드르 1세 치세) 황제의 어머니인 마리아 표도로브나(파벨 1세의 아내이면서, 남편의 뒤를 이어 차례로 즉위하는 두 아들,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의 어머니다), 즉 ‘황태후‘의 측근이었다. 이른바 ‘황실 실세‘(조선시대로 치면 제조상궁쯤 될까?). 그래서 그녀가 여는 야회에 고관대작들이 줄지어 참석하는 것이고, 여주인인 그녀가 바실리 공작을 맞이하면서 건네는 말이 첫 대사다.

‘바질 왕자‘는 ‘바실리 공작‘(바실리 쿠라긴 공작이다)을 잘못 옮긴 것인데(바실리의 불어 이름이 바질인 걸 감안하더라도) 이 두 사람이 사교계 고수끼리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첫 장면에 해당한다. 아래는 BBC판 <전쟁과 평화>(2016)에 등장하는 안나 파블로브나(<엑스파일>의 스컬리 역으로 친숙한 질리언 앤더슨이 배역을 맡았다)와 바실리 쿠라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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