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에다가 밀린 일들이 겹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럴 때는 머리나 손가락보다 엉덩이가 공부한다는 말이 딱 맞지만 그간에 그쪽으론 살이 붙지 않았나 보다. 진득하게 붙어있질 못하는 걸 보면. 잠시 간식 타임에 뉴스기사들을 읽어보다가 이탈리아 감독 마르코 벨로치오(1939-)의 영화 <굿모닝, 나잇>(2003)에 관한 리뷰를 옮겨온다('벨로키오'라고도 표기돼 있다).

국내에 개봉 예정인 것인지(아니면 개봉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감독도 생소하다) '붉은 여단'이란 말을 오랜만에 접하게 됐다(영화속 사건은 1978년에 일어난 것인데, 따져보면 그때 감독이 지금의 내 나이이다). 한때는 TV에서도 자주 접하던 말이었는데, 어느새 30년이 지난 얘기라고?!.. 

참고로 세계 3대 테러조직으로 불렸던 "붉은여단은 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으로 1970년대초 납치·살인·사보타주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들의 목적은 이탈리아란 국가를 서서히 소멸시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이 주도하는 마르크스적 대혁명으로의 길을 예비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붉은 여단의 창설자는 레나토 쿠르치오로서, 그는 1967년 트렌토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좌파사상단체를 만들어 카를 마르크스, 마오쩌둥, 체 게바라와 같은 인물들의 사상을 연구했다. 1970년 11월 붉은 여단은 밀라노에 있는 공장과 상점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971년의 납치테러를 시작으로 1974년 토리노의 반(反)테러대 총지휘관 및 대원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으며, 1978년 이탈리아의 전(前)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하여 살해했다. 붉은 여단의 총책임자인 쿠르치오는 1974년 체포되었다가 1975년 탈출, 1976년 재생포되었다. 1981년 12월에는 NATO소속 미군인 제임스 도지어 준장이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42일 동안 감금되는 사태도 벌어졌으나, 후에 그는 파도바의 붉은 여단 은신처를 급습한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다.

붉은 여단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에는 정회원이 400~500명에 이르렀고, 그밖에 1,000여 명의 회원이 이들을 정기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수천 명의 후원자들이 자금과 정보전달의 수단 및 은신처를 제공했다. 조심스럽고 체계적인 경찰의 검거작전에 의해 1970년대 중반부터 붉은 여단의 지도자들과 평회원들이 체포·감금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그 조직이 대단히 약화되었다."

오마이뉴스의 기사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195500 도 참조할 만하다. 

프레시안(07. 06. 24) 영화는 종종 핏빛 역사의 교훈을 들려준다

베니스영화제에 마르코 벨로치오가 새영화를 내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언제 때 마르코 벨로치오래? 베르톨루치와 동시대 사람이잖아. 그 사람, 아직 거기서는 작품을 만드는 모양이네. 근데 무슨 영화라구? 알도 모로? '붉은 여단' 얘기? 웬 '붉은 여단' 얘기래? 30년이나 지난 얘기잖아.
  
70년대 중후반이니 아마도 중학교를 다닐 때쯤이었을 것이다. 정치의식이 전혀 없었던 나이임에도 알도 모로 수상이 참혹하게 살해돼 발견됐다는 뉴스가 꽤나 시선을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알도 모로와 '붉은 여단'이라는 이름이 각인돼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일까. '붉은 여단' 얘기라는 벨로치오 감독의 새영화 <굿모닝, 나잇>은 DVD를 받아들고도 그것을 보기까지 사나흘이 걸렸다. 마치 불쾌했던 기억은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영화는 복잡한 구조로 돼있지 않다. 겨우 4명에 불과한 '붉은 여단' 조직원이 알도 모로 전 수상을 유괴,납치해 제멋대로 프롤레타리아 재판을 한 후 50여일간을 억류해 놓고 있다가 결국 살해한다는,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고 있다. 드라마적 구성이라곤 이 얘기 전체를 납치극에 참여한 20살짜리 여성 키아의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렇지 않았으면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을 만큼 밋밋하고 평면적이다.

당시 사건에 대해 극도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는 벨로치오 감독의 태도가 느껴진다. 벨로치오는 이탈리아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좌파 감독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종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다분히 우향우의 자세로 변신을 한 것과 비교되곤 한다. 베르톨루치처럼 우파로 변절하기 보다는 벨로치오처럼 좌파임을 반성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맞고 또 옳은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영화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어 신세대 관객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붉은 여단'이 알도 모로를 납치한데는, 그가 유럽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좌우 코아비타숑, 그러니까 좌우 합작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독민주당 당수로 합리적 우파의 대표주자였던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과 손을 잡고 갈라진 국론을 봉합하려 애썼다. 그래서 일부 우파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또 일부 좌파로부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우파기회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붉은 여단'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당시 '붉은 여단' 사건은 역설적으로 좌파 맹동주의와 극단적 공산주의자를 솎아내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운동의 몰락을 재촉하는 길이 되고 말았다. 구구절절 이런 얘기는 다 필요없고, 벨로치오는 왜 지금에 와서 케케묵은 당시의 사건을 들춰내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세상 곳곳에서 지금 갖가지 테러가 자행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정치적 이유와 이념적 명분이 앞세워진다.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이나 거기에 복수하는 자들이나 모두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을 뿐이다. 벨로치오가 얘기하려고 한 것은 바로 그점이 아닐까.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굿모닝, 나잇>같은 영화가 더 나은 정치인과 지도자를 선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영화는 종종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며 여행길은 늘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는 법이다.(오동진 편집장) 

07. 06. 25.

P.S. 알고보니 작년 가을 끝자락에 한겨레에도 영화의 리뷰가 실렸었다. 짐작에 영화는 작년 그맘때 개봉됐었나 보다. 한겨레와 씨네21의 기사까지 옮겨놓는다(벨로치오의 영화세계 전반을 정리해주고 있는 씨네21의 기사가 유익하다).

한겨레(06. 11. 29) 흔들리는 레지스탕스의 서글픈 초상

1977년 말 로마의 한 아파트, 어느 신혼부부가 부동산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새를 키울 만한 정원이 있고, 적당히 널찍한 침실과 부엌이 있으며, 거실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곳. 얼핏 평온한 삶의 안식처처럼 보이나 실은 극좌파 무장세력 ‘붉은 여단’의 아지트가 될 공간이다. 신혼부부로 위장한 남녀는 급진적 혁명노선을 함께 걷는 동지이며, 이들 외에도 두 남자가 더 숨어들어 위험한 미션을 수행한다. 새해가 밝아오고 온 거리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일 때조차 이들에겐 사치스러운 감정을 나눌 여유가 없다.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사(巨事)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본격적인 아지트 역할을 시작한 것은 1978년 3월16일, 붉은 여단 멤버들이 전 총리이자 기독민주당 당수 알도 모로(로베르토 헬리츠카)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면서부터다. 이날은 알도 모로가 공산당과 우파 여당 5당을 연합한, 연립내각이 승인되는 날이다. 알도 모로. 시민들에게는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여당 당수지만, 붉은 여단에는 보수정치세력을 대변하는 반동주의자이자 수정주의자일 뿐이다. 단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름으로 처형한다”는 명목하에 모로를 아파트에 감금하고, 정부와 교황을 상대로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나 협상에 실패하고 국민의 비난만 거세지자, 그토록 견고했던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굿모닝, 나잇>은 이탈리아의 거장이자 대표적인 좌파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의 2003년작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가 ‘미래의 영화상’과 각본상으로 화답했던 작품이다. 함께 이탈리아 영화계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 비해 벨로키오는 고집스럽게 계급과 정치를 영화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굿모닝, 나잇> 역시 감독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정신분석이라는 화두를 관통한다. 거친 화면의 뉴스릴과 픽션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1978년 이탈리아 전 총리 알도 모로가 납치됐다가 55일 만에 암살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역사적 트라우마지만 감히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민감한 기록들을, 벨로키오는 대담하게 끄집어낸다.

그러나 벨로키오의 관심은 역사의 한 자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평범한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붉은 여단의 흔들리는 표정에 더 주목한다. 그중 유일한 여성 단원 키아라(마야 산사)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이다. 자유의 대안은 과연 죽음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이 현 이탈리아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까? 혹은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벨로키오는 섣부른 도덕적 판단 대신 이런 질문들을 통해 조용하지만 파장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제목 ‘굿모닝, 나잇’은 19세기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Good Morning… Midnight>에서 가져온 것. 극중 키아라의 동료 엔조(파올로 브리구글리아)가 테러리스트들을 소재로 쓴 시나리오 제목이기도 하다. 엔조는 건조하게 살아가는 키아라를 자극하는 인물로, 일상생활이 전혀 없는 붉은 여단 멤버들을 비난한다. 바깥세상의 사람들 역시 수군댄다. “붉은 여단은 혁명활동을 하지 않을 때 포르노영화를 볼 것”이라고. 이들의 지적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붉은 여단은 모로를 가두고 감시하는 동시에, 자신들 역시 모로와 함께 감금된 자들이다. 아파트가 그들의 유일한 세상이고,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뉴스만이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키아라는 “상상력이 현실을 구하진 못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녀가 그토록 굳게 믿었던 이데올로기 역시 현실을 구하지 못했다. 미묘하게도 그녀는 감시 구멍을 통해 모로의 늙고 지친 모습을 목격한다.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는 모로는, 키아라에게 적이기 이전에 인간의 존엄을 일깨워주는 존재로 변모한다. 동시에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자신의 동지들과 ‘그의 동지들’에게 버림받은 모로 사이에서, 키아라는 점점 정신분열에 가까운 판타지에 시달린다. 이를테면 파시스트들에 대항하다 죽은 키아라의 아버지가 등장한다거나, 모로가 감금에서 풀려나 유유히 걸어나가는 장면들이다. 이제 키아라가 꿈꾸는 것은 혁명적 투쟁 이전에, 인간성이 회복된 세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가 꿈꾸는 판타지가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음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총성이나 끔찍한 구타장면 하나 없이 흔들리는 현실을 잡아낸 벨로키오의 연출솜씨는 놀랍다. 이웃집 여자나 지역 사제의 예기치 않은 방문, 좀도둑들의 침입 등은 언뜻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침묵 속에 감도는 긴장감, 서늘한 시선 속에 감지되는 뜨거운 열기는 어떤 장르적 장치만으로 연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벨로키오는 대사나 동선을 절제하는 대신 이미지와 음악(핑크 플로이드의 터질 듯한 사운드와 슈베르트 협주곡의 대비!)의 절묘한 조합 또는 배우들의 떨리는 눈동자만으로 짙은 후유증을 남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극도에 달한 포스트 9·11 시대, 그 후유증은 좀처럼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굿모닝, 나잇>은 철저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기묘한 정치스릴러다.(글 신민경)

씨네21(06. 12. 14)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세계와 <굿모닝, 나잇>

자유를 염원하는 사형수들의 노래

이탈리아 영화계는 60년대 들어 두명의 ‘천재감독’을 동시에 배출하는 호사를 누린다. 불과 23살의 나이로 <혁명전야>(1964)를 만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바로 1년 뒤 26살의 나이로 데뷔작 <주머니 속의 주먹>을 발표한 마르코 벨로키오가 그 장본인들이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유럽의 들끓었던 사회변혁 열기를 대변하는 좌파 경향의 젊은이들이었다.

두 젊은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60년대 정치영화의 수작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들이 데뷔할 때, 선배 격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마르코 페레리 등이 이데올로기적 주제가 강한 사회비판영화들을 발표하며 이탈리아 영화계의 좌파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는데, 두 젊은이는 그런 전통을 계속 이어갈 인재들로 인식됐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방송은 우파가, 그리고 영화는 좌파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전례를 남겼고, 이는 지금도 이 나라의 문화전통으로 남아 있다.

정치적 리얼리즘을 고집한 작가

베르톨루치가 <순응주의자>(1970), <거미의 계략>(1970) 등을 발표하며 보수우파의 억압과 허위를 비판했다면, 벨로키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1971), <괴물을 1면에 실어라>(1972) 등을 발표하며, 그런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과정에 더욱 주목했다. 다시 말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통용되는 가치관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성되고 재생산되는지 세밀하게 관찰하는 식이다.

아마 알튀세르가 살아 있다면, 자신이 주장했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성격을 추적하는 영화로 벨로키오의 작품들에 큰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우리의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불리는 가족, 학교, 교회 등인데 벨로키오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런 제도 속의 인간관계를 질문해왔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배타적인 관계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차단된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존재의 모순에 빠지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런 공간의 상징은 가족이다. 그의 정치영화가 특별히 ‘가족 정치드라마’라고 불리는 까닭도, 바로 그의 영화에 가족관계가 표나는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68년 이후 베르톨루치는 정치적 테마에서 한발 벗어나, 에로티시즘과 정치를 뒤섞는 센세이셔널한 작품들로 자신의 작품 방향을 바꾸었다. 반면에 벨로키오는 여전히 정치적 색깔이 강렬한 작품들에 집착했다. 68년 이후 유럽에서는 이미 ‘잔치는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는데, 계속해서 정치적 리얼리즘에 주목한 벨로키오는 교조적인 인물로 비치기 쉬웠다. 벨로키오는 이런 전투적인 좌편향 성향 때문에 외국에서는 더욱더 무명으로 남았다. 1987년 베르톨루치가 좌파적 시각에서 보자면 변절에 가까운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 부상할 때, 벨로키오는 이념에 집착하는 한물간 고집쟁이처럼 비치기도 했다. 바야흐로 두 경쟁자의 승부는 한쪽으로 아주 유리하게 진행됐던 것이다.

유럽 영화계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던 벨로키오가 다시 재발견된 데는, 프랑스 영화인들의 관심이 큰 구실을 했다. 1997년 칸영화제는 <홈부르크의 왕자>를 경쟁부문에 초대, 이탈리아 본국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노감독의 건재를 다시 전세계에 알렸다. 딱딱한 정치영화일 것으로 짐작한 영화인들은 벨로키오가 보여준 꿈과 몽유병에 관한 경쾌한 역사 코미디물을 보고 노장의 능란한 솜씨와 품위에 다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칸영화제쪽은 이 작품에 이어 연속해서 두 작품을 다시 경쟁부문에 초대한다. 9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주자는 틀림없이 난니 모레티인데, 이때의 분위기로 보자면 이탈리아의 진정한 ‘작가’ 감독은 단연 마르코 벨로키오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작품은 <유모>(1999)와 <종교시간>(2002)이다.

<굿모닝, 나잇>이 진정성을 확보한 이유

특히 <종교시간>은 죽은 어머니가 바티칸에 의해 성녀로 추대되는 과정을 놓고,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가치관의 모순을 마치 명상하는 종교화처럼 묘사해 벨로키오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에 접근한 작품으로 종종 해석됐다. 다시 돌아온 노장의 발걸음은 더욱 당당해졌고, 또 그를 기다리는 이탈리아 관객의 마음도 자긍심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작품으로 발표된 게 바로 <굿모닝, 나잇>(2003)이다. 제작단계부터 다루는 내용 때문에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이탈리아인들이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어하는 70년대 테러리즘의 대표적인 사건인 알도 모로 전 총리의 납치와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벨로키오가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이 영화의 진정성을 믿지 못할 것이다. 당시 모로 전 총리를 죽인 인물들은, 별 모양으로 상징되는 극좌파 테러리스트 ‘붉은 여단’의 멤버였기 때문이다. 사건의 가해자가 어쨌든 좌파인데, 좌파의 대표적인 감독인 벨로키오가 그 사건을 다룬다고 하니 자기 성찰의 엄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된 것이다.

모로는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최초로 좌우합작의 연정을 이끌어낸 탁월한 협상가였다. 우파인 기독교민주당 리더인 그는 당시 엔리코 베르링게르가 이끄는 제2의 정당 이탈리아공산당에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여 좌우가 함께 정부를 책임지는, 대단한 정치실험을 단행했다. 그래서 그는 노련한 정치가로 추앙받기도 했고, 동시에 우파로부터는 빨갱이와 놀아난 배신자로, 좌파로부터는 무산계급을 현혹하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가 총리에서 물러나 기독교민주당의 리더로서만 활동하고 있을 때, 그는 납치됐고, 또 2개월 뒤 살해됐던 사건이 바로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이탈리아 영화계는 이런 민감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리얼리스트 감독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감독 본인이 그 시절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남은 장본인이 아닌가. 그래서 벨로키오의 리얼리즘은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고, 요즘은 이런 감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2001년의 뉴욕 사건 이후 세계의 관심은 테러리즘에 쏠려 있었는데, 모로 사건을 다루는 테러리즘 영화가 발표되어 이탈리아 좌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는 않았다. 좌파들은 붉은 여단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시종일관 부정하지만, 시민들은 반드시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로의 납치와 살해에 이르는 약 두달간에 한정돼 있다. 붉은 여단의 네 멤버 중 여성인 키아라(마야 산사)와 에르네스토(감독의 아들인 피에르 조르지오 벨로키오)는 부부로 가장하여 아파트를 하나 빌린다. 다른 두 멤버는 리더인 마리아노(루이지 로 카시오)와 행동대원 프리모(조반니 칼카뇨)이다. 1978년 3월16일 이들은 로마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인 끝에 5명의 경찰과 경호원을 살해하며 알도 모로 전 총리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름으로 부르주아의 상징인 전 총리를 납치했으며, 프롤레타리아의 재판에 따라 모로에겐 사형이 언도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빌린 아파트에 밀실을 만들어 모로를 감금한다. 단, 감옥에 갇혀 있는 붉은 여단의 동료들을 석방한다면, 전 총리의 목숨도 협상 가능하다는 여지는 남겨둔다. 전세계의 자유국가가 경악했던 납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자신들의 신념에 갇힌 죄수들

자그마한 노인으로 나온 알도 모로(로베르토 헤를리츠카)가 화면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이탈리아의 관객은 경악했다. 모습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죽은 모로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바싹 마르고, 지적이며 예민하고 불안한 눈빛 등 과거의 그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배우였다.

납치범들은 여전히 그를 ‘총리’(이탈리아어 대사로는 ‘프레지덴테’인데 영어의 President에 해당하는 말로, 이탈리아에선 총리를 그렇게 부른다. 말 그대로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므로)로 부르고 예우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공개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게, 이들 납치범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시민 대중에 의해 찬양받을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문, TV를 보니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거사’에 기뻐하지 않으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는 단체 하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이탈리아공산당 당수 베를링게르가 나와, 이들의 행동을 테러리즘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멍청한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대목에선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기도 한다. 극단주의 좌파들은 베르링게르를 우파와 타협한 변절자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좌파들은 그를 자신들의 친구이자 영웅으로 대접했다. 다시 말해, 좌파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베르링게르에게 비판받는다면 이들은 고립된 소영웅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인 것이다. 벨로키오의 인물들이 늘 그렇듯 붉은 여단 멤버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맹신하며, 불행하게도 타인의 다른 생각에는 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테러리스트 리더인 마리아노는 “우리는 신념에 따라 항상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한다. 모로는 “당신들 코뮤니스트들 이전에 기독교인들이 그랬지(신념에 따라 죽었지)”라고 답하며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한다.



신념에 의해 혹은 대의에 의해 자신들의 목표를 행동에 옮겼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 한구석에선 모순의 갈등이 밀려오는 것으로 영화는 전환점을 맞는다. 그 모순의 상처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유일한 여성대원인 키아라다. 레지스탕스의 딸로, 그녀의 아버지도 극우 파시스트들에게 죽음의 공포에 늘 위협받으며 살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읽어주던 책이 하나 있었는데, 파시스트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빨치산 대원들이 아내와 연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들이다.

붉은 여단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알도 모로도 아내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편지를 쓰고 있고, 키아라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빨치산 활동을 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남긴 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키아라는 모르긴 몰라도 그 슬픈 편지들을 읽으며 수없이 눈물을 흘렸을 테고, 우파 파시스트들의 잔인함과 완고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결과적으로는 과거의 파시스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느낄 때면 키아라는 환상을 보곤 한다. 흑백의 환상은 레닌 시절과 스탈린 시절의 민중의 모습, 그리고 바다 위에서 사형집행을 당하는 빨치산 대원들의 비참한 모습들로 이어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연주에 맞춰 보여지는 잔인한 다큐멘터리풍 화면들은 붉은 여단의 행위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저들 파시스트들은 더욱더 악질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키아라는 자신의 행위에 자긍심을 느끼기는커녕 더욱더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천부의 자유에 대한 염원

어쨌든 영화는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서술됐다. 이들은 명백히 한 정치가를 납치하고 살해했는데, 그들의 행위를 파시스트들의 원죄와 연결하여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파들이 불편해하는 점이 바로 여기다. 감독이 좌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분자들에게 동정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감독은 붉은 여단의 신념을 완고한 어리석음이라고 (자기)비판을 하며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럼에도 <굿모닝, 나잇>은 좌파의 시각에서 서술한 최고의 정치드라마로 남을 것 같다. 감독은 쉬쉬하며 감추고 있던 부끄러운 부분을 과감히 드러내어 자신들의 과거도 한때는 맹신주의로 치달을 때가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키아라의 눈물은 자기반성에서 나온 연민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녀의 환상 속에서, 죽은 알도 모로가 유령처럼 밀실에서 빠져나와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에 맞춰 발걸음도 가볍게 거리를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모두의 ‘천부의 자유’에 대한 염원으로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다.(한창호 영화평론가)

P.S.2.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붉은 여단 T셔츠를 판매하는 사이트도 눈에 띈다(여성용과 아동용까지 있다). 혁명뿐만 아니라 테러도 판매된다는 건 더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새로운 지향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반성이 아닐까 싶다...

P.S.3. 붉은 여단과 관련하여 떠올릴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은 안토니오 네그리이다. 작년에 출간된 그의 자전적 대담 <귀환>(이학사, 2006)은 "붉은 여단이 저지른 이탈리아 전 수상 알도 모로의 납치ㆍ살해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1979년 체포수감된 이후, 1983년 프랑스로 망명해 1997년 이탈리아로 돌아오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경력을 웅변"하는 책이기에 그러하다. 실제 대담에서 네그리는 자신이 붉은 여단에 깊이 공감했지만 암살활동에는 반대했다고 말한다. 붉은 여단 내부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다는 얘기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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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자님과의 댓글
    from to be immortal 2007-06-27 01:28 
    알도 모로, 몇 년 전, 이 사건의 내막을 정리해 본 일이 있는지라 좀 재있는 논쟁을 헤보고 싶었으나 잘 안된다. 가설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nbs...
 
 
퍼그 2007-06-25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추천하신 <<사랑의 지혜>>에도 붉은 여단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로쟈 2007-06-2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8년 이후의 좌파를 다룬 책들에서도 심심찮게 언급은 됩니다. <사랑의 지혜>는 이미 8-9년전에 읽은 책이 돼 버렸네요...

쿠자누스 2007-06-2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도 모로> 납치극이 벌어질 때 로마 시내의 전화 통화는 두절되었습니다. 모로가 납치된 곳을 알리는 수많은 제보가 있었으나 무시되었고요. 붉은 여단의 핵심에는 나토 비밀 부대 요원들이 침투해 있었음을 붉은 여단 생존자가 폭로했고 그 비밀 부대의 존재는 1990년 안드레오티 총리가 이탈리아 국회에서 증언한 바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독일에도 있습니다.독일이 통일되던 무렵, 도이체방크 총재 <헤어하우젠>이 피살되고 독일 극좌테러단 '적군파'가 '3세계 민중의 착취차'를 징벌하는 차원에서 암살했다는 편지를 남겼는데 그는 암살되기 직전 독일과 소련이 손잡은
'동구 경제 부흥', '제3세계 채무 면제'를 주장하여 IMF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지요.

이 두 사람의 프로젝트가 실현되었다면, 냉전 이후 유럽 한복판 발칸에서의 전쟁도
10년 전 러시아, 아시아, 남미를 흽쓸은'외환 위기'도,
<유럽연합>이 카지노 자본의 독재기구로 굳어지는 오늘의 사태도 없었을 겁니다.

유럽의 극좌 테러단이란 앵글로 색슨 헤게모니, 카지노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정치, 경제 요인들을 제거하고 좌파 사회 세력을 분쇄하는 비밀공작을 위장하는 데 이용된 별동부대 (유령 조직)입니다. 21세기 '반테러 전쟁'의 구실이 된 '알 카에다'는 그 후발 조직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로쟈 2007-06-26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리도 몰랐던 내용이군요...

쿠자누스 2007-06-2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리가 몰랐을까요?

납치극의 미스테리를 추적한 저널리스트는 1979년 암살되었고
국가헌병 장군 Chiesa는 모로가 잡혀 있던 곳을 파악, 내무장관에게 보고했으나
'작전 불가'라는 명령을 받은 후 1982년 암살되었고
모로는 <붉은 여단>에게 잡혀 있을 때 나토의 비밀 작전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

Investigative journalist Mino Pecorelli thought that Aldo Moro's kidnapping had been organised by a "lucid superpower" and was inspired by the "logic of Yalta".

He painted the figure of General Carlo Alberto Dalla Chiesa
as "general Amen", [...] that

it was him that, during Aldo Moro's kidnap, had informed Interior Minister Francesco Cossiga of the localization of the cave where Moro was detained.

But he would have been ordered not to act on his information,
because of the opposition of a "lodge of the Christ in Paradise."

Pecorelli then wrote that Dalla Chiesa was in danger and would be assassinated (Dalla Chiesa was murdered four years later).

After Aldo Moro's assassination, Mino Pecorelli published some confidential documents, mainly Moro's letters to his family.
In a cryptic article published in May 1978, wrote The Guardian
in May 2003,

Pecorelli drew a connection between Gladio, NATO's stay-behind anti-communist organisation (which existence was publicly acknowledged
by Prime Minister Giulio Andreotti in October 1990) and Moro's death.

During his interrogation, Aldo Moro had referred to "NATO's anti-guerrilla activities."

Mino Pecorelli, who was on Licio Gelli's list of P2 members
discovered in 1980, was assassinated on March 20, 1979.

The ammunitions used for Pecorelli's assassination, a very rare type, where the same as discovered in the Banda della Magliana 's weapons
stock hidden in the Health Minister's basement.


-> http://www.guardian.co.uk/print/0,,4665179-105806,00.html

로쟈 2007-06-2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대로라면, Fasanella 등이 모로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유럽의 극좌 테러단이란 앵글로 색슨 헤게모니, 카지노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정치, 경제 요인들을 제거하고 좌파 세력을 분쇄하는 비밀공작을 위장하는 데 이용된 별동부대입니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인가요? 네그리는 또 거기에 한몫하구요? 모두가 다 아는 '음모'도 여전히 '음모'인가요?..

쿠자누스 2007-06-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BC가 1992년에 방송한 기록 영화를 보셨나요? ->
http://www.youtube.com/watch?v=l2MOpkriXb4&mode=related&search=

여기서 보시다시피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극좌파 테러'의 '공식 버전'을 100 % 뒤집는 증언과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지요. 네그리가 거기에 한몫을 했느냐 하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질문이 되겠지요. BBC가 아는 걸 네그리가 모른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이라든가 1987년 KAL기 실종 사건이라든가 2001년 9.11 테러라든가 2003년 앵글로 색슨의 이라크 침공이라든가 2005년 7.7 런던 테러라든가 2007년 4.16 버지니아 공과 대학 사건이라든가 모두가 다 아는 음모는 음모가 아닌가요 ?

로쟈 2007-06-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전부 4.16사건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쿠자누스 2007-06-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납치현장의 정황이 4.16과 비슷합니다.

버지니아에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정신병자 하나가 강의실 다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순식간에 30명을 죽이고 28명을 부상시키고 자살했다는게 공식 버전입니다. -> http://cafe.naver.com/416911/284

로마에선 <붉은 여단>에 유별난 저격수가 없었고 심지어 누구는 방아쇠 당기는 것도 벌벌 떨었다는데 자동차 안의 모로는 부상도 당하지 않고 나머지 다섯 명만 즉사했지요. 그 정도 정밀 사격은 불가능하다고 <붉은 여단> 두목이 증언했구요.

현장에서 수거된 탄피 93 개 중에 절반쯤은 나토 군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 Fünf Leute im Auto wurden getroffen. Moro selber blieb unverletzt: Der BR-Chef Moretti gab Jahre später im Wortlaut zu Protokoll, dass es „mit der militärischen Präzision der BR nie weit her gewesen ist“, bei dem Aktionsablauf seien „keine hervorragenden Schützen“ gewesen. Bei einem habe die Maschinenpistole gar Ladehemmungen gehabt. Trotzdem wurden, auch das wird erst Jahre später bekannt, am Tatort 93 Patronenhülsen gefunden. Knapp die Hälfte war mit militärischem Speziallack überzogen, der nur bei den Gladio-/NATO-Truppen verwendet wurde. Munition mit diesem Lacküberzug konnte man für einen längeren Zeitraum vergraben. (http://de.wikipedia.org/wiki/Rote_Brigaden)



로쟈 2007-06-26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여단 사건과 조승희 사건을 동일선상에 놓으시는 건 음모론이라기보다는 음모신학으로 여겨집니다. 만약에 그런 진실이 따로 있고, 그걸 확신하신다면 이런 댓글을 다시는 건 넌센스입니다. 다른 행동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쿠자누스 2007-06-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여단에 대한 저의 진술은 그럴 듯 하나 버지니아 사건과 등치하는 건 황당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두 사건의 본질, 핵심은 다르지 않다는 저의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와 단서는 제가 소개한 카페에서 보실 수 있읍니다. -> http://cafe.naver.com/416911/467

진실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님에게 진실과 허구(넌센스)를 분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님의 블로그에 이런저런 정보나 저의 주장(가설)을 올려 님과 논쟁(소통)을 하는 것도 제게는 재밌고 의미있는 행동입니다.

로쟈 2007-06-2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음모/공작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차후에 밝혀지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이 음모설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며, 버지니아 사건의 경우에도 '가설을 입증한는 증거와 단서'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네요. 사실 기독교신학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의 시나리오도 믿는 자의 진실이죠. 저는 맨정신으로 부활을 말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신앙과 일상생활의 양립에 대해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음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쿠자누스 2007-06-2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양'을 보면서 속이 후련했던 게, 모두가 은혜를 받아 '믿습니다'를 외치며 아우성을 치는 순간, "거짓말이야"(김 추자)가 울려 퍼질 때 였지요. '기획 테러'가 터지면 언제나 뒤따르는 '공식버전'이 활개칠 때 마다 이 노래를 퍼뜨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왜곡하는 권력과 미디어가 퍼뜨리는 '공식버전' 치고 사실로 입증된 게 없는데도 이 터무니 없는 '공식버전'을 음모라고 부르면 '음모론자'가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Aldo Moro를 입력해서 해외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니 별별 괴담이 다 나옵니다. 이렇게 모르고 살았나 하는 한숨밖에 나오질 않네요.버지니아 사건도 <알도 모로> 사건 처럼 국회 차원의 조사가 들어가고 내부 증언이 쏟아져 나오면 진상이 드러날텐데 아직까지는 로마에서처럼, 초기 진압 작전을 사보타지했다는 증언 하나 밖에 없네요. ( http://cafe.naver.com/416911/2 )

쿠자누스 2007-11-2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파' 감독이 만든 영화,
1986년 전 영화(원제: Il Caso Moro/감독: 주세페 페라라)에 비하면 완전 초딩 버전이네여.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겐 스릴러 영화처럼 느껴질 만한 영화다...주세페 페라라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당시 이탈리아 정치인들이나 비밀경찰, CIA까지 모두 모로가 죽기를 바랐다고 주장했다"
http://www.ebs.co.kr/Info/CyberPR/Board/HighLight_list.asp?paramdate=2007-11-25#h8156

 

컬처뉴스에서 영화 리뷰 하나를 옮겨온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검은 집>에 대한 언급 때문인데, 실상 리뷰 대상인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하이스미스의 작품과는 무관하다고 한다(감독의 이름은 생소하다). 나 역시 이 리뷰와는 무관하게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이미지로 띄워놓는다. 영화의 원작이라는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 집>(창해, 2007)과 함께. 사실 그녀의 <검은 집>(표제작이 포함된 작품집이 국내에선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5)로 번역돼 나왔다)에 대해서는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타인의 환상을 침범하지 말라, 는 게 교훈이다). 공포영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리뷰는 그닥 공포스럽지 않다...

컬처뉴스(07. 06. 14) 아무 감정 없는 잔혹한 살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미국작가가 쓴 소설 중에 <검은 집 Black House>이라는 게 있다. 한 외딴 마을의 뒷산에 이른바 검은 집이라 불리는 흉가(凶家)가 하나있는데, 마을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 모일라치면 어김없이 화제로 등장하곤 했다. 귀신을 봤다는 등 여러 설(說)들이 많았다. 어느 날 그 흉가에 대해 듣게 된 한 나그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을 샅샅이 뒤져보고는 그저 텅 빈 집일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음날로 마을사람들한테 그 사실을 고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히 호들갑을 떤다는 투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일단의 마을 사람들이 격분하여 나그네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마을사람들한테 그 흉가는 바로 환상공간이었고, 그 불쌍한 나그네는 환상공간을 침범하는 우를 저질렀던 셈이다. 신태라 감독의 <검은 집>은 사실 이 소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시 유스케가 쓴 동명의 일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화두로 꺼낸 까닭은 무엇인가?

 

 

 

 

 

 

 

 

신태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은 집>은 한국영화로서 드물게 보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다. 이전에도 스릴러 영화는 심심치 않게 만들어졌지만, 무늬만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검은 집>은 이 장르에서 거둔 하나의 작은 성취라고 할만하다. 이 영화는 보험사기라는 현대사회에 만연해있는 병폐현상과 싸이코패스라는 원인모를 병리현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매우 지적인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다. 시종일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보험사기와 싸이코패스는 이 영화를 푸는 두 개의 핵심 코드가 된다.

다 알다시피 보험(保險)이란 적금(積金)과는 다르다. 일정기간 적립했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쳐서 받는 적금과는 달리 보험은 만기가 되더라도 원금 회수를 기대할 수가 없다. 사망, 화재, 질병 등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 일정한 보험료를 내게 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정한 보험금을 주어 그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가 보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가 나면 불행 중 다행(한몫 챙기니까)이지만, 사고가 안 나면, 보험금은 한 푼도 없다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 중 불행이랄까?

바로 그 틈바구니 속에 보험사기라는 유혹이 끼어들게 됨은 물론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뜻한 바 있는 사고’를 통해 위장(僞裝)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보험사정 업무를 통해서 뜻하지 않은 사고냐 ‘뜻한 바 있는 사고’냐를 가리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의파 싸나이 전준오(황정민)에게 어느 날 보험사기의 전조(前兆)를 알리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게 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검은 집’으로 초대를 받게 된다. 전화문의의 내용인즉, 자살을 해도 보험금을 탈 수 있냐는 것이다. 대답은 물론 ‘탈 수 있다’이고, 바야흐로 억대 보험금을 노린 범인의 대담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단순 사기꾼이 아니라 싸이코패스였다는데 스릴러물로서의 영화의 묘미가 있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는 친절하게도 이에 대해 간단명료한 정의를 내려준다. 극중 한 젊은 심리학도가 준오에게 찾아와서 자신이 작성한 석사논문을 통해 싸이코패스와 싸이코의 결정적 차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해준다. 매우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전문을 인용해보자.

심리학도(한승규) : 싸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감정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태어났어요.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데다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거죠. 개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설령 자기 자식에게 조차 잔혹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요.

전준오 : 아니 그럼 싸이코랑은 다른가요?

한승규 : 싸이코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아이를 죽이고 싶어서 죽이는 것뿐예요. 하지만 싸이코패스는 다릅니다. 아이를 죽이면 보험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이는 거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사람을 그냥 물건 보듯 하는 겁니다.

전준오 : 병입니까?

한승규 : 전 병으로 봅니다. 치료할 방법은 없어요. 사회에서 격리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참고로 극중 이 남자는 그 싸이코패스로부터 참혹하게 살해당한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죽게 마련이라는 스릴러물의 공식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인성을 가진 싸이코패스가 보험사기에 뛰어들었고, 순박한 보험사 직원 전준오가 그 상대역으로 간택을 당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인공 전준오가 과연 어떻게 그 악의 손길을 물리칠지가 영화 감상의 관건이 됨은 물론이다.

전준오 역을 맡은 황정민은 기대한 대로 무척이나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황정민은 일치감치 캐릭터 배우(character actor : 조연급)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았고, <너는 내 운명>이라는 가장 최근작을 통해서 당당하게 스타로서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말하자면 캐릭터 스타(주연급)로의 승격인 셈이다. <검은 집>에서 그는 캐릭터 창출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이병헌을 위협하는 극악한 캐릭터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던 황정민은 바로 얼마 후 <너는 내 운명>에서는 순박하기 이르데 없는 우직한 노총각으로 180도 변신을 한다. 그랬던 그가 다시 열정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소심한듯하면서도 대범하게 행동에 나서는 보험사 직원 역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관객이 응답할 차례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검은 집>의 핵심 줄거리를 하나도 발설하지 않고 리뷰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검은 집’의 환상공간을 불가피하게 침범(侵犯)하는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환상공간을 대면코자 한다면, 직접 ‘검은 집’을 방문하시길 바란다.(김시무/ 영화평론가)

07.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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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6-1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는 바뀌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로쟈님의 페이퍼가 여전히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 로쟈님의 시도 참 좋았어요.

로쟈 2007-06-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온 글을 재미있다고 하시니까 머쓱하네요.^^;

Joule 2007-06-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모르시나봐요. 재미있는 글 퍼오는 것도 능력이라는 거. 전 신문도 안 보고 테레비도 없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뉴스를 알라딘 서재를 통해 알게 되거든요.
 

오늘 배송된 책은 <옥스퍼드 세계영화사>(열린책들, 2006)이다. 작년봄에 보급판이 나오고 나서도 한참만에 구매한 것인데, 계기가 된 건 엊그제 시립도서관에서 이 책과 자매편이 되는 <세계영화연구>(현암사, 2004)를 잠시 들춰봤다는 것.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적겠지만 후자는 번역, 특히 고유명사 표기가 역자의 공언과는 달리 엉망인 책이었다(물론 주로 러시아 관련 인명들을 확인해본 것이지만). 

거기에 비하면 <세계영화사>는 번역 또한 깔끔하고(읽어본 몇 대목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고유명사들의 표기도 비교적 정확하며 일관성이 있다. 분량 대비 가격도 최근에 나오는 책들에 비하건대 저렴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분량에 거품이 별로 없는 게 마음에 든다. 국역본이 996쪽이고, 원저는 824쪽. 2배 가까이 부풀려지는 요즘 추세에 비하면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러시아 영화와 관련한 대목들을 먼저 훑어보게 됐는데, 책을 받자마자 읽어본 건 저명한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이 작성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 항목(214-5쪽)이다. 박스로 처리된 이 소개글에서 몇 가지 교정사항을 '옥에 티'로 지적해둔다.  

먼저, 첫대목. "25세때, 에이젠슈테인은 소비에트 연극의 '무서운 아이'였다. 혁명 전 연극에서 최고의 실험작으로 인정받은 오스트로프스키의 고전 <어떤 현자도 실수는 있다>를 그는 불경스럽게도 서커스 양식으로 바꾸었다."(214쪽) 

여기서 '혁명 전 연극'은 'post-revolutionary stage'의 번역이므로 '혁명 이후 연극'이라고 옮겨야 한다. 물론 이때의 혁명은 1917년의 10월 혁명을 가리키며 에이젠슈테인 버전의 <현자>는 1923년에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이때만해도 그는 저명한 연극연출가 메이에르홀드(메이예르홀트)의 '수제자'였다. 그랬던 그가 프롤레트쿨트(Proletkult; '프롤레타리아 문화'란 뜻의 문화운동조직)의 제안으로 처음 만들게 된 영화가 데뷔작인 <파업>(1925)이었던 것.

그리고 '최고의 실험작으로 인정받은 오스트로프스키의 고전 <어떤 현자도 실수는 있다>"란 번역 또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최고의 실험작'은 19세기의 고전 드라마 작가인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1823-1886)의 작품이 아니라 에이젠슈테인의 '연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연출 경험은 그의 영화제작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에이젠슈테인은 모든 작품에서 그의 연극 경험을 살렸다. 소비에트적 전형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가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 발견한 탈심리학적인 인격화에 의한 것이었다."

 

"무성영화 시대에 걸쳐 에이젠슈테인은 그의 미학적 실험이 국가의 프로파간다와 조화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의 영화들은 레닌의 묘비명으로 시작한다. 각각의 영화는 승승장구하는 볼셰비키 신화의 결정적 순간을 묘사한다."

마야코프스키의 시와 함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들은 혁명 직후 러시아 혁명의 정신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사례로 기억됨 직하다. 그런데 그의 영화들이 '레닌의 묘비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묘비명'은 'epigraph'의 번역이며 사전적으로야 물론 '비명(碑銘)'이란 뜻도 갖지만 여기서는 작품의 첫머리에 놓이는 '제사(題辭)'를 가리킨다. 레닌의 인용구들로 영화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가장 대표적으로) "<전함 포템킨>의 세계적 성공은 체제에 대한 동화와 경외를 불러일으켰다. 오데사 계단에서 차르 군대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충격적인 묘사를 보고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서 '동화와 경외'는 'sympathy and respect'이다. 그리고 '체제'는 물론 '소비에트 체제'를 가리킨다. 그 체제에 대한 '공감과 존경'을 전세계에 불러일으킬 만큼 그의 영화는 (레닌이 기대한) '프로파간다'로서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던 에이젠슈테인은 "1930년에 헐리우드에서 잠시 머물렀고 멕시코에서(1930-2) 독립영화의 제작을 시도한 뒤 소련으로 돌아온 에이젠슈테인은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소련으로 돌아온다." 교정이 덜된 대목인데, '소련으로 돌아온'이란 말이 중복되므로 앞의 것은 빼는 게 낫겠다.

이 귀환 이후에 에인젠슈테인은 국립영화아카데미에서 변화된 추세에 맞는 새로운 영화적 표현을 모색해보지만 이삭 바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베진초원>(1935-7)은 반대에 부딪쳐 실패로 돌아간다(영화는 분실되고 몇몇 프레임만이 남아 있다). 아래 사진은 영화를 찍던 1936년의 에이젠슈테인과 작가 바벨.

하지만 에이젠슈테인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Alexander Nevsky)>(1938)로 재기한다(국내에 '알렉산더 네브스키'로 출시돼 있다). 13세기 게르만의 튜튼 기사단과의 러시아군의 일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스탈린의 러시아 중심주의와 일치하고, 시의 적절하게도 독일 침공에 대항하는 프로파간다로 인식되었다. 에이젠슈테인은 레닌훈장을 받았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다. 짤막한 소개에는 생략돼 있지만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 독-소불가침 비밀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이 대중적인 흥행작은 상영이 중단되었다가 1941년 독일이 협정을 깨고 소련으로 침공해들어오자 애국심 고취 차원에서 다시 개봉되었던 것. 참고로, (스틸사진 중앙에 보이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역의 니콜라이 체르카소프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적 '페르소나'로서 그의 마지막 걸작 <폭군 이반>(1,2부)에서는 이반 대제로 출연한다.

문제는 <폭군 이반>이었다. "<폭군 이반> 1부에서 에이젠슈테인은 주인공을 러시아의 통합을 위해 애쓰는 과감한 지배자로 묘사했는데, 스탈린이 어느 차르에 대한 '진보적' 해석이라 격려함으로써 그의 위상은 한층 강화되었다." 하지만 3부작중 2부는 (스탈린의 폭정을 암시하여) 정책 결정자들과 충돌하게 됐고 결국 상영이 금지되었다. "<이반> 2부에 대한 공격은 에이젠슈테인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그를 고립시켰다. 1948년, 10여년 동안 멈추지 않았던 비판의 그늘 아래서 그는 죽었다."  

 

끝으로 참고문헌에서 필자인 보드웰은 자신의 책 <에이젠슈테인의 영화>(1993)을 가장 먼저 거명하고 있는데(물론 ABC순이긴 하다) 영어권에서 나온 연구서 몇 권이 더 추가될 수 있으며 프랑스에서 나온 책으론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자크 오몽의 <몽타주 에이젠슈테인>(영역본 1987)이 가장 유명하다. 러시아어 저자 블라디미르 니즈니(Nizhny, Vldimir)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강의(Lessons with Eisenstein)>(영역본 1962)도 매우 일찍 소개된 경우이지 싶다. 블라디미르(Vladimir)에 탈자가 있다...  

07.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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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이창동의 네번째 영화 <밀양>이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되는 모양이다. 알다시피 김기덕의 <숨>과 함께 이번에 칸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이다. 24일 개봉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앞질러 기자 시사회가 열렸던 모양이고 언론 리뷰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 중 하나를 옮겨놓는다. 이달말에는 시간이 좀 나겠지...

한국일보(07. 05. 03) 이창동 감독의 네번째 영화 '밀양'

처음부터 수상했다. 이창동, 이 지독한 리얼리스트가 멜로를 한다는 사실이. 두근두근 몽클한 감정의 조각을 꿰 맞추기엔, 이 작가의 물기 없는 언어는 너무 뻑뻑하지 않은가. 그래서 사건현장의 형사처럼 의구심을 품고 시사회장에 들어섰다. 전도연과 송강호가 나란히 포즈를 취한 포스터를 부비트랩 피하듯 조심스레 돌아서.

의심은 오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창동 감독의 네 번째 작품 <밀양>(24일 개봉)은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영화다. 의뭉스레 ‘멜로’라는 카피를 달고 있지만, 감독은 그가 오랫동안 말하고 싶었던 종교와 구원에 관한 얘기를 작심하고 쏟아 놓는다. ‘상실감마저 꺾어버리는 절대적 절망이 닥쳤을 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는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가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감독은 구질구질한 내러티브 대신 동네 아줌마들을 닮아 가려는 신애의 노력을 통해 그가 겪은 슬픔의 무게와 삶의 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함께 그를 지탱하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진다. 신애가 기독교 신앙을 지팡이 삼아 버티는 건, 그래서 영적이라기보다 물리적이다.

그러나 신애는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아들을 죽인 남자의 입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듣고 만다(*김영현의 한 소설에 나오는 모티브 아닌가? 아니다.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나온다. 김영현의 소설은 <벌레>이다). 그 순간의 배신감은 물리적 신앙의 지팡이를 분질러 놓기에 충분하다. 그를 일으킨 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밧줄을 붙잡은 신애 자신이었으니까. 용서를 할 권한조차 빼앗아 버린 하나님은 또 하나의 ‘절망’일 뿐이다.

구원의 가능성은 마지막에 가서야 슬며시 그 얼굴을 내민다. 절망도 믿음도 배신감도 지나간 뒤 스스로 머리를 다듬는 신애 곁으로 햇볕 한 조각이 따스하게 내려비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비밀스러운 햇볕(密陽)’이.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결국 모든 희망과 구원의 출발은 자기 존재의 소중함, 내 귓전에 나의 심장박동이 들린다는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선불교의 살불살조(殺佛殺祖)를 떠올리게 하는, 이창동식 주체주의 또는 인간주의다.

이창동은 <밀양>이 종교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꺼렸지만, 이 영화는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기독교라는 소재를 지렛대 삼아 진지하게 성찰한다. 이런 진중한 주제를 이창동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밀양>은 충분히 빛을 발한다. 삶의 짠내와 비린내를 핍진하게 담아내는 이창동 어법은, 관념 속에서 변색되기 쉬울 법한 이 영화의 주제에 처절한 사실주의의 옷을 입힌다.

그러나 지나치게 기독교를 ‘소재화’하는 감독의 시도가 이 영화에 탁한 분위기를 씌워 놓은 것도 사실이다. ‘리얼리즘’적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라고 하기엔, 기독교에 대한 이 감독의 시선은 결코 편치가 않다. 그 불편함이 이 영화 속의 유일한 과잉이다. 이창동 특유의 절제력이 기독교에서 유독 무너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어쨌든 <밀양>은 오랜만에 진지하고 깊이 있는 사색을 요구하는 영화다. 랑그와 빠롤 사이의 장난질만 난무하는 21세기 소설만 읽다가(*'랑그'와 '빠롤' 같은 단어도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니!), 1980년대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김성동의 <만다라> 같은 옛 소설을 다시 펴는 감동을 준다. 폭발하는 듯하면서도 결코 넘치지 않는, 대한민국 두 최고배우의 연기를 보는 기쁨도 있다.

사족 하나. 이 지독한 인간주의 영화가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어떤 평을 받을지 궁금하다. 학교에서 십자가와 히잡의 착용도 금지하는, 지구상에서 세속주의(secularism)를 가장 신봉하는 나라 평론가들이 모이는 만큼 <밀양>에 열광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는 한데…(유상호 기자) 

07. 05. 03.

P.S.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창동의 모든 영화'라고 생각한다(내가 신뢰하는 건 그의 '리얼리즘'이다). 음, 네번째 영화가 제일 마음에 들 것도 같군...

P.S.2. 덧붙이는 기사는 '이창동 컬렉션'에 관한 것이다. 감독 자신의 음성해설을 담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도 큰 매력이겠다.

경향신문(07. 05. 03) [DVD코멘트]이창동 감독 콜렉션

2002년 ‘오아시스’ DVD 출시 당시 이창동 감독이 음성해설을 실었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두번 놀란 적이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언급을 몹시 꺼리는 감독이 코멘터리를 녹음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고, 감독이 이를 녹음하다 말고 더이상은 못하겠다는 듯 영화 중간쯤 스튜디오를 나가버리는 바람에 다른 스태프가 해설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일에 ‘역시나’ 하면서 놀랐던 것이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그의 작품 3편을 모아 출시된 이번 타이틀엔 다행스럽게도 전편에 걸쳐 감독이 음성해설에 나서줬다. 여전히 “감독이 자기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 같은 일”이라는 감독은 이동진 기자와 함께 문답형식으로 코멘터리를 진행하며 비교적 충실한 작품해설을 들려주고 있다.

‘초록물고기’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감독은 극중 막동이(한석규)의 정체성 탐구를 통해 “365일 공사중인 한국사회”의 풍경을 구현하고 있다. “감독이기 이전에 40대의 한 인간으로서 자기반성의 극점에 달했던 시기에 제 존재를 찾아가던 실존적인 작업이기도 했다”는 ‘박하사탕’과,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 영화로 인물과 인물, 영화와 관객 등의 관계 사이에서 불안한 경계를 표현하려 했다”는 ‘오아시스’ 모두 감독의 본의를 밝히는 해설을 들으며 두번 세번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이번 타이틀에는 영화 3편 외에도 이들의 제작과정 등을 담은 스페셜 피처 디스크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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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0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하고 있는 영화랍니다 :)

이리스 2007-05-0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보려고.. ^^

심술 2007-05-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이청준의 단편소설 가운데 하나에서도 아이를 잃은 엄마가 기독교적 용서를 강요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받다 자살하는 게 있었는데 김영현 작가도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나 보군요.

린(隣) 2007-05-0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몇 자 답니다. 저도 이 영화가 무척 기다려지는군요.
음악도 좋다더군요. 이런 내용과 음악이 어떻게 만나는지도 듣고 싶네요.
<밀양>의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앙 바소의 음악 추천합니다.
http://www.christianbasso.com/pro01.html
날씨의 차이일까요?
남미의 정서에는 어떤 끈적한 슬픔같은 것이 담겨있는 듯 합니다.

푸른괭이 2007-05-0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님/ [벌레 이야기]입니다. 이창동 감독님께서 직접, 이 소설과 [밀양]의 연관성을 얘기하셨지요.

로쟈 2007-05-0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님/ <벌레 이야기>가 맞습니다. 김영현의 <벌레>와 잠시 혼동했습니다.
Horsain님/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

심술 2007-05-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제목이 '벌레이야기'였구나. 고맙습니다, 푸른괭이님. 이창동 감독님도 연관성을 얘기하셨군요.

코스모폴리스 2007-05-0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무척 기대됩니다만, 요즘 한국영화 포스터들이 다 비슷해 보여요.
 

올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은 체코 영화의 거장 이리 멘젤이라고 한다. 이미 전주에 와 있다는 그의 대표작 세 편이 서울에서 곧 개봉할 예정이라고. 모처럼 흥미를 끄는 영화 기사이다. 체코 영화인이라면 밀란 쿤데라와 밀로스 포먼 정도만을 아는 처지인지라(그러니까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인지라) 그의 방한은 반갑고 그의 영화는 기대된다(시놉시스상으론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들이다). 흠...

한국일보(07. 05. 02) 체코 거장 이리 멘젤감독 대표작 3편 잇따라 개봉

디지털문명의 즉물성에 길들여진 세대에게 ‘고전’ 영화를 소개하는 일은 고통에 가깝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프랑수와 드뤼포 같은 클래식 아티스트의 작품에 관한 글을 쓸 때면, 그래서 손가락 끝에서 땀이 솟는다. 그러나 체코의 거장 이리 멘젤(69)의 작품은 좀 다르다. 이미 수 십년 전 영화학사전에 이름을 올린 감독이지만, 이 보헤미안의 능청스러운 영화는 오늘 봐도 유쾌하다. 그의 대표작 <가까이서 본 기차>(1966년) <줄위의 종달새>(1968년) <거지의 오페라>(1991년)가 각각 10일, 17일, 24일 서울에서 개봉한다. 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지금 전주에 머무르고 있다.



가까이서 본 기차
그가 스물 여덟 살 되던 해에 만든 장편 데뷔작.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멘젤’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2차세계대전 말기의 보헤미아의 어느 시골역,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밀로쉬’라는 망측한 이름의 어린 역무원은 여자친구와 ‘한번 하는’ 꿈만 꾸며 산다. 그에겐 엄혹한 세상사보다 자신이 조루라는 사실이 자살을 시도케 할 만큼 절망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데 성공하지만 밀로쉬를 기다리는 것은 뜻밖의 비극. 우쭐해진 마음에 어줍잖은 레지스탕스 흉내를 내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경쾌한 리듬을 타고 고조되던 행복감이 단번에 전쟁의 용광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서른 살도 안 돼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희극과 비극을 교차하는 멘젤의 농밀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줄 위의 종달새
배경이 된 시대만큼 개봉까지의 사연이 많은 영화다. 멘젤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맞아 폭압적이었던 공산정권의 기억을 필름에 담았지만, 곧 이은 소련의 침공으로 이 영화는 20년 넘는 동면에 들어간다. 영화가 개봉된 것은 90년 베를린영화제 때. 국제평론가상을 수상하며 시대를 뛰어 넘는 영화의 생명력을 과시했다. 철학교수 예술가 정치범 등 ‘사회주의의 적’들이 노동을 통해 정신개조를 받는 50년대 초 체코의 고철 공장. 밥그릇과 십자가를 녹여 군수품을 만드는 이 금속성의 시공간 속에, 멘젤은 인간의 온도를 담아 낸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는 철학교수의 대사에 멘젤의 목소리가 포개진다.



거지의 오페라
비교적 최근작으로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벨벳 혁명을 경험한 뒤 만든 작품인 만큼,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꼬는 풍자를 담았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리드미컬한 전개와 익살스러운 인물 설정이 사회의 부조리를 비트는 해학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리 멘젤 감독
멘젤은 전주에서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코미디를 할 뿐”이라고 했지만, 그의 영화가 코미디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역설적이다. 나치 점령에서 2차 세계대전, 프라하의 봄, 소련 침공, 벨벳혁명까지. 그가 겪어 낸 조국의 현대사는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권터 그라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체코를 떠날 때도 그는 사실상 예술적 ‘연금’ 상황을 감내하며 조국을 지켰다.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냐”는, 누가 물으면 애써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단답형 이유와 함께.

결코 만만치 않은 세월의 굴곡을 멘젤은 오히려 웃음과 풍자로 보듬는 지혜를 가졌다. 그의 영화에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해학이 번득이다가 이내 인간에 대한 유머러스한 따스함이 번진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사랑스러운 추억과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면 이질적인 아이템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대한 콜라주 작품이 연상된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희극과 비극이 뒤섞인 존재가 아닐까.(전주=유상호기자)

07. 05. 02.

P.S. 장편 데뷔작인 <가까이서 본 기차>의 원작은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버티고, 2006)이다. 작년 가을에 새롭게 나온 이 책에 대해선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소개한 바 있다(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CID=2329086&paperId=955833). 그때 영화 스틸사진도 옮겨놓았었는데 감독이 '멘젤'이란 건 알지 못했다. 여건을 만들어서라도 이 달의 영화로 문득 빠져들고 싶은데, 세상 일이란 게 만만하지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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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일부터 큐브에서 개봉한다는데 저도 그저 오래 상영하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말로만 듣던 '줄 위의 종달새' 네요..

심술 2007-05-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터 그라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체코를 떠날 때도' 이거 밀란 쿤데라를 유상호 기자가 실수한 거죠?

로쟈 2007-05-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유님/ 단관 개봉이니까 오히려 사정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심술님/ 다시 보니 그런 거 같네요. 눈이 밝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