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교수신문에서 기사를 옮겨온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58). '영화비평 쇠퇴론'에 대한 현장 평론가의 비판을 담고 있다. 필자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평론가 유운성씨이다.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읽어보고 스크랩해둔다. 이 주제에 관해 씌어진 글들 가운데 가장 '정확'한 게 아닌가 싶다(동업자들끼리는 상식일지 몰라도). 적어도 가장 깔끔하게 씌어졌다.

교수신문(07. 12. 03) "'침묵’은 적극적인 비평적 제스처다”

동시대 영화비평이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영화비평이라는 것이 (예컨대 한때의 문학비평에 맞먹을 만큼의) 대단한 영향력을 지녀본 적도 없는 이곳에서, 벌써 그것의 쇠퇴에 관한 소문이 떠도는 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기서 영화비평의 쇠퇴 운운하는 이들이 과연 어떤 이들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그들이 짐짓 취하는 애도의 제스처는 사실 그 이면의 음험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은폐하기 위한 假裝(가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1990년, 영화비평은 興했는가
정작 쇠퇴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쇠퇴를 애석해하는 것은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亡者(망자) 없는 장례식장에서 목 놓아 곡을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곡이란 슬픔의 전염을 위한 감상적인 의식에 불과하며 슬픔의 최면술을 위해서라면 장시간 곡을 대신해 줄 이를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 영화비평의 쇠퇴에 대해 말한다는 건 가짜 장례식장의 텅 빈 관에 눕힐 만한 시신을 찾아 헤매는 우스꽝스러운 작업이 돼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니 다시 물어보자. 장례식을 마련해 두고 시신을 찾아다니는 암살자들은 과연 누구인가를.

1990년대는 한국에서 영화문화가 급부상한 시기로 일컬어진다. 불완전하나마-특히 번역의 질이라는 측면에서-유용한 영화관련 서적들이 조금씩 출판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영화전문지들이 창간됐고, 비디오 대여점들은 호황을 누렸고, 예술영화관들이 문을 열었으며, 영화학교 및 대학 영화과엔 신입생들이 몰렸고, 학생영화 및 독립단편영화 제작의 붐이 일었으며, 지금은 아시아 제일의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바야흐로 영화적 교양이 문화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정작 그러한 교양의 범위와 역사성을 생각해보는 작업은 다소 거추장스러운 일로 여겨진 시기이기도 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형식의 실험가로 추앙받은 반면 존 포드는 오직 서부극, 그것도 <수색자>의 존 포드로만 논의됐다. 이른바 현대영화라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고전영화에 대한 반발에서 유래한 것이라기보다는 고전영화를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영화적으로 ‘번역’하려는 지난한 시도의 산물이었다는 인식 같은 건 전혀 들어설 여지조차 없었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이나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이 ‘전복적인’ 작업으로 오해되고, 레오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이 예술영화로 선전되는가 하면,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구도자적 풍모와 망명의 삶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모델을 발견하는 등,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믿음이 가능했던 것도 1990년대가 영화적 교양의 범위와 역사성을 누구도 자문해보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교사·교도관의 비평과 왜곡된 교양주의
이런 상황에서 영화비평은 크게 두 갈래의 흐름으로 나뉘어졌다. 첫 번째는 敎師(교사)의 비평이라 칭할 만한 것이다. 영화를 ‘읽기’ 위한 고유한 독법이 있으며(시네마 리터러시), 한 편의 영화 이면에는 다양한 숨은 의미들이 있다는(징후와 해독) 주장은 이들 교사들이 즐겨 설파하는 강령이었다. 교사의 비평이 1990년대 영화문화에 적잖이 기여한 것도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학도나 문학청년으로 이전 시기를 보냈던 이들이 영화교사의 길을 택하면서 성립된 것이란 점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영화를 읽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상황이 반대였더라면 우리는 영화적 서커스에 불과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엔 볼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교도관의 비평이다. 영화작품과 영화관련 서적의 수입 및 소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지금 이곳에서 당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며 그것들을 뛰어넘는 빼어난 작업들이 저기 바깥에 얼마든지 있음을 역설하는 전문가들의 존재는 쉬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마련이다. 물론 이는 한국 영화문화라는 특정한 울타리의 경계를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그것이 1990년대의 영화광들을 사로잡았던 왜곡된 교양주의-예컨대 “너, 이 영화 봤어? 그럼 이 영화는?”이라는 식의-와 조우함으로써 초래된 폐해도 적지 않다.

영화적 교양은 영화작품의 내면화와 수용의 과정을 통한 세계의 재인식이 아니라 상상적 라이브러리의 항목을 늘려가는 작업으로 그릇되게 정의됐다. 또한 영화비평의 교도관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깥의 존재를 역설하는 것이지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 문이 열린다면 그들은 서둘러 또 다른 울타리를 기어이 만들어내고야 만다. 이 왜곡된 시도는 다음과 같은 신념을 정당화한다. 한 편의 영화는 아직 그것이 소개되지 않았을 때에만 가치 있는 것이라는. 예컨대 타르코프스키 영화예술의 위대함을 역설하던 많은 이들은 정작 <희생>이 극장에서 개봉되고 나자 그에 대해 말하기를 중단했다.

여하간 이건 다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이후 한국의 영화문화는 빠르게 변모해갔다. 영화관련 문헌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우리는 영화비평계의 교사들의 한계를 깨닫게 됐고 예술영화관 및 시네마테크의 설립과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감상이 보편화되면서 교도관들의 울타리 또한 점차 무력해졌다. 영화전문지들은 점점 독자를 잃어갔고,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 대여점들은 차례로 문을 닫았으며, 예술영화를 본다는 건 더 이상 유별난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반면 영화학교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각종 영화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나는 리뷰어와 영화학자 사이에 위치한 영화비평가의 작업은 일차적으로는 통찰, 수사, 품격 그리고 나아가 취향과 윤리적 입장이 어우러질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을 낳는다고 본다. 리뷰어가 정보를 전달하는 이라면 영화비평가는 취향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는 자이다. 영화학자가 분석과 논리에 기댈 때 영화비평가는 자신의 윤리적 입장을 내세워야 한다. 하지만 취향과 윤리적 입장이 모호했던 교사와 교도관의 비평은 그 변종들에 의해 삽시간에 대체됐다.

점점 암호해독자의 작업에 가까워지던 교사의 비평은 적절히 수사를 구사해가며 ‘제법 품격을 갖춘 보도자료’에 가까운 글을 써내는 영화기자들의 글쓰기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교도관들의 울타리는 영화제 카탈로그와 예술영화관의 팜플릿, 그리고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의 정보전달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단적으로 말해 영화비평은 광고들에 의해 대체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사이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비평적 자질을 갖춘 영화비평가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들의 비평적 글쓰기는 광고성 글쓰기로 가득한 영화전문지 편집자들에게 남은 한 줌의 부채감을 위무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었다. 

암살과 자살
그리고 바로 이 때, 영화비평의 쇠퇴 운운하는 자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파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비평이 광고로 대체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비판조차도 광고로 활용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사실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영화에 영화비평가가 가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은 비판이 아니라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침묵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이 불가능할 정도로 영화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는 시대엔, 침묵은 비평적 소임의 방기가 아니라 사실 적극적인 비평적 제스처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위장된 비판의 게임에 뛰어드는 건 사이비 비평가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비평이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식의 물음에 답해야 할 것 같다. 발터 벤야민은 비평가에게 있어서 상급심은 대중이 아니라 동료들이라고 쓴 적이 있다. 한국 영화비평이 독자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대중이 비평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예술로서의 비평은 대중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이제는 영화비평가들조차 동료들의 비평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특정한 영화에 대한 찬반양론이 영화비평가들 스스로의 세계관과 윤리적 입장을 건 진검승부가 아니라 영화잡지 편집인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기획자의 머리에서 출발하는 이벤트로 전락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이건 암살자들의 추적에 자살로 대응하는 것과 같다.(유운성_영화평론가)

97. 12. 09.

P.S. 필자의 다른 글들을 찾아보다가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에 대한 짧은 리뷰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씨네21(04. 06. 11) 박진감 넘치는 키에슬로프스키 읽기

폴란드의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그의 영화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었고 이 영화는 1990년대 한국의 영화광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던 예술작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뒤이은 삼색 연작은 잠깐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패로 간주되었고 곧 잊혀졌다. 물론 마땅히 걸작으로 불려야 할 <십계> 연작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다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폴란드 내에서는 한때 참여적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들을- 예컨대 <야간경비원의 시선>이나 <카메라광> 같은 영화들- 만들던 키에슬로프스키가 후기에 가서 점점 심리적이고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영화들을 만드는 것에 대해 만만찮은 비판들이 가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The Fright of Real Tears | 슬라보예 지젝 지음 | 오영숙 외 옮김| 울력 펴냄)는 이러한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무엇보다 그의 후기작들에 대한 정치한 구원비평으로도 읽힐 수 있지만(특히 3부), 지젝의 목표는 좀더 광범위하고 야심적이다. 바로 전반적인 인문학적 사유의 위기와 함께 난관에 봉착한 영화이론을 대안적인 라캉적 독해를 통해 구원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체주의/페미니즘/포스트-마르크스주의/정신분석/문화이론 등의 ‘이론’(Theory)과 데이비드 보드웰과 노엘 캐롤을 수장으로 하는 인지주의적 ‘포스트-이론’ 내지는 ‘탈-이론’(Post-Theory)의 ‘사이’에서 키에슬로프스키를 읽어내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이론과 포스트-이론 사이의 키에슬로프스키’가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확실히 지젝의 이 저서에 자극제가 되었던 것은 <소셜 텍스트>에 게재된 유명한 패러디논문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앨런 소칼의 저서 <지적 사기>와 정신분석학적 영화이론에 반기를 들고 나선 보드웰과 캐롤의 편저 <포스트-이론> 같은 책들로 인해 빚어진 좌파이론가들 내부의 위기감과 반감이었을 것이다. 지젝은 특유의 정교하고도 유머 넘치는 문장, 그리고 재해석된 헤겔적 개념들을 통해 경험주의적 이론이 가정하는 보편성의 허구를 논박하는가 하면, 이제는 낡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정신분석학적 봉합(suture)이론을 새롭게 조명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언뜻 딱딱하기만 한 이론서일 것도 같지만 책에 언급된 (그리고 이제는 국내에서도 대부분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들을 함께 보면서 찬찬히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이만큼 박진감 넘치는 이론서도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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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대기중인 영화들 가운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은 단연 리안의 신작 <색, 계>이다. 이미 여러 저널들의 호평을 접하면서 오랜만에 영화관 외출을 꿈꾸게 하는 작품인데, 눈에 띄는 대로 한겨레21의 리뷰(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7/11/021015000200711010683007.html)를 옮겨놓고 슬쩍 읽어본다. 감독과 주연 여배우(탕웨이)가 내한하여 기자회견 등도 가졌지만 따로 보태지는 않는다. 대신에 장학우가 부른 주제가는 한번 들어보시길(http://www.youtube.com/watch?v=QDWrZuJKGrk).

한겨레21(07. 11. 01) 색에 빠진 자, 계를 잃을지니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의 진심은 과연 무엇인가. 사랑에 대한 오래된 혹은 해묵은 주제다. 이렇게 해묵은 주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데, 리안 감독만큼 적임자도 드물다. 고급스런 대중영화의 장인이자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기술자인 리안 감독은 오래된 이야기 혹은 통속적 사랑을 사랑이 불가능한 상황에 던져둔다. 그리고 희열과 고통으로 얼룩진 인물의 표정을 날카롭게 잡아내 관객의 마음을 후벼판다. 불가능한 사랑만큼 사랑의 애절함을 절절하게 드러내는 사랑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카우보이들의 동성애는 처연했다. 리안이 이번엔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40년대 일본에 점령된 상하이, 친일파 정보부 대장과 그를 암살하려는 여성 사이에 불가능한 사랑이 시작된다. 리안의 <색, 계>(色, 戒)는 서로를 경계(戒)하지만, 서로의 색(色)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uqnBNz5xppQ)

일본의 침략을 피해서 홍콩으로 피난온 왕치아즈(탕웨이)는 외롭다. 그의 친구들은 항일운동에 뛰어들고 그도 자신의 운명을 저항운동에 맡긴다. 밀수업자의 아내인 막 부인으로 위장해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량차오웨이)의 부인(조안첸)에게 접근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의 암살. 어렵게 이 부부에게 접근하지만 갑작스레 부부는 상하이로 돌아가버린다. 사실 왕치아즈는 암살의 주모자인 광위민(왕리훙)을 연모해 암살에 가담했다. 하지만 그들은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왕치아즈는 상처만 받는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흐른다. 광위민이 다시 왕치아즈를 찾아온다. 그리고 왕치아즈는 또다시 막 부인이 돼 이에게 접근한다.

적을 유인하며 연인을 유혹하는 마음

이제 모든 행위는 하나의 의미가 아니다. 막 부인의 행위는 이에 대한 유인이자 유혹이다. 적을 유인하는 일이자 연인을 유혹하는 행위다. 막 부인은 어느새 자신이 죽여야 하는 자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색(色)은 계(戒)를 무장해제시켜버렸다. 이의 거친 숨결은 막 부인의 가슴을 파고들었을 뿐 아니라 마음까지 달구었다. 이제 상황은 바뀌고 진실마저 모호하다. 나의 편인 저항군은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적인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나를 이용하는 자와 나를 사랑하는 자의 자리가 모호하다. 영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영화관이 어두워서 영화를 보러가지 않는다는 이도 외롭다.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도 믿지 못했던 이는 의심에 지쳤다. 그래서 이는 막 부인을 “믿는다” 보다는 “믿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모든 행위는 역설이고, 모든 말은 모호하다. 막 부인은 저항군에게 당신들이 그를 죽여버리는 꿈을 꾼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인지 그조차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사랑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처음으로 이를 만나고 돌아온 왕치아즈에게 친구가 묻는다. “어떻게 생겼어?” 그는 “상상하곤 다르다”고 대답한다.



적나라한 섹스신엔 체념과 위로가

리안의 영화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색, 계>는 집요한 상반신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잡아낸다. 배우들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는 집요한 클로즈업을 끝까지 견뎌낸다. 20여 년을 연기한 량차오웨이도, 첫 번째 영화에 출연한 탕웨이도 완벽하게 리안의 인물로 변신한다. 미인대회 출신인 탕웨이는 미모보다는 연기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조연배우 누구나 자신의 연기를 해낸다. 이렇게 완벽한 연기에 담긴 무심한 행동이나 스쳐가는 말들은 영화의 공기를 서서히 물들인다. 어느새 쌓인 먼지처럼 어느덧 켜켜이 쌓인 감정에 빠져들게 만드는 <색, 계>는 ‘리안표’ 영화다.

<색, 계>는 스캔들의 영화다. 적나라한 섹스신이 화제를 모았고, 성기와 음모 노출 논란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30분가량 삭제된 채로 상영됐고, 미국에서도 17살 이하 관람금지 등급(NC-17)을 받았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제한상영 판정을 받지 않고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심의를 통과했다. 세 번의 섹스신은 색에 굴복해 계를 포기한 자의 체념한 표정으로, 서로의 외로움을 쓰다듬는 위로로 남는다.

오늘날 리안만큼 종횡사해 동서고금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감독은 드물다. 서양과 동양, 시대극과 현대물, 이성애와 동성애, 리안은 무엇을 만들어도 대중성과 작품성의 접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왔다. 리안은 뉴욕에 사는 동양인 게이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던 <결혼 피로연>으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아이스 스톰>에서 1970년대 미국 중산층의 해체를 그렸던 리안은 <와호장룡>으로 홀연히 옛날의 중국으로 돌아갔다. 한편으론 19세기 영국 배경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도 영화로 옮겼다. <색, 계>는 리안이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에 다시 중화권 감독으로 돌아와 만든 영화다. <색, 계>로 그는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어 2년만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장을 받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색, 계>는 중국의 여성소설가 장아이링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다. 관진펑(관금붕)의 <화이트 로즈, 레드 로즈>, 허우샤오셴의 <해상화>도 장아이링의 소설이 원작이다. <색, 계>는 11월8일 개봉한다.(신윤동욱 기자)

07. 11. 03.

P.S. 그러고 보니 <헐크>를 제외하곤 리안의 영화 대부분을 본 듯하다. <결혼피로연>(1993)의 유쾌한 기억이 어느새 14년전인데, 그 사이에 한 아시아계 영화감독은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시간의 가치는 저마다에게 다른 것이다. 기사의 말미에 장아이링(장애령)이란 이름이 눈에 띈다(그러고 보니 <화이트 로즈, 레드 로즈>와 <색, 계>의 분위기가 비슷해도 보인다).

이 걸출한 중국(대만) 여성작가의 작품으론 몇 권이 더 번역됐었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재작년에 출간된 중단편집 <첫번째 향로>(문학과지성사)와 <경성지련>(문학과지성사) 두 권뿐인 듯하다. 이 작품들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는 이렇다:

중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장아이링(장애령.張愛玲)의 중단편소설집이다. '붉은 장미, 흰 장미', '경성지련'을 포함하여 총 일곱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1944년 상하이에서 장아이링의 유일한 소설집이 <전기(傳奇)>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1994년 타이완의 '황관출판사'에서 <장아이링 전집>(전 15권)을 내면서 <경성지련>, <첫번째 향로> 두 권으로 나누어 재출간했다. 한국에 소개되는 두 책은 '황관'의 예를 따랐다.

중국에서는 '루쉰 이후엔 장아이링'이란 평을 듣는다고도 하니까 호기심에라도 읽어봄 직한 작가이다. 이번 늦가을은 장아이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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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11-0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가 정말 좋네요. 장아이링은 보관함으로 ost.는 장바구니로 갑니다.

로쟈 2007-11-03 23:51   좋아요 0 | URL
저도 장학우의 목소리는 오랫만에 듣습니다.^^

수유 2007-11-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편안하게, 따라 행복감을 느끼며 보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일주일을 잘 견뎌야겠지만.

2007-11-04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5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1-05 22:34   좋아요 0 | URL
그런 면역력이라면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네요.^^

섬나무 2007-11-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안 감독 스스로가 자신이 투영된 작품은 1995년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까지만이고 이후로는 자신의 모습을 양파껍질 벗듯 벗기 시작했다고 하데요. 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할 수 있는 용기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보는데 지금은 미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이 영화를 미치기 직전까지 밀어붙였단 말인듯...
양조위에게 그의 눈빛 연기-여자들을 뇌살시키는-는 영화 마지막에만 주문했다던데... 전혀 그렇지 않군요...ㅎㅎ

로쟈 2007-11-05 17:30   좋아요 0 | URL
오늘 필름2.0에서 리안과 탕웨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말들도 잘하더군요...

소경 2007-11-0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XX에서 '장애령'이라 검색하니 그녀의 다른 책들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로쟈 2007-11-05 22:34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검색했던 책들인데, 아쉽게도 <색, 계>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합니다...

소경 2007-11-0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 계>까지 번역 되었더라면 이거 친구 밥 한끼에도 매몰차게 거절할 수 밖에 없는 빈털털이/수전노임에도 급 선회해서 사려 했을 거에요 ^^; 장학우 노래덕에 <색 계>에 대한 관심이 이만저만 아니라서.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좀 특이한 영화관련서들이 눈에 뜬다. 당장 읽을 여력은 없어서 대신 적절한 리뷰들을 찾아 옮겨놓는다. 로버트 그레그의 <영화 속의 국제정치>(한울아카데미, 2007)와 리처트 포튼의 <영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이후, 2007)이 그 책들이다(포튼의 책은 지난주에 서점에서 봤다). 리뷰들은 소략하지만 그나마 이 책들을 다룬 지면 자체가 아주 드물다.

동아일보(07. 09. 15) 숨겨진 ‘국제질서’ 읽기…‘영화 속의 국제정치’

아프리카 어느 마을. 하늘을 날던 비행기 조종사가 뭔가를 ‘툭’ 버렸다. 마침 지나가던 원주민이 주워 든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빈 콜라병을 들고 난감해하던 표정.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화 ‘부시맨’의 시작이다. 가볍게 즐겼던 코미디 영화였으나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한없이 무거운’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책 ‘문명의 충돌’을 거론한다. “헌팅턴은 국제정치의 근본적인 분쟁이 국가와 집단의 여러 다른 문명으로 인해 벌어짐을 지적했다. 서구 문명과 전통적인 토착문화의 조우. 영화 부시맨은 이런 국제관계를 살피는 좋은 텍스트가 된다.”

이 책의 목적은 자명하다. 제목(원제 역시 ‘International Relations on Film’)에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를 통해 국제정치를 배우자. 미국에서 정치외교를 가르치는 교수답게 청강생들의 이해를 도우려 영화를 교재로 사용하는 셈이다.

논의점은 다양하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했던 ‘레이더스’를 통해 제3세계를 바라보는 제국주의 시선을 다룬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국제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이란 논의를 끌어내는 훌륭한 마중물이다. 윤리와 국제법을 다룰 땐 영화 ‘7월 4일생’과 ‘살바도르’를 언급한다.

묵직한 두께에 빡빡한 활자. 주제마저 무겁다. 그런데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술술 읽힌다. 저자의 의도대로 교재가 ‘영화’인 덕분이다. 어려운 국제정치용어들이 익숙한 영화 화면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온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가 대부분 할리우드산(産)이다.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거론할 땐 이해도도 떨어진다. 왜곡이 가능한 영화 자체만으론 국제정치를 설명할 수 없음은 저자 역시 동의하는 부분. 배운 건 많은데 뒤끝이 가려운 수업을 들은 기분. 강의평가서에 ‘A+’라고 쓰기가 살짝 망설여지는 이유다.(정양환 기자)

디지털타임즈(07. 09. 06) 영화속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아나키스트'(Anarchist)라는 단어에는 왠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짙다. 아나키스트하면 시위와 테러 같은 불법 행위가 연상된다. 왜 그럴까. 아나키스트는 사전에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사회 실현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이유가 아나키스트의 부정적 이미지를 키운 것일까.

한국영화 시장이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셀 수 없는 영화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나키스트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본 책은 없었다.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소개하는 몇몇의 책들은 있었지만, 이 책들 역시 아나키스트들이 문화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는 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영화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게 된 원인을 영화 속에서 찾고 있다. 주류 영화들이 다루는 아나키스트는 폭력과 테러, 범법자들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옷 입는 모양새와 콧수염 기른 모습까지 정형화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정치 철학적으로 추적해 밝혀낸다. 또 아나키즘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아나코 페미니즘' `아나코 생디칼리즘' `아나키스트 교육학' 등에 대한 이론까지 명쾌하게 밝혀놓고 있다.

특히 국내 출판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나키스트 인물 설명을 부록으로 붙여 둔 것은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또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자료까지 잘 갈무리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세말과 20세기 초 미국에서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자료관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서신을 소개하고, 영화감독들에게 전화나 e메일로 확인한 내용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아나키스트 단체들의 유인물 내용과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하는 유럽과 미국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총망라하고 있다.(김응열기자)

07. 09. 17.

P.S. 두 권의 두툼한 책들 대신에 내가 어제 주문한 책은 저명한 페미니스트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얇은 최신작 <1초에 24번의 죽음>(현실문화연구, 2007)이다. 멀비의 책으론 <시민 케인>(동문선, 2004)이 먼저 소개된 바 있지만 왠지 이 책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영화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한 영화이론서이자, 대중을 위해 쉽게 쓴 영화에세이"라고 하니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멀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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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에 읽어보려고 했던 영화 리뷰를 좀 뒤늦게 시간을 내서 읽고 옮겨놓는다. 얼마전 개봉됐던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의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에 관한 것인데, 전작인 <천리마 축구단>(2002)과 <어떤 나라>(2004)를 포함하면 '북한 3부작'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김동원 감독과 대니얼 고든의 대담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33175 참조). 여하튼 2년 터울로 북한에 관한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낸 열정은 감탄할 만하다. 나로선 아직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이왕이면 TV에서 방영해도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도 곧 다가오고 하니 말이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컬처뉴스(07. 08. 30) 삶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영국 감독인 대니얼 고든의 북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66년 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이룩한 북한 선수들을 촬영한 <천리마 축구단>(2002),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북한 매스게임의 두 소녀를 기록한 <어떤 나라>(2004)에 이어 그는 1960년대 초중반에 월북한 미국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2006년에 완성했다. 서양인이 입국하기도 어려운 북한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연이어 세 편을, 그것도 거의 6년여의 시간을 들여서 기록했다는 것은 엄청난 작가적 고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니얼 고든은 하고 많은 나라 가운데 왜 북한을 선택한 것일까?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축구광이었던 그의 처음 관심사는 1966년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8강에 올랐던 북한 축구였다. 당시 놀라운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 이후 국제대회에서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는 그들이 당시 어떻게 8강에 오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고든의 순수한 관심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대상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청난 규모의 매스게임을 벌이는 북한을 보면서 그는 북한이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북한을 알 수 있는, 다르게 말하면 북한을 서구에 소개하는 소재로서 매스게임을 하는 두 소녀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인 <정신의 나라 A State of Mind>는 북한의 현실을 그 어떤 것보다 정확히 집어낸다. 미국의 통제 때문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정신을 지닌, 단체 활동의 나라이며, 그것을 매스게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모습 아닌가.

평양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고든은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1960년대에 월북한 미군들이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독은 즉시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 얼마나 좋은 소재인가. 미제국주의를 원수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미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남한의 DMZ에서 스스로 월북해서 수도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의 원제가 <경계를 넘어서 Crossing The Line>인 것도 그들이 남한의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든은 북한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도 북한 사회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가령 <천리마 축구단>에서 이제는 늙어버린 축구선수들이 자신들을 격려해주었던 김일성 주석을 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고든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같은 구미(歐美)인이지만 평양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입장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자신과 미국인의 격차를 해소하거나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1962년 38선을 넘어 월북한 제임스 드레스녹이다. 그는 자신이 월북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는 감독에게 “난 당신들을 믿소. 진실을 찾아온 거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생애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고아였던 그는 첫째 양부모에게 학대당해 둘째 양부모가 길렀지만 중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입대해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서독으로 파병 간 사이 부인은 다른 사람을 만나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으로 온 그는 허가 없이 휴가를 나갔다가 이것이 발각돼 군사법정에 설 위기에 처했다. 군사 재판 하루 전날 결국 그는 DMZ을 넘어 월북했다. 그는 북한 체제가 좋아서 월북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월북했다. 이것은 다른 세 명의 경우도 비슷한데, 영화에서 인터뷰를 통해 솔직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 하층민이었던 드레스녹은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하층민으로 살았을 것이 뻔하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중산층 이상이다. 자식들은 엘리트 코스인 평양외국어대학에 다니고 있고, 그는 보통강변에서 낚시를 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배급을 주기 때문에 걱정 없이 살 수 있고(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그는 많은 쌀을 배급받았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언제든지 병원을 찾을 수 있다. 하층민으로 살았을 미국이나,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활이다. 그가 북한 체제에 만족을 표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며 그의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감독은 그것을 아주 편하게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를 위해 감독은 미국의 드레스녹의 집,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 같이 군에서 근무했던 동료들을 인터뷰한다. 심지어 DMZ으로 들어가서 월북하던 상황을 재현하기도 하고, 당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감독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속마음을 토로하지 못하는 위선이 아니라 진짜 그의 진솔한 고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든의 이전 영화와 달리 매우 정치적이다. 하긴 소재 자체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들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건은 발생하고 만다. 드레스녹과 비슷한 시기에 월북한 젠킨스이 일본으로 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의 장에 놓이게 된다. 제킨스의 부인이었던 소가가 일본에서 납치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간 젠킨스는 북한 생활은 지옥이었고, 드레스녹에게 많이 맞았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북한이 외국인을 납치해 망명자들과 결혼하게 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2세들을 스파이로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젠킨스의 아내 소가도 북한 스파이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문제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한다. 일본으로 가기 전의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진술을 담고, 이후 엇갈린 진술을 다시 담는다. 그렇게 해서 감독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가급적 객관적으로 상황을 담아 관객이 직접 판단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라스트 장면에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내내 김일성 수령에 대해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던 드레스녹이 “위대한 수령께선 늘 우리를 각별히 염려해주셨어. 죽는 날까지 나라에서 지켜줄 거야”라는 말을 하고 넓은 광장을 걸어간다.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광장의 확성기에서 “북한은 지상 낙원입니다”라는 내용의 선전문구가 나온다.

감독은 객관적일 수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이 장면을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드레스녹의 말이 모두 허구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드레스녹이 했던 말이 모두 체제의 선전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드레스녹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의 자포자기적 발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드레스녹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회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작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려고 했던 고든은 3부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다소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주도하는 통제된 국제 사회도 싫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반대편에 세운 후 그것을 핑계로 주민을 통제하고 신격화하는 북한의 모습도 긍정할 수 없는 현실이 고든이 접한 상황이다. 고든은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 그런 삶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지 이 영화를 통해 묻고 있다.(강성률_영화평론가) 

07. 09. 06.

P.S. 참고로 '필름2.0'에 실렸던 감독 대니얼 고든과의 인터뷰기사도 옮겨놓는다(기사를 읽어보니 대니얼 고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름2.0(07. 08. 24) "다음엔 평양 밖에서 촬영할 것이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으로 ‘북한 삼부작’이 완성됐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내게 엄청난 이야기라고 판단되는 소재라면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 생각이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기획하면서 의도한 건 무엇인가?
북한으로 망명한 미국인 네 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소재가 민감하지만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고자 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고 몰래 생각하고 있다가 나중에 덧붙인 것은 없다.

지금 와서 이들에 대한 사연을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항상 사실을 이야기하려 하고 대상을 솔직하게 대하려 한다. 어떤 사실을 파헤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나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역사적 기억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단지 이 사람들의 얘기가 놀랍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편견이 없다는 것이 당신 영화의 강점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어떠한 편견도 갖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가?
물론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드레스녹에 대해 워낙에 알려진 바가 없었고 1962년 망명 후에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외모가 어떤지도 몰랐다. 물론 촬영 전 그의 스무 살 사진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 만나보고 몸이 그렇게 큰 줄(키 196cm, 몸무게 128kg) 짐작도 못 했다. 그만큼 그가 주는 분위기가 강렬했다. 2004년이 돼서야 만났는데 버지니아 억양으로 1950년대 영어를 쓰면서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젠킨스는 어땠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젠킨스가 북한을 떠남으로 인해 스토리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젠킨스의 미국 고향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군대 친구들도 만나며 언젠가 젠킨스가 돌아오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젠킨스는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고 그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드레스녹과 젠킨스 간의 진실공방을 끝까지 파헤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제의 우월이 아닌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인가?
바로 그게 의도였다. 양쪽의 소리를 모두 들려줬기 때문에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직속 상관을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영화에 넣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밝힌다면, 드레스녹 상관의 경우, 드레스녹의 월북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져 곤란함을 겪었지만 40년 넘게 북한에서 생활한 것만으로 충분히 벌 받을 만큼 받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젠킨스의 상관은 죽는 날까지 젠킨스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한 가지 의문은, 북한 삼부작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일종의 특권층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면 그 외 지역의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다뤄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상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평양이 특별한 도시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거다. 북한 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양에 살고 싶어하고 평양 주민들도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 삼부작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양 내에서도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드레스녹의 경우, 식구가 다섯이지만 방은 두 개밖에 없는 집에서 산다. 물론 평양 외에 대여섯 도시를 방문했었고 31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백두산에도 가봤다. 북한에서 기차를 탄 서양인은 내가 처음이었고 다시 말해, 외부인들이 전혀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봤다는 얘기다. 당연히 평양 밖에서 촬영을 하고 싶은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기도 해봤지만 평양 외의 지역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그나마 북한에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곳은 평양이 유일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면 평양 외의 도시에서 진행할 것 같다.

당신이 겪어본 북한 주민들은 어떤 사람이던가?
우리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외교관들이 접한 북한 사람이나, 자선단체가 접한 북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뭐든지 급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다. 자기들이 준비가 되면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남한 사람과는 정반대다.(웃음) 우리는 북한 사람을 대할 때 먼저 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솔직하게 다가갔다. 처음부터 뭔가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삼부작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던 드레스녹이 지금은 찍기 싫다고 하자 바로 촬영을 중단한 건가?
그건 다른 문젠데 나는 촬영 대상이 불편해하면 당연히 찍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미안하기도 하고.

그것 외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만이 고수하는 원칙이 있나?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이야기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고 원래 했던 이야기가 무언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재밌게 만들려고 한다. 관객들이 내 영화에 한 시간 반이나 투자하는데 즐겁게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레이션으로 크리스천 슬레이터를 기용한 건 그 때문인가?
미국인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미국인의 내레이션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슬레이터의 열혈 팬인데 그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출연료를 줄 수 없어도 참여해줄 수 있냐고 물으니 영화가 좋으면 상관없다 그러더라. 그 답례로 김정일이 쓴 <감독의 자세>와 <배우의 자세> 책 두 권을 선물했다.

미국에서는 8월 10일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 개봉했다. 그쪽의 반응을 접했는지?
그에 대한 반응을 알 수 없는 것이 인터뷰를 위해 8월 11일 영국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접하진 못했지만 당연히 다들 좋아했을 것이라고 본다.(웃음) 뉴욕에서는 3주 전 브루클린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300명이 모인 가운데 상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참석했다. 완전히 매진됐고 반응 역시 무척이나 좋았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때문에 미국 정부나 군부가 관심을 가질만한데 공식반응을 나타낸 적이 있나?
내가 알기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천리마 축구단>과 <어떤 나라>도 물론이고. 하지만 <어떤 나라>의 경우, 영국 정부에서 미국 정부에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으며 특히 영국 외교부는 북한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북한 삼부작을 만드느라 영국에 갈 시간이 있기라도 했나?(웃음)
안 그래도 영국에서 한 편을 만들었다.(웃음) 한 달 후에 완성될 예정인데 영국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개 경주를 하는 내용이다. 너무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영국에서 찍었는데 주로 밤에 촬영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역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우간다 출신의 육상선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이 작품을 마친 뒤에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우간다 출신의 육상선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역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그렇다. 아프리카인으로는 최초로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다. 아버지의 부인이 8명이고 자녀가 43명이나 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장애물 400m 육상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그런데 이디아민 정권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고 자기 타이틀을 지킬 수 있는 기회도 박탈당했다. 전세계적으로 기억돼야 할 위인임에도 그렇지 않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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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의 한 사람인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다(위페르에 대해서는 예전에 옐리네크와 함께 잠깐 다룬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mramor/926588 침조). 특히 초기작 <레이스 짜는 여인>(1977)의 상영 소식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위페르를 처음 '발견'한 영화이기도 한데, 아마도 1989년에 TV에서 보았던 듯하다. 어즈버 18년 전이다.

찾아보니 위페르 특별전은 프랑스문화원에서 기획해서 전세계 순회를 하는 모양이다(호주 시네마테크에서 지난달에 열린 바 있다. http://www.qag.qld.gov.au/cinematheque/past_programs/2007/isabelle_huppert 참조). 클로드 샤브롤의 <마담 보바리>는 비디오로 갖고 있지만 <레이스 짜는 여인>은 어디서 구해보나? 상영일정이 (이미 지나간) 오늘과 일요일(9일)에만 잡혀 있다. 사소한 일로 조금 불행해지는군...  

문화일보(07. 09. 04) 佛디바 위페르 ‘30년 연기’ 한눈에

프랑스의 대표적 여배우 중 한 명인 이자벨 위페르의 매혹적인 연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4일부터 11월11일까지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극장에서 진행되는 ‘순수와 관능을 넘나드는 디바 -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그것. 주한 프랑스문화원과 영화사 진진이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해 온 ‘시네 프랑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다.

이자벨 위페르는 1971년 데뷔한 이후 30여년 동안 60여편의 작품에 출연해 왔다. 그는 순결한 처녀와 귀족 부인, ‘팜므 파탈’과 강박증을 지닌 중년 여성, 가족을 살해하는 살인마까지 다양한 인물을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다. 차가운 듯 열정적인 이미지는 다른 여배우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칸, 베를린, 베니스 국제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연기상을 모두 수상했고 프랑스의 권위있는 영화축제인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에 12번이나 이름이 올랐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칸 영화제 본선에도 그의 출연작 16편이 올라 가장 많이 출품된 배우로 기록돼 있다.



이번 특별전엔 총 10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우선 그에게 두번째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피아니스트’(2001년)는 국내 팬들도 가장 많이 기억할 작품. 위페르는 젊은 남자 제자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피아니스트로 출연, 중년 여성의 위태로운 심리와 욕망을 탁월하게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페르의 초기작 중 하나인 ‘레이스 짜는 여인’(1977년)도 상영된다. 미용실 보조로 일하는 순진한 소녀 베아트리스 역을 연기하는 앳된 모습의 위페르를 감상할 수 있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과 호흡을 맞춘 ‘마담 보바리’(1992년)와 ‘의식’(1995년)도 매작품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위페르의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 모리스 피알라 감독의 ‘룰루’ 등도 관객들을 만난다. ‘첫 눈에 반하다’ ‘이별’ ‘왕의 딸’ ‘약속된 인생’ 등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영화는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와 일요일 오후 4시에 상영된다. 특별전 기간 중엔 이자벨 위페르의 미니 사진전이 열린다. www.dsartcenter.co.kr, www.france.or.kr (강연곤기자)

07. 09. 04.

P.S. <레이스 짜는 여자>의 원작소설은 파스칼 레네(1942- )의 <레이스 뜨는 여자>(예하, 1989)이다('레이스 짜는'보다는 '레이스 뜨는'이 더 우아하지 않나?). 150쪽이 안되는 분량이지만 1974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다. 현재는 절판중인데 이 참에 다시 나와도 좋을 듯싶다.

제목은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베르메르의 그림 '레이스 뜨는 여인'에서 따온 것이다(어째 우리말 제목이 다 다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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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9-0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시간이 참 만만치 않군녀...

로쟈 2007-09-05 16:12   좋아요 0 | URL
핑계일 수도 있지만, 사실 목숨 걸로 영화를 볼 나이는 지났죠.^^;

nada 2007-09-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위뻬르 언니가 레이스를 뜨다니.
그 손은 왠지 남정네 뺨 때리는 데나 적격인 거 같아서. -.-
젊은 시절의 위뻬르 언니가 궁금하네요.
EBS 9월 프로그램에 이자벨 위뻬르 영화가 한 편 있던걸요?
16일에 <사기>란 영화요. 로쟈 님께서 위뻬르 언니 팬이시라고 하니 살짝 귀띔해 드려요.

로쟈 2007-09-05 16:12   좋아요 0 | URL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귀뜀은 감사합니다...

anyone 2007-09-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명화극장에선가 본 <레이스 짜는 여인>은 이상하게 생생합니다. 거기에 나온 여자가 이자벨 위페르였군요. 이번 주말에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로쟈 2007-09-05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봤으면 싶지만 가능하지 않은 시간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