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후보자 두 사람이 작년에 선발되어 현재는 러시아의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발사는 내년 4월로 예정돼 있으며 올 8월에 최종 후보자 한 사람이 가려질 것이라고 한다. 관련기사를 예전부터 모아놓으려고 했으나 시간을 내지 못했었는데 마침 잘 정리된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영어공용어론에 관한 대담을 어제 옮겨놓았지만, 우주인이 되기 위해선 (현재로선) 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영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젠가 모스크바의 문화공원에서 최초의 우주왕복선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모형이 아니라 실물이다). 정비중이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던 게 약간의 아쉬움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이맘때쯤엔 '한국 우주인' 이야기로 좀 들썩거리겠군...
교수신문(07. 04. 23) 소련·미국의 우주인 선발과 한국인의 활약
해마다 4월 12일이 되면 러시아에는 국경일처럼 여겨지는 하나의 중요한 기념일이 찾아온다. 길에는 이 날을 축하하는 많은 게시물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신문에는 특집기사가 실리고, 텔레비전에는 이 날에 대한 각종 다큐멘터리들이 주요시간대에 방영된다. 이 날은 ‘우주인의 날’, 바로 인류가 최초로 우주를 나간 날이다. 유리 알렉세이비치 가가린(1934-1968). 1961년 4월 12일 지구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는 우주로 나감으로써 가가린은 지구를 벗어난 최초의 인류, 즉 우주인 1호를 기록하게 된다.
누가 먼저 우주에 로켓을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인공위성을 쏠 것인가. 누가 먼저 생명체를 우주로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사람을 우주에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여성을 우주로 보낼 것인가. 누가 먼저 우주선의 문을 열고 우주유영을 할 것인가. 누가 먼저 달에 갈 것인가. 50~70년대를 걸쳐 미국과 구소련간 진행된 당시의 이러한 일련의 우주개발 경쟁과정은 과학적, 공학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냉전이라는 시기에 상대진영에 비해 보다 우월한 과학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탄생하게 된다. 또한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기술은 대륙 간 타격능력, 우주로부터의 첩보능력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적 과시를 넘어 군사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초기 우주인 선발은 기본적으로 군에서 후보자들이 선발되었다. 혹독한 훈련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력, 임무에 대한 보안, 그리고 그 임무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임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당시 군에서의 선발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사실상 최초로 인류를 우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던 시점에서는 인간에게 무슨 훈련을 시켜야 하는지도 몰랐고, 인류가 우주에 나가면 어떤 신체변화가 올지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고난도 훈련을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소련에서의 최초의 탑승에서 살 수 있는 기대확률은 양측 모두 반반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총성 없는 미소간의 우주개발전쟁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우주라는 전선으로 우주비행사를 보내게 된다.
소련은 공군조종사 중 20명을 후보로 선발하였다. 선발은 워낙 극비로 진행되었던 일이라 후보들은 당시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선발되고 있었는지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훈련과정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게르만 티토프(1935-2000)였다. 그러나 그는 소위 말하는 집안 좋은, 부르주아에 가까운 출신이었다. 이에 비하여 가가린은 스몰렌스크의 가난한 농노 가정에서 태어났으므로 진정한 인민의 자식이라 말할 수 있었다. 재정러시아, 소련의 시기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또한 소련 우주개발의 최고 수장이었던 까랄료프와 마찬가지로 그는 직업학교(우리나라로 말하면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점은 까랄료프에게 상당히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다른 가장 중요한 최종선발 원인 중 하나는 그의 외모와 성격이었다. 대중을 향해 어필할 수 있는 잘생긴 얼굴,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의 쾌활한 언변은 결국 그를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되도록 한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귀환한 가가린은 대중 앞에 서게 되었고, 소련은 “소련의 위대한 과학기술로 우리의 아들이 우주를 다녀왔노라”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였으며, 국민은 그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게 된다. 티토프는 같은 해 8월 6일 우주에 다녀옴으로써 결국 세계에서는 4번째, 러시인으로는 두 번째 우주인이 되었다. 티토프는 우주비행사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말하지 못하였으나 훗날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성적이 좋았음에도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되지 못한 불만을 토로하곤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공군 시험비행사 중에서 7명을 선발했다. 알랜 셰퍼드(1923-1988)가 1961년 5월 5일에 준궤도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에서는 두 번째, 미국인으로는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된다. 실제로 준비상황은 소련에 비해 미국이 좀 더 빨랐으나, 유인발사 전 시행한 무인발사의 실패로 인하여, 이를 검토하기 위해 발사가 연기되면서 최초 우주인의 영광은 러시아인 가가린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한 러시아가 성공한 비행은 우주선을 지구궤도에 올려놓아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귀환한 비행이었으나 미국은 완벽한 궤도진입을 하지 않고 우주를 잠시 나갔다 오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고산, 이소연 두 명의 우주인 후보가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의 가가린우주인훈련센터(www.gctc.ru)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이곳은 ‘별의 도시’라고도 불리며, 모든 러시아우주비행사와 러시아발사체에 탑승하는 우주비행사는 이곳을 거쳐 가게 된다. 과학기술부는 2008년 4월로 예정된 발사를 위해, 금년 8월에 두 명의 후보 중 최종 1명을 선발할 계획이라 한다. 노보스찌 코스모나브티끼(우주비행뉴스)에 따르면 현재 두 후보는 러시아어수업, 이론수업, 가속도 및 무중력 훈련을 받고 있으며, 우주발사체인 소유즈 및 우주정거장 조정훈련 역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주단위로 그들의 생활모습을 한국으로 보내오고 있으며, 한국우주인배출사업 홈페이지(www.woojuro.or.kr)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둘 중 선발된 최종 후보는 소유즈 발사체에 몸을 싣고 우주정거장에서 약 8일간 머물게 된다.
누구를 우주인이라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견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크게 두 부류를 말하곤 한다. 첫 번째는 우주비행을 위해 훈련받은 자를 말한다. 훈련받은 모든 사람이 우주를 나갈 기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주인 후보로 선발되어 훈련을 받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이들 모두를 우주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두 번째 기준이 보다 보편적인데 우주를 나갔다 온 모든 사람을 우주인이라 칭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통상 FAI(www.fai.org)의 기록을 따르는데, 여기서는 지구로 부터 100km 이상 벗어난 모든 사람을 우주인, 즉 우주를 다녀온 자로 인정한다. 미국의 경우 자국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50마일(80km)을 그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2006년 9월까지의 집계를 보면 미국기준으로는 454명이, FAI기준으로는 448명이 우주를 다녀온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한국계로는 미국국적의 폴란스키(50)가 이미 두 차례나 우주를 다녀온 바 있다. 그의 어머니가 한국인 2세로 하와이출생이며, 어머니의 부모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해 다른 한국계와 같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폴란스키의 경우 비록 한국계라고는 하나 사실상 미국인이므로 최초 한국우주인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되기에는 적합지 않다. 그러나 고산, 이소연 후보 외에도 또 다른 한국인인 허재민 씨(25) 역시, 현재 러시아에서 훈련 중인 두 우주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의 우주비행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1월 컴퓨터업체인 오라클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 당첨되어, 준괘도우주비행을 올해 말 예정하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우주에 먼저 나가는 사람은 허재민 씨가 될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우주로 나가는 한국인이 나올지 러시아에서 나올지는 미지수이다. 일정대로라면 허재민 씨가 앞서있지만, 민간우주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의 프로그램이 단순히 며칠간의 훈련으로 수 분간 우주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므로, 허재민 씨가 먼저 우주를 나가더라도 우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이미 스페이스쉽원(SpaceshipOne)을 타고 허재민 씨가 예정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민간우주비행을 한 마이크 멜빌(Mike Melvill)은 전 세계적으로 433번째 우주인으로 인정되고 있고, 우주인 명단에 등재되어 있다.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역시 이와 유사한 비행이었다. 만일 허재민 씨가 예정대로 고산 혹은 이소연 후보보다 먼저 우주비행을 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사람보다 위쪽에, 전 세계가 인정하는 또 다른 한국 국적의 한국우주인이 등재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최초’라는 단어는 언제나 매력적인 단어이다. 아직 누가 ‘최초’의 한국우주인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른다. 과거와 다른 점은 예전에는 단순히 우리나라에도 우주인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면 현재는 곧 출산을 앞둔 어머니와 같은, 잠시 후를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최초’라는 것은 그 이후 지속적인 노력과 발전이 있을 때 그 의미가 더욱 존중되고 기억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제 첫걸음을 떼다시피 한 한국의 우주개발에 한국인 우주인의 배출이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하성업/ 러시아통신원· 모스크바국립항공대 박사과정)
07. 04. 27.
P.S. 가가린훈련센터를 다른 책도 재작년에 출간된 것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 출간된 우주인 관련서는 의외로 드문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청어람미디어, 2002) 정도가 아닌가 싶다.
다치바나는 이렇게 적었다. "우주비행사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우주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그때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우주 비행사들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감추어 두었던 본심에서 우러난 메시지를 세계 최초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된다. 우주 비행사들의 전언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놀랄 만큼 깊고 큰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것이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