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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화에 대한 한 학기 강의 끝에 지난 월요일 기말시험을 봤는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트로츠키'가 누구인지에 대한 단답형 문제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다소간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강사나 학생이나 서로가 한 학기 동안 무얼했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요즘 학생들이 학점에 너무 신경을 쓴다는 말도 별로 신빙성이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언제나 그랬지만, 대학생들의 상당수는 날라리 대학생이다. 아마도 그들은 방학때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하여간에 내 몫의 반성을 하는 의미에서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좀더 강화하기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계몽'적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전혀 아니며, 다만 언젠가 빛이 들 만한 '쥐구멍' 정도는 만들어놓고자 하는 것. 그런 취지에서, 진보언론을 표방하는 '레디앙'에 들렀다가 하영식의 칼럼 '아테네에서 온 편지' 중 '러시아 혁명은 근대화 운동이다(?)'가 눈에 띄길래 옮겨온다.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밀리언하우스, 2005), <굿바이 바그다드>(홍익출판사, 2004) 등의 저서를 이미 갖고 있지만 내겐 생소하다. <여행>은 "80년대,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저자가 당국의 추적을 피해 해외 도피길에 올라 세상을 방랑할 때의 기록"으로서 "프랑스, 영국, 멕시코를 방랑하던 저자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조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과 폴란드의 외딴 마을 크렘프나에서 보낸 1년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는데,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담고 있어서 기회가 되면 들춰볼 생각이다.

레디앙(06. 03. 28) 지난해 가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를 방문했을 때 한 러시아 노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했던 위대한 국가"라는 말이었다. 그 노인의 말처럼 과거의 그 위대했던 러시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는 1905년 1차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러시아의 대학가 어디에서도 이를 기념하는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혁명의 진원지이기도 했던 페테르부르그 대학을 찾아 그 대학의 역사학과 석좌교수를 만나 러시아 혁명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러시아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라기보다는 근대화를 위한 운동"이었다. 공산주의체제의 산증인이기도 했던 노교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는 곧 말문이 막혀버렸다. 러시아에서조차도 지난 혁명의 역사는 이렇게 철저히 부정되고 있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존재하지 않고 노동과 분배의 정의가 실현된다는 공산주의 사회는 이렇게 몰락해버렸다(*이게 대략 러시아의 현실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론이 실험이었다면 그 실험은 실패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그동안 많은 이론가들이 나름대로 원인을 진단해왔다. 트로츠키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느니, 레닌의 네프(NEP, 신경제정책)를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느니 하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스탈린의 정책노선이나 중국의 문화혁명이 지나치게 반인텔리적인 정책이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을 하는 이도 있다. 아니면 아예 후진농업국가였던 러시아나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너무 단순할 수 있다.

 

 

 


-이제는 누구도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꼴통이라 왕따 당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특히 공산주의 시절 공산당간부로서 부귀영화를 잔뜩 누렸던 가짜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인민복을 벗어 던지고 너무도 쉽게 돈 많은 자본가로 둔갑해버렸다. 이렇게 현실사회주의는 철저히 몰락해버렸다.

-어쨌든 인간의 사고가 빚어낸 최고의 이론이라는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현실에 제대로 적용됐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시도만이라도 해본 것은 사실이다. 어설프나마 그 수준에서 흉내라도 내봤다는 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필자의 감상은 다소 불철저하다. 그러니 칼럼의 말미에서 피상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공산당 간부들이야 다른 세상이 오면 자본가로 둔갑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짐은 고스란히 민중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시베리아를 열차로 횡단하던 중 모스크바에 살면서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티나라는 러시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은 러시아 공산주의사회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했다. "어릴 때 언제나 사탕과 초콜릿이 그렇게도 먹고 싶었으나 전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티나의 회상은 마치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렸다. 국영상점에서는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구비해놓았지 어린이들을 위한 것들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망한 현재의 상황을 티나는 더 선호한다고 했지만 그 이유란 별 게 아니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다. 티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만약에 공산당 간부들이 자기주머니 채우는 일에 열중하기보다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만드는 일에 더 신경 썼더라면 세계 공산주의 체제는 여전히 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비록 공산주의의 종주국이 망하고 대부분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국가들이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시리아로 대표되는 중동의 몇 개 나라들과 아프리카의 몇 개 국가들과 쿠바와 북한이다. 이들 국가들은 반미를 중심정책으로 두면서 일인 장기독재가 유지되고 있다. 시리아는 아버지 아사드 대통령이 죽은 뒤 아들이 정권을 물려받았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죽은 뒤 아들이 정권을 물려받았다는 점이 너무 유사하다.

-물론 미국의 부시일가도 아버지와 아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이 유사하지만 빠르면 4년, 늦어도 8년이 지나면 물러나게 돼있다는 점이 이들 국가와는 조금 다르다. 패밀리 장기독재의 문제는 둘째로 친다 하더라도 이들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지난해 시리아를 방문했을 때 수도 다마스커스시에 사는 시리아인들과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한 적 있었다. 이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말하기를 꺼려했다. 특히 대통령의 이름인 ‘아사드’는 성스러운 이름인양 꺼내기조차 두려워했다. 그의 이름이 나의 입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천벌이라도 내릴 것 같은 분위기로 돌변했다. 북한도 시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전국민들이 공포에 떨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는 명분으로 유지되고 있다(*사회주의자를 자처하지만 필자가 특별한 '상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인간에 대한 착취이다. 배만 채우면서 목숨만 유지한다고 인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에게 밥은 없어서는 아니 될 요소지만 자유도 밥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유는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 공기와 같은 요소이다. 


 
-어쨌든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사회주의 세상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끌어올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나간 사회주의 사회는 인간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초콜릿과 사탕이 없는 선언만 풍성한 사회였다.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회가 바로 이상사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고 생산과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반드시 와야 한다. 인류의 고귀한 이상을 이대로 망한 세상과 함께 떠내려 보낼 수는 없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최소한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두서없는 마무리이다.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회가 바로 이상사회이다'라는 건 '사회주의'의 구호가 아니라 '실용주의'의 구호 아닌가? 현실 사회주의는 망했지만, (러시아도 그렇고) 우리가 그로부터 얻은 교훈은 별로 없는 듯하다.

06. 60. 22.

P.S. 이 칼럼을 옮겨온 이유는 필자의 이상사회론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포스트-소비에트를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의 역사와 생활에 대한 감각을 일러주는 두 발언을 칼럼이 포함하고 있어서이다.  "사회주의 혁명이라기보다는 근대화를 위한 운동"이라거나 "(자본주의에서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발언 말이다. 그러한 인식/감각에 근거하여 러시아 혁명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똑같이 반복하게 되는 게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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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의 국내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한겨레(06. 60. 20) 정한석 기사의 전갈이다. 

-영화 <시간>의 개봉이 확정됐다. 영화사 스폰지는 오는 8월10일경 김기덕 감독의 <시간>을 개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은 이미 올 4월경 완성됐지만 개봉 일정은 불투명했다. <빈 집>과 <활>의 연이은 국내 흥행 저조로 실망한 김기덕 감독이 국내 배급을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일부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김 감독이 무조건 국내 배급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건만 맞으면 국내 배급사가 판권을 구매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 들었고, 5월 중순경 만나 합의했다. 최종적으로 감독이 제기한 몇 가지 조건을 수용하면서 개봉이 결정됐다. 극장을 운영하는 입장으로서 적절한 한국영화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는 우리쪽 입장과도 맞아떨어졌다”고 밝혔다.

-스폰지와 김기덕 감독이 <시간>에 관해 합의한 내용은 국내의 모든 영상물 판권을 스폰지가 소유하되, 판권 보유기간이라도 비상업적인 상영을 위해서는 적극 협조하고, 향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판권을 다시 양도하는 방식이다. 그 밖에도 본인을 내세운 무리한 마케팅 자제도 김 감독쪽이 영화사에 내건 조건의 일부였다.

-조성규 대표는 “김기덕 영화에 적합한 제작방식이 있듯이, 그에 맞는 배급방식도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상영될 수 있다는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광고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소규모 상영하는 쪽으로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성현아, 하정우가 출연하고, 오래된 연인인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성형수술을 시도한다는 내용의 <시간>은 스폰지가 운영하는 압구정과 종로의 스폰지하우스 두곳을 포함해 대략 10개에서 15개 정도의 개봉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모처럼 듣기 좋은 소식에 <시간>에 관한 자료들을 몇 개 훑어보았다(<시간>은 지난달말 씨네21 등의 주최로 국내 최초 시사회가 열렸었다. 이에 대해서는 <씨네21> no.556 참조. 영화에 대해서는 개봉 후에 다루기로 한다). 그러다가 읽은 김기덕 관련 기사.  

한겨레21(04. 10. 21)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김기덕 감독이 만드는 달력이 담아내는 계절의 색깔은 어떠할까. 부산영화제에 참석 중인 김기덕 감독은 지난 10월8일 러시아 푸친 대통령에게 증정될 VIP용 달력에 담길 사진 연출을 러시아의 유력인사로부터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스틸 사진을 세 가지 테마로 찍는 방식으로 진행될 작업은 할리우드 프로듀서와 러시아의 사진작가가 동참할 예정이다. 작업방식은 김기덕 감독의 연출대로 러시아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작가가 지시에 따르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김 감독은 “테마 중 하나인 ‘풍경’ 편은 한국의 풍광을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달력의 배경에 담길 로케이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공간이었던 청송 주산리와 송정, 인사동, 한강 등지가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촬영될 ‘풍경’ 편에는 러시아 모델이 참여할 예정이기도 하다. 김 감독에게 이러한 제안이 온 경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비롯한 러시아에 개봉된 그의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영화에서 김 감독은 에곤 쉴레의 회화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미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구도를 보여주곤 했다. 김 감독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곧바로 달력 사진을 위한 촬영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1월 모스크바를 떠나올 때 마지막으로 읽었던 현지 기사가 바로 이 사진 작업에 관한 것이었는데, 당시엔 김기덕이 러시아 모델과 일종의 '광고' 사진을 찍는 줄 알았다(푸틴을 위한 달력?). 여하튼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Korea with Kim-Ki-Duk'이다. '김기덕과 함께 보는 한국'은 그걸 옮긴 제목이다. 기획 자체는 '관광엽서'이지만, 결과는 그렇게 친숙하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풍광에 이국적인 러시아 여인이 들어오게 되면 얼마나 '언캐니'해지는가를, 얼마나 섬뜩해지는가를 몇몇 사진들은 보여준다.

지난번에 김기덕 영화 관련 이미지들을 찾다가 이 사진들을 보고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 적이 있는데(한번쯤 경험해 보시길!),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김기덕 영화는 언캐니(uncanny)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러시아의 거의 유일한 '한류', 혹은 한국문화 컬트로서의 김기덕이 보여주는 건 혹 '한국 안의 러시아'가 아닐까 싶은 것. 그게 그의 언캐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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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과 러시아 스탭들(전국을 돌며 2주간 작업했다고).

 

전시회에서 자신의 사진 앞에 선 러시아 모델 아나스타시야 포타니나(전시회는 2005년 1월말에 열렸다).

전시회장에서 즐거워하는 표정의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06.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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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6-2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거 달력으로 걸어 놓으면 집안 분위기 단번에 "uncanny"해지겠네요.

로쟈 2006-06-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보면 더 섬뜩합니다!^^

parioli 2006-06-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겨울 일산에 살 때, 성현아 비슷한 사람이 영화를 찍길래 물었더니, 성현아가 맞고 김기덕 영화라고 했는데, 그건가 봐요.
알라딘 사람들 모여서 같이 보는 건 어떨까요? ㅎㅎ

로쟈 2006-06-21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알라딘영화관이 생기거나 알라디너 무료 시사회라도 마련된다면 가능할지도...
 

금요일자 한겨레의 책-지성 섹션을 챙겨보는 편인데, 가끔 '아깝다 이책'란에 눈길이 오래 머물곤 한다. 오늘도 그러한데, 작년 11월에 출간된 책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에 대해서 출판사 기획실장 임병삼씨가 쓴 글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었던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왜 다루지 않았을까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여하튼 초판의 절반 정도가 창고에 남아있다고 하니까 책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뒷북치는 기분으로 임병삼씨의 글과 함께 언론의 리뷰 두 편, 그리고 구로사와의 영화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소개 영화평 하나를 차례로 옮겨놓는다.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나대로의 '자료집성'이다. 

 

한겨레(06. 06. 16) 전화가 뜸한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부천에 산다는 독자였다. <데르수 우잘라>를 감동 깊게 읽었고 이런 책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단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다른 책이 국내에 나왔는지, 없다면 갈라파고스에서 낼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잠시 머뭇거리자 왜 책이 잘 안 팔리느냐면서 그렇다면 자기라도 열심히 ‘입선전’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 책을 내고 여러 사람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서점의 어느 독자는 리뷰란에 이 책을 보고 왜 자기가 울었는지를 독자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이 책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출판동네 15년이 넘지만 낸 책을 잘 보았다는 독자 전화를 받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쯤되면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또다른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책들 때문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초판 2000부를 발행해 반년이 지난 지금, 초판의 반 가까운 부수의 재고가 오늘도 독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 대해 러시아의 대문호 고리키는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하의 책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과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풍부한 자연묘사와 특유의 표현력에 저는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귀하의 친구였던 데르수는 이제 더는 ‘짐승의 발자국을 뒤쫓는 야만적인 사냥꾼’이 아닙니다.그는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심판자이며,또한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예술의 본질’을 일깨워준 선구자입니다.귀하의 삶에 이런 친구가 있었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과 교감했던 원주민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의 삶을 그린 논픽션이다. 지은이 아르세니에프는 러시아군의 극동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의용병 부대의 지휘관이며, 러시아 극동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며 작가였다(*사진은 저자인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 우잘라의 초상을 담은 소련의 우표). 당시의 의용병 부대는 수렵과 탐사가 주임무로, 오지를 수색할 때가 많았다. 전투훈련 대신 시호테 알린 일대와 연해지방의 지형 및 도로를 조사했으며, 전시에는 정찰과 길안내를 맡았다. 이 책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데르수 우잘라가 1902년부터 1910년에 걸쳐 아르세니에프의 탐사대와 함께한 나날들, 그리고 그가 총과 돈을 노린 러시아 사람에게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데르수는 항상 사냥해온 것을 이웃과 똑같이 나눠가졌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고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소위 문명화된 인간에게 퇴화된 능력을 어디까지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복과 승리 대신 공존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야생의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은 키플링이 쓴 <정글북> 혹은,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와 비견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5년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데르수 우잘라>를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모스크바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둔 성공회대학 신영복 교수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수업에서 `사회는 우직한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나아간다’는 교훈을 주고싶다”며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 때문에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가르침을 전해 주려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데르수 우잘라’야말로 신영복 선생님이 말한 그런 사람의 전형이 아닐까. 

동아일보(05. 11. 26) 차갑고 조용한 밤이었다. 데르수는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계곡을 타고 조잘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이 어제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마른 풀은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탄한다고 말했다. 데르수의 모습이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신비롭게 비쳤다. 어둠 저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푸른 달빛을 닮아 있었다. 이 야만인은 하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무슨 원시적인 종교가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매번 그의 설명은 싱거웠다. 별이 뭘까? “저기 별 떴다. 보면 된다.” 달은 뭘까? “눈 있는 사람. 달 본다. 저게 달이다.” 그러면 하늘은? “환할 땐 파랗다. 캄캄해지면 까맣다. 비 올 때 흐리다….” 무한함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허무의식, 그것은 문명인만이 갖고 있는 것일까.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 그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시베리아의 원주민 고리드족의 후예다. 생명이 생명으로 대접받던 원시의 나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냥꾼이다.

-데르수는 1902년부터 저자가 이끌었던 러시아 극동탐사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수렵부대의 지휘관으로 있던 저자는 당시 지도상의 빈칸으로 남아 있던 연해주 시호테알린 산맥 중부지대를 훑었다. 저자는 데르수와 동행하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와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는 원시인의 삶의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이다.

-평생을 숲과 함께 살아온 데르수는 아무 욕심이 없었다. 사냥을 하면 이웃과 똑같이 나눠 가졌고, 얼룩바다표범과도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짐승을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잉크’라는 말은 몰라 ‘더러운 물’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10년에 걸친 탐사가 끝나자 데르수를 데리고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병들어 더는 숲에서 혼자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영혼은 갑갑한 문명을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수도요금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쳤다! 물마시고 돈 준다! 강에 돈 안 줬다!” 데르수는 아무르 강을 떠올렸다. “거기 물 많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조금씩 깨달아 갔다. 그는 도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호랑이가 아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도시보다는 춥고 배고픈 숲이 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르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2주일 뒤 변시체로 발견된다. 강도의 소행이었다. 숲에서 태어난 데르수는 결국 숲에 묻혔다. 커다란 시베리아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그의 무덤가에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후르르 날아들었다. “의젓한 사람!” 데르수는 이 새를 그렇게 불렀었다….

한겨레(05. 11. 25)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펴냄)는 1907년 6월22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지도상의 빈칸이었던 연해주 시호테 알린 산맥 동쪽지역을 탐사한 기록이다. 원제는 <우수리 지역의 밀림에서>(*사진은 러시아어 원본). 지은이는 러시아 극동군 소속 정찰부대 지휘관.

-군용 보고서와 별도로 1923년 출간된 이 책은 출간당시 고리키로부터 풍부하고 꼼꼼한 자연묘사와 표현력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75년, 일본인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눈에 띄어 ‘데르수 우잘라’라는 고리드족 출신 원주민 안내자한테 초점이 옮겨와 영화로 만들어진다. 2005년 한국 독자한테도 사정은 비슷하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는 따위는 데르수의 신기한 면모일 따름. 그는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 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물고기로부터 그곳에 야영을 하지 말라는 말 뒤에 정체불명의 야수가 스멀거렸다든가, 바다표범이 인간의 머릿수를 세고 있는 것에 분개한다든가, 설득하여 물러가는 호랑이를 쏘아 죽인 뒤 가슴 아파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의 진면목은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 어느 날 저녁, 지은이가 모닥불에 던진 찌꺼기 고기를 끄집어내면서 “우리는 내일 떠나지만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온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은 너구리, 오소리, 까마귀, 쥐, 개미였던 것. 금을 찾다가 굶어죽은 밀림속 조선인 인골, 화전과 담비 사냥으로 물레방아와 맷돌을 이용하며 사는 이주 조선인 대목에서는 일제하 유랑했던 윗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씨네21(02. 09. 12) 구로사와 낯설게 보기, <데르수 우잘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65년작 <붉은 수염>은 두 주인공이 영광스럽게 걸어들어가는 진료소의 문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은 구로사와의 빛나던 한 시대가 이제 그만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로 구로사와는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실의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폭주 기관차>나 <도라! 도라! 도라!> 같은 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연이어 불발로 그쳤는가 하면, <붉은 수염> 이후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야심찬 ‘실험작’ <도데스카덴>(1970)은 (상업적)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로사와는 그새 일본의 제작자들로부터 흥행성이 없는 영화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래서 좀체 영화제작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구로사와에게 길을 터준 것이 바로 소련의 영화제작사 모스필름(Mosfilm)이었다. 모스필름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은 구로사와는 조감독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프로젝트- 러시아 탐험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를 꺼내놓았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열망까지 채워주며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들어진 <데르수 우잘라>(1975)는 침체에 빠져 있던 그의 70년대를 그나마 완전한 불모의 시기가 되지 않게 막아주었다고 기록될 만한 영화다.

-영화는 1910년, 아르세니에프(유리 살로민)라는 전직 군인 겸 탐험가가 옛 친구 데르수 우잘라(막심 문주크)의 묘지를 찾아와 데르수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902년 지형탐사차 시베리아의 우수리 지방에 온 아르세니에프는 몽골계 사냥꾼 데르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데르수가 낯선 땅에서 고생하던 아르세니에프 일행의 안내인 역할을 맡으면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서로간의 신의를 쌓아간다. 아르세니에프 일행이 탐험 임무를 완수하자 두 사람은 헤어지고 1907년에 재회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본 사람들에게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치고는 아주 ‘낯설다’는 인상부터 주게 될 그런 영화다. 이건 이 영화가 구로사와의 영화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외의 지역에서 일본인이 아닌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구로사와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이한 양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특징들, 즉 갈등들이 정묘하게 엮여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스토리구조라든가 역동적인 시각적 스타일 같은 것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유의 영화인 것이다.

-단적으로 이것은 여느 구로사와 영화들처럼 관객을 적극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참여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짝 물러 선 자리에서 다소 초연한 태도로 보게 만드는 ‘관조의 영화’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비주얼 설계면에서나 연기면에서 과장, 장식 혹은 기교를 거의 배제한 ‘자연스런(혹은 자연주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데르수 우잘라>가 구로사와적인 표지를 완전히 지워버린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우리는 여기서도 구로사와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사제관계라는 모티브가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 대해 확실히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데르수의 자발적인 선의는 아르세니에프의 감탄과 신뢰를 사기에 충분하고 심지어 데르수의 타고난 용기와 총기는 아르세니에프의 생명마저 구해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붉은 수염>에서 결국에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그것과는 달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제관계이다.

-이건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데르수는 ‘자연’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고(주위의 모든 것, 태양, 달, 바람, 물, 불 등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면 측량일을 하는 아르세니에프는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문명의 침입을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에 동화하기보다는 종국에는 그의 운명에 ‘탄식’을 던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여하튼 구로사와는 아르세니에프가 몹시 그리워하는 어조로 “데르수…” 하고 던지는 두번의 탄식을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해놓음으로써 데르수가 체현하는 그 가치에 대해 끔찍이도 향수를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내비친다. 즉 <데르수 우잘라>는 데르수가 대변하는, 지금은 상실했고 또 사라져버린 어떤 아름다운 세계와 그 가치에 대해 애조띤 밭은 탄식을 던지는 영화인 것이다. 그것이 너무 진부하거나 보수적이지는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말이다.(홍성남)

0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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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6-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눈물을 흘린 몇 안되는 책이었습니다.
로쟈님의 수고로움의 덕택에 얌체처럼 낼름 퍼 가요.

로쟈 2006-06-1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관해서라면 파란여우님이 '원조'이시죠.^^
 

제2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MIFF)가 오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다(칸느영화제 바로 다음이다. 모스크바영화제는 식장에 파랑 카페트를 깐다. 지난번 칸느영화제에서는 '러시아의 날' 행사도 개최됐었다). 점심을 먹고 재작년 이맘때 쓴 모스크바 통신을 잠시 읽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영화제 홈피에 들어가보고 알게 된 것이다. 영화제의 약력을 살펴보니 1935년에 처음 개최된 이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선 베니스 영화제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59년부터 1995년까지는 격년에 한번씩 열리다가 1995년 이후로는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는 저명한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사진은 2001년 행사장에서 잭 니콜슨과 포옹하고 있는 미할코프), 올해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변동사항이 있는 듯하다).

해마다 메인행사가 개최되던 극장도 이번엔 바뀌었다는데(원래는 푸슈킨거리의 러시아극장(사진)이 주극장이었다),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의 멀티플렉스 '10월(Oktyabr)'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 개관한 이 극장은 9개의 상영관과 3,174석의 객석을 갖고 있다. 아래는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 극장은 24번지에 있다고 한다.

대충 그렇다. 어차피 구경도 가지 못할 영화제에 대해서 주절거리는 것도 속없다. 대신에 재작년에 구경했던 모스크바 영화제 얘기를 약간 덧붙이도록 한다(그때 모스크바는 오늘처럼 부슬비가 자주 내리던 날씨였다). 2004년 모스크바 영화제는 6월 18일에 개막된바, 그맘때 쓴 통신문의 한 대목을 옮겨오려는 것(그때 본 영화들 얘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겠다). 주로 미국의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와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에 대한 것이다.

오늘 저녁에 모스크바영화제의 전야제가 열린다. 26일까지인가가 영화제 기간인데, 2-3일 전부터 세계영화계의 몇몇 명사들이 모스크바를 찾고 있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퀜틴 타란티노인바, 그의 <킬빌2>가 이번에 모스크바에서는 개봉됐다. 나는 이 영화의 복사본 비디오CD를 3,200원 주고 사서 보았는데, 이미 두어 달 이전부터 이 복사본 <킬빌2>는 비디오/음반 가게마다 깔려 있었다(한국은 모스크바보다 영화시장이 크니까 이미 개봉했을 걸로 짐작된다). 나는 <킬빌1>, <킬빌2>를 모두 모스크바에 와서 봤는데, 타란티노판 이 ‘무협판타지’의 주제는 다소 고전적인 ‘엄마 되기의 어려움’이다(이하의 내용은 일부 스포일러일 가능성이 있음). 그런 의미에서 ‘불량소녀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교육용’ 영화.

 

 

 



아니, ‘엄마 되기’보다는 ‘엄마로 태어나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첫 아이를 낳을 때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면서 동시에 ‘엄마’를 낳는다). 영화에서 무협 판타지는 ‘산고(産苦)’에 대응하는바, 그때 태어나는 것은 ‘아이’라기보다는 ‘엄마’이다. 우마 서먼은 자신이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에, 즉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자비한 복수를 결심/결행하게 되며, 결말에서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엄마가 되기 위한 조건이 ‘킬빌’이라는 것. 여기서 ‘빌’은 (아이의) ‘아버지’이니까, ‘킬빌’은 일종의 ‘부친살해’인 셈이다. 물론 이 부친살해는 전도돼 있다(지젝식으로 말하면, ‘트위스트’돼 있다).

이 영화에서의 부친살해 욕망은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갖게 되는 욕망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에게 갖게 되는 욕망이다. 영화에서 우마 서먼은 그 욕망을 실행한다. 왜 ‘아버지’가 제거되어야 하는가? ‘나쁜’ 아버지, 혹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이는 ‘부족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형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킬빌>은 내러티브상으론 포스트모더니즘 영화가 아니라, 모더니즘 영화이다. 지젝이 <히치콕>의 ‘모더니즘’에 대해서 지적한바, “(악마적, 외설적인) 부성적 인물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은 여주인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히치콕>, 16쪽).



다른 한편으로, <킬빌>의 이러한 주제는 타란티노식 영화의 비밀을 엿보게 한다. 즉 타란티노의 트라우마는 무엇일까, 라는 것. 타란티노가 ‘작가’라면(그러니까 그의 ‘유희정신’에 어떤 ‘진정성’이 있는 걸로 가정한다면), 아마도 그에겐 ‘아버지’가 결여돼 있거나, 적어도 ‘아버지의 이름’이 결여돼 있다. 이른바, ‘부성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전매특허적인 패러디 혹은 패스티쉬(=짜집기) 스타일은 그러한 결여가 낳은 ‘자유’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방황의 산물이다. 그는 ‘아버지’를 부정하면서(그것이 스타일의 유희를 낳는다), 동시에 그리워한다(그것이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를 낳는다).

러시아의 한 비평가는 타란티노에 대해, ‘비상한 재능’이 아니라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감독(이라기보다는 비디오가게 점원)이라고 평한바 있는데, 그때 ‘기억’의 대상이 되는 것은, 즉 그 ‘기억’의 ‘주인-기표’는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가 부재하는 한 그는 계속 ‘악동’으로 남을 것이다(그러한 타란티노와 비교해볼 만한 또 다른 ‘악동’이 페도르 알모도바르이다).

어쨌든 <킬빌>의 타란티노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지만, 히로인 우마 서먼과 대릴 한나는 동행하지 않았는데, 오늘자 <이즈베스찌야>에는 이 두 여배우와의 현지 인터뷰가 실렸다. 어제는 ‘정치적 활동가’이기도 한 수잔 서랜든과의 인터뷰가 실렸고(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해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한 마디’가 또 어디로 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우상이었던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도 어제 러시아를 방문했다. 모스크바 영화제와는 무관하게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 프랑스 귀금속 전시회의 ‘얼굴’로 온 것인데,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러시아를 다녀간 바 있다. 하긴,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주연도 맡았었으니까 인터뷰대로 러시아는 익숙하겠다. 영화배우에다가 감독으로도 근래에 데뷔했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 여배우도 어제 TV인터뷰를 보니까 어느덧 ‘나이’가 완연했다(내 기억에 그녀는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오늘자 <이스베스찌야>에 실린 인터뷰를 보니까, 그녀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정원을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무일 없이 쉬는 것. 그러니까 아무런 할일이 없으면 불안해 하는 타입인 듯하다(‘할일’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대중의 주목, 혹은 시선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장 폴 벨몽도(한때 프랑스 영화는 알랭 들롱의 영화와 벨몽도의 영화로 나뉘었다)와 함께 주연한 영화가 이곳 TV에 방송됐었는데(지난달에는 <라붐> 시리즈도 방영됐다), 내가 거의 20년 전에 본 영화였다. 고등학교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만 유일하게 일찍 집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런 기간에 나는 영화를 보러 다니곤 했다. 바로 그렇게 본 영화 중 하나. 그런데, 내가 놀라는 것은, 정작 그 20년이란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그 20년의 시간에 대한 ‘감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냉담한 것인지, 관대한 것인지, 혹은 아직 젊은 것인지, 너무 늙어버린 것인지 잘 가늠이 되질 않는다...

04. 06. 18/ 06. 06. 14.

P.S.(*타란티노의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지난 금요일(18일)에 타란티노의 <킬빌2>가 공식 개봉됐고, 어제(19일) <이즈베스찌야>에는 타란티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어는 칸느 영화제 얘기를 할 때 언급됐었는데, 마리야 쿱쉬노바이다. 짧은 인터뷰에서 주요 질문은 세 가지였는데, 첫번째 질문은 (한 편의 영화를 찍은 다음에 둘로 나눈 게 아니라) 처음부터 <킬빌>을 두 편의 영화로 따로 찍을 생각을 했느냐는 것.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문제가 됐던 건, 시나리오였는데, 원래는 한편의 영화를 목표로 씌어졌다는 것. 타란티노는 그걸 도저히 90분에 다 집어넣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빼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제작자가 둘로 나누는 게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서 “만세!”를 불렀다는 것.

두번째 질문은 <킬빌3>도 나오느냐는 것. 이에 관해서는 흥미를 느낄 만한 팬들도 있을 듯한데, 타란티노의 대답은 역시 그렇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킬빌1>을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대충 <킬빌3>가 어떤 내용이 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첫장면에서 우마 서먼이 블랙맘바와 결투를 벌일 때 블랙맘바의 유치원생 딸(니키)이 끼어든다. 우마 서먼이 결국은 맘바를 죽이게 되는데, 그 장면을 본 니키에게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복수하러 오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기다리겠다고. 그게 <킬빌3>다. 그런데, 어린 니키가 엄마의 복수라도 하려면 좀 커줘야 될 게 아닌가? 그래서, 타란티노의 대답은 <킬빌3>는 한 15년쯤 후에 나올 거라는 것이다. 그는 니키가 커가는 과정을 미리 찍어둘 예정으로 있다.(*아래 사진은 어린시절의 타란티노.)



그렇게 되면, 복수는 끝이 없는 게 아닐까?(우마 서먼도 딸이 있으니.) 타란티노의 대답은 그럴 수도 있지만, ‘타란티노의 세계’(관객이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에서는 이게 완결편이 될 거라고. 그래서 <킬빌>은 아마도 타란티노판 ‘복수의 3부작’이 될 것이다(<킬빌2>에는 “복수는 곧 사랑”이라는 대사도 있으니까, ‘사랑의 3부작’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리고 이 ‘복수의 3부작’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박찬욱이다. 쿱쉬노바이 세번째 질문은 그에 관한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번역하겠다.



-(쿱쉬노바) 칸느에서 당신은 한국영화 <올드보이>에 표를 던지셨죠. 똑같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올드보이>가 비극적인 복수자를 다루고 있다면, 당신의 영화에서는 복수도 (자기)만족일 뿐인데요.

 

 

 

 

-(타란티노) <올드보이>는 영화제에서 아주 뛰어난 영화였죠. 저로선 이 영화가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진짜 걸작이라고 생각돼요. 영화는 한국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 현상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복수에 대해서는… 당신이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주제에 관해 두 편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과 <올드보이>. 그리고 지금은 세번째 영화를 찍을 건데, 이 세 편의 영화에서 그는 복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기 다른 결론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복수가 사랑으로 손에 손을 맞잡는 게 아니라면, 해석의 여지는 활짝 열려 있어요. 비극적인 복수자를 보여줄 수도 있고, 복수의 유익함, 즉 정의의 승리를 보여줄 수도 있죠. 또 복수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나 환희, 만족감을 보여줄 수도 있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역시 복수에 대한 영화라는 건 나로선 처음 듣는 얘기인데(*다시 읽으니 코믹하다. 우리는 그가 무얼 어떻게 찍었는지 알고 있다!), 타란티노의 말인 만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만큼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사실, 객지에서 이런 류의 기사나 인터뷰를 읽는 일은 ‘만족감’을 준다. 그 만족감은 TV에서 한국기업들의 광고들을 볼 때 느끼는 ‘대견함’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너 돈 좀 있구나”와 “너 뭘 좀 아는구나”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요즘은 타란티노가 외교관 열 명이 달려들어도 못할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한국 외교관이 <이즈베스찌야>와 인터뷰 할일이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화현상”이라!..(*아래 사진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무덤을 찾은 타란티노. 파스테르나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타란티노가 좀더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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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씨네21>을 읽다가 러시아 영화 개봉 소식을 접했다. 이번주에 개봉한다는 <러시안 묵시록>이 그것인데, 지난 2004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되어(포스터를 보니 12월 9일에 개봉됐다) '엄청난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블록버스터이다(그때 모스크바에 있었던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역시나 그해 봄에에 개봉되어 여름에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나이트 워치>에 이어서 러시아산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데 의의가 있는 영화인 듯싶다.

 

 

 

 

<나이트 워치>를 우리의 <쉬리>에 견주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체첸반군의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인 만큼 <쉬리>와 더 잘 비교되는 영화는 <러시안 묵시록>이겠다. 물론 작품성이 뛰어난 건 아닐 테지만(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떠올리면 되겠다(<나이트 워치>). 하도 오랜만에 소개되는 러시아 영화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관련기사를 옮겨온다. nkino의 전은정 기사가 쓴 리뷰로 제목은 "<러시안 묵시록> - 테러를 필요로 하는 스펙타클의 사회?"이다.

-비행기 한 대가 뉴욕의 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전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테러가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깊게 각인됐다. 특히 9.11 사태는 현실에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테러를 ‘현실’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아랍과 이슬람 문화권을 실체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는 공동의 적으로 확실하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인 7백만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는 ‘매머드급 액션 스릴러’ <러시안 묵시록 Lichnyy Nomer>(*러시아어 원제는 '개인번호', 곧 '군번'이란 뜻이며, 영어제목은 'Countdown')의 소재 역시 ‘테러’다. 러시아 역시 테러와 인연이 깊은 나라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테러의 조합은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영화는 군사 첩보 활동을 벌이다가 체첸 독립군의 포로가 된 알렉세이 스몰린 소령(알렉세이 마카로프)이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자백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몰린 소령의 증언이 고문에 의한 것이었음이 알려지고 난 후, 체첸 반군과 손잡은 이슬람 과격파 안사르 알의 대형 테러 계획,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 테러의 중심부에 카메라를 들이댄 열혈 여기자 캐서린 스톤(루이스 롬바드) 등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1816년 카프카즈 정복으로 시작된 러시아 팽창 정책의 희생자인 체첸인들이 세기가 바뀌도록 끊임없이 러시아를 향해 투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 많은 체첸인들이 회교도라는 사실도, 그들이 벌이는 테러의 정치적인 목표도 관심이 없다. <러시안 묵시록>은 명백히 대중들의 취향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액션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슬람 과격파와 손잡은 체첸 반군과 러시아 정부와의 대립과 그와 관련된 정치적인 배경보다는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영웅적인 한 사내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볼거리라는 면에서 볼 때 <러시안 묵시록>은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크게 쳐지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에 의해 실제 군사기재들이 총동원 된 이 영화의 전투 신들은 꽤 사실적이다. CIA 작전부 부사령관과 러시아연방보안국 부사령관, 러시아 공군 총사령관 등이 영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느니, 장갑차 추격 신에서 레닌 거리를 완전히 봉쇄하고 찍었다는 식의 홍보 문구 역시 ‘실감나는’ 영화의 그림을 강조하고 있다.  

-대중영화가 필요로 하는 영웅,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돈 많은 악당, 영웅을 돕는 조력자도 당연히 등장한다. 안사르 알과 체첸이 러시아 서커스 극장에 모인 아이들과 일반인들을 인질로 삼고 유엔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할 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또한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나홀로 서커스장에 진입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중심인물이 바로 스몰린 소령이다.

-체첸 측의 포로였다가 살아남은 러시아 장교 알렉세이 가르킨이 겪은 사건과 2002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테러범들의 인질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사실적인 공포를 전달하려 한다. ‘볼거리’로서 제공되는 테러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는 진짜 현실의 모습은 없는 경우가 많다.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7천원으로 살 수 있는 ‘테러’란 그냥 단순한 흥밋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다.(*씁쓸하지 않은 러시아 영화들도 물론 많이 있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지 않을 따름이다.) 

06.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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