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기의 아나키스트 혁명가 보리스 사빈코프(싸빈코프)의 소설 두 권에 대해서 언젠가 페이퍼를 만든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434756), 보다 자세한 리뷰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6021).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게 해주었다. 책은 조만간 구입하든가 대출하든가 해야겠다. 곧 10월이니까...

연세대 대학원신문(제155호) 일기로 기록된 혁명의 ‘현재 시제’

시나 소설을 창작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 해도 만약 그가 늦은 밤 홀로 있는데 마침 그 날 하루 혹은 인생이 밀도 있게 다가온다면, 일기를 쓸 것이다. 하루를 인생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며 언어를 조금이라도 부릴 줄 아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소한의 미적 행위랄까. 밀도 있게 다가온 일상의 어떤 순간을 망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조바심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더 두꺼워지고 진해질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이 교차하는 일기는, 기억의 형식이라기보다는 기록의 형식이다. 기억의 윤색과 문학적 형상화로 정제된 자서전 혹은 자전소설과 달리, 일기는 사실적 정황이 갖는 날 것의 느낌을 잃지 않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테러리스트의 일기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 러시아 아나키스트 정당인 사회혁명당의 암살단원으로, 께렌스끼 임시 정부의 국방차관으로, 백군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롭신이란 필명으로 테러와 혁명에 대한 많은 소설과 회상록을 남긴 보리스 싸빈꼬프의 소설, 『창백한 말』(1909)과 『검은 말』(1923)은 모두 1인칭 시점의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자에서 일기를 쓰는 주인공은 1905년 혁명 전후의 테러리스트이고, 후자의 주인공은 1917년 혁명 이후 반(反)볼셰비끼 투쟁을 벌이는 백군 사령관이다.

저자 싸빈꼬프의 전기적인 실제 이력이 투영된 이 두 주인공은 활동하는 시기와 명분은 다르지만, 혁명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번민,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살육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공유한다. 두 작품 공히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구는 ‘살인하지 말라’는 성경의 계명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알지 못했고, 사랑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만을 이해하는’ 이 뜨거운 혁명가들에게 살인의 계명은, 지젝이 말하는 자기 지양의 법, 즉 모든 것을 금지하는 동시에 허용하는 법으로 작용한다.

‘살인하지 말라…….’ 이 말이 또다시 나의 뇌리를 스친다. 누가 그런 말을 한 걸까? 왜……? 왜 연약한 영혼에게 그처럼 힘겨운,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을 남긴 걸까?(『검은 말』 중에서)

“바냐, 그럼 ‘살인하지 말라’는?”
“없어, 조지. 살인하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나?”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네. 살인하게, 다른 사람들이 살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살인하게,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사랑이 세상을 밝히도록.”
“그건 신성모독이네, 바냐.”
“나도 알아. 그럼 ‘살인하지 말라’는 신성모독이 아닌가?”(『창백한 말』 중에서)



‘열린 국면’, ‘날 것’으로서의 혁명

혁명을 ‘생성 중인’ 역사적 상황, 그 어떤 헤게모니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중간적 국면’이 열린 단락으로 이해한다면, 혁명의 시제는 ‘현재’일 것이다, ‘일기’는 바로 그런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버린 순간’을 포착하는 현재 시제의 장르이다. 일기는 과거의 시간을 전유하여 현재의 현존으로 과거를 채움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직접적으로 결부시킨다. 이는 혁명가들이 역사를 파악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인민주의, 애국주의, 반볼셰비즘을 넘나들며 당의 강령에 쉽게 매몰되지 않아 동지들에게조차 늘 경계의 대상이 됐던 싸빈꼬프의 궁극적인 투쟁 목표는, 구세력뿐만 아니라 볼셰비끼의 독재에서도 해방된 ‘제 3의 러시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떤 헤게모니에 의해서도 전유되지 않은 혁명의 ‘열린 국면’, 즉 혁명의 ‘현재 시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이상주의적 열망은, 이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일기로 기록하는 혼돈으로서의 혁명(상징적 기표로 다 설명될 수 없는 ‘날 것’으로서의 혁명)에도 투영돼 있다.

물론 그가 지켜내려던 혁명의 ‘열린 국면’은 실정적인 이데올로기적 기획, 즉 볼셰비끼의 독재에 의해 곧 닫히게 되었고, 싸빈꼬프는 러시아 혁명 역사의 승자가 아닌 패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도래한 이 ‘현재’를 경험한 이들의 숭고한 열망은 그것이 결국 실패한 몸짓으로 끝났다 해도, 혁명 이후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원래부터 주어져 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토대가, 사실은 인공적이고 우연적인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전유의 결과는 아닌가 라고. 우리가 현실적인 것으로서 조우하는 현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이 질문은 그저 우연히 한번 만나 단순한 가치판단으로 봉합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의 여러 맥락과 감정의 여러 파고에서 반복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근본적 차원의 질문이다.

혁명은 단순히 불합리한 현실의 전복이 아니라, 현실의 토대 자체가 우연적이고 인위적인 봉합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하는 폭력적인 하나의 행위/사건이다. 『창백한 말』과 『검은 말』의 일기 형식을 통해 싸빈꼬프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모든 이데올로기적인 봉합에 저항하는 날 것으로서의 혁명, 즉 해석이나 통합이 아닌 변혁을 가져오는 행위/사건으로서의 혁명이 아닐까.(김윤하 / 비교문학 박사과정)

07.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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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개봉되는 러시아영화 소식을 빠뜨릴 수 없어서 옮겨놓는다. 지난 2005년 러시아 최고 흥행작 <제9중대>가 문제의 영화이다. 아마도 창고에서 자고 있다가 지난번 아프간 인질사태 때문에 배급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블록버스터이긴 하나 기본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갖춘 영화로 평가되고 있으므로 한번쯤 관람해보시는 것도 좋겠다(사실 그래야 더 많은 러시아 영화가 소개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려를 무시할 수 없기도 하고).

세계일보(07. 09. 15) ''명분없는 전쟁''의 허구 고발… 제9중대

13일 개봉한 ‘제9중대’는 인생의 농익은 즐거움과 성숙의 단계를 맛보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의 바위산 중턱에서 죽어간 옛 소련의 젊은이들이 최후까지 함께했던 전장의 표정을 건조하리만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인간들의 모습을 사실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꿈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이들이 피의 전장을 뒹굴어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명분 없는 전쟁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그동안 우리의 ‘눈맛’을 길들여온 할리우드의 전쟁영화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익숙한 미군 병사 대신 다소 낯선 생김새의 소련군인들이 주인공이다. 총과 군복이 다르고 육중한 헬기의 모습도 영화 속에서 흔히 보아오던 것과 상이하다.

할리우드 전쟁영화 공식과는 달리 하나의 영웅 또는 특정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훈련소에서부터 전장까지 전 부대원들이 겪는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춘다. 삶과 죽음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는 극단의 상황, 그곳에서 꽃피운 전우애, 그리고 희생을 강요받은 작은 개인들의 비운을 영화는 씁쓸히 낭독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9년째인 1988년. 징집에 응한 청년들이 하나둘씩 기차역에 모여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밤 화가를 꿈꾸는 예술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교생실습생, 결혼식을 치른 지 하루 만에 소집되어 온 새신랑, 어린 딸을 둔 가장은 각각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고 훈련소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전쟁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모조리 앗아간다. 지독한 훈련을 거치는 동안 순수한 교사 지망생의 몸은 어느새 살인병기로 바뀌어 간다. 예술가의 손은 이제 붓보다 총이 익숙해졌고, 현실주의자 류타예프는 생존 방법을 부지런히 체득해 나간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9중대 대원들은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모두가 한몸처럼 아끼는 게 살아남는 법이란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9중대의 가장 큰 비극은 주둔지가 본 부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전쟁이 끝나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하고, 고지를 사수하다 무자헤딘의 12차례에 걸친 전면 공격에 전멸해간다.

온통 붉은 빛이 감도는 아프가니스탄의 바위산이 이국적이며 바위에 뚫린 구멍 등 지형지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무자헤딘의 전술이 인상적이다. 영화엔 잔인하고 치열한 전투 장면은 없지만, 명분 없는 전쟁의 허구와 반전의 당위성이 잘 녹아들어 있다. 감독은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키며 극을 끌어가는 재주를 부린다. 제작비 83억원이 들어간 러시아 블록버스터. ‘전쟁과 평화’의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아들인 표도르 감독의 데뷔작이다.(김신성 기자)

07. 09. 17.

P.S. 감독 표도르 본다르추크는 말미에 언급된 대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1920-1994)의 아들인데, 1967년생이니까 러시아판 대작 <전쟁과 평화>를 한창 찍을 때 태어난 셈이다(세르게이는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 역을 맡기도 했다). 표도르는 이제 보니 러시아 TV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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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9-17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는 사실 반전영화라기보다는 '애국주의' 영화로 수용된 감이 있는데 여하튼 편식은 좋은 게 아닌지라 러시아 영화들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주말에 경향신문에 실린 해외칼럼을 읽고서야 주중에 러시아 총리가 교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론의 표현으론 푸틴의 '내각 물갈이'인데, 알다시피 내년 봄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인지라 빅뉴스가 아닐 수 없다. 새로 임명된 Zubkov(주브코프, 주프코프, 줍코프, 주코프) 총리가 대선에 참여할 뜻이 있음을 내비치면서 포스트-푸틴에 대한 전망은 다시 혼전 국면으로 접어든 듯하다(인명 표기가 제각각으로 혼란스러운 것은 새로 바뀐 러시아어 표기법이 익숙한 예전의 표기법과 충돌하고 있어서이다). 국내 언론의 관련기사와 함께 니나 흐루시초바의 논평을 원문과 함께 옮겨놓는다(데일리 타임즈에 실린 원문은 http://www.dailytimes.com.pk/default.asp?page=2007%5C09%5C15%5Cstory_15-9-2007_pg3_3). 필자가 '흐르시쵸바'라고 돼 있지만 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흐루시초프'의 손녀이기도 하므로 '흐루시초바'가 맞는 표기이겠다.

한겨레(07. 09. 14) 주코프, ‘총리’ 이어 이참에 ‘대권’까지?

러시아의 차기 대권 후보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분석됐던 빅토르 주코프(사진) 총리 지명자가 13일(현지시각)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자 구도에 주코프 지명자가 새 변수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제프 제1부총리가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로 꼽혔다.

주코프는 이날 두마(하원) 정당 지도자들과 면담 뒤 대선에 참여할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업적을 쌓는다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드미프리 페스코프 크레믈(크렘린) 대변인은 “주코프 지명자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말의 뉘앙스를 잘 살펴야 할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모스크바타임스> <러시아투데이> 등 현지 언론들은 1999~2000년 초 사이 푸틴의 크레믈 입성 과정과 비교하면서 주코프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점점 무게를 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우선 그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문관료’ 출신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푸틴도 엇비슷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99년 8월 푸틴을 총리로 임명할 당시, 푸틴은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의 전문관료였다.

또 주코프의 대중적 인지도가 낮지만 푸틴 대통령도 잘 알려진 얼굴이 아니었다. 정치 분석가인 오르로프는 “푸틴이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아울러 깐깐한 금융감시자라는 평판을 갖고 있는 그가 반부패 운동을 펼친다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주코프의 대선 출마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푸틴의 ‘2012년 컴백 시나리오’를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주코프가 65살로 고령이고 연임을 노릴만한 정치적 야망이 없는 인물인 점을 고려해 푸틴이 4년짜리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이용인 기자)

조선일보(07. 09. 14) 푸틴 후계자 누구냐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12일 새 총리로 지명된 빅토르 주브코프(Zubkov)가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해 파장이 일고 있다. 13일 아침 국가두마(하원) 의원들과의 상견례로 활동을 시작한 주브코프 지명자는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 여부와 관련, “총리로서 성공한다면 그런(대선 출마) 시나리오를 배제하지 않겠다”며 대권 욕심을 내비쳤다.

지금까지는 주브코프가 내년 5월 푸틴 대통령 퇴임까지 성공적 정권교체를 위한 ‘관리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부패와의 전쟁 등 국정과제를 마무리해야 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재정감시국장 출신 주브코프가 총리에 적임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정치분석가 예브게니 나도르신은 “조세전문가인 주브코프는 푸틴의 권력 이양을 위한 실무형 총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푸틴 후계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1999년 8월 옐친 정부 당시 연방보안국장이던 푸틴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되고 12월 대통령 후보가 됐던 경험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푸틴과 주브코프 지명자의 친분이다. 1991~93년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위원장이었을 때 주브코프는 부위원장이었지만 사제(師弟)지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주브코프는 푸틴을 러시아어 존칭 ‘비(Βы·귀하)’ 대신 ‘티(Τы·너)’라고 부를 만큼, 실세라는 것이다.

러시아 정국에 주브코프 변수가 등장하면서 아직 베일에 싸인 푸틴 대통령의 후계구도는 한층 불투명해졌다는 지적이다. ‘빅(Big)2’인 세르게이 이바노프(Ivanov)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Medvedev) 등 두 명의 제1부총리가 지지율 30%대로 앞서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Peskov) 크렘린 대변인이 8월 말 후계 가능성을 지목한 세르게이 미로노프(Mironov) 상원의장, 보리스 그리즐로프(Gryzlov) 하원의장 등 두 명의 의회 수장(首長)도 후보다. 여기에 주브코프와 야쿠닌(Yakunin) 철도공사 사장 등이 뒤를 쫓는 형국이다.(권경복 특파원)

경향신문(07. 09. 15) [해외칼럼]크렘린의 의자 빼앗기 게임

그 시기가 다시 왔다. ‘의자 빼앗기 게임’처럼 총리가 바뀌면서 러시아의 예비 선거철이 시작됐다. 가장 마지막에 총리직에 앉는 사람이 아마도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다. 보리스 옐친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때 적어도 6명의 총리를 갈아 치웠다. 러시아의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뿐 아니라, 옐친 패밀리와 재임기간 동안 그가 축적한 재산의 안전을 보장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장 마지막에 총리직에 앉은 사람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이제는 푸틴의 차례다. 미하일 프랏코프 총리를 해임시키고 재임 기간 내내 자신에게 봉사했던 내각을 해산시켰다. 12월에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와 내년 3월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1999년 옐친은 FSB(옛 KGB)의 수장으로 무명이었던 푸틴을 선택했다. 푸틴도 옐친과 마찬가지로 빅토르 주프코프 연방 재정감시국장을 총리로 끌어 올렸다.

이런 유사성에도 두 사람의 선택에 숨어있는 이유는 달라 보인다. 옐친이 푸틴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전직 KGB 스파이였지만 심장은 민주주의자라는 믿음이 바탕이 됐다. 푸틴은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민주 시장인 아타톨리 쇼브차크 밑에서 일했다.

KGB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푸틴이 베레조프스키를 국제적 악인으로 만들고, 미디어 모스트 그룹 회장이었던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를 추방하고, 석유 재벌인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를 감옥에 집어 넣었을 때 옐친과 베레조프스키를 빼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푸틴이 총리직을 놓고 벌이는 게임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다. 그는 크렘린을 떠나면 추방되거나 무덤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탈린이 죽은 레닌을 격하시켰고,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을 비난했다. 브레즈네프는 흐루시초프를 자신의 별장으로 추방했다. 고르바초프는 체르넨코를 매장했다. 유독 옐친만 달랐다. 옐친은 고르바초프를 싫어했지만 점잖게 대했다. 물론 푸틴도 은퇴한 옐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푸틴은 단순히 옐친을 무시했다.

주프코프의 지명 전에 언론은 푸틴의 대통령직을 승계할 차기 총리로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현 부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강력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라는 푸틴이 이바노프를 임명했다면 권력은 이미 누수가 시작될 것이다. 프랏코프는 사임 이유를 밝히며 이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 주프코프를 임명한 것은 계속해서 러시아의 절대권력을 쥐고 싶은 푸틴의 의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주프코프의 전직인 연방 재정감시국장직은 필요하면 제2의 베레조프스키 등을 탄생시키며 잠재적인 모든 적들과 경쟁자를 감시할 수 있는 정보라는 재산을 끌어올 수 있게 해준다. 유일한 관심은 주프코프나 다른 총리가 성공적으로 ‘차르(황제) 대통령’을 그의 경쟁자들이 행했던 것처럼 실각시키는 데 성공할지 여부다.(니나 흐르시쵸바 / 뉴욕 뉴스쿨 국제관계학)

Kremlin Musical Chairs

It’s that time again - Russia’s pre-election season when prime ministers are changed as in a game of musical chairs.The last one seated, it is supposed, will become Russia’s next president.

As the end of his rule approached, Boris Yeltsin went through at least a half-dozen prime ministers, looking for the one who would ensure the security not only of Russia’s new democracy and market economy, but also of his "family" and the wealth that it had accumulated during his rule.The last man seated then was, of course, Vladimir Putin.

Now it is Putin’s turn to call the tune, dismissing Mikhail Fradkov and dissolving the government that had served him throughout his second term in order to prepare for the parliamentary elections looming in December and the presidential ballot in March 2008.In 1999, Yeltsin picked Putin, who was then the little-known head of the FSB (formerly the KGB).Putin chose to elevate the equally mysterious Victor Zubkov, head of the Federal Financial Monitoring Service (also known as the "finance espionage" agency).

Despite that similarity, the reasoning behind these choices appears to be somewhat different.Yeltsin’s choice of Putin - encouraged, ironically, by Boris Berezovsky, the prominent Russian oligarch and Yeltsin advisor who is now exiled in London as Putin’s mortal enemy - was based on his belief that the quiet apparatchik, even if a former KGB spy, was a democrat at heart.After all, Putin had been a proteg? of Anatoly Sobchak, the liberal mayor of St.Petersburg as communism collapsed.

A security services insider, Putin was seen as well placed to protect Yeltsin and his oligarchic allies.Indeed, Berezovsky intended to continue ruling the country from behind the scenes, first as Yeltsin’s health failed in the final months of his presidency, and then by controlling the successor he had helped to choose.

In Russia, however, the KGB is famous for turning the tables in any struggle with the Kremlin apparat.So no one but Yeltsin and Berezovsky was surprised when Putin, their supposed marionette, began pulling the strings.And pull them he did, turning Berezovsky into an international villain, exiling former media mogul Vladimir Gusinsky, jailing the oil magnate Mikhail Khodorkovsky, and eventually imposing a new authoritarian regime behind the fa?ade of Yeltsin’s democratic institutions.

Putin’s own game of prime ministerial "musical chairs" does not reflect a desire to secure for himself a quiet position behind the scenes while someone else rules, for he knows all too well that the path from the Kremlin leads only to inner exile and the grave.Stalin replaced the dying Lenin, Khrushchev denounced Stalin, Brezhnev banished Khrushchev to his dacha, and Gorbachev buried Chernenko.

Only Yeltsin did things differently.He disliked his predecessor, Mikhail Gorbachev, as much his predecessors disliked their predecessors.But all the same he treated Gorbachev in a more decent manner because Yeltsin fundamentally believed in democracy.So he left Gorbachev a private life that could also be lived in public.Putin, of course, did not accost the retired Yeltsin, but he didn’t have to.He simply ignored him while reversing his achievements in building a free Russia.

Before Zubkov’s nomination, reports swirled that the next prime minister would become Putin’s presidential successor, with Sergei Ivanov, a current deputy prime minister, dubbed the most likely candidate.But Ivanov, who is perceived as "strong," would provide unwelcome competition to Putin, who, after all, remains a "strong" president.Had he anointed Ivanov now, Putin’s power would already begin seeping away.

The outgoing Fradkov, surprisingly, put the matter best when he explained why he had resigned: with elections approaching, Putin needed a free hand.So Zubkov’s nomination allows Putin to continue to keep his cards - and thus ultimate power in Russia - close to his chest.

Of course, Zubkov will continue Fradkov’s "Yes, whatever you say Mr.President" management style.Moreover, his former position as head of the Federal Financial Monitoring Service will allow him to draw on a wealth of information to keep tabs on all possible enemies and competitors, perhaps turning them into new model Berezovsky’s, Gusinsky’s and Khodorkovsky’s, if necessary.

The only question now is whether Zubkov, or his successor, will eventually succeed in turning Czar Vladimir into the same sort of non-person that Putin’s rivals have become.

07.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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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9-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ubkov. 실재 러시아말소리에 가장 가깝게 한국말로 표기하면 어떻게 되나요?

로쟈 2007-09-1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줍코프'일 겁니다. 뭐 이것도 더 들어가면 '줍꼬프'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테지만...
 

러시아 제일의 갑부가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것 정도는 퀴즈문제에 나올 만한 상식이다. 하지만 두번째는? 여기부터는 '상식밖'일 텐데, 나도 아래의 기사를 읽으며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올렉 데리파스카(1968- )이고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이라는 루살의 '오너'이다. 얼마전 GM 지분을 5% 인수한 것과도 관련해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이 '잘 나가는' 올리가르흐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러시아의 올리가르히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91634 참조).

 

조선일보(07. 09. 01) '포스트 푸틴’ 대비책? 영국行 엑소더스 논란 

크렘린의 지지를 업고 혜성처럼 떠오른 ‘러시아의 철강왕’ 올레그 데리파스카(Oleg Deripaska·39)가 이번에는 영국으로의 ‘엑소더스’(exodus·대탈출) 논란에 휩싸였다. 혹시 모를 권력의 변덕과 포스트 푸틴 체제에 대한 방어책으로 자산 전체를 영국으로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 루살(RUSAL)의 오너(owner)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이은 러시아 2위 갑부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외손녀의 남편으로, 푸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소치 공항을 통째로 인수해 대대적인 재건축에 나서며 러시아의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데리파스카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인 것은 런던 고급 주택가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일찌감치 사놓은 저택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인수해온 유럽 기업들 지분에, 올해 말로 점쳐지는 루살의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이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루살은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경우 90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데리파스카가 굳이 러시아를 탈출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여전히 푸틴이 가장 신임하는 올리가르히(Oligarchy·러시아 신흥재벌)다. 또 그는 전직 오너가 탈세 혐의로 재판 중인 석유기업 루스네프트(Russneft)의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크렘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영국인 거부가 될 수 있다는 건 달콤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그 역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등 걸출한 올리가르히들의 몰락을 눈앞에서 지켜봐 왔다(*아래는 철창의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그룹의 회장이었던 그는 러시아 최대의 갑부였다).

성공적으로 서방 미디어의 보호막 안에 들어선 아브라모비치의 선례도 있다. 포스트 푸틴 체제는 언젠가 다가올 현실이고, 푸틴 아래서 누렸던 특혜는 다음 정권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데리파스카는 자신의 엑소더스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일축한다. 그는 루살의 기업공개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주주들이라며 “나는 부끄러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데리파스카는 1990년대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알루미늄 전쟁’의 최후 생존자라 할 수 있다. 권력과 마피아가 동원된 이 혈투에서 알루미늄 업자들은 기습과 암살을 주고받았고, 살해된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른다.



모스크바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던 데리파스카는 1992년 국유 재산 민영화의 격동기에 시장 경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알루미늄 매매 시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당시 알루미늄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계 금속기업 트랜스월드그룹(TWG)의 러시아 대리인 미하일 체르노이와의 만남이었다.

체르노이는, 이재에 밝고 수완을 갖춘 푸른 눈의 이 청년을 알아봤고, 시베리아 남동부 사얀스크(Sayansk)의 알루미늄 공장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데리파스카는 훨씬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데리파스카는 1998년 트랜스월드그룹의 뒤를 봐주던 정치인의 실각과 체르노이 형제 간 불화로 회사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비밀스러운 증자를 추진했고, 결국 사얀스크 공장의 경영권을 빼앗았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트랜스월드그룹의 오랜 독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알루미늄 업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애국심을 이용한 선전도 곁들였다.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에 대한 강탈은 이미 충분하다”며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던 트랜스월드그룹을 공격한 것이다. 자신은 3년 내에 주식을 공개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1999년 크렘린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트랜스월드그룹이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고위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발표하며 그간의 특혜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타격을 입은 트랜스월드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공장들을 인수하며 세력을 넓혀 나갔고, 결국 알루미늄 기업 연합인 루살 회장에 오를 수 있었다.

흑해 연안 크라스노다르(Krasnodar) 지방의 전통 마을에서 태어난 데리파스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와 친척들 집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삶의 어려움은 재앙이 아니다. 홍수가 있으면 뛰쳐 나가서 맞서면 된다”는 말로 당시 생활을 표현했다. 후에 데리파스카는 정략결혼에 예기치 않은 행운을 더해 수직 신분상승을 이루게 된다.



2001년 2월 데리파스카는 옐친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발렌틴 유마셰프의 딸과 결혼했다. 그런데 8개월 뒤 장인 유마셰프가 옐친 전 대통령의 딸인 여장부 타티야나와 재혼했다. 데리파스카는 하루 아침에 옐친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푸틴에 대해 “러시아의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이끄는 최고 관리자이다. 그는 똑똑하고, 적절하고, 그의 권위는 한계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푸틴은 그런 그에게 “국가에 이바지한 경제인”이라고 화답한다.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데리파스카는 몰락한 올리가르히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성적인 행동보다 룰렛 게임에 돈을 걸던 무능력한 무리는 제거됐다. 죽거나 아니면 노동 캠프에 가거나.” 데리파스카의 엑소더스를 둘러싼 논란은 서방 언론들의 푸틴 공격과 맞물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선정민 기자) 

07.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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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컬트여행지' 연재에서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편을 옮겨온다. 중부 시베리아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광활한 지역인데, 나는 막연하게 시베리아의 한 도시 정도의 표상만을 갖고 있(었)다. 대학 1학년 때인가 러시아어 교재에서 유독 '크라스노야르스크'란 지명이 자주 등장했고, 그때 갖게 된 이미지이다. 이후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지명인데, 레닌박물관과 수리코프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됐다. 경관이 수려하다. 

경향신문(07. 08. 30) [세계의 컬트여행지](20)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베리아라는 지명을 듣는 순간,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란 사실 학창 시절 배운 세계지리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토의 땅 툰드라와 침엽수림지대인 타이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땅 정도. 조금 더 머리를 굴려보자면 19세기에 정치범들의 유형지였다는 정도일 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도 시베리아에 관한 정보란 요즘 여행객들이 찾는다는 바이칼 호수와 노보시비리스크,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 도시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목적지였던 시베리아 중앙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에 관한 정보라고는 예니세이강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 3대 수력발전소 중 하나라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아마도 건설될 당시의 랭킹인 듯하다. 현재는 8위 이하로 떨어져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은 이렇듯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이 일대는 대형 신석기시대의 묘, 신석기인들의 사냥감인 동물과 훈족의 모습까지 새긴 샬라볼리노 마을의 암각화, 한때 레닌이 유형생활을 했던 슈센스코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는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다.



신석기부터 레닌까지 인류의 역사가 남아있는 대평원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 내린 순간 ‘여기가 시베리아로구나’를 단연 실감케 했던 것은 서늘한 바람과 맑은 공기였다. 서울의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량한 공기. 게다가 높고 푸른 하늘 아래로 시계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밀밭, 검붉은 땅 위에 수직자세로 선 자작나무들은 이국의 여행자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은 러시아연방공화국을 형성하는 6대 지역 중 하나로 동서 길이는 1250㎞, 남북 길이는 3000㎞에 달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에는 하카시아공화국과 에벵키 자치구, 타이미르스키 자치구가 포함돼 있으며 스텝과 타이가, 툰드라, 극지사막 등 다양한 지형이 나타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남부 일대는 시베리아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거대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예니세이강을 따라 크라스노야르스크 남부지대로 향했다. 하카시아공화국에 들어서자 드넓은 초지에 검붉은 거석이 드문드문 서 있는 모습이 영국의 스톤헨지를 닮았다. 가까이서 보면 어른 허리께 정도 오는 작은 돌들이 대부분으로 스톤헨지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10m가 넘는 거석도 있다고 한다. 낮은 구릉 위에 원형 혹은 방형으로 검은 돌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역시 신비스럽다.

이들은 고대 무덤인 쿠르간의 범위를 표시하기 위한 일종의 지표석이다. 기원 전 10세기쯤 이 땅에 형성된 시베리아-스키타이 계열의 타가르 문화의 산물이다. 스키타이족들은 시신을 넣은 목관 위에 돌을 쌓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덮은 뒤 큰 돌로 무덤의 경계를 표시했던 것이다. 무덤을 발굴한 결과 많게는 20여 명이 함께 묻히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무덤은 하카시아공화국뿐 아니라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남부 일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베리아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미누신스크 박물관에 가면 하카시아공화국과 투바 공화국, 미누신스크 분지 등에서 발견된 토템 신앙과 거석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살아있음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은 쿠르간뿐 아니라 암각화에서도 확인된다. 전형적인 러시아의 농촌마을 샬라볼리노에 가면 기원 전 7000년쯤부터 기원 후 14세기까지 이 땅을 스쳐간 인간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을 뒤편 투바강을 따라 3㎞가량 형성된 샬라볼린스키 암각화에는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던 신석기인들의 바람이 담긴 사슴과 무스 등의 형상에서부터 시베리아를 따라 유럽으로 진출했던 훈족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소녀들과의 만남

기록에 대한 열망이 인간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열망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암각화를 보며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푸른 눈에 금발머리를 한 소녀들이 내 팔을 잡고 학교에서 배운 초보자 수준의 영어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아냐고요, 얘는 마리냐, 얘는 야냐예요. 우린 11살이에요.” 묻지도 않았는데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한 소녀들은 한 명씩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고 내 이름을 물었다. 시베리아에서도 깊숙이 박힌 오지에 사는 금발소녀들에게 검은 머리의 이방인은 아주 신기하고 낯선 존재인 모양이다. 별 것 아닌 질문과 대답에도 러시아어로 속닥이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찾았던 문화재 발굴 현장의 일꾼이었다.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만 알던 암각화의 훼손이 심해지면서 최근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펼치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발굴 작업을 도왔다. 내가 방문하기 하루 전 찾았다는 사슴 암각화도 소녀들의 눈썰미 덕택에 발견했다고 했다.

때묻지 않는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은 수천년을 이어온 문화재를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대화를 나눴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보내 달라기에 e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말에 아이들은 정성들여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그러나 수첩을 건내받은 후 e메일 주소가 아니라 러시아 알파벳을 필기체로 쓴 우편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사와는 무관한 듯 오지에 사는 아이들은 인터넷을 몰랐던 것이다. 한 아이는 기념품이라며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력발전소가 새긴 10루블짜리 지폐까지 주었다. 카메라만 달랑 메고 이곳을 찾은 내겐 마땅한 답례품조차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하나하나 나를 껴안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났는 데도 아쉬웠던지 네 명의 소녀들은 내 양 팔짱을 끼고는 버스 앞까지 배웅을 해줬다. 버스에 있던 가방에서 쓰던 색연필이라도 줄까 싶어 챙기는 사이, 어느새 아이들은 잰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카메라로 마구 찍어댔던 어떤 시베리아의 풍경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대치 않았던 러시아 소녀들의 따뜻한 환대에 여행길 내내 감동했다. 척박하고 황량하다는 시베리아에 대한 인상은 이 소녀들로 인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아직 아이들에게 사진을 부치지는 못했다. 이번 주말엔 꼭 사진과 함께 그들이 모르는 미지의 나라, 한국을 떠올릴 만한 선물 몇 가지를 넣어 소포를 부쳐야겠다.

▲여행길잡이

크라스노야르스크로 들어가려면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야 한다. 과거 인천~크라스노야르스크간 직항이 있었지만 현재는 중단됐으며, 크라스노야르스크와 중국 베이징을 연결하는 노선이 있다. 베이징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기차로 하카시아공화국이나 투바공화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차는 한국과 1시간이 난다. 위도가 높아 여름에는 백야현상이 나타난다. 숙소의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다. 여름철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숙소가 다반사이며 호텔의 수준은 열악하다. 좀더 시골로 들어가면 ‘푸세식’ 화장실은 기본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갈 것.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에는 레닌기념관과 화가 수리코프의 박물관이 있다. 슈센스코에는 레닌이 유형 당시 거처하던 집과 19세기 말 시베리아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시베리아 민속박물관이 있다.(크라스노야르스크|글·사진 윤민용기자)

07.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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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7-09-01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언젠가 로쟈 님께 한 번 러시아 여행을 위한 '준비물'들을 슬쩍 여쭤볼 참이었는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로쟈 2007-09-01 19:32   좋아요 0 | URL
준비물이란 게 지역과 기간(계절)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날 듯합니다...

드팀전 2007-09-0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아이 업고..tv를 켰더니 상트페테르부르그 가 나오더군요.걸어서 세계여행이라는 프로였는데..별 구성없었지만 그림이 워낙 좋으니 볼만하더군요.소제목이 햐얀밤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그..뭐 이런 식이었습니다.여름궁전,겨울궁전,그 도시와 함께 이웃에 있는 푸시킨시,무슨 섬에 있는 나무로만 만든 성당 '예수변모성당'이라나...그리고 공연물들,유명 예술인들의 묘지,빅토르 최가 묻힌 공동묘지 등등...로쟈님 생각이 나더군요.^^

로쟈 2007-09-01 19:32   좋아요 0 | URL
가볼 만한 도시들이긴 합니다.^^

소경 2007-09-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베리아 문화에 관심이 가네요. 북동아시아 청동기 문화에 연을 갖는지 관심 갖을 만한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계속 공부하다 언제간 찾을 날도 있을 것 같아, 꿈꾸며 잘읽었네요. ^^

로쟈 2007-09-01 19:33   좋아요 0 | URL
요줌 이 지역의 발굴기사가 많이 나더군요...

2007-09-02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02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