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더없이 불신에 찬 마중을 받았다. 트럭의 엔진 소리가 그들보다 앞질러 갔으므로 촌락의 주민들은 벌써 길가로 쏟아져나와, 커브를 돌 때마다 기어가 부서질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닷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황량한 길의 끝에서 마지막 커브를 돌려고 트럭이 잠시 주춤하는 순간, 양쪽에서 두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문 옆의 발판을 딛고 뛰어오르더니 벌채용 칼을 안으로 휙 들이댔다. 놀란 수잔이 핸들을 틀며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하마터면 협곡으로 곤두박질칠 뻔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두려움도 읹은 채 수잔은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험악하게 문을 열어젖히는 기세에 한 사내가 땅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녀는 양손을 옆구리에 얹고서 서슬이 퍼런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사내는 얼이 빠진채 일어났다. 저 하얀 피부의 여자가 자신에게 질러대는 소리는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지만 세뇨라 블랑카가 머리끝까지 화가 뻗친 것만은 분명했던 것이다. 후안도 차에서 내렸다. 그는 훨씬 차분하게 수잔과 자신이 그들의 땅에 온 까닭을 설명했다. 잠시 웅성웅성하더니 칼을 들이댔던 촌부 한 명이 왼팔을 쳐들었다. 열 명쯤 되는 주민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형성된 그룹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토론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는 격해져만 갔다. 수잔은 보다 못해 트럭의 보닛 위로 기어올라가 클랙슨을 울리라고 후안에게 지시했다. 후안은 웃으며 클랙슨을 울려댔다. 허스키한 음조의 경적 소리에 덮여 토론의 목소리들이 차츰 사그라들고 주민들은 모두 수잔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짧은 스페인어를 최대한으로 구사해서 그들의 촌장으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여기에, 덮을 것, 먹을 것, 약품들을 가지고 왔어요. 당신들이 이것들을 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핸드브레이크를 풀어 트럭을 골짜기에 처박고 걸어서 돌아갑니다!"

그러자 한 여자가 조용히 군중을 가르며 나왔다. 여자는 트럭의 머리 앞으로 와 서더니 성호를 그었다. 수잔이 발목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보닛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여자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곧 옆에 있던 다른 남자도 손을 내밀었다. 수잔은 군중을 노려보듯 쳐다보며 차 뒤의 후안에게로 갔다 .주민들은 천천히 물러나면서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후안이 트럭위로 뛰어올라 그녀와 함께 포장막을 벗겼다. 촌락 전체가 꼼짝도 않고 쥐둑은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수잔이 담요 한 뭉치를 꺼내서 땅 위로 던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왜 저러는 거야, 제기랄!"

 "세뇨라!" 후안이 말했다.

"당신이 가져온 것은 저들에게 너무 과분한 거예요. 저들은 당신도 뭔가를 원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기들은 받은 대가로 당신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요."

"그럼 저들에게 말해.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짐 내리는 일을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말야!"

"세뇨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그럼 간단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평화단 완장을 두르세요. 그리고 당신이 땅에 내던진 담요 한 장을 주워서 아까 성호를 그은 여자에게로 가세요. 그 여자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세요."

수잔은 후안이 시키는 대로 여자의 등을 담요로 감싸주고 그녀의 눈을 깊이 응시하면서 스페인어로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오래전에 당신에게 가져왔어야 했던 것을 드리려고 왔어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테레사는 두 팔로 수잔을 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남자들이 환호를 지르면서 트럭으로 몰려가 안에 든 것들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후안과 수잔은 마을 사람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밤이 되자 커다란 횃불이 밝혀지고 간소한 식사가 차려졌다.

저녁이 얼마간 무르익었을 때, 어린 사내아이가 그녀의 등뒤로 다가왔다. 수잔은 아이의 존재를 느끼고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재빨리 도망쳤다. 얼마 후 아이는 다시 나타나 좀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녀가 다시 눈길을 주자 아이는 또 달아났다. 그 놀이가 몇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아이는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수잔은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았다. 꼬질꼬질 때가 낀 얼굴이지만 흑옥처럼 까만 동공, 아름다운 두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는 손바닥을 위로 하고서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의 눈이 그녀의 손과 얼굴 사이를 방황하더니 작은 손이 살며시 다가와 그녀의 검지손가락을 쥐었다. 아이는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했다. 그리고는 작은 팔이 그녀를 당기며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팔이 인도하는 대로 가옥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갔다. 어느 울타리 앞에서 발을 멈춘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대면서 그녀에게 소리내지 말라고 신호하고 무릎을 굽히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갈대 울타리에 난 구멍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시범을 보이듯이 구멍에 눈을 대는 시늉을 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수잔은 살며시 구멍으로 다가갔다. 이 어린 녀석이 그토록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 난 거기서 회저병으로 한쪽 다리가 썩어 죽어가는 다섯살짜리 여자애를 봤어. 홍수가 나 그들의 마을 일부가 흙탕물에 떠내려갔을 때 아이는 잘린 나무 줄기에 매달려 표류하고 있었는데, 한 사내가 실종된 딸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매다가 파도 위로 허우적대는 작은 팔을 발견했대. 그는 죽음에서 아이를 건져내 어린 몸뚱이를 품에 안았고, 두 사람은 암흑 속에서 그렇게 몇 킬로미터를 떠내려갔어. 감각이 마비되고 급류의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삼켜지면서도 머리를 쳐들고 한 줌의 공기라도 마시려고 마지막 힘까지 다하다가 그들은 의식을 잃었어. 날이 밝고 사내가 깨어났을 때 그의 곁에는 아이가 누워 있었어. 둘 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살아 있었던 거야. 그런데 놀랍게도 사내가 구한 아이는 그의 딸이 아니었어. 그 자신의 피붙이는 영영 다시 찾을 수 없었지.

밤새도록 긴 대화를 나눈 끝에 그는 우리에게 아이를 맡기는데 동의했어. 아이가 그 고달픈 여정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산 위에 남는다 해도 그 애는 며칠을 넘기지 못할 상태였거든. 나는 한두 달 후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오겠다. 트럭에 물건을 가득 싣고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그에게 약속했어. 그는 다른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이별이라는 희생을 감수했어. 비록 내 주장이 옳았다 할지라도 그으 ㅣ눈에 비치는 내가 너무도 더럽게 느껴졌어.

지금 우리는 산 페드로 술라에 돌아와 있어. 아이는 여전히 생사의 기로에 있고, 나 역시 녹초가 됐어. 필립, 참고로 한마디 하겠는데, 후안은 내 조수야. 그 머저리 같은 암시는 뭐야? 난 캐나다의 휴가촌에 놀러 와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널 안고 싶어.        

                                                                                                                                                                          수잔

...중략....

1975년 11월 며칠인지 모를 어느날, 나의 필립에게

편지를 쓴 지 벌써 여러 주일이 흘렀네. 하지만 여기서는 시간이 좀 다르게 흘러. 내가 어느 편지에선가 이야기했던 여자아이 생각나? 그애를 새아빠에게 데려다줬어. 아이의 다리는 소생시킬 수 없었어. 그래서 아빠가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걱정스러웠어. 푸에르토 코르테스의 병원으로 그애를 찾으러 갈 때 후안도 같이 갔어. 후안은 닷지의 짐칸에 밀가루 포대들을 깔아서 그애를 위한 매트리스를 만들어줬어.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이는 복도 구석에서 들것에 누운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난 되도록 절단된 부위를 보지 않으려고 그애의 얼굴만 쳐다봤어. 존재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에 집착할 까닭은 없잖아. 잘되어가는 것을 사랑하지 않고 왜 구태여 나빠지는 것에 더 무게를 두겠냐고, 안 그래?

하지만 아이가 저 무거운 핸디캡을 안고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걱정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후안이 내 침묵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내가 아이에게 말을 걸기 전에 내 귀에 속삭였어.

"아이에게 당신의 고통을 보이지 말아요, 세뇨라. 당신은 기뻐해야돼. 저애가 당신과 다른 것은 다리가 잘렸기 때문이 아니에요. 저애가 살아온 역사, 저애의 생존이 다른 거예요."

그 말이 옳았어. 우린 아이를 포대 위에 눕히고 산길로 떠났어. 돌아오는 동안 후안이 내내 그애를 보살폈지. 후안은 아이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그리고 아마도 나를 긴장에서 풀어줄셈으로 그랬겠지만, 틈만 나면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흉내내며 날 놀렸어. 닷지는 사실 나한테 너무 무거울 뿐 아니라 산길에서는 자기가 나보다 힘세다는 사실을 일 킬로미터마다 증명하려고 하거든. 7톤이나 나가는 녀석이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는듯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고! 후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 팔을 앞으로 뻗고는 똥 씹는 표정을 연달아 지어대면서 내가 커브를 틀려고 기를 쓰는 모습을 따라했고, 거기다 내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무슨 소린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코멘트까지 곁들여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어.

그렇게 여섯 시간쯤 달렸을 때, 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시동을 꺼뜨렸어. 난 욕을 하면서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어. 너도 알다시피 내 더러운 성질이 어디 가겠어? 후안에게는 놓칠 수 없는 호재였지. 그는 당장에 욕을 메들리로 엮어 뱉으면서 내 핸들이라고 여겨지는 상자곽을 두드려대는 시늉을 냈어. 그러자 여자애가 쿡 웃음을 터뜨렸어. 처음에는 어린 소녀답게 귀여운 톤으로 짧게 두 번 쿡쿡 웃었어. 제 딴에는 참은 거였지. 하지만 곧 목구멍이 터지고, 한 번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어. 트럭이 온통 그애의 자지러지는 탄성으로 채워졌어. 한 아이의 웃음이 내 삶에서 느닷없이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난 백미러로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쳐다봤어. 그 작열하는 웃음은 이미 후안에게 전염돼 있었어.

어쩌면 이날 나는 우리 부모의 무덤가에서 네가 나를 안아줬을 때보다도 더 격렬한 오열을 터뜨렸는지도 몰라. 차이가 있다면 이날은 내가 속으로 울었다는 거야. 거대한 생의 기쁨, 희망이 용솟음치는 순간이었어. 난 그들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속에서 후안이 내게 미소짓는게 보였어. 언어의 장벽은 간단히 무너졌지..

(중략)

롤란드는 저 아래 계곡에서 트럭이 구불구불한 산길로 진입할 때부터 그것을 알아봤다. 그는 당장 일손을 멈추고 바위에 앉아서는 다섯 시간 동안 굼뜨게 올라오는 트럭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장장 13주 동안이나 기다려온 터였다. 그는 혼자서 묻고 또 물었다. 아이가 살아 있을까, 저 하늘에 나는 새는 혹시 그애의 죽음을 알리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히망의 소식을 물고 날아왔는지도 모르지.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에게는 주변의 가장 단순한 사물까지도 점점 더 의미심장한 징후로 보였으므로 그는 순간의 기분에 따라 비관적인 또는 낙관적인 징조를 읽는 의식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수잔은 허스키한 클랙슨 소리를 세 번 울렸다. 롤란드에게 그것은 좋은 징조였다. 긴 경적소리는 최악을 알리는 것이야. 짧은 세번은 희소식을 전하는 게 틀림없어.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밤색 팔라디네스 갑을 풀었다. 이 담배는 그가 한나절 내내 피운 도라도스보다 훨씬 비싼 것이었다. 보통땐 저녁식사 후 하루에 한 개비밖에는 뽑아들지 않을 정도로 아끼는 담배를 입에 물고서 그는 성냥을 그었다. 한 모금 깊이 빨았다. 이어서 그는 흙냄새와 소나무 향이 밴 축축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끝이 빨갛게 타들어가도록 담배를 빨았다. 오늘 오후에는 이 팔라디네스 한 갑이 다 비워지리라. 초조해하지 말자. 저들은 해가 떨어질 무렵에나 고개를 넘을 테니까.

산골의 농부들은 죄다 마을 어귀로 나와 길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트럭에 뛰어올라 칼을 들이대지 않았다. 수잔이 속도를 늦추자 그들은 차 주위로 몰려왔다. 수잔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들 하나하나를 당당히 받으면서 좌우로 그들을 둘러봤다. 후안도 땅을 울리며 두 발로 뛰어내려서는 짐짓 의연함을 보이려는 자세로 그녀 뒤에 버티고 섰다. 롤란도가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피우던 꽁초를 휙 내던졌다.

수잔은 심호흡을 하고 닷지를 빙 돌아 뒤쪽으로갔다. 군중의 시선도 일제히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롤란도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안혹 있었다. 수잔이 힘차게 포장막을 젖히고 후안과 함께 트럭 아래로 판자를 내리자 그들이 데려온 작은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는 한쪽 다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두 팔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남자를 향해 활짝 벌어졌다. 롤란도는 트럭 위로 올라가 아이를 안아올렸다. 그가 아이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소곤대자 아이가 웃었다. 그는 아이를 트럭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혀 키를 낮추고 아이를 부축했다. 몇 초간 침묵 속에서 지켜보던 군중이 저마다 공중으로 모자를 던지며 하늘을 찌를듯이 함성을 내질렀다. 수잔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너무도 허약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후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거 놔."그녀가 말했지만 그는 더 꽉 잡으면서 "고마워"하고 말했다.

롤란도가 아이를 한 여자에게 맡기고 수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수잔의 얼굴로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고는 우렁차게 후안을 행해 무렁ㅆ다.

"이 여자 이름이 뭐요?"

후안은 그 위압적인 체구의 사내를 잠시 훑어보다가 대답했다.

"저 아래 계곡에서는 모두 세뇨라 블랑카라고 부르지요."

롤란도는 이제 의기충천한 걸음으로 후안에게 가더니 묵직한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깊은 골이 파인 촌사내의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면서 입이 헤벌쭉 벌어지더니, 듬듬성 빠진 이가 드러나며 거대한 미소가 피어났다.

"도나 블랑카!('도나'는 고귀한 여성에게 붙이는 존칭-옮긴이) 이 롤란도 알바레즈는 앞으로 그녀를 이렇게 부를거요!"

그가 외쳤다.

롤란도는 후안을 끌고 마을로 들어가는 돌길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밤 그들은 코가 삐뚤어지게 구아호(온두라스의 대중적인 술- 옮긴이) 를 마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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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그로밋 >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품절


"자네가 보내 준 글 말인데...." 그가 문득 생각난것처럼 말했다.
"그 글을 읽으면,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하루는 길거리에서 웬 낯선 사람이 어머니에게 다가오더니, 사뭇 상냥하고 우아한 어조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칭찬했지. 어머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머리카락이 다른 부위보다 특히 돋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네.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의 칭찬 덕분에 어머니는 그날 온종일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매만지고 치장하고 감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자네 글도 나한테 꼭 그런 역할을 해주었어. 나는 오후 내내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을 찬탄했다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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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쓰자 10시쿠폰!

열시에는 쿠폰 받는걸 까먹고,

밤에는 쿠폰 쓰는걸 까먹고, 그러고 며칠이다. 이눔의 건망증 같으니라구.

사야할 책은

 두둥

 

 

 

  역시 같은 작가의 라틴 아메리카 소설의 이해

 

 

 

오늘 잔뜩 도착해서 좀 쉬었다 사고 싶긴 하지만,

... 방금 책장정리를 시작했다. 좀 ... 사도 되지 않을까?

 카레를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는 일본소설이라.

 

 

 

 음. 일단 풍월당을 읽어야 겠지만, 생각난김에, 상품권 받은김에

 

 

 

 무엇보다도 이 책이 너무 사고 싶다.

 

 

 

 

 그렇게 재미있다고들 하시니.

 

 

 

 

 영혼의 마법사는 무슨 내용일지 짐작도 안감.

 

 

 

 

 살까말까 고민인데, 가뜩이나 머리나쁘고 아는거 없는데, 번역의 문맥마저 안 맞는다면 안 읽느니만 못할 것 같아서 계속 고민중 -_-a

 

 

 

 두 개 중에 한 개만. 아마도 계속 미루어오던 '일상예찬'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눈에 들어 온 '라파엘전파'를 사지 싶다.

 

 

 

 

 

 

 

헥헥 오늘은 여기까지.  -0-

알라딘상품권리뉴얼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상품권이 50,000원이다.

안받은척 하고 호크니의 책 지른다. 흠흠 .

근데, 그걸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기뻐할 수 만은 없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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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5-05-0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 하이드님 아니면 저도 깜빡할뻔 했어요...

울보 2005-05-0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하이드님이시다,,,

하이드 2005-05-05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껀 역시 주문 못했어요 -_-+
11시 59분이었는데 우어어어어어

실비 2005-05-05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당첨 되셨군여. 축하드려염~ 저 책들 우와... 많다.^^

panda78 2005-05-0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아- 또 책을 한아름! ^ㅁ^

명화의 비밀은 몇 년 동안 별렀더니 이제는 욕심도 안 나는군요. ㅎㅎ

일상예찬이랑 라파엘전파는 다 빌려서 읽었는데
두 책 다 좋았어요. 다만 라파엘전파에 있는 그림들이 훨씬 화사하긴 하더군요. ^^;;

하이드 2005-05-0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명화의 비밀. 오늘 진중권 책 읽다가 카메라 옵스쿠라 읽으면서, 어, 이거이거 호크니, 호크니! 혼자서 발광하는데, 몇장 넘기니 아니나 다를까 나오더군요. 다른 더 사고 싶은 책 생기기전에 책 닫고 당장 샀습니다. ㅎㅎㅎ

로드무비 2005-05-0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00원, 2500원 티켓의 농간에 우리가 너무 놀아나는 것 같아요.^^;;

하이드 2005-05-0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yes24는 4만원 이상이면 무조건 2000원 주는데 =+=
 
월든 - 포켓북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박현석 옮김 / 동해 / 2005년 2월
품절


내가 숲으로 간 것은, 깊은 사고에 따라 살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시하고 인생이 가르쳐 주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을 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며, 죽음에 직면해서야 자신이 살아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또한 불가피한 일이 아니고서는 체념하는 것도 싫었다. 나는 깊이있는 삶을 살며 인생의 정수를 철저하게 들이마시고, 스파르라 인처럼 인생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은 모두 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늠름하게 살며, 폭넓게 그리고 뿌리까지 풀을 베어버려, 생황을 구석까지 몰고가서, 최저의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만약 인생이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개의치않고 그 참된 하찮음을 통째로 손에 넣어 그것을 세상에 공표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168쪽

어느날, 나는 우연히 무지개의 한쪽 끝에 서 있었다. 무지개는 대기의 낮은 부분에 가득 넘쳐서 주위 초목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색이 들어간 수정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긋한 신비함을 느꼈다. 그것은 무지개빛의 호수엾으며, 그속에서 나는 한동안 돌고래처럼 생활을 했다. 만약 무지개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면, 내일과 생활도 및으로 채색되었을지도 모른다. 철도의 둑길을 걷고 있을때, 나는 종종 내그림자 주위로 빛의 띠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이를 신비하게 여기며, 나는 틀림없이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곤 했었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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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창턱에 놓아 둔 구근이 싹을 뻗어내고 있다. 봄이 오면 감자 싹들은 빛을 찾아 마치 송곳인 양 판지를 뚫거나 심지어는 나무도 뚫고 나간다. 창턱에 놓인 구근이 지난 해 그녀가 보내 준 그것이라면 아마 작은 수선화 모양의 꽃을 피우리라. 손톱 크기보다 작은 꽃들. 죽어 가는 짐승의 냄새와도 같은 달콤하고도 얼얼한 향을 지닌. 북쪽의 꽃. 순록의 꽃.

부엌 찬장에는 역시 그녀가 손수 만들어 보내 준 꿀 케이크가 놓여 있다. 아무도 모를 그녀만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당밀 파이와 비슷하지만 당밀 대신 꿀과 호두 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다. 헤이즐넛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스칸디나비아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찾아보기 쉽지 않을 그런 호두이리라.

테이블에는 아프리카 사탕과자가 놓여 있다. 아마 아프리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탕이 들어 있는 작은 버들고리 궤만이 아프리카 것일지도 모른다. (상자 안쪽에는 우간다산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검은색의 부드러운 과자는 일일이 손으로 싼 것으로, 예테보리에 있는 그녀의 부엌에서 만들어진 것이 맞을 것이다.

몇 년 전, 내가 토니 린드그렌(Torgny Lindgren) 을 발견한 것도 순전히 그녀 덕분이다. 그녀가 보낸 소포 꾸러미 중에, 내가 읽은 소에 관한 책 중 최고인[메랍의 미인(Mehrab's Beauth)]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이후린드그렌의 모든 책을 찾아 읽었다. 소포에 함께 부친 편지에 그녀는 이렇게 썼었다.

"덴마크행 기선에 앉아 있어요. 석유 저장소가 늘어서 있는 긴 항구를 지나 예테보리를 벗어나는 중이지요. 모든 것이 벼냈어요. 보기에 따라서는 내항(內港)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요. 조선소는 손을 놓고 있고, 전부 개인 소유인 독일과 덴마크행 호텔급 기선들만 늘어서 있어요. 나는 이런 해상 호텔들이 싫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리고 난 언제나 공짜로 배를 타요. 떠나기 직전에 자전거를 갖고 티켓 없이 배를 타거든요. 영하 사도의 음울한 날씨예요. 라디오에서 들으니 내가 태어난 저 북쪽은 영하 삼십 도라는군요."

이건 그녀가 4월 어느 오후, 엑스-레-벵에서 멀지 않은 부르제 호숫가로 난 좁은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라마르틴(Lamartine)의 시로 유명해진 호수였다.

끝없이 다음 기슭으로 내몰리며, / 돌아올 길 없는 영원의 흑암으로 실려 가면서, /이 가없는 시간의 바다에, 우리 단 하루만이라도/ 닻을 내릴 수 없단 말인가.

대학 도시에서 노교수들이 타고 다니는 것 같은, 허리를 펴고 타는 보통 자전거였다. 실제로 그녀는 교사이기도 했다. 이란과 우간다 난민 학생들에게 스웨덴 문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자전거는 약간 변형되어 있었다. 핸들이나 안장, 폐달은 그대로였다. 말고삐에서 떼어낸 작은 재갈 조각처럼 생긴 브레이크 장치를 포함하여 모든 부품들 역시 그대로였다. 자전거에 싣고 있는 것 때문에 변형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안장 가방이 마치 낙타 허리 살처럼 뒤 흙받이에 늘어뜨려져 있었다. 텐트와 우산, 물병 하나가 뒤 짐칸에 묶여 있었다. 헤드라이트 아래의 앞 짐바구니에는 지도와 로션, 말린 무화과가 든 봉투와 양초, 망치, 그리고 린드그렌의 새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회색 곱슬머리의 여인은 부르제 호숫가로 난 좁은 시골길에서 천천히 폐달을 밟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검은 푸조 605 한 대가 자전거를 탄 여인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면서 다가왔다. 운젅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길 너비를 잘못 어림했고 차의 뒷부분이 자전거 안장 가방의 오른쪽을 훑고 지나갔다. 자전거와 사람 모두 길 옆 도랑으로 처박혔다.

차는 서지 않았다. 어떤 무게가 실린 것이라야 사고나 충돌로 기록된다. 아무도 앞 창문에 부딪친 나비 때문에 차를 세우지는 않는다. 차가 받은 충격은 그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여인은 욕을 내뱉으면서 일어나 피해 상황을 살폈다. 자전거 먼저, 그런 다음 자신을. 앞바퀴가 휘었고 페달이 손상되었다. 그녀 자신은 무릎이 약간 베였다. 그녀의 피부는 대리석처럼 매끈했다. 일생에 걸친 바닷물에서의 단련으로 그런 피부를 가지게 된 것이리라. 짙은 피가 흘렀다. 붕대로 무릎을 감고 길가에 앉아 다른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빵가게 차였다. 운전수는 그녀를 옌까지 데려다 주었다. 거기서 자전거 수리를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앞바퀴를 새 것으로 갈아 끼고 무릎에는 붕대를 두른 채 북쪽을 향해 길을 떠났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에 도착한 그녀는 군용 방수 망토 차림이었다. 처음,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푸른 눈동자는 검은 눈동자보다 덜 늙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역경을 지나 온 얼굴이었지만 눈동자는 소녀 같았다. 후에 나는 그녀가 결혼했고 장성한 두 자녀가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녀의 젖은 옷을 스토브 위에 널어 말렸고 수프와 치즈를 먹었다. 붕대를 푼 무릎에서 작은 상처를 보았다.

사흘이면 나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 자전거 앞 바구니를 뒤적이더니 잼이 든 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모과 젤리, 당신 거예요. 이젠 가 봐야겠어요. 하지만 그 전에 조금 걷고 싶어요.

자전거는 층계참에 기대 놓았다. 반시간 남짓 지나자 앵초꽃 한 묶음을 뿌리째 들고 오더니 자전거 앞 바구니에 조심스레 놓았다.

먼 길인데 조금 늦은 게 아닐까요? 내가 말했다.

가끔은 밤에도 타요.

무섭지 않아요?

자전거가 있잖아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든다. 천천히 그러나 끝없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받지 않고 주고만 싶어하는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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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03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손꾸락이야. 헥 헥. 지금까지 읽었던 존 버거의 스타일과는 좀 다르다. 그 나름대로 또 좋다. 많이많이!

panda78 2005-05-03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에 관한 책 중에서 최고라..... - _ -;;;

하이드 2005-05-03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서 아마존 검색하려다 참았어요.

panda78 2005-05-03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ㅂ< ㅋㅋㅋ 참으셨군요.

마태우스 2005-05-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에 얽힌 안좋은 추억이 있어서 추천.

하이드 2005-05-0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걱;;; 뭐...뭐에요, 마태님!.. 추천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