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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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겨울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다. 물론 내가 고르긴 했지만^^;;;

박흥용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이다. "내파란 세이버"가 오늘의 만화상이던가..;;;;를 받았는데, 몹시 궁금해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읽었었다.  그때도 느꼈지만 작가는 '사회의식'을 철저하게 반영한 작품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주인공 견주가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나는 설정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당시 사회에서 양반가의 서자는 일반 농민보다도 암울한 위치였었다.  먹고 사는 걱정이야 덜하겠지만 사회적 성공이 막혀있는 답답한 현실을 젊은 혈기가 이여내기에는 참 버거웠을 것이다. 주인공 견주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견자(개새*)라고 불려대는 이름을 들으며 욱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견자라 부르며 낮추는 모습은 그랬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한 세상 한만 남기고 꺾일 수도 있었던 그의 삶은 스승 황정학을 만나면서 180도 달라진다.  양반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태생적 장애로 장님이 되어버린 그는, 견주의 설움보다 더 가혹한 대접과 대우를 받으며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그를 가두었던 독을 깨고 나오면서 그는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천하를 주유하며 침술쟁이로 생계를 잇지만 그는 당대의 유명한 검객이기도 했다.  그는 한과 설움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깨우쳤다.  그리고 그가 전수해준 그 가르침은 견주에게 있어서 훌륭한 검객이 된 것보다 더 소중한 배움이 되었을 것이다.

작품에는 실존인물인 이몽학도 나온다.  역시 당대의 사회적 한계와 설움에 악이 받쳐있던 그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젊은 혈기의 청년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비춘다.

작가가 여성을 묘사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의하면 조선 시대의 여성은 수동적이고 남자의 부속물 정도로만 인식되는데, 모두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적어도 임진왜란 이전의 여성의 지위는 열녀문 속의 여자들보다는 좀 더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작품 속에서 대쪽이라 자처한 기생과 양반집 귀한 딸이었던 여인(아, 이름이 생각 안 나는..;;;;)은 견주를 좇아가기 위해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단순히 남자에 미쳤다고 생각지 말자^^;;;) 그래서 마지막 엔딩의 여운은 꽤 오래 간다.  열린 결말이랄까. 이후에 이어질 그들의 삶과 사랑을 상상하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혹시 완결이 아닌가 하고 책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스승 황정학의 가르침으로 검술을 연습하는 모습과, 그것을 실제에 응용하여 나날이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검술 단련 모습도 꽤 인상적이었는데, 그 속에 인생이, 철학이 담겨 있었던 까닭이다.

분류하기에 따라서 이 책은 만화보다 역사 쪽에 다가가기도 하는데, 내 마음은 오히려 철학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설마, 아직도 만화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자들 취향의 이쁜 그림체는 아니지만 아주 부담스러운 그림도 아니고, 자연 풍광의 넉넉한 모습과 인물들이 사실적 묘사는 그림 보는 재미도 제법 더해준다.

그리고, 제목을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이라고 하지 않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고 의도적인 파격을 보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

사족이지만, 영어판도 나와 있다. 수출작품이라는 것. 외국인의 눈으로 이 작품을 보면 영화 "와호장룡"을 보았을 때의 경탄이 나오지 않을까.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버일까? 다모도 만들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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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국사기 (전3권)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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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씨 자신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역사서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쓴 책들을 살펴보면 전문서적의 내용을 다루지만 모두 쉽게 서술했다.  마치 소설가가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처럼 그의 말/글 솜씨는 옛 이야기 들려주듯 자연스럽고 흥미 진진하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마력까지 보여주었다.  기존의 역사서가 이러이러했다. 저러저러했다. 라고 표현했던 내용들을 그는 보다 극적으로 전개했다고 보면 아마 비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가 또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를 소설화시켰다는 말을 듣는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받는 그런 비판이랄까.

내 생각은 다르다.  쉽게 풀어 쓴 것과 멋대로 지어 쓴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는 다작을 하고 있지만, 결코 학문 연구를 게을리해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고백했다.  그가 쓴 책들과 그가 참고한 사료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본다.

내게 있어 이덕일씨의 역사서들은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전개시켜주는 좋은 교과서인 셈이다.

이책 오국사기의 오국은 그동안 우리가 받아온 역사 교육의 편협함을 단적으로 지적해 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가 삼국시대라고 불릴 만한 시기는 그들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백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삼국을 말한다.  북쪽에 있었던 부여도, 남쪽에 있었던 가야도 말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도 그들은 찬밥 신세다.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의 오국은 중국과 왜/일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저자의 윗 생각은 변함 없지만, 책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또 시기적으로 이 책에서는 부여와 가야가 망한 시점이다.) 오국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까지의 범위이다.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고 보면 된다.

고구려 영영왕때나 연개소문의 일화등은 작가적 상상력이 들어갔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무작정 애국심으로 그들을 미화한 것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상상력이랄까. 

이 책은 고구려의 추운 날씨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반도 북쪽 땅을 중국 땅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그 지역은 북방 민족이 차지해 왔었지, 중국의 영역이었던 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위쪽은 중국 땅..이라는 공식이 자리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선입관을 깨부술 수 있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그들이 잃어버린 고구려의 땅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나 역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나 백제가 아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사실이다.

이덕일씨는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을 만났을 때 토끼와 거북이 일화를 이용하여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을 맛깔스럽게 묘사했다.  당시 국제외교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춘추의 촌스러움은 동시에, 이미 거짓말히 횡행하는 고구려 외교 모습의 썩은 단면도 보여주는 것이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신라의 복잡한 성관계(?) 혹은 주도권 싸움을 잘 풀어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화랑세기에 기초한 관련된 책들을 찾아 보았지만, 이덕일씨만큼 명확하게 그들의 독특한(유교적 윤리의식에 길들어진 우리 눈으로 보았을 때의) 성문화와 정치 주도 세력을 설명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 대중서이기에 쉽게 썼지만 결코 가볍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세권에 달하는 내용이지만 읽은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재미 있고 흡인력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수/당과 삼국의 이야기보다 왜의 이야기부분이 잘 흡수가 되지 않았는데, 익숙치 않은 이름들이 큰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우리와 일본의 역사 관계에서 "가야" "왜" "임나 일본부" 등등에 관한 일들은 아직도 사료가 부족하고 더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할 영역인데, 이러한 것들이 보다 활발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연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족한 사료를 어떻게 메꾸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는 것이 괘씸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고대사는 광활한 만큼 아득하다.  그 넓은 대륙도, 호방한 기상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참으로 먼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멀고 아득하다고 아예 제낄 수는 없지 않은가.  더 잊기 전에 재빨리 멀어져가는 끈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에 흩어져 있던 우리의 고대사 조각이 하나 둘 퍼즐 조각을 맞추면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욕심같지만, 이덕일씨처럼 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애쓰는 학자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를 맘껏 할 수 있는 풍토와 여건이 마련되기를... 그리고 그 고마움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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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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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정형화된 느낌이지만, 뜻을 새겨보면 참 아픈 제목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것도 아프지만, 남한 내에서도 극심한 대립으로 할퀴고 뜯는 모습을 지금도 너무 쉽게 보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는 시점은 지방선거를 앞둔 상태)

전작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보다 감상적인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좀 더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 느낌이 난다.  프랑스와 프랑스인을 얘기하면서 우리의 사회를 투영해보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데, 부럽고 안타까운 기분이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것도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서, 혹은 타국 주도로 들어왔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자체적으로 정착한 서양보다 정치의식 혹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정치인이 존경 받는 대한민국을 오매불망 꿈꾼다.)

또 트집 잡기 위한, 상대를 꺾어내기 위한 정책 우선의 모습이 많은 것도 기막히고, 언론이 정치와 유착하여서 주구 노릇을 하는 것은 화딱지 나고, 거기에 휘둘리는 대중의 모습은 눈물날 지경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 시민들의 모습에 많이 감탄했다.  대통령일지라도, 실업자일지라도, 그들의 의견을 내놓는 자리에서는 똑같은 자격의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언론이 먼저 걸러내고 시민들이 인정하는 모습이 눈부시기까지 했다. 

또 파업 이야기에서 너무 쓰라렸는데, 우리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마음이 영 불편했다.  우리나라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시민들의 반응은 "또?"이며, 불편하다라는 이유로 파업자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본다.  그들이 왜 파업을 했으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가 무엇인지 언론은 말해주지 않는다.  수구 언론과 부자 신문들은 앞다투어 시민들이 얼마만큼 불편했고, 그로 인해 받은 경제적 손실이 얼마인가를 요란한 수치로 떠들어댈 뿐이다.  그러다 보면 시민들의 옹호와 지지를 받지 못한 파업 세력은 결국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또 다시 불평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며 일자리로 돌아간다(끝까지 버틴 사람은 공권력을 맛보거나 실업자가 된다.ㅡ.ㅡ;;;)

내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 사회가 하나되어 똘똘 뭉친 기억은 월드컵 때 온 국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하나된 응원을 했던 그때 뿐이었다.  과거 80년대에 서울에 봄이 왔다고 외치던 시절, 힘 닿는 데까지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우리의 윗 세대분들이 계셨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는 사회적 착취와 부당함에 대항해 하나되어 싸우고 국민이 지지했던 기억이라고는 전무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한계점이 보이는 듯하다.  아무리 개인화되었고 삭막한 정서적 환경 속에 놓여 있다지만, 공공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 수 있는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등, 우리가 속해 있거나 혹은 관련되어 있는, 전혀 무관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나몰라라 한다면, 내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나를 몰라라 하는 사회에 대해 뭐라고 항의할 것인가.  잠깐의 불편을 감수하여 더 많은 사람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에 살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은 정녕 가질 수 없는가 말이다.

이 책에서 또 부끄러웠던 부분은, 우리나라 뉴스의 보도 능력 혹은 태도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뉴스에서 중요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아무 공적인 이유 없는 사적인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대통령이 어디를 가면, 반드시 그 정황을 보도해주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다.  늘 그런 뉴스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 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갑자기 눈이 커진 느낌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 딱 그 기분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시대에 사림 세력은 훈구 세력에 대항하여 네차례의 사화를 겪으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반대파가 사라진 다음엔 자체 분열하여 당파 싸움을 하였다.(우리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심히 유감이다.)  그때 율곡 이이는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니라 개혁해야 할 때"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동인들에 의해 서인 편들기로 몰려가면서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국제 정세는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해 가던 무렵이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꺾고 전국을 통일해 가는 과정이었다. 내부 싸움에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귀기울이지도 눈여겨 보지도 못한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좌파니 우파니, 중도니 하면서 서로 편가르기를 하면서 세력 다툼을 할 때, 중국은 고구려가 지네 역사라고 하고, 일본은 지치지도 않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봄만 되면 중국에서 황사가 불어오는데, 우리는 눈과 귀와 코로 다 받아낼 뿐, 무엇도 대처하지 못한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통일의 당위성을 아느냐고.  통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안 되었으면 바란다고 답한다.  이유가 뭐냐고 묻자, "대학 가기 더 힘들어지잖아요."라고 대답한다.

단지, 그네들이 어린 탓에 철없는 대답을 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아는 까닭에 씁쓸했다.  지금도 이럴 진데,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아예 서로 다른 길을 가지 않을까.  왜 남과 북이 하나되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떠올릴 수 없지 않을까.

딱 집어서 어느 하나를 고쳐야 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도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동시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고치고 다듬고 바꿔나가야 한다.

정치인은 정치판에서, 경제인은 경제를 이끌어가는 구조 속에서, 언론인은 살아있는 정직한 필력으로, 학생들은 자신들의 본분인 공부에서, 모두모두 제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사회의 부당한 모습에 적극적으로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했다.  내 주변에 우리 사회에, 당장은 나와 무관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책이야기를 하다가 많이 흥분했다..;;;; 그만큼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과 탄식을 병행했다는 이야기이다.  정치 선진국 대열에 대한민국도 속히 들어가기를 바라며... 나 자신도 업그레이드 된 사회의식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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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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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출간된지는 십년이 넘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대학생이었던 언니가 무척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앞부분의 서두에 해당하는 부분만 읽고, 마무리지어 읽지 못했는데, 십여년 뒤에 도서관에서 다시 찾게 되었다.  읽고 나서는 결국 구입하고 말았다.  이런 책은 소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외치면서.

지금이야 망명자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서, 예의 그 필력을 떨치며 일하고 계시지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만 해도 저자는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갈 수 있지만 꼬레아 만은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가 하는 말들은 감상적이기보다 차라리 절실할 정도로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서두에서 빠리에 오면 자신이 안내해 주겠다고, 이리저리 둘러 보여주는 장면은 말씨가 몹시 예뻤다.  거북선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달라며 말문을 여는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마나 억울했으며,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홍세화씨는 독재정권 시기에 탄압을 받았던 다른 사람들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망명에 성공했고, 지금은 돌아와 있으니까.  그의 고난과 역경은 모두 귀한 체험이 되어 그의 필력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고, 사회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채찍질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보고 난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매 순간순간 그와 그의 가족들이 부딪혀 싸워야 했던 현실들은 얼마나 가혹하고 참담했을까.

그래서 그가 택한 나라가 프랑스였던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라고 차별이 없고 억압이 없을 리 없지만, 적어도 똘레랑스, 관용이 사회의 미덕이며 습관으로 정착되어 있는 곳이니 말이다.  그가 택시 운전 시험에서 있었던 시험관과의 일화 등도 그런 예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것인데,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보는 재미가 꽤 놀라웠다.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허용된 나라라는 설명이 그대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사회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을 무렵에 저자는 한국에 돌아온 셈인데, 떠나갈 때와 너무도 달라진 조국은, 여전히 똘레랑스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는 가끔 프랑스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때로 답답한 마음이 느껴질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하고 간접 경험만 한 내게도 답답한 구석이 있으니, 긴 시간을 살아온 그는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자신에게는 냉정하되,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듣곤 한다.  고개 끄덕여 동의하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팔은 어찌나 안으로만 굽는지...;;;

우리 사회 안에 만연된 학연 지연 등등.. 사람이 생활의, 삶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하나, 번지 수가 틀리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좀 먹는 벌레가 될 것이다.  부패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을 어디 보았던가.

그래서 '관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스스로에게는 보다 냉철해지되 이웃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푸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라면, 보다 정직하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홍세화씨처럼 독재정권 시기에 억압받고 피해를 본 이들에게, 반드시 보상과 해명,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황은 십자군 전쟁 시기의 교회의 잘못을 천년도 더 넘은 시간 뒤에 공식 사과를 하였다.  이제라도 하였으니 다행이지만, 제발 그렇게 긴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며 잘잘못이 묻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휘청거리며 어렵게 지내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발, 부디! 당대인이 살아있을 때에,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지기를... 그 또한 우리 사회에 관용이 넘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마땅히 되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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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 신화에서 역사로
김정진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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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발견한 것은 교보문고에서였는데, 표지만 보고 안의 내용을 잘 살펴보지 못했다.

그후 이 책 이름이 아른거리면서 너무 갖고 싶었다.  하드 표지에 올 컬러.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순신까지.

그래서 질러버렸다. 다 읽고 난 지금, 페이지라던가 내용의 깊이를 생각하면 가격이 좀 세다는 느낌이 있지만, 원래 좀 더 대중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독자의 욕심이지 싶다.

한국 생활사 박물관 시리즈와 좀 비슷한 느낌인데(그보다는 덜 충실히 만들었다.  자료의 양이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해해야 한다ㅡ.ㅜ) 거북선의 내부 구조를 성실히 설명해 주었다.  단, 돛대의 접혀진 모양은 아무래도 2차원이다보니 조금 이해가 난해했지만, 다른 부분들은 무척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가토 기요마사를 가토 기요사마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띄었고(욘사마가 생각남...;;;) 총통과 화포는 그림으로만 그려놓아서 이걸 어떻게 사용했는 지 구체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마 동영상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테지만, 독자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말이다.

그러나 테마를 잘 엮어서 마지막엔 이순신 관련 행사들을 정리해준 것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그래서 별 다섯개!를 냉큼 주어버렸다.  맨 앞의 이중 표지는 금방 구겨져서 결국 떼어버리고 하드 표지만 남겨 두었는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두루두루 함께 볼 수 있는 책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책꽂이에서 그 존재만으로 보람이 있을 책이랄까^^;;; 그렇지만 열심히 읽어 소화하는 것이 구경하는 것보다 좋을 리 없을 터, 거북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이 책이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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