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 갑부 역관 표정있는 역사 1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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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미시사로 들어가면 본인의 관심사가 아닌 이상 재미있게 읽기가 쉽지 않다.  이덕일씨의 책들을 몹시 좋아하지만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 "김종서 평전"이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재미'로 읽혀지지는 않는다. 다만 '지식'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갑갑한 책은 아니니 겁먹지는 말기를... ^^

지금이야 통역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전문인 중에 전문인이고 또 외교관도 그 범주에 넣어서 생각할 때 몹시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지만 조선시대에 역관은 '중인' 출신이었기에 벼슬이 높기는 힘들었다.  조선 초에는 높은 벼슬도 가능했지만 사회가 점차 양반 사대부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그들의 승진을 막고자 하는 양반들의 몸부림(..;;;;)으로 그들은 전문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도 정치적 변두리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전문성은 나라에서 먼저 필요로 하는 능력이었기에 곧 그들은 조선의 경제를 움직이는 큰손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시장의 규모를 볼 때 가장 많은 돈이 오가고 또 물건이 오가는 길목도 이들의 사행길이기 때문이다.

청나라가 해금 정책을 펴는 동안은 조선 경제의 호기였다.  일본으로부터 결제받은 은을 청나라의 결제에 사용할 수 있었고, 양편을 중개무역할 수 있는 삼각 무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청의 해금정책이 풀어지고 일본과의 직거래가 이루어졌을 때 조선이 받은 타격은 컸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조정은 그같은 경제논리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농본상말을 기본으로 삼는 그들의 원칙에 충실했달까.(ㅡㅡ;;)

탁상공론에 빠져 있던 사신들은 조선을 위해서 그들이 해야 했던 역할들을 제때 잡아내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  그 일들을 역관들이 앞장 서서 해낸 일들도 이 책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조선 시대에 양반들은 돈의 통용을 반대했었다.  한마디로 천하다라는 것.  그랬던 그들도 숙종 때에 이르면 위조엽전을 만드는 일에 손댈 만큼 돈에 환장(ㅡㅡ;;)하는 모습도 보여준다.(드라마 다모가 기억나는가. 그때의 배경이 숙종 때였다.)  마찬가지로, 역관들의 일이라는 것을 천시했지만, 또 그들의 장사를 매도하며 방해하기도 했지만, 이들이 사오는 물건들이라는 것은 결국 양반들의 사치품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다. 이 상호모순된 모습은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모습 같다.  수년 전 있었던 옷 로비 사건하며..ㅡ.ㅡ;;;

철저하게 사료 중심으로 책을 써 나가셨는데 거의 대부분이 한자로 쓰여졌을 그 책들을, 아무리 학자라고는 해도 읽고 해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더군다나 이덕일씨는 한문 공부를 독학으로 하셨다고 했다.)  '연려실기술'을 혹 읽을 수 있나 해서 검색해 보았는데, 어느 서점에서도 없었다.  한글본은 물론 한자어로도 출간은 아니 되었나 보다.(물론, 한자본이면 있어도 못 산다ㅠ.ㅠ)

조선왕조실록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쉽고 편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많은 고전과 자료는 여전히 학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독자에게 성큼 다가오게 연구하고 또 책으로 펴주는 이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한다.

비록 이 책은, 전작과 같은 대중적인 책이 아닌터라 전공 서적으로 공부하면 모를까, 쉽고 재밌게 읽혀지지는 않지만 몹시 유익한 책이라는 것에는 쉽게 동의한다. 

조선 후기, 나라가 위태위태할 때 시대를 앞서 읽어나가는 역관들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들의 지적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위정자들의 아둔함을 원망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열린 마음, 열린 지식으로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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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영업중 X - 번외편
이시영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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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작가를 참 좋아한다.  이쁜 그림체하며 유머러스한 감각, 독특한 설정과 소재들, 진지하지만 지극히 순수한 이야기를 잘 펼치는 드물게 보이는 천재 작가란 생각도 하였다.

"지구에서 영업중"은 제목부터가 재밌다.  외계인과 지구 밖의 생명체, 그들의 특별한 능력, 그들이 지구에서 벌이는 활동, 꿈을 꾸는 자... 등등등...

작품은 스릴러의 느낌이 날 정도로 매회 조금씩만 그들만의 진실을 보여주었고 모든 조각은 10권을 다 읽어도 완벽하게 맞춰지지 않는다.  바로 이 번외편에서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올곧은 해피엔딩을 원했지만, 뜻밖의 결말은 역시 작가다웠다.  그렀다고 그게 언해피엔딩이라고도 우리는 말하지 못한다.

호텔 아프리카를 읽었을 때와 약간 비슷한 느낌도 받았는데, 그들 회사에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흉한 범죄자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꿈을 닮은 물빛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멘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그 느낌을 이 작품을 보면서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이시영 작가의 그림체는 딱 요새 아이들, 혹은 젊은 사람의 취향에 꼭 맞는 캐릭터다.  연예인으로 치면 아이돌 스타 정도 될 수 있겠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여성들의 성격도 독특하면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간 페미니스트 말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한, 외유내강을 잘 표현한 듯해서 그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개그컷과 진지한 컷의 묘미를 잘 살렸고, 추추신이라며 작가 후기가 등장하는 것도 인상깊게 보았다.

그리고 이중 표지를 열어보면 뒤쪽에 속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것도 독특한 작가를 닮아 너무 재밌었다.

지구에서 영업중은 현재 친구에게 대여중^^;;; 이런 책은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

이시영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물론, 그 전에 feel so good을 어여 끝내주시기를....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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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어떤 것
현고운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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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흥미진진하게 시작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새벽 늦게까지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긴장도 주고 재미도 주고 멋있기도 했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등장 인물들을 알기에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으니 더 재밌고 근사하게 보였다.

그런데... 중반 넘어가면서 뭔가...;;;;; 싶었다.

우리 드라마의 전형적인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랄까.

여자 주인공이 똑부러지고 야무지고 요새 인기있는 설정은 다 있지만, 그 설정을 납득시키는 근거가 너무 부족했다.  이를 테면, 마지막에 주인공 다다가 자신에게 있는 어떤 특별함 때문에 독신을 고집했다고 하는데,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굉장히 독특하고 또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의 특별한 해몽도 사실 평범하기 그지 없었고, 그밖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눈치는 전혀 챌 수 없었다.(그녀가 일부러 감춘거라고? 그런 설정이 있을 뿐.ㅡ.ㅡ;;;)

그녀의 오빠 김서현. 엘리트에 미남 의사. 다부지면서 카리스마가 있는 정말로 멋진 캐릭터!라고 작가는 설정을 해 놓았는데, 보통 이상이라는, 범접할 수 없다는 그만의 카리스마가 대체 어디 있는지 나는 글 속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다라는 설정이 있을 뿐이었다.

또 악녀로 등장한 주희는 어떠한가.  그 캐릭터의 뻔한 전형성이야 넘어가지만 그녀가 다현을 걸고 넘어지기 위해 부린 수작이라는 것은 상식 수준을 벗어났다.  단순히 악녀 캐릭터라는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덜떨어진 수단이었다..;;;;

주인공 다현이는 학교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으로서의 고뇌나 에피소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 계약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 자신의 뛰어난 수재 학생을 유학 보내기 위한 거래였는데, 그 때 이후 그녀의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해보자.  할아버지 짐 들어드린 것에 홀딱 반해서 재벌 총수가 자신의 손주 며느리로 여인을 찍는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아우, 아무리 비현실적인 드라마에 소설이라고 해도 이건 정도가 심했다.

초반에 톡톡 튀는 연애질에 재밌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작품은 뒤로 갈수록 망가졌다.  드라마는 조금 더 현실감있게 그렸을지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소설만 보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억지스러웠다.  내가 가졌던 호감이 다 사라지는 기분을 맛보며 읽기를 마무리 지었을 때는 참 불편했다.

21세기에도 사랑은 영원한 주제이지만, 그 주제를 포장하고 표현하는 방법은 20세기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젠 독자들도 예전 같지 않다.  루루 공주의 실패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성공이 떠오른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는 보다 현실적인, 그래서 수긍하고 공감가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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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게 길을 묻다
이덕일 지음 / 이학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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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씨의 역사서를 처음 접하게 했던 책이 바로 이 "역사에게 길을 묻다"였다.  일단은 문학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읽어보니 쉽게 서술되어 있으며 흥미 진진하지만 동시에 진지함도 잃지 않는 내용에 더 끌렸다.  그래서 역사 입문서로 주변에 많이 추천을 하기도 했지만, 고등학생들은 대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그들 역시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읽어보면 어렵다는 말보다 감탄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우리의 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이다.  8종, 7종 나눌 것도 없이 단일종이다.  나라에서 정해진 그대로, 그냥 가르쳐야 하고 그대로 배워야만 한다.  그 내용이 제대로 기술되어 있는지, 혹은 잘못 기술된 것은 없는지, 모순은 없는지, 우리가 의문을 품어봤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 국정 교과서니까(ㅡㅡ;;;)

해마다 일본은 독도 망언을 퍼붓고, 중국은 고구려사가 지네 거라고 우긴다.  뿐이던가?  역사 왜곡으로 우리 가슴에 멍울지게 하는 뉴스 기사는 심심찮게 발견한다.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역사 서술은 과연 진실만을 얘기하고 있는가?

중국이나 일본처럼 타국의 역사를 의도적인 왜곡으로 비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국의 역사 앞에서는 떳떳하지 않다. 

일제 시대의 식민사학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 실증사학의 유령에 사로잡힌 자들의 제자들이, 후학이 그대로 오늘의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들로 이름을 띄우고 있다.

그렇게 가르쳐주니, 그런 줄 안다.  의문을 제기할 생각도 못한다.  설마 교과서가 틀렸을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러려니 할 테지.

가끔 수업을 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렇게 써 있으니 그렇다고 하지만, 아닌 게 분명한데, 이를 해명하기가 어렵다.  "사실은 교과서가 틀렸어."라고 말하면, 이 무슨 개망신이냔 말이다.  나의 망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체성의, 역사관의 망신이란 얘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고개 끄덕였고 더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때쯤 달라질까, 바뀌어질까... 하는 마음에...

저자는 사극의 이야기도 하였는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이 나왔다.  적어도 요새는 과거의 사극보다는 확실히 고증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기는 하다.  최근엔 사극 열풍이 불어 이미 끝난 대작도 많거니와 곧 시작할 드라마, 그리고 영화계에서도 사극이 대세가 되는 분위기이다.  보다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일으키게 하고 역사 속의 세계로 다가가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잘못된 정보 역시 무서운 파급력으로 영향을 미칠 터이니 조심스러운 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근래에는 고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데 고대사일수록 미스터리가 많고 신비에 가려진 부분들이 많아 기대도 되고 염려가 되기도 한다.  부디 이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여인천하 제작진의 "윤원형이 문정왕후의 동생인 것을 우리도 알지만, 저흰 그냥 오빠로 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무식한 대답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의 장점은 과거의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모습과도 견주어 정치판을 비교해주는데, 이 역시 고개 끄덕이며 무릎을 칠 이야기들이 많다.  모두들 직접 읽고서 확인해 보기를...^^

저자의 글솜씨가 탁월함은 마무리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처음에 교과서에서 시작한 것처럼 다시 같은 주제로 마무리한다.  앞에서는 문제를 제기했다면 뒤에서는 해법을 제시했달까.  단숨에 이뤄지기는 어렵지만 단계단계 우리가 밟아야 할 과정을 친절하게 말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재밌고 유익하고 친절한 책의 도움으로, 역사가 열어주는 길을 한 번 걸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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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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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중학교 학년에 올라가서 자신과 같은 반에 또 다른 유진이가 있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성도 똑같은 이유진이다.  자세히 보니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동창생이다.  그런데 작은 유진이는 나 큰 유준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런 유치원에 다닌 적도 없다고 한다.  분명 같은 아이인데... 작은 유진이는 왜 기억을 잃어버렸을까...

이금이 소설 유진과 유진은 성장 소설이다. 한참 사춘기를 겪을 중학생 소녀가 주인공이다.  두 유진이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지만, 둘은 동시에 같은 기억을 가진, 그래서 같은 이름이 운명같기도 한 아이들이다.

유치원 시절, 유치원 원장에 의해서 성추행을 당했던 아이들중에 두 주인공 유진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꿰매느라 애썼다.  큰유진이의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이를 안아주고, 네 탓이 아님을 강조하며 아이의 드러난 상처를 자연상태로 치유하고자 했다.  반면 작은 유진이의 부모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아이에게 기억을 잊어버릴 것을 강요했다.  할머니는 깨진 그릇 취급을 하였고 어머니는 너무 쌀쌀맞았다.  성장과정에서 작은 유진이는 자신의 엄마나 아빠가 새엄마 내지 새아빠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동생들과 다른 그 차별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작은 유진이는 봉합되었던 기억을 큰유진이를 만나면서 조금씩 상기하게 된다.  그 파장은 놀라웠다.  내 탓이 아닌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죄인 취급하는 가족을, 강요된 기억상실에 아이는 설 곳을 잃어버린다.   전교1등을 하며 악착같이 모범생의 모습으로 자신을 지탱해오던 작은 유진이는 이 일을 계기로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담배를 피우고, 학원을 가지 않고 춤을 배우러 다니고 지금껏 못했던 일탈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들통나면서 균열은 더욱 커진다.  부모님은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망가지기 전에 미국에 보내겠다는 엄포와 무서운 매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한편, 큰유진이는 유치원 동창생인 건우와 예쁘장하게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건우 어머니로부터 유진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어머니께서 '그런 애'와 사귀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건우의 어머니는 사회운동가로서 사건 당시 피해자의 어머니들을 위해 발벗고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에 대한 전문적 조언을 아끼지 않던 그녀의 이중성과 건우의 모습에 유진이는 큰상처를 받는다.

집에 갇혀버린 작은 유진이는 큰 유진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큰유진이는 단짝 친구 소라와 함께 작은 유진이를 구출(?)한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바다를 보기 위해 정동진행 기차를 타고 나름 무모하면서 기대되는 일탈을 해버린다.

그러나 정동진에 도착했을 때는 학원비로 챙겨두었던 돈을 도둑맞은 뒤였고, 결국 아이들은 부모님께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팽개치고 달려오신 큰유진이의 부모님은 혼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아이를 보듬어 안고 무사함에 감사하기만 했다.  슈퍼마켓 운영으로 늘 바빴던 소라의 어머니는 딸을 때리며 혼내키기도 했지만 그 끝에 묻어나는 울음과 따뜻한 포옹은 소라의 마음도 울려버린다.  그러나 멀찍이 떨어져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작은 유진이의 어머니는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차를 돌려 어느 호텔에서 묵자고 하였다.  내내 억눌렀던 울분을 작은 유진이는 터트리고 만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어머니의 미숙한 모성애와 서툴렀던 사랑을 확인한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사랑하는 방법은 저마다 모습이 달랐다.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애정은 오해와 불만을 만들고, 작은 유진이의 경우처럼 긴 상처를 남겨 서로를 상처내기 일쑤다. 

이 책은 열다섯 소녀들의 감수성과 그들의 고민, 그들의 행동들을 딱 그 모습 그대로 묘사해내고 있다.  건우와의 문자 데이트를 소라를 통해서 해야 했던 큰유진이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어머니에 의해 무시되었고, 아버지께서 핸드폰을 사러 같이 가자는 말에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 여겨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핸드폰을 장만하신 거였고, 자신이 넘겨짚은 거지만 상처받은 유진이는 동생과의 싸움에서 기어이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이 보여주신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릴 적 읽었던 소설 "홍당무"에서 무섭기만 했던 홍당무의 어머니와 비슷했달까.  결국 부모 마음이란 그렇지... 라는 안도감과 유진이의 반응들이 너무 귀엽고 생생해 어릴 적 내 모습도 같이 떠올릴 수 있었다.

단짝 친구 소라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슈퍼마켓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은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 앞가림을 하면 모를까, 아니라면 가게에서 배달을 시키겠다고 하셨다.  언니인 보라는 죽어라 공부를 하지만, 소설가가 꿈인 소라는 차라리 배달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 겸험을 늘려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공부는 못하고 딴 궁리만 하는 소라가 우등생은 아닐지언정,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나름 확고한 인생관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진이와의 우정은 또 얼마나 깍듯하던가.

건우와 건우 어머니의 캐릭터도 생각의 여지가 있다.  멋진척 쿨한척은 다했지만 사실은 마마보이였던 건우와, 사회적 명예와 위신은 지켜도,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은 아니었던 그녀의 가식은 유진이를 향한 반응에서 이미 드러났다.

작은 유진이를 가졌을 때 너무도 가난했던 부모님은, 자신들에게 닥친 사건이 가난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부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그들은, 부모님께 순종하여 집으로 들어가며 자신들이 감당해야 했던 책임과 상처를 외면해버렸다.  그것은 결국 그들과 딸 작은 유진이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고 말았다.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이 책이 시사해주는 바는 작지 않다.  비단 청소년들의 읽기 책으로 국한할 수도 없다.  거기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소재의 위험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는 유독 건드리기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다.  전통적 유교 질서에 얽매여 있는 이 사회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발뻗고 자지 못하게 만들고 가족이나 이웃들도 어떤 의미로든 가해자의 입장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건우와 건우 어머니, 그리고 작은 유진이의 부모님과 조부모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들어 더더욱 성폭력 사건이 많았는데, 이는 단지 피해자들이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대책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의식이 먼저 바껴야 함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성폭력은 재범죄율이 높은 만큼 거기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이 책이 그러한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아프고 참 강동적이었던 글을 만나서 기뻤다.  도서관에서 책을 골라 본 것인데, 아무래도 구입해서 소장해야겠다.  두루두루 선물도 하면 좋겠다.  오늘 수업에 학생들에게 얘기해주면 열다섯 소년소녀들은 즐거이 들을까? 음... 솔직히 모르겠다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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