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땅 몽골에 이어, '태고의 땅 몽골'도 보았습니다. 총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짜임새는 앞 시리즈가 더 탄탄한 듯했지만, '야생'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한 가지 주제에는 더 적합해 보였지요.
1부는 '야생의 초원, 생명을 품다'란 제목입니다.
5부에 가면 제작 일기 비스무리하게 진행되는데, 그때 일지를 보니까 촬영팀이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 게 4월이었어요. 이 무렵의 몽골은 아직도 겨울 날씨였죠. 우리처럼 사계가 뚜렷하지도 않고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자랑하지도 않아요. 여름색과 겨울색, 이렇게 두가지 색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4월의 몽골은 어딜 보나 같은 빛깔이었죠. 그렇지만 하늘만은 아주 시리도록 새파랬습니다.
구름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아득한 하늘일진대, 그 아래 땅에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니, 놀라운 풍경이에요.
한국은 아주 오지를 가지 않는 이상 어딜 가나 '도시' 냄새가 너무 짙게 풍기지요. 반면 몽골은 수도 울란바토르와 몇몇 큰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초원이 펼쳐져요. 길도 깔려 있지 않고 만들어가면서 내는 길을 달려야 하지요.
몽골의 봄은 잔인합니다. 봄철의 동물들은 비쩍 말라 있어요. 많이 굶어 죽기도 하지요. 우리에게 보릿고개가 있다면 젖이 말라 있는 이때에 몽골에선 '젖고개'를 앓습니다. 이 무렵엔 죽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만 포식할 수 있지요.
타르박은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감이래요. 설치류지요. 우리나라에서 '쥐'하면 꺄악!하고 소리치며 책상 위로 펄쩍 올라가는 그런 풍경을 상상할 텐데, 몽골의 저 타르박은 몹시 귀엽네요.
저 녀석들은 몽골가젤 차강제르에요. 우리 말로 '하얀 가젤'이란 뜻이죠. 녀석들은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닮은 길을 간대요.
다리가 튼튼하고 시속 70km로 달릴 수 있어 초원의 질주자로 통하지요. 여름이 가까워 오면 생기가 넘친답니다. 번식기가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래요.
6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몽골의 연 강수량은 200-220mm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연강수량이 1,400mm인 것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건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나마 이 강수량도 여름 한철에 8,90%가 집중된다고 해요. 우리도 그런 편이지만 여긴 상대적으로 더 극단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비가 내리면서 메말랐던 대지가 푸른 기지개를 켭니다. 7월에 있을 나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들은 말달리기 연습을 하지요. 어려서부터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익힌다는 몽골의 아이들에겐 거의 습관이라 할 수 있어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누가 더 잘 탈까요? 여자 아이들이 더 잘 타는 경우도 흔하답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어디든 너른 초원과 마주칩니다. 몽골인들이 기르는 가축은 전체 인구수보다 많아요.(몽골 인구수는 300만이 못 됩니다.) 가장 많이 기르는 다섯 가지 가축을 '오축'이라고 하는데 말. 소. 낙타. 양. 염소로 이들은 유목민들의 귀중한 재산이지요.
짧은 여름 동안 초원에선 할 일이 많습니다. 낙타의 털 깎기는 너무 일러도 늦어도 안 됩니다. 너무 이르면 낙타가 얼어 죽을 수도 있거든요.
낙타의 털은 옷이나 카펫을 만듭니다. 사진 속에서 가위를 들고 열심히 낙타의 털을 깎는 유목민의 모습이 보이네요.
유목민들의 생존 문제는 전적으로 가축에 달려 있습니다. 가축의 젖을 짜는 건 지극히 일상적인 일.
젖을 짜는 건 대개 여자와 아이들의 일로 되어 있습니다. 초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제 몫의 일을 찾아 움직일 줄 알아요.
3살 막내가 우리 안에서 가축들과 놉니다. 염소 뿔을 잡고 당겨보지만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지요. 가볍게 염소 승!
몽골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가축과 가족처럼 지냅니다. (문득 생각났는데 저 환경에서 만약 털 알러지라도 있다면 살수가 없겠네요. 친자연적이라 그런 알러지가 생기지 않는 걸까요?)
초원의 여름. 사람들은 가축의 젖을 가공한 흰 음식(유제품)을 주로 먹습니다. 반면 겨울에 먹는 것은 소나 양의 고기로 만든 붉은 음식이지요. 흰색과 붉은 색의 조화가 자연스럽니다. 질이 좋은 젖일수록 오래 두고 먹기 위해 건조시킵니다.
엄마들은 여름에 가장 일찍 일어나서 차를 끓이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소젖을 짜서 우유를 끓여요. 점심 전에는 양과 염소의 젖을 짜서 하얀음식(유제품)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죠. 저녁에 가장 늦게 자고 아침에 가장 일찍 일어나요. 아빠라고 일을 안 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 몽골에서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편이에요. 아빠들은 사냥을 하고 양을 치고 바깥일을 하지요. 어린 아이들은 또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고요. 강수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도 아이들의 주된 일이에요. 그리고 난로에 연료로 쓸 '소똥'을 주워오는 것도 여자들과 아이들이 하는 일이죠. 말린 소똥은 섬유질이 풍부해서 냄새도 나지 않고 좋은 연료로 쓰여요. 금방 타버리는 게 단점이지만 연기가 없고 화력이 좋거든요.
아이들이 집안 일을 돕는 사이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합니다. 몽골에서는 하루에 한 번만 식사 준비를 하는데 바쁜 생활 가운데 저녁에는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안정감 있게 식사를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칼국수와 비슷한 랍샤(수프 요리)를 준비합니다. 말려둔 고기를 끓인 물에 밀가루 반죽을 썬 것을 넣습니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는 소금 이외에 다른 조미료 쓰지 않지요. 그래서 한국 음식을 접하면 다양한 맛에 놀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음식 간이 좀 센 편이잖아요^^ 안주인이 음식을 하면 집안의 연장자인 남자가 먼저 먹습니다. 영상에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안 계셨는데 계셨다면 노인 먼저 드셨을 테지요.
게르의 지붕을 안쪽에서 촬영한 장면인데 인상적이어서 한컷 캡쳐했습니다. 천창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이네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단순하지만 평화로운 삶의 연속입니다. 내내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생활환경이지만, 그곳에서 일생을 살아온 유목민들에게는 답답한 도심과 결코 바꿀 수 없는 대자연과의 조우일 테지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특별한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집니다. 초원에서 자라는 식물 중 하나인 쉐르츠(허브)가 많기 때문이래요. 몽골 유목민들은 시력만 좋은 게 아니라 후각과 청각도 몹시 발달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귀가 둥글고 짧은 생토끼. 녀석은 짧은 귀 때문에 쥐처럼 보여 쥐토끼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쥐 닮았다는 말은 현재 욕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쥐나 토끼 등과 같은 설치류 등은 초원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근본이 되어줍니다. 초식동물이 있는 곳엔 이들을 먹는 육식 동물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부드러운 털과 퉁퉁한 몸집으로 인기가 좋은 타르박은 몽골인들이 즐겨하는 사냥감이지요. 아까 위에서 사진을 한 번 올렸지요. 녀석들은 호기심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확인을 한다네요.(펭귄이 이런 습성을 갖고 있지 않나요?)
녀석들을 잡는 방법이 재밌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하얀색 옷으로 갈아입고 토끼나 여우의 귀가 달린 모자를 쓰고, 흰말의 꼬리나 야크의 털로 만든 노리개를 흔들면서 타르박을 향해 천천히 뛰어갑니다. 뛰어가다 멈추고 다시 뛰어가다 멈추기를 반복. 타르박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가까이 다가가지요. 몽골인들은 시력이 좋으니까 멀리서도 타르박을 발견하고는 계획적으로(!) 접근하겠지요. 다가오는 하얀 물체가 무엇일까, 타르박은 어김없이 고개를 내밀고 관심을 보입니다. 코앞까지 접근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지 못하는 녀석. 결국 그렇게 굴 밖을 나서면 잡히고 마는 거지요. (탕!)
잡힌 타르박 고기는 먹고, 가죽은 해외 수출용으로 판다고 합니다. 이 가죽을 이용해서 모자, 조끼 그리고 코트를 만드는데 주로 여성용 고급 상품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타르박으로 만든 버덕은 몽골 최고의 요리로 꼽혀요. 가죽 안에 돌과 야채 등을 넣고 구워냅니다. 버덕이 특히 맛이 좋을 때는 가을. 곧 동면에 들어갈 타르박이 최고로 살이 오를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한컷 잡아내긴 했는데 좀 잔인해 보이네요. 결국 다 우리가 먹는 거지만...ㅜ.ㅜ
몽골인들 사이에는 용감한 사람이 늑대를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축을 위협하는 해수이기도 하지만 늑대를 보면 운이 좋아진다고 해서 사람들은 늑대에 대해 예민하면서 관심이 많다고 하네요.
늑대를 잡아서 중국에 파는데 한 마리에 15~20만 투그륵 정도 한다고 합니다. (한화 약 15~20만원)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했던 민족답게 몽골인들이 키우는 가축 중에 특히 아끼는 게 말이에요. 몽골의 말은 서양의 말보다 작지만(게다가 숏다리라지요!) 지구력이 강하고 병에도 강해 거칠고 황량한 몽골의 삶에 알맞은 녀석이에요.
세계 유일의 야생말 타키. 짱짱한 체구에 빳빳하게 선 갈기가 인상적이에요(한 성깔 하게 생겼네요! 게다가 요녀석도 숏다리!). 서식지 파괴와 밀렵으로 1969년. 고비에서 발견된 것이 마지막 야생의 모습이지요. 1992년. 유럽의 한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타키의 복원 시작되었고, 현재는 푸스타민두르(호스타이? 영상에 자막이 없으니 알아듣기 힘들더군요..;;;;) 자연 보호 구역과 고비에 약 600여 마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자연도 최고의 풍요를 만끽하는 여름의 몽골.
7월 초. 몽골 전역에서 나담이 열립니다. 축제라는 뜻의 나담은 가장 좋은 계절의 정점에 열리지요. 몽골에서는 여름에 할 일이 가장 많기 때문에 일손을 돕느라고 아이들도 모두 집에 돌아가서 3개월의 방학을 지내요. 그리고 가을 학기에 1학기가 시작되지요. 우리가 한 해 농사를 힘들게 짓고 팔월 한가위를 축제처럼 즐겼던 것처럼 몽골인들도 나담을 통해 고단함을 씻어내고 활기를 나누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나담과 함께 여름이 가고 있네요. 짧지만 충만했던 여름을 보낸 초원의 모든 생명들은 또 다시 찾아올 고난의 계절에 당당히 맞설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