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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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성들에게 이 사회가 지극히 개방적이거나 평등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을 뿐이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선 차별이 있고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진다. 

21세기를 사는 나도 이렇게 여기는데, 19세기의 영국은 오죽했겠는가.  (영국에서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준 것도 일백년 역사가 채 안 될 정도니... )

그러한 닫힌 시대에서 꿈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할까.

난 이 책을 읽으며 제인에어의 현명함과 강인함과 지혜에 많이 감탄했다.

어려서부터 결코 평탄치 않은 인생길을 걸으면서도 꿋꿋이 자존심을 세웠고, 스스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데에 결코 주저함도 게으름도 없었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아주 미모의 여성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작품의 강점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녀의 지성과 현명함과 인격이, 그녀의 대단치 않을 외모를 더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되었을 것이고, 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되었을 것이다.(뭐, 마찬가지로 대단치 않은 로체스터의 외모는 그닥 인격으로 카버되는 것 같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가장 반했던 것은, 로체스터씨의 구혼을 받아들이려던 찰나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가 보여준 행동의 방향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감정적으로 행동했다면, 오늘날 이토록 사랑받는 제인에어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성적으로 판단했고,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마음이 찢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그 마음을 다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진대, 그녀는 감정의 충동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마 거기에는 그녀의 꼿꼿한 자존심도 한몫 했을 테지만, 난 단순히 자존심 싸움으로 그녀가 결정을 내렸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늘날 무수한 불륜 드라마들도 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ㅡ.ㅡ;;;;)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제인에어이지만 영국인들의 사랑은 더 각별할 것이다.  그러니 "제인에어 납치사건" 같은 소설도 나올 테지... ^^ 또 그 소설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려는 작업이 진행된 것도 독자들이 좋아한 이 책의 결말을 입증하는 것일 거다.

나의 지인은 가장 감동깊게 읽은 책을 "제인에어"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지인이 피식 웃었던 일이 있었다.  대체 왜 웃는 거지??? 음... 잘 이해가 안 갔다.  나 역시 아주 좋아하는 소설인데... ^^ 브론테 가의 식구들이 쓴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인데, 난 폭풍의 언덕은 그저 그랬다.  제인에어가 보다 매력적이었고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의 90%는 제인의 캐럭티 때문일 것이다.  당당한 자신감과 소신...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덕목이기도 하니 말이다.  지성을 얻는 것보다 지혜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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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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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였다.

각자 집에서 책 한권씩 들고 와서 학급 문고를 구성할 때 이 책이 끼어 있었다.  누가 가져왔는지까지는 기억 못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어울릴 법한 책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어린 동생이 이 책을 무턱대고 들고 온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상상을 나아중에 했다^^;;

이 책은 연작소설이다. 첫 제목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은 되어 있는데 또 독립되어 있고 그리고 분리할 수 없는 연결점을 갖고 있다.

사회의 부조리를 얘기하는 글이나 드라마, 혹은 어떤 매체를 접할 때...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리를 든다. 

-사회의 어려움과 어두움을 외면하는 것은 양심에 문제가 있어!

-그런데, 너무 칙칙한 얘기만 하면 그것도 싫어... 안 그래도 살기 힘든데 말야...

참으로 모순이 있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늘 그렇다.  둘 다 버거운 것이다.  외면하면 배부른 돼지가 된 것 같고, 거기에 집중하면 마음이 고달프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현실 도피형 인간이 되는 것인지도...;;;

하여간. 이 책은, 가난하고 아프고, 그리고 처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정의 과잉 없이 담백하게 쏟아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아프고 가혹한데, 그것을 말해주는 작가의 목소리는 고저 없이 침착하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과 고난이 더 현실로 느껴진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욕한 녀석 집 유리를 깨버렸을 때, 씩씩대는 아이를 향해 아버지는 차분하게 말한다.

"유리를 깨는 것은 잘못한 거야. 아버지는 난장이야."

더 이상의 반론도, 변명도 할 수 없는 한마디. 지극히 사실을 전달한 한마디... "아버지는 난장이야."

나는 이 대목에서 덜컥 울어버렸다.  당신의 슬픈 마음은 감추어버린 채, 일생이라는 시간을 담보로 체득한 그 깊은 절망이 한마디 문장에 모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묘사한 장면에선 허탈했다.  선거 때만 되면 찾아와 시장 사람들의 투박한 손을 잡고 잘 해보겠다고, 밀어달라고 허리를 90도 숙이건만, 선거가 끝나면 그들의 허리는 도로 뻣뻣해진다.  언제 그런 손을 잡아보았냐는 듯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 시절의 정치인이 지금의 정치인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사회는 분화되고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사람들은 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더 보드라운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정치 의식 수준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오늘날 시사저널의 사건을 보아도, 포스코 사태를 보아도...

결국 자살로 마감한 난장이 아버지, 그가 굴뚝 위에서 마지막으로 내려다본 세상은 어떠했을까.  가난한 아버지가 물려준 생은 자식들의 생에서도 여전히 비참하고 가혹하다.  작업 도중 졸기만 해도 핀으로 찔러버리는 작업 감독이라니...(지금이야 그런 환경을 상상할 수 없지만, 글쎄... 외국인 노동자한테 하고 있는 짓을 떠올린다면 과연...ㅠ.ㅠ)

나는 작가가 섣부른 희망을 제시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그토록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고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어! 라고 말했다면 그건 거짓말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작가의 몫은, 이런 세상이 있어... 우리가 살았던 세상이야... 라고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다음에 마음이 움직여지고 행동으로 변화되는 것은 독자가 가져야 할 몫이다.  소설 속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고, 남의 이야기라고 단정할 일도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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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부 1
이덕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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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장르를 매기기가 애매하다.  소설인 것은 분명한데, 완전 소설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둔 역사 소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존인물이다.

이 책은 절판되어 안타까운 경우인데, 이 책이 있는 도서관을 수소문 해서 부러 찾아가 가입까지 하고 빌리는 극성을 떨어서야 볼 수 있었다.  사진도 준비해 가야 했고, 교통편은 정말 안 좋았고, 이 책 반납후 두 번 다시 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나의 지인이 나의 생일 선물로, 출판사에 문의해서 이 책을 구해서 선물해 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 고마운 선물, 고마운 책. ^^

오히려 이덕일씨의 경우는 덜 팔릴 것 같은 역사책이 재판을 거듭하는데, 잘 팔릴 것 같은 소설책이 덜 팔리니... 아무래도 명함 탓인가?  소설의 장르를 택해도 아무 문제 없을 만큼 잘 썼는데 말이다.  워낙에 문학적 재주가 탁월했던 것은 익히 알아온 사실이니까.^^

이 책을 보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에 많이 놀랐다.  내가 짐작했던, 혹은 우리가 그럴거라 믿어왔던 숙종보다 훨씬 날카롭고, 동시에 그릇이 넓지 않은 인물로 묘사된 점....(공부를 해보니, 그런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  사극이 미화된 것..;;;) 인현왕후가 후덕한 인물일 거라고 모두 속아왔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장희빈과 막상막하더만....;;;;;) 그리고 이 둘의 싸움에 빠질 수 없는 당파 문제와 외척 간의 싸움까지도...

심지어 장희재가 죽을 때의 상황을 보면은 억울한 면이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일가의 억울한 죽음은 곧 경종의 비극과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비극을 연이어 탄생시킨다.  그런면에서 개인적으로 숙종이 참 밉다.(그래도 인조보다는 못하지만...;;;)

'혁명'을 생각하면 언제나 답답할 때가 있다.  일을 그르친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랄 수도 있지만, 꼭 사소한 데에서 말썽이 발생한다.  운부에서도 그렇다.  이들의 혁명이 그럽게 삽시간에 무너지는 것이 많이 허무했다.  엔딩 부분이 좀 급하게 느껴졌고 임팩트가 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3권에 걸쳐서 방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소설적 재미도 충분히 주고, 무엇보다도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을 본 최고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오히려 너무 유명해져서 이런 소설을 다시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 까닭에 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책....  하다 못해 절판이 풀리고 재판만 되더라도 좋겠다. 이런 책은 두고두고 여러 사람이 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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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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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습니까?

1. 음반 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든다.

2. 이름으로 동네나 시의 이름을 쓰고 있다.

3.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간다.

4.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5.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그는 사신(死神)일지도 모릅니다.

첫장에 나오는 글이다.  도입부부터 관심을 확 끌고 있다.  작가는 생각보다 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감각도 젊은 것인가?

사신은 일주일 동안 맡은 사람을 조사한다. 그리고 별다른 일 없으면 可라고 보고를 올리고, 보고가 올라가면 그 사람은 다음 날, 즉 여드레 째에 죽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사신 치바는 인간의 죽음에 관심 없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보류한 경우는 딱 한 번! 그가 죽도록 좋아하는 음악에 관계된 어느 재능있는 여자의 죽음만 미뤘을 뿐이다.

그는 인간 자체에 관심이 없고, 그들의 생활과 그들의 행동, 그들의 생각들을 황당해 하거나 한심하다 여기기도 하지만, 실상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호기심으로 뭉쳐 있고, 때문에 어색한 대화가 이어지고 피식 웃게 되는 행동양상이 나타난다.

더 미묘한 것은, 그가 일주일 동안 조사 대상을 만나면서 그 사람에게 생을 정리할 수 있는, 혹은 미련을 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혹은 죽음의 때가 이르러서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한 번씩 돌아보고, 후회될 여지를 제거해 나가고, 조금씩 죽음을 향한 준비를 마쳐간다.

치바는 어쩌면 꽤 유능한 사신일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동안에 인생을 정리할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의 묘한 재미 또 하나는, 시간의 점프다.  사신의 시간은 영속이다. 때문에 그가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을 먼 훗날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뒷 얘기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앞 이야기가 겹쳐지면 그가 사신이라는 것을, 그에게 인간의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비식 웃게 된다.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태도도 너무 좋았다. 요새 좋아진 음악이 너무 많아서일까.  사신 치바에게 추천하고픈 음악도 엄청 많아졌다.  흠, 그렇다고 그가 내 주위를 배회한다면 좀 더 오래 있다가 오라고 말하고 싶다.

책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삽화가 종종 끼어 있는데, 사신 치바의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이미지가 들어가 있어서 상상력을 조금 방해한다.  그것 말고는 표지의 색감과 깃털, 글씨까지 모두 맘에 든다.

사신 치바가 일을 할 때는 언제나 비가 내렸는데, 작품 말미에서 마지막으로 태양을 볼 수 있었던 점도 맘에 드는 장면이었다.  그의 수고에 대한 대가, 혹은 선물 같은 기분. (사실 난 할머니가 또 다른 사신이어서 치바에게도 마지막이 있나? 뭐 이런 반전을 기대하긴 했다...;;;;;)

맘에 드는 리뷰를 읽고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그 충동구매의 결과가 나쁘지 않은, 아니 상당히 좋은 소설이었다.  제목의 시원한 느낌과 함께...

앞에서 제시한 특징을 가진 사신의 방문을 받는다면 특히 조심하기 바란다.  피하긴 어려우니, 남은 생을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니까. 혹시 아는가? 음악을 좋아하는 그를 잘 구슬려서 몇 십년 간 생을 연장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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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7-20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었지요!
마노아님..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6-07-2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고른 건 전적으로 비숍님 덕분이에요^^ 아주 재밌었답니다^0^
 
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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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나 사는데 책 하나를 더 준다는 것은, 사실 끼어주는 책이 참 안 팔렸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먼저 팔린 책의 인기를 믿고 너무 많이 찍어서 남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공중그네의 재미를 믿고 1+1으로 산 이 책.  뭐, 워낙 싸게 샀으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편 공중그네로 인해 기대치가 높았는데 기대보다 부족했던 게 섭섭할 뿐.

여전히 엽기 의사와 간호사가 있는 독특한 병원이다.  그러니 그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도 평범하지 않다.

지난 번 공중그네 때의 환자들은 특이한 직업군의 사람들이었다.  조폭도 그렇고 공중곡예사도 그렇고, 작가나 의사도 평범하진 않다.  이번 편은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나왔달까.

도우미는 연예인이 꿈이지만 연예인이 된 것은 아니었고, 평범한 샐러리맨 남자와,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도 있었다.  논픽션 작가가 그나마 조금 특이한 직업의 사람이었다고 하겠다.

아마도 내가 이 책 인더풀을 덜 재밌고, 혹은 더 지겹게 읽었던 것은, 이들의 증상에 화가 났던 것일 수도 있겠다.  첫번째 도우미는 스토커가 쫓아온다고 착각했지만 나르시스즘과 공주병이었고, 핸드폰 중독증에 걸린 학생도 한숨 나오긴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불이 날까 봐 강박증에 걸린 남자도 읽는 내내 내 머리가 아플 만큼 스트레스였다.

전편과 달리 이라부의 반응도 재밌고 유쾌하지 않고 많이 엽기적이었고, 환자가 병을 치유하는 과정이나 혹은 결과도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다. (작가의 매너리즘? 독자의 권태기?)

어쩌면, 내가 불만스럽게 여긴 증상들은 내가 닮고 싶지 않은, 혹은 내게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공중그네에서 나온 증상들은 나와 상관없었는데, 이번 인더풀에서 나온 증상들은 꼭 무관하지만은 않단 생각이 들었다.

강박증은 어릴 때 나도 겪은 적이 있다. 5분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 소변을 본다든지(자다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까 봐 걱정했다.) 길을 걸을 때 보도블럭의 금을 절대 밟지 않는다던지 하는 것.

외로워질까 봐, 외롭다는 것이 들킬까 봐 휴대폰에 집착한 고등학생의 모습이 참 리얼하게 보였다.  학창시절의 내 모습은 두루두루 좋은 친구였다.  누구랑도 친하고 누구랑도 잘 지내지만, 특별히 누구랑 친하지는 못했다.  학기 말에 돌림편지를 쓰면 내 페이퍼에는 온통 좋은 말이 넘쳤지만, 그렇다고 딱히 친하게 지내는 동창은 없다.  본인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책을 보면서 너무 잘 이해되었기에 나는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나도 이라부가 부러울 때가 많다.  무엇이든 거침 없이 해내고, 속에 있는 말을 다 밖으로 표현하고, 애써 표정을 만들고 감정을 숨기고, 욕하고 싶은 것을 감출 필요 없는 그런 마인드.

그게 옳다거나 바람직하거나 권장할 사항은 아니건만, 그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부럽다.  이 넘의 소심증은 걱정이 너무 많아 남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을 늘 신경쓰며 살게 되니, 걱정도 사서 하고, 분에 넘치는 염려를 싸매 지고 살게 한다. 

이 책의 환자들과 달리, 내게는 이라부 같은 고민을 들어줄 상대도 없고,(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잘 고쳐질 것 같지도 않다.  사람 성격은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ㅡㅡ;;)

혼자 무언가에 심취해 있고, 빠져 있고, 열심히 매달리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그 모든 게 허무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한다.  어쩌면 알라딘 서재에 공을 들이고 있는 지금의 모습도 그럴 지 모른다.  5년 넘게 쓰던 소설을 어느 날 갑자기 못 쓰게 된 것처럼.

책 한권을 읽고 감상을 쓰다가 갑자기 너무 우울해져버렸다. 아침이 되면 다시 후회되어서 슥슥 지울 지도 모르겠다.  결국엔 책보단 내 감정에 취해 별 셋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지우지는 않을란다.  그냥, 그대로 가야지(어디다 화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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