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드로잉 - 핀든아트의 여행 드로잉 에세이
핀든아트(전보람) 지음 / 블랙잉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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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든아트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유럽, 여행, 드로잉'이라는 세 단어는 무의식적으로 내 손이 책장을 걷게 만든다. 성급히 건너뛰어 얘기하자면 책을 다 읽고난 후 유튜브의 핀든아트를 구독하기 시작했고. 

이 책은 말 그대로 유럽을 여행하며 본 풍경, 사람들의 모습을 드로잉으로 담아낸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을 가르치다가 문득 미대입시를 위한 체계적인 강의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라 느끼며 취미미술로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짧은 여행을 계획했던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유럽으로 가'보라는 남편의 이야기에 유럽으로의 한달 여행이 시작된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독일, 체코, 헝가리를 거치는 한달 여행은 결코 길지 않은 여행이었을 것 같다. 직접 찍은 사진과 간단한 여행 일정, 만난 사람들과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사진으로 담은 풍경과 똑같은 드로잉이 있으며 간혹 드로잉에 채색을 한 그림도 있다. 채색은 대부분 입맛다셔보게 하는 음식들이어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늘 부러웠는데 루브르 박물관이 그렇게 사람들로 미어터지지 않을 때 - 처음 보는 그림과 조각들에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던 그때의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커다란 그림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가끔 혼자 스케치북에 습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기는 했지만 초등학생 십여명이 모여서 선생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림 앞 바닥에 주저앉아 스케치북을 펼쳐놓은 모습은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프랑스 애들은 체험학습도 루브르에서 하는구나,라는 충격(!)때문에 기억을 하고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핀든아트가 여행한 시기는 2018년 2월인데 결혼하기 전 남편이 남자친구인 시절 그가 여행을 했던 프라하의 한 수도원 골목길 사진을 보며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똑같이 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어 마음에 남는다. 거의 변하지 않는 풍경, 그러고보니 파리에서 만난 드로잉 투어 가이드는 변하지 않는 도시가 지겨워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온 핀든아트를 부러워했는데 사람들은 늘 자신이 있는 곳의 일상보다 타인의 일상을 부러워하게 되어있나보다. 하지만 어떤 여행이든 끝은 있는 거이고 결국은 내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게 된다. 


"파리에서 보았던 오후의 황금빛은 내 집 앞에도 존재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잠시만 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차분히 펜을 들고 그 장면을 종이 위에 그려나가보자. 선을 긋고 뗄 때까지의 그 과정은, 자칫 쉽게 흘러가 버릴 수 있는 우리 인생의 한 컷을 종이 위에 생생하게 남길 것이다."(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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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나무 주변을 뒹구는 푸른 이파리와 나뭇가지.
수수께끼처럼 남은 그루터기.
그와 같은 죽음은 처음이었다.
그처럼 강제적인 죽음은.
세월에 순응해 쓰러지거나 비바람에 뿌리째 뽑히거나속부터 썩어 마침내 부러지는 나무는 숱했다. 쓰러지고 뽑힌 뒤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서 숲이 되었다. 그루터기만 남기고 줄기는 통째로 사라져버리는 기괴한 죽음은 300년이몇 번씩 거듭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숲에서 보고 들은 죽음과 완전히 달랐다. 그러므로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이별 또한 아니었다. 훼손이었다. 파괴였다. 폭발이자 비극이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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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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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정보라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고 한 기억이 있다. 이전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4년만의 소설작품이 나왔다고하니, 더구나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 '쉴새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매혹적인 소설'이라는 글을 읽고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쉴새없이 책장만 넘기고 생각의 파도가 몰려오지 않아서일까. 여전히 혼란스럽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한글자 이름이 - 이름 옆에 유독 한자어 표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의미를 담았구나 싶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해설이 없어서 좀 아쉬운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신임형사가 어느 순간 순 형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급하게 다시 책을 뒤적여봐도 명확하지가 않다. 도대체 나는 뭘 읽고 있었던 걸까.


소설의 이야기는 마약같은 중독성도 없이 고통을 없애주는 진통제가 개발되었는데 그 회사에 폭탄이 터지며 사망자가 생기고, 그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회사소유주의 딸 경은 자살을 시도하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죽음을 피해간 아이러니함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폭탄테러를 한 사람은 고통을 통해 영혼의 존재증명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구원의 길이라 주장하는 사이비 교단의 일원 태이다. 범인을 잡고 사건이 일단락되며 끝나는 듯 했지만 교단과 관련된 인물들의 살인사건이 이어지며 살인범을 쫓는 형사 륜이 사건해결을 위해 이전의 관련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세이같은 느낌이 드는 이 소설은 읽을수록 SF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하지만 또한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은... 아니, 이건 나름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생각이 쌓이기 시작한다. 출산의 고통을 떠올려보다가 고통을 완벽히 없애는 NSTAR-14가 있으니 고통은 없는것인가, 이들은 그 약을 거부한다면 또다른 교단의 탄생이...

뭔가 스스로도 궤변을 늘어놓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이 소설은 내게 쉽지가 않다.


고통을 없애는 완벽한 진통제가 개발이 된다고 하면 또 누군가는 고통을 그리워(!)하며 신약을 거부하고, 맹목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념을 종교화시키려나. 과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고통은 무엇인가.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도 성욕도 아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더깊은 어떤 것이었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推動)이었다"(301)


고통에 관하여,는 이런 이야기인가 싶지만 큰 맥락안에 담겨있는 이야기 줄기를 살펴보면 '생각의 파도에 휩쓸린다'는 말을 떠올려보게 된다. 고통이 구원의 길이라 믿는 이들은 자신의 구원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주기만 할 뿐이며,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는 이들에 대한 폭행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질병의 고통에서 모든 것을 잃고 고통에서는 벗어났지만 삶의 의미를 찾고 그를 전하기 위해 교단에 들어간 욱은 오히려 그것이 교단의 신념과 다른것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폭력남편을 피해 보호센터로 가지만 남편은 그녀를 찾아내고 경찰로 인해 보호센터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숨어지내다 무료숙식제공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간 효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을 떠난 것이었지만 결국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하게 부당한 삶을 살다 숨지게 되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사건사고뉴스를 찾아보면 수없이 터져나오는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법제도의 헛점으로 인해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내게는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싶었는데 하나하나 끄집어 내다보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다.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그런 소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방금 밑줄긋기 한 내용을 살펴보다가 책의 첫장 차례 뒷 장에 '등장인물'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름 한자어를 찾아보며 읽은 나는 뭐였나... 싶지만 아무튼 등장인물을 찾음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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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3-09-23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다섯개!!!

chika 2023-09-23 13:58   좋아요 1 | URL
ㅎ 제가 별점이 후합니다요... 인것도 있는데. 사실 딱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읽고난 후 더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추천할수밖에 없는 책이예요 ^^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 - 최정상급 철학자들이 참가한 투르 드 프랑스
기욤 마르탱 지음, 류재화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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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프랑스식 유머는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다시 관심을 가져보곤 한다. 사이클을 탄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내가 이해할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혼용된 글이라면 픽션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책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철학자들이 독일은 아인슈타인을 매니저로, 그리스는 소크라테스를 매니저로 하여 팀을 이루고 경쟁을 하며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하며 일어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철학자들의 철학사상을 잘 모른다는 것이 그리 큰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책을 게속 읽다보니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못느낀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건 아주 무지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또 다른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아채게 되는 것일까, 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싶어지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내게 쉽지 않았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마르크스정도랄까.

"우리를 착취하는 지도자들을 위해 노동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훨씬 아름다운 사이클을 위해, 훨씬 스포츠다운 사이클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장딴지의 힘을 한 곳에 모아야 합니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236)


현실에서 유리된 몽상가라 불리는 문학가들과 머리에 든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스포츠인들의 클리셰를 활용하여 탄생한 철학에세이,라고 한다면 뭔가 과장일까 싶기도 하지만 저자의 의도에 맞춰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책의 이야기들은 독자 각자에 의해서 진화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기도 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왠지 알듯말듯 이 책을 조금씩 이해하며 읽은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나는 그대들에게 평화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권한다. - 니체"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 앙리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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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6시간의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이 답을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대화하다, 소통하다. 아 이건 결국 페달을 밟는 것보다 힘들구나. 대화 상대자가 아무리 철학자여도 말이다. - P74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 앙리 베르그송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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