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가이드가 생생하게 설명했다. 이백 명 남짓 들어갈 공간에 사람을 천 명이나 밀어 넣고는 아무 설비도 위생 시설도 없이 음식과 물도 거의 주지 않은 채 석 달이나 가둬놓았다고 했다. 그 순간 사백 년 노예 제도의 모든 고통스러운 역사가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 몸속에 들어왔고 난 그만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어, 도미니크, 백인은 책임질 일이 많다고 울면서 더욱더 깨달았지
도미니크는 아프리카 남자도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팔았다고, 그러니 아주 복잡한 문제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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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미술관 -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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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저자가 의사라는 것 때문에 의학자의 시선으로 본 그림이라는 편견같은 것이 있었다. 그림의 예술적인 감상보다는 의학적 분석이 그려진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은 그런 호기심에서 읽고 싶었었는데 의학적 분석이 아닌 인문학적 사색이 담겨있는 책이어서 더 좋았다. 

미술 관련 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명한 그림을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에 담겨있는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도 너무 좋았다.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작품들을 이 책에서 처음 보기도 했고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림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 특히 오래전에 한번 보고 잊고 있었던 미하일 브루벨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된 것이 좋았는데 브루벨의 삶과 관련하여 그의 병으로 인해 그림도 변화되었다는 것, 행복과 불행의 극을 달리는 삶의 변화를 읽으며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브루벨의 데몬 시리즈는 독특한데 악마의 눈물,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마음에 남는다. "악마도 울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삶이란 눈물겹도록 힘겨운 것이니까요"(132)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이 책은 한번 읽고난 후 생각날 때마다, 내 마음이 동하는 주제를 찾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읽고난 후라면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적절한 내용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인상적인 그림들이 많았지만 정리되지 않은 내 방의 모습과 비슷해보여 더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는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돈키호테'가 그것이다. 기사복장을 하고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의 모습이 더 익숙한데 이 책에서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모험가로 만든 것이 바로 책이다,라고 말해주는 그림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돈키호테의 렘수면 행동장애,도 흥미로웠지만 저자가 돈키호테 책을 끼고 다니며 병원 동료들에게 돈키호테라 불렸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의사가 문학과 예술에 빠져 지낸다는 것이 의학계에서 돈키호테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저자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내게는 용감무쌍한 돈키호테가 좋아진다. 그리고 덤으로 저자의 동문서답에 대한 글도 좋다. "살다보면 정답 대신 동문서답이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삶에 정답이란 없음을 깨달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란 동문서답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입니다"(156)


그림을 보는 즐거움에 더해 작가의 삶과 그림이 연결되고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이야기가 흥미로움과 재미를 더해주고 있어서 책이 금세 읽힌다. 책을 한번 읽으면 당분간은 잠시 덮어두고 잊고 지내는데 이 책은 잘 보이는 책장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한꼭지씩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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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집사는 처음이라서 - 씨앗부터 시작하는 가드닝 안내서
셀린느 지음, 김자연 옮김 / 이덴슬리벨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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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에 관심이 많지만 제대로 해본적은 없다. 사실 엊그제도 기분전환 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다육이를 몇개 사가지고 왔지만 날마다 상태를 보면서 햇빛과 물을 조절해야하는 것에는 게으르다. 가드닝의 기본은 부지런함과 세심함인데 이런 내가 새싹부터 키우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앞서 가드닝은 무작정 하고 싶어지니 정말 마음만 앞서는 것 같다. 

'새싹 집사는 처음이라서'는 이미 크고 있는 식물을 키우는 것과는 달리 씨앗에서 발아를 시키는 것부터 시작을 하는 것인데 책을 읽기 전에는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었는데 별 하나의 난이도는 어쩌면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랄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몇년전에 비파를 먹다가 혹시나 싶어 비파씨를 마당에 묻어뒀는데 거기에서 싹이 올라왔고 그걸 무심코 그냥 뒀더니 지금은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라서 3년쯤 전부터 비파를 따 먹고 있는중이다. 사실 씨를 흙에 묻어두고 열매 수확을 한 것중에 단호박도 있고 깻잎은 오래된 들깨를 흙에 버리다시피한건데 그 다음해에 마당에 깻잎이 올라와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코딱지만한 마당에 그렇게 열매를 맺기도 했고 그런것에 재미들인 나는 수박씨도 묻어뒀었는데 덩굴줄기가 조금 뻗어가며 꽃을 피우기까지는 했지만 수박 열매는 보지 못했다. 

아무튼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스스로 자라난 과일, 채소 모두 씨앗에서 발아한 것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을 참고하면서 싹을 틔워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겠다, 싶은 자신감도 생겨난다. 


의외로 아보카도도 난이도가 별 하나여서 시도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신선한 아보카도를 구해야하는데 어쩌면 싹을 틔우는것보다 신선한 씨를 구하는 것이 더 높은 난이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난이도를 세 단계로 나눠 각각의 씨에서 발아하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세세한 설명이 담겨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씨앗부터 발아를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 

"자연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기본 원칙을 잘 지키며 즐기는 것, 경험을 해 보면서 어떤 과일이 가장 빨리 새싹을 틔우는지 살펴보며 식물을 잘 돌봐 주는 것"(141)을 잊지 않는다면 가드너로서 훌륭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실려있는 제철 과일 달력을 보니 요즘 집에서 먹고 있는 사과와 키위 씨를 발아시켜보고 싶어졌는데 둘 다 쉬운 단계는 아니어서 좀 더 쉬운 것으로 시작을 해볼까 싶다. 책을 보면 너무 쉬워보이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은근히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되는데 자연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니,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즐기면서 하다보면 킬러썸도 언젠가는 그린썸이 되지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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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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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에 대해서도 미학을 논할 수 있을까?

위작에 대한 예술적 논의는 한번쯤 지켜볼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포르노그래피에서 생각이 막힌다. 솔직히 예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는데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인 사유를 읽고 있으려니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미적인 것이라는 영역의 설정은 인간이 세계와 관여하는 방식을 이해할 때 고려해야 할 차원을 하나 더 인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귀여움이나 아름다움의 판단은 대상이 시추인지 몰티즈인지를 인식하기 위한 지성적 판단과는 다르다. 굳이 그 영역을 언급해야 한다면 감성의 영역이다. 이렇게 미적인 것은 지식이나 도덕과는 별개인 또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을 상정하게 해준다"(85)

그러니까 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며 지식, 특히 도덕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영역이라고 일컫는 것에서 더 어려움이 생긴다.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B급 정서를 이야기할 때 너는 재미없지만 나는 재미있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해,라고 한다면 B급의 미학은 어떻게 논할것인가.


이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었을 때 위작의 예술성은 어떻게 판단해야할 것인가. 포르노그래피는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농담과 유머에 담겨있는 예술과 도덕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공포영화의 무서움을 견뎌내며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명쾌한 답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깊이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사유는 산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명백히 도덕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가짜는 나쁜것이고 포르노그래피는 절대로 예술에 대해 논할 수 없을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에 대한 반례를 읽다보면 자꾸만 헷갈리게 된다. 페르메이르 위작 사건은 이미 너무 유명한데, 위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치밀한 작업뿐만 아니라 나치에게 위작을 판매한 것이 밝혀지며 정치적인 조작으로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 영웅이 되기도 한 판 메이헤런의 이야기에 더해 그가 그린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위작 여부를 떠나 예술성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짬짬이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의학의 시선으로 미술을 이야기하는 인문학서적이다. 그중 한 꼭지에 '아스클레피오스를 찾아온 여신들'이라는 작품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화가 포인터가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 싶었는데 사회적으로 음란의 시비가 두려워 여인대신 여신의 누드, 그러니까 여신의 몸을 진료하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미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포르노그래피가 될까, 예술성을 갖춘 고전작품이 될까?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그림엽서 중 하나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이라는 것은 솔직히 유쾌하지 않은 농담같은 이야기 같았다. 포르노그래피의 성차별과 폭력적인 언급은 차치하고라도 세상의 근원에 대한 예술성은 무엇일까.


농담과 유머라고 툭 내뱉지만 그것이 전혀 가볍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을 때 그것이 그저 농담일뿐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툭 던진 돌멩이에 맞아죽는 개구리처지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해도 되는걸까. 무심코 툭 던지는 행위에 도덕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불온한 것들의 미학'을 읽고 미학논쟁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져버렸다. 사실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들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사유는 명확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팔랑귀처럼 나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 같다. 어쩌면 생각의 여유없이 저자가 이야기해주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기만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찬찬히 미학, 불온한 것들의 미학에 대해 사유를 해봐야겠다. 아, 물론 도덕성,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아야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특히 포르노그래피의 폭력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학과 예술성에 대한 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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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군 2020-12-31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짧은 문장 몇 개를 읽고 님과 같은 고민에 빠지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책 구입도 하기 전 인데요. 책 구입을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뷰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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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를 읽어본게 언제였을까?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동물을 의인화 시켜 짧은 동화나 만담처럼 그려진 글들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어린 생각에도 가끔은 당황스럽게 이 이야기는 뭐지? 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사실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교훈만 담겨있는 글들이 재미있기만 했겠는가. 글에 담긴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 좀 부끄러운 기억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 다시 이솝 우화를 읽으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솝 우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성인들의 계몽을 위해 쓰여진 글이 맞다고 하니 더더욱.


이 책은 이솝 우화의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의 텍스트본은 1927년 에밀 샹브리가 간행한 책으로, 초판본은 그리스어 알파벳 순서로 번호를 매긴 뒤 각 우화의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배열해놓은 두 권의 책에서 358개를 추려내 단권으로 펴낸 책을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린시절에 읽은 책에는 이솝 우화의 내용만 담겨있는데 - 사실 그래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뭘 말하려고 하는걸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글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가 그렇게 많은 의미를 깨달을수가 있었겠는가말이다. - 이 책에는 각각의 이야기에 해제처럼 그 이야기가 전하려고 하는 교훈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조금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거기에 일러스트가 더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읽게 된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그런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많아 그런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낯익었다. 그런데 설마 그 낯익었던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이솝 우화에서 나무꾼과 헤르메스로 읽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산신령과 헤르메스를 동일인물로 생각하기에는 그 간극이 좀 당황스럽지 않은가말이다. 그러고보면 서양의 시각으로 헤르메스는 멋진 신이고 우리 전래의 신은 흰수염이 치렁치렁한 산신령이라니, 우리의 산신령님이 그냥 할아버지 이미지가 아니라 멋진 수염 날리는 전령의 신으로 생각해볼까봐.


한가지 덧붙이자면 책에 수록된 삽화 역시 꽤 맘에 든다. 그림을 그린 이 중 아서 래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도 그렸다고 하는데 몇몇 그림이 낯이 익었던 이유가 그래서였던 것 같다. 완역본이라는 의미와 클래식 일러스트의 수록이라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조금 더 높이고 있겠지만 단순히 그런 것뿐만 아니라 당연한 잉과응보, 권선징악의 당연한 세상 진리가 꼭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솝 우화를 더 재미있게 읽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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