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주는 그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위가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은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
보미야, 이게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잖아. 우리가 좀 더 병원에 빨리 갔더라면 뭔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걸 선택하지 못했고, 이제 아픈 칸트가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된 거야. 이제부터 주어진 삶을 우리도 칸트도 열심히 살아야지, 안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아픈 칸트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거야.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





손보미, 사진을 많이 찍고, 이름을 많이 불러줘 - P37

그건 네 일이 아니잖아. 왜 직장에다 화풀이를 해. 공과사를 구별해야지. 코로나 시대잖아. 컴플레인 들어오면 답도 없어. 그거 내 일 맞아 맞다고요. 너랑 내가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듯이.



최미래, 지난이야기 - P122

나한테 노란딱지 주고 싶을 때 없었어? 라고 물으면 노수는 너무 많아서 다 까먹었다고 대답할 거였다. 분명 나도 그랬을 테니까. 잊어버리는 것도 배려구나. 하찮다거나 대수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함께하고 싶어서 지우는 기억도 있구나.

정무늬, 노란딱지 - P144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상대를 깊이 이해하며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서로를 향한 마음과사랑이 아닐까. 밤이 깊어야 별은 더욱 빛난다고 하더니 어쩌면 두렵고 암울한 코로나로 인해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사는 건 언제나 모순의 연속이다.




장은아, 코로나 속에서 발견한 작은 행복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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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이현욱 옮김 /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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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문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은 없다. 사실 나는 소설파가 아니라 에세이파여서 그의 문장력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카무라 구니오의 '하루키의 언어'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의 내용이 어떨지 궁금했다.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확실히 이 책은 에세이보다는 소설에 중점이 더 있는 것 같아서 아쉬운 느낌이 많았다.하루키의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이 책을 읽었다면 확실히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말이다. 


별생각없이 읽었던 글인데 하루키 소설의 제목이 주는 독특함이라거나 그가 만들어내는 신조어, 논쟁을 피하기 위해 한없이 가벼운 글을 쓰는 듯 하지만 그가 정말 생각없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처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 때는 한없이 가볍고 가벼운 에세이를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글을 읽다보면 에둘러가다가 뭔가 따끔한 느낌이 올때가 있다. 

하루키는 에세이 연재를 하게 될 때 그때그때 떠오르는 글을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1년이라면 50개의 글 주제를 다 계획하고 정리해놓고 준비한다고 한다.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의 주관과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기사단장 이야기에서 난징대학살을 이야기한것만이 아니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끄집어 낸다는 것에서도 알수있다. 


사실 하루키식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지만 잘못받아들이면 하루키의 흉내를 내는것이 될 것이라 그저 이 책을 하루키의 글에 대한 글로 읽었다 에세이만 주로 읽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조만간 하루키의 소설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조만간 또 새로운 하루키의 에세이가 번역 출간된다는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키 소설의 제목에 대한 특이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루키의 소설 제목만이 아니라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같이 떠올리게 한다. 등장인물의 기묘한 이름과 어느 즈음으로 표현되거나 예측되는 것과 달리 명확한 숫자가 적혀있는 하루키의 소설들, 그리고 저자는 어쩌면 하루키의 팬에 대한 서비스같기도 하다는데 하루키의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그의 다른 소설에 연결되면서 등장하기도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정말 그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공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이해하고 넘겨야만 하는 내용들이라 아쉬웠다. 

최근에 하루키의 그림책 '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는데 바로 그 양사나이, 양도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하루키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음악을 같이 떠올리며 배경음악처럼 소설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읽는다고 하는데 문장속에 표현되는 음식, 숫자, 색채, 등장인물의 비현실적인 이름까지도 모아놓고 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하루키에게 배우는 맛있는 문장 쓰는 47가지 규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굳이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운다기보다 하루키의 작품들에 대한 분석과 작품에 녹아들어 있는 의미들을 알게 된다는 즐거움이 더 큰 책이다. 에세이말고 하루키 소설을 몇 권 더 읽고난 후 다시 이 책을 펼쳐들면 더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어쨌든 결론은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전에 그의 작품들을 읽어야겠다는 것. 이 또한 기대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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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16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하루키가 왜 그렇게 대단한 소설가인지 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문장을 잘 쓰는지도... 물론 괜찮은 작가고요. 책이 나오면 저도 꾸준히 보기는 하는데 볼 때마다 이렇게 한국에서 열풍이 불 정도인가에는 좀 회의적이더라구요.
책 취향은 진짜 사람마다 다르지만요. ^^

chika 2020-09-17 08:52   좋아요 0 | URL
독서취향은 정말 다 달라서리...ㅎ
전 하루키가 유독 좋다기보다는 에세이는 대부분 잘 읽는편이예요.
그리고 하루키소설은...몇번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제대로 읽은 소설은 없다고봐야죠. 아, 그림동화나 짧은단편은 읽었지만요. 기사단장죽이기는 읽어보고싶어요. 선물받은책이기도해서요. ㅋ
전 취향이야기하면...김훈작가님. 최근에 나온소설을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화려한 문장속에 뭐가있지?라는 느낌이라서. ..난 아닌가보다 했어요. ^^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칼날이 닿자 살갗이 찢어졌고 번개처럼 뜨거운 은백색의 고통이 쏜살처럼 나를 갈랐다. 나에게는 삼촌의 능력이 없으니 빨간 피가 흘렀다. 상처는 한참 동안 피를 흘린 다음에야 저절로 아물어갔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걸 지켜보았고 그러는 동안 새로운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기 손이 자기 거라는사실을 깨달은 갓난아이처럼 너무 미숙한 발상이라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내가 그랬다. 나는 갓난아이나 다름없었다.
그 생각이란, 내 인생 자체가 뿌연 심연이었지만 내가 그 어두컴컴한 바다의 일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 사는 생명체였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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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20-09-21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세상이 원래 부당한 곳이잖습니까. 388

오디세우스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뿐만아니라 그 누구도 할 수 있는말이다.
하늘은 왜 침묵하는가.
 
빨강머리 앤을 찾아서 -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여행
양국희 지음 / 쿠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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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만나봤을 빨강 머리 앤,은 애니메이션이 있기에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 좋아하던 아이들이 많았지만 특히 더 궁금했던 셋이 있어요. 산을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는 하이디가 사는 다락방도 궁금했고,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가 가꾼 장미 정원을 산책하고 디콘과 함께 무어를 뛰어다니고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기쁨의 하얀 길을 걷고 눈의 여왕과 눈맞춤을 하며 빨강머리 앤과 함께 수다를 떠는 느낌도 갖고 싶었지요.

그런데 가끔은 그린게이블스를 떠올리면 좀 슬퍼지기도 해요. 사실 아이가 넷인 집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지 못한 제게 가장 친한 친구는 책이었지만 글자를 알기 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집에는 그림동화책이 한권도 없었어요. 막내인 내가 글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이미 전집으로 된 청소년용 전집이 있었고 그 중 한권이었던 빨강머리 앤은 길모퉁이에서 길버트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끝이나는 이야기였지요. 그런데 언젠가 학교에 친구가 책을 갖고 왔는데 알록달록 그림이 담겨있는데다가 앤이 길버트와 결혼도 한다는거예요. 빨강머리 앤의 내용도 모른다며 친구에게 무시를 당했지만 그 무안함도 금세 잊을만큼 놀라운 걸 그 책에서 발견했지요. 앤이 살았던 초록지붕집, 기쁨의 하얀 길이 실재한다며 사진까지 있었던 것이지요. 아쉽게도 책을 금세 갖고 가버려 더 많은 사진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때부터 앤이 탄생한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고 싶은 소망이 생겼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해외여행을 다니게 되었을 때도 가끔 생각나곤 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서 앤의 고향은 가기엔 너무 먼 곳,이 되어버렸어요. 그저 이상향처럼 되어버렸는데... 지금 이 책을 마주하니 어린 시절의 소망을 접어버리기엔 너무 빠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빨강머리 앤을 찾아서, 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앤과 앤의 가족,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수채화로 담아낸 책이예요. 거리의 풍경에서부터 박물관으로 보존된 몽고메리의 삶의 모습, 아담한 그녀를 상상해보게 되는 웨딩드레스의 그림도 있고 앤이 지냈을 집, 다이아나와 촛불인사를 하던 창문이 보이는 초록지붕의 집도 있어요.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있어 그런지 앤의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나봐요. 저자 역시 수줍게 사진을 찍으셨네요. ㅎ


1인출판으로 글과 그림뿐 아니라 편집까지 저자 혼자 다 한 독립출판물로 독립서점에서 1쇄판매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게 되니 좋네요. 사진이 담겨있는 여행에세이도 좋겠지만 어린 시절의 친구인 앤의 고향을 그림으로 만나고 다시 어린시절의 꿈을 떠올려보게 되는 시간이 좋아요. 실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을 기다려보면서 그 기쁨을 누려볼까 해요. 이미 그 기대감만으로도 기쁨의 시간을 지낼 수 있고, 실제로 내가 그곳을 가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의 이 즐거움이 사라지지는 않을테니 마음껏 지금의 즐거움을 누려봐야겠어요. 함께 가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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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의 일 - 언어만 옮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서
박소운 지음 / 채륜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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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통역사의 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그것도 하나의 '일'이라는 개념이었기때문에 나와는 다른 시선의 일상을 살아가는 직업군의 에세이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까이에 통역을 업으로 해보겠다며 학교를 다니고 그 공부의 양이라는 것이 무시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통역사의 일,이라는 것에 좀 더 관심이 갔다. 그러니까 우연히 지인을 통해 통역 알바를 부탁받아 전해주었을 때 밥을 먹으면서 하는 통역은 밥통이라고 하는데 그런 경우 통역은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사여부에 따라서도 일이 달라진다는 얘기에 뭔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정상들의 만찬 장소에서도 통역은 필요할 것이지만 그런 자리에서 통역사들이 편하게 같이 식사의 여유를 즐기며 대화를 나눌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통역사의 일,은 십여년이 넘게 통역을 하면서 경험한 일을 삶의 이야기로 풀어낸 에세이이다. 기자생활을 하다가 그 일을 접고 통역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돌아갈 곳이 있으니 일을 너무 쉽게 그만둔다는 얘기에 통역일을 하게 되면 십년이상은 반드시 이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기자였었다는 것을 '기레기'였었다고 표현하며 깎아내리려는 동료의 모습도 보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통역자료를 공유해서 미리 준비를 해놓고 저자의 실력을 낮추려한다거나 자격지심에 함께 일을 하는 동료의 실수를 더 크게 드러내려는 모습들은 일반 사회 조직의 못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또 반대로 서로를 칭찬해주고 감싸주며 자신의 담당 파트가 아닌 부분에서도 헷갈리기 쉬운 숫자를 메모해 넘겨주는 멋진 동료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통역을 하면서 체험한 이야기가 많지만 일을 하는 엄마로서의 이야기도 있는데, 통역사 업무의 특성상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고 그렇게 일을 하는 엄마로서 겪은 일들은 아직도 일하는 엄마들에 대한 편견, 특히 정규직이 아닌 경우 '고작 알바'라는 업신여김도 담겨있다는 것은 좀 놀라운 일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육아에 대한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다. 


통역사의 에세이지만 그 또한 삶의 이야기이니 재미있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역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해 그 무엇이 되었든 최선을 다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하며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였다. 특히 통역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교차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통역사의 일이라는 것은 더욱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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