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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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시절 이후로, 그러니까, 요즘도 나는 가끔 기형도의 시를 들여다본다. 나는 특히,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로 시작하는 그의 시 '오래된 서적'이 제일 좋다. 그리고 '휴일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게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라고 시작하는 '흔해빠진 독서'라는 시도 좋다.

나는 그렇게, 그의 몇몇 시가 미치게 좋지만, 그의 시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 같은 건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또한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가 참, 기적적으로 여겨지는 사람이기도 하고 휴일 대부분을 방구석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을 일삼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의 시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나.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고 기형도는 시 속에서 말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죽은 사람들은 불행한 생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휴일 대부분을 죽은자들에 대한 기억으로 심란한 나는 죽은 기형도라는 시인의 생애가 이해하기 쉽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기형도보다 훨씬 앞서 죽은 비트켄슈타인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두 번째 부분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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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형도 전집이 신간으로 나오자 마자 사서 읽었더랬습니다. 그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기만 했었죠...

icaru 2004-03-1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이는 종로에 있는 모 극장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죠.... 시가 무척 어둡지요? 한때는 어두움을 풍기는 것이 퍽 편하게 여겨졌더랬어요.... 지금은? 밝고...즐겁고 싶은 바람이 커서리...
 
여자들의 동경 여행
김명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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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디자인과 기획면에서 뛰어남을 입증하는 책이 있다. 특별 부록으로 동경 지하철 노선도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 그뿐인가, 책의 맨 뒷부분에는 도쿄 여행 정보에 관한 메모를 할 수 있는 메모지란도 마련했다. 사진과 삽화들이 굉장히 많이 수록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의 디자인은 눈을 편안하게 한다.

이 책은 패션 뷰티 잡화 맛집 등 진짜 도쿄 멋쟁이들이 찾는 단골집 359개를 꼼꼼하게 다룬 책이다. 그리고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오다이바, 다이칸 야마, 지유가오카, 긴자, 롯폰기 등으로 분류하여 거리에서 만난 멋쟁이 여성들의 사진들을 실어 동경의 지역색을 더해 준다.

또한 동경 근교의 하코네와 도쿄 디즈니랜드 등 하루짜리 여행 코스들을 자세히 소개해 주며, 동경에 있는 우에노, 요요기를 비롯 갈만한 공원들도 빼놓지 않고 다루어 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어를 소개한다.

나는 쇼핑 마니아도 아니고, 예쁜 것, 아기자기한 것에 사족을 못 쓸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기획에는 쏙하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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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철학 - 문화마당 5 (구) 문지 스펙트럼 5
김영민,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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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5년 봄부터 1996년 가을까지 부산일보의 '문학 속의 철학' 란에 철학을 전공한 젊은 교수님들인 이왕주와 김영민 두 사람이 매주 연재한 글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신문에 연재한 글이어서 그런지, 한 주제 아래에서의 한 편이 페이지로 3~4쪽 분량을 넘지 않는다.

문학 평론도 아니고 본격 철학도 아닌, 애매한 범주에 놓인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좋다. 더러 들리는 철학과 문학의 과장된 불화는 어쩌면 근거없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삶 속에는 문학도 있고 철학도 있어서 서로 만나고 있는데 왜 글에서는 문학과 철학이 결합할 수 없겠는가. 어쩌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올리고 있는 글쓰는 행위의 본질도 결국 '소설 속의 철학'이 지향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잡글 쓰기' 방식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국내의 소설들, 광화사, 백치 아다다, 봄봄, 운수 좋은날, 날개 같은 중고들학교 권장 소설 냄새가 나는 작품들을 비롯,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김형경의 담배 피우는 여자와 같은 1990년대 소설, 그리고 국외로 가서, 백경, 목로주점, 킬리만자로의 눈 등등과 같은 소설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

특히나 이 책에서 인상적인 진술로 여겨진 부분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흔히 인용되는 대목이지만,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말라 얼어죽은 한 마리의 표범 시체가 있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행동적 삶 속에서, 작품 해석의 모티브를 찾는다. 즉, 헤밍웨이의 삶이 시사하듯 이 작품도 찾아야 할 무엇 혹은 행동 너머의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본질이 될 만한 무엇 쉼터가 될 만한 집이 없더라도 움직여야 하고, 찾아야 하고, 또 올라가야만 하는 행동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얼어 죽더라도 정상을 향해 끝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싶어한 표범의 이야기. 혹은 자살에 이르도록 그 행동의 고독을 피하려 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보고 있다.

이 책의 싸이즈는 B5 용지를 반으로 접은 싸이즈에 25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문지스펙트럼 책이 그렇듯 포켓북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각 텍스트들의 구구절절한 맥락들로 보아선, 이 책을 '포켓북을 가장한 백과 사전'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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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 인도차이나 남부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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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비야의 인도차이나와 남부아시아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순전히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읽게 되었던 책. 다 읽은 후엔, 베트남도 베트남이지만, 인도의 겐지즈 강가 '바라나시'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부터 중국 신장지방의 카슈가르에 이르는, 세계에서 제일 험하고도 경치가 멋지다는 '꿈길'. 그 두 곳을 죽기 전까지, 만사가 다 귀찮을 정도로 몸이 운신하기 힘들어지기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꼭 가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중국견문록> 이후 한비야의 책은 이 책이 두 번째 읽는 것이다. 덜하고, 더하고를 비교할 수 없이, 둘 다 재밌었다. 아니 사실은, 누가 쓴 것이든, 어느 지역을 다녀온 것이든, 이 세상에 쓰여진 모든 여행기는 다 나름으로 깨가 쏟아지게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부분은 한비야의 책을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니까, 그의 책의 특색에 대해 몇자를 더해야 겠지.

그는 주로 모든 위험과 고생스러움을 무릅쓰고, 굳이 산간 오지 마을로 찾아가 민박하며, 민박집의 집안일도 돕고, 풍속도 익히며 지내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 지역이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난민촌일지언정, 어디든 땡기는 곳은 찾아들기를 서슴치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생생한 논픽션을 듣는 맛에 손에 땀을 쥔다. 그러나 한비야가 탈레반의 공격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주거하는 경계 삼엄한 난민촌에 잠입한 부분에서는 너무 무리한다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한비야 본인의 목숨은 물론 혹, 연루된 가족들의 목숨에도 위험이 따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참상을 목도한 경험들을 통해서, 한비야가 남은 일평생 바쳐 난민을 위한 국제 기구에서 일하려 하는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미안마 북부 지방 산간 마을에서 즐겁고도 고된 식모 생활(?)을 했던 이야기, 아이 셋을 데리고 보트 탈출을 열세번이나 했던 라이 따이한의 당당한 어머니, 베트남 딥 아줌마와의 멋진 만남, 만하루를 꼬박 걸어서 찾아간 라오스의 산간 마을에서 만난 넉넉하고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한 이야기, 방글라데시의 오지 마을에서 여자들이 쇠똥을 긁던 손, 제대로 씻지 않고 밀가루 반죽해 만든 호떡 같이 생긴 짜대타를 맛있게 먹은 한비야. 정말 이런 다채롭고도 푸근한 경험들이라니...아흐~~~너무 부럽다.

그러나 종횡무진 과격 만빵의 팔팔한 한비야도 그 다혈질로 인해, 굳이 겪지 않아도 좋았을 일들도 몇 차례 겪게 되는데(이것 또한 여행기를 읽는 맛이지 않은가..), 캄보디아에서 비행기가 아닌 뱃길로 태국에 밀입국하려다가(한비야는 남이 하지 말라는 건 꼭 하고 싶어하는 성미가 있다^^.) 실패하고(이 일 때문에 보트를 몰던 뱃꾼이 태국 경찰들에게 맞아 죽을 뻔함.), 다시 비행기를 타고 태국에 가려다가 그것 마저도 잘 되지 않던 차에, 통 아저씨라는 유순한 입국 심사 책임자(비야님이 만나본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체로 잘 웃고, 순한 기질을 소유했다고 한다.)를 만나는 행운으로 간신히 비행기를 타게 된 한비야.(통아저씨에게 통사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더라면 어쩔뻔 했나...그래 봤자, 일정에 조금 차질이 오는 정도였겠지만..)

불과 8~9년 전만해도 인도차이나와 남부아시아로의 해외 여행이 당국의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모로 어려웠고, 자유 여행이 가능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베트남의 경우에는 한국 기업들의 공장들이 많고, 그 때문에 예전보다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베트남 현지에 가 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바라 본 한국인들의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들었다. 현지인들을 너무 얕보고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도 인도차이나로의 여행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그럴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호시탐탐 멀리 나가볼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니까.) 그들에게 정감가고 풋풋한 한국인의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도, 해외에 나가서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작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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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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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비평계와 세간에서 이 책을 향해 숱하게 쏠리고 쏟아져 내렸던 찬사와 호평을 잘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내 식으로 굳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하자면, 이렇다. 스물 한살의 프랑스 작가가 써내린 소설치고 퍽 훌륭한, 18세기 말을 배경으로한 베트남 여행기이네. 라고.

이 소설의 행간 어느 부분도 도발적이고, 문제적이라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부분이 없다. 그저 담담하고, 아릿하며, 고독하고 무상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평정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길에 꺼내 놓고, 행간 사이를 음미하며 읽으면 전율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던 당시는 절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졸면서 띄엄띄엄 읽었기 때문인 즉, 감동은 반감하고 말았던 거 같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다 죽었다. 베트남에서 온 어린 왕자는 멀고도 낯선 이국 땅 프랑스에서 외롭게 죽었고,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여러달에 걸친 뱃길로 미지의 세계, 베트남에 도착한 선장과 선교사 수녀들도 우여곡절 끝에 모두 죽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숲속에서 살해당하거나 부상으로 죽었고, 선교사와 수녀 몇은, 프랑스에서 어린 아들을 외롭게 죽도록 한 데 대해 상심한 왕의 폭정으로 살해당하거나, 풍토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물론 이 모든 죽음이 참혹하고 슬픈 것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초점은 그 참혹한 슬픔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죽어 잊혀지는 것이 생의 의미라는 것을 미학적으로 보여 준다고나 할까.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프랑스 선교사와 수녀들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거나 베트남말을 배우는 등 논밭을 함께 경작하는 등 프랑스에서 지니고있던 모든 것을 잊고 이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 원주민과 더불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살고 있었던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 일행은 다른 지역에 선교를 할 목적으로 일부 선교사와 수녀 몇을 처음 정착한 마을에 두고,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고된 여행길에서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만이 살아남게 된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베트남에 왔지만, 이들의 일행은 모두 죽었으며 이 둘만이 고립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두 사람은 구체적인 생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들이 항상 나누던 기도와 복음과 말씀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7년이 지난 후, 이 둘은 한 날 같은 시간에 병으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사족을 좀 달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베트남의 지역색도 아울러 맛볼 수 있기를 바랬다. 푸른 벼와 연잎에 찐밥, 코끼리를 타고 밭을 경작하고, 어린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 순박한 원주민, 풍토병.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말이다.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 제목이 보여 주듯...... 알 듯 말 듯 모호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베트남의 풍광 묘사를 메우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체가 이것이 이 소설의 미학이라고 하니, 뭐 그런 줄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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