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현종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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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은 책을 통해 소개 받는 경우가 많다. 일테면, 밑줄 긋는 남자에서 로맹가리의 소설들을 소개 받고, 상실의 시대를 통해 이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하듯 말이다. 나는 최근 뉴욕과 관련된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시공 디스커버리에서 나온 뉴욕을 읽다가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느낀 게 있다. 외국 소설은 번역자를 잘 보고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시인이 번역한 소설은 남다른 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역시 편견이다. 다른 번역자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맥락이 끊기는 단절감을 수시로 경험해야 했을까? 정현종 님의 번역을 에누리없이 말하자면 그거다. 당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이 소설이 유명세를 동반하는 것은 1920년 당시의 뉴욕 상류 사회의 모습, 특히 남녀 관계, 결혼 생활, 부자에 대한 모습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데에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고전 중에 고전의 형태인 로망스를 담고 있다는 것. 어릴 적에 읽어대던 하이틴 로맨스들은 <위대한 개츠비>의 형식을 빌어 답보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저 미치었으니.

데이지는 한낱 군인에 지나지 않던 5년 전 신분의 개츠비를 사랑하고는 있었으나, 그가 옥스포드로 파견을 가게 되어 데이지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데이지는 차분히 개츠비를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이 타자에 의해 어떤 확실한 형태를 갖추어지길 바랬고, 게츠비가 귀향하지 못하고 있는 그 상황은 무척이나 불안했으리라, 그러다가 만난 부유한 톰에게서 어떤 안도감을 느꼈고, 그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5년만에 만난 부자 개츠비를 보고 그에게 마음이 가는 걸 느꼈지만 현재의 남편과 이혼을 해야 하고 어찌하는 둥의 일련의 일들에 엄두도 안 났으리라.

반면, 이미 유부녀가 된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노력은 그가 갖춘 위엄과 재산의 정도로 보았을 때, 가히 귀엽고 순진해 뵈는 수준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지나친 야망을 품은 것이었다. 왜냐, 데이지와 게츠비는 너무나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는 데, 둘이 재결합이 불가능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데이지 쪽의 삶의 스타일은 엉성하며, 무책임하고, 산뜻하며 경쾌하다면, 개츠비는 그와 다르다. 개츠비의 뚝심과 책임감은 데이지가 저지른 교통 사고의 책임까지 스스로 짊어질 정도이다. 결국 그 사건이 개츠비의 죽음을 불러오게 된다.

이 스토리는, 태생적으로 부유한 사람과 후천적으로 부유해진 사람이 결합하고자 하는 데서 발생한 비극적인 에피소드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이 작품의 주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면 않을 그런 주변적 문제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 소설에 드러난 돈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과 삶의 엉성함 대한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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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 벗기기
김도연 지음 / 산성미디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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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시사하듯 일본의 TV 라는 매체를 통해 보다 더 일본의 풍속도를 슬쩍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읽게 된 책이다.

일본 텔레비전을 본 유학생들은 처음에 매우 놀라게 된다고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 먹는 것과 성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는 데.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현대 문명의 거울이라고 본다면 일본의 문화를 아주 관능적이고 단순하다고 평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일본인들 스스로조차도 텔레비전은 반은 허구라는 가정 위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문화적 지표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로 텔레비전 만한 게 또 있을까?

그리고 또 이런 다른 나라 텔레비전 보기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의 정서를 읽어 낼 수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좀더 잘 살고 좀더 여유를 부릴 수도 있으리라는 욕심이 자꾸 내게 이런 책을 읽게끔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은 일본의 텔레비전에 대한 것들을 포함해서, 지은이가 유학 생활을 하며 느낀 것들에 대해 걸러지지 않은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서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유학을 계기로 차(茶) 문화를 좋아하게 되고, 장훈이나 선동렬 선수의 일본에서의 투혼에 감동하여 야구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어느 한국 사람의 개인적인 문화 체험기로 읽는 것이 받아들이는 데 편하다.

심야에 불도 켜지 않고 자전거를 탄 일 때문에 경찰들에게 불신 검문을 받으면서 경찰들과 데이트(?)를 한 이야기, 노천 온천에서 벌어진 헤프닝 같은 것들은 실제 벌어진 일들의 기록이라 읽기에 좋고, 일본의 성 문화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한 부분에서는 필요 이상의 선입견을 독자에게 심어 준다는 느낌도 들고, 일본의 기업들과 비교하여 한국 기업이 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글들은 논리적인 근거가 빈약하여 조금은 터무니없이 느껴지기는 했고, 때때로 일본통 다른 책들에서 수차례 다룬 것들이라 새로울 것이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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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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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는 주변의 다른 발칸 공산국가들보다도 더 엄격한 공산 체제의 나라라고 한다. 역자의 후기를 보면 작가 카다레는 '혹독한 공산 체제하에 비참하게 일그러져가고 있던 알바니아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그는 실제로 알바니아 출생 프랑스 망명 작가이다.) 새롭게 조국을 창조하기 위해 인간의 형법 중 가장 비인간적이라 할 약식 재판과 고문, 연좌법이 횡행하는 공산 체제에 맞서 사라져가는 옛 관습법을 들이대어 만든 것이 이 소설이라고 말했다.

즉, 비인간적인 공산주의는 한 가문의 일원이 다른 가문에게 살해당하면 피로써 복수하는 관습만도 못하다는 요지이다. '피에는 피'라는 이 카눈의 법칙은 누구의 피도 등가로 취급되기에 어느 헌법 체계보다도 '민주적'이고, 피를 잃거나 거두어들이지 않는 법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유혈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들어, 더더욱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얼핏 냉정해 보이는 관습법을 통해 공산주의와 대적하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 속 오로쉬성 대공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간파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정부들이 쓰러졌으며, 얼마나 많은 왕국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까? 그러나 오로쉬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작가 카다레가 만든 주인공 그조르그는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연상시킨다.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에 의해 살인을 저질러야 하는 운명에 내몰렸듯이,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왜 상대방의 가문에 대해 증오심을 갖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상대방의 가족의 일원을 죽여야 하는 운명에 내몰린다. 피가 피를 부르듯, 피의 관습법에 의해 30일간의 휴전이 끝나면 주인공은 상대 가문의 죽음의 표적이 된다.

카눈이라는 관습법의 지배 아래서는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주인공 그조르그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자유로운가?'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한 대답을 찾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힘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위안을 삼기도 한다.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은 삶이 조용하고 평안하다 할지라도 그런 삶은 그렇기 때문에 무미건조하며 무의미하리라. 차라리 이런 위업을 안고 가는 사는 삶이 하루하루 계절들이 그 속에 전율이 동반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복해지는 것일'거라고.

<부서진 사월>은 개인적인 나의 취향에는 별로 부합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 이유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관습법에 적용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고(여자와 성직자는 이 관습법에서 제외된다. 즉, 이런 슬프고도 기이한 운명의 주체적인 주인공이 결코 될 수 없다.),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회의 일면을 소상히 담고 있는 배경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자 주인공(이 소설 속의 모든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디안에게, 독자인 나는 막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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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6
제롬 카린 지음 / 시공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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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화보와 친절하게 붙어 있는 캡션글이, 수시로 나타나는 오탈자와 문맥이 잘 와 닿지 않는 번역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오려는 내 입을 막아주고도 남음이 있는 좋은 책이다. 오~! 뉴욕, 뉴욕, 뉴욕 그러나 나는 이 화려한 도시 뉴욕을, 19세기 즈음 어찌해볼 도리없는 가난을 면할 요량으로 이 도시에 들어온 이민자들의 연대기라는 입장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점을 잘 보게 한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네덜란드 선박의 선장들이 발견한 강어귀 근처에 작은 해외 거점들을 세운 것을 계기로 탄생한 도시, 뉴욕은 한편으로는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꿈꾸던 열망에 의해 탄생한 도시라 할 수 있다. 그 열망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신을 닮고 싶고, 그려면서 아주아주 부유해지고 싶다는 것. 한 사람이 뉴욕에서 부유하다는 것은 곧 신이 선택한 자를 지적해 주는 표시 같은 것이었고, 가난하다는 것은 반대로 악마의 낙인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 도시 뉴욕은 악마 즉 가난과 공존할 줄도 알았다.

1900년대 할렘(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할렘은 흑인 주거 지역이지만)은 100% 백인만 사는 멘하튼 교외였다고 한다. 이 천국의 주거지에 살 수 있도록 축복받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부유한 뉴요커들이었다. 그들은 요트 클럽, 문학 잡지, 음악 동호회, 미국의 자유의 옹호자들의 지부 등과 같은 '기호와 재산을 가진 부류' 였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불결한 공기와 먼지를 먹고 살며, 빛도 들어오지 않는 벽장 속에서 새우잠을 자며, 간신히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범죄가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일명 마태 효과 아닌가,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할지어다."  뉴욕은 이렇게 부자와 빈자, 어마어마한 사치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핍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뉴욕은 이민들과 난민들의 땅이기도 하다. 이민자들은 기존의 상업 체제 속에서 그들이 들어설 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들만의 거래 형태를 만들어 내야 했다. 또한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이민족들간의 파워 게임은 범죄 문화를 낳았다. 이 상황에서 뉴욕의 하층민 아이들이 나아갈 길은 도둑질, 가난, 매춘 밖에 없었으며, 적어도 갱 안에서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뉴욕은 범죄 문화가 꽃피운 갱스터의 도시로 그 모습을 갖춰 간다. 갱스터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하다. 그는 거리의 삶에 대해 감상적이지 않으며 덜 소외되었다. 최초의 범죄왕(일명 똑똑이)이라 할 수 있는 아놀드 로스스타인은 '대통령의 집무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입 속에' 돈을 쑤셔 넣기로 유명하다. 심지어는 미국의 제도 가운데 가장 신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마저 타락시켰는데, 1919년 그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선수 8명을 매수하여 가장 약한 팀인 신시네티 레드스에게 져 주게 함으로서 그 해의 월드 시리즈를 망쳐 놓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일련의 이민자들의 '빈곤'은 절망이라는 마비된 정신을 낳지만 또한 뉴욕을 개혁하려는 시도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뉴욕은 추한 도시 더러운 도시라고 한다. 뉴욕의 환경은 일종의 스캔들이고, 뉴욕에서 실행된 정책은 아이들을 두렵게 하고, 뉴욕의 교통 사정은 광 자체이고, 뉴욕의 경쟁은 살인적이다. 그래도 이것 한 가지는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번 뉴욕에 살아보면 그리고 뉴욕을 자기 도시로 만들면 다른 어떤 곳도 그만 못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 곳에 모여 있다. 사람, 극장, 미술, 문학, 출판. 살인, 강도, 사치, 가난 등 뉴욕은 모든 것의 총체이다.

뉴욕은 '우리'라는 인간 족속이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고 매우 추하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도시이지 않을까.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거대 도시란 이렇다. 부푼 꿈을 안고 지금 막 도시의 땅을 밟은 촌부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허락하며,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실체는 촌부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는 것. 촌부여! ~ 아무리 현실이 그렇더라도 우리 절대 기죽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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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학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115
조성우 / 대원사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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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추억을 해보면 나도 한때나마 글 조각이라면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읽어대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엔 세련된 디자인에 흥미진진한 내용이 담긴 서적들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엔 지금처럼 읽을 거리가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을까. 중학교 1, 2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 집에 그런 책이 있었다. 그 책은 엄마가 시집올 때 마련해 온 '가정 백과 사전'이었다. 책 한 권에 두께가 10센티도 족히 넘었다. 거기엔 요리, 인테리어, 수공예, 육아 기타 등등 가정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었는데, 맨 마지막 부분에 관상과 손금 그리고 꿈풀이에 관한 내용으로 꾸려져 있었고, 나는 그 부분을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까지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읽은 것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입이 간질거려서, 나는 학교에 가, 친구들의 손금과 관상을 봐 주곤 했다. 복채도 없이..... 그렇게 손금과 관상을 핑계로 말을 터서,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에는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던 것 같다. 해마다 변하지 않는 레파토리라, 책에서 본 내용을 거의 외울 정도였다. (지금은 그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당시 내 별명이 'XX 도사'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생이 너무나 뜻대로 안 풀린다 싶을 때는, 자신의 앞날이 너무나 궁금해서, 살풀이하는 심정으로 사주 운세 풀이 같은 걸 시도해 보게 된다. 나의 경우 노골적으로 점집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고, 인터넷으로 오늘의 운세 같은 걸 보던지 토정비결을 찾아 해 보는데 요즘엔 웬만한 건 다 유료라서, 그나마 자제한다.

그런데 얼마전에 대원사에서 나온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가운데 수상학이 있는 걸 알았다. 대원각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는 말그대로 '빛깔 있는' 사진 자료가 풍부하고 민속학과 관련된 한국의 정취를 담은 책들이 잘 나오기로 유명하다고 들은바 있었다.

저자는 '수상학'이란 손금을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의 대체적인 모양, 골격 형성, 피부 형태 손가락 형태 등을 보고 여러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한 사람의 체격, 적성, 수명, 성격 등을 다양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 책은 유형별로 분석과 풀이의 사례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사례에 해당하는 사람의 사진, 직업과 나이를 제시하고 그 사람의 손 모양과 손금을 보여 준다. (사례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유명 인사도 있는데 고르바초프와 옐친이다.)

수상학을 연구하고, 이를 십분 자신의 운명에 반영해서, 애경사에 미리 대비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보면, 이 책에서 건질 것 하나 없을 것이다. 글쎄.... 수상학이란 더는 거창해질 수 없는 그저 손을 통해 자신과 남을 판단하는 통찰력의 일환일 뿐이라 여겨진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심심풀이 재미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수상학이, 그것을 통해서 '고려 수지침'이 개발된 정도의 그 가능성에 비해, 아직 연구가 미미한 단계에만 와 있다고 아쉬워한다. 예부터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자는 운명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반성하고 참회하게 된다'고 했다. 내 손에 담겨진 나의 운명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앞날의 길'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더듬더듬 만져본다. 실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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