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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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집필되기 전, 우주비행사들이 표현한 우주 체험은 단순히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경험이었다' 식의 서술로 일관되었었다고 한다. 우주 체험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조차 당시의 우주 비행사 자기의 내면에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었다고. 그러나 그들의 글의 행간에는 자신의 거대한 체험과 그 의미를 좀더 잘 전달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났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들은 이공계통의 전문가들이며, 그럴싸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시인도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말처럼 만약 우주비행사가 시인이나 철학자라면 우주선은 우주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고, 도착했다고 해도 지구로 귀환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

이렇게 쓰고 있는 쪽도 답답하고 안타까울테지만 읽는 쪽은 더 답답한 우주 비행사 우주 체험기가 횡행한 와중에, 다치하바나 씨는 우주 비행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체험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이 책을 집필한다. 이 책을 통해서 보니, 정말로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 체험 이후 사고 방식과 인생관에 큰 변화가 있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 면에서 보았을 때는 귀환 후 정신 질환을 앓고, 우주 비행에 대해서 공개적인 언급을 꺼려하는 엘드린의 이야기가 제일 극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우주 비행사들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내게 제일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지구상의 미래에는 밝은 전망이 없다고. 왜냐 하면 그건 인간이라는 종 내부에서 점점 획일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것은 모두, 교통 통신의 발달과 환경의 획일화라는 문명이 초래한 현상에 의한 것이다. 하나의 종이 건전한 생명력을 보존해 가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구 위에서 인간의 환경은 획일적으로 온건하게 되어 간다. 이런 종은 종으로서 약해져 간다. 언제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대파멸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주에 진출한 인간은 우주라는 가혹한 환경에 단련되어 보다 강한 종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9.11 테러 이후 미국 국민들의 애국심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거듭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극보수애국주의 성향의 미국인들이 이 시점에서 읽어 줘야 할 책이 바로 <우주로부터의 귀환>이 아닐까.

우주에 나가면 국가간의 대립 항쟁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가 하는 인식이 생긴단다. 그리고 혹독한 우주 환경이 우주로 진출한 인간끼리 서로 의존하도록 만들고, 살육하기 보단 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단다.

지구에 있는 인간은 결국 지구 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 뿐이며, 사물을 평면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평면적으로 보는 한 평면적인 차이점만 자꾸 눈에 띈다. 왜 미국보다 훨씬 못사는 약한 나라가 철혈강국 미국에게 무모해보이는 테러를 자행하려 했었는지는 헤아려보려는 태도는 취할 생각도 없이, 그저 눈에는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이렇게 극보수애국주의자들에게 우주로 나가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이 사람들의 인생관에 큰 변화가 생기겠지. 그리고 자국의 강력한 에너지를 밖으로 향하기보다는 안으로 향하여 쏟게 될 것이다. 한 사회의 복지와 한 가정이나 가족, 더 좁게는 자신의 내적 정신 상태 같은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시간 현실 속의 우리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인간이 얼마나 에고 덩어리이며, 다양하고 저급한 욕망, 증오, 공포 등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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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에바 헬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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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위해 들고 다니는 내내 화려한 책 표지와 책 제목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본의 아니게 집중시키며 다녔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모든 것이 달라지더라고 말하더냐'고 직접적으로 내게 물었는데 거기에 합당한 대답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마땅한 대답 대신 '한 남자 때문에 지지고복고 하던데.'라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주인공 '나'는 스물 다섯 즈음에 영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자칭 진보적인 지식인 여대생이다. 그렇다, '자칭'이다. 스스로를 퍽 자부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학교에 강사인 고트프리트만 빼고(이 소설의 막바지 부분에 가면 주인공 '나'는 이 인물에게 가장 많이 실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약간은 속물 취급을 하거나 한수 아래로 보곤한다. 물론 때때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녀 내부의 목소리를 글줄로 읽을 때마다 '사실은 너,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셈이야!' 하며 냉소적인 포즈를 취하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악의적이지만은 않게 그러니까 유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끊임없이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독자이며 여성인 '나'의 모습들을 보는 것도 같아 마음이 껄쩍지근해지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주인공 콘스텐체와 그 주변의 여러 여성들의 인물 유형은 남다르고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사실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항상 지적인 자기 향상에 가치를 두고서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사회의 인습과 제도를 거부한다. 딴에 그렇다는 거다. 이런 그녀는, 이 사회의 결혼 제도와 가족 제도는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권력 유지의 수단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자연스런 자아를 왜곡시키는 억압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동거인이자 애인인 잘생기고 인색한 병원 수련의로 있는 남자 친구 알베르트가 있었지만, 그는 '나'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동반자가 되기엔 부족한 전형적인 현실주의자이다.

그녀는 이성적이며 전적인 상호 합의하에 이 남자 친구 알베르트와 이별을 한다. '전적인 상호 합의 하의 이별'란 이 글의 나래이터이자 주인공이 말하는 진술이고, 독자가 보기에는 함께 쓰던 소지품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 내 것이라 네 것이라고 옥식각신 할만큼 치졸한(?) 결별이었다.

그리고나서 지성적인 남성의 전형으로 생각한 영화 학교 강사 고트프리트와 동반자적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 고트프리트의 실체는 '혁명가를 가장한 아주 완강한 보수주의자'의 그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영화 학교 강사와의 교제 시도는 '나'에게 실망과 좌절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관계의 허구성에 대해 깨닫는다.

결국 헤어졌던 옛날 남자 친구 알베르트와 다시 재결합 즉, 결혼 약속을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란 상대방의 인생관과 인격을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맞춰 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소설의 작가는 장장 500페이지 남짓되는 이 소설을 큰 사건도 없이 끌고 온 것 셈이 되긴 하지만, 뭐 퍽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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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밥 먹구 가 - 오한숙희의 자연주의 여성학
오한숙희 지음 / 여성신문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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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측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매우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 가르침이란 항상 따금한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고 유하게 만드는 스타일의 가르침도 있나보다.

첫째, 나에겐 물건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예전엔 엄마가 친척집에라도 방문을 하기 위해 여러 날을 비울 일이 생기게 되면 꼭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필요한 물건을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가족끼리 살다보면 흔히 발생하는 문제이다. 무엇인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자리에 두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들.

그런데 자리를 못 찾는 물건을 다 제자리 찾아 주시며, 물건을 찾느라 벌어지는 대혼란을 항상 소리없이(물론 잔소리로 들리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평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집안의 모든 서랍에 무엇이 있고, 없음을 꿰뚫고 계시는 듯하다. 어머니는 물건 정리하는 게 사는 낙이라서 이 고생을 자처하시는 것일까? 평소에 별로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미치었다. 생색도 안 나는 이런 노동을 항상 엄마라는 존재가 도맡아야 하다니.

일반 일리치라는 가톨릭 신부는 <젠더>라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갈수록 이런 그림자 노동이 늘어난다고 했단다. 그의 책에서는 현대 사회의 여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부분이고, 꼭 필요한 일임에도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예를 들면 '시장 보기'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 시장을 본다고 하면 돈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차를 타고 시장에 가야 하고, 사려는 물건을 둘러보고 가격을 비교해서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돈을 내고, 만약 돈이 모자라면 은행에 가서 찾아야 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 말이다. 이런 것뿐이랴. 집안일은 나날이 정교하고 세분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렇게 정교하게 세분화되어 가는 집안일을 완벽히 어렵다. 숙희는 이 부분에서 집안일을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 내는 인생의 '편집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집안일을 간략
화시키는 것이다.

둘째, 신영복님이 이 책의 저자 오한숙희씨가 들었던 어떤 강연에서 그런 말을 했단다.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음식을 쌓아놓고 혼자 먹기 시작한 것 같다고. 냉장고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이웃 사람들의 배가 냉장고라서, 내가 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주면 그 사람들이 언젠가 음식이 생겼을 때 내 몫을 챙겨 오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음식은 돌면서 정을 만든다. '빈 그릇 주는 법은 없다'고 뭐라도 담아 보낸다. 전기가 아니라 정으로 돌아가는 냉장고.

여성의 본질은 결국 자연과도 같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전제(시골살이의 일담)들을 통해서 보여 주고, 결국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게 서로를 끌어앉고, 감싸 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해 간다. 그리고 그 구비구비에는 시골살이의 여러 일화들을 풀어놓는 것이 이 책의 스타일이다. 그렇다. 아줌마의 구수한 입담이 느껴지는 편안한 책이다.

상석도 없고 말석도 없는 누구라도 끼어않을 수 있는 여유로운 밥상, 두레반을 펼쳐 놓고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다. 밥먹구 가. 라고. 이웃과 사는 지혜를 십분 발휘하는 것이 조금은 벅차게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함께 잘 사는 인생의 노하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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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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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마구마구 책을 읽어 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번 잡은 책은 무리하게 속도를 내어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철학 관련 책자들을 읽을라지면, 처음 부분을 읽다가 말다가 하다가 결국엔 내던져 버리기 일수이다. 속도가 붙질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지지부진하게 무한정 붙들고 늘어져 있을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이젠 이것이 아예 하나의 독서 패턴으로 자리를 잡아,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인문 철학 관련류의 책은 애초에 배제해 놓는다.

누군가 말했다. 책을 현명하게 읽을려면 어려운 책과 가벼운 책을 적절히 배합해 가면 읽어야 한다고, 어제까지는 좀 어려운 책을 붙잡고 씨름을 했으면, 오늘은 심각해지지 않을 책을 잡아야만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있어서, 균형 감각 같은 것이 생긴다는 요지이다. 나의 경우에는 항상, 읽는 행위가 계속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책읽기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갖도록 하는 책들은 후자, 그러니까 가벼운 소설책이었던 것 같다.

<밑줄 긋는 남자>는 딱 그 쪽이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로맹 가리라는 소설가를 좋아하는 발랄한 스물 다섯 살의 여자 주인공 콩스탕스가 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와 소통을 꿈꾸는 여자이다. 왜 누구나 그렇듯 이 여자도 지금 속이 많이 허하다. 이 때 마침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밑줄 친 부분들이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느낀다.

콩스탕스 또한 밑줄을 긋는 형식으로 알 수 없는 이 타자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간다. 그 시간 동안에 별 의미없이 다른 남자를 사귀다가 헤어지기도 했고, 한동안 책 읽는 걸 중단하기도 했다. 밑줄을 긋는 남자가 너무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나온다고 느꼈고, 콩스탕스는 그 모든 것이 너무 더디게 느껴졌던 것이다. 결국에 콩스탕스는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그 밑줄 긋는 남자에게 편지를 보낸다. 도서관 사서인 지젤을 통해서.

책은 콩스탕스로 하여금 타자와의 교류를 꿈꾸게 만들었다. 결말에서는 주인공 콩스탕스가 그리던 그 밑줄 긋는 남자를 만났는가? 이건 다음에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여기까지.... 지금 내가 조조거리면 재미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와 이 모든 일상이 모두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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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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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와 어떤 장소나 그만의 냄새가 있다. 심지어는 우리집 강아지에게서도 아무리 샴푸질을 해도 그 녀석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질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낯선 장소에 떨어져도 전에 맡은 적이 있는 냄새를 맡게 되면, 마음이 편해져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생선 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태어나고 버려진 그르누이는 천성적으로 몸에 냄새를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런 그는 냄새에 유난한 집착하며, 가히 후각에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급기야 향수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그르누이에게는 야심이 하나 생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향수계의 스승인 발디니나 드뤼오가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그를 죽도록 혹사시키거나 이용해 먹거나, 다른 동료나 세상 사람들이 그 자신을 지루한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 밖에 없다. 향수를 만드는 일. 그 향수로 말할 거 같으면, 그걸 뿌린 사람을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향수. 일단 그 향수를 만들면, 세상은 자기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모두가 자신의 편이 되니까. 정말 시작은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해서 처절하게 외로운 사람이 사랑을 갈구하는 전형적인 모습인가? 

세월이 흘러 드디어 그르누이가 원하는 대망의 향수를 완성하게 되었을 때, 그의 그동안의 살인 행각이 밝혀지고, 시민들이 모인 광장 앞에서 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 다다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스물 여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이 살인마를 잔인하게 처형시켜야 한다며 아우성이던 사람들이 그르누이가 처형장에 당도한 순간, 처형이 다 뭔가, 그에게 연민과 호감을 느끼며 급기야 사랑하게 된다. 모두 그 향수 덕분이다.

그르누이가 꿈꾸던 것이 드디어 성공했다. 일생일대의 기다리던 그 감격의 순간이 찾아왔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 그런데 가만있자 그렇지가 않다. 그르누이 마음이 달라졌다. 사람들로 사랑을 받는 이 상황이 혐오스럽다.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거지. 사람들은 진짜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그 무엇이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그에게서 단지 그가 연출한 분위기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르누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 그리고 그르누이는 그가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이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유 고약해라. 

그가 만든 향수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존재가 들키지 않도록 하는 향수, 다른 사람에게 순진하고 가여운 느낌을 주는 향수, 다른 사람들에게 단정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향수.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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