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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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럴드는 A급 국도, B급 국도, 시골길, 산길을 택했다. 나침반은 북쪽을 가리키며 바르르 떨렸고, 그는 그것을 따라갔다. 낮에 걸었고, 달이 안내하면 밤에도 걸었다. 1킬로미터, 또 1킬로미터, 또 1킬로미터 물집이 심해지면 덕트 테이프로 묶었다. 자고 싶으면 잤고, 그런 뒤에 다시 일어나 걸었다. 별빛 아래를 걸었고, 부드러운 달빛 아래를 걸었다. 달은 눈썹처럼 걸려 있고, 나무줄기들은 뼈처럼 빛났다. 그는 바람과 험한 날씨를 헤치고 걸었고, 햇빛으로 표백된 하늘 밑을 걸었다. 해럴드는 자신이 평생 걷기를 기다려 온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 알뿐이었다. (p.256)

 

 

해럴드는 오래전 같이 일한 직장 동료 '퀴니'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자신은 암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 중이고 해럴드의 생각이 났다며 작별인사를 적은 편지. 이에 해럴드는 왜 이십년간 그녀를 한 번도 찾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녀의 쾌유를 비는 엽서를 쓴다. 그리고 우체통에 넣기 위해 걷는데, 우체통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 놀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체통에 이 엽서를 넣고 전하는 일은, 어쩐지 지나치게 작은 일로 느껴진다. 그는 다음 우체통까지 걸어가 부치기로 하고, 그렇게 또 그 다음 우체통까지 간다. 그러다 결국, 그녀를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지금 걸어왔듯이, 계속 걸어서. 마침 배가 고파 치즈버거를 사먹기 위해 들렀던 주유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그에게 믿음을 준다. 당신이 강하게 그녀의 회복을 믿고 있다면, 믿는 대로 될 것이라고. 그는 걷기에 적당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나왔지만, 핸드폰도 집에 두고 나왔지만, 내가 이렇게 걸어서 그녀에게 닿는다면, 그녀가 죽지 않을 것이다, 라는 자신만의 믿음에 근거해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걷기는 단순히 그녀에게 닿고, 그녀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의 과거를 보여주고 그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도 준다. 자연의 빛깔에 대한 신비로움도 걷기 속에 있었고, 이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고민도 들어주게 된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한발을 다른 한발 앞으로 움직이는 신체적 활동 말고도, 머릿속에 무수히 떠다니는 아주 많은 생각들을 의미했다. 그는 낯선 이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희망을 얻고 또 절망을 얻는다.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은밀한 욕망과 비밀을 엿듣게 되고, 또 자신도 지금 무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말하게 된다. 그의 과거와, 그의 머릿속 생각과, 그가 다른이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는 일은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기쁨이었는데, 문득 내가 몇해전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님께 무작정 내가 힘들다고 토로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별한지 얼마 안됐었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기사님께 마구 내 마음을 얘기했던 거다. 그때 기사님은 내 얘기를 다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아가씨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딱 그만큼이었던 거에요."

어떤 은밀한 얘기들, 이를테면 고민과 상처 비밀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하는 게 더 쉽다.

 

 

사람들은 우유를 사고 있거나, 차에 기름을 넣고 있거나, 심지어 편지를 부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부에서 감당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데도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쉽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 노력의 외로움. (p.118)

 

 

 

그런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사실은 삶의 진리를 고스란히 보여줄 때가 있다. 삶의 진리란 사실 크고 대단한 게 아니니까.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깨닫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고 깨닫고 있다. 그리고 입밖으로 그걸 내는 일은, 누군가의 대화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면에서 해럴드 프라이가 오래오래 길을 걸으며 무수히 많은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건, 내게도 고마운 일이었다.

 

 

"걷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군요." 여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냥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으면 되는 거라고요. 하지만 본능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놀라곤 해요."

그녀는 혀로 아랫입술을 적시며, 말이 더 나와주기를 기다렸다. "먹는 것."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그것도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정말 어려워해요. 말하는 것도, 심지어 사랑하는 것도. 그런 게 다 어려울 수 있어요." 그녀는 해럴드가 아니라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는 것도요." 그가 말했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잘 못 주무세요?"

"늘 잘 자지는 못하죠." 그가 사과 쪽으로 또 손을 뻗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여자가 말했다. "아이들."

"네? 뭐라고 하셨죠?"

"또 다른 어려운 거요." (p.71)

 

 

그가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 희망과 용기와 격려를 주기도 하지만, 그의 희망을 짓밟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래, 이건 안되는 거였어, 내가 간다고 퀴니의 죽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이 다리로 거기까지 걸어, 하고 주저앉게 되지만, 역시 그럴때 다시 그를 일으켜 세우고 믿음에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해럴드는, 누군가 옳지 않은 행동,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지만, 그래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려는 이유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해럴드는 퀴니에게 닿기 위해 그녀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걷고 있듯이, 누군가는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를 향해 걷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모든 행위가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게 아닌가. 해럴드가 올거라는 믿음으로 퀴니가 기다리듯이, 퀴니에게 가기 위해 걷고 있는 해럴드를 모린이 기다리고,

 

 

"그이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나요." 그녀가 마침내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돌아오지요." 자음이 약간 뭉개진 렉스의 목소리가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 주는 바람에 그녀는 즉시 안심했다. 당연히 해럴드는 돌아온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싶어졌다. (p.191)

 

 

마르티나도 자신을 떠나버린 남자를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다.

 

 

"자기 물건은 다 놓고 갔어요. 개도, 정원 연장도, 심지어 새 등산화도. 그이는 걷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매일 잠을 깨면 이런 생각을 해요. 오늘은 그이가 돌아오겠지. 하지만 매일, 그이는 오지 않아요."

한동안 오직 정적만이 그녀의 말을 실어 날랐다. 해럴드는 인생이 정말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똑같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파트너의 개를 산책시킬 수도 있고, 신발을 신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곧 잃을 것이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일 년이 지났어요."

"모르는 일이지."

"알아요."

그녀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코를 훌쩍였다. 그러나 자신에게나 해럴드에게나 굳이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나타난 거예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걸어간다면서." 그녀가 다시 거기까지는 못 걸어간다고 할까 봐 그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아저씨 같은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있어요."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기다리고 있어요." (p.183-184)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목적, 방향, 결국 최종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곳이 '당신' 이라면, 당신에게 닿기 위해 오늘을 버텨 내일을 맞이하고 또 그 내일로 오늘을 사는 거라면, 당신에게 닿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마트리나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건 어쩌면 그녀로 하여금 인생의 다른 재미를 놓치게 하는 독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신에게 돌아오는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건 아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마르티나와 모린 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상대에게 닿기를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만추》의 탕웨이이거나 《호우시절》의 정우성인 것이다. 또한 해럴드처럼 닿아야 하는 상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닿아야 할 사람이 먼 곳에 있다면 역시 해럴드처럼 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를 타고 좋은 호텔에 묵고 그에게 닿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물리적인 거리와 육체적인 움직임이 아닌, 삶의 방식 자체가 '당신을 향해 걷는다'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당신에게 닿기 위해, 당신이 있는 곳을 보고 걷는 것. 이 행위는 언젠가 당신에게 닿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것이고 내 삶의 연속성을 지켜줄 것이다. 나는 당신을 보고 천천히 걸을 것이고, 걸으면서 졸리면 잠을 청할 것이며 배고프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걷다가 비를 맞아 감기에 호되게 걸릴 수도 있고 열이 심하게 나서 끙끙 앓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기에 있는 당신을 만나는 것이 결국 내 최종 목표라면, 나는 갈 수밖에 없다. 물론, 당신에게로 걷는 길에, 나는 다른 사람과 만나 함께 힘들어하고 함께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날들은 발가벗고 뒹구는 걸로 시간을 지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 삶의 연속성이고, 이 연속성을 유지한 채로 나는 여전히, 늘 그래왔듯이 당신에게 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당신을 향해 걷는 것, 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어제는 토요일이었고, 약속이 취소된 나에겐 모처럼 아무것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이전까지의 삶이 나를 만신창이가 되게 했고, 그러므로 나는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책장을 덮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내가 주말이면 찾던 일자산으로 갔다. 일자산을 천천히 걸었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내가 오로지 나만의 상념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해럴드가 그랬듯이 내가 후회할만한 과거를 떠올리며 마음껏 후회했고, 또한 내 불안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라는 신해철의 노래 가사도 떠올리며 슬퍼졌다가 바람 소리에 귀기울였다. 숲의 화려한 색채에 감동하고, 잠깐 멈춰서서 호흡을 크게 해 숲에 가득한 풀냄새를 들이마셨다. 오래전 올림픽 공원을, 비오고 난 직후에 찾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비가 멎은 올림픽공원은 풀냄새로 가득했고, 나는 그 풀냄새 때문에 설레였으며, 그 풀냄새를 함께 맡으며 한뼘쯤 떨어진 거리에서 걷던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설레이기도 했던 기억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두시간 동안 걸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상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당신을 향해 일상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기쁨과 축복과 행복과 또 불안과 슬픔이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렸다. 그 책속에서 '늘 머릿속으로 당신에게 말해요' 하던 것을 이 책,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서는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하면 될까. 나는 해럴드의 고민과 생각을 물끄러미 본다. 그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머릿속 생각을 본다.

 

허투루 쓰여진 문장이 없고 여러번 밑줄을 긋고 책의 귀퉁이를 접을만큼 아름다운 책이다. 언젠가 나도 물리적으로도 당신에게 닿기 위해 걷기를 선택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땀을 흘리며 다리에 알이 박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내 삶이 당신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최종적으로 내 선택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내 선택을 내 의지로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버윅까지 간다는 것, 그저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단순성이 즐거웠다. 계속 앞으로 가기만 하면, 당연히 도착할 것이었다. (p.66)

 

 

 

 

 

녹색에도 수많은 색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해럴드는 겸손해졌다. 어떤 녹색은 짙어 거의 벨벳 같은 검은색이었으며, 어떤 녹색은 아주 옅어 노랑에 가까웠다. 멀리서 지나가는 차가 햇빛을 반사했다. 어쩌면 창문이 반사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빛이 떨어지는 별처럼 떨리며 산들을 가로질렀다. 어떻게 전에는 이런 것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p.60)

그는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내딛으며 계속 걸었다. 이제 자신이 느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이 걸어온 거리에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p.61)

"나도 버윅이 아주 멀다는 걸 인정해요. 또 내가 걷기 훈련도 받지 않았고, 몸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해요. 그러고 보니 내가 가능성이 없는데도 거기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나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속에서는 포기하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도, 포기할 수가 없네요. 계속 가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가고 있네요." (p.169)

해럴드는 자신이 털어놓은 것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퀴니와도 마찬가지였다. 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그녀가 그것을 자신의 생각들 사이 어딘가에 안전하게 챙겨 둘 것이라고, 그것으로 자신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들이대며 자신에게 맞서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우정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우정 없이 살아온 그 모든 세월을 후회했다. (p.180)

"젊은 시절에는 이 나이가 된 사람들을 보며 인생이 다 정리되었겠거니 생각했는데, 내가 예순세 살에 이렇게 끔찍스러운 혼란에 빠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p.237)

"오, 해럴드." 그녀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둘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254)

"늘 그리워하지요. 머릿속으로는 엘리자베스가 없다는 걸 알지만, 눈으로는 계속 보고 있어요. 유일한 차이라면 이제 고통에 익숙해졌다는 거지요. 땅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 것과 비슷해요. 처음에는 그런 구멍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계속 빠져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구멍은 계속 있지만, 구멍을 에둘러 다니게 되지요." (p.264)

그 대화가 모린에게 오래 남았다. (p.265)

그녀는 한때 퀴니 헤네시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그녀는 장부를 정리했고,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기록을 했다. 몇 번 사랑을 했고, 사랑을 잃었다. 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삶을 어루만졌고, 삶과 잠깐 놀았다. 하지만 삶은 미끌미끌한 놈이지. 마침내 우리는 문을 닫고, 삶을 두고 떠나야 한다. (p.385)

그녀는 아이의 공허한 머리를 들어 올리고 쉴 새 없이 입을 맞추었다. 아이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자신의 소망이 아무리 간절해도 아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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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11-0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게도 필요한 감각예요. 계속 앞으로 걷는 느낌. 그 감각. 자꾸만 무언가에 누군가에게 내쳐진 기분이 들곤 하는데, 그럴 땐 일단 발걸음을 내딛여야 하죠. 몸에 펌프질을 해야겠어요.

다락방 2014-11-03 17:22   좋아요 0 | URL
저는 열심히 걷고 있었는데 지금 잠깐 내동댕이쳐져서 저기 어디 깊고 어두운 곳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기분입니다, 드림아웃님. 우리 같이 펌프질해요. ㅠㅠ

치니 2014-11-0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포스팅이 다 날라갔었다니! 읽으면서 제가 다 억울할라 그러네요. 그런데도 이렇게 길고 충실한 리뷰를 쓰시다니, 다락방 님 정말 대단하세요. :)

다락방 2014-11-03 17:23   좋아요 0 | URL
이걸 다시 쓰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어야 했는지..한숨만 쉬면 그나마 양반, 빡쳐빡쳐를 입에 달고 썼어요. ㅎㅎㅎㅎㅎ 한문장 쓰고 한숨 한문장 쓰고 욕... ㅠㅠ
대단은요, 무슨. 기승전결도 없는 리뷰 ㅠㅠㅠ
 
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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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어보고는 그냥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요즘 조카가 책을 읽는다는 동생의 말에 조카에게 줘야지 싶어 다시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 그림책이 이렇게 좋은 책이었던가, 왜 예전에 읽을 땐 미처 몰랐던가, 하고 감탄했다.

 

리디아의 아버지는 직업을 잃고 힘든 상황, 리디아는 당분간 외삼촌 집에서 살기로 한다. 외삼촌은 빵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리디아는 빵 만들기를 조금씩 배우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원예일에 몰두한다.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고 옮겨 심는등의 일들을. 외삼촌을 웃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리디아는 어느날 외삼촌 집 옥상의 버려지고 낡은 공간들을 본다. 아, 바로 여기다. 이곳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외삼촌을 웃게 만들어야지. 그날부터 리디아는 그 옥상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이렇게 황폐했던 공간이,

 

 

 

 

이렇게 멋진 정원으로 완성된다.

 

 

 

 

 

외삼촌은 비로소 웃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외삼촌을 웃게 한 이 일이, 리디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나는 크게 만족스러웠다. 리디아는 싹을 틔우고 꽃을 가꾸는 일에 크게 흥미를 가지고 있고 그 일을 사랑한다. 빵을 굽는 법을 외삼촌으로부터 배우지만, 그를 웃게 하기 위해 선택한 일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어제도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자신이 먹을 밥을 자신이 마련할 수 있는 거라는 말을. 내가 혼자 오롯이 설 수 있어야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줄 수 있다.

 

이 책속의 리디아가 외삼촌을 웃게 하기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든가, 춤과 노래를 배우려고 시도했다면 나는 이 책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디아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고, 그래서 가장 잘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하는 거, 그게 방법인 것이다.

 

 

이 책속의 내용은 리디아가 보내는 편지로 채워진다. 읽기에 나쁘지 않고 그림도 마음에 든다. 편지라서 읽기에 더 수월하지 않은가 싶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언제나 여유롭고 행복한 공간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지독한 가난 속에 놓여지고 어떤 아이들은 자라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적기도 하다. 리디아는 실직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고, 어린 시절의 일부를 외삼촌네 집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아이가, 실제로, 있는 것을,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좋아하는 그림책이 생겨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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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4-11-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랑하는 그림책 중 한권입니다. 삼촌이 리디아를 꺼안을 때 그 뒷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표정을 상상하게 할때...아..눈물나와요. ^^;

달걀부인 2014-11-0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랑 <도서관>이란 책도 함께.. ^^

다락방 2014-11-03 17:27   좋아요 0 | URL
저는 <도서관>은 막 좋진 않았는데 이 책은 참 좋습니다, 달걀부인님. 처음엔 리디아의 아버지가 실직하고 외삼촌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요.. 흑흑 ㅠㅠ

마노아 2014-11-0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그림책이에요. 다락방님도 좋아하는 책이 되어서 또 좋아요.^^

다락방 2014-11-03 17:28   좋아요 0 | URL
무려 마노아님 내 인생의 책입니까!! ㅎㅎ
처음 읽을 때는 그렇게 좋진 않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 책 참 좋아요, 마노아님.
저도 이제 그림책 보는 눈이 좀 생긴걸까요? ㅎㅎ

숲노래 2014-11-03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과 두고두고 되읽는 예쁜 그림책이에요. 그림책은 아이들이 새롭게 읽어 주기에 더욱 즐겁게 다시 돌아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해요.

다락방 2014-11-03 17:30   좋아요 0 | URL
조카도 이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건 또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혜윰 2014-11-03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스몰의 그림이 전 참 좋아요^^
이 책의 경우 부부가 함께 써서 그런가 어쨌든 저도 좋아하는 그림책.

다락방 2014-11-03 17:31   좋아요 0 | URL
아, 이게 부부가 함께 쓴 책이에요? 제가 그림책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지식이 전무한 사람입니다. 뭐 다른 거에 대해서도 딱히 지식이 있진 않지만요. ㅋㅋ 그렇군요, 부부가 쓴 책.
참 아름다운 책입니다, 그렇게혜윰님.

2014-11-03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03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4-11-0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버랜드 시리즈는 꽤 봤는데, 이 책은 처음이네요.
그림이 예쁜데다 감동적인 이야기라니, 제가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4-11-04 09:5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이 책은 참 좋습니다.
헤헷 :)
 
사랑의 미래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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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미래는 없다. 과거와 현재만이 있을 뿐.
시간은 사랑을 못쓰게 만들고 사랑은 나를 못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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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11-0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멋져. `꾹 참고 이만큼만`? 개정판이 나오자마자 아끼신 비밀들을 공유할 거예욧.ㅎㅎ
멋진 100자입니다. 에고 100자평 쓰고 싶네요.

다락방 2014-11-03 17:31   좋아요 0 | URL
에르고숨님, 백자평 써주세요!! >.<
 

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면서도 남동생과 나는 지하철 안에서 농담 따먹기를 했다. 남동생은 '나는 진짜 멋진것 같아' 라고 말했고 나는 '내가 오늘 되게 예쁘고 세련되게 느껴졌는데 그런건가?' 라고 답했다. 잠시간 침묵뒤에 찾아온 어이없음의 웃음 같은걸 공유하며, 내가 장례식장에 가서도 이렇게 푼수처럼 웃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됐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도착한 순간 덜컥 숨이 막혀왔다. 몸은 때로는 머리보다 더 반응이 빠른것 같다. 본능적으로 여긴 아픈곳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국화 한송이를 놓고 고개를 숙이면서 내가 우는게 아니라 내 눈물이 제멋대로 나왔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고 우느라 정신 못차려서 고맙다는 말을 조금 늦게 속으로 했다. 고마웠어요, 라고. 장례식장을 나서며 너 뭐라고 했어? 라고 남동생에게 물으니 고마웠다고 했어, 란다. 우린 신해철에게 고마웠다. 그래서 장례식장을 나서면서도 그를 잘 보내지를 못하겠다. 남동생도 모든게 다 거짓말 같고 그가 살아서 우리를 놀래켜줄 것만 같다고 했다. 


우리는 신해철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그리고 집근처로와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제육볶음과 삼치구이를 시켜 소주를 둘이서 두 병을 마셨다. 마시는동안 우리는 신해철에 대해 얘기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가사로 쓰는 게 아니라, 그는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가사를 쓴다고 나는 말했고, 남동생은 그 전에도 후에도 신해철 같은 가수는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 나오는 누구도 그와 같을 수 없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했다. 삶의 허망함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같이 늙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누나, 나는 신해철이 계속 우리랑 같이 늙어갈 줄 알았고 죽을때까지 그도 함께 할줄 알았어, 라고 말했고 나는 또 끄덕이며 울었다. 우리는 마음아파했고 장례식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얘기했다. 숀마이클스의 은퇴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때, 우리나라에 경기하러 왔을 때, 빚을 내서라도 보러 갔어야 했는데, 그가 은퇴할 줄 몰랐다고. 이제는 돈이 있어도 그의 경기를 볼 수 없다고, 모든게 때가 있다고. 그러다 노무현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는 얘기를 했고, 우리가 공인의 죽음에 찾아가 애도했던 건 아마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신해철이니까, 하는 얘기도 했다. 이야기는 흘러서 세월호 까지 나아갔는데, 남동생은 내게 말했다.



누나, 나는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이렇게 세월호 애들한테 미안하지? 왜이렇게 미안한거지? 내가 뭘 잘못한거지?



아 눈물나 ㅠㅠ 

나는 우리가 내버려뒀잖아, 이런 세상이 되도록 그냥 내버려뒀잖아, 그래서 미안한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갑자기 감사해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얘가, 나랑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다 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남동생이 신해철의 노래, 드리머를 틀어줬고, 나는 또 울었다. 술을 다 마시고 내 방으로 들어와서는 불을 끄고 또 작게 스맛폰으로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다. 소리내서 울었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까지는 한번도 울지 않았는데,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는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아마도, 나는, 그제야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는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지하철에서는 친구가 보내준 음악과 내가 선택한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이 진짜 젖은 휴지처럼 늘어져버리고 아무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져서 책을 읽는 것도 하지 않았다. 양재역에 내려 가까운 까페에 들어가 뜨거운 커피를 시켜두고 친구가 보내준 음악을 들었다. 책은 없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쉬었다.






내가 반복한 곡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눈을 뜨면> 이었다.



아이폰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만약 누군가가 지하철안에서 이 곡을 듣고 있다면, 이렇게 화면을 띄워두고 있고 내가 그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가방 속에 들어있던 책을 꺼내어 그 사람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노래, 정말 좋죠, 라고 말을 걸면서. 미친년처럼 보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아침 이 곡을 반복해 듣고 있어, 라며 친구에게 이 노래를 보내줬고 친구는 이 노래를 다 들은 뒤 '코끝이 찡해졌다'고 했다. 







하필이면 오늘 아침에 이 곡을 듣고, 코끝이 찡해졌다고 말하는 친구를, 나는, 좋아하고 있다.






어제 친구와 다른사람의 연애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에 대한 얘기를 했다. 본인이 경험해야만 거기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친구는 '그렇지만 후배를 아끼는 마음, 가슴 아픈 길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그만두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맞다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잔소리 하기는 쉽다고, 내버려두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싶지만 자전거를 배우는 게 무섭게 느껴지기만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누군가 자전거 뒷부분을 붙잡아주면서 배우게 되듯이, 아이도 아빠가 자전거를 '붙잡아주면서'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빠가 붙잡았던 손을 놓을까봐 겁낸다. 이제 혼자 할 수 있게 됐을때쯤, 손을 놓아도 좋다고 아이는 얘기한다.




아빠는 딸의 말을 듣고 손을 놓는다. 그러나 그 손을 놓기는 어렵다. 손을 놓는 어려움은, '손을 놓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더 크다. 이제 저 아이 혼자 타야 할텐데, 다치면 어쩌지, 넘어지면 어쩌지, 너무 먼 데까지 혼자 가면 어쩌지? 손을 놓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손을 놓아도 될까 에서 오는 두려움에 비하면 찰나라 해도 좋다.



내 어린 조카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 내게는 힘겹다.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내가 그리고 제 부모가 걱정하고 보살피는 일들이 간섭으로 느껴지게 될텐데, 적당한 때를 보아 손을 놓아야 할텐데,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울까. 아이의 자전거를 잡았던 손을 놓은 아빠가 


"널 놔 준다는 건 끔찍이도 어려운 일이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조카들의 부모도 아니면서, 이모이면서 이런데, 하물며 부모들은 어떨까. 어떻게 자전거를 잡았던 손을 놓고, 어떻게 적당한 거리를 둘까. 그때 그들은, 얼마만큼 무서웠을까.






그렇지만, 손을 놓아야 아이는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손을 놓아야 아이는 제가 가고 싶은데까지 갈 수 있다. 손을 놓아야, 나중에 잡아줄 수 없는 상황이 됐을때도 무리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어렵지만, 적당한 때를 보아 우리는 자전거를 붙잡았던 손을 놓아야 한다. 홀로 탈 수 있게 두어야 한다. 넘어지고 다쳐서 피흘리고 깨지는 걸 보면 너무나 아프겠지만, 피흘리지 않게 계속 붙잡아두는 것 보다는, 피흘린 무릎에 빨간약을 발라주는 게, 그게 결국은 '아이가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아이의 자전거를 붙잡아주며 살 수 없다.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 돌부리에 걸리고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리면서, 그렇게 아이는 강해질 것이다. 몇 번이고 넘어지고 까지면서 아이는 이제 돌부리를 피해갈 수도 있게 되고 내리막길에서는 언제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건, 넘어져봐야 배울 수 있고, 넘어지는 건 손을 놓아야만 가능하다.





너덜너덜해진 오늘 아침, 까페에 앉아 멍하니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또 음악을 들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에 놓여진 뜨거운 커피,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들, 까페에 들어서기 전의 찬 공기,  까페 문을 열기까지의 너덜해진 내 마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그 음악을 전송해준 사람. 이 모두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잊지 말아야지.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런데 왜, 

보고싶다는 말은 좋아한다는 말보다 하기 어려운걸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나만 그런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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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 2014-10-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기 백 번은 안되나요?? 천 번은? 아니, 만 번은.
그렇게 누르면 신해철을 보낼 수 있을까요?

다락방 2014-10-31 06:57   좋아요 0 | URL
어제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오랜 시간 뒤척였는데요, 신해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없나? 하고요. 오늘 아침에도 그래요. 저도 못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ㅜㅜ

꼼쥐 2014-10-30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의 포스팅을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봅니다.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 다락방 님의 글에 공감하면서 괜히 울컥해지면서...

다락방 2014-10-31 06:59   좋아요 0 | URL
저도 신해철에 대한 꼼쥐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없다, 고 생각하면 또 울컥 하게 돼요. 어떻게해야 잘 보내는건지 모르겠어요, 꼼쥐님 ㅜㅜ

레와 2014-10-3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는 말보다 보고싶다는 말이 더 좋아요.


..

다락방 2014-10-31 07:00   좋아요 0 | URL
응. 근데 난 왜 그 말이 어려울까요? 나에게는 그 말이 더 깊은걸까요??

시크발랄 2014-10-3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다락방님의 글은 공감하기를 될수있는한 많이 로 하고싶네요읽으며 또 웁니다

다락방 2014-10-31 07:01   좋아요 0 | URL
시크발랄님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버스안에서도 저는 여전히 그의 죽음이 실감나질 않아요..

비연 2014-10-3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오셨군요.... 울컥합니다. 정말.. 요즘 슬픈 일이 넘 많아요...

다락방 2014-10-31 07:02   좋아요 0 | URL
신해철은 저에게 정말 특별했어요, 비연님. 다녀와야만 했어요. 아 또 눈물이 ㅜㅜ

꽃핑키 2014-10-3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안 울어야지 했는데 또 눙무리 나와버렸어요 나도 직접 찾아가 늦었지만 정말 고마웠다고 말 해주고 싶은데 멀리서 마음으로만 빌어야겠어요. 저도 이 순간 오래오래 기억에 새길래요! 근데 우씨. 다랑방님 글 왜 이렇게 잘 써요? 나 콧물까지 드럽게 막 나왔어요 ㅠㅠㅠㅠㅋ

다락방 2014-10-31 07:04   좋아요 0 | URL
글 잘쓴다는 칭찬은 참 좋네요, 핑키님:)
전 장례식에 갔다왔으면서도 여전히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울컥해져요. 어제 제 중학교 동창도, 또다른 친구도 장례식에 다녀왔다 하더군요. 그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지만, 살아오는 동안 그는 참 잘 살아왔구나 생각했어요. 그를 애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까요.

건조기후 2014-10-3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꿈만 같고... 눈물은 끝도 없이 나고... 그러네요 다락방님.
에혀.........

다락방 2014-10-31 07:05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님 ㅜㅜ 신해철의 노래들 중 무엇을 떠올려도 다 주옥 같아요 ㅜㅜㅜ 그가 갔다는 건 정말 말도 안돼요 ㅜㅜㅜㅜㅜ

책읽어주는 여자 2014-12-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들어오게 되서 글을 읽고. 우리 마왕님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마왕님을 보낸지 벌써 한달이 지나고.. 다시 우린 일상생활을 하고있다는게... 슬프기도하고.. 안타깝기도하고..
다락방님 글 보러 자주 올께요... 덕분에 좋은음악도 들었어요.. 감사해요~~
 

여유로운 아침이란 이런 것.
포크 두 개는 다 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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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10-2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핫
시나몬 롤도 커피도
저는 .... ㅠ..ㅠ

다락방 2014-10-29 08:23   좋아요 0 | URL
콩나물,감자볶음,고추장을 넣고 아침에 밥을 비벼먹고 왔다는 게 함정!! ㅎㅎㅎㅎㅎ

서니데이 2014-10-2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저녁 먹었는데, 저 롤은 맛있게 보여요. ^^;

다락방 2014-10-30 12:21   좋아요 0 | URL
맛있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14-11-0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름답다.
시나몬 롤과 커피와 책...

다락방님 오른손 두번째, 세번째 손가락이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요...^^

다락방 2014-11-04 09:56   좋아요 0 | URL
그것은 돼지 발가락 같으므로 나오게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