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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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걸어나가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노인이 스스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게 무척 흡족했다. 물론, 노인이 요리를 하고 여자에게 반했다 말하고 사람을 부리고 아들에게 당당히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었던 건, 돈이 있기에 가능했다.

돈은 힘이지만, 그것이 외로움을 극복해내는 수단은 될 수 없다. 돈이 그렇게 중요한 일까지 해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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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을 위한 요리를, 내가, 꼭!
    from 마지막 키스 2014-11-26 10:25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봤을 때 그 내용도 궁금했지만, 그 후에 책 표지를 보고 더 궁금해졌었다. 책 띠지의 작가 얼굴이 엄청난 훈남이었으므로. 크- 부드럽고 젠틀하며 섬세할 듯한 저 얼굴이 확- 끌어당긴거다. 그래서 이 책을 샀는데, 책 표지를 펼치고 난 후에 나온 작가 사진은 띠지와 좀 ... 좀 많이 ..... 다르더라. 뭐 어쨌든.책 속의 노인은 부유하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있고, 그 도우미에게 넉넉한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형
 
 
 











지난 20년간 나는 유럽, 미국,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면서 북반구의 동료들이 누리는 수준으로 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수학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늘 간직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 두뇌유출에 한몫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중 일부는 의욕이 고취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연구는 저지되고 만다. 능력이 있으니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가르친 학생 중 최우수 인재들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계속한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는 좀처럼 끊을 수 없다.
빈곤과 보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개발도상국 정부는 연구를 할 여유도 없고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로 인한 손실은 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면 인류 전체가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리 샴세딘, p.115)




나는 경향신문을 구독하지만 회사의 상사는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를 구독한다. 나는 내가 보는 신문을 뒤에서부터 대충 훑고 간혹 상사의 책상위에 놓여진 신문의 제목들을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얼마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 차이를 확인한다. 경향이 내 생각과 비슷한 쪽이라면 조선은 볼 때마다 빡치게 하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 1면에서는 울산에서 무상급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얼마나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는지, 다른 교육청에서도 울산에 전화해서 니네 급식 어떻게 하니, 라고 묻는다는 기사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한 학교의 선생님을 인터뷰했는데, '무상급식 안한다고 욕을 먹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방법을 물어온다'고 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무상 급식을 주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안다고 해서 그들에게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밥 한끼 공짜로 주지도 못하는 나라가 대체 뭘 얼마나 더 생각하고 얼마나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위에 《수학자들》 인용문처럼, 결국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인재는 빠져나가고 말 것이며, 그런채로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얼마전 트윗에서는 안젤리나 졸리의 말이 여러차례 리트윗 됐는데, 안젤리나 졸리가 빈곤국의 아이에게 '네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네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야' 가 그것이었다. 왜 이나라는, 아이를 우리의 미래로 보지 못할까. 어쨌든 돈 있는 집 '아이들'은 돈을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좀 소름 끼치지 않나? 아이에게 밥 한끼 먹이는 거, 그게 왜그렇게 어려운 걸까? 일전에 부산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하겠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시의 여러 부분에서 세금을 좀 빼와서 그렇게 만들겠다고 했다. 내가 지지하는 쪽은 이런 쪽이다. 다른 걸 아껴서 아이들에게 밥 한끼 무료로 주겠다고 말하는 쪽. 학교에 책상이 놓이고 걸상이 놓이고 칠판과 분필이 놓이듯이, 그렇게 밥 한끼를 주면 안되는 걸까? 꼭 그 어린 애들에게 '너는 있는 집 자식이니 돈 가져오고 너는 없는 집 자식이니 주는거 받아먹어' 라고 말을 해야 할까? 아이들과 아이들과 아이들 틈에서 돈 있는 애와 돈 없는 애를 굳이 갈라놔야 할까? 



얼마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놀라운 생각을 하는 웹툰 작가의 웹툰을 보았었다. 그가 그리는 웹툰은 내 생각과 너무 달라서 이게 뭐야, 아니 이 사람은 정말 이렇게 생각해? 하고 놀라웠는데, 그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 문득 그런 게 궁금해졌다. 저 사람의 가족은 아마도 저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 게 아닐까. 저 생각을 하는 남자와 저 생각을 하는 여자가 만났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야만 그 두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나의 경우에는, '나로서는', 그렇게나 나랑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없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음식점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반말을 쓰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고, 아이에게라도 처음 만난다면 존대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동성애는 동성애 자체로 보고(그들은 아픈 사람들이니 불쌍히 봐주자 이런 개소리 말고), 홍콩 시위대를 응원하며,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의료보험과 철도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세상의 반대편에는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적극적인 행위로 앞에 나가 행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약자 편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개인의 사유재산은 중요하지만, 그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원한다. 모든 일의 중심은 '나'이지만, '나'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있는 집 자식들한테까지 뭐하러 무상 급식을 제공하냐고 말하는 사람을, 더 돈을 많이 내서 더우리는 더 좋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자고 말하는 사람을, 왜 내가 돈을 더 내서 가난한 사람들 병원비까지 내줘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도무지 사랑할 자신이 없다. 그 사람이 그 자신의 논리로 나를 설득한다 할지언정, 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라면,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이유가 없다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상대를 선택하는 게 사랑이라지만, 전혀 다른 곳을 이상향으로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과 어떻게 손잡고 갈 수 있을까. 




경비원 분신한 아파트에서는 모든 경비들을 전원 해고 하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한다. 막말을 계기로 아, 우리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라고 숙연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내가 생각한대로 굴러가지 않는 다는 것을, 처참하게 깨달았다. 한편 대통령은 중국방송에서 '근본적으로 나라가 안정 속에서 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는데, 하아- 정말 모르는걸까.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가 바르게 나아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이럴때면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이렇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건가, 한숨이 나온다. 


모든걸 종합해서 얘기하자면, 이 나라가 걱정스러운 나라가 되는 것은, 이 나라가 걱정스러운 행태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신문, 끊어버릴까..





어제 친구가 재이슨 스태덤의 영화가 개봉한다며 예고편을 보내주었다. 

세상에, 무려 '제니퍼 로페즈'랑 커플이란다.



예고편은 여기 ☞ http://tvpot.daum.net/v/vfa2faW40i5WUScpi0UU0px




제니퍼 로페즈가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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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11-2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러운 정치판에 지들의 권력싸움을 위해 아이들 밥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나쁜새끼들.

다락방 2014-11-25 12:37   좋아요 0 | URL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조차도 무료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못하는 걸 보면 사람은 확실이 자기 중심적이긴 한가봅니다. 으이그 싫어..

아무개 2014-11-2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짧은 제 생각으론
걍 애들 가리지 말고 다 먹이고.
돈 많은 부모는 세금을 더 내고, 아닌 부모는 덜 내면 되는게 아닐까요.
어차피 세금으로 애들 밥 먹이는거니까요.
그래야 조세의 형평성에 맞는걸테니...
그런데 박씨가 절대 부자 증세는 안하려고 하니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자애들까지 왜 쳐먹여야 하냐 라는 볼멘 소리가 나올수 밖에 없겠죠.


2.나의 상식이 옳은 걸까요?
나이들 수록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믿는것들에 대해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요.


다락방 2014-11-25 12:40   좋아요 0 | URL
돈 많은 부모가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돈 많은 아이가 급식비를 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급식비 못주는데`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면 정말이지 너무 비참한 것 같아요. 부자애들까지 왜 먹여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게 비단 없는 사람들 뿐만은 아닙니다. 있는 사람들도 그 얘긴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아무개님. 내가 정치를 한다면 그렇다면 지금과 많이 다른 것들을 개선할 수 있을까? 제가 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정말 개선일 수 있을지, 그건 참 의문스럽긴 해요.

배고프네요. 제니퍼 로페즈에 오늘도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 저는 점심을 굶어야겠지만, 일단 많이 먹는걸로 쇼부를 치고.... 대신 머릿속에 제니퍼 로페즈 생각을 하는 걸로다가...킁킁.

바이런 2014-11-2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줄 ㅋㅋㅋㅋㅋㅋ 북플통해 만나니까 좋네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4-11-25 14:13   좋아요 0 | URL
앞으로 자주자주 만납시다, 바이런님!
제니퍼 로페즈가 되는 그날까지. 아자아쟈!!

네꼬 2014-11-2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비원 해고 소식은 듣고도 못 믿겠음. 평범하고 악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러겠지 싶어서 슬프고 무서워요. (혹시 내가 그러고 있는 걸 다락님께 들키면 따귀 한 대 부탁합니다.)

다락방 2014-11-25 14:1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아니..뭐라고? 어떻게 경비원 전원을 해고할 수 있을까요? 제 상식으로는 이해불가..암튼 대단한 일자리를 가진 대단한 아파트이십니다. 뭐, 다른데라고 별 다를 바 없겠지만요.

네, 네꼬님. 우리 서로 이상한 길로 간다 싶으면 이리와, 하면서 끌어당기고 따귀도 날리고 그러자고요. 평범하고 악한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해요, 우리. ㅜㅜ

blanca 2014-11-2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절이 공감해요. 안 그래도 오늘 카톡으로 여동생과 경비원 해고 관련 얘기 했었는데 ... 자꾸 우울하고 믿기 힘든 비상식적인 뉴스만 들리니까 너무 우울해져서 자꾸 피하고 싶어져요. 요즘 <생의 한가운데> 읽고 있는데 그렇게 자꾸 피하면 진실을 대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려 반성했어요.

다락방 2014-11-25 14:59   좋아요 0 | URL
신문을 통해 기사를 보면서 믿을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정말 이랬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지금 이 나라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어디쯤에 서 있어야 할까, 그럴때마다 생각해보게 돼요. 우리는 자꾸, 반성하게 되네요, 블랑카님.

태안너구리 2014-11-2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의 의견을 지지하는데 한표 입니다..^^
....

다락방 2014-11-27 17:00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태안너구리님 ^^

Mephistopheles 2014-11-2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발 쓴 제이슨 스타뎀이 나온다는....그 영화군요...(이미 봤지롱입니다.)

-근데,...감독이 무려 ˝테일러 헥포드˝....군요..-

다락방 2014-11-27 17:01   좋아요 0 | URL
처음에 가발 쓰고 나와서 아니 넌 뭐냣, 너의 대머리를 돌려줘, 했어요. 하핫. 물론 예고편에서 말입니다.
벌써 보셨군요. 크- 저는 제니퍼 로페즈와의 케미가 궁금합니다!

Mephistopheles 2014-11-28 11:17   좋아요 0 | URL
케미일것도 없어요. 로페즈는 거의 조연급.....

섬사이 2014-11-2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이들 보기가 부끄러워요. 어른들이 세금을 괴상하게 펑펑 낭비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우리는 너희들에게 밥 못 줘!˝하는 것 같아서요. 아이들에게 밥주는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낭비한 어마무시한 세금에 대해서는 어땋게 설명하고 책임질 건지., 그것부터 따져 묻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슬퍼요.

다락방 2014-11-27 17:02   좋아요 0 | URL
아이들 밥 가지고 진짜 너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정치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섬사이님? 저는 아이들에게 양질의 밥을 제공하는 그런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요? 크- 갑자기 의욕이 앞서네요.

어른들의 삶이 슬픕니다, 섬사이님. 지금 아이들이 자라 이 슬픈 삶 속으로 뛰어들 걸 생각하니 더 슬프고요. 물론, 아이들의 삶도 지금 기쁘고 행복한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수학자들 - 세계적 수학자 54인이 쓴 수학 에세이
김민형 외 지음, 권지현 옮김 / 궁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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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누군가가(그는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사진들을 훑어보더니 "각자 짧은 글을 쓴다면" 책으로 엮을 수 있으리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게임에 동참해주었다. 짧고, 위대하고, 격렬하고, 미묘하며, 암시적이기도 하고 직설적이기도 한 글들이 가을 낙엽 떨어지듯 속속들이 도착했다. 잠시 거쳐 가거나 더 오래 머물고 있는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생물학자, 박사 논문 준비자, 명망 있는 연구자들로 이뤄진, 본질적으로는 허물어지기 쉬운 이 인간 집단은 망망대해에 수많은 작은 병들을 던졌다. 그 병들은 이 해안가에 발을 들여놓을 기회가 없었던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과 우리 같은 육지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 프롤로그 中 (장 프랑수아 다르스, 아닉 렌, 안 파피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프랑스의 '고등과학연구소'에 적을 둔 적이 있었던 수학자들의 것이다. 그들은 그 하나의 공통 분모로(수학을 사랑한다는 공통분모도 있지만) 각자 글을 쓰기로 하고, 그렇게 이 책은 태어났다. 나는 이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것이 꽤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되어졌으며, 이걸 다른 식으로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 아니 유일하게 생각난 것이 바로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글' 이었다. 이를테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그 책이 좋았던 사람들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는 것이다. 그 책은 아직 '새벽 세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고, 이미 '새벽 세시'를 읽은 사람들을 위한 의견 교환의 매개가 되지 않을까. 혼자 이런 생각으로 신났다가,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매니아'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팔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 아닌가, 싶어졌다. 아마..많이 안팔릴거야. 1쇄나 고작 다 나가는 정도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글자들을 다 읽어내긴 했지만 사실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90프로 정도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신 빡 집중해서 미간에 힘 빡 주고 읽어보았지만, 그건 내가 힘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 뭐, 그렇다는 거다.

 

내가 이해한 10프로에서 수학자들은, 수학이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시켜주리란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여섯 살 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한 아이는 지력에서 시감각이 차지하는 부분의 균형을 조금이나마 더 잘 맞출 수 있다. 시감각은 보이는 것에만 의존해서 얻는 놀라운 감각으로 아주 어렸을 때 익히는 것이며 기하학과 관련이 깊다. 음악은 대수학을 통해 시감각의 균형을 맞춘다. 음악이 대수학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수학에는 뇌의 시각 영역에 해당하며 즉각적인 직감을 따르는 기하학과 대수학을 나누는 이분법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알랭 콘, p.22)

지난 20년간 나는 유럽, 미국,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면서 북반구의 동료들이 누리는 수준으로 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수학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늘 간직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 두뇌유출에 한몫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중 일부는 의욕이 고취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연구는 저지되고 만다. 능력이 있으니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가르친 학생 중 최우수 인재들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계속한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는 좀처럼 끊을 수 없다.
빈곤과 보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개발도상국 정부는 연구를 할 여유도 없고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로 인한 손실은 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면 인류 전체가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리 샴세딘, p.115)

고등과학연구소는 방문학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강의도 행정업무도 맡기는 법이 없고, 심지어 연구 실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적어도 단기간에는). 방문학자나 박사후연구원 선발 때문에 `가끔` 보고서를 주문하는 것이 고작이다. 단독으로 그리고(혹은) 다른 방문학자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자유로운 연구와 사고가 전적으로 보장되는 지구상의 외딴섬과 같은 곳이다. 시끌벅적한 외부세계와 단절된 평화의 항구인 셈이다. 연구소내 연구평의회(Conseil scientifique)의 지지 덕분에 5년 동안 로랑 라포르그(Laurent Lafforgue)와 나는 이곳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하게 될 열다섯 명 이상의 연구자들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파리 지역의 여러 단체들과 공동 세미나를 기획할 수 있었다. 국립과학연구원의 연구자라는 신분 덕북에 `랭글란즈 p진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를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독자들을 위해 `랭글란즈 p진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는 생략하겠다. (크리스토프 브뢰유, p.117-118)

이제 알레고리는 필요 없다. 따뜻한 차와 건강한 음식이 있다면, 새로운 방문객이 길을 잃지 않고 연구실을 찾을 수 있다면, 대강당의 마이크가 잘 작동된다면, 인터넷 접속이 완벽하게 작동된다면, 글들이 TeX로 잘 바뀐다면, 잔디가 아름답다면, 공원에 꽃이 피었다면, 수학은 더 잘될 것이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면 또 다른 차원 앞에 모습을 감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매력이다. (p.163)

우리의 추상적 개념을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무지개와 쓰나미에서 발견하는 그래디언트의 특수성.
동양의 요술거울에서 발견하는 라플라스 연산자.
파란 하늘의 편광 현상에서 발견하는 타원적분.
양자학의 식별 불가능성에서 발견하는 비틀림과 곡선의 기하학.
필름의 후방 투영에서 발견하는 행렬의 퇴화.
작은 회절격자에서 나오는 빛에서 발견하는 가우스합. (마이클 베리,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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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11-24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댓글에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써도 될지, 쓰게 될 줄이야.ㅎㅎ 근데 뭔가 달라졌네요? 알라딘이? 이제 `공감`하지 않고 `좋아`해야합니까?;;

다락방 2014-11-25 08:45   좋아요 0 | URL
아마도 북플이 생기면서 바뀐 것 같네요. SNS화 되는 느낌...이게 좋은건지 싫은건지 잘 모르겠어요. 전 여전히 SNS 알라딘 보다는 이렇게 우리가 피씨 앞에 앉아 찾아 들어와야 하는, 긴 글이 적힌 알라딘을 좋아합니다.

여튼, 저 이 책 읽는 거 정말 수고했어요. (응?) ㅎㅎ

서니데이 2014-11-2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좋아요가 되었네요.
두번 누르니까 처리중이라는데요. ^^

다락방 2014-11-25 08:45   좋아요 0 | URL
한 번만 누르세요, 서니데이님. ㅎㅎㅎㅎㅎ

2014-11-26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6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의 서재 - 나만의 도서관을 향한 인문학 프로젝트
정여울 지음 / 천년의상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눈에 보이는 공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관계의 빈 공간'이 필요하다. 이 빈 공간에서만은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아도 서로 다가가고 만나는 것이 가능한, 마음의 중간지대를 마련하고 싶다.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도 이러한 관계의 여백이 필요하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아내려 하고, 믿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남김없이 털어놓으면, 관계가 숨 쉴 여백의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끼리도 각자의 사유와 고독한 비밀의 공간을 남겨줄 수 있다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은 눈부시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p.183-184)

나는 매력이 없다고 골방 속으로 숨으면 절대로 인연의 실타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모와 매력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외모 이상의 매력으로 상대를 사로잡는 유혹의 귀재들도 많다. 미모가 뛰어난 사람들보다 매력 넘치는 사람들의 인생이 실제로는 훨씬 행복하다. 매력은 미모처럼 자신을 `볼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함께하고 싶은 존재`로 만드는 기술이다. 미를 감상하는 데는 `거리`가 필요하지만, 함게하고 싶은 인연을 만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p.32-33)

아무리 매력이 철철 넘쳐도 고백의 용기가 없다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가 `그 수많은 편지의 주인은 나`라고 고백했다면, 사랑은 이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록산은 시라노의 편지에 감동하여 외친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당신처럼 편지를 썼다면, 정숙한 페넬로페도 집에서 수나 놓으며 기다리고 있진 않았을 거예요." 미모는 정태적이지만 매력은 동태적이다. 연애는 고백이다. 매력은 액션이다. 그러나 사랑은 고백과 액션을 훌쩍 넘어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에게 쏟아지는 축복, 마침내 영원히 움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바지런한 동사다. (p.35)

(이반 일리히의 유언을 읽고)나는 내 결핍을 채워주고, 내 불안을 잠재우는 감정이 사랑이라 믿었다. 한 번도 나를 파괴하는 사랑에 몸담아 본 적이 없다. 그런 감정이 다가올 때마다 용케도 잘 피하며 이런 위험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부정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원래 나였던 나, 나라고 믿었던 나를 파괴하는 사랑이야말로 내가 한 번도 끝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p.45-46)

저 수많은 인간의 정의 중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나는 `호모 에로티쿠스`를 택하련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미소짓게 만들지 않는가. 어떤 존재든 일단 사랑하기만 하면 간도 쓸개도 내줄 줄 아는 아름다운 광기가 있어,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아직 지구에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사랑의 그 끔찍한 계산 불가능성이야말로 결코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소중한 공통분모가 아닐까. (p.116)

우리는 언어 때문에 위로받지만 언어 때문에 고통받는다. 무심코 던져진 수많은 타인의 말, 익명으로 정체성을 숨긴 수많은 네티즌의 발언, 심지어 자신이 던진 자신의 말에도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언어는 화살표다. 반드시 어떤 것을 가리킨다. 가리켜서 아름답게 치장하기도 하지만, 가리켜서 처참하게 훼손하기도 한다. 음악은 이러한 날카로운 화살표로부터 자유롭다.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가리키지도 않고, 애써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음악의 힘은 불가피하게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피로한 영혼을 치유해주는 것이 아닐까. 음악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음악은 해명하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음악은 단지 존재를 감싸준다. 존재를 날카롭게 가리키지 않고, 존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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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4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5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름 2015-05-19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좋아서 구매했어요. 디자인이 바뀌어 새로 나왔던데 전의 책 디자인이 더 나은 듯 했어요. 그리고 좋아서 글짓기 좋아하는 아이한테도 선물하고. 정여울의 글들은 한겨레와 시사인을 통해 읽었는데 책을 통해 보니 참 좋더라구요. 소개된 책들도 읽고 싶어지고. 다른 책들도 읽었어요. 4월에 수술한다고 또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잘 있지 말아요` 읽었는데 이것도 좋았어요. ^^ 그래서 또 구입.

다락방 2015-05-19 09:31   좋아요 0 | URL
오, [잘 있지 말아요] 좋다고 하신 말씀에 지금 보관함에 넣어두고 왔습니다. 헤헷.
저도 시사인을 통해 정여울의 글을 읽고 있어요. 매번 읽을때마다 좋아서 자꾸 보관함에 넣는 책이 늘어가요. 최근엔 시사인 보고 <소공녀>넣어뒀어요. 그렇지만... 아직 구매하진 않았어요. 구매엔 절제가 필요하니까요. 하핫.
잘 있지 말아요도 언젠가 읽어봐야겠어요.

여름 2015-05-1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공녀`읽고 담아뒀는데. 찌찌뽕. ㅋㅋ 몸만 좀 더 나으면 더 많음 책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녀에게 일어난 일, 그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

먼댓글로 연결한 페이퍼는 무려 2010년에 작성한 것이다. 내가 기적은 일어난다는 내용의 페이퍼를 썼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영화 《워크 투 리멤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저 오래된 페이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댓글을 읽다가 '사랑은 키스로 오는가봐요' 라고 써놓은 걸 보고 갑자기 빵 터져버렸다. 나란 여자, 2010년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사랑은 키스로 오기도 하지만, 키스가 반드시 사랑을 불러오는 건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나는 그만큼 더 늙었다.


아,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고.





















남자 주인공은 자신과는 많이 다른 여자주인공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가진 소원들을 이루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죽고난 후 그가 여자의 아버지를 찾아와서는 '다 해줬는데 기적을 보는 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하자 여자의 아버지가 '자네가 그 애의 기적이었네' 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기적이란 게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적은, 간절히 바랐을 때 이루어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저 오래된 페이퍼에도 인용되었지만, 원서에서 기적은, 남자의 이런 독백으로 끝맺는다.



I now believe, by the way, that miracles can happen.



남자가 지금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나도 믿는다. 그리고 그 기적을, 나는 최근에 본 영화 《비커밍 제인》에서 만난다.


















제인은 엄청난 부자 '위슬리'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가난한 남자 '톰'에게로 향해있다. 가족들은 제인이 위슬리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녀가 위슬리와 결혼한다면 돈 걱정 없이 평생 여유롭게 잘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 톰과 결혼하게 되면 제인은, 아침부터 잠들기전까지 노동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인은 사랑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돈이 아니라 사랑으로. 돈은, 스스로도 벌 수 있는 것이니까.


청혼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무도회를 간다. 그곳에서 어쩌면 떠나버렸을 남자, 톰을 찾는다. 위를 보고 뒤를 보고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표정은 어둡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로 앞에 선 남자 위슬리와 춤을 춘다. 춤을 추는 그녀는 즐겁지 않다. 무도회에 왔고, 누군가의 파트너가 되었고, 춤을 추고 있고, 그 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것이었으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스텝을 밟는다. 빙그르르 돌고 파트너를 바꾸고, 그렇게 사람들 틈 속에 끼어서 다음 동작을 하며 파트너를 바꾸던 중, 자신의 눈앞에 어느새 톰이 와있음을 보게 된다. 그가, 내 눈앞에 있다, 는 것을 그녀가 알아챈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은 환해진다. 와- 내가 다 가슴이 벅차가지고 두근두근했어. 이건, 기적이야!


그는, 없었다. 그녀가 눈을 들어 찾던 그 모든 곳에 그는, 없었다. 그러나 그를 포기하고 체념하고 시간을 버티고 있던 그 때에, 그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나타나서 말을 건다. 나타나서 말을 걸고, 그녀로부터 사랑 고백을 듣고, 자신 역시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한다. 내 심장과 영혼은 당신의 것이라고.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은 장면이 바로, 눈 앞에 그가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그가 보이지 않아 체념했을 때 그때 불쑥, 눈 앞으로 나타나는 남자. 와- 이게 바로 기적이라고. 소리내서 나는 꺅꺅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때 제인이 눈앞에서 톰을 보면서, 와- 이건 기적이야- 라고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가슴 벅참이, 그 순간의 행복이, 그 기적의 실현이 내게는 몹시도 행복했다. 사랑은, 순간을 기적으로 만드는 것. 눈앞에 나타난 남자가 톰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결코 기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적은,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로구나. 나는 그녀의 기적 앞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기적의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그녀의 기적과 함께 한다. 두둥실- 내 마음이 떠돈다.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울렁울렁 두근두근 쿵쿵!!





그러자, 이 기적을 마주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비참하고 처참했던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시작은 키스》에 등장했다.
















남자는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만나고 싶어 그녀의 사무실 앞에서 하염없이 서성인다. 왔다갔다, 어떻게든 그녀를 마주치고 싶어 기다리는데, 직장 동료가 전하는 소식은 '그녀는 출장중' 이라는 거였다. 하아- 



그의 전략은 훌륭했다. 계속해서 복도를 서성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어딘가 향하는 것처럼 걷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확한 행동으로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야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짐짓 서두르는 척 움직이는 것이었다. 오후 끝 무렵이 되자 그는 지쳐버렸고, 바로 그때 클로에와 마주쳤다. 클로에가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좀 이상해 보여 ‥‥‥"

"응, 괜찮아. 다리 근육 좀 푸느라고. 그러면 생각이 잘 돌아가거든." (pp.103-104)


"난 108호 때문에 골치가 아파. 나탈리 팀장님하고 상의 좀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안 계시네."

"그래? 팀장님이 ‥‥‥안 계셔?"

"응‥‥‥지방 출장 가신 것 같아. 난 그만 가볼게. 골칫거리를 해결해봐야지."

마르퀴스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오늘 왔다 갔다 한 거리를 합한다면 그 역시 너끈히 지방에 갈 수 있었다. (p.104)




마르퀴스에게 '그 순간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퀴스는 결국, 그녀의 옆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제인은, 그 순간의 기적에 놀라고 행복하고 감격했지만, 그의 옆에 앉을 수 없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기적이 얼마만큼의 크기, 얼마만큼의 지속성을 가지고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적은, 일어나는 그 순간 놓치지 않고 꽉 붙들어야 한다. 기적은, 기적의 특성상, 수시로 찾아들지 않으니까. 전 생을 통틀어 단 한 번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꽉 잡고, 놓지 않기. 그것이 기적을 마주한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워크 투 리멤버》에서의 기적은, 그녀가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이 존재했으므로 시작됐다.


http://youtu.be/9CVbe00lK9I


(유튭 이전소스 보기가 안돼..왜죠? ㅜㅜ)




150데니아는 이제 춥구나. 기모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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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11-2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기하고 체념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아직 `비커밍 제인`을 보지 못한게 너무 기쁘네요.
얼른 찾아보고 싶어요. 앤 해서웨이도 좋아하구요.

전, 진작에 기모를 지나, 밍크로~~~ 다락방님,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요^^ - 추위를 많이 타는 단발머리가

다락방 2014-11-24 21:2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는 마침 네이버앱에서 굿 다운로드 무료이길래 잽싸게 받아서 봤어요. 단발머리님도 얼른얼른 서둘러 검색해보세요. 지난주까지 회사 동료도 무료로 받았거든요. 영화가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게다가 이게 무려 실화더라고요!! >.<

이제 기모스타킹 신어야겠어요. 다리 추워.. ㅠㅠ

단발머리 2014-11-25 08:36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해요!!!!! 저, 지금 다운받아서 영화 보고 있어요. 완전 행복합니다^^

앤 해서웨이가 지금 입고 나오는 저 자주색 긴 드레스 웬지, 편해 보이고 ㅋㅎㅎㅎ
저한테도 어울릴것 같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ㅎㅎ

다락방 2014-11-25 08:48   좋아요 0 | URL
안되긴 뭐가 안됩니까? 됩니다! 그 자주색 긴 드레스, 단발머리님께 딱 맞을 거에요! 잘 어울릴 겁니다. 후훗

영화 다 보시고 감상 남겨주세요, 단발머리님. 꼭이요! >.<

세실 2014-11-2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커밍 제인의 앤 해서웨이는 참 예쁘네요^^
제인과 톰은 끝까지 갈까요? 가겠죠? 갈꺼야........

다락방 2014-11-24 21:25   좋아요 0 | URL
비커밍 제인의 앤 해서웨이도 예쁘고 인터스텔라의 앤 해서웨이도 예쁘더라고요. 후훗.

제인과 톰은 어떻게 될지, 자, 영화에서 확인하세요. 전 말 못해요. 흑흑 ㅜㅜ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세실님!!)

꼬마요정 2014-11-2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젤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춤을 추는 장면에서 짜잔~ 하고 등장할 때, 제인의 입가에 어쩔 줄 몰라하며 퍼져가는 미소와 톰의 그 간질거리는 표정이요~ ㅎㅎ

영드 중에 <제인 오스틴의 후회>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거기 보면.. 그러더라구요. 톰이든 누구든 자신을 제법 행복하게 해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법 행복한 게 아니라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락방 2014-11-25 08:49   좋아요 0 | URL
크- `톰이든 누구든 자신을 제법 행복하게 해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법 행복한 게 아니다` .. 멋진 말이네요, 꼬마요정님. 그런 드라마가 있군요. 전 사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 비커밍 제인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나이 들어 재회환 톰과 제인을 보는데 어휴...그냥 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