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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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진짜 너무 좋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 내가 하루키를 좋아햇던 그 오랜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보면 그는 '결국은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그 말, '결국은 선한 이야기'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선한 이야기이다.


'나'는 열여섯살 에 열다섯살 소녀가 만나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매주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고 만나지 않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며 대화한다. 자연스레 소년은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연인이라 생각하며 소녀 역시 온전히 네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소년은 이에 기다린다. 응, 너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내 육체도 뜨겁게 반응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야. 너와 함께라는 게 중요해.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품었던 소녀가 그러나 어느 순간 소년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소녀가 나를 좋아했던 건 틀림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녀는 어디로 간걸까. 우리가 만나는 동안 소녀가 얘기했던 '그 도시'로 간걸까? 나는 소녀의 편지를, 그리고 소녀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동료도 만나고 연인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관계들 중 어느것도 소녀에게 품었던 만큼의 격렬한 애정을 갖게 하진 않았다. 마음 속 저 깊이 누군가를 품고, 그 사람을 계속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의 연애는 결혼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이제 더이상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 되어도 그는 변함없이 마음 속 성소에 소녀를 둔 까닭이다. 그러던 그가 그 소녀가 있는 그 도시에 들어가게 된다.


이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인가. 그는 그 도시로 들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곳'에서 소녀가 늘 말해왔던 '꿈을 읽는' 직업을 갖게 되고 그리고 매일 꿈을 읽는 도서관에서 소녀와 만날 수 있다. 비록 소녀는 자신과 헤어졌던 열여섯 살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러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그녀가 있다. 매일 그녀를 만나 꿈을 읽고 그리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그녀를 집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일이 그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순간을 위해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버려야 했다. '나'와 떨어진 나의 그림자는 시름시름 앓는다. 그는 다시 나와 하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 도시에서 떨어져 사는게 아니라 그들이 원래 함께했던 현실 세계-그것을 현실이라 불러야 한다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림자를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여기에 남겠다고 한다. 여기는 그가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 그토록이나 그리워했던 소녀가 있던 곳이니까. 그렇게 자신의 그림자와 작별을 하고 여기에 남고자 결심했는데, 눈을 떠보니 그는 다시 바깥-현실-으로 돌아와 있다. 그 도시를 떠나서. 그리고 이제 다시 이곳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나는 거기에 남기로 결심했었는데.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의 도서관 관장으로 취직해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된다. 



자, 나는 내 입장에서 이야기속 주인공이 되어본다. 그러니까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성소에 누군가를 품고 산다.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면서, 그러나 마음속 성소에 누군가를 품고, 그런채로 직장을 다니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책도 읽고 친구들을 만나고 또 연애를 하며 결혼에 이르기도 한다. 내 마음 저기 저 한구석, 저기에 있는 그 사람을 그대로 둔채로. 그런 상태의 나를 누군가는 '어딘가 비어있다'고 눈치챌 지도 모른다. 혹은 '도저히 다가갈 틈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누군가가 분명히 계속 존재하고 있고,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를 형성하는 하나의 축이기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함께함, 부재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강한 존재, 그렇다면 내 마음속 성소의 사람과 지금은 함깨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함께할 거라는, 함께하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소년을 결국 싱글 중년이 되게한 것일테다. 그런데 마흔다섯, 그토록이나 바라던 상대를 만나게 됐고 심지어 매일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얼마나 꿈같은 일이냐, 얼마나 달콤한 일이냐, 결국 이 순간을 위해 삼십년을 기다린건데. 


그런 상대는 여전히 열여섯살의 소녀다. 게다가 그 도시에서의 소녀는 내가 현실이라 부르는 바깥세계에서 나와 만났었다는 사실을, 나와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내게 '온전히 네 것이 될게' 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 그렇다면, 그것을 소녀에게 알려야 할까? 마흔다섯인 내가, 열여섯의 너에게, 너랑 나랑 바깥 세게에서 사랑했어 우린 연인이었어를 말해야 할까?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를 계속 사랑하면서.


사실 내 나이 열일곱에 열여섯 남자를 사랑해본 적은 없어서(여중여고여대..), 그리고 나의 강한 무의식은 미성년자를 성애의 대상으로 보기를 거부해서, 아무리 입장을 바꿔보려고 해도 열여섯 소년을 떠올리게 되진 않는다. 대신, 나는 이 모든 이야기에 실감적으로 나를 넣어보기 위해, 상대의 나이를 스물일곱으로 설정했다. 자, 그와 내가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내가 그에게 반하고, 그리고 그가 온전히 내것이기를 강하게 바랐던, 그 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 그러나 그가 홀연히 내 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러나 그곳에 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 그가 나에게 보여줬던 마음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내가 그를 사랑했던 만큼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젠가는 그가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함께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그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활동을 하고 연애도 한다. 몇 번의 연애를 거듭해도 나는 정착하지 못한다. 그렇게 마흔 다섯이 되었고, 어느날 갑자기 나는, 그가 있는 곳에 닿게 된다. 눈을 떠보니 내 눈앞에 그가 있다. 그런데 그는 스물 일곱의 모습이다. 아이고야. 나는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지만, 그런데 그는 다른 곳에서 나와 사랑했던 기억이 없다. 나를 모른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내가 나타났고 함께 일을 하면서 매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와 나는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무리 없이 잘해주지만, 나는 그를 매일 볼 수 있어서 기쁘지만, 그런데, 그에게 말을 할 것인가? 있지, 저기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연인이었어, 라고. 그는 여전히 스물일곱 나는 마흔다섯인데? 이 나이 차이가 뭐 감당하지 못할 나이차이도 아니고 상대가 미성년자인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니',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 마음에 품은 채로 그를 계속 사랑하면서, 말하지 않고 좋은 동료가 될것이다. 그러다보면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고 그가 아이를 낳고 아이 아버지가 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하나, 하루키 이야기 속의 '나'는 그림자만 바깥 세상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여기 남기로 결심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는 적막한 도시.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출근해서 나와 함께 일하는 그만 있는 도시. 나는 내가 마음 속 성소에 품었던 사람이 이 도시에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기에 남기를 선택할 것인가? 역시 '아니' 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그림자와 함께 바깥으로 돌아갈 것이다. 비록 바깥으로 가면 내 마음 속 성소에 있는 스물읿곱의 그를 만날 수 없겠지만, 그러니까 그와 함께할 수 없겠지만, 나라면, '그와 함께 적막한 곳에서 둘이서만 사는 삶' 보다는 '그가 없는 바깥 세상에서 내 그림자와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를 다시 내 옆이 아닌 내 마음 속에 넣어야겠지만, 나는 그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그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내 그림자 없이는 살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내'가 믿어야 할 건 바로 '나 자신' 이므로. 낙하할 나를 받아줄 이는 결국 나이고, 나에겐 그 누구보다 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겐 그도 필요하지만, 세상이 필요하다. 그만 있는 세상 보다는 그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나는 선택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줘서 하루키의 이야기를 읽는게 즐거웠다. 게다가 선하기까지 하다. 눈앞에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 유령이라고 할 수 있지' 라는 존재가 나타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 나는 섹스를 할 수 없는데 나에게 성애를 품고 있는 너는 그럼에도 나를 만날거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는 인간이 하루키의 이야기 속에 있다.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와인을 따라주고, 그리운 사람의 묘지에 매주 방문하는 인간이 여기 있다. 다른 사람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여기 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 것 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하루키의 능력인 것 같다. 책속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인용하며 '그가 사는 세계에서는 리얼과 비리얼이 기본적으로 이웃하며 등가적으로 존재했'(p.672)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키가 사는 세계 역시 바깥 세계와 그 도시가 기본적으로 이웃하며 등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나는 기다림이 나의 선택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져간다. 선택이 아니라 그것만 주어진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p.681)



자, 나는 떠난다. 나를 받아줄 이가 나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이 도시를 떠난다. 이 도시는 어떤 도시냐, 내가 그토록이나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있던 도시, 삼십년을 기다렸다 만난 그 사람이 있던 도시, 그런데 그 도시에 그 사람이 있음을 알고도 나는, 나를 찾으러, 나를 믿으며 떠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나를 믿는 것, 나를 찾는 것. 그 사람보다 원하는 건, 바로 나였다.




시간은 몹시 느릿느릿하게, 그래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고 내 안을 통과해 갔다. 일 분에 정확히 일 분씩, 한 시간에 정확히 한 시간씩.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거꾸로 가는 법은 없다. 그것이 내가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것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 P138

누구를 위한 비밀 공간을 확보해둔 채 다른 사람과 연인 관계가 된다-그런 게 가능할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어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그 결과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고독해진다. - P192

여성과의 관계로 말하자면 거의 똑같은 문제의 반복이었다. 남들이 그러듯 몇 명을 만나 사귀었고,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절대 반쯤 노는 기분으로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들과 진정한 의미의 신뢰 관계를 쌓진 못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떤 경우도 잘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꼭 무슨 일이 터져서 매번 그르치고 말았다-그르치다라는 표현이 실로 딱 맞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게 항상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의 존재가, 너의 이야기가, 너의 모습이 내 마음을 도저히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의식의 깊은 곳에서 너를 생각했다. 짐작건대 그것이 가장 큰 이유다. - P193

매일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고, 헬스장에 가서 선강을 챙기고, 일상을 청결히 유지하고, 남은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독신 생활에는 규칙성을 중시하는 것이 제일이다-규칙성과 단조로움 사이에 선을 긋기가 가끔 어렵다 해도. - P194

"네, 고독이란 참으로 무정하고 쓰라린 것이랍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뼈와 살을 깎는 그 무정함, 쓰라림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 제게는 과거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기억이 강렬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감촉이 양 손바닥에 짙게 배어 있어요. 그리고 그 온기의 유무에 따라 사후 영혼의 상태가 크게 달라진답니다." - P441

다만 당신의 이야기에서 제가 추측할 수 있는 바는, 사실 그 모두가 당신의 마음이 원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겁니다. 당신 마음이(당신은 모르는 곳에서) 그러기를 원했다-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 수수께끼의 도시에 남겠노라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셨다고요. 하지만 당신의 진정한 의지는 달랐는디조 모릅니다. 당신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그 도시를 나와 이쪽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는지도 모르지요." - P444

"살면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났고,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제법 진지하게 사귀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소녀만큼 누군가를 열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적은요. - P447

"여기서는 나이 차이도 시간의 시련도, 성적 경험의 유무도 대단한 요건이 되지 않습니다. 나 자신에게 백 퍼센트인가 아닌가, 중요한 건 그뿐입니다. 당신이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 때 상대에게 품었던 사랑은 실로 순수했으며 백 퍼센트의 마음이었지요. 그래요, 당신은 인생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최고의 상대를 만났던 겁니다. 만나버렸다, 라고 해야 할까요." - P449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 P452

"아무래도 우린 해가 진 뒤에 만나는 수밖에 없겠네요."
"두 마리 부엉이처럼."
"어두운 숲속 깊은 곳, 두 마리 부엉이처럼." - P572

나는 눈을 감고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는-이를테면 내가 열일곱 살일 때는-시간 같은 건 말 그대로 무한에 가까웠다. 물이 가득찬 거대한 저수지처럼. 그러니 시간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 P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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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2-31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의 진심이 담긴 리뷰를 쓸 수 있게 해준 리뷰이벤트 도서 간만에 등장!!👏👏👏👏👏 어떤 지점이 다락방님 마음을 움직이는지 알 것 같아요. 소설에 아주 푹 빠져서 읽는 다락방님의 독법도 도드라지고요^^ 즐거운 독서하셨군요~~!

다락방 2024-01-02 08:45   좋아요 0 | URL
어휴 하루키가 하는 이야기가 이야기 자체로 제 마음에 이렇게 훅 들어온적은 또 처음인 것 같아요. 그간 하루키의 유머를 제가 엄청 좋아했거든요? 찰떡같은 비유도 좋아했고요.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 자체가 저를 움직이네요.
ㅋ ㅑ - 역시 독서 만세입니다. 만세!!

단발머리 2023-12-3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다락방님 너무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같은 책을 읽었을 때 겹치는 지점과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게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네요.
저도 그 사람에게.... 이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너를 사랑했던 그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못할거 같고, 그리고는 그렇게 그 사람 곁에 남기 보다는 그 사람을 두고 도시를 떠나 나의 또 다른 현실로 돌아올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또 다른 나를 그 사람에게 남겨두고 싶기도 해요.
나의 일부를요.

전 하루키를 많이 안 읽어서요. 인제서야 조금씩 좋아져요. 이 책도 궁금해서 나오자마자 샀는데 이제 막 읽었네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죠? 하루키를 읽는 시간이라니.....근사하다!!!

다락방 2024-01-02 08:47   좋아요 0 | URL
게다가 상대가 미성년자인데 내가 성년이라면 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건 말하는 순간 범죄가 되지요. 아무리 내 안에 사랑 있어도.. 그리고 어쨌든 저는 현실로 돌아올 겁니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둔 채로 삶은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걸 선택할 것입니다. 크- 어쩐지 마음이 살짝 아프지만, 삶이란 건 결국 모든 걸 다 가지면서 살아갈 순 없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야겠지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야겠고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처음에 오글거려서 이걸 어쩌나 했는데, 좋은 독서였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12-3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글거렸지만 결국엔 좋았군요! 저도 언젠가 하루키를 좋아할 날이?!

다락방 2024-01-02 08:48   좋아요 0 | URL
하루키 안좋아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잖아요. 저도 제가 지금 하루키를 알았다면 좋아했을지 모르겠어요. 제 경우에는 <렉싱턴의 유령> 이라는 단편집 읽고 훅 빠졌는데, 어쩌면 책과의 궁합도 필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persona 2023-12-3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읽겠다고 안 읽고 있었는데 끝까지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완독 축하드립니다.

다락방 2024-01-02 08:48   좋아요 1 | URL
저도 초반에 엄청 갈등했어요. 그냥 팔아버릴까,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나 즐거운 독서를 하였습니다. 페르소나 님, 도전!! ㅎㅎ

루피닷 2024-01-01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4-01-02 09:09   좋아요 1 | URL
루피닷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미 2024-01-0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완전 초반 재미없어서 던져두었다가 다락방님의 ‘아오 진짜 너무 좋다‘보고ㅋㅋㅋㅋㅋ
지금 400쪽까지 읽었어요 정말 좋네요. 마저 읽고 리뷰 읽어보렵니다. 다락방님은 한 문장조차 영향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4-01-02 09:09   좋아요 0 | URL
저 막 읽다 보니까 ‘아오 좋아‘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까요? 미미 님께도 어느 부분에서든 좋은 독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미미 님, 해피 뉴 이어!!

느긋느긋 2024-01-1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1등 축하드려요!
이게 바로 호텔에서 쓰여졌다는 전설의 리뷰!!
읽고있으니까 책 다시 읽고싶어지는걸요, 읽으면서 무척 좋았던 그 시간을 다시 만들어봐야곘어요,

저도 돌아간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채 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 나이간격은 너무한 듯 ㅠㅠ 그걸 떠나서라도
오래 그리워한 사람을 갑자기 볼 수 있게 됐을때는 그냥 매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은 느낌.

마지막 문장도 새롭네요, 그 사람보다 원하는 건 바로 나, 진심으로 원하는 건 바로 나.
역시 외로움지수 0인 락방님다운, ㅎㅎ
그러고보니 다들 궁극적으로는 그럴 것 같아요.
선한 리뷰 잘 읽고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벽 어쩌고 책을 읽고 있는데 너무 괴롭다. 소년 소녀가 등장할 때부터 괴로웠는데 동그란 가슴, 입맞춤, 나는 네 것이야.. 이런 거 나오는데 진짜 너무 괴롭고 오글오글 ㅠㅠ 손발이 오그라들고ㅠㅠ 그만 읽을까 수차례 갈등중이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 시간이 얼마나 긴데, 나 하루키 진짜 너무 좋아했고, 하루키만 꽂아두는 책장이 따로 한 칸 있었다고. 한 칸으로 모자라서 막 눕히고 난리가 났었는데 이번에 그 벽 책 읽으면서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 하루키를 그간 좋아하며 여러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사실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자, 일각수, 꿈을 읽는 주인공.. 이거 다 하루키가 다른 책들에서 했던 이야기들이야. 양 사나이는 안나오나 몰라. 하여간 절반도 안읽고 괴로워하며 그냥 그만두고 팔아버릴까 하고 있다. 하루키 님, 왜이러셨어요. 왜 저 읽기 힘들게 만드시나요. ㅠㅠ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하루키는 어디갔나요. 아니, 변한 건 나인것인가.. 너무 괴롭다 ㅠㅠ 읽다보면 어느 순간 '역시 하루키구먼!' 하는 때가 오나요? (그렁그렁)


우울한 마음 다잡고 2023년 읽은 책들의 베스트를 정해보자. 귀찮아서 안하려고 했는데, 하루키 책 읽으면서 문득, 올해 남은 시간 더 읽어봤자 베스트 갱신은 없겠구먼, 해가지고.. 그냥 해보는 걸로.



2023년 에세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의 《Life Lessons》
















이 책은 올해 4월과 5월 두 달에 걸쳐 읽은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읽자고 마음 먹게 된건 정희진 쌤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인생수업》의 제목과 표지 만으로 내가 전혀 읽지 않았을 작품. 그래? 내가 전혀 읽지 않을 종류의 책인데 그렇게 좋다고? 그래서 친구들과 영어책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당연히 번역본도 함께 했는데, 정희진 쌤은 번역을 칭찬하셨지만, 번역본에 대해서라면 전혀 추천하지 않는다. 두 저자가 번갈아 얘기하는 책에서 번역본은 명확히 구분도 되지 않고 문장 번역도 직역된 게 아니라서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문장 저 문장과 맞아들어가질 않을 뿐더러, 번역본만 보면 다소 지루한 경향이 있다. 원서 읽고 너무 좋아 번역서 선물했는데 상대가 읽다 포기해버렸다. 


책과 내가 만나는 때가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나에게 적절한 시기에 아주 제대로 찾아왔다.

fear 에 대해 읽을 때에도 너무 좋았지만, surrender 는 압권이었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연초까지 아버지는 계속 병원 신세를 지셔야 했다. 수술, 다시 재수술, 응급실, 입원, 또 수술. 그 과정에서 섬망이 오기도 했던 터라 나는 그 시간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어느날은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혼자 침대에서 벌벌 떨었던 밤들도 기억한다.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아 먹기도 했다. 나는 아주 많이 두려웠다. 나의 마음을 아는 친구가 그때 내게 문자메세지를 보내주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아버지는 언젠가 돌아가실거야."


이 문자메세지가 그 순간 내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아마 다른 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다면 그때도 위로가 되는 메세지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두렵고 무서웠던 건,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실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죽지 않는가. 그래, 우리 아버지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나는 아버지를 예외로 만들고 싶어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무서워하는게 아닌가. 받아들이자. 나의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돌아가실 수도 있다. 받아들이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용이었고 수용하고나자 내가 통제하지 못할 것들에 대해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받아들인다고 해서 슬픔이 옅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하지 못함에 대해 가슴 끓이진 않을 수 있다. 그때 LIFE LESSONS 에서 내게 surrender 를 알려주었다.



Surrender was a choice, and that it did not mean giving up. -p.168

When we surrender, we accept it just as it is. -p.169



그 뒤로 인생에서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끙끙대는 사람을 볼 때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고 surrender 를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나 그 때 상대의 귀에 그것이 어떻게 들릴지를 모르겠다. 자칫하면 포기하라는 걸로 들리지 않을까. 받아들이라는 말을 포기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렇게 힘든건데, 받아들이라고, 받아들이면 받아들이고나서의 그 다음 일들이 펼쳐질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2023년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는 2019년에도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었다. 다시 읽기한 2023년에도 내게 최고의 여성주의 책이 되었다. 최근에 읽은 《여전히 미친》은, 나는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도 의미있지도 않았다. 역사 속에서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흥미롭지만, 그 사실들의 기술은 내게 큰 깨달음이나 사고의 변화를 주진 않았고, 나는 이런 류의 책이 그렇게 재미있지가 않다. 그런데,


레이첼 모랜은 달랐다.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는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한 사람의 성찰이 얼마나 깊게 그리고 얼마나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 안에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권해 읽은 남자사람도 이 책으로 인해 자신의 사고가 완전히 변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알라딘을 통해 함께 읽은 다른 분들도 모두 별다섯을 주며 이 책에 대해 감탄했다. 물론, 이 책 읽고, 별 하나 준 구매자평도 보았지만, 그 분의 닉네임을 보니 놀랍지는 않았다. 책을 읽은 감상이 모두에게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이 책은 재미없을 수도 의미 없을 수도 있겠지만, 별하나 리뷰를 작성한 사람은 별 하나 주려고 읽은것으로 너무나 당연히 추측이 된다. 더 말하진 않겠다.



2023년의 완독,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와 진짜 다 읽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언젠가는 읽어야지 다짐했던 책이라 완독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그러나 이 두꺼운 책 완독하고 나의 지식이 놀라울만큼 늘어났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그저 슬프기만 했다. 인간은 언제고 소멸한다는 것이 나에겐 큰 슬픔인데, 세상에 지구도 태양도 언젠가 소멸한다는 게 아닌가. 아니, 우리 왜 살아요? 왜 존재하나요? 모두 소멸한 것을... 하아-



2023년의 소설,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

















페이드 포를 언급하며 얘기했듯이 나는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좋아하고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2023년에 읽은 우체국 아가씨는 그런면에서 완전히 나에게 맞춤한 책이었다. 어떤 책이든 읽는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가져가는 바가 다를 것인데,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고집스럽게 나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해야만 했다. 이건 일전에 인상적으로 읽었던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에서도 느꼈던 바다. 우체국 아가씨에서는 언제나 나에게 최선의 가치였던 경험이, 그런데 정말 그런가? 라는 의문으로 이어져야 했고, 거기에서 오는 충격은 나에게 정말 신선했다. 나는 정말 재미있어서 소설을 읽는데, 이 재미있는 소설이 그저 재미로 끝나는게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아니, 정말 좋지 않은가? 소설 읽는 거 최고라고 우체국 아가씨를 읽으며 생각했다. 올해 이 책을 여러명에게 선물했다.




2023년의 구원,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엑소시스트》
















영화 《엑소시스트》는 내 인생 가장 무서운 영화였고 그 영화 이후로는 공포영화를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렇게 무서운 영화로만 알고 있던 엑소시스트가 세상에 원작이 있다는 게 아닌가! (시사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 원작이 무려 철학을 담고 있대? 공포 말고 다른 게 있다고? 나는 급박하게 이 책을 사서 읽었는데,  정말로 공포 말고 다른 게 있었다. 그건,


구원이었다.


자신이 믿는 신 혹은 종교에 대한 강한 신념, 그걸로 인해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도 했는데, 그것이 과연 옳은지, 내가 믿는 당신은 정말 존재하는지, 제발 나에게 응답을 해달라는 간절한 부름을 이 책 속의 등장인물이 갖고 있단 말이다. 결국 악령이 몸에 들어와있는 소녀를 구해주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면서 그는, 그가 그토록 원하던 응답을 받는다. 나는 그 장면에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는데, 믿는 것은, 믿는 자에게 강력한 힘이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당연한 명제, 그러나 의심스러운 명제가 참이 되는 걸 목격해버리고 말았다. 엑소시스트 책을 사서 펼칠 때만 해도, 내가 책장을 덮으며 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악은 아주 비겁하다는 것도 더불어 다시 새긴다.




2023년의 고정관념 타파, '하마노 지히로',《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와 진짜 책을 들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던 책이고 읽으면서도 정말 읽기 싫었던 책이다.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지? 라는 생각을 또 얼마나 했는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읽기를 잘했다. 이 책을 읽은 후의 가장 큰 수확은, 지구상 어딘가에 동물과 섹스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가 동물을 귀엽게 혹은 불쌍하게 보는 그 모든 관점은, 당연하게도 인간중심적 이라는 것. 그렇게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마침, 다음 책과도 주제 파악이 겹쳐버리고 마는데...




2023년의 포스트 휴머니즘,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
















이 책 한 권을 읽으면 놀랍게도 버섯의 생애를 알 수 있지만 자본주의도 만나게 된다. 인간이 비인간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끼어듦이 필요하듯이, 인간에게 비인간과의 얽힘도 필요하다.




2023년의 팟빵, 정윤수의 <고독한 고전음악방>















사실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 속의 한 코너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코너를 듣는게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클래식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김석란'의 《에릭 사티》도 사서 읽었다. 에릭 사티 웃김.. 자기가 종교도 만든 사람, 그리고 교주이자 유일한 신도인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윤수 님 너무 좋아서 신작으로 에세이 한 권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고독한 고전음악방을 과거의 것부터 다시 듣고 있지만, 요즘 뭐 들을 시간 없어서 어느 순간 멈춰있긴 하다. 



2023년의 액체, 쉼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내 말에 친구가 <쉼> 한박스를 보내주었다.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거였다. 이 음료 한박스를 들고 검색해보니 스트레스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게 아닌가. 받자마자 하나 쭈욱 마시고 그 날밤 푹 잤다. 음료의 도움인지, 며칠간 못자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 이 음료는 존재 자체로 위안이다. 혹여라도 내가 스트레스 잔뜩 받으면, 나에겐 쉼이 있다!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다. 존재 자체로 그저 도움이 돼. 친구는 혹여라도 효과가 없다면 플라시보 라도 있기를 바랐는데, 이미 충분히 플라시보 효과 대박이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음료가 존재하다니,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음료가 존재하다니, 나에게 이게 있다!! 



2023년에는 아버지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응급실 방문도 반복하셨다. 우는 날이 여러날 이어졌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네덜란드를 다녀왔고, 여동생과 함께 하노이를 방문했다. 나 혼자서는 호치민을 다녀왔다. 어떤 날들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했지만, 대체적으로 잘 견뎌냈다.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그러니까 불안하거나 답답하거나 우울함에서 나를 건져내줄 수단을 좀 더 많이 마련해두는 것이 낫다고 늘 생각하는 내게, 파김치를 만들어본 것은 너무 좋은 해답이 되어주었다. 바질을 키워 페스토도 만들어보았고 고수와 치커리도 재배했다. 쑥쑥 자라는 바질을 볼 때마다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바질을 키우는 것이 낫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칩니다!! 요가도 다시 시작했다. 열심히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는 날이면 또 크게 만족한다. 팔을 위로 뻗어보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 것은 할 때마다 내 몸을 감각하게 한다. 유독 심하게 외롭고 고독한 날도 있었지만, 그런 감정들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잘 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마음들은 전해진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너를 생각해' 라고 부러 말하지 않아도 '나를 생각하는구나' 가 느껴질 때면, 내가 인생에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알라딘을 통해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도 잘 이어져오고 있다.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 여러분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내년에도 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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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23-12-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변했다기보다 다락방님이 변한 게 아닐까요?
그나저나 2023년의 액체라니, 저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ㅎㅎ

다락방 2023-12-27 11:4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제가 변한 것 같습니다, 얼음장수 님. ㅎㅎ
처음에 2023년의 음료 라고 썼다가 바꿨어요. 음료 대신 액체로 가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27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방아, ˝나는 네것이야˝에서 나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ㅋㅋㅋㅋㅋ
영원히 자라지 않는 하루키와 성장한 다락방의 간극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7 12:08   좋아요 0 | URL
저도 초반부터 으윽 오글거려 미치겠다.. 이러다가 네것이야 에서 뒤로 자빠질뻔했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한때 다 모으던 하루키, 이제 되팔 하루키.. ㅠㅠ

잠자냥 2023-12-27 12:10   좋아요 0 | URL
누가 그렇게 말한다고... 아 미쳐. 도대체...ㅠㅠ

다락방 2023-12-27 12:23   좋아요 0 | URL
저는 성인된 남주가 소녀 매일 만나는 것도 너무 싫어요. 쫄리고 ㅠㅠ 진짜 성장 안하는 것 같아요 ㅠㅠ

잠자냥 2023-12-27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와 버섯 읽은 안방 님 칭찬합니다!

참, 잠이 잘 안 올 땐 마그네슘을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내년에도 화이팅, 책탑과 킹침대와....... 계속 고!

다락방 2023-12-27 12:23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래서 마그네슘도 제가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저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우먼스 타이레놀, 마그네슘, 그리고 이젠 쉼... 으하하하하

내년에도 책탑과 킹침대와...추석 연휴 길더라고요. (아무말)

올해에도 감사했습니다, 잠자냥 님.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샤라라랑~

persona 2023-12-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하루키 좀 그래서 매번 포기하는데 이번에도 나는 네 어깨를 감싼다에서 멈추었네요. 영어로 읽으면 좀 나은데 왜 한글판을 샀지 싶어요. ㅋㅋ
인생수업 공부팟캐에서 나와서 궁금했는데 언젠간 읽어봐야겠어요.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3-12-27 14:00   좋아요 1 | URL
아 영어로 읽으면 좀 나은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 하루키 되게 좋아했었는데 이번 책 읽기가 왜이렇게 오글거리고 힘든건지요 원 ㅠㅠ 소년소녀에서 제발 좀 벗어나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놈의 동그란 젓가슴 타령 ㅠㅠ

persona 2023-12-27 16:19   좋아요 0 | URL

하루키는 일본학 근현대문학 시간에 ‘하루키와 아메리카니즘’으로 배웠어요. 작가가 처음 소설 쓰기 시작할 때부터 영어로 써보고 그걸 다시 일어로 바꿔 써서 일본어로 읽을 땐 외국어 번역 책 같아서 아메리카니즘 이야기 할 때 그 이야기로 시작하더라고요. 그 이야길 듣고 저는 영어로 읽어봤거든요. 과제에 하루키도 읽어야 해서 수강포기를 고민했던 과목이었는데, 마스터베이션이랑 성적 묘사가 있는 건 아니깐 그 부분은 좀 로맨스 소설이다 생각하고 읽으니 진짜 영어 번역서가 더 잘어울리는 작가예요. 심지어 반 버닝은 윌리엄 호크너 거랑 같이 읽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상실의 시대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란가 그런 책들은 다 못 읽었는데 다자키 쓰쿠루나 양 사나이 시리즈 영어로 읽었을 때 오히려 완독 가능했어요.
here she is, all mine, 이게 더 괜찮은 거 같아요.
니꺼내꺼, 나 스베떼가 오레노/기미노 모노 어쩌고 하는 거보다 안 오글 거리는 거 같더라고요. ㅋㅋ
하지만 어떤 불쾌감이나 소아성애 아닌가 하는 의심은 영서로 읽어도 마찬가지일 거 같기는 해요. 주인공들이 내내 자라지 않고 여성 등장인물들이 죄다 어떤 제공자나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한 이질감 같은 건;; 안 없어지더라고요.

다락방 2023-12-28 08:22   좋아요 1 | URL
here she is, all mine 은 말씀하신 대로 오글거리지 않네요. 페르소나 님 댓글 읽으니 그나마 짧은 분량의 하루키 책은 영어로 읽어볼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오.. 너무 좋은 댓글이에요.

그런데 하루키는 말씀하신 것처럼 아저씨+소녀 구조를 너무 많이 써요. 그 아저씨가 소녀에게 더러운 짓을 하거나 하진 않지만, 그런데 이 구조에 대한 무슨 로망 같은 거 있는 것 같아요. 이 구조를 반복하는 건 징그러워요. 하루키 영어책 좀 검색해봐야겠어요. ㅎㅎ

persona 2023-12-28 09:19   좋아요 0 | URL


단편집이기도 하고 barn burning도 있는 The Elephant Vanishes 부터 읽어보시면 단편이라 덜 부담스러우실 거예요. 영어 번역본으로 읽을 때 가장 세련돼 보이는 일본 작가인 것 같아요. 여기저기 재즈가 묻어나서인지… ㅎㅎㅎ

다락방 2023-12-28 10:03   좋아요 1 | URL
오오 말씀하신 책으로 사야겠어요!! 고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2-2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주제로 뽑아주신 책들이 돋보입니다. ‘쉼‘이라는 음료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받은 마음 때문에 다락방님께 더 위로가 되었을 것 같아요^^ 저도 버섯 책은 궁금한데 나중에라도 읽어봐야겠네요.
다락방님 올해도 알라딘 서재에서 다양한 이야기로 만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다락방 2023-12-27 14:02   좋아요 0 | URL
버섯 책 너무 좋았어요, 거리의화가 님! 쉬운 읽기는 아니었지만 읽기를 잘한 책입니다. 거리의화가 님도 다 읽고 좋아하실 것 같은 책입니다.
거리의화가 님, 올해도 여성주의 책읽기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거리의화가 님은 늘 든든하고 단단하게 그곳에 계셔주신 것 같아 큰 힘이 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거리의화가 님!!

햇살과함께 2023-12-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노르웨이의 숲> 다시 읽는데, 오글오글 거려서 참고 읽고 있습니다.
강간 농담을 하질 않나...
다락방님이 첫 줄에 쓴 저, 저, 저런 묘사, 35년이 지났는데도 변함이 없네요??
하루키 정말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이군요.

다락방님 여러 힘든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능력자입니다.
내년에도 함께해요!

다락방 2023-12-27 15:29   좋아요 2 | URL
저는 <상실의 시대> 두 번 읽었었어요. 좋아서요. 읽고나서도 오래 좋아했고 서점으로 달려가서 <위대한 개츠비>도 사서 읽었습니다. 피츠제럴드도 사랑하게 됐고요. 그런데 오늘의 하루키를 못견디겠어요. 흑흑 ㅠㅠ 저는 과연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요? ㅜㅜ 청춘의 아이콘이 아니라 주책바가지 할아버지 같아요. 소녀의 동그란 가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햇살과함께 님, 올 한 해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우리 내년에도 함께해요!! >.<

은오 2023-12-27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벌써 다락방님의 연말결산이 올라왔다!! 😆 연말에는 서재분들의 연말결산 페이퍼 보는 재미가 클 것 같아서 기대중입니다. >_<

덕분에 <페이드 포> 만나게 되어서 다락방님께 너무나 감사하고요.
<우체국 아가씨>가 무려 다락방님의 “올해의 소설”이라니...!! 저는 올해 <초조한 마음> 너무 재밌게 읽어서 이미 읽으려고 찜해둔 책인데 기대가 더 커집니다. 내년엔 우체국 아가씨를 만나봐야겠어요!!

올해 다락방님을 만난 게 제게 큰 행운입니다. 어쩜 이런 분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다락방님!! 올해도 고생 많으셨고요, 멋져 주셔서 감사하고요, 알라딘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함께해요!!!!! 많이!!!!! 좋아합니다. ❤️❤️❤️❤️❤️

잠자냥 2023-12-27 13:22   좋아요 3 | URL
우리 게으름뱅이 곰탱이는 연말 결산 없이 혼자 수상 소감 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2-27 13:2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상소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저도 연말결산 하려고 어떤걸 순위권에 올리지? 미리 생각중이었다고요!! ㅋㅋㅋㅋㅋ 전 12월 말일까지 꽉 채워서 읽고 1월에 결산하겠읍니다.

다락방 2023-12-27 15:32   좋아요 4 | URL
제가 너무나 귀찮아서 언젠가부터 연말결산 안썼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번에는 딱히 뭐 페이퍼 쓸게 없어서 결산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ㅋㅋㅋ 뭐라도 쓰긴 써야겠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이드포 은오 님이 아주 잘 읽어주셔서 저도 너무나 뿌듯합니다!! 저도 <초조한 마음>너무 좋아했어요!! 저는 아마 그런데 <연민>이란 제목으로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크-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투른 연민은 인간을 망친다고 제가 막 분개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뒤로 읽었던 츠바이크들은 딱히 강한 인상 받지 못했는데, 저는 올해 우체국 아가씨가 초조한 마음을 눌러버렸습니다. ㅋ ㅑ ~
은오 님 어서 읽고 리뷰 써주세요!!

저도 은오 님 많이 좋아합니다. 알라딘의 샛별 은오, 저는 은오 님의 편입니다!! 만세!!

hnine 2023-12-27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테아닌이 음료로까지 나오는군요. 제 경우에는 잠 자는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어요 ㅠㅠ
효과중에 플라시보 효과가 최고이지요!

다락방 2023-12-27 15:3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나인 님. 플라시보 효과가 짱입니다. 저는 플라시보만으로도 이 음료의 가치를 높이삽니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음료라니요. 착한 세상 ㅠㅠ 물론 자본주의가 그 바탕이지만...

나인 님, 연말 잘 마무리 하세요!!

망고 2023-12-2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드 포 아직 안 읽었는데 어서 읽어야 겠어요^^아 근데 다락방님 하루키 좋아하셨구나 저는 하루키 두권 읽고는 그만 뒀는데요 바로 다락방님이 쓰신 그 이유 때문에 뭐만 하면 잤잤ㅋㅋㅋㅋ그리고 에릭 사티 땡겨요 교주이자 유일한 신도 오호🤔

다락방 2023-12-27 15:34   좋아요 2 | URL
망고 님, 페이드 포 읽기 아마 힘들실겁니다. 그러나 힘든만큼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페이드 포는 정말 짱이에요!!
저 하루키 되게 좋아했어요. 두번씩 읽은 책들도 읽고 길을 걸어가면서 읽은 책들도 읽고 그랬어요. 하루키의 농담은 언제나 저에게 제대로 먹혔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진짜 너무 힘드네요. 만약 이맘때에 제가 하루키를 처음 만났다면 결코 좋아할 수 없었을 작가일 겁니다. 하아- 세월이여.. 흑흑 ㅠㅠ

망고 님, 에릭 사티도 읽어주세요!! ㅋㅋㅋㅋㅋ

망고 2023-12-27 16:42   좋아요 1 | URL
저 다락방님 길을 걸어가면서 책을 어떻게 읽으셨어요?ㅋㅋㅋㅋ상상하니까 너무 웃음이....(죄송) 꼭 만화책에 나올거 같은 캐릭터십니다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8 08:14   좋아요 1 | URL
저 재미있는 책은 멈추는게 아쉬워서 걸으면서도 읽거든요!! ㅋㅋㅋㅋ 그러다가 회사 직원 만날 때도 있고 한번은 동네 지하철역에서 친구 만났는데 지하철에서 읽다가 내려서 계단 올라가는데 계속 읽었는데 누가 팔을 잡으면서 ˝야 그렇게 재밌냐?˝ 해서 보니까 다른 동네 사는 친구더라고요? 아니 너 왜 여기있어? 라고 제가 묻고 그 친구는 ˝무슨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어!˝ 했어요. ㅋㅋㅋ 한 번은 걸으면서 책 읽다가 엄마한테 전화와서 받았더니 ˝너 누가 걸으면서 책 읽으래!˝ 이래서 보니 엄마가 건널목 저 편에서 저를 보셨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이래봬돼 신경정신과 상담 갔다가 걸으면서 책 읽지 말라는 의사쌤의 지시를 듣고 돌아온 사람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미 2023-12-27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쉼>을 마셔봐야겠어요!!
저 <인생수업>번역서도 좋았는데 원서를 꼭 읽어봐야겠군요.
(안그래도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원서는 예전에 사두었지요ㅋㅋㅋ)
번역을 잘 해도 원서로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줌파 라히리도 그래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나봅니다.

다락방님 올해도 여성주의 책 함께읽기 이끌어주셔서 넘넘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3-12-27 15:35   좋아요 1 | URL
저는 인생수업 번역서 너무 헷갈리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집어 던졌어요. 원서 읽다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번역서 찾아보면 통 찾을 수도 없고 말이지요. 번역가가 맥락에 맞게 문장을 만들어낸 것 같단 생각을 했고, 그건 정말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ㅠㅠ 그렇지만 인생 수업 원서가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받아들임에 대한 내용은 저에게 아주 울림이 컸습니다. 미미 님께도 좋은 독서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미미 님, 이번 해에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감사하고 있다는 것이 미미 님께도 전해질거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우리 함께 열심히, 즐겁게 가봅시다. 빠샤!!

Falstaff 2023-12-27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년 1월 10일에 무라카미 하루키 독후감 하나 올릴 건데요, ㅎㅎㅎ 이 양반이 여성들의 풍만한 유방에 무슨 로망이 있는 거 같다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7 15:28   좋아요 1 | URL
저는 동그란 젖가슴에 로망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 늙어서도 소녀의 동그란 젖가슴을 놓지 못하는 하루키 ㅠㅠ 저는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폴스타프 님의 하루키 리뷰 너무나 기다립니다. 아아 하루키를 좋아했던 긴 세월이여... 흑흑 Orz

blanca 2023-12-27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 거부감 뭔지 알 것 같아요. ㅋㅋ 왜냐면 제가 그 시기가 있어서 하루키 엄청 멀리했었거든요. 오히려 이십대 때 정말 이건 아니다, 몹시 거북하다, 이러면서 안 읽었어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 정말 이상한 게 갑자기 그럴 수 있어, 그러면서 다 넘어가지더라고요. 이 변화가 뭘 의미하는 건가 생각해봤는데 하루키가 한창 성적 묘사에 열을 올렸던 시기가 있고 이제 그런 여성에 대한 성적 타자화를 넘어갔구나 싶은 계기가 있었어요. 그게 <색채 뭐시기> 였던 것 같아요. 올해 다락방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만큼 잘 넘기시고 보람차고 아름다운 일들도 많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당장 쉼을 먹어봐야겠네요.!

다락방 2023-12-28 08:20   좋아요 1 | URL
저는 정말 젊은 시절 하루키를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도 싫은 건 아닙니다만, 이번 책을 읽는데 너무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그런데 이 페이퍼 쓰고 나서 좀 더 읽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포스트잇 계속 붙이고 있어요. 힝- 이렇게 갑자기 또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다니. 하아- 역시 저는 하루키를 미워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아, 작가란 무엇인가, 책이란 무엇인가, 하루키란 무엇인가..

쉼이 블랑카 님께 쉼을 가져다줬으면 좋겠네요!!

블랑카 님,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만세!!

persona 2023-12-28 15:34   좋아요 1 | URL
아! 저 원래 하루키 극혐하다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기였나 그거랑 헛간을 태우는 거랑 영어로 읽으면서 하루키 읽어볼만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긴가민가 돌아선 입장이었는데요. 그게 영어로 읽어서 일수도 있지만 ㅋㅋㅋㅋ 그놈의 젖가슴 판타지가 그 글들에는 잘 안보여서였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 사람 그거 아니면 더 잘 쓸 수 있는데 왜 꼭 그걸 놓지 못할까 싶기도 하네요. ㅎㅎ
그거 때문에 다시 읽기 시작했지만 다 도중에 중단했어요. ;; ㅋㅋㅋ

새파랑 2023-12-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3년의 액체라니...

혹시 숙취음료 인가요???

또 이렇게 하루키 팬 한분이 사라지는군요 ㅜㅜ 슬픕니다 ㅋㅋ

다락방 2023-12-30 14:10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새파랑 님!! 하루키 좋아요!! 이 책 뒤로 갈수록 좋아요!! 너무 좋아요!! 엉엉 ㅠㅠ

단발머리 2024-01-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과 <Life Lesson> 읽을 때 참 좋았어요. 제가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너무 ‘기독교 서적‘ 같아서 ‘아멘!‘을 외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저 책을 영어로 읽어서 더 좋은 점도 있었던 듯 합니다. 이를 테면, 위에 인용해주신 169쪽의 이런 문장.....

When we surrender, we accept it just as it is. -p.169

아무리 잘 번역한다 해도 그 느낌이 영어만은 못할 거 같거든요. 내년에도 후년에도 우리 오래오래 같이 읽어요, 다락방님!

다락방 2024-01-03 18:18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저야말로 단발머리 님과 이 책을 함께 읽었다는 게 정말 좋습니다. 제게 저 책을 읽었을 때 저 책의 문장들과 그리고 단발머리 님의 존재가 함께 다가왔습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데 좋은 책도 때를 알고 오는가 봅니다. 저에게 정말 고마운 책이었어요. 마침 그 때 와서 저는 좋은 메세지를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 영어로 읽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재인용하신 서렌더, 저도 정말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아, 올해는 역시 원서를 좀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저는 잘 안되네요 ㅠㅠ
 

지난주의 어느날, 인스타를 통해 토마토 마리네이드 만드는 영상을 보았다. 얼핏 보았는데 올리브유는 집에 있고 방울토마토만 있으면 되겠다 싶어 연휴동안 만들어야지, 방울토마토를 주문해 두었다. 그리고 일요일, 전날 안산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던 길, 아 그런데 토마토 마리네이드 마늘.. 집에는 빻아서 얼린 마늘만 있으니 생마늘 사서 빻아야겠다, 하고 마트에 들러 깐마늘을 한봉지 사가지고 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방울토마토를 꺼내들고 쨔잔- 레서피를 찾아봤는데, 마늘이 아니라 양파가 들어가는 거였다. 읭? 나 왜 마늘이라고 생각한 부분? 그래도 뭐 오케이. 양파는 집에 있으니까 마늘은 이따가 삼겹살하고 같이 먹지 뭐, 하고는 방울토마토, 양파, 올리브유를 꺼내두었다. 그런데 얼라리여? 발사믹 식초도 필요하다는게 아닌가. 나는 발사믹 식초가 없는데? 다다다닥- 발사믹식초 대체품을 찾아보았더니 무슨 와인 식초 어쩌고가 나온다. 아니, 그런게 있을리 없잖아. 하는수없이 나는 여동생에게 '발사믹 식초가 없는데 뭘 대신 넣어야 할까?' 물어보니, 여동생은 발사믹식초 생략가능이라고, 자신은 그거 안넣고 한다는 게 아닌가. 굿. 좋았어. 그러면 과감히 빼! 대신 여동생은 소금으로 간을 좀 맞추라고 했다. 소금은.. 어느정도나 넣어야 할까? 아무튼 이 블로그 저 블로그 기웃거리며 찾아보니 어떤 사람들은 바질을 다져서 넣고 어떤 사람은 페퍼민트를 다져 넣었다. 생략가능해 보였지만, 뭔가 허브를 넣으면 더 좋은가 보았다. 흐음. 바질은 없는데, 페퍼민트도 없고... 파슬리 가루만 있는데 이건 그게 아니고.. 하다가. 앗!! 나에게는 고수가 있다!! 하는 큰 깨달음이 닥쳐오는 게 아닌가. 그래, 내게는 내가 농사 지은(응?) 고수가 있다. 좋아쒀!! 나는 얼른 나의 베란다로 가 고수를 몇 장 따온다. 따는 순간 향이 훅- 퍼져와서 너무 많이 넣지는 말자, 하고 조금만 따왔다. 내가 재배한 고수인 것이다.




내가 찾아본 토마토 마리네이드 레서피에 고수를 넣은 사람은 없었지만 ㅋㅋㅋ 나는 무려 내가 키운 고수가 있다. 내가 해보게쒀!! 바질도 되고 페퍼민트도 되면 고수라고 안될게 뭐람? 좋아쒀!! 그렇게 나는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든다. 둠칫 두둠칫. 아주 어깨춤이 절로 난다. 꺄울 >.< 토마토의 껍질을 벗기고 양파와 고수, 소금 약간과 올리브유를 넣고  만들었다, 마리네이드!!



뒷배경의 저 하트는 ㅋㅋㅋ 엄마 생신이라고 올케가 장식 사와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실 창문에 붙인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식구들이 안떼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렇게 만들었고, 맛은요?




다소 싱겁지만 ㅋㅋ 그래도 맛있다. 방울토마토와 양파가 씹히는 게 진짜 너무 좋다. 와인 안주 삼아 먹었다. 으하하하. 아직도 조금 남아 있어서 또 먹을 수 있다. 만세!! 너무 좋다. 다음엔 소금 양을 약간 더 늘려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얼만큼 넣었는지 모르는 부분.. ㅋㅋㅋ 기억 못함. 아무튼 이렇게 씐나있는데,


저녁엔 삼겹살을 먹었단 말야? 나는 내가 농사지은(응?) 치커리를 잔뜩 재배해온다. ㅋ ㅑ ~



저기에 고수도 몇 잎 들어가있고 제법 풍성하다. 캬- 아니 진짜 나 너무 멋지지 않냐? 세상에 치커리를 키워서 그걸 재배했다니까? 그리고 겉절이를 만들었다. 쌈싸먹기에는 사이즈가 좀 작은 것 같아 만들어본 겉절이!!



아 진짜 나는 내가 너무 좋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 내가 너무 뿌듯하다.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짐작도 못할거다. 내가 키운 고수로 마리네이드 만들고 내가 키운 치커리로 겉절이 만들었어. 그렇게 삼겹살과 함께 먹는다. 삼겹살은 마켓 컬리 연잎 삼겹살. 크 -



아 진짜 너무 맛있게 먹었다. 맛도 맛이지만 나의 뿌듯함이 가슴 가득 차올라 정말이지 자랑스러웠다. 너무 근사해! 누가? 내가!!! 이런 사람이 나다. 회사 다니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술도 마시는데 농사도 짓는다. 이런 캐릭터 너무 독보적이야. 이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내가 너무 좋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깨에 너무나 힘이 뽝 들어간다. 내가 엄마 아빠한테 재배한 치커리 보여드리면서 "내가 재배한 치커리로 겉절이 만들어줄게 딱 기다려!" 해가지고 엄마 아빠 빵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좋아. 진짜 내 자신이 너무 좋다. 최고다. 내 자신에게 돈 주고 싶지만 그러면 내 자신의 돈이 나가야 하므로 패쓰..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개멋짐 ㅠㅠ


지금 이 순간 세상천지에 부러운 사람 하나도 없다. 나 자신, 천상천하유아독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을 샀다.
































지난주에 《아니 에르노의 말》을 읽고 아니 에르노 읽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서 굉장히 급박하게 아니 에르노 책들을 주문 넣었고 그래서 연휴전에 받았지만, 연휴에 다 끝내버리게쒀!! 하던 나의 의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책만 사서 또 쌓았네 ㅠㅠ 《탐닉》은 일전에 읽다 포기한 책이지만, 다시 읽으면서 뭔가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샀다. 무엇보다《부끄러움》을 가장 급박한 마음으로 샀는데 또 걍 쌓여있네. 어째.. 흐미.. 하나씩 읽으면서 살걸 또 왜 사서 쌓아놓는거야? ㅜㅜ 그러지말자. 이 급박한 마음, 다스려보자.

















《헌치백》은 읽고 싶어서 샀지만 읽자마자 팔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내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알라디너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메일에서 닉네임을 발견한 순간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SO LATE IN THE DAY》는 클레어 키건의 최신작 원서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준 것. 아직 국내에 번역본이 나와있지 않은데, 클레어 키건은 요즘 핫한 작가이니 곧 번역본이 나오겠지 기대하고 있다. 후훗.




내년에는 월요일 책탑 없을 예정이다. 책 안사겠다는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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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26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왜 밥 안 먹어?!?!?! (일단 놀라서 댓글부터)

다락방 2023-12-26 12:31   좋아요 2 | URL
아 저 후발대로 조금 이따가 먹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26 12:40   좋아요 1 | URL
후발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엠티 가면 꼭 후발대 애들이 술도 왕창 먹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6 12:41   좋아요 1 | URL
후발대라서 밥을 많이 먹는걸까요? 흐음..

잠자냥 2023-12-2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네이드 맛있어 보여요. 오잉?! 컬리 연잎삼겹살 저도 토욜인가 먹은 거 같은데…. 그날은 막걸리하고 ㅋㅋㅋ

<헌치백> ㅋㅋㅋㅋㅋ 나 오늘 팔러 나갈 예정.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내년에는 책탑 안 하기로….! 화이팅! 책누름!!

다락방 2023-12-26 12:41   좋아요 0 | URL
뭐야, 책탑 안한다고요? 그러면 안되죠, 잠자냥 님은. 그렇게 책 많이 읽는데 잠자냥 님은 계속 사야 합니다!! 누르지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리네이드는 빵을 찍어 먹어도 맛있더라고요? 후훗.

잠자냥 2023-12-26 12:44   좋아요 0 | URL
우리 읽고 사자…..

은오 2023-12-26 13:06   좋아요 2 | URL
연말을 허언으로 마무리하시는 두분

잠자냥 2023-12-26 13:08   좋아요 1 | URL
😹

독서괭 2023-12-26 14:19   좋아요 2 | URL
여러분, 책누름 아무나 하는 거 아니예요. 그냥 책탑 하세요. 해주세요. 저를 위해서...

거리의화가 2023-12-2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키운 고수로 마리네이드 만들고 치커리로 겉절이 만드는 다락방님 멋집니다! 역시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부지런하게 보내셨네요. 저도 연휴 전 책 사긴 했습니다만 다락방님 책탑은 어마무시!ㅎㅎ 저는 짧고 굵게 한 권만 샀어요.
그나저나 다락방님 책탑 매주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내년부터는?ㅠㅠ

다락방 2023-12-27 07:34   좋아요 0 | URL
여기에 깜빠뉴 만들기도 포함해야 하는데 그건 실패했어요. 아오. 하루 꼬박 걸려 만든 빵인데 실패해서 입맛이 씁니다. 이건 다시 시도하기 보다는 안하는 걸로 결정내렸어요. 저도 뭔가 자꾸 하는 저를 말리고 싶지만 말려지지가 않네요. ㅋㅋㅋㅋㅋ
이번주에는 책 안사고 버티기가 목표입니다.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햇살과함께 2023-12-2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돼요!! 출판계가 어렵답니다....
출판계 큰 손 다락방님!!

다락방 2023-12-27 07:34   좋아요 1 | URL
저는 어쩌다 무럭무럭 자라 출판계 큰 손이 되었을까요? 출판계를 위해 내년에도 제가 돈 좀 풀어야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3-12-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책탑 안하신다고요?
리얼뤼요? 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
오늘 책탑보고 또 깜놀했는데 정말요?????^^
맛점하셨겠죠?

다락방 2023-12-27 07: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책탑 안하는게 제 목표입니다! 이제 그만 사야지, 책장 책들 보고 뭐야, 나 이런 책도 있었어? 깜짝 놀란단 말입니다. 왜이렇게 급박하게 사제끼는건지 ㅠㅠ 이제 그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은 싹싹 밥공기 비우고 왔습니다!!

은오 2023-12-26 1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회사 다니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술도 마시고 농사도 짓는 사람 전 본 적이 없습니다. 개멋진 다락방님....

<헌치백>은 저도 다 읽고 알라딘에 보내려고 오늘 포장해서 딱 문밖에 내놨어요! ㅋㅋㅋㅋ
<사랑을 재발명하라>는 먼저 읽고 있습니다. 서재에 계속 보이네요?! 역시 사랑이 넘치는 알라딘 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의 책탑 중지 선언은 이제 봐도 감흥이 없습니다..

다락방 2023-12-27 07:36   좋아요 1 | URL
<헌치백>은 사면서부터 이건 팔 책이다, 했는데 역시 그 느낌이 맞는가봅니다. ㅋㅋ
<사랑을 재발명하라>는 사랑을 공부하고 싶어서 샀는데 은오 님 구매자평 보니 딱히 공부가 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샀으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탑 중지 선언에 감흥이 없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은오 님 너무 날카로운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이상, 농사짓는 다락방 이었습니다!! 만세!!

단발머리 2023-12-26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마토 마리네이드 너무 근사하네요! 자랑스러울만한 비주얼이에요. 맛도 일품이겠죠?

다음주 월요일이 이렇게 기다려질 일입니까. 아쉬운 것은 내년 첫번째 월요일이 1일이라서 연휴네요. 그 다음주 월요일 기대할게요.
이 책탑보다 더 높다,에 500원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7 07:37   좋아요 1 | URL
맛도 일품이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그나마 토마토와 양파 식감이 좋아서 먹을만해진 것 같습니다. 다음엔 소금을 조금 더 넣으면 그러면 맛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고수도 조금 더 넣어도 좋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 바질을 넣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혹여라도 하게 되신다면 바질 추천합니다!!

저 이번주에 책 아직 한 권도 안샀는데요? 단발머리 님의 예언은 적중할 것인가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2-26 1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너무 멋진 분 다락방!! 직접 만든 치커리 겉절이.. 마리네이드는 또 뭔가요. 아 맛있어 보여요! 또 그걸 그렇게 신나게 만드시다니. 보기 좋습니다. 마리네이드는 저도 한번 만들어볼까 싶네요. 허브 빼곤 다 있는 것 같은데 흠..
그나저나 한주에 4권 사기로 한 것도 못 지키시면서 단박에 안 사겠다니..
저는 내년에 책탑이 계속될 것임을 100% 확신합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7 07:38   좋아요 1 | URL
마리네이드는 만들기 어렵지 않으므로 독서괭 님 도전하셔도 좋을듯 합니다! 저는 좀 큰 방울토마토로 했는데 만들 때는 통째로 만들고 먹을 때는 썰어서 먹으면 될것 같아요.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합니다. 빵 찍어 먹어도 맛있어요!! 허브는 굳이 사실거라면 바질로 추천합니다. 바질이 최상일 것 같아요!!

독서괭 님의 확신을 제가 무너뜨려야 할텐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성지 2023-12-2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 책 읽기뿐 아니라 다방면에 능력을 보이시네요. 고수와 치커리를 손수 재배하여 요리에 활용하다니 베란다 텃밭 활용이 돋보입니다.

다락방 2023-12-27 07:39   좋아요 0 | URL
사실 능력이라기 보다는 운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고수와 치커리,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물만 줬을 뿐인데 지들이 알아서 잘 자라더라고요. 물론 그걸 요리에 활용한 것은 제가 한 일이지만, 애초에 요리에 활용하기 위해 재배하긴 했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뿌듯합니다!!

자목련 2023-12-2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탑은 월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에 ㅋㅋ

다락방 2023-12-27 11:02   좋아요 0 | URL
아? 그래도 그것은 참이네요? 월요일 책탑은 없습니다, 수요일 책탑은 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2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월 27일이다.....

다락방 2023-12-27 11:3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올해를 정리하는 페이퍼를 써보았습니다. (딴청)

잠자냥 2023-12-27 11:58   좋아요 0 | URL
안방아.... (연습 중)

다락방 2023-12-27 12:08   좋아요 0 | URL
있어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냣!!! (어쩐지 버럭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2-27 12:12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라면 먹고가자˝는 할 수 없고.. 그것참 ㅋㅋㅋㅋㅋㅋ
(라면 전도사 잠자냥)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이름을 들어본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이 시, 소설, 에세이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펼쳐나갔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서문을 힐러리 로댐 클린턴 으로 시작하는데, 당시에도 그 후에도 어떻게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히다. 개인적으로는 비욘세 보다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들어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내가 하려는 얘기는 그 얘기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훌륭한 인물로 다뤄지지 않는, 그러나 슬쩍 스쳐지나가며 언급된 여자의 얘기를 하고 싶다. 


모니카 르윈스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르윈스키가 클린턴과 불륜이라고 했을 때, 그 당시에 자세히 알고 싶어 시사 주간지를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기 시선에서 바라본 칼럼을 적어내곤 했다. 아마 여성잡지였을까, 어딘가에서는 '구강성교는 남자가 그만큼 상대 여자를 믿고있다는 증거'라는 글을 보기도 했다. 여자의 입속에서 여자가 물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자기 고추를 맡긴다는 건 그만큼 그여자가 나를 물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다는 거였다. 아마 대학생이던가 졸업후 얼마 안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거 읽고 너무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연애 남들보다 늦게 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쥐뿔도 몰랐지만, 어떻게 고추를 여자 입안에 넣는게 여자를 신뢰하는 걸로 표현되냐. 이거 너무 고추 넣는 입장에서 넣는거 핑계 대려고 별 거 다 가지고 오는거 아닌가 싶었던 거다. 


자, 이 책에서는 아까 언급했듯이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어린시절부터 매우 똑똑하고 능력도 있었으나 정치에 입문하며 남편 발목잡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주장 혹은 신념을 굽혀야 했던 이야기들도 언급한다. 클린턴이라는 성을 굳이 같이 쓸 수밖에 없었다거나 얌전한 옷을 입어야 했다거나 쿠키를 구워야 했다거나 등등. 그리고 힐러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 중에는 대통령인 남편의 성추문이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 인턴과 성관계(가 아니라고 클린턴은 말했다)를 가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이병헌, 장동건, 엄태웅 등 자신의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추문이 있었던 남자 배우들이 여전히 잘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쨌든 세상이 다 아는 내 남편이 세상이 다 아는 불륜 혹은 성매매를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용서와 사랑과(이건 아닐듯) 각오와 다짐이 필요한 일일까? 어제도 엄마랑 와인을 마시면서 힐러리 클린턴 과 르윈스키 얘기를 했는데, 같이 살긴 살아도 살아야 하니까 사는거 아닐까, 하는 짐작을 감히 해보았다. 


자, 이 책에서 힐러리의 얘기중 언급된 모니카 르윈스키 얘기를 잠깐 함께 보자.



그러나 클린턴의 대통령직을 두고 일어났던 켄 스타 검사의 청문회 조사보다 이 저질스럽고 조잡한 법안에 더 들어맞는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청문회 보고서의 초안은 상당 부분 한 젊은 변호사에 의해 작성됐는데, 그는 나중에 성폭력 가해로 큰 논란을 일으키는 대법관 브렛 캐버노였다. 이 음란한 보고서의 한가운데에 매춘부, 바람난 여자, 섹시한 여자, 그리고 (가장 유명한 호칭으로) "나는 그 여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발언에서처럼 "그 여자"라는 호칭으로 낙인찍힌 스물두 살의 젊은 독신 여성 모니카 르윈스키가 등장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억지 궤변에 의하면 구강 성교는 성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모니카 르윈스키는 이 발언이 계기가 돼서 결국 보스와의 사랑을 끝내버린 것이라고, 바버라 월터스와의 장시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인정했다. 르윈스키는 이 시점에 대통령은 그들의 성애적 관계를 부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소중한 친구로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보다 클린턴의 보좌관 한 명이 그녀가 대통령을 스토킹했으며 섹스를 요구했고 그의 거부를 조롱했고 그를 협박했다고 증언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위험한 정사>에 나오는 가정파괴범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칼럼니스트 모린다우드 같은 사람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  P411~ P412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잘 모른다면-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면서 잘 알 수 있을까?- 르윈스키는 자신의 보스와 사랑을 했다는 걸 위 인용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르윈스키는 사랑을 했는데,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보스로부터 '그 여자' 라고 불렸고, 그리고 보스의 측근으로부터 '스토킹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 때 이 젊은 여자가 느꼈을 충격과 배신감은 어떤것일까. 그녀는 스물두살의 인턴이었고 세상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는데, 자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남자 역시도 자신을 내팽개쳤다. 직업을 그만두고 백악관 바깥으로 걸어나가 그녀가 가야할 곳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였을까? 대통령과 인턴 사원인데, 어째서 세상은 그녀를 비난했을까? 왜 그 젊은 여성은 가정파괴범이 되어 있었을까? 가정 파괴범은 클린턴이 아닌가? 나는 '그 여자' 라는 호칭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진다. 스물두살의 그녀는 분명 어리석은 관계를 맺고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건 끝나봐야 아는 일이다. 그 관계에 그리고 상대에 푹 빠져있었을 때에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을 것이다. 나는 모니카 르윈스키가 궁금했다. 모니카 르윈스키의 말을 듣고 싶었다. 물론 그 관계가 르윈스키가 정말 원했고, 스스로 하는 일이 어떤건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정말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해도, 그들 사이에 권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스물두살의 여성에게 상대는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대통령이었다고. 



나는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때 어쨌든 그녀가 잘못된 관계를 맺고 끝냈을 때가 아니라, 그 후에,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세상 모두가 어떤 남자와 어떤 식의 관계를 맺고 어떻게 팽당했는지 알고 있는 이 여성은 그 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모니카 르윈스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모니카 르윈스키는 그 때의 일에 대해 혹시 책을 내지는 않았을까? 검색해보니, 오래전에 자서전을 내긴 했더라. 내가 궁금한 건 자서전이 아닌데. 

















나는 일전에 읽었던 김형경 의 책에서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언급됐던 게 생각이 났다. 당시에도 읽으면서 이게 뭔소리야, 했던 구절이었다.




미국 정신분석가 호르게 드 그레고리오는 《나의 이성, 나의 감성》이라는 책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관계를 애도 관점에서 분석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간 다음 해인 1994년 1월 6일 그의 사랑과 열정의 원천이었던 어머니 버지니아 캐시디 클린턴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예전에 간호사였고 빌이 네 살 때까지 함께 산 할머니 역시 간호사였다. 어머니 사망 후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감성 안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니카 르윈스키의 아버지는 항암 치료사였다. 그는 젊은 간호사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떠났다. 아버지가 가정을 떠날 즈음 르윈스키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당시 학교 연극 무대 설치 기술자였던 앤디 블레일러와 첫사랑에 빠졌다. 앤디는 결혼 2년차 유부남이었지만 르윈스키는 앤디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아내의 친구가 되었고, 때로 그들의 아이를 돌봐 주기도 했다. 그 이상한 관계에서 르윈스키는 아버지의 욕망 대상인 간호사 역할을 맡으며 다시 아버지와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은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배경에는 '간호사'가 있었다. 빌 클린턴은 자신의 상실감을 돌봐 줄 간호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았고, 르윈스키는 아버지의 내연녀인 간호사가 되어 돌봐 줄 만한 아버지 대체물을 찾아냈다. 저자는 그 만남이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만남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그녀의 아버지의 만남이라고 분석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무의식 속에서 추구하고 있던 원초적 사랑의 대상을 만난 것이다. 잃은 대상을 추구하는 행위가 무의식 차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p.104-105)



내가 이 책 2014년에 읽었는데, 2014년에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기에 무슨 그의 어머니와 그녀의 아버지의 만남이 나올까. 르윈스키에게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늙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만나 사랑한 것이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이라니, 대체물이라니. 그런 식으로 이 관계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걸까? 그건 단지 권력을 가진 나이 든 남자가 자신의 젊은 직원 데리고 재미 좀 본게 아닌가. 물론, 이 관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해 보이기는 한다. 당시에 르윈스키는 자신들의 관계를 '합의'하에 한 관계라고 했으니까. 합의했다고 말했을 당시의 르윈스키는 인턴이었고 스물두살이었으며 상대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모니카 르윈스키가 미투 운동이 활발했던 당시에 했던 인터뷰도 읽어 보았다.



르윈스키 "미투 계기로 다시 보니...클린턴과의 관계는 권력 남용" - 머니투데이 (mt.co.kr)



르윈스키는 그때의 자신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거기에 분명 권력이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르윈스키의 그 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한 건 나만은 아니었다. 개브리얼 제빈이 있었다. 그녀는 르윈스키의 사건을 보고, 그 후에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녀의 엄마라면 딸을 어떻게 대해줘야 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써냈다.















자, 책소개는 이렇다.


정치 지망생인 20대 여자 아비바 그로스먼은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인턴이 되어 일하던 중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른다. 하원의원과 불륜관계가 된 것. 우연한 사고로 그 불륜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린다.

<비바, 제인>은 그렇게 자신에게 몰아닥친 상황에 좌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한 여성의 선택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여자는 어떤 피해를 입는가? 세상은 그녀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녀의 부모는, 남자의 아내는, 주위의 사람들과 대중은, 그리고 미디어는? 후폭풍의 끝은 어디이며, 궁극적으로, 성추문에 휩쓸린 여자에게 새로운 인생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 책을 쓰기까지 개브리얼 제빈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녀의 인터뷰도 가져온다.


르윈스키가 내 딸이라면… 엄마 시각에서 본 스캔들 (naver.com)



나는 르윈스키가 그 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개브리얼 제빈은 비바, 제인에서 그 후의 삶은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하며 살아냈다고 주인공의 입을 빌려 얘기한다. 르윈스키의 삶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르윈스키의 삶도 그러했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그녀가 말했다.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p.395



넷플릭스에 클린턴의 성추문 사건을 다룬 <탄핵>이란 드라마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걸 한 번 봐야겠다. 제작에 르윈스키가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번 12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도 다 읽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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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바, 제인> 책소개를 보고 르윈스키가 생각나긴 했는데 그게 모티브가 된 소설이었군요.
<섬에 있는 서점>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국계라니 작가가 궁금해지고 (사실 이미 책도 갖고 있음) 이 책도 찾아둬야겠어요.

<여전히 미쳐있는> 다들 술술 잘 읽어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

다락방 2023-12-26 12:32   좋아요 0 | URL
비바, 제인 저 출간 당시에 급박하게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에 여성들의 연대를 느껴서 좋았더랬어요. 사랑인지 아닌지는 사랑이 끝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빠진 관계가 어리석은건지 아닌지도 역시 그렇고요.

여전히 미쳐있는 다 읽어서 너무 좋고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수하 님. 만세!!

잠자냥 2023-12-26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연애 늦게 했다고?!?!?! 그게 더 놀라움 ㅋㅋㅋㅋ

르윈스키와 클린턴 사이 애도의 관계라고 본 저 정신분석가에게 애도를….. 호르게 드인지 호로개 드인지 원… 저런 소리할 때 보면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 참…..

다락방 2023-12-26 12:34   좋아요 1 | URL
저 첫 연애가 스물다섯이었어요. 넷이었나? 남들보다 늦었는데 ㅋㅋㅋ 한번 사귀고 나니까 남자들이 막 들러붙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봤자 지금 연말 다가오는데 약속 못지키는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책의 저 부분 읽으면서 클린턴이랑 르윈스키에 간호사를 가져다 붙인다고? 진짜 징하다 싶었어요. 해석을 위한 해석 분석을 위한 분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으..

잠자냥 2023-12-26 12:38   좋아요 0 | URL
첫 연애 후 팜파탈 변신 다락방…. 그러나 2023년은 이제 오늘까지 6일 남았을 뿐이고…. ㅊ침대여, 들리는가! 다락방 울부짖는 소리가….

햇살과함께 2023-12-2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르윈스키를 잡아내신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립니다!
<비바, 제인> 궁금하네요.

다락방 2023-12-26 12:36   좋아요 1 | URL
저는 빌 클린턴은 그 후로도 속 끓이지 않고 살았을 것 같고요 힐러리는 아주 속 끓였을것 같거든요. 지금도 앙금이 남아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르윈스키도 그래요. 일정부분 그녀 스스로 한 행위라고 해도 시간이 지난후에 그 때 내가 왜그랬을까, 나를 그렇게 취급하는 사람한테, 하는 마음과 또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와야 했을텐데 싶어서, 르윈스키가 아픕니다. 그런데 이렇게 르윈스키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르윈스키가 가장 원하지 않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ㅜㅜ

단발머리 2023-12-26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르윈스키와 클린턴 사이를 애도 관계로 보다니요.. 제가 이 분 책 안 읽은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애도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클린턴이 그 많은 선거 때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젊은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해서 문제 생긴 거, 힐러리가 그 뒷처리 하느라 고군분투한 거, 그걸 책으로 내도 책 한 권이 나오는데, 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간호사 역할을 찾았다고요? 진짜 어이가 없네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건 맞는거 같아요. 요는 그걸 ‘합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그 당시에는 르윈스키가 잘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근데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거는 아니다...를 못 알아본거는 좀 아쉽구요. 원래 눈이 확 돌아가면 그걸 알아채기 쉽지 않죠. 하지만.... 워낙 그쪽 분야에 악명 높은 사람 아니었습니까.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 부지런히?ㅋㅋ 읽고 있어요. 책탑 페이퍼 쓰고 계시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6 12:40   좋아요 1 | URL
김형경이 그렇게 본 건 아니고 ‘미국 정신분석가 호르게 드 그레고리오‘가 그렇게 봤다고 합니다. 김형경 님도 정신분석 본인이 공부하기도 하면서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은 것 같아요. 아무튼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간호사라는 매개,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든 것에 대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과도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으..

사랑은 당시에는 상대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그 남자(여자) 아니야 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들리잖아요. 그러다 끝나고 나서야, 끝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저는 르윈스키에게도 어느 순간 ‘어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감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조카들에게도 하는 말인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순간, 그건 아닌게 맞다는 겁니다. 그 감각을 무시하면 안돼요. 에휴..

저 애도로 본 관계가 왜 말이 안되냐면, 클린턴이 르윈스키랑만 성추문이 있었던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정신분석의는 여성들마다 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게 될까요?

책탑 페이퍼는 썼습니다. 점심 시간이 다가와서 급박하게 마무리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2-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페이퍼가 나오는 것이 역시 여성주의책함께읽기 모임의 묘미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르윈스키에 대해서 만 질타하는 분위기가 기억나네요! 둘의 사랑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권력 관계의 힘이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려요!*^^*

다락방 2023-12-27 07:40   좋아요 0 | URL
저는 당시에 르윈스키에 대한 외모 평가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이번에 르윈스키 검색하면서 알았는데 클린턴이 르윈스키랑만 불륜관계였던 것도 아니더라고요 ㅠㅠ 힐러리 클린턴이 진짜 빌 데리고 사느라 마음 고생 많았겠구나 싶습니다. 어휴 남편이란 뭘까요? ㅜㅜ

완독 축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해에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독서괭 2023-12-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구강성교는 여자를 믿어서 하는 거고, 불륜은 어머니아버지 가족관계로 인해 하게 되는 거고 ㅋㅋㅋㅋ 포장 장난 아니네요 ㅋㅋㅋㅋ
다락방님은 이 책 술술 읽어내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제가 읽어야 할 게 너무 많구나 싶더라고요;; 꾸준히 읽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3-12-27 07:42   좋아요 1 | URL
독서괭 님, 진짜 너무 요점 정리 잘해주시는 분. 구강성교는 여자를 신뢰해서, 불륜은 가족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로 ㅋㅋㅋㅋㅋㅋㅋㅋ포장을 위한 포장입니다. 불륜마다 사연 있어 거룩합니다. -.-
저는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좋게 읽으셨던 것만큼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어요. 대단한 인물들을 역사속에서 만난다는 건 좋았는데, 저한테는 뭔가 큰 각성을 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레이첼 모랜이 좋습니다. ㅋㅋ
 
아니 에르노의 말 - 사회적 계급의 성찰과 자전적 글쓰기의 탐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아니 에르노.로즈마리 라그라브 지음, 윤진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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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8남매중 다섯째였고 아주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며 배움이 짧았다. 문화생활은 전무했고 경제적 능력이 있지도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바라는 자식은 얼른 자립해서 돈을 벌어오는 자식이었다. 조금이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는 자식 얘기를 친구들로부터 듣고 오면 그걸 그렇게나 부러워하셨다. 수학능력시험을 망치고 엉엉 우는 나를 달랜다며 아빠는 다른 길에 대해 얘기하셨다. 그건 공장에 취직해 얼른 돈을 벌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4년제 대학에 합격을 했고 등록금을 내러 가서 아빠는 합격 공고판에 내 이름을 한참 보시며 "네 이름 내가 지었다" 하셨다. 줄 서있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다른데 예비로 되어서 그거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 모르니 여기 등록금은 내야지요' 라며 다른 아주머니들과 넉살 좋게 이야기도 나누셨다. 아빠는 내가 대학에 가길 바라지 않았지만 막상 내가 대학생이 되자 여기저기 자랑에 자랑을 하셨고 신기해하셨다. 당시에 아빠 형제의 자식들 중에는 4년제 대학을 간 사람이 단 한명이었고 나로 인해 두 명이 되었다. 그리고 내 동생들이 4년제를 갔고 작은 아버지의 아이들중 하나는 대학원도 진학했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배움도 없던 아버지가 어디가서 하는 자랑이라곤 '내 자식들 다 4년제 나왔다' 였다. 나는 아버지가 결국 자식들의 4년제졸을 자랑할 수 있었던 건, 다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동생들은 대학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에르노 역시 배움이 짧고 가난한 부모 밑에서 외동딸로 자랐다. 부모님은 아니 에르노의 좋은 교육을 위해 좋은 학교에 보냈는데, 그 학교에서 아니 에르노가 알게된 건 자신이 자연스레 보고 당연하게 익혀왔던 말과 행동이 교양없다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지적'을 받으며, 그것들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공부도 잘해서 학급의 1등을 하기도 하고 상급학교로 진학도 무리없이 한다.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부모들보다 더 많은 배움을 그리고 그에 따른 더 많은 교양을 갖추게 된 건 부모님의 뒷바라지 덕이었지만, 그런 한편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낮은 계급이라는 걸 뚜렷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당연히 학급에 유독 부자인 티가 나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와 쟤네 집 잘산다, 쟤네 엄마 선생님이래, 하는 일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딱히 계급 차를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친구의 부모님들이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그건 그렇게나 부러웠다. 어떤 친구 집에 가면 우리 집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고 우리 집과는 완전히 다른 냄새가 났지만, 그것에 계급이란 이름을 붙이진 못했었다. 대학은 달랐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대학에서의 첫 영어 시간. 선생님은 영어로 자기 소개를 시키셨는데, 나는 나만큼 아이들이 영어를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숫제 교수랑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이 네임 이즈 다락방, 이런게 아니라 무슨 외국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거다. 수업이 끝나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어떤 아이는 알래스카에서 어떤 아이는 프랑스에서 잠깐 살았었다고 했다. 게다가 방학이 되자 어떤 아이들은 캐나다로 어학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성형 수술을 하고 왔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그러니까 어학 연수 같은게 있는줄도 몰랐는데 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는 거였다. 내게는 어학연수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대학에 진학할 때도 전공에 대해 혹은 대학진학에 대해 조언해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뒤늦게 알게 되어 엄마 나도, 라고 말했어도 부모님은 잔뜩 겁을 내셨다. 사실 말할 때부터 안될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그렇게나 좋아했던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해봤자 살다 온 애들, 어학연수 다녀온 애들 근처에도 가지 못할테니까. 대학 등록금도 비싼데 용돈까지 받을 수는 없어, 나는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책 <사건>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얘기한다. 대학에 들어간 후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부모님들과 나는 이제 다른 사람임을 보여주는 장면에 대해서. 그녀는 이미 자신의 책 <남자의 자리>에서도 그런 마음을 보여주었던 터다. 이 감정에 대해서라면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무섭고 크고 내가 따라야했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 나에게 더이상 크지 않았고, 그에 더해 나는 아빠랑 다른 사람, 아빠보다 배움이 깊고 아빠보다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나를 구분 짓고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더더욱 계급에 대한 인식을 예민하게 하고 자주 분개하면서, 그런 한편 나 역시 더이상 아버지와 같은 계급이 아니라며 다른 계급으로 나를 밀어넣고 있었던 거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내가 한 행동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부장이란 직급까지 가졌다. 나는 이제 부모님을 모시고 전시회를 가고, 영화를 보러 가고, 여행을 간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내가 부모님께 해드리고 있다. 우리 아버지에게 지적임의 최고라고 여겨지는 책이란 수단을 읽다 못해 쓰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세상 영특해서 대학을 갔고 지금은 회사 부장이고 책을 읽고 자기가 돈 벌어서 여행을 다니는 자랑스러운 딸.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보다 목소리가 더 커지고 가끔 아버지를 멸시하는 딸. 나는 그런 딸이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가슴이 너무 아프다. 계급, 위계화, 자리 에 대해 인식하고 분개할 때 그 대상이 나의 아버지를 향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니 에르노가 하고자 했던 일이 서로 다른 계급을 인식하고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내게 와 잘 닿았으며 나를 각성시킨다. 내가 해야할 게 무엇인지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아니 에르노가 알려줬다.



자,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내가 좋아하는 한나 아렌트는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 적이 없다. 오히려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고 있어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원망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아니 에르노 식으로 말하자면 '경험의 페미니즘' 이고, 자신에 대한 정체화나 말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페미니즘 이다. 실천하는 페미니즘이다. 나에게 한나 아렌트는 페미니즘 실천 최고봉에 있다. 자신의 스승보다 더 잘나 버린 여자, 본인의 철학을 세상에 알린 여자. 훗날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기억하게 만든 여자. 이보다 더한 페미니즘 실천이 어디있단 말인가. 본받을 어른에 대해서 나는 자주 생각하는데, 이런 식으로 한 여자가 스스로 우뚝 서 잘 나가는 걸 보여준다면, 다른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만 보다가 엑스파일의 스컬리를 보는 것 같은 일. 나는 한나 아렌트가 그걸 한 사람이라는 게 짜릿하게 좋다. 한나 아렌트 자신은 '내 뒤의 모든 여성들에게 갈 길을 개척해주자'는 작정을 한 건 아니겠지만, 그러나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갔더니 이름 난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근사한가. 나에게는 그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가 그렇다.


어릴 때부터 뚜렷한 계급차를 느꼈고 그것을 글로 써낸 사람. 사랑하고 섹스한 것도 다 글로 써낸 사람. '자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 볼까' 객관적으로 펼쳐내 보인 사람. 그녀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한다'고 부르짖는 책을 쓴 건 아니지만, 자신이 인식하고 생각하고 느낀 바를 써내고 그걸 결과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이미 페미니즘 실천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다. 뚜벅뚜벅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걸 했더니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버렸어. 이 세상에 노벨상 수상자인 여자 작가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의 페미니즘적 실천이 아닌가.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오, 노벨상 수상자가 쓴 책은 어떤거지? 하며 그녀의 글을 누군가 더 읽는다는 것, 오 세상에 이런 글이 있네, 하고 한 명이라도 더 알게 된다는 것, 오, 그렇지 나도 그녀같은 감정을 느꼈어, 그녀가 느낀 인식 나도 느꼈어, 아아, 나야말로 계급 탈주자였네, 할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페미니즘적이 아닌가. 나에게는 그것이 페미니즘이다.



아니 에르노의 날카로운 말들을 더 읽고 싶어져서 책장에서 아니 에르노의 책들을 다 꺼내오고 어제는 몇 권 새롭게 주문도 넣었다. 자신을 계급 탈주자 라고 칭하지만, 그러나 '두 세계 사이에 있을수 있는, 선택한 건 아니지만 다시 한번 사회학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참여관찰‘의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기회로 느껴질때도 있어요.' (p.95) 라는 말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가. 나 역시 참여관찰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이것을 기회로 느끼자고 다짐해본다. 내 멸시가 향할 곳을 제대로 향해야겠다는 다짐도 역시 더한다.



라그라브는 같은 시선을 자기 자신의 궤적에도 적용하여, 스스로 "계급에 합류"했지만 "계급에서 이탈되었다"고 말한다. - P21

나도 의식하고 있었지만, 나로선 그 책(단순한 열정)을 쓰는 게, 무엇보다 『자리』와 『한 여자』와 거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그러니까 감정적인 게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방식으로 쓰는 게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어요. 1년 반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었거든요. 내가 처한 상태를 객관화 하려 했고, 그 상태에 가장 잘 부합하는 말이 바로 열정이었어요. - P43

보편적인 페미니즘은 불가능해요. - P61

나에게 페미니즘은, 당신이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경험의 페미니즘"이에요. 난 당신이 책에서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빈민가에, 신정神政 국가에, 혹은 옆 건물에 사는 여성들의 착취가 모두 끝날 때까지 자신이 투쟁할 것임을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투쟁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 P61

(라그라브) 사회 세계 속으로의 개입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당신과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제기했어요. 사회학은 사회들의 그물망을, 여러 가지 지배 위에 그리고 그 지배에 의해 불평등하게 직조된 망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드러낼 수 있게 해줘요. 여기서 사회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는 것은, 뤼크 볼탄스키Luc Boltansky가 말한 대로, 사회 세계가 그다지 잘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자들의 방향으로 돌아갈 뿐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아주 드물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되죠. 그렇다면, 드러내 보여주는 그런 행위가 세상이 늘 같은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은 불의와 지배를 아게 하는 건 그 자체로 이미 사회적 세계 안에서의 각자의 위치를, 특히 가장 심하게 지배 받는,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긴, 혹은 그러한 역할 지정에 반항하는 사람들의 위치를 밝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 P89

그 자체로 사회 세계의 자의성과 폭력의 정당성을 부정한느 행위인 거죠. 하지만 난 우리가 책을 출간하고 연구를 이어가는 일에 지나치게 중요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책으로 출간될 뿐, 대중의 손에 가닿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공적인 게 되고, 누구든지 읽어볼 수는 있죠. 우리는 공적인 직무를 행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 거니까요. 하지만 가장 심하게 지배받는 사람들은 우리의 출간물과 연구를 거의 손에 넣지 못하잖아요. - P89

부르디외는 지배받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고-그랬다면 민중주의가 되겠죠-지배를, 그리고 그 지배를 세우고 영속시키는 것에 대해 의식하게 만들려 했어요. 바로 그 욕망이 『자리』『한 여자』『수치』같은 글들을 이끌어갔죠. - P94

사회학이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에 대해서, 난 부르디외의 "분열된 아비투스" 개념과 관련된 개인적인 예를 제시할 수 있어요. 분열된 아비투스는 사실 청소년기 이래 내 삶 전체를 설명해주니까요. 내가 분열된 아비투스를 처음 자각한 건 글쓰기를 통해서였어요. 『빈 옷장』에서 내가 학교로 인해 "둘로 잘렸다"라고, "두의자 가운데 걸터앉아 있었다"라고 썼잖아요. 그전에 난 내자리가 없다는 감정을 언제나 병리학적으로 설명했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도 사용했죠. 그런데 느낀 것과 상황을 깨닫고 기술하게 되면 모든 게 달라져요. 난 분열된 아비투스가 나의 정체성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어요. 어떤 사회적 상황들에선 여전히 나타나고 있죠. 분열된 아비투스는 내가 세계를파악하는 방식이고, 그런 뒤에 그것을 글로 쓰는 방식이에요. - P94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거북함으로 느껴질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이젠 오히려 사회가 나뉘어 있고 위계화되어 있음을 기억하라는 내 안의 요청 같아요. 심지어 두 세계 사이에 있을수 있는, 선택한 건 아니지만 다시 한번 사회학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참여관찰‘의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기회로 느껴질때도 있어요.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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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22 10: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렌트도 에르노도 그들 자신이 ˝페미니즘의 실천˝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내 멸시가 향할 곳을 제대로 향해야겠다는 다짐˝ 멋지다!

제가 다락방님 글이나 다락방 자체에서(만난 적은 없지만 ㅋㅋ)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자라온 환경 배경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다락방 님은 굳이 그런 자기 자신을 포장하려는 허영이나 허세가 없어서 제가 더 애정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다락방 2023-12-22 11:13   좋아요 3 | URL
저는 말뿐인 사람, 말만 하는 사람, 말을 가벼이 하는 사람, 말에 무게를 싣지 않는 사람, 말을 일단 하고 보는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말을 했으면 그것이 어떻게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행일치 자체는 무리가 있겠지만, 언행일치가 되려는 태도를 가지고 생활한다면 언행일치로 이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2월이 지나가는게 너무 초조하네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페미니스트 라고 천번 말하는 사람보다 자기 길 묵묵히 가서 무언가 성취를 보여내주는 쪽을 저는 좋아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잠자냥 님, 저랑 비슷한 환경 배경을 가지고 지금의 잠자냥 님이 되셨군요. 저는 무엇보다 잠자냥 님의 예술적 취향과 안목에 대해 놀라는데요, 그건 제가 결코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잠자냥 님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예술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저는 잠자냥 님이 따뜻한 사람이라 느낍니다). 제가 잠자냥 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새파랑 2023-12-22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부장님은 성형수술이 불필요하시지 않았을까요? ㅋ

부장님에 작가에 순댓국 홍보대사까지!
자랑스러운 딸이신거 같아요~!@

다락방 2023-12-22 11:37   좋아요 1 | URL
순댓국 홍보대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순댓국은 사랑입니다.

새파랑 님, 메리 크리스마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2-22 1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 다락방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12-22 12:04   좋아요 2 | URL
이 세상에 독서괭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은오 2023-12-22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 6352815353737번째로 반해버리게 만드는 글ㅠ

다락방 2023-12-22 14:25   좋아요 2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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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2-2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시니... 제가 너무 혼자 짝사랑하고...
또 책을 안 살수가 없잖아요!!!
전 종일 집에서 책을 읽는거 같은데도 왜 따라가지도 못하는거 같은 느낌이 들까요?ㅠㅠ

다락방 2023-12-26 08:56   좋아요 1 | URL
저도 오늘 책탑 페이퍼를 써야 합니다. 아오 이제 진짜 책 안살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