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조카들이 왔었다. 둘째 조카는 병원에 들르느라 좀 늦었고 첫째 조카는 울엄마랑 먼저 도착했는데, 식탁 위에 내가 까놓은 오렌지를 보고는 '와 오렌지다' 하며 덤벼들었다. 나는 응, 이모가 타미 먹으라고 까 놓은 거야, 먹어, 했더니, 먹으면서 연신 맛있다고 두 개 먹겠다고 하며 입에 오렌지를 넣더라. 그걸 보는데 너무 예쁘고 좋은거다. 행복해지고. 아, 나는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먹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으면, 그건 바로 사랑이 아닌가. 반대로, 먹는 게 꼴도 보기 싫다면, 그 관계는 이미 끝장난 것 같다...


칠 살 조카가 일전에 우리집에서 내가 쪄놓은 달걀을 오물오물 먹을 때도 너무나 행복했는데, 이번에 오렌지를 먹는데도 너무나 예뻐서,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조카는 내 영혼의 치료제야, 싶었다. 이 아이, 계속 계속 먹이고 싶어. 다음날에는 다같이 피자 시켜 먹었는데, 내가 먹기 좋게 가위로 다 잘라줬다. 조카 입에 피자 들어가는 게 너무 예뻐서. 당신이 먹는 모습을 보며 내가 행복하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뿐 것들 ㅠㅠ


과자 먹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홈런볼과 새우깡을 각자의 그릇에 담아 각자에게 건넸더니, 둘 째 네 살 조카가, 이모도 먹어봐 맛있어, 하며 입에 넣어준다. 아...이놈들 ㅠㅠ 사랑 ♡



나랑 손 잡고 걷는 칠 살 조카




나랑 손 잡고 걷는 네 살 조카



우산을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달라더니, 자기가 감당하기에 너무 우산이 길어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이모가 우산 들고갈까?' 했더니 응, 하며 우산을 건네준다. 아구 이뽀 ㅠㅠ




어제는 퇴근 길에 너무 배가 고팠고 뭔가 '잘' 먹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 근처의 '보리밥과 청국장' 집에 들어가 혼자 앉았다. 두루치기는 2인이상 주문가능하다는데, 저기 혹시 1인은 안될까요? 했더니, 사장님께서 웃으시며 해드릴게요,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한 상 가득, 흡입했다. 다 먹고 계산하는데 후식 꼭 좀 드시라고, 맛있다고 연신 권하셨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 나한테 잘해준다고.



먹기전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이렇게 잘 먹고 다닌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떠올라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나 이렇게 잘 먹고 다녀요, 라고 보냈다. 그러자 답장이 왔다. '잘 먹고 있다니 정말 반가운 소리구나' 하고. 



엊그제부터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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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6-04-1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을 누가 좀 봤음 싶군요. ^^:::::::

다락방 2016-04-19 12:10   좋아요 0 | URL
링크를 보내세요!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6-04-1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그대로 진수성찬~~ 완전 건강식, 웰빙이네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다락방 2016-04-19 12:10   좋아요 0 | URL
그쵸? 혼자서 막 쌈 와구와구 싸먹는데 참 좋았어요. 와, 나 참 잘 먹네..하면서. 흐흣

건조기후 2016-04-1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요. 예뻐요. 조카들도, 먹는 걸 보는 게 행복하면 사랑이라고 말하는 다락방님도, 밥상도.. ㅎㅎㅎ

다락방 2016-04-19 12:11   좋아요 1 | URL
조카들이 너무 예뻐서 제가 다 미칠 지경입니다. 으흐흐흣 조카들 있어서 너무나 좋아요.
먹는 거 보는 게 좋으면 사랑이 맞아요. 전 상대가 먹는 거 보고 정떨어진 적도 있거든요. 그건 다시 회복이 안되더라고요. 정 떨어지는 거의 끝장, 끝판이 먹는 게 보기 싫어지는 것.. 아닌가 합니다. 아핫
건조기후님은 저런 밥상을 앞에 둔 저를 예쁘다 하시니 저를 사랑하는 걸로... ( ˝)

순오기 2016-04-1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는 조건없이 이쁘죠.^^
조카가 그렇게 이쁜데 내 새끼는 얼마나 이쁠지... 상상이 되시나요?^^♥

다락방 2016-04-19 18:00   좋아요 0 | URL
아뇨.. 상상이 안되는데, 앞으로도 저는 경험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0-

몬스터 2016-04-19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 동감 , 먹는게 뵈기 싫으면 그 관계는 끝장난거라는 말이요 ,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먹는거 보는거 참 행복한 거라는거도요.

2016-04-20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6-04-2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말 있잖아요?
내 새끼 입으로 들어가는 거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전 절대 그 말 안 믿었거든요.
아니 내 입으로 음식이 들어가지도 않는데,
어떻게 내 배가 부르냐구요!

어렸을 때 GOD 노래에 나온 일화를 직접 겪었어요.
엄마와 어딜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점심때가 한참 지났었고,
전 배가 고팠어요.
제 주머니엔 누군가에게 용돈으로 받은 5백원이 있었죠.
저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자고 했고,
짜장면 값 5백원으로 한 그릇을 시켜 둘이서 먹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 두 젓가락도 제대로 안 드시곤
맛이 없다며 제가 먹는 모습만 보셨죠.

언제였던가 아이들과 놀다가 시내에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그 음식점이 엄청 비싼 곳이더군요.
그렇다고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메뉴를 골라 들어왔는데,
그냥 나갈 수도 없고,
가격 대비 괜찮을 듯한 메뉴로 두 개만 시켜 먹었어요.
우리는 다 먹성이 좋아서 저도,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다 잘(많이) 먹거든요.

제가 막 먹으면 한창 자랄 나이인 아이들 먹을 게 없을까봐
일부러 애들 눈치보면서 아주 조금 먹은 후
아이들 먹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어찌나 예쁘게 잘 먹는지,
진짜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더라구요.
비록 내 배는 채우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물론 그보다 더 좋은 건 제가 만든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이지요.
저는 당연히 대식가라서 음식을 잔뜩 만들기 때문에 모자라는 일이 없어요. ^^

다락방 2016-04-25 09:33   좋아요 0 | URL
아 감은빛님! 제 로망입니다. 제가 만든 음식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 먹는 거요. 몇 년전에 첫째 조카가 세살 때였나, 스파게티를 만들어줬는데, 물론 소스 사다가 부은 간단한 요리이긴 했지만, 잘게 잘라줬더니 포크로 막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는 거에요. 정말이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신나서는, 그 다음에 조카가 왔을 때 또 해줬거든요. 그 때는 안먹더라고요??????????????? 아하하하하.

저도 뭔가 자신있는 요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싶어요. 이런 저런 요리들에 도전해보지만, 계란말이나 계란찜 같은것도 언제나 대실패로 끝나요.. 참담한 기분입니다.. Orz

그래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해요. 저는 제가 요리를 해줄 수가 없으니 ㅠㅠ 너무 맛이 없어서 ㅠㅠ 돈 주고 사먹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ㅠ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직장을 관두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가득하지만 참고 다녀야하는 이유죠 ㅠㅠㅠㅠㅠ
 
















'다이안 레인'과 '리차드 기어'는 영화 『언페이스풀』에서 오래전에 함께 연기 했더랬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이트 인 로댄스』에서도 다시 만났더라. 전자는 2002년 후자는 2008년이니, 그들은 6년후에 다시 만난 셈이다. 나는 두 영화를 모두 보았는데, 두 영화속에서 다이안 레인이 너무 예뻐서, 너무 우아해서 좋았다. 좀 더 최근에 찍은 영화에서는 확실히 전작보다 많이 나이들긴 했지만, 특유의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어서 원피스를 입거나 청바지를 입어도 참 예쁘더라. 짧은 머리도 잘 어울렸고, 영화속에서는 요리도 잘했다. 영화속에서 아이들이 아직 어려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갈 수 없는 설정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할 날을 기다리면서 잘 살아낸다. 그 모든 일상의 순간들과 또 그녀가 남자를 만나 함께 지내는 그 며칠동안, 얇은 카디건 이라든가 평범한 청바지를 입은 모습들이 너무 예뻐서, 아, 저렇게 늙고싶다, 라고 생각했다.


아래 세 장은 언페이스풀의 스틸컷






그리고 아래는 나이트 인 로댄스의 스틸컷.






두 영화 중에 하나만 보고 싶은데 뭘 볼까, 라고 생각한다면 나이트 인 로댄스를 추천한다. 언페이스풀은 어딘가 살짝 기분 나빠....



어쨌든, 다이안 레인보다 초큼 더 어린 나는(응?) 빨간 립스틱을 샀다.






그리고 발라보았다. 자, 발색샷!!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이 너무나 웃기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빨강은 내가 원하는 진한 빨강이닷! 음, 나는 '빨강'을 원했지만 이 립스틱은 실상 '다홍'에 가깝다. 그게 약간, 아주 약간 서운하지만, 그래도 진하다, 임팩트 있어! 이거 바르고 친구 두 명 만났는데, 다들 보자마자 립스틱 얘기했다. 우하하하하. 성공이닷! (뭐가?)




머리에 꽃 단 거 너무 잘 어울려.....

근데 나.. 볼 살 터지고 있냐.....



빨간 립스틱은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되긴 하는데,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뭐 먹으면 가운데가 금세 지워져서 다시 덧발라야 하는데, 지워졌을 때 티가 너무 확 나는 거다. 진한 색이다 보니.... 어쨌든 빨간 립스틱, 성공적.



어제 알라딘에서 책 샀는데...인팍으로 옮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은 사야겠고, 돈은 없고, 인팍은 리뷰 쓰면 적립금 팍팍 쏜대고....나 흔들리니?


 

아, 일하기 너무 싫고 뭔가 맛있는 것 먹고 싶다.

며칠전에 엄마표 달랑무김치가 넘나 맛있어서 밥을 두 그릇 먹다가, 아빠한테

"아빠 나는 그냥 아무데도 안가고 24시간 내내 달랑무랑 밥이나 먹고 있었으면 좋겠어" 했다.

그러자 아빠는 '참 너 답다, 니가 할 수 있는 말이야' 하셨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달랑무랑 밥이랑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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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6-04-1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6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었나봐요. 나이 든 티가 많이 나네요... 그래도 아름다워요.

다락방님 빨간 립스틱 너무 잘 어울려요! 부러우면 지는 거지만 질 수 밖에 ㅋㅋ 볼수록 예쁘시다 ^^

다락방 2016-04-19 12:15   좋아요 0 | URL
네, 6년 이면 저렇게나 많이 늙는구나 싶더라고요. 저도... 그렇겠지요. 6년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너무나 다르겠지요. 하긴 피부상태도, 헤어상태도, 생리양도... 6년전과 현저히 다르네요. ㅠㅠ 슬퍼 ㅠㅠ

볼수록 예쁘다는 말을 제가 들을 수 있는 건, 가릴 수 있는 부분을 모두 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6-04-19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빨강이 진짜 잘 어울리네요. 예뻐요~~~ 세련되고 지적인 섹시함...*^^*

다락방 2016-04-19 12:16   좋아요 0 | URL
제가 빨강이 너무 잘 어울려서 난리가 났어요, 난리가!! (응?) ㅋㅋㅋㅋㅋ

고마워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 너무 좋아요! ♡

hnine 2016-04-1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다이안 레인 보셨나요? <리틀 로맨스>에 나와요. 지금 모습 그대로여요.
다락방님 <투스카니의 태양>도 보셨죠? 거기서도 예뻤어요. 예쁘다는 말로 부족하고, 음, 뭐라고 해야할까요, 우아함? 기품?
저 립스틱은 저에게도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군요. 다이안 레인보다 겨우 한살 적으면서 ㅠㅠ

다락방 2016-04-19 13:57   좋아요 0 | URL
아, 맞다! [투스카니의 태양]에도 나왔었죠!! 저도 봤어요, 나인님. 맞아요, 그랬어요. 거기서도 참 우아했어요. 저랑은 완전 다른 캐릭터..에요. 하아- 그 영화 너무 좋아서 책도 사놨는데 책 두 장인가 읽고 팔아버릴까.. 생각했네요. 읽기 중단한 상태에요.

하하 나인님, 다이안 레인보다 나이가 더 많아도 저 립스틱 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립스틱 사려고요. 지르세요!! >.<

무해한모리군 2016-04-1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립스틱 정말 빨갛고 여름에 잘어울릴거 같아요~
이미 저렇게 늙긴 글러먹었지만 나이들어도 예쁘네요.

다락방 2016-04-19 18:00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미 저렇게 늙긴 글러먹었어요. 전 헤비한 할머니... -0-
립스틱이라도 예쁘게 바르는 할머니가 되어야 겠어요...Orz

망고 2016-04-1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색 잘 어울리실거 같아요^^ 가려진 다락방님 얼굴 사진은 너무 귀엽지만요ㅎㅎ

다락방 2016-04-20 06:4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얼굴 가리느라 이것저것 스티커 다 붙여봤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간색은 무척! 마음에 들어요!!

LAYLA 2016-04-20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피부 좀 봐...

다락방 2016-04-20 06:43   좋아요 0 | URL
라일라님 ㅜㅜ 아이폰 사용하신다면 wondercam 어플을 써보세요. 제 나쁜 피부를 자기 스스로 저렇게 보정해준답니다. 흑흑 저건 저의 피부가 아니에요 ㅜㅜ

blanca 2016-04-2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 정말.... 다이안 레인 나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당장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일단 꼭 볼게요. 그리고 다락방님 눈이 너무 궁금해서 몰래 보고 오고 싶어지네요. ㅋㅋ 그리고 빈 말 아니라 레드 립스틱 정말 잘 어울려요.

다락방 2016-04-21 09:1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나이트 인 로댄스] 꼭 보세요. 좋아하실 거에요. 너무 좋아서 책으로도 사고 싶은데 번역본은 안나왔더라고요. ㅠㅠ 제가 좋아하는 류의 이야기였어요!!

제 눈은......................(패쓰)
립스틱 잘 어울린다는 칭찬은 접수할게요. 이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clavis 2016-04-2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이쁘시네요
그리고 `니가 할수있는 말이야`라는 아버님 말씀도 어쩐지 참 좋아요 사랑스럽고♥

다락방 2016-04-21 09:18   좋아요 1 | URL
저희 아버지는 제가 잘 먹는 거 엄청 좋아하세요. 다이어트 해야하는데...(시무룩) 다이어트 따위 왜 해야 하는지 전혀 생각않는 분이신데, 전 사실 그게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유연석)는 기차안에서 처음 만나게 된 여자(문채원)에게 '나 오늘 그쪽이랑 잘겁니다' 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룻밤 잔다'는  '원나잇'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성인 남녀가 처음 만나 함께 자기를 원한다면, 그게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여자랑 남자는 기차에서 옆자리에 앉음으로써 처음 만나게 됐고, 별다른 대화가 오고간 것도 아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오늘 너랑 잘 예정이다' 라고 말하는 건, 실제 상황이었다면 끔찍할만한 상황이 아닌가. 여자는 전화를 받으러 나가다가 잠깐 중심을 잃고 남자의 무릎 위에 앉게 됐었는데, 남자는 그 느낌이 좋았다고 말하는 거다. 상상해보라. 내가 기차를 혼자 타고 가는데 옆자리 남자가 '나는 오늘 너랑 잘 예정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나라면 졸 무서워서 벌떡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차장에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런데 이 영화속에서 문채원은 기막혀하고 당황해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서 드러나는데, 그렇게 말하는 '낯선 남자'가 '유연석' 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가 어마어마한 매력남이고 작업을 잘 거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자들이 그 말을 듣고도 그랑 자는 걸 선택하지 그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가 건네는 '나는 오늘 너랑 잘거야'는 여자들에게 '통하고' 여자들도 은근히 '바라고'있다는 걸 암시한다. 사실은 전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것이 '유연석'-잘생기고 매력적이라는 상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정은 마지막 장면에서 더 힘을 얻는다. 유연석의 선배(평범남)가 유연석이 한 그대로, 기차안에서 옆자리 여자에게 '나 오늘 그쪽이랑 잘 예정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옆자리 여자는 그의 뺨을 때린다. 이로써 잘생긴 남자가 '나는 오늘 너랑 잘거다' 라고 말하면 그건 가능해지고, 잘생기지 않은 남자가 '나는 오늘 너랑 잘거다' 라고 말하는 건 '맞을 짓'이 된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셈이다. 참... 구역질나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귀는' 남자는 잘생기지 않았다. 잘생긴 남자, 매력적인 남자, 그러니까 이를테면 유연석 같은 남자를 드라마다 영화에서 보고, 아 저 남자 멋있다, 저런 남자를 사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그런 남자를 만날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더 깊이 들어가면, 단순히 외모만으로 그가 '괜찮은' 혹은 '좋은' 남자는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애인'을 사귈 때 고려하는 건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냐, 이 사람과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느냐, 등등 외모 보다 더한 어떤 것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서울의 어디 한 군데, 강남이든 종로든 돌아다니다보면 우리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예쁜지 알 수 있다. 여자들은 헤어스타일에도 신경을 쓰고 옷도 예쁘게 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또 화장을 설사 안해도 참 예쁘다. 그러나 여자들의 남자친구는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사귀었던 남자 중에 잘생긴 남자는 단 한 명이었는데, 그와는 사실 사귀었다고 볼 수 도 없는게, 짧은 시간 사귀고 헤어졌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잘생긴 남자는 별로 없고, 잘생긴 남자가 매력적일 확률도 그다지 높지 않고, 무엇보다,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본 여자에게 '나는 오늘 너랑 잘거야'라는 말을 해서 통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자들이 '어머, 이 남자는 잘생겼어, 자야해!'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전에 한 만화에서 똑같은 행위도 잘생긴 남자들이 하면 여자들이 성희롱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 걸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너무 불쾌했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기차안에서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나는 너랑 잘거야' 따위의 말을 하는 건 불쾌하고 무서운 일이다. 잘생겼다고 해서 그 말이 여자에게 행운의 말이 아니다. 유혹의 대사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오해하고 못생긴 남자들은 또 괜히 열폭해서 '니네 유연석 같은 놈들이 그러면 화 안낼거잖아' 같은 거 하는 거 진짜 병맛이다..



영화의 절반이 넘어가도록 남자와 여자의 병맛 캐릭터 때문에 화딱지가 났다. 병신인가...하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왔는데, 여자는 한 부서의 팀장이면서도 얼마나 어수룩하고 꽉 막혔는지, 그리고 그 모습이 남자가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드러난다. 이거야말로 김을동의 망언이 생각나는 장면인 것이다. '똑똑한 여자는 밉상'... 영화속 여자는 행동이 어설프고, 감정이 다 드러나고, 꽉 막혀있고, 순진하고, 원나잇을 겁내고, 하룻밤 섹스보다 감정의 교류를 중시하는 장면 등등으로 '세련되지 못했으나',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되어 있다. 참... 한숨이 나온다.



여자에게는 특유의 장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장점.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자의 장점을 캐치해낼 수 있다. 잘생긴 남자와 하룻밤 자기 위해 장점을 '부러' 찾을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잠깐 남자랑 지내는 동안에 이 남자의 '괜찮은' 면을 찾아내는 것이다. 자신에게 '사랑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 여자인데도, 여자는 남자 앞에서 어수룩하고 꽉 막힌 여자가 된다. 




'조셉 고든 래빗'이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돈 존]에서 남자는, 포르노에 중독되었었고 또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았지만, 한 여자를 만나 그 여자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면서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좋은지도. 결국 영화속에서 남자(유연석)도 자신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에 당황하고 여자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결국 그도 '마음 줄 사람'하나를 찾지 못해 자신의 원나잇에 합리성을 부여하고 다닌 셈이다. 게다가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더 쉬웠다, 그에게는.


잘생긴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남자보다 성공확률은 더 높을 것이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관계가 지속되는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유리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기차안에서 나는 너랑 잘거야, 를 말하는 것조차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너와 내가 일대일로 만나고,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하다가, 그런 상황에서 매력을 느껴서 '오늘 너랑 자고 싶다' 를 말하는 것과, 기차안에서 처음 본 여자에게 '너랑 오늘 잘 예정이야'를 말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쌓이지만 그걸 결국 풀어나가는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상황들을 보면서 나라면 어떨까, 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하고 또 어떤 상황들에서는 내 상황들과 겹쳐져 웃거나 울거나 하는 것도 좋아한다. 수많은 로맨틱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사랑과 감정 그리고 연애를 다룬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구상의 남자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로맨틱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맨틱한 영화를 보는 여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로맨틱한 영화속 주인공들이 반드시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저마다의 장점과 매력을 가지고 있듯이 또 저마다의 단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각자의 부족한 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 그것들을 극복하면서 혹은 견뎌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로맨틱한 영화의 주인공이 반드시 똑똑하고 매력적이고 현명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날의 분위기]에서의 남자와 여자 캐릭터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단순히 불완전한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앞서 시선 자체가 불편하다. 영화속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를 많이 '돕고', '이끌어주고', '가르친다'.














한 조사기관에서 노인들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3위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이고, 2위가 저축을 더 많이 하겠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1위가 성관계를 더 많이 맺겠다는 것이었다. -111쪽









나는 내 젊은 시절에 내가 문란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내가 너무 많이 내 몸을 아꼈던 것을 후회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뭐든, 하면할수록 더 잘하게 되는것처럼, 섹스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대체적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 모든 행위들은,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직접 해보는 게 더 많이 도움이 되는 법이다. 섹스의 유혹 앞에서 '아니' 라고 말하기보다 '그래, 하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뭐가 그렇게 '안돼'기만 했는지... 어느 순간이 되면 섹스의 유혹 자체가 줄어들다가 결국 멈춰버릴 거라는 걸 안다. 섹스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섹스를 안해도 사는데 사실 그다지 큰 지장이 없지만, 살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많이 하고 살아도 좋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세상에는 쾌락으로 삶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또 쾌락으로 삶을 지탱한다고 했을 때, 그 쾌락이 반드시 섹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오늘 처음 만난 이성이 하룻밤을 제안했을 때, 나는 기꺼이 '그래!'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안돼'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각자가 어디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 사람과 십년간 섹스할 수도 있고 일곱 명의 사람과 매일 번갈아가며 섹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와 내가 함께 원했을 때에 가능하다. 특히나 기차안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너랑 잘거야..같은 거 하면 안된다는 거다. 섹스는 누군가에겐 엄청 좋은 거고,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그런 게 아니다. 게다가 나보다 힘이 센 사람이 '나는 너랑 오늘 섹스할 예정이다' 같은 거 말하면, 무섭다. 그러는 거 아니다. 나랑 자고 싶다면, '나는 너랑 잘거야'를 대뜸 말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일단 나의 호감과, 관심과, 마음을 얻는 게 우선이다. 잘생겼다고 해서 내가 '오 나야 땡큐지' 이러면서 자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팁인데, 

원나잇을 해봤더니 공허하더라, 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먹고 한 잠 푹 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따뜻한 밥을 먹고 한 잠 푹 자는 것은, 다른 많은 공허함, 슬픔, 외로움 등등에도 도움이 된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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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 만난 날
    from 마지막 키스 2018-09-20 16:42 
    일전에 유연석 주연의 영화 《그날의 분위기》를 보고 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유연석은, 기차의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나는 오늘 그쪽이랑 잘겁니다'라고 말한다. 미친 개소리를 씨부린건데, 이 장면에서 어떤 남자들이 '야, 유연석 정도면 여자들도 자겠지'라고 생각한다는 걸 보고는 기가 찼다. 잘생겼기 때문에 저런 발언이 허용될 것이고 여자들도 섹스를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그리고
 
 
시이소오 2016-04-1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여성분들이 이 영화 어떻게 볼지 궁금했어요. 제가 보기엔 완전 개 싸이코 영화였거든요.
저 정도면 성폭행 권장 영화 아닌가요? 정말 저러는거 아닙니다 ^^;

다락방 2016-04-18 10:41   좋아요 0 | URL
무서운 짓이죠. 그런데 잘생긴 남자가 그랬다고 뭔가 `가능한 것`으로 만든 것 같아 되게 불쾌했어요.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걸 `맞다`고 보는 것도 짜증났고요. 실제로 주변에서 한 남자가 `어차피 여자들 유연석이 자자고 하면 다 잘거잖아` 하는 말 듣고, 그런 그릇된 시선이 비단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씁쓸했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드는 것에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주 짜증났어요. 영화에 삽입된 몇몇 곡들은 좋았지만 말입니다.

아무개 2016-04-1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예고보고 이거 미친거 아냐? 라고 생각했는데 이영화 망했죠? 그래야지 그럼!


다락방 2016-04-18 12:37   좋아요 0 | URL
유연석(칠봉아!! ㅠㅠ)이 시나리오 보는 눈을 좀 키웠으면 좋겠어요. 문채원도 그렇고요. 하아-

차트랑 2016-04-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만하면 남의집 서재에 흔적 남기려하지않는 일인입니다,만 써주신 이번 글에 `오 저는 땡큐지 말입니다`.
좋은 글에 깊이 공감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군요
잘 읽었습니다

차트랑올림

다락방 2016-04-18 13:56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랜만입니다, 차트랑님.

공감하여 읽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더 명확하게 표현이 안되어 답답했거든요. 글쓰기를 더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배움이 더 깊었다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차트랑님.

차트랑 2016-04-1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토록 명료하고 유려하게 써서는 공감백배하게 해 놓으시고 이렇게 겸양하시면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ㅠ

다락방 2016-04-18 15:22   좋아요 0 | URL
아이쿠, 별말씀을요! ㅠㅠ
오늘 글은 스스로 딱히 흡족하지 않은 글이에요 ㅠㅠㅠ
 

졸업하고 제가 홍콩 삼촌네 갔거든요. 처음엔 몰랐는데 섬이 있더라고요. 들어갈 때 배를 타야 된다는 거예요. '아, 뭐지? 어떡하지? 미쳤다.' 너무 무서운 거예요. 표정관리도 안 되고. 얘기도 못하고 저 혼자 끙끙 앓았는데 확실히 제가 나아진 걸 느낀 게……'이기자, 이기자' 그런 게 많이 생긴 거예요. 확실히 졸업 이후에 많이 커졌어요.

결국 배를 탔어요. 긴장되어갖고 손을 꽉 잡고 가는데, 다행히 티는 안 냈어요. '결국엔 탔네!'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하나하나 극복하는 게 되게 스스로 기특하면서 …아, 진짜 내가 평범하게 살 수 있겠구나. 에전엔 '내가 이렇게 무서워하는데 아예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이랑 섞일 수 있다는 그런 기대감? 안도감? (구술 이혜지,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팔과 다리를 다쳤고, 팔에는 깁스를 했더랬다. 물리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계속 갔었다. 나는 심하게 다치지 않았었지만 같이 버스에 탄 사람들 중에는 아주 심하게 다친 사람들도 많았다. 그 후의 나는 버스 타는 걸 무서워했다. 버스를 안 탈 수는 없으니 타긴 탔지만, 급출발이나 급정거를 할 때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옆 차선에서 달리는 차들을 보면 또 두근두근 했다. 기사님이 음악이나 라디오를 크게 틀면, 그건 그대로 두근두근 했다. 기사님이 졸려서 저러시나, 싶어서, 그러다 사고날까봐. 


그리고 3년전, 친구와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또다시 교통사고가 났다. 그때는 가벼운 충돌이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면서 '어, 이건 부딪친다' 라고 생각했을 때, 정말 그 차가 와서 박은 거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넌덜머리가 났다. 버스라면 지긋지긋했다. 지금도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긴 하지만, 나는 가급적 지하철을 타고, 장거리라면 기차가 있는 곳을 선호한다. 버스로 가야 하는 곳이면 가기를 포기하거나, 기차를 타고 최대한 가까이 가서 걷거나 택시를 타거나 한다. 내게 장거리 버스는 쥐약이다. 



그런데 세월호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의 생존자가, 배 앞에서 부들부들 떨다가, 그 순간을 이겨냈다. 나보다 더 어린 학생이, 그 일을 해냈다. 내가, 이래서 읽지 않으려고 했건만, 아, 울어버렸다. 이 책을 한 권 다 읽은 것도 아닌데 그랬다. 나는 그저 샘플북만 봤을 뿐인데, 그 샘플북의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울지 않은 장이 없었다.















이번호 시사인에서는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샘플북을 부록으로 줬다. 나는 이 책이 나온 걸 알고 있었지만 읽지 않으려고 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책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샘플북이 왔고, 샘플북도 안 읽으려고 했는데, 하아, 읽어버렸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읽는데, 이들이 저마다 겪었던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겪는 걸 보노라니....게다가 자신들의 아픔을 다독이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까지 다독이려는 노력과 마음이, 이들을 너무 일찍 철들게 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사 간 집은 방이 하나 더 늘었어요. 사실상 엄마 방인데 형 방이라 지칭해두고 엄마가 거기서 생활하세요. 침대도 있고 다 있어요. 책꽂이 있잖아요. 거기에 형 사진 같은 거 있고 세월호 반지랑 팔지 같은 게 있어요. 다 정리해놨어요. 그런 물건들이 보이니까 그래도 뿌듯해요. 100퍼센트 좋다고 할 순 없지만 형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그래도 형이 없으니까 허전한 게 있지만요. 추억이 제일 많은 게 엄마일 거예요. 형이 엄마가 한 요리를 좋아했다 했잖아요. 그거에 대해서 되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거를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셨단 말이에요. 형이 맛있다고 해주는 것을 굉장히 내심 뿌듯해하시고 좋아하셨는데 그거를 좀 그리워하세요. 제가 좀 살가워지긴 했지만 그런 칭찬이 안 되잖아요. 하라면 하겠지만 자연스러운 게 아니잖아요. 인위적인 거지.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 (구술 정수범, 세월호 희생학생 정휘범의 동생)



아무쪼록 그들이 자신의 삶을 더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건,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다.



약간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제 삶을 더 생각하고 싶어졌어요. 그동안 많이 수고했으니까 이제는 버틸 수 있을 만큼만 하자. 희생된 친구들한테 미안한 게 많지만, 이제는 내 삶도 생각할 수 있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떼려는 게 아니잖아요. 소송도 그렇고 제가 당사자니까 제 삶을 잃지 않으면서 해나가야죠. (구술 이혜지, 세월호 당시 단원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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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5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8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빨간 립스틱을 사고 싶었다. 아주 빨간 립스틱. 언제부턴가 립스틱을 사지 않고 있었으니 사게 된다면 아주 오랜만에 사게 되는 거다. 그간 가지고 있던 것과 백화점에서 화장품 사고 샘플 받았던 것, 혹은 선물 받은 립글로스나 립밤등을 사용하고 있다가, 빨간 립스틱을 사자, 라고 생각했다. 살래, 살거야. 이십대 초반에는 립스틱을 잘 사곤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립스틱을 사지 않았어. 자, 오만년만에! 립스틱을 사자!!


나는 인터넷으로 립스틱 쇼핑에 나섰다. 이것 저것 골라보다가 드디어 골라낸 것이 디올 제품! 이정도면 내가 원하는 빨강이겠지. 그렇게 선택하고 그 립스틱이 어제, 내게로 왔다. 슝-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된장녀의 하루인가 김치녀의 하루인가 ..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쓴 남자사람은 된장녀들이 엘라스틴 샴푸를 쓴다고 비꼬고 있었다. 아하하하하. 이런 샴푸 한 번 안사본 꼬꼬마 새끼... 엄마가 사준 샴푸만 써본 꼬꼬마 새끼.... 당장 마트로 가서 샴푸 사봐라, 새꺄. 뭐가 됐든, 나는 엘라스틴 샴푸를 몇 개나 살 돈으로 립스틱 한 개 샀다. 디올이다!! 디올은 아니??






아아, 그런데, 이 예쁜 빨강이... 발라보면.. 핑크에 가까운 거다. 오, 레드여... 나의 레드는 어디에...나는 급실망을 했지만, 이미 발라본 후라 반품을 할 수도 없다. 그래, 얌전하게 회사 다닐 때는 이걸 바르자. 하아- 이것의 발색은 보이는 것보다 연하다. 바른 후의 모습이다.





아아, 너무나 얌전한 것이다... 이렇게 얌전한 걸 원한 게 아니야... 그래서 결심했다. 이 얌전한 립스틱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생활 할 때만 바르고, 주말용, 외출용 시뻘건 립스틱을 새로 사자! 


그렇게 나는 슈에무라 립스틱을 다시 결제했다... 립스틱 두 개에.....엘라스틴 샴푸 몇 개???





이것은 지금 내게로 오고 있다... 이 립스틱의 발색은 다음 포스팅에..to be continued....

나는 뷰티블로거로 거듭나는가.....




다른 얘긴데, 두 번째 내 사진에 파란색 동그라미, 그 부분에 점이 있다. 저기에 점 있는 거 너무 좋다. 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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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6-04-15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넘나 고우신 것... 피부가 플로리스 그 자체인 것...! 맥 러시안레드나 루비우는 어떠세요?

다락방 2016-04-15 11:20   좋아요 1 | URL
아아 에이바님. 저것은 셀카어플의 힘입니다. 실제로 저는 피부가 나쁜 여자사람중의 한 명 입니다. 셀카어플은 자체 뽀샵을 해줘요. 아이폰셀카였다면 전 아마 제 얼굴을 올리지 못했을 겁니다...하아-

맥 러시안 레드? 루비우? 검색해볼게요. 우히히히.

단발머리 2016-04-15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빨강을 못 발라요. 빨강을 바르고 외출한 날에는 하루종일 이런 말을 듣죠.
˝립스틱 너무 진하다...˝ 나는, 진하다,를 찐하다 혹은 안 어울린다로 해석해요.
그래서, 나는 사계절 핑크. 핫핑크, 톤다운핑크, 그냥 핑크.

다락방님 디올 발색 좋은대요. 딱 사무실에 어울립니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차장님~~~~
다음에는 나도 디올을 사볼까봐요. ㅋㅋ
근데 예쁜 얼굴 너무 많이 가린 것 아니예요? 너무 많이 가렸어요~~~~

다락방 2016-04-15 11:2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저는 이십대 초중반에 빨간 거 엄청 바르고 다녔어요. ㅋㅋㅋㅋㅋㅋ 누가 뭐라고 해도 꿋꿋하게 바르고 다녔어요. 한 번은 너무 보라색이라 시꺼멓기까지 한 립스틱을 바르고 다닌 적도 있어요. 엄청 많은 이야길 들었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바르고 다녔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색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너무 약해요. 전 더 강하고, 쎄고, 진한 걸 원했습니다! ㅎㅎㅎㅎ

아아, 저도 가리지 않고 올리고 싶지만....가릴 수 밖에 없는 이 마음..... 하아.....Orz

[그장소] 2016-04-1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올 컬러 곱네요~^^슈에무라도 보여주세요..바르고요!

다락방 2016-04-15 11:23   좋아요 1 | URL
네, 슈에무라도 도착하면 인증하겠습니다. 뷰티블로거로 거듭날게요! 아자!!

[그장소] 2016-04-15 18:38   좋아요 0 | URL
화사한 봄 ㅡ뷰티 ㅡ부탁~해요~!^^

건조기후 2016-04-15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왕. 색깔 예뻐요! 빨간 색도 엄청 예쁠 것 같아요!
다락방님 부러워요. 흑. 전 립스틱이 안 어울려서 빨간 색은 꿈도 못 꾸는 비루한 낯짝... ㅜ

다락방 2016-04-15 11:29   좋아요 1 | URL
건조기후님, 뽀샵 어플로 사진을 찍고 중요부위를 저렇게 다 가려주시면 누구나 립스틱은 어울립니다. 저도 가린 것의 힘이며 뽀샵의 힘입니다!!!!! 제가 오죽하면 가렸겠습니까.....후........Orz

무해한모리군 2016-04-15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디올은 확실히 빨강은 아니네요... 코랄핑크 그런걸까요? 레드도 잘어울리실거 같아요. 피치도 괜찮을거 같고.

저는 볼빨간 종족이라 빨간립스틱 안어울려요 ㅠ.ㅠ 하긴 화장도 어짜피 안하고 다니지만 ㅋㄷㅋㄷㅋㄷ


다락방 2016-04-15 15:12   좋아요 1 | URL
그냥 립스틱만 봤을 때는 빨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발라놓으니 핑크가 되어버렸어요. 하아...
얼른 빨강 바르고 싶어서 좀쑤셔요.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얼른 바르고 외출하고 싶어요!1 >.<

blanca 2016-04-15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이해되는 게 제가 얼마전 정말 화사한 핑크 립스틱을 바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며칠 검색 해서 받아 봤더니만 두둥 발색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귀찮지만 립스틱은 직접 매장에 가서 바르고 지우고( 저는 이게 너무 번거로워요)하고 사는 게 확실하긴 하더라고요. 아, 궁금해요. 저 립스틱은 다락방님 입술에서 어떤 색감일까. 아, 점 ㅋㅋ 너무 귀여워요.

다락방 2016-04-15 15:13   좋아요 1 | URL
네, 사실 발색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매장가서 발라보는 게 제일이지만, 저도 이것 발라보고 지우고 또 저것 발라보고 지우고 하기가 너무 귀찮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에라이~ 하고 산건데 발색에서 망할줄은.. ㅠㅠ
제가 빨강색 오면 잽싸게 인증할게요. 아 기대돼요. 빨강빨강~
제 점이 귀엽진 않지만 ㅋㅋㅋㅋ 저는 저기에 점 있는 게 어쩐지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니 2016-04-15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다락방님 왤케 살 빠졌어요!?

다락방 2016-04-15 15:14   좋아요 1 | URL
아아 ㅠㅠ 아닙니다, 치니님. 잘못 보셨습니다. 아니, 어플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저게 뽀샵어플이라 지가 막 피부 보정해주고 얼굴 사이즈 줄여주고 그래요. 살은 1도 안빠졌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빠져서 이런 댓글 받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hnine 2016-04-1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찾으시는 빨강은 저것보다 훨씬 더 새빨간색일거예요. 슈에뮤라 립스틱보다 더 빨간.
그런데 다락방님 사진 이리 가리고 저리 가리셨지만 제가 상상하던 모습이랑 다르세요. 더 동글동글한 마스크일줄 알았는데 완전 계란형!

다락방 2016-04-18 10:09   좋아요 0 | URL
나인님, 슈에무라 립스틱은 마음에 들어요. 사실 빨간 빛 이라기 보다는 다홍빛에 가깝지만, 발색만큼은 원하는대로 나옵니다. 아하하하하.

그리고 저게 위에도 몇 번 썼지만, 셀카어플을 사용해서 찍은 거라 그래요. 원래 제 얼굴은 보름달 같아요. 동글동글이 아니라 둥글둥글 ㅠㅠㅠ 셀카 어플이 이렇게 저를 많이 속여주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망고 2016-04-1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오니 얼굴에 자꾸 색을 칠하고 싶어요^^ 디올 립스틱 예쁜데요?ㅎㅎ 빨강 후기도 부탁드려요~

다락방 2016-04-18 10:10   좋아요 0 | URL
빨강 후기도 곧 올리겠습니다! 아하하하하.
색이 진한 립스틱 바르고 외출하니까 기분이 새로웠어요. 힛 :)

셜록오 2016-04-16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얌전한 빨강 맘에 드는데요 뷰티블로거님^^

다락방 2016-04-18 10:11   좋아요 0 | URL
디올 립스틱은 여동생이 가져갔어요. 마음에 쏙 든다고요. ㅎㅎ
새로 산 빨강이 마음에 드는데 사무실에서 바르고 있기가 참 난감해요 ㅠㅠ

몬스터 2016-04-1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광 피부가 이런거죠? 피부 참 좋으시다. 립스틱 색깔 이뻐요, 입술에 봄이 온듯

다락방 2016-04-18 10:13   좋아요 0 | URL
저는 물광 피부가 아니라 ㅠㅠ 기름진 피부입니다 몬스터님 ㅠㅠㅠㅠㅠ
셀카어플이 저를 물광피부로 만들어줬네요. 하아- 기술의 발전이여.....
전 셀카 어플 아니면 셀카를 찍을 수가 없는 피부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흙

저 분홍빛 디올 립스틱 여동생이 가져갔어요. 아하하하하. 제게는 이제 빨강..만 남았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