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고,라고 불렀다 창비시선 378
신미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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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아마도 첫 연애였다면, 그래서 아마도 나는 그토록 혹독히 앓았나보다. 이런 사람을 어찌 또 만나려나, 이런 감정을 또 어찌 느끼려나, 내가 앓았던 시간은 길고도 길었고, 그 긴 시간동안 나는 혹여라도 그를 다시 보게 된다면 하는 기대감으로 지냈다. 그 시간은 너무도 길었고, 내 앞으로의 날들에도 역시 그를 향한 그리움만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그게 아니라면 또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린날 내가 만난 그 남자가 진짜 남자였고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뜨거운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설사 다른 사랑을 해도 그 사람을 사랑했던 만큼 사랑할 수 없을거라고 감히 단언했다. 오, 그러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얼마나 위험한가.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를 당연히 잊었으며, 웬걸, 우리가 했던게 정말 사랑이긴 했나, 하는 자조 섞인 중얼거림도 찾아왔다. 그거, 사랑도 뭣도 아니었던 것 같어, 라는. 심지어 그를 사랑(이라고 생각했지, 그때는)했던 것보다 더 큰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생기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면서, 무시로 떠오르던 그는 어느 순간, 억지로 기억하려고 해야만 기억나는, 애를 써야만 떠오르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옛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첫 연애는 옛일이 되었다.




옛일



해마다 잊지도 않고 공양하나

저 꽃들, 보노라니

어쩌나 

죽어도 너를 못 잊는다는 약속은

거짓이었어라



너 없어도 찢어진 살 위에 새살 돋고

밑이 젖는 내 몸 봐라

어쩌나

향불 한올 피우지 못하고

너는 이제 강가에 던진 돌이나 되었는데



내 슬픔만으로 꽃 모가지 하나 꺾을 수 있느냐

산비알에 독짝 하나 굴릴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어찌 잊어

어찌 잊을 수가 있어

지글자글 타는 자갈밭 맨발로 걸으며

울던 내 낯도 옛일, 다 옛일




한번은 같이 바다를 보았었다. 달무리를 보고 꽃게찜을 먹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던 일이 그 바다에 있었더랬다. 환한 대낮에는 방파제 위에 훌쩍 그가 올라섰고, 질 수 없어 내가 올라섰다. 폴짝 폴짝 그가 이 방파제에서 저 앞의 방파제로 발을 옮길때, 그러나 나는 그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곧 울 것같은 목소리로 못해, 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다시 폴짝 폴짝 내 앞으로 와, 무서워 벌벌 떠는 내 손을 잡고 육지로 데려왔다. 나는 폴짝폴짝 방파제를 넘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는 폴짝 포올짝 더 먼 데로 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일도 옛일, 그 앞에서 못한다고 주저 앉았던 나도 아주 머언- 옛날의 나. 방파제 앞에 선 그 당시의 내 가슴속엔, 그때는, 가득했던 사람도 옛, 사람.




파랑파랑파랑파랑파랑



방파제만 따라 걸었네 병신같이 미쳐 걷고파, 가닥진 머리칼에 미역 냄새 풍기고 배꼽에 잔디씨처럼 까만 때는 끼어서



내 속에 작은 파도 밀려온 적 있었네



네 두 손을 꼭 끌어다 가슴에 대고 녹을 듯이 몸이 젖었던 생각만 되풀이하던 그때, 그날들의 눈 먼 물보라





오이지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줘요

오이제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





잊혀진 옛일이 있고 잊혀진 옛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직 잊혀지는 중인 사람이 있고 그렇게 옛사람으로 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잊으려고 노력해도 의지로는 되지 않는 것처럼, 잊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 순간에는 잊혀지는 것 역시 의지로는 되지 않는 일. 나는 그런대로, 되는대로 내버려두겠지만, 혹여 내가 아직 당신을 못잊어 내 꿈에 당신을 초대하거든 당신 역시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서도 같은 꿈을 꾸어 그 속에서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 인사를 나누고 웃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꿈에서는 하도록 하자. 그리고 눈을 떠 아 이것이 꿈이었구나, 하고 알게 됐을 때, 바로 고개를 털지는 말자. 누운 자리에서 혹은 그렇게 앉은 침대 위에서, 조금쯤은 꿈을, 꿈 속의 서로를 생각하도록 하자. 하루를 몽글몽글하게 시작하는 게 나쁘진 않으니까. 그 시간이 혹여 자다 잠깐 깬 새벽이라면, 다시 눈을 감고 한 번쯤 더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칸나꽃 분서



절명을 꿈꾼들 저 꽃같이는 심장을 걸 수 없었네

계절은 매번 색다른 변절을 꿈꾸어왔으므로

이제 나를 거쳐간 연애는 미신이 되었다



돌아본들 유산 후에 돋는 입덧 같은 것이었나

꽃 진 자리 화기가 남아 피 더운 까닭은

용서하라, 눈 매워 혈서 한잎 흘려 쓰지 못하는 것을



오로지 그대, 한올 그림자마저 태우고 높이 떠나라

이 여름 다 가고 붉은 두근거림마저 지면

당신 눈짓과 살내를 곁에 두고 오래 잊을 것이라



화대처럼 받아든 이 시간에 불붙이고

연기도 없이 지등(紙燈)타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라





눈 감으면 흰 빛



살 무르고 눈물 모르던 때

눈 감고도 당신 얼굴을 외운 적 있었지만

한번 묶은 정이야 매듭 없을 줄 알았지만

시든 꽃밭에 나비가 풀려나는 것을 보니

내 정이 식는 길이 저러할 줄 알아요



그래도 마음 안팎에 당신 생각을 못 이기면

내 혼은 지읒 시옷 홑겹으로 날아가서

한밤중 당신 홀로 잠 깰 적에

꿈결엔 듯 눈 비비면 기척도 없이

베갯머리에 살비듬 하얗게 묻어나면

내가 다녀간 줄로 알아요, 그리 알아요




이별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이제 내게는 그렇게까지 혹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별중이 아닌, 이별을 지나온 상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또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이별은 언제나 혹독한 것이다, 라고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를 일. 그러나 이 시집의 시인에겐 이별이란 언제나, 항상, 지금도 혹독한 일인가보다. 혹독히 앓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둔 흔적이 이 한 권의 시집이 되어 나온 것 같다. 이를 악물고, 아프지만 내가 지금 겁나게 아프다, 고 소리칠 수 없어 대신 시로 표현한 느낌. 나는 시인과 거의 나이차이가 나지 않지만, 다 괜찮다고, 모든게 지워지고 잊혀지는 시간이 원하지 않아도 오고야 만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시인은 그렇겠지, 하고 더는 대꾸하지 않은 채, 또 한편의 시를 써낼지도 모를 일. 


시는 감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시인에겐 그 감정이 넘치도록 많아, 뭔가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아니, 그것은 완결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책망이 아니라, 다 쓰지도 못해 기력이 빠졌구나, 라는 느낌. 시인이 아득하고 젖어있어서 덩달아 나까지 아득하게 젖어버렸다. 눅진한 시집, 눅진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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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9-1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말씀드리는게 실례겠지만 정말 많은 만남을 가지셨던것같아요 그추억들이 님이읽은책과 결합해 아름다운글들로 만들어지고요 하나하나가 다 아름다운 시같습다

다락방 2014-09-19 09:4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마태우스님. 많은 만남을 가지진 않았고요, 있는 만남을 재탕삼탕 우려먹고 있는 겁니다. ㅎㅎ 아름다운 글이라뇨, 제 글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죠. 그렇지만 고맙습니다!! 꾸벅 (--)(__)

자작나무 2014-09-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수많은 남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나요...

다락방 2014-09-21 23:55   좋아요 0 | URL
수많은 남자들이라뇨. 오해십니다. ㅎㅎ
 
[100자평] 영국 정원 산책
영국 정원 산책 -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오경아 지음, 임종기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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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러니는 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원엔 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기존의 정형화된 패턴을 깨고 싶어 탄생시킨 또 다른 스타일이었다. 구불거리는 호수는 수천 명의 인부가 삽으로 땅을 파서 만든 인공 호수이고, 우거진 숲의 조화로움은 인간의 힘이 아니면 결코 나란히 설 수 없는 낙엽수와 상록수가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조합일 뿐이다. 그래서 이 정원을 두고 훗날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자유로움'의 정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원은 우리가 꿈꾸는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파라다이스일 뿐이다. 정원이 지극히 자연을 닮고 싶어 하지만 결코 자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5)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나는 '전원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나이 들어 시골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 고 말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것이 삶에서 휴식을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보지만 그렇다한들 나는 그 휴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거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 시간을 내어 제주도를 찾고, 제주도에서 살기를 원하고 하는 모습도 나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한적함과 고요함 그리고 자연이 주는 풍경이 좀 무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내게 너무나 거대하며 웅장하고 친해지기 많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면서도 내가 수목원을 찾고, 공원을 산책하기를 즐겨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 지 몰랐다. 단적인 예로, 시간을 내어 제주도로 휴가를 가기는 싫은데, 왜 광릉수목원엔 가고 싶을까? 결국은 나도 자연을 원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되는걸까? 왜 저기는 가기 싫고 여기는 가고 싶을까? 이건 어디에서 오는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내가 원한건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란걸 알게 됐다. 내가 공원을, 수목원을 더 좋아하고 또 그런 곳을 찾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은, 그것들의 배경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속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정원들 역시 그랬다. 나는 시골에 가서 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 책에 나온 정원들을 산책하기 위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쯤은 기꺼이 뚝- 떼어낼 의향이 있는거다. 사람들이 만들어둔 연못을, 사람들이 심어놓은 꽃과 나무를, 사람들이 자신의 팔로 가지치기 한 그 인공적임을, 그 공간들 사이에 의도적으로 둔 바위와 자갈과 벤치를, 나는 경험해보고 싶다. 그것은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이기까지 하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며, 반 년쯤 영국에 머물며 한가로이 이 정원들을 모두 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누리고 싶은 것, 내가 가장 함께하고 싶은 대상, 내가 최종적으로 머물 곳은, 결국은 사람이라고 나는 이제는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거닐고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누리는 것도 좋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물론 좋다. 혹여 벤치에 앉아 혼자 사색하거나, 혼자 천천히 걷는 시간 속에도, 그곳이 정원이라면 나는 풀과 꽃과 나무와 바위의 숨결을 맡으며 동시에 인간의 숨결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점이 내게는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될 것 같다. 안심이 될 것 같다. 




영국의 정원들을 천천히 산책하며 호흡하는 날들이 내 인생에 언제고 오기는 올까? 내가 기꺼이 짐을 챙겨 그곳으로 가게 될 순간이 올까? 아침에 눈을 떠 거하게 식사를 하고 편한 복장으로 정원을 찾는 삶.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벤치에 앉아 과거를 혹은 미래를 가만히 생각해보고, 혹여라도 벌레를 밟아 죽이게 되지는 않을까 조심히 걷는 그런 순간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를 하고, 다정한 사람들과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거하게 술상을 봐서 술을 마시는 그런 사람이, 내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빡시게 일해봤자 스끼야끼는 먹을 수 없고 고작 황태만 뜯어야 하는 이 현실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을까? 황태가 맛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십년 이상 직장생활 했으면 스끼야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 먹을 수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그 곳에 가고 싶다. 두 다리에 알이 땅땅하게 박이도록 걷고도 싶다. 종아리에 알이 박이고 허벅지에도 근육이 솟아나면, 레슬링도 할 수 있겠지. 이 모든 게 영국 정원을 반 년간 돌아다니다 보면 가능해질텐데.


그런데 알은 박이는 건가 박히는 건가????























돈만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순 없지만 돈이 없다면 정원 예술은 절대 꽃필 수 없다. 이것이 정원이라는 예술이 결국은 귀족의 문화를 주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결코 사거나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의 힘이다.
수백 년 습기 속에 피어나는 돌에 낀 이끼, 바람에 부대껴 바람결대로 휘어져 굵어진 고목들, 수만 번은 잘려 안으로 단단해진 생울타리는 돈, 인간의 힘이 아니라 시간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시간은 창조의 힘만 지니고 있지는 않다. 버리고 소멸시키는 힘도 함께한다. 한때는 풍성한 아름드리나무로 정원을 지켰을 고목이 병들어 밑동만 남긴 채 사라지기도 하고, 화려하게 반짝였을 돌계단이 수백 년의 찬이슬에 부식되어 허물어지기도 한다. 정원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우리 것이 아닌 시간의 것이 되어간다. 오래된 정원엔 설익은 인간의 손길을 다듬고, 보듬어 만들어놓은 시간이 흐른다. (p.33)

집을 짓는 것도, 정원을 만드는 것도 날 위해서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것도, 이제 인간은 자연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더 나아가 우리 손으로 자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이 지구라는 공간 속에서 잘 사랑가기 위해서이지, 인간과 관련이 없는 자연 그 자체를 위해서는 아니다. 어차피 우린 철저히 우리를, 엄밀히 나를 위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참 ㅏ이러니하지만 지극히 나를 위해 착해져야 하고, 남을 배려해야 하고, 때론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원수조차도 용서해줘야 한다. 남을 위해서라면 결코 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
왜 정원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도 결국 나를 위해서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우리가 정원을 만드는 것은 본능이다. 내 마당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휴식처를 마련하는 것은 모두 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다. (p.45)

내 정원에 야생 새가 날아오기를 바라는 것도 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걸 지켜볼 나를 위해서다. 행복한 일은 나를 위한 정원이지만, 정원은 지나가는 사람까지도 즐거움을 나눠주는 고마움이 있다는 것이다. (p.45)

가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이해하는 일이다. 결코 내가 너의 입장이 될 수 없다는 걸, 절대 우리가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때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그래서 철저하게 우리가 왜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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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9-04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꿈이 꼭 이루어 지길 바라요!


음.. 운동화 대신 탐스화를 가져가야겠어요. ( ") ㅎ

다락방 2014-09-04 15:11   좋아요 0 | URL
탐스화가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음 ㅋㅋ

건조기후 2014-09-0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정원을 햇볕 속에 거닐다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 하아. 그냥 천국이네요 ㅜㅜ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귀족이 화가를 고용해서 정원을 그리게 하고, 이후에 정원이 조금씩 변하면서 결국 그림이 살인사건의 단서를 품게 되는 그런 영화였어요. 나는 왜 저렇게 평화로운 정원 풍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멘탈이 왜 이 모양일까요? ㅎㅎ

알은 박이는 거 맞아요. ^^ 저도 순간 헷갈려서 찾아봤네요 ㅎ

다락방 2014-09-05 17:40   좋아요 0 | URL
저도 박이다랑 박히다 찾아봤는데 설명을 읽어도 둘 다 맞는것 같더라고요-0-

건조기후님, 언젠가 우리가 같이 정원을 걷게 될 날이 올까요? ㅎㅎㅎㅎㅎ 같이 걷고 들어와서 샤워한 뒤에 술을 마시면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ㅋ ㅑ -
 
둘런과 모리스의 컬렉션
린 섀프턴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한 커플의 경매 물품으로 꾸며진 책이라고 해서 대체 그게 무슨말인가, 어떤 책이란 말인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니 '읽는'다기 보다는 '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책에 쓰여진 글자들은 경매물품들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니까. 물론, 그 경매 물품들 중에는 엽서나 메모, 편지가 있고 그에 대한 해석도 있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이야기'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대의 음식칼럼니스트인 여자와 30대의 사진작가 남자가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에서 함께 공유했던 물건들을 경매로 내놓는 데서 시작했다. 그들의 경매 물품에 대한 브로셔, 카탈로그 라고 보면 딱 맞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전시회에 가서 한 커플의 물건을 직접 보고 엽서나 편지를 읽고 그들의 사진을 보는 일들이 흥미로울 수는 있으나, 딱히 그것들을 '보고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 역시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했으나 책장을 덮을 때 만족할만한 책은 아니랄까.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책이라기 보다는 경매물품 안내책자에 가깝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며 피식피식 웃었는데, 케이크 서버와 자몽 껍질 벗기는 칼을 봤을 때 그랬다. 그들의 귀여운 소품. 손수건, 티셔츠, 모자, 스커프, 시디, 책, 사진 등의 일상적인 물건들. 그리고 해마다 여자가 일기를 써서 손 때묻은 '스미슨 오브 본드 스트리트'의 다이어리. 아, 그 다이어리는 어찌나 갖고싶던지. 검색창에 쳐봤지만 국내에서 파는 다이어리가 아닌 것 같다. 약간 몰스킨 비슷하게 생겼는데. Irish Countryhouse Cooking은 요리책인데, 하하, 이것도 갖고 싶어서 알라딘에 외국도서로 검색해보니 이 책에 실린 사진과는 커버가 다르다. 다른책인지 같은 책인지를 모르겠어. 


The Voyeur

케이크 서버

존 업다이크, 커플

irish Countryhouse Cooking

Edna O'brien


아마도 그들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상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위의 사진은 정말 사랑스러운데 1052번의 사진은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의 22살때의 사진을 준 것이고, 밑에 사진은 여자가 그런 남자에게 답장으로 보낸 사진이다. "당신이 스물두 살일 때 난 아홉 살이었어. 키스허그.L." (p.28) ㅎㅎㅎㅎㅎ 이런건 나중에 써먹어도 좋을 것 같은 러블리한 대화다. 




파티의 좌석배정표와 동전이 가득 든 양념 병 세 개도 경매물품으로 나와있다. 



이게 내가 책장을 넘기다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다이어리. '스미슨 오브 본드 스트리트'의 제품.




책에 껴져있던 '둘런(여자)'의 전 남자친구 다섯 명의 사진. 하하하하하.





시디들. 내 방 어딘가에 나도 누군가 복사해준 시디가 있는데.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에 구매한 속옷들.




내가 갖고 싶다고 생각한 책. Irish Countryhouse Cooking





나는 개인적으로 와인 선물을 엄청 좋아하는데, 이 와인 두 병은 모리스(남자)가 밸런타인데이에 '둘런'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이 적혀있다.



모리스가 2005년 밸런타인데이에 이 와인 한 상자를 둘런에게 보냈다. 메모지가 붙어 있었는데(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그녀에게 동거를 제안했다. (p.76)



와- 완전 좋아. 와인 한 박스라니!! 와인 한 박스 선물하는 남자라니. 아..동거할 만 하다!! 뭔가 엄청나게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와인 한 박스를 선물하며 동거하자고 하면 어쩐지 예스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대신 조건이 있어. 와인이 다 떨어지기 전에 꼭 다시 한 박스씩 채워놔야 해!!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매해 쓰는 다이어리에, 둘런은 2005년 8월 13일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핼을 미워하는 것 같다." (p.103)


이런 메모도 메모장에 쓰기도 했다.

"권위적으로 좀 굴지 마/ 당신 스트레스를 내게 풀지 마/젠장, 제발 좀!" (p.103)


2003년에 핼은 둘런을 '버터 타르트' 라고 불렀는데. 



이런 것이다. 이 책이, 그리고 그와 그녀의 관계가, 혹은 당신과 나의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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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solo 2014-08-1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좋은 추억을 경매로 ㅠㅠ 작가 마니 나쁘네 쩝 둘런과 모리스가 헤어진 다음에 정리한건가???
글이 좋아 여길 와서리 좋은 글에 댓글이라도 달아야 하기에 걍 적어봅니다.
다락방님!!!










좋은 책 내신 것 축하 드리고용. 작가가 의도 하지 않은 것을 걍 자기 일상화 시킨 것을 존경 ㅡㅡ?
음 어렵다 단어 선택 우쨋든 대~~~단합니다. 감수성이 남다르시네여.. 저도 EQ는 최고라고 자부 했는데
좋은 글 좋은 책 마니 보여 주세여. 책읽기가 두려워 지는 계절입니다.

다락방 2014-08-22 08:25   좋아요 0 | URL
음 작가가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둘런과 모리스가 사랑하고 이별하고 경매한 것은 그들의 의도였으므로 작가가 나쁜것 같진 않고요. 누군가에게는 꽤 재미있는 책이 되었을 법도 한데, 저는 좀 별로였어요. 다만, 세상의 모든 커플들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들을 다들 비슷하게 겪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퇴색되는가 봐요. 어쩌면 그래서 이 세상이 재미있는 건지도 모르고요. ㅎㅎ

yssolo 2014-08-1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지는 과정에 깨끗한 정리군요 흠

dreamout 2014-08-1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훑어만 봤는데, 책들이 주로 눈에 들어오더군요. 멋진 책표지가 많던데요. ㅋ

다락방 2014-08-22 08:25   좋아요 0 | URL
역시..드림아웃님은 벌써 보셨군요! 전 아이리쉬 쿠킹책 너무 궁금해요!! 보고싶어.. ㅠㅠ 음식 사진 많겠죠? ㅜ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애인과 이별한 친구에게 '너는 미래에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냐' 고 물은 적이 있었다. 친구는 '그렇다'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 간혹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에는 나의 애인들 중 누구도 없었으니까. 이상하게도 앞으로의 그림을 그려볼라치면, 거기엔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라고 해서 외로워하거나 슬퍼하진 않지만, 혼자 있는 집이 그려졌다. 다만,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바깥으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는 할 것 같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하진 않을거라 생각했다. 친구에게 그리 물었을 때, 나는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모습을 그리는 지를.


물론 영화속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나는 너와 함께 남은 생을 보내고 싶어' 라든가 '너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어' 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오긴 했었다. 그러나 그 말들은 그 당시 그 커플들에게 낭만적인 말이었을지언정, 나를 유혹하는 어떤 멘트도 되지는 못했다. 그 말은 내게 다가와 닿지 못했고, 그것은 아마도 내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실질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내게는 구체적인 상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고. 내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면 나는 그와 앞으로 함께 하는 삶을 꿈꾸기 보다는 지금 즐거운 것을 더 많이 추구하곤 했다. 심하게 열병을 앓을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도 미래를 그리기 보다는 '그는 어떤 어린이었을까, 어떤 학생이었을까, 학생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를 생각해보는 일이 더 많았다. 내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미래'는 마치 공상과학영화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매일 밤마다 아빠와 엄마가 한 방에서 잠들고, 아침에 함께 눈뜨고, 자기 전이나 일어나서 투닥대는 모습을 볼 때조차도 그것은 '내 부모의 삶' 이었지, '언젠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을것' 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건, 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당신과 함께 남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말에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그냥 하는 말' 같은 거였다. 이 책,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읽기 전까지는. 정확히, 그의 이런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그녀는 늙는다는 개념을 증오했다. 이십대부터 자신이 마흔을 넘기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둘이 함께 이어나갈 삶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했다. 모든 것이 느려지고 고요해지기를, 함께하는 옛 추억들이 늘어나기를 고대했다. (p.111)




이 문장들을 천천히 읽는데, 그의 말이 거짓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그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 같아 나는 아주 꼭꼭 단단하게 읽었다. 아, 그럴 수 있는거구나, 했다. 앞으로 함께 이어나갈 삶을 고대할 수 있는거구나, 함께하는 추억이 늘어나기를 바랄 수가 있는거구나, 그런 걸 고대할 수 있는거구나! 내게 이것은 사랑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주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나의 확신에, '어쩌면 그렇지 않은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결혼 생활이 결국은 의리와 정으로 지탱되는 거라는 생각 앞에, 꼭 그런것만은 아니라는 일종의 가능성을 열어두게 해주는 문장이었다. 그러자 이내 근사해졌다. 아, 나와 함께 하는 삶을 고대하는 사람이라니. 아니,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고대할 수 있다니! 이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꿈꿀 수 있는 어떤 최대치가 아닐까. 




그렇기에, 모든 사랑은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언젠가 죽고, 함께 산다면 누군가가 반드시 먼저 죽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함께 산다고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것이 우주의 순리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약하디 약한 존재이니까. 사랑이 끝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리고 그때마다 언제나 아프고 쓰라리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랑의 절정에 있었던 젊은 시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더 늘어가고, 그래서 이제는 '이제껏 하나인 적 없었던 두 가지'가 '온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 그때 찾아오는 이별이야말로 비탄과 고통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우리는 평지에, 편편한 면 위에 발을 딛고 산다. 그렇지만, 혹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망한다. 땅의 자식인 우리는 대로 신 못지않게 멀리 가 닿을 수 있다. 누군가는 예술로, 누군가는 종교로 날아오른다. 대개의 경우는 사랑으로 날아오른다. 그러나 날아오를 때, 우리는 추락할 수 있다. 푹신한 착륙지는 결코 많지 않다. 우리는 다리를 부러뜨리기에 충분한 힘에 의해 바닥에서 이리저리 튕기다가 외국의 어느 철로를 향해 질질 끌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아니었대도, 결국 그렇게 된다. 누군가는 예외였다해도, 다른 사람에겐 어김없다. 때로는 둘 모두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p.60-61)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한 문장이다. 사랑으로 훌쩍 날아오르지만, 우리는 추락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자명한 이치인가. 또한 푹신한 착륙지가 많지 않을 뿐더러 철로를 향해 질질 끌려가게 되는 고통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명백한 사실인가. 모든 사랑 이야기가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당신과 함께 살고 당신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도 고통이지만, 그것이 싫어 지금 당신과 헤어지는 것 역시 추락이니까. 이렇게든 저렇게든 어떻든 우리는 둘이 함께 영원할 수가 없으니까. 아내를 잃은 줄리언 반스의 조용한 회고 앞에, 나는 먹먹해진다. 그에게도 역시, 사랑은 비탄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빈자리를 느껴야 했으니까.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p.109)




차곡차곡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이 책을 써나갈 때, 일단은 비상의 죄로부터 시작해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 때, 그는 차분하게 이 글의 구성을 하였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109쪽의 저 문장을 쓰다가 무너지지 않았을까, 다시 오열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답게, 무척이나 유려하게 이 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추슬렀던 감정이,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는 문장을 쓰면서, 폭발해버리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그가 아프게 이 글을 썼다는 거야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결국 저 문장에 이르서야 나는, 함께 엉엉 울고 싶어졌으니까. 극도의 사랑 앞에서 그렇듯 극도의 고통 앞에서 역시,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굉장히 단순하다. 네가 가버리고 난 뒤, 그 자리는 너무나 크다. 이것만큼 상실의 고통을 잘 표현할 만한 말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내를 잃은 그에게 친구들이 건네는 위로는 대체적으로 다 쓸모가 없다. 그는 자신 나름의 기준으로 그들을 친구명단에서 제외시킨다. 그는 지금 아내를 잃기 전과는 다르니까. 비탄에 빠져 있으니까. 그들이 위로라고 건넨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 앞에서 조심하려는 걸 알지만, 그에겐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하물며 무신론자인 그가, 종교적 위로 앞에 어떻게 감사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기독교도 중 한 사람에게 아내가 중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내 아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나는 마다하지는 않았지만 충격적이게도 곧바로, 얼마간은 씁쓸한 태도로 그의 하느님이 크게 소용이 된 적은 없엇던 것 같다고 일러주고 말았다. 그는 대답했다.

"아내 분이 훨신 더 고통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나는 생각했다. 아, 그 정도가 당신의 핏기 없는 갈릴리 남자와 그의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거군? (p.155)  




하물며, 그녀와의 헤어짐이 우주의 할 일이라고 한들, 그가 우주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우주가 제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들, 그것은 그저 그 자신을 위로하기위한 수단에 다름아닌가 말이다.




나는 차를 운전해 병원에서 집까지 다녔는데, 철도교가 나타나기 직전의 어느 길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나는 소리 내어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하곤 했다.

"이건 그냥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바로 '이것', 이토록 거대하고 강렬한 '이것'이 '모든 것'의 이유일 뿐이었다. 그 말엔 어떤 위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말은 가짜 위안에 저항하는 대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가 다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면 우주 자신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터이니, 우주 따윈 될 대로 되라지.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p.121-122)




결국 그가 잃은 건, 종교보다 큰 무엇, 우주 따위보다 더 대단한 무엇이었음을, 그의 큰 고통을 담은 잔잔한 고백 앞에 깨닫는다. 섣부른 위로가 고통에 빠진 사람에게 얼마나 무용한가를 깨닫는다. 어설픈 격려의 말이 그들에게 닿을 수가 없다는 사실도 역시 깨닫는다. 나는 그에게 섣부른 위로 대신, 어설픈 격려의 말 대신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보지만, 설사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을 시도해봤자 그것이 그에게도 좋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다. 어쩌면 나는 그저 먼 곳의 그의 독자임을 스스로 다행히 여겨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줄리언 반스의 책은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어본 게 전부이고, 그 두 권은 모두 내게 그렇게 크게 재미있거나 좋진 않았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그 두 권을 합친것보다 더 좋다. 이 책이라면, 한 번 더 읽어도 좋겠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p.11)는 그의 말을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어쩌면 하나인 적 없었던 두 가지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악몽에 시달리고난 아침,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누군가와 함께 되짚을 추억을 만들어내는 걸 고대하는 삶은, 마치 줄리언 반스의 글처럼 근사할 수도 있겠다. 그의 고통 앞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가 명치를 맞은 듯이 충격을 받은 건 단연코 지구가 솟아오르는 광경이었다‥‥‥우리는 우리가 살고있는 행성을, 우리가 진화한 곳을 되돌아본 것이었다. 거칠고 우툴두툴하고 낡아빠진데다 따분하기까지 한 달 표면에 비하면 우리의 지구는 참으로 알록달록하고 예쁘고 섬세했다. 아마도 거기 있었던 우리 모두는 달을 보려고 386242.56킬로미터나 왔는데, 정작 절대 놓쳐선 안 될 장관이 지구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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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08-1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의 소설에서는.. (화자가) 몰래 감쳐둔 감정 같은 것을 불현듯, 일순간에 느낄 때가 꼭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그 일순간에 느낄 감정에 대해 제가 이미 너무 준비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요..

다락방 2014-08-14 10:10   좋아요 0 | URL
저는 줄리언 반스의 매력을 이 책에서 처음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미 팔아버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봐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 뭡니까. 저는 그게 그렇게 좋진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좋습니다, 드림아웃님. 드림아웃님도 읽어보시면 참 좋아하실 것 같아요. 차분하고 매력적인 글이에요. 천천히 읽기에 참 좋은 글입니다.

몰래 감쳐둔 감정을 불현듯 느낄 때, 그걸 제가 이 책에서 느꼈네요.

2014-08-18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8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봐봐 2014-08-1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말 좀 들어봐, 를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내 말 좀 들어봐,를 읽고 줄리안 반즈의 팬이 되어 이후 플로베르의 앵무새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로 읽었죠.

다락방의 포스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덧글은 첨) 독자인데, 분명히 그 책을 좋아하시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4-08-18 18:01   좋아요 0 | URL
댓글 읽자마자 후다닥 <내 말 좀 들어봐>를 검색했는데요, 봐봐님, 이게 품절이네요? ㅜㅜ 그래서 알라딘중고알림등록 신청해두었습니다. 중고 등록 문자 오는대로 후다닥 결제해서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궁금하네요.
추천 고맙습니다!
:)

봐봐 2014-08-22 17: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하.. 중고도 없다니.. 제 책이라도 빌려드리고 싶네요.

택배로 빌려드릴까요? ^______^

다락방 2014-08-25 14:11   좋아요 0 | URL
ㅎㅎ 중고알림등록 해두었으니 문자오기를 기다려보겠습니다~~
 
혼불 1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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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직장에 다니던 그때. 내가 일하던 부서의 팀장은 여자였다. 나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여자. 어떤 대화중에 나는 '무섭다' , '겁난다'는 등의 단어를 내뱉게 됐는데, 그 때 팀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덩치는 산(mountain)만한 애가 왜 그리 겁이 많니?"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너무 기분이 나빴는데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체 덩치가 크다고 겁이 없어야 된다는 건 무슨 개같은 말인가. 덩치가 커도 겁날 수 있고 덩치가 커도 아플 수 있다. 덩치가 커도 슬픔을 느끼고, 덩치가 커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도 한다. 그 날 그 말을 듣고 나는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술과 안주가 놓여진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니네, 나만한 산 본 적 있냐?"

 

분노는 곧 웃음으로 바뀌어 우리는 그날 나의 말에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산보다는 작거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에서의 올리브도 덩치가 컸고, '천명관'의 《고래》에서 '춘희'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의 여자도 덩치가 컸지. 그러나 이렇게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소설속에서 덩치 큰 여자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작고 가냘프거나, 안작아도 말랐거나, 마르지 않으면 육감적으로 통통하거나 아름답다. 그런데 이 혼불에서, 아아, 나는 또 만나고야 만것이다. 덩치가 큰 여자를! 나는 덩치 큰 이 여자에게 순간적으로 공감이 되어 부들부들 떨리고야 말았다. 그녀가 시집간 첫날, 그녀의 덩치에 겁을 먹은 신랑이 그녀와 첫날밤을 치르지도 않기 때문에. 아니, 겁을 먹긴 대체 왜 먹어. 너 그럴래, 응?

 

 

밤이 깊을 대로 깊은 모양이다.

그러나 방안의 두 사람은 아직도 말이 없다.

오직 밀촛불만이 촛대 앞에 놓인 작은 술상과 그 술상 위의 흰 술병, 술잔, 그리고 밤, 대추, 등을 비추면서, 신부의 등뒤로 펼쳐진 백수백복(百壽百福) 병풍에 그네의 그림자를 드리워 주고 있다.

신랑 강모(康模)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림자처럼 앉아 있기만 한다.

얼마 동안이나 지금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일까.

(크다 ‥‥‥.) (p.26)

 

 

강모는 그네가 태산 같기만 하다. (p.28)

 

 

아...슬퍼..슬프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물론 강모가 단순히 그녀의 덩치때문에 그녀랑 잠을 자지 않은 건 아니다. 강모의 마음속엔 이미 강실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실이 역시 수줍고 여리여리한 처자가 아닌가. 왜 가슴속에 여리여리한 여자를 품고 태산같은-정말 태산 같을 리가 없잖아!- 여자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는가. 이 태산만큼 큰 여자는 분하다. 자신이라고 이 어린 소년을 신랑으로 두고 싶었던 게 아닌데. 그런데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다니. 그녀는 첫날밤 신랑이 풀어주지 않은 옷고름을 자신이 스스로 푼다.

 

 

두 손으로 발을 감싸며 주무른 뒤, 그네는 다시 새 버선을 챙긴다.

초록 저고리와 붉은 치마로 갈아입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큰비녀를 뽑더니 머리를 풀어 내린다.

숱이 많고 칠흑 같은 머리채다.

그네는 잠시 그러고 앉아만 있다.

네가 나를 어찌 알고 ‥‥‥나를. (p.41)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때가 시대적 배경인데, 나는 현재가 아닌 아주 오래전의 배경을 접하게 되면 그저 막막해진다. 만약 내가 그때 태어났다면 어떤 역할이었을까, 그 신분제 사회에서 나는 어떤 신분으로 살아갔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양반이었을까? 내가 양반이었다면 하인을 막대하는 그런 양반이었을까? 나는 노비였을까? 누군가의 몸종이 되어 종종걸음치며 시키는대로 일하는 몸종이었을까? 만약 내가 몸종이었다면 그것을 현실이라 받아들이며 묵묵히 일했을까, 아니면 신분제는 인간에게 옳은 게 아니라며 이를 가는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결혼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신랑으로 맞이해 내 옷고름을 풀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런 삶이라니? 게다가 이 책에도 여러차례 등장하지만, 남편하고 몇 번 만나지도 못한 상황에서 청상과부가 된다면? 심지어 이 책에는 죽은 남편을 따라 자결해 열녀라 칭송되며 열녀문까지 받게 된 여자도 등장하는데, 와, 지금의 나는 대체 그 열녀가 뭔가 싶은거다. 아니, 열녀가 뭐라고, 남편이 죽었다고 내 삶까지 포기해야 하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삶을, 대체 왜 그들은 칭송했던걸까? 결국은 그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은 열녀 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된걸까?

 

 

물론 이 책에도 열녀를 칭송하기 보다는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 하는 여자도 나온다. 내가 왜 남편 따라 죽냐? 안그러겠다! 하는 여자.

 

"허엉. 열녀? 니가 멋으로 열녀를 했능가는 모리겄다마느은, 너도 참말로 불쌍헌 헛세상을 살다가 갔다. 인생이 한번 왔다가 죽고 말먼 그거뿐인디 어디 눈에 맞는 머심 등짝에라도 엡헤서 밤도망을 갔다먼 또 말도 않겄다. 속저없이 죽어간 것은 누구 보라고 헌 짓이냐고오. 너도 매급시 넘으 비우 맞출라고 애간장 녹게 아까운 목심을 덜컥, 끊었겄지마는, 그거이 무신 지랄이냐. 나는 지발도 먼저 죽은 서방 따러 죽었다고 누가 열녀라고 해 주도 않지마는, 내가 죽도 안헌다. 내가 왜 죽겄냐. 나느은 살란다아. 나는 살라안다아." (p.268)

 

 

열녀가 숭고하다 칭송받았을지언정, 나는 이렇게 말하는 옹구네에게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옹구네, 당신 말이 맞소. 삽시다. 우린 살아갑시다!

 

 

 

혼례잔치의 음식들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해서 이 책은 재미있다. 1권만 우선 구입했다가 2,3권을 내처 구입할만큼 재미있다. 게다가 진득한 사투리의 대화는 어쩐지 따라해보고 싶어져서, 지하철안에서도 나는 입을 들썩이며 속으로 읽으며 따라해보는 것이다. 또한, 창씨개명에 대해 양반인 청암부인이 분노를 하는 것을 당연히 이해했지만, 상놈인 남자가 창씨개명이든 뭐든 우리가 언제는 인간답게 살았던가, 하고 한탄할 적에는, 아, 이름을 바꾸라는 것만이 모욕적인 게 아니구나, 하는 뒤늦은 생각도 했다. 창씨 개명이 억울하고 분한 까닭은 내가 지켜야 할 이름이나 성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애초에 지킬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분노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건 아닌가. 그들이 체념했다고 그들을 원망할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이 분노는 슬픔이다. 분노와 슬픔은 한끗차이다.

 

 

"아, 창씬가 머인가 허능 것도 그렇제, 우리덜 쌍놈이 머 언지는 성씨 갖꼬 이름 갖꼬 살었간디요? 성짜가 있다고 빤듯이 써 볼 일이 있능교오, 이름짜가 있다고 어따 대고 떳떳허게 불러 볼 일이 있능교. 양반들이나 그렁 거 챙기제 우리가 멋 땀세 속이 상헌다요? 말이사 바로 말이제, 우리들 이름이랑 거이 맹랑허다고요. 달구새끼, 뒤야지, 퇴깽이 이름이나 머 매한가지 아닝교?" (p.250)

 

 

 

청암부인은 자꾸만 《토지》의 서희를 떠올리게 한다. 기개와 위엄이 그렇다. 이 책은 재미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토지 만큼은 아니다. 그러나 효원이 궁금하다. 그 큰 덩치로 남편과 합방한 적이 없는데 아들을 낳으라는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대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하고, 강실이를 품은채로 종가집의 종손인게 싫어 어디로든 도망가려는 강모의 삶도 어찌될지 궁금하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누군가의 삶을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퍽이나 흥미로운 일이며 고맙지만 간혹 미안하기도 하다.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고 해도, 사람 사는 건 어디나 같아, 그때나 지금이나 돈을 제대로 쓰는 부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는다. 책속의 오래전 사람들에게 나는 배우고 또 배운다. 이렇게 배우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또 살아간다.

 

 

 

 

 

 

문득 강실이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하기야 '문득'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네는 그저 습기처럼, 모습도 보이지 않으면서 무심코 느껴 보면 언제나 촉촉히 강모를 적시우고 있었으므로. (p.127)

"실제로는 어때? 토지 없는 농민이 대다수다. 실제로 땅바닥에 엎드려서 고개 들 날이 없는 사람은 제 땅이라고는 한 뼘도 없는데, 하얀 주먹 쥐고 앉아 소출을 고스란히 받아먹고 있는 몇몇 사람은 아무 일도 안하고 불로소득이야. 손가락 까딱 않고 앉은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재산이 얼만 줄 알어? 이게 모순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냐?"
강모가 무어라고 미처 하기도 전에 강태는 손바닥으로 밀어내듯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던진다.
"강모 너도 나면서부터 가진 게 너무 많아. 그러니 부르조아 맛이 너무 들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까?"
"형."
"그렇게 해서 자연히 인간 사회에 계급이 생길 수밖에.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심을 품고서 말야. 낡은 부르조아지 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이지. 있는 자는 없는 자를 경멸하고, 그러면서도 노동력을 착취한다. 반면에 없는 자는 있는 자를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생존을 위하여 노동력을 바친다. 이게 얼마나 야비하고 비굴한 상태냐. 이런 체제는 반드시‥‥‥무너져야 한다. 무너뜨려야 한다." (p.140-141)

"형이 가진 생각은, 혼자서 하게 된 건가요? 아니면 강호형‥‥‥."
"배우기도 하고 책도 읽지. 또 나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던 일들이기도 하고. 무릇 사상은, 제 속에 그런 소양이 있을 때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니까." (p.141-142)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 망했다 하지만, 내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비유하자면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p.155)

"네 말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 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ㅑ느니라. 백 섬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그보다 다른 또 어떤 몫이 있겠지. 우리 집은, 집이라도 그냥 집이 아니라 종가다. 장차로 내려온 핏줄만 가지고 종가라고 한다면, 그게 무에 그리 대단하겠느냐? 그 핏줄이 지닌 책임이 있는 게야. 장자란 누구냐? 아버지의 맞잡이가 되는 사람 아니냐? 아버지를 여의면 장자가 아버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장자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지. 그렇다면 그런 장자로만 이어져 내려온 종가란 문중의 장자인 셈이다. 어른인 게지. 어른 노릇처럼 어려운 게 어디 있겠느냐? 제대로 할라치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른 노릇이니라." (p.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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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11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4-08-1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올해 휴가때는 도서관에 딱 자리잡고
토지나 읽어볼까 생각중이에요.
과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2.저는 지극히 안정적인 '종형' 몸매의 소유자다 보니.
앉아 있을때와 서있을때가 차이가 많아
상대방들이 놀라곤 했어요.
이젠 뭐 태산에 가까워진 몸매라 놀랄일도 없지만서도... ㅠ..ㅠ



다락방 2014-08-11 16:23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토지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 실제 살아있는 인물들의 삶을 옆에서 보고 상세히 묘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게다가 캐릭터마다 어찌나 다른 성격들을 잘 살려냈는지! 휴가때 토지 도전, 응원합니다!!

저는 항아리 같은 몸인데 아무개님은 종 같은 몸 ^^

blanca 2014-08-1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이것 최명희 작가가 완간 못 하고 죽었잖아요. 마지막 대목에서 정말 너무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정말 눈물나는 소설... 다락방님이 읽는다니 제가 다 흥분되네요.

다락방 2014-08-11 16:37   좋아요 0 | URL
아...저는 완간을 하고 죽었다고 생각했는데..........그럼 10권까지 다 읽어도 결말은......모르는건가요? ㅜㅜ
안그래도 섬사이님의 5권 페이퍼 읽고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효원이는 어떻게 될지, 강모는 어떻게 될지...하아-

무스탕 2014-08-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옛날에 읽었는데, 지금 집에도 구판으로 다 있는데 내용이 생각이 안나요 ㅠㅠ
강모는 생각나고 강실이도 생각나고 청암부인도 생각나고 허약했던 남편도 생각나는데 내용이 생각이 안나요 ㅠㅠ

다락방 2014-08-13 11:43   좋아요 0 | URL
저는 2권 시작했다가 지금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제가 줄거리를 말씀드릴 순 없지만, 여튼, 저는 강모 스타일이 질색팔색입니다. 남자가 너무 유약해요. 흥!!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