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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Mr. Know 세계문학 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1942년 59세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제하의 우리 민족만큼이나 절망적 상황의 민족 현실을 산 그리스인이었다. 그에게 [신, 그 이후]의 삶에서 희망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무릇 신이란 진심으로 믿어마지 않는 그 무엇이지 않은가? 그가 신을 버린 이유는 신의 존재와 도덕의 가치를 어떤 이익 집단의 것, 인간의 자기 이익을 위한 부산물로 바라보게 하는 시대를 산 때문이다. 베르그송이 그러했고 그 뿌리에 놓인 니체가 그러했다.
신이 떠난 자리에 인간이 채워넣을 수 있는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첫째는 이성이다. 이성의 신격화된 존재인 진리 혹은 우주정신. 이것이 파생시키는 삶은 금욕과 무욕, 공허를 붙잡고 나락을 응시하며 마음 속에서 나락을 모두 품고 뛰어내리는 삶이다. 힌두적 정신이며 헬레니즘이며 스토아이고 다시 부처이며 무신론적 실존이기도 하다.
둘째는 인간자신이다. 인간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가치를 알고 있다. 다수의 행복, 혹은 적극적 소극적 쾌락들. 먹고 마시고 잠자고 일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 인간의 목적적 추구.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되며 가치의 창조자가 되며 땅의 영원한 주인으로 선다. 이것은 다시 니체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니체와 베르그송의 영향 아래 있는 자유의 갈망과 탈윤리의 몸부림. 부처의 세계에 대한 부정, 절망에 의한 에피쿠로스적 쾌락으로의 회귀이다. 먹고 마시고 지치게 하고 마음껏 뿜어내는 것, 이성을 버리고 떠나는 세계. 카잔차키스는 이런 에피쿠로스와 베르그송의 머리 속에 든 것을 개념인 아닌 한 인간으로 표출하여 낸다. 상점 주인 같은 이성은 사람에게 기쁨과 벅참보다는 정죄와 억눌림, 잔임함과 궤변만을 만들고 인간이 인간되지 못하게 했기에, 이제 다른 선택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인간에게 득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선이 되는 촛불 한 개를 밝힌 어두움인 삶.
그리고 지난 60년, 이 이미지는 한 흐름으로 실체가 되어 이제 내 속에 한 모습으로 살아있다. Imagine there is no heaven. 이 매혹적 세계관의 실험은 히피라는 마약과 난혼의 극단적 형태의 문화를 거쳐 성적 해방과 결혼이라는 약속의 약화, 가정의 해체, 유럽과 남북미, 그리고 일본의 문화적 코드로 우리에게까지 삼투되어 들어왔다. 실험은 진행중이고 유혹은 점점더 강렬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각 사람은 여전히 쾌락과 스토아, 또는 그리스도 앞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