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 전집 대산세계문학총서 38
도연명 지음, 이치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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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시절 또래들과 일주일을 숙식을 같이하며 지낸 수련회 같은 것이 있었다. 나누어준 [국가에 대한 충성]에 대한 글들도 잘 암기하던 똑똑한 상위그룹 학생들이었고, 말도 통할 것 같은 성숙한 아이들이라 다 같이 10여명이 모였을 때, 사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무슨 그런 생뚱맞은 질문이냐는 반응들에 어영부영 질문을 거둬들였다.나이가 더 들고, 서로 더 많은 인생경험을 하고나면 이 질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까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도연명은 인생이란 의미를 찾아야하는 것으로 여기고 산 사람이다. 중국 5세기무렵인 동진시대를 살며 그는 지위, 출세, 명예라는 것, 또 그에 따라오는 약간의 풍족함이 얼마나  삶을 망가뜨리는 것인지 알았다. 마흔의 나이에 팽택이라는 고을의 수령으로 있을 때, 군에서 내려온 감찰관인 독우가 오자, 마을 관리들이 독우를 정중히 맞으러 나가야한다고 하자 "내가 다섯말 쌀 때문에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까지 굽혀 맞을까" 하고 그만 두고 낙향하며 [귀거래사]를 짓는다.[정신을 육체의 종으로 삼아 살아왔다. 슬퍼할 것이 아니다. 지난일을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살 길을 따르리.]

그에게 인생은 죽고나면 아무 의미없는 것이었다.이름을 얻기위해, 필요없는 부귀나 부러움을 얻기 위해 낭비할 순 없었다. 그는 삶에 충실하고 마음껏 누리고 깊이 젖어들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에게 인생의 의미는 안빈낙도의 삶을 살다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이었다. 사물과 하나되는 경지의 평안함과 자기손으로 경작하여 먹고사는 단순함이 그의 기쁨이고 삶의 목표였다.

참 지혜로운 삶을 산 사람이다. 돈이나 건강, 성공,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인생을 파는 것을 어리석다고 여겼다. 그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처럼 보였지만 그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목표없이 살며 재능을 낭비하는 삶처럼 보였지만 그의 재능은 그의 빈곤한 삶 속에서 오히려 더욱 아름답게 꽃피었다. 현실에 무관심해 보였지만, 자연의 한 순간, 평범한 이웃과 친구들과의 만남의 한 순간도 충만히 느끼고 즐거워하고 표현해낼 수 있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로서 사는 것. 자기의 독특성과 한계를 알고 자기의 것만으로 꽃피어내는 것. 그것이 지혜였다.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은 가벼움, 실용주의, 요행이라고 말한다. 진지함은 웃음거리로만 등장하고, 의미가 있다는 말은 [화폐가치]와 동의어가 됐다. 부와 오락과 자식만이 성공한 인생이라면 결국 성공은 요행에 달린 셈이 된다. 돈 많은 부모에게 난 것. 운 좋게 투자한 것. 눈치를 타고난 것은 운수일 뿐이다. 도연명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살고 죽는다는 것의 진지함과 인간의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와 그 인간이 꽃피기 위해 하루하루의 땀으로 경작해야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난에도 견디고 농사일 이야길 이웃들과 주고받고, 자기의 시를 가다듬어 친구에게 보내던 아름다운 사람. 그를 술이나 풍류, 재능을 즐기는자로만 알고있던 나는 얼마나 천박한가.

나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산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무한한 무게와 영원한 의미와 궁극적 목적에 따라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삶은 오늘도 즉물적이고, 주위의 평가에 쓸려다니며,  하루하루를 우왕좌왕하며 산다. 도연명은 나에게 순간순간을 충실히 흡수하며 살것을 가르친다. 고요함과 욕심을 버리는 것과 자신을 소중히 여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도 사실 보이는 하찮은 순간순간이 모여서 다다른다. 생각할수록 참 놀라운 일이다. 보이는 순간을 흘려 보내며 보이지 않는 인간다움을 어찌 이루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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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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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경기도 광주에서, 진주 목사를 지낸 부친 정재원(丁載遠)과 둘째 부인인 윤선도의 외손녀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 중 셋째 집안 전체로는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해 맏형수 경주 이씨와 서모 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매부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인물이며,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으로, 성호 이익(李瀷, 1629~1690)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 인물이었다. 1789년(정조 13)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여 10여년간 정조의 총애를 받아 요직을 지내던 그는,1800년 정조승하 후 정순왕후 김씨의 천주교 탄압령으로 시작된 신유박해시 노론의 정치적 공격으로 그의 친지, 친구, 형제들과 함께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정약용은 18년간(1801-1818)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그의 생애에 중요한 저술들을 남기게 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그 기간중 그가 아들, 형제,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문을 묶은 것으로, 정약용의 삶에 대한 태도, 학문적 열의, 처세살이, 글쓰기의 기본 등에 대한 그의 개인적이고 독특한 관점들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배후의 다시 18년의 여생에도 그의 이런 태도는 남아있어 정약용의 40세 이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 아들에게는 효제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친척들에게 도리를 다하고.  저술과 학문에 애쓰길 격려하며, 옳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현명함을 가르친다. 집안의 교훈으로는 임금의 총애 아닌 존경 받으라. 경전에 대한 책을 우선하라. 시는 기상을 띠어야한다.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니 시골로 가지마라.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 습관이 있어야 사람들이 그 글을 눈여겨본다. 근면하고 검소하라. 옛 어른의 장점을 본받으라.  마음 넓음의 기본은 용서이며  일희일비 말고 재해에도 청운의 뜻 꺽지마라.  알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하지를 말고, 듣지 못하게 하려는 말은 하지를 말라.생계를 꾸릴 때도 사대부답게 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형제에게는 그가 새롭게 깨닫거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소소한 이야기들과 역술과 도법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며 제자들에게는 대체를 기르면 대인이 됨. 큰것 아끼면 큰 이익이 없고, 작은 것 헤프면 헛되이 낭비한다.근면하고 검소하라. 과거를 통해 벼슬에 나아가 백성을 다스림에 밝음,위엄,강직으로하며 봉록과 지위를 헌신처럼 여김. 30까지 과거 이루지 못하면 학문에 전념. 양식을 걱정치말고 가난을 근심마라. 문장이란 학식이 속에 쌓여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문장은 나무에 피는 꽃과 같다.경전과 예로 나무를 기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의 이런 가르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와닿는 글이 되는 까닭은 그가 겪은 유배의 시절이 도리어 인간의 인간다움에 더 많은 시간과 생각을 보낼 수 있게 한 덕분이며, 그런 상황에서도 의미라는 것이 외부와 흐름과 지위가 아닌 사람됨에 있음을 놓치지 않았던 점에 정약용의 훌륭한 업적들의 양과 질이 나오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는 너무 바쁘고 얄팍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동인이겠지만, 허접한 동기들이 더 많이 나를 이끌어 갈때도 많다. 정약용의 삶은 다시 한번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막아두었던 물만이 지표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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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의 조카
드니 디드로 지음, 황현산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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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까지는 아직 1-20년의 세월이 남았다. 혁명의 기운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때에 권력자들은 프랑스가 이루어낸 온갖 부귀를 그들만의 것으로 호사하고 있다. 끼워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이란 서로를 멸시치 않고 사는 삶이 아니던가?  힘이 없다면 굴복밖에는 없나? 혹은 깐죽거리는 저항법도 있다. 깐죽거리는 것도 하나의 권력으로 만들어가는 슬픈 천재도 있지만. 볼테르...힘이 없다고 뭉개려드는 사람들과 사는 일도 힘들고, 힘있는 자와 맞서는걸 목적으로하지 바꾸려는 세상이 없는 사람들도 역겹다. 

원래의 인간다움이란 분명 전제군주하의 인간과 다르다. [예측이 가능한 인간]이 되어야만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형태로 살라는 것이다.그래서 라모의 조카는 [마지 못해 그리 삽니다. 서로 모른 척 합시다.]라고 한다. 이것이 전제군주하의 구겨져 맞추어진 인간이다. 라모의 조카의 입을 통해, 철학자라는 부류는 비렁뱅이 세속인과 다른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비렁뱅이 세속인인 그들은 자기를 억압하는 세상에서의 삶을 영위하려한다. 그것이 잘못인가? 결국 문화의 향유자라는 귀족과 그 반대자인 지식인의 틈새에서,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나 실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가진 존재.  실패한 디드로 또는 다른 디드로가 바로 라모다.

이런 세상이 바뀔거라 진짜 믿는다면, 그 세상은 이 사람들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죄인도 위한 천국이어야한다. 볼테르 너는 믿지 않잖아. 새 세상을.  우리는 새 세상을 믿는가? 진짜 올 세상을 굴복도 반대로서의 권력도 아닌 죄인이 행복한 세상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자들 너희도 결국 공범이다. 너희가 새 세상을 믿지 않는 이상..  만들어진 사회 속에서 신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인생이라고 생각한 유물론적 이해는 결국 그 권력자들에 대한 비난이었으나, 동시에 자신에 대한 근거상실이기도 하다.그들은 새 세상을 자신의 비판 속에 잃었다. 디드로는 루소와도 달리 불평등의 세상에서 기원의 추구가 아닌 지금 살림살이의 복잡다단함에 대한 동정과 끌어안음. 편가르기가 아닌 그들을 포함한 희생자를 위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 꿈이 이루기까지 어찌 살아갈까? 그렇다고 비벼대지도 못하고, 이런 것이 옳음이라고 지키면 이기는걸까? 그것이 과연 인민을 아우르는 정직한 고난의 행군인가? 결국 잘난 인간이란 없다. 하지만 고통을 준 이들에 대한 기억은 남겨두어야 한다. 힘, 조작, 떨거지,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예술가들. 그들과 대비된 모습이 부정적으로 우리의 살아야하는 삶을 알게 해 주는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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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7
손무 지음, 유재주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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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들어오던 책이다. 왠 병법이라 할지 모르지만, 처세술의 한 방법으로 많이 인용된 까닭에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책이다.  

이 책의 독자로 가장 충실했던 사람을 든다면 단연 모택동과 이순신, 그리고 여러 삼국지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전략과 군대 운용술은 충실이 이 병법을 따른다. 이런 군대 운용의 최대 피해자가 국민당과 일본 수군이된 것도 이런 이론적 기반위에 변화무쌍한 자기들만의 변칙을 응용한 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네 삶이라는 것조차도 병법의 눈으로 보는 시대를 산다. 처세는 전쟁과 맞먹는 살육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듯 느껴진다. 그 까닭은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웃이 친구가 아닌 적으로, 친구가 같은 편이 아닌 잠재적 약탈자로 여기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병법이 일상에 필요하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나보다. 

이것은 사실 성공과 인간됨을 바꾸는 위험한 거래라는사실을 우리는 잘 눈치채지 못한다. 병법을 경쟁 상대를 꺽기 위해 사용하고 상대를 무기력화하여 나의 뜻대로 일을 관철시키는데 쓰자면 좋은 응용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그렇게 사람들에게 응용하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에게는 지는 일임에 틀림없다. 내 욕망과 내 성공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려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신의 인간됨의 가장 고귀하고 더럽혀서는 안 될 부분을 팔아넘기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식 표현으론 [세상을 얻고 영혼을 팔았다는 것이 이것을 말한다.]이다. 

우리의 삶을 전쟁으로 보아서는 안되는 까닭은 상대가 나를 이용하고 나를 꺽어 자기에게 무릎 꿇게 만들려고 하는 상황에서조차, 그것을 피할 방법과 양보할 여지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그래 전쟁이다]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동물적인 것으로 만들어 싸움을 건 상대와 자신을 모두 불행으로 몰아넣는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말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쟁조차 손자의 표현대로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빨리 끝내어 이익이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를 물고 뜯고 사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둘다 모두 사는 방법이 있길 바라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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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빅
필립 K. 딕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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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리학시간에 배운 인류가 원하는 두 가지  궁극적 약물은 만병통치약과 부작용 없는 마약이다. 인간은 통제를 원하는 존재이며 그 통제의 소망의 끝에는 자신의 생명과 감각에 대한 통제가 있다.  생명을 연장하며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지 않고 자기 손으로 쾌락을 유도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고작 이 정도의 수준이다. 1966년 출판된 이 책은 필 딕의 개인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히피와 마약의 시대에 씌여진 것이다. 마약이 통제하는 감각의 세계에서 누구나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인간 조건 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한 시대였다.

인간이 생명까지를 통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감각과 생명을 통제한 상황에서 또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1960년대에서 바라본 1990년대는 드디어 인간의 생명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연장하여 조절할 수 있게 되는 시대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 대한 기계론적 이해에 근거한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도 컴퓨터 바이러스가 침범하거나 방어해야 하는 기계처럼 하나의 기제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기계론적 정신의 획득은 인간의 정신을 죽음의 생체적 한계에서 얼려 보관하는 형태로 붙잡아 둘 수 있게 만든다. 인간은 다시 불행하다. 정신을 지켜야하고 침입자로부터 지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하고 다시 이것을 위한 노동을 해야만 한다. 마약 때와 동일한 쳇바퀴 돌기다. 인간은 하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번거로운 일만 늘어난다. 더욱이 정신을 기계론적으로 파악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간은 타인의 정신을 조작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 생명을 정신의 보존으로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겨우 생명과 정신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이 산업 역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소모되어가는 생명을 청소하고, 새로 들어오는 사체를 수용할 능력을 높혀 가동률을 올려야만 한다.

딕이 이야기하는 미래 세계의 감각의 통제나 생명의 통제도 인간 조건을 바꾸지는 못한다. 무엇이 인간을 이렇게 가두어두고 있는가? 구원의 방법은 없는가? 필립 딕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끊임없이 구원의 문제에 천착한다. 그가 보는 인간의 구원은 시간을 벗어나는 것, 혹은 선한 의지의 대물림으로 후손에게로부터 올 구원자에 있다. 그렇다면 선한 의지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나 있는가? 유빅(Ubik)은 세상을 떠받히고 역행(엔트로피의 증가)을 통제하고 있다. 유빅은 선한 의지에 의해 지속된다. 유빅은 어딘가 있고 어디나 있다.

이제 인간은 유빅(선한 의지의 산물, 생명의 근원)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해질 것인가? 사실 우리는 필립 딕이 이야기하는 유빅에 의해 지탱되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유빅에 의해 생존하면서도 불만뿐 인 것이 우리 스스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조건인지 모른다. 우리의 이 악한 힘은 은밀히 방치되면 죽음 혹은 소멸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유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래된 거짓말이다.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 유빅은 아무런 요구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소유하기 위한 삶이 아닌, 이웃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울 때 유빅은 어딘가 있고 어디나 있을 것라는 구원자의 말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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