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모세.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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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대심문관)은 죄수(예수)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쓰리고 무서운 말이라도 상관없었다. 갑자기 죄수는 침묵 속에서 노인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핏기 없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입술도 떨리고 있었다. 노인은 문으로 다가가 그것을 열어젖히고는 말했다. "가버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마... 다시는 말이야!" 그리고 그는 죄수가 도시의 어둠 속으로 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에 나오는 이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당한 이후 현재까지 여전히 그 분을 십자가상에 다시 못박히게 만드는 종교인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2000여년전 그의 가르침에 열광했던 군중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선동(?)에 휩쓸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고, 메시야를 그리도 갈망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냉정하게 그를 십자가상으로 보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하지만 더 아이러니 한 것은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신자들마저도 2000여년 동안 당시의 유대인인이나 종교지도자들이 행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대심문관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지 않을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카톨릭이나 기독교의 모든 모습이 그러하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결국 종교화 되고 의식화 되어버린 종교는 또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 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종교재판이 행해지고 박해가 이루어지는 곳에 나타난 예수님을 감옥에 가둔 노회한 대심문관은 눈앞의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예수님이 깨우치고자 하는 사람들이란 예수님이 가르친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보다는 기적과 권위와 신비로 포장된 교회가 제공하는 평안에 몸을 맡기고 기꺼이 자유를 저당잡히고자 하는 존재들일 뿐이며, 그들을 위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교회라는 제도 속에서 제공되는 안전이,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에 대한 꿈과 함께 두려움이라는 짐마저 함께 지도록 만드는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훨씬 정당하고 적절하게 어울린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쳤던 그러한 자유보다는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기적과 신비, 권위라는 근간위에 세워진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양도하고 그 안에서 오히려 평안함을 느끼는 군중들과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인도하지만, 결국은 껍데기만 남은 종교가 진짜 예수님을 거부하는 모습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힐난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재의 종교인들에게도 유효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가에서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프롤로그의 대심문관이 말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도 당혹스럽게 했던 예수님이 가르치고자했던 자유가 무엇인지를 좀더 명확하게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준 첫번째 가르침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두번째 가르침은 영적인 삶의 내재화와 인식의 자유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인의 결혼생활에 대한 언급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냈다는 것으로 연결되며. 결국 예수님이 '인간의 마음속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자의 사랑을 주러 온 자' 즉 그리스도라는 점진적인 드러냄을 통해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에 베풀어주시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리심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종교적인 편견위에 자리잡은 신성한 장소, 과거에 얽매인 종교적인 시간, 성스러운 것과 불순한 것의 종교적인 구분,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민족만을 위하는 신으로 이해하는 시각에 대한 전복을 통해서, 기존의 종교가 가지고 있던 형식적이고 외적인 것들에 대한 기득권을 해체하고 영적인 삶과 내적인 자유에 대한 깨우침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하는 자유란 '...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유, 너무나 쉽게 충동에 휩쓸리게 하는 자유, 타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런 헛된 자유가 아니라.... 우리를 타인들에 대해 실제적으로 자율적이며 책임을 갖도록 만드는 내적인 자유이고.... 이러한 자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충만하게 실현되며.... 이 관계가 인간을 예속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바로 진리가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나아가 그리스도가 자유롭게 한다' 것과 연관지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롤로그의 대심문관 이야기와 에필로그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속에 담긴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가 책의 그 사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역사속에 기록된 예수, 평등과 개인의 자유, 여성의 해방, 사회정의, 비폭력과 용서 등을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윤리와 예수님의 영성에 대한 고찰,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의 종교로서 확립되어가는 과정, 박해받던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중세의 막강한 권력에 취해가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껍데기만 남기고 배반했던 사실들,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시작된 휴머니즘을 통한 그리스도의 정신의 부활, 탈종교화를 걷는 휴머니즘과 근대화의 과정 속에 형식은 지워졌지만 여러가지 형태의 내용으로 남아 있는 그리스도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대심문관 이야기와 명백히 대조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속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명확한 자각일 듯 합니다. 단지 종교화된 형식과 마음으로 후딱 읽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행간에 담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깨우침, 즉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가르침에 대한 각성과 그러한 처음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린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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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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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합리적이기에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기도 한 '호모 이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는 기존의 경제학이 설정한 이상적인 인간상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통 경제학은 그런 인간상을 설정하여 모든 경제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소시민적인 눈으로 보더라도 우리 자신의 모습은 그러한 이상적인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고, 지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경제학자들의 여러가지 가설과 설명들은 현실을 빗나가기 일쑤입니다. 이상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현실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의 간극에서 비롯된 차이가 그 이유의 하나이겠지만, 여전히 정통 경제학은 인간 행동에 담긴 비합리성을 설명해 내지는 못하거나 또는 그러한 비합리성을 고려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현실의 인간과 이상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 사이의 간극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들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행동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또는 그러한 내용을 담았다는 설명을 통해 시선을 끈 책들인데, 이 책에서는 '행태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소개되었고, 영어로는 모두 Behavioral economics이니 서로 다를 바 없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시간이 지나면 용어가 정리되겠지만, 서로 혼용되고 있는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면도 있습니다. 

 행태 경제학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기존의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지향하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상을 포기하고, 인간의 행동속에 담긴 비합리성, 또는 심리적인 요인들에 대한 고려를 담고 있다는 사실일 듯 합니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반드시 이득을 좇아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판단할 지 모르지만 현실의 인간은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직관을 따라 그리고 때로는 공정성이나 대의명분을 따라 판단을 달리하기도 하고 지극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행위의 본질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는 여러 실험결과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하기에 행태 경제학이 말하는 여러 사실들 속에서 훨씬 우리의 모습과 닮은 친근한 인간상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36.5℃ 인간의 경제학'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바일 것입니다. 

 나의 기억으로는 기존의 행태(동) 경제학에 대한 소개서들은 거의 모두가 외국사람에 의해 씌여진 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자기 나름의 연구결과를 행태 경제학과 연관시켜 풀어낸 것도 있었지만,  대개가 기존의 행태 경제학의 연구 결과물들을 이 책처럼 나름대로 정리하여 소개하는 책들이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서로 겹치는 내용들도 상당하였고, 읽다보면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인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 분야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저자가 집필하기는 한 것이지만, 자신의 연구내용이 아닌 기존의 생태 경제학에 대한 소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도 이 분야에 정통하지 못하고 아직도 배워가고 있는 단계라는 의미에서 함께 읽고 관심을 가지자는 초대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경제학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지닌 경제학을 직접 소개하고 또한 그 안에서 더 나은 답을 찾아가고자 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행태 경제학이 말하는 휴리스틱, 닻내림효과, 부존효과. 틀짜기효과, 심적회계, 공정성에 대한 인간의 태도 등을 읽다보면 정말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처음 행태경제학에 대한 내용들을 접하면서는 합리성을 고집하는 정통 경제학의 도도함에 대한 시원스런 물세례를 넘어선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행태 경제학에 의해 더 많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제성향이 지적될수록 아마도 정통경제학은 그리 알려진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통합하기보다는, 그러한 비합리성을 합리적으로 제거한 더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창조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러한 모습이 과학 또는 학문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는지.....  하지만 지금은 시작이니, 아직은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만드는 따끈하게 데워진 인간의 경제학을 즐길때입니다. 미래의 언젠가는 이러한 따뜻함마저 과학과 경제학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제거되어버릴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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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생활 아이의 사생활 시리즈 1
EBS 아이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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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도 사생활이 있다는 표현은 아이도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말에는 동의하겠지만, 온전히 자율성을 인정해주어야 할 독립된 존재로서의 아이를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는 간섭할 수도 있고, 부모의 판단에 필요하다면 강제력-물리적인 힘이 아니더라도-을 동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양육의 과정에 있다는 면에서 그러한 생각들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제목의 '사생활'이라는 단어가 '아이'라는 단어와 어울려 있는 것이 무척이나 낯설어 보였습니다. 분명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의미가 우리가 타인의 개인적인 일들을 존중하듯이 아이도 그리 대해야 한다는 말을 아닐텐데..... 하지만 분명 지금까지 아이를 대하고 다루어오던 부모로서의 나의 자세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할 것들을 남기는 말입니다. 

 나의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는 의문속에는 단순히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것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라는 말속에는 미래에 아이가 행복하고 좀더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그리고 현재의 부모로서의 자신의 모습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다는 그러한 소망이 듬뿍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그 '어떻게'에 대한 해답으로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 주는 것, 예를 들면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는 더 많은 경험을 하도록 이끄는 것 등으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조기교육에, 그리고 아이의 나이가 들어가면 영재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도 그리 만들어 보고자 심혈을 기울이는 부모들이 상당합니다. 앞뒤 생각없이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리 따라가는 이들도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되집어서 '이런 삶을 아이는 행복해할까?' 또는 '정말로 이래야만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해 본다면, 결국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어떻게'라는 것이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이라고 또는 아이가 무엇인가를 하도록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한계일 듯 합니다.  

 이 책에도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대답들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부분에서 접근하고 양육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즉 두뇌의 발달과정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남자와 여자의 뇌의 차이를 통해서 남녀의 양육방식의 구별이 필요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중지능이론을 통해서는 아이마다 지닌 나름의 장점을 찾아 살려나가고 부족한 부분을 키워나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아이가 자라서 미래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키워가는 도덕성이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의 자아존중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는데, 이 또한 아이가 미래에 닥칠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낙관적이고 끈기있는,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원천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텔리비젼 프로그램을 통해서 관심을 끈 내용들인지라,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부모로서의 관심의 표현일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아이에게 해 줄 것만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결국은 우리 주위의 수많은 학원들처럼 또 다른 다중지능 배양학원, 정직성 기르기 과정, 자아 존중감을 키우는 학습지 등등의 우스운 변형들만을 만들어 내는 왜곡을 저지르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아이의 진정한 행복, 즉 아이가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미래를 밝게 헤쳐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말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들,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덧붙여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더더욱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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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랜드 -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의 임상 기록
폴 브록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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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르 루리야, 올리버 색스. 신경과학 중 특히 신경심리학이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이름입니다.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책 한두권 쯤은 읽었을 것이고, 책속에 담긴 여러 뇌손상이나 뇌질환으로 인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대하던 세상이나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소설같은 삶들을 대하였을 것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질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설같고, 한편으로는 소설같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 -우리 뇌를 들여다보며 그 신비함을 탐구했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나 카를 구스타프 융과 같은 이들이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정신병이나 신경증 등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 깊숙히 숨겨져 있던 심리학적인 문제들을 세상에 들춰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정신세계의 이해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것이 1세기하고도 조금더 전의 일이었는데, 아마도 지금의 신경과학자들이나 신경심리학자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뇌의 여러 질환과 증상들에 대한 임상증례들의 소개 속에도 그러한 경이로움과 영향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소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특이해서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거리에 머무는 것들이 아니라,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그랬듯이 그러한 증례들 속에는 우리의 존재나 자아, 의식, 그리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에 대한 연속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심오한 전망과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신경과학을 비롯한 뇌를 연구하는 여러 학문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상당히 낯선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뇌를 촬영하는 다양한 영상학적 진단방법 개발되어, 우리 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가능해지면서 신경심리학과 같은 학문분야가 훨씬 흥미로워지고, 그러한 흥미로움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이유일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루리야나 올리버 색스의 책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앓고 있는 질환과 증상들이 마냥 신기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두사람의 책은 실제 임상증례에 대한 3자로서의 객관적인 증상의 관찰과 그와 연관된 뇌의 이상 부위에 대한 설명의 형식이기에 그들의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도 그러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는 떨어져있는 타자로서의 더 객관화된 느낌을 가지기 바라볼 수 있었던 듯 합니다. 흥미롭과 관심을 끌지만, 내 자신의 문제, 내 등뒤에 지워져 있는 내 짐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의 불행한 질환 또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들리곤 하기에 그러한 질병과 함께 나타난 여러가지 증상들이 한 사람으로서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없이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의 두 사람의 책들과 이 책의 차이점이 분명해집니다.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도 대부분은 저자가 다루었던 환자들의 증례이겠지만,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나와 무관한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관점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을 저자 자신과 읽는 독자들까지도 자신의 일처럼 되뇌이게 만들고, 그러한 과정은 여러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부단히 나의 대답이나 생각을 묻곤 합니다.  

 저자는 책에 소개되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서, 단순히 특이한 증례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자신이 의도한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어제도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하고 내일도 존재할 '나'라는 사람이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근간이 되는 그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기억의 문제라면 잃어버린 기억과 시간속에 존재했던 나는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나를 나로 표현해 주는 자아란 무엇인가? 또한 의식이란 무엇인가? 머릿속 어디에 '나'라는 자아 또는 의식이 존재하는가? 등등 '나'와 자아, 의식과 영혼 등의 실체에 대한 질문들..... 아마도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던 생각거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릿속 어디를 뒤져보아도 마음이나 자아, 의식이라는 개념이 담겨있을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지...... 저자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마음이나 자아, 의식이나 영혼이라는 것은 '우리 뇌의 작동의 결과이고 우리 뇌가 물리적, 사회적 세계를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것들은 '과정과 상호작용에서 생겨난 것이지 구체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생각, 느낌, 의도 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 느낌, 의도 등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또는 내가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나를 말해준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 주고 있는 부분이 바로 '텔레포테이션과 복제인간'이라는 장에 담긴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자아란 무엇이고, 의식이나 영혼과 두뇌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등등..... 아마 저자는 자신의 환자와 학문이 다루는 영역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진지하게 던져보고 싶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 던지기는 앞으로 우리의 두뇌를 다루는 여러 학문들을 통해 우리가 대하게 될 미래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나'는 누구라는 질문이나 대답이 의미가 있을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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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권오길 지음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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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들에도 당연히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이들에게 당연시 되던 놀이나 활동이 이제는 부모 세대의 추억어린 기억에 지나지 않을 뿐, 지금의 아이들의 관심사는 컴퓨터와 게임기들에 훨씬 더 쏠려 있는 것도 그렇고, 어른들이 사무실에서나 집에서 일을 하고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서의 변화도 그런 측면의 하나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이고 상상과 꿈을 담을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우주가 그렇고, 좀 진부한 주제인 듯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인체가 그러하고, 또한 우리 뇌의 세계가 그러한 영역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것이 밝혀졌고, 많은 지식들이 새롭게 추가되었지만, 여전히 아는 것보다는 아직까지 모르는 것들이 더 많고, 알고 있는 것들도 우리가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훨씬 더 오묘하고 신비로움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몸 (인체)'에 대해서 살펴보자고 하면, 우선은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 몸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우쭐대며 나서지 않을까 합니다. 눈, 코, 귀, 입에 대해서, 몸을 싸고 있는 피부에 대해서, 그리고 심장과 폐, 콩팥과 내장에 대해서 나름대로 그동안 배운 지식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몸을 사용하며 이모저모로 다루어본 경험도 있으니, 그런대로 쓸만한 지식들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편적인 지식에 '왜?' 또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차례로 들이대면 이내 많은 부분에 대해 자신감보다는 머뭇거림과 머리를 긁적임이 앞서게 되고, 그리 망설이게 한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는 잊고 지냈던 우리 몸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세포에서 시작하여 우리 몸의 여러 감각기관과 폐, 심장(염통), 소화기관, 혈액과 순환계, 호르몬계, 신경계 등의 우리 몸의 각 구성 기관에 대한 구조와 기능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야기, 그리고 노화와 죽음, 유전과 진화, 약물과 중독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한 인체의 다양한 부분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한 생물학자가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대한 풍부한 생물학적인 정보를 담은 것입니다. 머리말에 언급되었듯이 부가적으로 여러 용어에 대한 한자와 영어의 사용을 통한 배려가 담겨 있고, 청소년들이 읽도록 내용을 다듬은 것도 있고, 전문적인 내용에 식상해하지 않도록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관련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사이사이에 첨가한 것도 있지만,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이루고 있는 여러 기관들에 대해서 세밀한 생물학적인 내용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그러한 면이 한편으로는 너무 전문적인 용어들과 내용들로 인해서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분명 우리 몸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신비함에 대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는 존재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밤 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보며, 아직도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가슴 뭉클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마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끝을 가늠하지 못한 광활함에 대한 경외로움, 그 안에 숨겨져 있을 많은 비밀스런 사실들에 대한 신비로움 등이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의 몸 -또는 세포-를 작은 우주라고 표현합니다. 과학적으로 많은 것들이 밝혀진 듯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이면, 여전히 그 안에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면 느끼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살아 숨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우리 몸이라는 작은 우주를 산책하기 위해 그려진 지도라고 표현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대강 그린 지도가 아니라 상당히 세밀하고 꼼꼼히 그린 지도요, 중간중간에 심심해지지 않도록 산책로 여기저기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를 들려주는 그런 알찬 안내서라고 해도 될 듯 합니다. 이 지도를 통해 많은 이들 -특히 청소년들이-이 그럴듯한 말장난이나 근거가 부족한 정보들을 과학적인 듯 포장하여 현혹하곤 하는 사이비 정보들을 걸러낼 수 있는 기초가 되고, 우리 몸에 대해서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이해하는 기회가 되고, 이 안에 담긴 지식과 정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산책로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키워가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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