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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
도시마 이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강호원 해제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실제 본인이 한 것인지 많은 의심을 받긴 하지만, 어렸을 때, 최영 장군의 전기 또는 그의 일생을 거론하는 이야기에 빠지지 않던 말입니다. 여기서 황금은 재물 또는 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옛이야기를 보면 '금은보화'라는 말로 부가 표현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광스러웠던 이스라엘 왕국을 대표하던 솔로몬 성전은 황금으로 기둥을 입혔고, 기타 여러 고대 유물이나 왕국의 번성을 이야기할 때, 금으로 만든 유물이나 금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거론되고는 합니다. 현대의 일반인들에게는 황금이 자신의 부에 대한 척도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돌잔치에 등장하는 반지나 여성들이 치장할 때 사용하는 장신구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겠지만, 여하튼 옛부터 황금은 부와 권력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지금의 의미로 말한다면 한 사회의 경제력 또는 번성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서는 금본위제에 의거한 화폐제도가 실시되면서 금은 말 그대로 경제의 중심 그 자체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서의 황금의 경제적인 의미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젠 자국의 화폐가치를 금에 연동시키는 금본위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어졌고, 흔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달러라는 강력한 기축통화가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세계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또한 그 흔들리는 틈새를 또 다른 통화인 유로나 엔, 위안화가 호시탐탐 노리며 세력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지금, 일반인들이 실생활에서 그 영향력을 느끼기에는 거리가 있지만 세계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금값 폭등이라는 소식이 그나마 아직까지 금이 우리의 경제에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최근의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를 돌파했다는 뉴스들같은 소식들이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는 금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었듯이 IMF 위기때 거국적으로 실시된 금모으기 행사를 통해서 모든 국민이 국가가 처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힘을 모았던 사건은 아마도 금이 가진 경제적인 가치를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몸으로 느끼게한 사건이었던 듯 합니다. 아이의 돌반지,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와 여러 장신구, 그리고 금으로 만든 치아 등등.... 물론 그 중에는 금으로 만든 돼지니 거북이니 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국민들의 장롱 구석에서 서랍에서 나온 금은 그런 형태의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고, 그것들이 모여서 -물론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컷을수도 있겠지만- 나라의 중대한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에도 여전히 황금이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에는 떠들썩하게 경제적인 부를 나타내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소리없이 강하다'는 어떤 차의 선전문구처럼 조용히 자신의 가치를 품고서 중요한 순간순간 내공을 보이고는 하는 황금..... 이 황금이 현대에 이르러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는 경제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중심내용입니다.
저자는 세계금협회 한일지역 대표로, 스위스 은행의 귀금속 딜러였고, 현재는 세계금협회에서 금에 대해 조사연구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 경력을 가진만큼 저자는 서문에서 금시장에는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동향이 응축되어 있는 '세계 정세을 투영하는 거울이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표현하면 달러나 다른 통화들의 가치변동, 원유나 기타 원자재, 또는 곡물 등의 상품 가격등에도 동일하게 표현될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2000여년간 경제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 오던 금에 대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분명 금에 필적할 만한 다른 것은 없다고해도 될 듯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금이 아직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화려한 매력이 있다거나 주식이나 기타 원자재처럼 현대적인 의미의 투자상품으로서의 일반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세를 발휘할 때는 뒤로 물러났다가 세계정세가 불안해질 때마다 그 중심에서 묵묵히 가치를 지닌 무게중심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곤 하던 시장에서 금이 가졌던 가치에 대한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한 사건들에 담긴 금의 경제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 독자들에게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즉 투자상품으로서의 매력을 지닌 황금, 또는 잘 투자하면 대박을 안겨줄 수 있는 황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금 가격 변동의 배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시 금이 통화의 기본으로 주목받는 이유, 그리고 금시장을 움직이는 세력들과 나라들이 누구이며, 앞으로 금시장에 영향을 끼칠만한 변수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여전히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금에 대해 그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고 하겠습니다.
인류가 '교환을 기반으로 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한 뒤 다른 물건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척도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금이, 달러가 시대를 풍미하던 시절에는 경제의 뒷전으로 어정쩡하게 밀려나 있다가 경제적인 위기시에나 겨우 자신의 존재가치를 조금 과시할 수 있었듯이, 앞으로도 세계정세의 변화나 각국의 정책방향에 따라 현재 치솟는 금의 가치가 예전처럼 곤두박질 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때 금본위제 시대에 누렸던 화려한 영광은 지금의 어느 나라도 과감하게 그러한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을 것이기에 다시 누리기는 어려운 과거의 기억일 뿐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안전자산'이라는 표현에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저자가 누차 강조하던 '유사시의 금'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금을 경제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차분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