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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법칙
이몬 버틀러 지음, 김명철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시장 (market)'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재래시장'이라는 표현에서처럼 물건이 거래되는 구체적인 장소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구체적인 장소를 나타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시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식시장' 또는 '주식시장이 강세다', '신흥국 시장' 또는 '선진 시장', '물건을 시장에 내놓는다',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 등등..... 오늘날에는 이러한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시장이 훨씬 더 귀에 익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의 울타리 안에 사는 우리들은 은연 중에 시장이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부분적으로나마 몸으로 체득하며 살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앞서가거나 따라가지 못해서 시장에서 물을 먹는(?) 경우들이 종종 있고, 말로 확실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체험적으로 시장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의 기억으로 경제에 대해서,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공존하는 시장경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마도 고교시절의 사회과목과 관련된 시간이 처음이었던 듯 합니다. 그 유명한 수요와 공급곡선에서 시작하여 '균형가격' 이론과 수요와 공급 탄력성 등에 대한 내용들을 머릿속에 차례로 구겨넣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어렴풋이나마 내 기억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하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시간이었고 시험을 위해 억지로 암기하는 고통스런 시간도 추가되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되돌아보면, 싱싱한 머릿속에 그러한 지식을 채우던 시간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은연중에 깨닫는 즐거움이 공존하던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이후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시장과 경제에 대해서 부분적인 지식과 경험들은 쌓았겠지만, 체계적이거나 깊이있게 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나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 듯도 합니다.
이 책의 원제가 'The Best Book on the Market'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생각한다면 저자가 상당히 '거시기'하게 제목을 붙였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책에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라고 하더라도 동양적인 사고에 젖은 내게는 과대망상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고, 말로 먼저 그렇게 허풍을 떠는 것이라면 실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책제목에 동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시장경제에 대해서 너무도 쉽게,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항들을 콕콕 짚어가며 들려주는 저자의 솜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시장경제에 대한 조각지식들이 멋지게 연결되고 정리되어 시장의 작동원리와 방법을 지금까지보다 훨씬 훌륭하게 이해하게 된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별다른 근거없이 시장에 대해서 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신감의 훌륭한 기초석 하나를 마련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중국 란저우의 뒷골목 시장에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 소녀를 통해 자신의 헤진 바짓단을 수선했던 멋진 경험에서 저자는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시장은 세상의 모든 곳에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그러한 시장이란 어떤 세계인지, 시장이 발전하고 부를 생산하는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시장에서 가격의 역할이 무엇이며, 시장의 정교한 메시지를 교란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시장에서 경쟁이 어떤 결과는 가져오는지, 시장에서의 규칙과 윤리는 어떤 것이며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요인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장은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마주 익숙한 재료를 요리하듯이 이리저리 뒤적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의 이야기에 몰두하다보면 시장경제에 대한 중요한 토대들을 이내 익히고 즐기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됩니다. 책표지에 적힌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아주 실용적인 길잡이'라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고교시절 어려운 용어들 속에서 억지로 알려고 했던 내용의 중요한 요점이 이 책에서는 하나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린 학생들로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시장경제에 대한 훌륭한 소개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The Best Book on the Market'이라는 제목이 결코 과장된 자신감이나 실없는 허풍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고 동의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확고히 믿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