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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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과 외로움.... 이러한 시간들이 낭만이 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듯 합니다. 물질적으로 그렇게 풍요롭지는 않았을지로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삶에 여유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기억입니다. 언제 어디서쯤엔가 잃어 버린줄도 모르고 내 삶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버린 것들인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내게도 기다림을 가슴에 새길 줄 알고, 외로움 또는 혼자있음을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모두가 문명의 발전을 말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는 이 시절에 저자는 다시 그러한 것들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이 있지 않느냐고 이 책을 통해 물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얻은 것들을 단순히 발전이나 진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정말 한 사람의 존재로서 세상을 더 살만하게 해주던 어떤 것들을 포기한 댓가는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에서 말하던 만큼의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비틀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이 책을 통해서도 저자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의 삶에서 빠져나가버린 것들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지 않는 친구, 아니 이제는 다시 곁에 올 수 없는 친구를 기다리는 것,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 그리고 미래를 쫒다 과거를 잃어 버린 친구에 대한 단상 등....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인생에 켜켜히 쌓여가는 손때 묻은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또는 소중함에 대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또한 도주를 꿈꾸며 기차에 오르는 것, 조용히 술집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소란함을 느끼는 것, 선술집에서 함께 텔리비젼 보기 등에서는 세상에 함께 휩쓸려 조용히 눈길을 보내고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통과 융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효율만을 앞세워서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이 시대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한 흑인 여성의 에피소드는 부모가 또는 누군가가 알려준 자신의 생일이나 고향에 매여 사는 우리 삶의 피상성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내 삶에 시가,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에세이들이 풍요로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삶속에서도 시가 보이고 에세이들이 풍요롭게 담겨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삶속에서도 그들의 삶속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입니다. 미래만 바라보고,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과 깔끔함과 편리함 만을 누리다가 과거속에 묻힌 손때 묻은 시간의 소중한 흔적들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그것들이 소중했다는 사실마저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내 삶의 과거를 만지작거리며 되새김질 할 수 있는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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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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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 황야도 천국이 되니" 

  인생을 살며, 시집 한 권과 빵 한 덩이, 그리고 포도주 한 잔만으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영혼이 있습니다. 세상에 둥지를 튼 많은 영혼들이 자신의 삶 어느 순간엔가는 그러한 충만함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얻고, 자녀를 얻고, 간절히 소망하는 무언가를 이룬 순간에..... 아마도 많은 이들은 마음속에 그러한 충만함도 함께 지닐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을지라도, 자녀가 품을 떠나버렸을지라도, 그리고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더라도 시집 한 권과 빵 한 덩이, 그리고 포도주 한 잔으로 천국의 기쁨을 누리노라고 고백하는 영혼이 있다면, 우리의 눈에 아마 그 영혼은 대단히 불행하거나 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는지..... 그래서 결국 첫머리에 언급한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황야도 천국이 되니”라는 말은 삶의 지난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 인생의 쓰디쓴 뿌리를 소화시켜 본 적이 없는 영혼이 인생의 겉멋을 그럴 듯하게 과시하기 위해 읊조릴 말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멋져 보이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사랑하고, 그 시인을 키웠던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 이러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작품집을 읽는다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일입니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고된 노역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삶 어느 구석에 박혀있었을 가시를 치료하고 보석들을 닦아서 빛낸 앞서간 선배들의 선물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한 같은 글이라도 읽는 이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깊이와 넓이의 차이가 있을 터인데, 거기에 덧붙여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여로에서 함께 보듬고 살며 반복해서 되새기던 시어들이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루 또는 며칠 만에 후다닥 읽고 나서 감상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듯합니다. 그의 말과 느낌을 듣고, 시인이 이 시들을 골라 모은 사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것이 시인을 사랑하는 이들이 보여야 할 예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한 사람이 시를 읽고, 그 안에서 삶의 감춰진 충만함을 얻으며 걸어가기에는 너무 바쁘고 각박한 것일지 모릅니다. 내일 양식을 걱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미래를 힘겨워하는 현실에서는 시 한 구절을 읊조리는 여유가 사치라고 여겨질 만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바람처럼 그녀가 차린 '언어의 성찬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더 깊고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게' 된다면, 사치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힘겨운 현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지주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직접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시를 알아보는 맑은 눈들이 늘어’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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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법칙
이몬 버틀러 지음, 김명철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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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market)'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재래시장'이라는 표현에서처럼 물건이 거래되는 구체적인 장소를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이러한 구체적인 장소를 나타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시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식시장' 또는 '주식시장이 강세다', '신흥국 시장' 또는 '선진 시장', '물건을 시장에 내놓는다',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 등등..... 오늘날에는 이러한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시장이 훨씬 더 귀에 익은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의 울타리 안에 사는 우리들은 은연 중에 시장이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부분적으로나마 몸으로 체득하며 살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앞서가거나 따라가지 못해서 시장에서 물을 먹는(?) 경우들이 종종 있고, 말로 확실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체험적으로 시장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나의 기억으로 경제에 대해서,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공존하는 시장경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것은 아마도 고교시절의 사회과목과 관련된 시간이 처음이었던 듯 합니다. 그 유명한 수요와 공급곡선에서 시작하여 '균형가격' 이론과 수요와 공급 탄력성 등에 대한 내용들을 머릿속에 차례로 구겨넣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어렴풋이나마 내 기억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하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시간이었고 시험을 위해 억지로 암기하는 고통스런 시간도 추가되어야 했지만, 그래도 지금 되돌아보면, 싱싱한 머릿속에 그러한 지식을 채우던 시간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은연중에 깨닫는 즐거움이 공존하던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이후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시장과 경제에 대해서 부분적인 지식과 경험들은 쌓았겠지만, 체계적이거나 깊이있게 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나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 듯도 합니다.  

 이 책의 원제가 'The Best Book on the Market'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생각한다면 저자가 상당히 '거시기'하게 제목을 붙였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책에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라고 하더라도 동양적인 사고에 젖은 내게는 과대망상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고, 말로 먼저 그렇게 허풍을 떠는 것이라면 실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책제목에 동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시장경제에 대해서 너무도 쉽게,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항들을 콕콕 짚어가며 들려주는 저자의 솜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시장경제에 대한 조각지식들이 멋지게 연결되고 정리되어 시장의 작동원리와 방법을 지금까지보다 훨씬 훌륭하게 이해하게 된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별다른 근거없이 시장에 대해서 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신감의 훌륭한 기초석 하나를 마련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중국 란저우의 뒷골목 시장에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 소녀를 통해 자신의 헤진 바짓단을 수선했던 멋진 경험에서 저자는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시장은 세상의 모든 곳에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그러한 시장이란 어떤 세계인지, 시장이 발전하고 부를 생산하는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시장에서 가격의 역할이 무엇이며, 시장의 정교한 메시지를 교란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시장에서 경쟁이 어떤 결과는 가져오는지, 시장에서의 규칙과 윤리는 어떤 것이며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요인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장은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마주 익숙한 재료를 요리하듯이 이리저리 뒤적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의 이야기에 몰두하다보면 시장경제에 대한 중요한 토대들을 이내 익히고 즐기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됩니다. 책표지에 적힌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아주 실용적인 길잡이'라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고교시절 어려운 용어들 속에서 억지로 알려고 했던 내용의 중요한 요점이 이 책에서는 하나도 어렵지 않게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린 학생들로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시장경제에 대한 훌륭한 소개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The Best Book on the Market'이라는 제목이 결코 과장된 자신감이나 실없는 허풍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고 동의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확고히 믿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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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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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텔레스크린이라는 도구를 통해 당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이 소설이 말하는 현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당원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하든지 텔레스크린을 통해 누군가가 들여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입밖에 내는 소리까지도 이 기구가 감지해 낸다는 사실은, 결국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을 온전히 지배하고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고 있는 빅브라더의 존재 방식을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스스로 통제하며 빅브라더의 방식으로 순응하는 것에 더하여, 주어진 현실에 맞게 과거의 역사적 사실마저도 철저하게 왜곡하고, 그러한 철저한 왜곡이 현실이라고 강요되는 모습은 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그러한 강요와 억압과 감시가 의외로 효율적으로 -다른 이면을 들춰보면 분면 표면적인 효율이겠지만- 현실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빅브라더를 등에 업은 권력자들은 반역을 꿈꾸는 주인공 윈스턴과 같은 이들을 고문과 회유, 감금과 폭력을 통해서  철저하게 몰자아에 이르게 만들고, 결국은 그러한 과정의 끝에 만들어진 빅브라더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품게 된 훌륭한 지지자를 성공적으로 세상에서 제거해 버림으로써, 또 다른 반역의 싹을 지능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며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저자는 빅브라더라는 전체주의적 존재에 대해 한 인간이 소심한 몸부림으로 저항해 보지만 결국 거대한 힘과 권력과 체제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의미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실패와 잔혹한 전체주의의 성공적인 모습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또 다른 소설 <동물농장>을 통해서 힐난했던 스탈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의 부패와 악영향에 대한 또 다른 측면에서의 경고라고 할 수도 있겠고, 미래의 세계에 대한 나름의 암시나 상상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 소설이 1940년대에 쓰인 당시 현실에 대한 경고나 미래에 대한 단순한 공상이 아닌, 1984년이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중인 현대문명에 대한 기막힌 예언을 담은 통찰력있는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전으로 많은 이들의 손에 오르내리고 있고, 현대의 발달된 IT와 통신 기술은 저자가 말하는 텔레스크린과 비교되며 우리의 현실을 옥조이곤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빅브라더의 나라는 아니지만, 각종 정보통신기기의 발달과 사용과정에서, 어찌보면 이 소설이 형상화한 당원이라는 인물들보다 더 자발적으로, 우리만의 빅브라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을 읽으며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이 소설이 현대의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고 있는 비록 명확한 실체가 없고 존재감이 없긴 하지만 현대문명이 이루어가고 있는 시스템이나 가치체계로서의 빅브라더에 대한 경고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정보통신 기기에 취해 사는 많은 이들은 윈스턴과 같은 별생각없이 체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불편함보다는 안락을 느끼는 당원이고, 법으로 또는 기술적인 기구의 진보를 통해 한없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이들은 오브라이언과 같은 적극적으로 빅브라더를 형상화해 가는 권력의 중심부에 근접해 있는 이들이고, 그리 만들어지고 있는 실체를 모르는 빅브라더는 지금 우리의 삶과 생각과 감정까지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조금더 시간이 지나면, 윈스턴과 같이 반역을 꿈꾸더라도 결국은 덫에 걸린 쥐마냥 옴짝달싹 못하고 자발적으로 문명의 이기에 투항해 버리고 그 안에 안주하게 되는 그런 운명의 한 부분을 무심코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한번쯤은 자문해 볼 일입니다. '오늘도 빅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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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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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 책이 유쾌하게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더라도 쇼펜하우어라는 이름과 그의 대표작에 대해서만큼은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자신도 과학의 영향을 받은 실증주의에 대한 대립각으로서 '생의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서, 초인과 권력에의 의지를 주창한 니체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철학자로서, 그러한 영향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실존철학에까지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는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를 냉소적으로 비웃었던 염세주의자로서 기억되는 '쇼펜하우어' 정도가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모두이지만, 그의 이름과 대표작은 아주 오랫동안 잘 알아온 것처럼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직접 읽는다면 그러한 편안함은 지적 나태에 불과했다는 것이 금방 탄로가 날테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독설과 냉소와 비판이 가득하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삶 자체를 부정하는 염세주의자의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낙관주의 철학으로 읽어내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쇼펜하우어 철학이 담고 있는 '유머와 위트, 풍자와 결합한 예리한 통찰'을 그의 논문과 편지 등에서 발췌한 인용문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 자신이 해석한 쇼펜하오어 철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고, 그 의견을 합당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뒤이어 연결시켜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씌여졌으니, 이 책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랄프 비너(저자의 이름)의 방식으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유쾌하게 읽어내기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겸손으로 위장한다', '진정한 예술의 원리는 자연이 증명한다', '부패한 언어의 속삭임에 속지 말라', 자연은 철저히 귀족주의적이다', '참된 가치는 죽은 후에 비로소 드러난다' 등 각 단원의 제목들은 그의 철학을 유쾌하게 이해하는데 근간이 되는 저자의 분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그러한 생각들이 쇼펜하우어 철학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고 이해하면서 그의 철학을 유쾌하게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쇼펜하우어 철학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의 철학에 담긴 유쾌함이나 유머, 풍자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실제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는다기보다는 랄프 비너의 쇼펜하우어를 이용한 세상에 대한 풍자 또는 유머 모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이 이런 식으로 찢겨 읽히는 것은 바라지 않은 듯 합니다. 이 책에서도 여러 곳에 자신을 알려고 한다면 자신의 저작 전체를 읽으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익숙한 듯 하지만 결국 제대로 알지 못했던 쇼펜하우어 사상의 일면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즐거움이 되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유쾌하게 읽는 것에 앞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읽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사상 전체에 대한 조망을 기대했는데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자체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이해보다는 단편적인 해석과 글모음 -그것도 저자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된 - 뿐이었다는 아쉬움 때문일 듯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게 남는 숙제는, 어렵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 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날이 되면 이 책에 투자한 시간이 더 값어치가 나가게 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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