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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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가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말하는 방자한 놈인 건지 아니면 반대로 너무 약한 놈인 건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죄악 덩어리였던 듯, 끝도 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 p123-4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과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에곤 실레의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풍기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속 감정 한자락을 자극하는 퇴폐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로 인해 언젠가부터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삶의 한구석에 억눌려 있을 나 자신과 사람들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그래서 그러한 어두움이 내 자신의 삶에만 달라붙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런 해방감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 실격자'..... 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딱지를 붙이지는 않았을지라도 수십여년의 삶속에서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라는' 또는 '스스로가 정상적인 사람들의 삶속에 녹아들지 못한 실패자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절망의 시간이 있지는 않았는지..... 삶을 돌아보면 그런 나약함(?)에 허우적이던, 내면에 꼭꼭 숨겨진 상처의 흔적을 누구나 한두개 쯤 가지고 있지 않을는지.....

 주인공 요조는 스스로를 '안팎 구별 없이, 그저 끊임없이 인간의 삶에서 도망쳐 다니는 바보 멍청이', '인간 자격이 없는 어린아이' 그리고 결국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인간 실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마음이 너무 순수하여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익살을 통해서 세상과 스스로를 연결하는 방법을 배우지만, 또한 그것은 세상에서 자신을 꽁꽁 숨기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철저한 연기에 불과한 익살의 배후에 있는, 세상이 주는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너무도 쉽게 상처받는 나약한 내면에게는, 자신의 비밀이 언제 탄로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나약함과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그가 의지하기 시작한 것은 술과 담배, 창녀, 그런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의 나약한 심성에 그런 것들은 잠시 자신을 잊게 해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심한 자책과 좌절의 악순환에 빠뜨리고 마는 듯 합니다. 그의 삶은 술과 여자, 자살과 마약, 가족과 아는 이들에게서의 외면당함, 정신병동에의 입원 등 파멸로 향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는 결국 자신에게 '인간 실격'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인간이라고 태어났지만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 인간의 자격이 없다는 자기 인식에 이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아마도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그랬듯이 자살..... 또는 살아 있으되 아무 의미가 없는 삶..... 그런 것일 듯 합니다. 삶과 죽음이 아무런 차이가 없는..... 

 역자가 소개하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보면, 소설속의 요조와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요조가 말하는 수기속의 많은 사건들은 작가의 삶속에서 고스란히 옮겨온 듯, 삶에 배반당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모습까지도 그대로 닮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 작품속에 자신의 생각과 삶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작품해설에서 역자는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 세상과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이 작품만큼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도 드물 것'이라고 말하며 '어떻게든 시회에 융화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렵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요조를 통해서 분명 인간사의 허위와 잔혹함, 배신과 사악함의 그림자들을 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저런 이 소설에 대한 긍정적인 소개에도 불구하고 '누가 이런 삶을 지지해 줄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아무도  감히 적나라하게 파헤쳐 표현하지 못하던 인간의 허울을 한겹 벗겨내 보였다는 것, 우리 내면에 숨겨진 나약함과 어두움에 대한 진솔한 대면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긍정에도 불구하고, 요조의 파멸을 무조건 다른 사람들의 위선과 잔인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작가 다자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를 부정하는 쪽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자는 작품해설에서 '요조의 고뇌를 인정할지 하지 않을지가 다자이를 받아들일지 부정할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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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삶 - 믿음이 이긴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긍정의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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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His Time, In His Time, He Makes All Things Beautiful, In His Time....'  우리말 가사로는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라고 불렸던 복음성가의 한 구절입니다. 물론 이 성가가 말하는 궁극적인 주님의 시간이란 예수님의 재림의 때, 모든 것이 회복하는 때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내 작은 믿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앞길에 버티고 서있던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거나 바라던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때에도 문득 문득 생각하게 되고 마음을 가다듬고 겸손히 한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를 받고는 하였던 노래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은거야, 언젠가 그 때가 되면 내가 바라던 것들만큼이 아니라 더 나은 것들을 받을 수 있을거야....' 내 자신의 작은 일에 이리 적용하며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간직할 수 있게 한 이 성가가 아마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그런식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소망을 간직하며 자신의 현실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언젠가 주님의 시간이 도래하면.....  

 이리 삶에서의 소망과 소원들에 대해서 '언젠가...'라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을 더 성숙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러한 방식의 생활에 더 익숙해져 있었던지라, 이 책을 통해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선포하는 '지금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와 회복의 때'이고 '지금이 하나님의 온전한 복 가운데로 들어갈 때'라는 말들은 '언젠가'라는 단어로 꽉찬 내 영혼의 막힌 한쪽 벽을 말끔하게 뚫어 주는 듯한 시원함을 내 영혼에 선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의 재림의 때에 완성되기는 하겠지만, 지금 내가 사는 가정과 이웃, 교회와 직장에서도 확장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설교 말씀을 수도 없이 들어왔고, 그리 이야기하는 책들을 여럿 읽기도 하고  성경 구절들을 묵상하기도 하면서, 왜 '언젠가'가 오늘이나 내일 또는 다음달에나 올해일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막연히 미래의 '언젠가'라고만 생각하고 말았을까.....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도적과 같이 불시에 임할 수 있으니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 신앙의 모습은 은연중에 내일이나 모레, 또는 올해나 내년은 결코 아닐 것이라는 방심과 나태함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나같이 '언젠가'라는 시간에 머물고 있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이들의 모습을 알고 있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지금이 당신의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께 나아가 그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이고, '지금'이 그 분의 복을 누릴 때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 하나님께로부터 최고의 복을 받고, 최고의 사랑을 받을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저서 <긍정의 힘>이나 <잘되는 나>에서와 같이 이 책에서도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멀리서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며, 그의 자녀들을 살피기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쓰러진 자녀를 손내밀어 일으키시고, 상처받은 자녀를 따스한 손길로 위로하시고, 울고 있는 영혼의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시고 능력있게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굳건한 믿음과 또 자신의 삶속에서의 생생한 체험이 바로 이 책에서 선포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이고 하나님께 복받을 때라는 믿음,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 주시리라는 소망, 원하는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을 구하는 대로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기대, 시련과 고통도 더 큰 일과 축복을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희망의 증거가 되겠지요. 이러한 격려에도 불구하고 분명 냉정하게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에게는 여전이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것들은 삶의 즐겁게 하기보다는 고단하게 만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그러한 고단함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최고의 삶을 준비하고, 최고의 축복을 내리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하기를 멈추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시련이 오면 피하지 않고 맞서 이겨내고 성장의 시간으로 삼고, 열정을 가지고 꿈을 꾼다면 말입니다. 바로 그러한 삶의 근저에는 하나님께서 바로 나의 아버지 되시고, 나와 함께 지금도 동행하고 계신다는 아주 단순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우리들에게 이 책을 통해서 이리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적지가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지금이 너의 때다!'라고.....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하나님안에서 믿음으로 자신의 때를 열어가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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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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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막 1장의 중간에 등장하는 햄릿의 독백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을 지금까지는 당연하게 '사는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저자는 '<To be or not to be>가 <사느냐 죽느냐>를 포함하는 존재와 비존재를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에, 또 이 독백이 살고 죽는 문제를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명시하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쉽고 모호하며 지극히 함축적인 일반론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사의 선택으로 옮김은 미흡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하며 자신은 '원문의 뜻과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순우리말 <있다>와 <없다>의 변형인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번역하였고, 한자 개념으로 쓸 경우 <존재하는냐 마느냐> 정도가 될 것이다'고 말한다. 또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삶이냐, 죽음이냐> 등의 다른 이들의 번역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가 이 독백에 담긴 햄릿의 갈등에 대한 세심한 고려후에 나온 것들일 것이고, 읽는 이로서도 이의 의미를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며 들여다보게 만드는 대목인 듯 하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도 고전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지 않을는지.....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많은 명작들을 나이가 들어 새로이 읽노라면, 실제로는 본문을 읽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느낌이나 감상보다는, 과거의 학습을 통해서 미리 만들어진 감상의 틀속에서 읽고 있는 모습을 매번 느끼게 된다. 처음 배울 때, 배움과 책읽기가 함께 동반되었다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느낌은 없었을텐데, 나 역시 고스란히 우리 교육이 속성으로 찍어낸 붕어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에게 연극과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 어린이용 햄릿과 함께 읽을 수 있다면 한번 읽어보라는 의미에서 구입했던 이 책이 결국은 내손에 먼저 들려 읽히게 되었지만, 읽으면서 내용보다 먼저 앞서 달려가는 것은 햄릿의 우유부단함, 오필리아와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마지막에는 햄릿과 레어티즈, 왕과 왕비까지 모두가 죽게 되는 비극을 넘어선 참혹함, 그리고 그들의 갈등 속에 자리잡았던 악행과 속임과 광기 등 교과서적으로 배웠던 내용들이고, 결국 그러한 선입견은 작품자체를 나의 방식대로 순전히 느끼고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만다. 아마도 그러한 방해를 극복하게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저자의  <To be or not to be>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각주와 같은 세심한 설명이나 아니면 조금더 여유를 가지고 각 배우들의 대사에 대해서 좀더 주의깊게 생각하며 읽어가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만에 손에 든 <햄릿>이 많이 이야기를 내게 하기를 원하지만, 이번에는 <있음이냐 없음이냐,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독백 속에 담긴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를 스스로 되뇌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다음에는 또 그때의 이야기가 내 가슴속에 남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 Frailty, thy name is woman.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로다. (1막 2장) 

- 난 그저 북북서로 미쳤을 뿐이야. 바람이 남쪽으로 불면 뭐가 발인지 톱이지 분간할 수 있다고. (3막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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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경제학 - 인간은 왜 이성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가
피터 우벨 지음, 김태훈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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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주창하는 고전 경제학에 대해서, 인간의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현실적인 모습을 증명해내기 시작한 행동경제학이 아직까지는 경제학의 지극히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던 현실속의 인간의 여러 모순된 반응을 더 그럴듯하게 설명하며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 많은 영역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기존 경제학이 해내지 못한 더 그럴 듯한 해결책들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합니다. 이미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학책을 통해서 기존의 연구성과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이제는 이 분야의 책을 대하게 되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행동경제학의 면모를 알려주는 연구결과나 여러 용어들에 대한 설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내용들을 기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행동경제학을 현실속에서 어떻게 활용하여 삶을 더 개선시킬 것인가라는 면에서 기존의 책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동과학자이며 결정심리학자이자 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행동경제학이 말하는 인간의 비합리성과 비이성성에 대한 주장을 기존의 논문이나 실험결과들에 근거한 이론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자신이 현장에서 치료한 비만이나 중독 환자들의 치료 경험과 연관시켜서 설명함으로써, 먼저는 행동경제학이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그리고 비만환자들에 대한 여러 행동경제학적인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간다면 행동경제학이 기존의 경제학이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훌륭하게 제시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에서 시작된 고전경제학의 자유시장이론이 엄청난 부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부가 인류에게 풍부함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행동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시장의 기적을 가져온 무한한 자유에는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합리적이지도 못한 나쁜 결정을 내리고 고집할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저자는, 비만의 경우 자유시장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여러 근거들로 가득하겠지만, 행동경제학자의 눈에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만큼 이성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말로 1부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성적이지 못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모습을 밝힌 행동경제학의 역사, 즉 커너먼과 트버스키에서 시작되고, 리처드 탈러에 의해서 경제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실험실의 설문지나 교묘한 실험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시장에 존재하는 소비자의 비이성적 행동을  실례로 보여준 이베이의 낙찰방식 등의 현실적인 증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연금저축이나 장기기증과 같은 문제에 부드러운 개입주의를 적용하여 우아하게 해결한 결과를 바탕으로, 행동경제학이 우리 눈앞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인간의 이성적인 측면과 비이성적인 측면 모두를 고려한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3부에서는 비만과 연관된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즉 이성적이지 못한 식욕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고, 마지막 4부에서는 인간의 비이성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만이나 흡연등의 중독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이유들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기존의 행동경제학이 보여주었던 부드러운 개입주의를 뛰어넘는 세금정책이나 금전적인 유도, 식당의 규제, 자유의 제한 및 자제력의 교육 등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물론 부드러운 유도 이상의 적극적인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자유를 희생하지 않는 부드러운 개입이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 더 효과적인 적극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시험하고 평가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기존의 행동경제학 서적들에 비해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할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 제한을 가하고, 적극적인 간섭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비만이나 중독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좀더 구체적인 사례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비만이 각 개인의 이성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비이성적인 욕구와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트랜스 지방을 금지하거나 식품 내용물에 대한 표기를 강화하는 등의 부드러운 개입주의를 넘어선 '적극적인 간섭', 즉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세금의 일부를 돌려주거나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만드는 회사에 대해서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등의 세금정책, 독극물용기에 경고를 위해 해골표시를 하듯이 건강에 해로운 식품의 용기에 반감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표시하게 하는 정책,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기 위한 연구 및 문화적 환경의 조성, 그리고 학교에서의 자제력의 교육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고 제대로 운동하지 않는다면, 또한 담배를 끊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으며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 시간은 투자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런 문제를 초래한 자유시장 정책을 장려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잘살 권리도 있다. 자유와 복지가 충돌할 때는 세심하게 조정한 선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작은 대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열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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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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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모퉁이 식품점의 남자, 자동차 정비소의 수리공, 주치의, 선생님, 이웃, 동료들이 그렇다. 항상 '거기에' 있는 좋은 사람들, 작은 일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 매일 우리를 가르쳐주고 축복해주고 용기 내게 해주고 지지해주며,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는 않는다. /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를 의지하고,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에게 배우고 뭔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누가 그러는지 우리는 결코 모른다. /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자신이 중요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여러분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늘 알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새롭게 복간되는 개정판을 받아 들고서 20여년전에 보고 책꽂이에 그대로 놓여있던 구판을 먼저 펼쳐보았습니다. 그때는 내게 어떤 느낌으로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희미하기만 하지만, 아직까지 제목만큼은 그 당시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첫번째 이야기 '나의 신조'에 나오는 저자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하는 여러 내용의 대강과 '너구리'편에 나오는 낭만적이지 않은 너구리 부부의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어렴풋이나마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처음 이야기에 대한 기억은 저자가 말하는 핵심이니 당연하겠지만, 다른 것은 다 망각속으로잠겨 버렸는데, 왜 너구리 부부의 소란스러운 사랑 이야기만 그런 망각의 늪에서 구원받았는지는 내 자신도 모를 일입니다.  

 첫머리에 옮겨적은 본문 내용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16년간이나 자신의 머리와 수염을 손질해 주던 이발사를 생각하며 저자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넓은 세상에서, 우주 만물을 둘러보다보면 한없이 하찮은 것 같지만, 누군가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듯이, 또한 우리 각각은 누군가가 의지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안아주고 싶어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는 이 부분이, 이번에는 내 눈길을 한없이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다시 개정판이 나온다면, 앞의 두 이야기와 더블어 기억의 수면위로 모습을 들어내 보이며 내 지나온 삶이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보게 하는 내용이 될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어린시절, 파란 하늘을 눈망울 가득히 담을 줄 알던 시절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어도 마음으로는 금방 알았을 것인데, 이제는 누군가가 이리 글로 써서 눈앞에 보여주고 나서야 '아 정말 그렇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면서 더 많은 돈과 물질과 명예를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마음은 어린시절 그때만큼 만족함을 가지지 못하고 한 구석에 무언가 허전함이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잊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들을 세상의 가치와 바꾸고 잃어버린 연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은이가 말한대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갈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아주 어린시절에 모두 배우고 익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른으로서의 삶이 복잡해지기는 하였어도,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이지에 대한 지혜는 어릴 때 배웠던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지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아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등의 가르침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주변을 세심히 살핀 이야기와 통찰들은 나의 삶속에 담겨 있는, 내가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던 작고 사소한 것들, 잊어버렸지만 잊어버리지 말아야 했던 것들, 그리고 알면서도 어른이 되면서 배우게 되는 위선이나 속임수들에 의지해서 회피하던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을 사심없이 들여다보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배운대로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가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는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다면 아마도 내 주변은 훨씬 밝고 활기차고 살만한 곳이 되었을텐데..... 하지만 언제부턴가 어린 시절 배웠던 단순하고 명료한 가르침이 우선하기보다는 어른이 되면서 배우게 되는 속임과 무관심, 적절할 때 쓰기위해 숨기고 있던 가면과 변장술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사는 방법 또는 지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금 세상에 정말 희망을 주고 삶에 깊이를 더해주는 그러한 삶의 지혜는 대학의 상아탑이 아닌 유치원의 모래성, 어릴적 코를 훌쩍이던 시절에 배웠던 아주 단순하지만 명료했던 가르침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러한 가르침을 들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용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해야 한다는 것도 그 시절에 배움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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